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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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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수필 옥천행 댓글:  조회:1859  추천:3  2014-07-22
    바곤이 여섯개밖에 안달린 작은 렬차가 옥천역에 도착하니 옥천역 자그마한 건물에 “명시 “향수”의 고향입니다.” 라는 그리 크지않은 현수막 글발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려보자- 이번까지 세번째로 오는 곳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던 옥천땅, 대시인 정지용님의 고향이 여서 올때마다 새로운 감수를 받아안게 되니 말이다!) 나는 청주에서 일하는 동생을 만나러 함안에서 “시조경창대회”행사가 끝나는 길로 상행차를 잡아탔지만 결국 동생이 있는 청주먼저 옥천땅에 내려버렸다. 깨끗한 려객휴식실을  빠져나오니 역광장 남쪽으로 치우쳐 조용한 “정지용시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자를 보니 2003년에 세워진 시비여서 그런지 그리 물이 낡지않았고 깨끗하고 우아한 멋이 다분히 풍기였다. 옥천읍쪽으로 향한 남쪽면엔 동시 “할아버지”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고 역전을 마주한 면엔 명시 “고향”이 새겨져 있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좀 쓸쓸한 분위기에 차분히 말려들었다.  그렇다 고향이라고 찾아왔어도 그 색동꿈 곱던 오색찬연한 고향일수가 없고 스산하고 망가진 동네일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태를 묻고 이역만리 넘나들다 그리워 달려오던 고향임은 숨길수 없고 자나깨나 베개머리에선 고향기슭을 누볏음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리라. 생가로 가는길엔 촉촉히 싸락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옥천의 비를 맞으면서 마음까지 촉촉히 적셨다. 생가는 3년전 보던 모습 그대로인데 삽작문이 반쯤 열려있고 웃방문이 활짝 열려있어 마치도 지용님께서 나더러 어서 오라고 부르시는것 같았다. 생가로부터 “정지용문학관”으로 가는 소로길은 온통 짚부스러기에 묻혀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촉촉히 내리다 보니 나의 신발엔 짚부스레기들이 가득 게발렸다. 문학관 정문앞에서 나는 신에 게발린 짚을 다 떨어버리고 정중히 문을 열고 문학관에 들어섰다. 나젊은 남성접대원 두명이 달려와서 반가히 맞아주었다. 나는 신을 벗고 끌신을 갈아신은다음 먼저 정지용님 동상앞에 가서 꾸벅 90도 경례를 드리고 다시 접대원실에 들어섰다. 나는 중국에서 올때부터 혹시나 해서 준비해온 “중국조선족소년보”를 꺼내서 접대원한테 정중히 드렸다. 그날 우리 신문엔 “정지용문학관”을 상세하게 소개한 나의 글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접대원은 아주 고맙게 우리 신문을 넘겨받아서는 유심히 들여다 보는것이였다. 그리곤 향기롭고 따뜻한 록차를 가져왔다. 조금후 다른 접대원이 증정본으로 갖만들었다는 “정지용시선집”을 선물했다. 받아보니 정지용님의 동시들도 거기에 실려있어 나는 더 기뻤다. 여러해 문학편집을 해오면서도 나는 정지용님의 동시들을 우리 신문에 소개하지 못하여 늘 민망한 마음을 안고있던 차라서. 문학관을 자세히 돌아보면서 나는 다시한번 지용님의 시세계에 포근히 잠겨버렸다. 문학관내에는 나외에 또 지식인인듯한 늙은 부부가 이쪽저쪽 거닐면서 사진자료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를 더욱 기쁘게 한것은 내가 지용문학상을 타서 찍은 나의 수상시집도 진렬대에 정연히 놓여있었다… 나는 시낭송실에 들어가서 이어폰을 귀에 걸고 목청돋우어 “향수”랑 읊으면서 오래만에 시예술의 향연에 포-옥 젖어 온몸을 시흥으로 가뿐히 샤워하였다… 내가 알고있는 원옥천군문화원장 박효근님을 찾아따난것은 그날 오후였다. 골프련습장을 꾸리고 있는 박원장댁에까지 찾아가니 원장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나는 중국서 갖고갔던 흰술한병과 조선명태를 인사로 내여놓고 박원장님이 차례주는 술상을 마주하고 긴 회포를 풀었다... 자유시장으로 가니 무우, 홍시, 배추 등이 우리 연변과 별반 차이없이 팔리고 있었다. 상냥한 얼굴을                                한 아줌마들이 곰살궂게 굴었다. 나는 팥죽집에 들어가 2천원을 내고 팥죽한그릇 맛보았는데 그렇게 향기로울수가 없었다. 저녁엔 또 옥천역앞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어가 보리밥에 된장국을 맛나게 먹었다. 진짜 조종의 음식맛(순맛) 그대로여서 뼈속으로 우리맛을 느껴봤다. 청주에 있는 “동양일보”에 전화를 넣으니 조철호 회장님께서 함께 진천군에 있는 조명희시비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문학을 즐기는 나의 동생도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 편집 실장 유영선님이랑 함께 간단다. 보고싶었던 얼굴들이다. 나는 지용님의 고향을 떠나는 마음이 퍼그나 서운했지만 또 포석님의 생가에 안길걸 생각하니 마음이 또다시 설레이기 시작했다…  
68    물의 세계는 우주만물 중심에 있다 댓글:  조회:1732  추천:1  2014-07-16
             1 물은 온 지구를 감싸고 있다 지도를 펼쳐라 남색으로 색칠된 부분은 모두 물이다 땅떵이는 결국 물우에 떠있다   물은 남색의 이불로 땅떵이를 꼬옥 감싸고 있다 물이 없는 지구는 피부없는 앙상한 뼈일 뿐이다   2 인간의 몸에는 70프로가 물로 형성되였다 인간은 결국 물에 실려간다 한방울의 물이 없어 말라죽은 생명은 벌써 사막의 이야기다 한방울의 물이 없어 갈라터진 입술은 지구의 표면이다 물은 형체뿐 아니다 물에 혼이 있고 물에 말씀이 있다   3 락락장송은 피처럼 흐르는 물에 사철 푸르름을 뽑낸다 민들레는 이슬방울에 노오란 웃음을 쓰겁게 웃고있다 새들은 물을 피처럼 쪼아먹고 날개를 파닥인다 산은 산속시내로 갈증을 던다 구름도 쥐여짜면 물이다 이 세상에 물이 없는 곳은 황페하여 상상하기조차 힘겹다   4 물은 부드럽다 부드럽다못해 해를 잠재우고 달을 안아올린다   물은 맑다 맑다못해 수정에다 비한다   물은 생명이다 우주 만물은 물을 만나 싱싱한 모습을 펼쳐준다   5   누구서 물은 무표정하다고 말했던가 아니다 물은 사실 제일 정감적이다 물은 음악을 들을줄 안다 음악의 날개를 펼칠줄 안다 날개의 색채를 가릴줄 안다   누구서 물은 냄새가 없다고 했던가 아니다 물은 향기롭고 물은 달콤하다 물의 향기는 물의 사랑에서 풍긴다 사랑은 물의 분명한 정감이다 물은 자기를 고와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물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분간할줄 안다 물의 애증은 분명하거늘 물앞에서 소홀히 희노애락을 던지지 말라   6   물은 무엇보다 부드럽지만 또 무엇보다 강하다 물은 무엇보다 순수하지만 또 무엇보다 짙은 색채를 가진다 물의 세계에서 거짓표현과 악담과 음모는 모두 금물이다   물의 세계는 오색찬란하다 물의 세계는 우주만물 중심에 있다 물은 곧 세상만물을 운행한다      
67    수녀 (외1수) 댓글:  조회:1671  추천:1  2014-07-15
  수녀   잎을 보면 잎이 되고 가지를 보면 가지가 되고 꽃을 보면 꽃이 되고 새를 보면 새가 된다   자연을 밟는 소리 산자락에 내려앉는데 안개속에서는 소원이 아롱지고 기슭을 마냥 씻어내리는 산속시내는 그 굽이를 돌아들면 더구나  싱싱하다.                     노인   권유에 못이겨 글한줄 남겨놓고 사막으로 들어간 전설 다시는 누구도 본적 없다.   인간에겐 영원한 숙제를 남겨놓고 고비에는 오아시스 차려놓고 하늘에는 총총 별을 돋쳐놓고   하얀 눈이 되여 내려오는가? 하얀 수염이 되여 휘날리는가? 하얀 신선이 되여 우렷이 우리들앞에 앉아계시는가?   누구도 알바없다 누구도 모른다 땅우의 풀들이나 알가? 하늘의 별들이나 알가? … …
66    내클리어(洗肠) 댓글:  조회:1732  추천:1  2014-07-10
내클리어(洗肠)     신이 보낸 제일 맑은 물 재워넣고 이 세상 가장 더러운 오물 뽑아낸다 언제부터 채워넣은 오수(污水)인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육붙이, 침이 튕기는 망발, 물거품이 가득 떠있는 맥주, 누런 빛을 띈 허황, 머리꼭뒤가 빠개지는 고독, 공허… 그래서 둥-둥- 북치며 솟아난 나의 배 이제 찬란한 빛을 주사처럼 쏴넣어 시궁창 밑창까지 시원히 가셔내면 생명나무는 아침의 채마전으로 오늘도 싱싱타.                               (2014년 에 발표)
65    수필 팔공팔팔 ok! 댓글:  조회:1762  추천:0  2014-07-06
                                                                               림금산   요즘은 세밑이라 날씨가 여물어 맵짜다. 하지만 나는 “팔공팔팔”이란 아이디를 가진 카페에 혼을 빼앗껴선지 마음이 퍼그나 따갑다.  출근하기 전에도 나는 컴퓨터에 마주앉아 “팔공팔팔”이란 아이디를 찾아 넋잃고 들여다 보다가는 아쉬운듯 출근길에 오른다. 퇴근후에도 짬만 있으면 팔공팔팔 카페에 들어가 이칸 저칸 드나드는 멋이 장밤을 흥분속에서 헤매인다.     부인보다도 애인보다도 술 한잔보다도 은근히 내마음을 끄잡아당기는 소힘줄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디. 나자신도 내가 점점 더 깊숙히 빠져드는걸 어찌할바 없다. 왜서 그토록 은근한 바줄로 나의 마음을 꽁-꽁 묶어서는 자꾸자꾸 끄당겨 가는지?     1980년대, 중화대지에 “과거”입시제도가 회복된지 4년만인 정확히 1980년 여름, 우리는 당시로는 쉽지 않은 전국 고등학교통일시험에 떳떳이 합격하여 잊을수 없는 대학시절에 들어섰다.     서로서로 낮도 코도 모르는 열혈청춘들이 한 대학의 한 학부 한 반급에서 남창 24명에 여창 23명으로 남녀 비례가 아주 비슷하게 46명이 단란하게 모여서 눈물나는 4년간의 뜻깊은 꿈길을 열어제꼈다.     그때로부터 장장 30년 세월(1980-2010)이 눈깜짝할사이에 바람처럼 물처럼 미처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어깨넘어로 흘러가버렸다. 그때 련애를 했던 학우들은 첫자식이 지금쯤 30살은 될게다. 참, 세월은 살같다는 옛말이 그른데 없다.     그 30년 세월에 우리는 저마다 달콤한 련애사도 있었고 황홀한 결혼도 했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으며 일터에서 공산당의 부름대로 헌걸찬 로동도 했다. 벌써 각 부서에서 중견으로, 령도로, 교수로, 박사로, 귀부인으로, 기업가로, 작가로 맹활약을 보이며 한오리 두오리 흰머리칼을 날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30년세월에 서로서로 학창을 자상히 추억해볼 시간적 엄두가 없었을때가 아주 많았다. 또 서로 멀리 떨어져있고 하는 일 또한 종종별별이다보니 쉽게 만나 운우지정을 나눌 계제가 못된것도 사실이다.     헌데 누가 “팔공팔팔”이란 이 유명한 아이디를 내놓았는지 진짜 우리 동창들로 말하면 큰 상을 안겨줘야 할 고마운 분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우리만의 동창카페를 만든 분은 지금 연변일보사에서 부주필로 있는 김천씨였다)     팔공은 연변대학조문학부80년급이란 뜻이겠고 팔팔은 이젠 쉬쉬한 쉰고개에 오르기 시작하니 더 팔팔해지라는 뜻에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8 즉 횡재하란 뜻으로 너무나 마음에 잘 다가서는 아이디어다. 넘 늙수그레하지도 않고 청춘의 활력소가 팍팍 풍기면서도 뜻이 알맞고 또 누구나 거의 좋아하는 88수자까지 있어 참 입에 올릴수록 마음에 드는 우리만의 아이디다.     더구나 좋은건 아무때건 서로 대화창에 들어가 대화할수 있고 “짜잔 사진방”에 들어가 얼굴모습도 볼수 있고 아침마다 서로서로 하루일을 시작하기전에 인사도 챡챡 나눌수 있고 누가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지조차 다 제때에 알수 있어서 넘 좋다.     북경에서 천안에서 상해에서 할빈에서 장춘에서 커얼친초원에서 연길에서 도문에서… 전국, 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오는 목소리, 얼굴모습, 포즈들을 다 볼수 있고 다 들을수 있고 다 담을수 있어서 넘 좋다…“풍노초”(닉네임)가 한국천안에서 공원놀이하거나 겨울바다 구경가거나 회를 자시는것까지 다 알수 있어 좋다.     “양다리”(닉네임)가 20년만에 상해에서 “훈남”이와 만나 함께 반기는것까지도 다 아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위원장”(길림신문사 부주필 한정일)이가 야밤중에 술마이고 카페에 들어와서 도도하게 읊어주는 시도 들을수 있고 “봄뫼”(시인 김춘산씨)가 새노래 가사를 쓰는 골똘한 모습도, “아지랑이”(수필가이며 교수인 최순희씨)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에서 남편(서영빈)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도 다 제1시간대에 알수가 있어서 넘 좋다. 커얼친초원에서 20주년동창회때 찍은 전설같은 동영상과 사진도, 할빈에서 25주년때 찍은 드라마같은 동영상과 사진들도 볼수 있고 “도리도리”(닉네임) 안방마님의 달콤한 웃음도 자글자글 넘쳐나 더욱 좋다.     “시내물”님이 남편없는 사이 시아버님을 알뜰히 보살피는 모습도 감명깊게 볼수 있고 “대박”이가 신정공급때문에 3일간이나 돌격전을 벌리고나서 맥진해 쓰러진 모습도 볼수 있고 “신여”님이 애들을 가르치느라 흑판에 멋스런 판서를 날리는 반가운 모습도 볼수 있어 넘 좋다. 토실토실 “감자”(수필가 남춘애씨)가 보내주는 명언록도 볼수 있고 “훈남”님의 멋진 탁구동작도 볼수 있어 좋다.     요즘 하늘이 구멍났는지 하많은 눈이 하많은 사연을 싣도 줄창 내린다.  천안엔 20센치..북경에는 40년만에, 한국엔 103년만에 눈이 많이도 내린다. 눈을 타고 우리의 아까운 한집 식솔들도 하늘나라에서 놀러온다’.     우린 너무 일찍 아까운 식솔들을 잃기도 했다.  어찌 인생 중반에 우리 오붓한 식구들을 두고 먼저 성큼 저 눈이 내리는 차가운 하늘길로 가셧는지. 시인 남상수, 소설가 한정화, 편집 최철수. 최철수는 할빈의 동창회에 참가하겠다고 연길 동창들을 조직하느라 앞뒤로 뛰여다니더니 종내는 그 동창회에도 못 참가하고  공부하는 아들애를 떼여놓고 그렇게도 급하게 우리곁을 떠나갔다. 아깝기 그지없는 우리 식솔들. 그들이 남겨준 명까지 우리가 더 살아줘야 하기에 우린 누구나 자기로써 자기의 건강을 챙겨야 하지않을가. 여창들은 술에 빠져 허우적이는 남창들이 아까워 카페에서 만날때마다 그 부탁이건만 왜 술은 그렇게도 끈질기게 우리 남창들을 괴롭히는지.     팔공은 팔팔해야 할줄로 믿는다. 사회에선 중견으로, 가정에서는 호주로, 우로는 늙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아래로는 한창 대학공부를 하는 자식들을 섬기는 우리의 팔공 동창들. 신체만 잃으면 모든걸 다 잃는다는걸 금방 깨쳐야 한다.      그리움이 힘을 낳고 열정을 낳는다는걸 요즘에야 진정 깨친다. 정이 시를 낳고 수필을 낳는다는것도 요즘에야 아는것 같다.  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시와 수필을 많이 써서는 우리 안방인 팔공팔팔(8088)의 “학우창작실”에 올린다. 아니, 내가 창작하는것이 아니라 아마도 동창들이 나한테 매일같이 입김을 불어넣고 진실을 강의하고 그리움과 정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리라.     글이 오르기 바쁘게 줄줄이 댓글을 달아 고무해주고 박수를 보내주는게 어쩜 이리도 가슴이 찡해올가! 대학졸업후 거의 30년세월을 단 한번도 못 만나본 커일친초원의 혜연이랑 상해의 옥자랑 번마다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20대초반에 갈라져 이젠 모두 쉰고개에 올라섰지만 그냥 30년전처럼 맘대로 이름을 불러 또한 넘 좋다.     그립다. 매일 목소릴 듣고 심심잖게 실모습을 볼수록 더 그리운게 우리 사이다.     우리 사인 금전관계도 아니고 상하급관계도 아니다. 평등하고 서로 서로 헤여지면 그립고 만나면 정다운 위선과 가면과 허식이란 꼬물만치도 찾기 힘든, 진실과 진정이 반죽된것밖에는 더 없다. 누가 싫다고 해도 안된다. 친구는 친했다가도 마뜩잖으면 그만둘수 있지만 우린 다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동창들이다. 하늘의 뜻으로 무어진 한집 식솔이니 피할수도 없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젠 년세들도 적잖으니 서로 애지중지 아끼면서 도우면서 배려하면서 다 함께 즐길수밖에.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대들을!! 그래서 난 오늘밤에도 팔공팔팔에 졸시나 졸수필이지만 정을 담아 알뜰히 올린다…                                                                                                                                    에 발표
64    리유가 필요없다 댓글:  조회:1742  추천:1  2014-07-03
왜서 좋아하나 묻지를 말라 사랑하는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왜 싫어하나 묻지를 말라 사랑할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유가 왜 필요해…                          (2014년 4호에서)
63    태양이 너무 찬란해 싫다 댓글:  조회:1542  추천:0  2014-07-02
              태양이 없었을땐 해바라기도 없었을걸 태양이 생겨나면서부터 해바라기도 하는수없이 땅을 뚫고 나와 고행을 시작했다   태양은 줄기줄기 해빛을 뻗쳐 해바라기를  머리로부터 줄기, 발까지 꽁꽁 묶어놓았다   해바라기는 늘 목을 비탈아 태양으로부터 머리를 돌려보려 애썼다 해빛바줄을 끊어버리려 몸부림쳤다   태양의 뜨거운 “사랑”이 싫어 해바라기는 이를 악물다 못해 결국 온 얼굴에 까만 송곳같은 이빨을 가득 돋혀냈다…                           (2014년 4호에서)
62    동시 댓글:  조회:1672  추천:0  2014-07-01
눈은 하얗다 하얀것은 솜이다 솜은 부드럽다 부드런것은 봄이다 봄은 푸르다 푸른것은 잎이다 잎은 빛난다 빛나는것은 해빛이다 해빛은 뛴다 뛰는것은 마음이다
61    엄마는… 댓글:  조회:1477  추천:0  2014-06-30
나의 몸에서 젖내가 날때 엄마는 그대로 분통같은 젖가슴이였습니다   내가 유치원에 뛰여갈때 엄마는 그대로 꽃씨를 뿌리는 원예사였습니다.   내가 글눈을 티울때 엄마는 그대로 자음과 모음이였습니다.   내가 대학으로 날아갈때 나의 농짝을 챙겨주며 “이렇게 떠나문 이젠 집에는 다시 못 들어오나…” 하며 눈굽을 찍던 엄마는 눈물이였습니다.   내가 도시처녀를 데려다 그 분처럼 하얀 얼굴을 보여드릴때 엄마의 까맣게 탄 얼굴은 해살이였습니다   내가 사업차 눈코뜰새없이 돌아칠제 나의 자식들을 안고 업은 엄마는 자장가였습니다   이젠 지팡이 되여 람루한 몸 겨우 지탱하지만 나만 보면 푹 꺼진 눈에 한가닥 마지막 빛을 쏘아내는 엄마는 비-인 껍데기입니다…                   2013년 6월 20일 엄마의 려권을 만들고…..        
60    아라랑 (조시) 댓글:  조회:2014  추천:1  2013-12-27
        1     걷고 또 걸어 발바닥이 소리를 낸다 발바닥 껍질이 벗겨져 아픈 소리를 낸다 뜯고 뜯어 손가락에서 소리가 흐른다 기고 또 기여 무릎팍뼈가 소리를 낸다 부서지는 고름이 흩어지는 소리를 낸다 봇나무껍질을 벗겨다 귀틀집 구멍난 벽을 막으며 아버지, 어마이 찬바람을 막아 신음하던 소리다 가슴에 실오리를 긁는 소리다 긁어낼때마다 아파서 비명지르는 소리다 두만강에 널어 말리는 흰 옷의 펄럭이는 소리다 두만강 모래사장에 피자국을 찍어가던 소리다 두만강 모래무치를 구워먹으며 가슴을 까맣게 태우고 입술을 까맣게 칠하던 타는 소리다…아리아리 아리랑…     2   눈귀에 또르륵 구을던 빛이다 울때뼈가 울컥하게 눈물을 삼키던 껄끄러운 모습이다 가난티를 씻어내고 다듬이돌 두드리던 토닥토닥 절주있는 리듬이다 아침안개 서려올라 무명저고리가 벗은 산허리를 둘러주고 저녁연기 타채쳐올라 초가삼간을 배불리던 이야기다 토실감자, 구운 고구마, 말린 미꾸라지, 더덕반찬… 했어도 하늘이 구멍난 날 또다시 주루룩- 가난이 가득 흘러내리던 소리 아리랑 아라리요…     3     일송정에서 내려다보면 한눈에 안기는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에 선률이 물기둥처럼 드리우고 피빛 노을은 피진한 눈동자를 돋쳐올리고 구슬픈 곡조 익어가는 강끝엔 해가 저문다 돌아 굽이돌아 울려가는 해란강의 소리 모아산이 잠에서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 멀리 바다쪽 하늘 우러른다…아리랑 아라리요…       4   아리랑 아리랑 윙-위잉-위이잉… 북국의 눈보라는 반만년을 휘몰아친다 바람소리 나무사이에 걸려 아츠럽게 가슴 파내린다 박날나무 터지는 추워우는 동북쪽 백두산도 얼어터져 백호마저 눈물짜는 얼음과 얼굼이 가슴 비비는 소리 지동치는 겨울의 소리가 어설프고 뼈마치게 울려간다 말세가 도래하는가 보다   따뜻하던 남쪽나라 수평선이 그립다 푸른 논의 개구리울음소리 그립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남겨나 주소… …   5   육(肉)이 육(肉)에 타버린 자리 혼(魂)이 혼(魂)을 부른다 령(灵)이 령(灵)을 부른다 령혼속에 바위가 세워진다 바위속에 뼈가 세워진다 뼈속에 쇠쪼각이 세워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조상이 피를 토하는 소리다 할배의 수염발이 몸을 후려치는 숨결이다 세상의 공통어가 빛처럼 사방에 튕겨간다 민족의 국제가가 반공중에 하얀 기발로 펄펄 휘날린다                                                                    (2014년잡지에서)      
59    <시> 오빠 댓글:  조회:1939  추천:1  2013-12-02
                          일대 폭풍이 강하게 불어쳤다 나무는 부러지고 수풀은 누렇게 황이 들었다 바람이 갈앉자 세월은 기운이 없어졌다 그저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그림자만 울고 앉았다 그 무렵 시골을 환하게 밝히던 집체호의 그 언니도 종내는 도회지로 떠나버렸다 오빠와 그렇게도 좋아하던 언니 온 마을에 생기를 더해주던 미인 언니였다 오빠와 마지막 눈물로 작별을 고하고 퉁퉁부은 눈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막차의 여음으로 길게 울음을 흘리며 떠나갔다   그때로부터 오빤 실신한 사람처럼 방에 들어박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엄마말씀이 오빠가 크게 앓고있단다 의사분도 다녀갔지만 오빠는 그냥 그본새다   마가을 잎이 다 떨어진뒤에야 오빠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록음이 우거지던 오월, 사랑하는 오빠가 잃어진뒤 온 마을을 샅샅이 뒤졌고 린근 마을에까지 내려가 발칵 뒤집어도 찾지 못했는데 초록이 다 빠져나가고 잎이 다 진 뒤에야 마을앞 내가의 백양나무밭에서 목을 매고 자결한 오빠의 시신이 드러났다 살가죽은 다 그을어서 윤기나고 검은 빛을 띄였다 하늘향해 쏘아올린 눈길만이 여전히 날카로왔다
58    <시 > 장모님 댓글:  조회:2039  추천:0  2013-11-28
당뇨병으로 앓던 장모님 어느날부턴가 한쪽 눈이 멀었다 한쪽눈이 먼 장모님 다른 한쪽눈은 더욱 커보인다 근심이 묻혔는지 울음이 숨었는지 한쪽눈이여서 잘 알리지 않는다 그저 이왕보다 더욱 깊어지고 우묵한 눈이다 한쪽눈으로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애절한 바램은 무엇일가? 말한마디 못 번지며 운명하던 그 시각 이미 멀어진 다른 한쪽눈으로 당분이 피처럼 진하게 흘러내린다                 (도라지 2013년 6기)
57    수필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댓글:  조회:1991  추천:0  2013-11-02
오늘은 무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로 가는 계절의 길목인 처서(处署)이다. 또 한계절이 하늘로부터 날아내린다. 바야흐로 눈앞에 날아내리는 크나큰 가을앞에 인간은 구경 어떤 답안지를 펼쳐내야만 할가?           요즘 중국시단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있는 락영시인(원명:황노파)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게 되였다 참 탄복이 가는 시인이였다. 그가 어린 시절, 부대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가 퇴대하면서 조직의 분배에 잘 복종하지 않았다 하여 3년판결을 받는다 아버지는 화김에 약을 먹고 자결한다 란주로부터 녕하 은천으로 이사하여 고독한 동년을 보내던 락영시인은 중국서남의 편벽한 곳에서 고등학교시험을 치는데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대학인 북경대학에 입학한다. 1998년에 그는 또 중국구라파국제공상학원을 졸업하고EMBA학위를 획득한다.             더구나 그후에는 중공중앙선전부에 배치받는다. 더 후에는 또 중국시장협회 회장조리(中国市长协会会长助理)로도 사업한다. 이만하면 어느정도 학자타입이고 또 권력기관의 정치물도 어지간히 맛보았다고 할수있을것이다. 하지만 그한테는 이것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은가 보다 후에 그는 또 북경중곤투자집단동사장(北京中坤投资集团董事长)으로 있으며 유람풍경구를 개발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제4대상업모식을 창도하여 기업계에도 엄청난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물론 돈도 많이 벌었다.           헌데 그가 창업초기부터 아니, 중공중앙선전부에 있을때부터 절친하게 진했던 그의 동아리들이 그를 배신할줄이야. 그들은 락영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회사돈 3천만원이나 움직여 락영이 몰래 회사하나를 더 꾸렸던 것이다. 일시에 전신에 배신감이 몰려들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은 오랜 옛정까지 여지없이 짓뭉개버리고 돈의 회오리바람에 휘청인것이다. 그는 강한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꼈고 고독의 심연속에 깊숙히 빠져 허우적이였다. 3천만원이 그한테는 별로 큰돈은 아니였지만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인간의 비탈아진 량심은 더는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썼다. 고독과 방황, 인간에 대한 절망과 우정에 대한 불신임, 그는 그래서 아마 시에 그렇게도 많이 비탄과 우수를 담아낸것은 아닌지? 그런 시들이 차츰 축적되면서 중국시단을 놀래웠다. 하여 그는 중국시가학회 리사로, 북경대학신시연구소 부소장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그는 근년래 시단에서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시집 “다시는 나를 사랑하지 말라”, “우수를 거절한다”, “락영집”, “도시류랑집”, “7+2등산일기” 등 시집과 중편소설 “푸른 태양”등을 써냈다.         몇몇 기업가들이 그한테 도대체 얼마만큼한 돈이 있을가고 서로 맞춰보기까지 했다는데 나중에는 그가 어지간히 큰 섬(岛)을 살수있는 돈까지 있다고 짚고 있는걸 봐선 그는 돈에서도 자유를 얻은 시인이였다. 하다면 이제 그한테 무엇이 더 필요할가?        헌데 그는 이에 만족함이 없다. 그는 크게 배신당한 일이 있고 인간의 존엄과 량심에 한대 얼얼하게 얻어맞은 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을것이다. 요즘 그는 세계적으로 폭팔성적인 소식을 또다시 터쳐내 세인을 놀래우고 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고 시를 쓰는 와중에도 등산을 꾸준히 견지하면서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이미 전 세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7대봉우리를 다 독파하고 남극주와 북극에도 다녀왔단다 지금까지 7+2를 성사한 분은 전 세계적으로 15명밖에 없다는데 그가운데의 한사람이 바로 락영시인이다. 하여 그는 세계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 되였다.            그의 시는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였다. 그의 특이한 경력으로 하여 그의 시 또한 아주 특이하고 개성적이였다 헌데 거기서도 제일 주목되는건 그의 시에는 한결같이 랑만이 없다는것이다 시편마다 쓸쓸하고 비참하고 지어 랭혹한 그늘까지 비껴있는게 독특하다. 그가 해발 5,895m의 세계 7대륙 최고봉중 하나이자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을 독파하고 돌아올 무렵 북경대학에서는 그의 시집 “7+2등산일기”에 대한 출간기념회로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참이였다 그가 금방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면서 생명의 위협속에서 살아나와 인간속세에 내려와서 자기의 시집 출간회 분위기에 들어설때 그의 감수는 과연 어떠했을가? 절대로 기쁘지만은 않았을것이다.             그한테는 지위나 권력이나 돈도 다가 만족을 줄수없다. 그가 지금 제일 관심하는 일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 약점에 대한 투시(透视)와 인간의 극한(极限)에 대한 도전과 그런 도전으로부터 오는 짜릿한 시적인 그 어떤 감수일것이다 그는 자기를 포함한 인간을 항상 이 세상의 제일 끝머리의 한계점에 세워놓고 그 심태와 느낌을 새김질하면서 인생을 다루고 인간을 사색하고 있는것이다. 그는 일단 이런 소재로 시를 쓸때면 비애와 그리움과 동경속에 푹 젖어 밤잠도 설칠때가 많단다               참으로 우리 속세인간들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그런 경지에 매달려 자기를 저울질해보고 자기를 반추하고 인간의 심령깊이를 자대로 재보면서 세상의 풍전등화를 눈여겨 보고있는것이다. 인간의 삶의 시작은 구경 어디서부터이고 인간은 구경 어디로 가야하는가? 돈이란 무엇이며 지위란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이며 인간덕성의 최고경지와 최저경지는 또 어떤것인가? 락영시인앞에서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물(物)보다 령(灵)을 속속들이 참빛질하는 그 예리함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락영시인은 바로 이런 속세인간들이 엄두도 못내고 있는 그 인간심해의 바다에서 티끌과 진주를 가려내며 인간이 아직 닿지 못하고 있는 극한에 우뚝 서서 찬서리가 뽀얗게 낀 짜릿한 느낌을 혼자만 맛보며 세상을 웃고있는게 아닌가?  추구란 무엇이며 성공이란 또 어떤 것일가? 이런 숙제앞에 락영시인이 엄숙한 모습으로 또 현란한 빛으로 지금 우리앞에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처서를 맞으며
56    수필 어느날 갑짜기 시골이 그리워 댓글:  조회:2151  추천:0  2013-09-23
수필 어느날 갑자기 시골이 그리워                                                  림금산  어느날 갑자기 국자가가 싫어지고 옛친구가 살던 시골이 그리워 진다 그래서 먹기싫은 아침도 아예 뭉때버린채 무작정 친구가 살던 그 마을로 향하는 뻐스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세수도 하지 않은채다. 한식경이나 몸을 흔들리우며 먼지가 이는 시골길로 달리다 보니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침 한때를 걸러서 배고픈걸가? 아님 덜렁거리는 뻐스땜에 더 시장기가 빨라진걸가? 암튼 배에서 연신 나오는 꼬르륵 소리보다 친구가 살던 마을모습이 그립고 거기에 거친풀처럼 그냥 남아있을 친구의 숨결이 더 간절하다 굽이 굽이 자아올라 깊이 파고 들어가니 칙- 하고 뻐스도 숨찬지 서버렸다. 친구네 집 울타리가 보인다 그만 고심하고 뻐스에서 내려버렸다.   겅정겅정 걸어서 친구네 집 사립문을 열었다. 인기척이라곤 없다 그저 고양이 한마리가 여느때와 마찬기지로 야옹거리며 두리번 거리다가 저 쪽으로 사라지고 이웃집 황둥개가 비린내를 확- 풍기며 꼬리젖는다. 하지만 친구는 없다 아니 없는걸 알고서 일부러 온것이 아닌가? 딱히 친구를 만나보자는것보다 이 거친 풀숲과 저기 저 강, 저나무숲속 옛추억의 향기나 맡아볼 양으로 온것이 아닌가. 7년전 친구의 안해가 숨막힐듯 정막한 이 시골이 싫어져 한국에 날아간것이 다시는 무소식이 돼버렸다…그후 우리는 서로서로 몇편의 시쪼각을 잡지나 신문에 낸것이 인연이 되여 마치도 옛친구나 만난것처럼 대하자부터 허물없는 친구가 돼버렸다.   친구가 이사간지도 벌써 거의 2년은 되여온다. 헌데 뜨락은 모든것이 예전 그대로다. 좀 더 초라해진 벼짚이영과 그리 빤빤하지 않은 앞마당이며 바자밑의 능쟁이 풀까지 다가 그대로다. 이 스산한 집에서 이 고적한 마당에서 이 인적기 드문 시골에서 그와 나는 열렬하게 중국인기 시인들인 해자며 로향이며 흑마의 시들을 열변했고 익지도 않은 시구를 목에 피대를 세우며 하늘에 별들이 도글도글 여물때까지 토론했었다. 헌데 그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래도 도회지가 살아가는데 나을듯 싶어 집은 “팔집”이란 간판을 내달고 훌쩍 A시로 이사가 세방살이를 한다. 참 좋은 결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괜한 짓을 햇다고나 할지? 나로서도 판단하기가 좀 그렇다. 그는 한낫 농사군 후예이고 시골에서 잔뼈를 굳혔다지만 농사일에는 별로 재미를 붙이지 못한것 같다. 그 친구의 밭은 이미 다른 주인을 찾은지가 오래다 마당의 채마전이나 조금 남아있을뿐이다 그래도 시골티가 나고 시골냄새가 나는 글은 몇편 멋있게 조겨낸 그였다. 아마도 안해없는 살림에 문학은 그의 애인으로 둔갑한것이나 아닌지? 도회지에 가서 여기저기 눈동냥 귀동냥하면서 각종 문학세미나같은데 참가하면서 전전한것이 밑천이 되여서 그냥 그게 재밋다고 도회지의 한쪽 구석에 발을 묻었는가 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겠기에 도회지의 어느골목에 풍막을 치고 신수리를 하고있는게 나한테는 자꾸만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생각엔 어쩐지 이 시골이 그한테는 안성맞춤한 삶의 토양이라고 늘 생각되여온 터다 그래도 그의 글에서 황소의 씩씩 거리는 숨결소리가 나고 흙내가 나고 땀내가 나는건 바로 이 한적한 시골의 생활경력때문이 아닐가고 생각해 본다. 뒤뜨락엔 아직도 그가 예전에 심었던 오이씨가 싹터올랐는지 오이넌출이 그냥 기여가고 있었는데 손가락 두개만큼한 오이가 몇개 댕그랗게 걸려있다 배고프던 차라 몇개를 따서 먹어보니 오이냄새와 더불어 친구의 냄새가 묻어난다. 나는 스적스적 걸어서 마을앞 시내가로 갔다 맑은 시내물이 나더러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듯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세수도 안했음을 알고 맑은 물에 세수를 했다 몹시도 차고 시원하였다. 이 물가에서 그가 “천렵놀이”이란 수필을 건진건 아닐가? 그리고 이 물가에서 그가 미나리를 뜯던 장면을 “들나물캐기”란 글로 묘사한것은 아닌지? 참미나리들이 누구도 뜯어가지 않아 무성하게 자라올랐다 나는 손가는대로 미나리 한묶음을 뜯었다 그날밤 나는 나의 심방을 파고드는 이 시골의 신령한 정취와 친구의 묻어나는 그 추억속에 감싸여 아예 려관집을 찾아 하루밤 지새웠다. 친구의 생각에 또 시골의 고요한 밤장막속에서 잠시나마 속세를 잊을수가 있고 홀로인 나만의 공간에 잠길수가 있어 더없이 편하고 좋았다 산을 맘껏 느끼고 달의 향기를 맘껏 마시고 곤충들의 합창을 맘껏 듣고 …또 며칠전 내가 다녀왔던 경기도 안성부근의 숲속에 조용히 깃들어있던 조병화시인님의 문학관도 다시금 새김질해 보았다.그리고 빛과 바람과 이슬과 그리움에 대한 시도 몇편 긁적거려 보았다…   지금 친구는 정녕 A시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있을가? 매일같이 펼쳐지는 여러가지 문학이벤트속에 잠겨서 들뜬 기분에 행복한건가? 아니면 분위기가 제대로 안된듯하던 시골을 활활 털어버린데서 나오는 자유로운 기분일가? 아님 문학을 한답시고 번마다 이쁘게 단장하고 행사에 나와 웃음을 날려주는 그 해반주그레한 녀성문학도들을 대하는 기분좋은 멋 때문일가? 나는 새벽까지 시골의 햇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풀었다 감았다 해보았다… 이튿날 나는 논두렁옆에서 한송이의 이슬묻은 이쁘장한 풀꽃을 꺾어들었다 어쩌면 그 풀꽃이 이 순간 도회지의 녀성문학팬들보다 더 진한 싱그러움을 나한테 속삭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삽시에 멀리로부터 나의 몸을 안아주는 차고 시원하고 부드런 시골바람이 내달아 와서 나의 얼굴이며 온 몸을 속속들이 애무해 주어 한결 가쁜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여 이 돈주고도 못사는 시골의 청신한 바람으로 나의 페부를 가셔냈다. 나는 되회지가 숨막혀서 시골로 내리달리고 그는 시골이 싫어서 도회로 올리달리고 우린 서로 다른 분위기를 찾고있는거나 아닌지? 정오가 되여오는때 뻐스가 저만치서 빵빵-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거의 하루반동안 이곳에서 친구의 그림자와 시골의 정취와 함께 놀았으니 이젠 돌아갈때도 됐다고 생각하고 뻐스있는데로 걸어갔다… 문뜩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쩌린 몸을 활- 털어보려고 도회지를 떠나 시골로 올때는 시골의 밝은 달이 좋아서 내달아 왔거늘 한적한 시골 그 적막의 밤을 몇일 지나고 나니 샨데리야 불빛이 번쩍거리는 도회지가 또 생각난다 … …   그렇다, 나도 이제 어느날 갑짜기 또 이 시골로, 친구가 가고 없는 이 시골로 달려올것이다. 그러면 논두렁옆의 풀꽃이며 시내물속에 빠진 둥근달이며 저 꼬불길로 달려오는 황둥개가 또 나를 짜릿하게 맞아줄것이다…하지만 거푸 몇밤을 못지나 또다시 인간들 오염속에 돌아눕는 도회지로 올라오고 말것이다. 인간의 심성이란 원래는 이같이도 미련한것일가?…                                                                        (연변일보. 2014년 6월)
55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 댓글:  조회:1768  추천:5  2013-07-18
신—이번 시간에는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과 그의 부분적 시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한춘 시인이라고 하면 평론도 많이 쓰신분인줄로 알고있구요 현대시쪽으로 많은 연구가 있는분이죠. 그럼 먼저 한춘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1943년, 흑룡강성 연수현  출생. 본명 림국웅. 저와 한성씨라서 아주 잘 아는 사이입니다. 저희들이 두만강여울소리를 연변서 조직할때도 년세가 많으시지만 여러차 할빈에서 직법 와서는 참가하시고 심사위원도 맡아주고 또 여러차 론문도 발표하군 했습니다. 1966년, 동북농업대학 졸업. 해림시 수리측량설계대 대장 역임. 黑龙江新闻社文艺部主任,北方朝鲜族文学巨头,著名诗人。   신—그렇다면 한춘시인한테는 어떤 시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 , , 등과  평론 다수. 신—한춘 시인은 또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흑룡강성정부 문예상, 흑룡강소수민족문학상, “한춘시인의 중국읽기”란 수필은 도라지잡지에 련재되였더냈는데요  2009년에 도라지수필문학대상을 수상. 2005년 서울에서 진행된 한민족글마당에서 주관하는 제3회 한민족글마당 문학상 해외부문상 수상 등. 2008년 6월 20일. 장백산잡지사로부터 제6회 조선족문학비평상 수상. 이 상은 “한국문학리론과 비평학회”와 장백산잡지사에서 공동으로 수상하는 상인데 매년 중국조선족문학비평분야에서 성과가 큰 문학인에게 수상하는 상이다.   신—그렇다면 한춘시인은 문단적으로 어떤 문단활동들을 펼쳤구 또 지금쯤은 퇴직하셨겠는데요 지금은 만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림—네 비록 퇴임했지만도 아주 풍부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퇴임하기전에는 흑룡강신문사 문예부장,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책임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 2006년 10월 이틀간 한국대구시인학교에 초청되여가서 특강 1996년 10월 「문학의 해」 세계한민족문학대회 중국측 대표로 발제문을 발표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1990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2차 세계시인대회와 1997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7차 세계시인대회때 서울에 가서 참가했으며 흑룡강신문사 서울지사 특파원으로 한국에 수년간 머물기도 했다. 지금은 신문사에서도 퇴임했구요.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회장직도 나젊은 리홍규시인한테 넘겼습니다. 지금은 한글학회 하얼빈 소재 흑룡강지부장. 흑룡강신문사 편집위원 70  고령임에도  흑룡강동방학원에서  문학강의를  하고있는  한춘선생은  교수과정에서  한국문학사 교과서가  마땅한것이  없음을  느끼고  30만자에  달하는 《한국문학략사》를  편찬해  올해 내에  출판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당시 150수》, 《송사 150수”의  우리  글  번역서도  년내에  출판될  예정이란다.   신—그럼 한춘시인의  구체 시작품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한시인한테로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무궁화련가”를 함께 감상하시죠 무궁화련가   한 춘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나는 시를 쓰고 노래했다 그대의 사랑이 내 살결에 닿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꽃대궁은 키를 높이였다.   오늘만의 아픔이 아니라 해도 외로운 마음 더욱 단단해졌다 한점의 향기 풍기고 지쳐서 쓰러진다 하더라도 꽃은 피여나고 만개하였다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서러운 꿈은 아름다왔다 그대와 헤아리던 별은 나홀로 사육한 사랑의 물증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   림—무궁화련가는 결국 시와의 련가이다. 여기서 무궁화는 결국 우리 민족을 뜻하고 우리 민족의 문화 내지 문학,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시를 뜻한다. 3련으로 된 이 시는 련마다 첫행에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슬픔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등 말들로 시작되였다. 그렇다. 시를 쓴다는 자체가 미적 향수이고 기쁨일이다. 하지만 또 어딘가 아픔 일이다. 새로운걸 창작해 낸다는건 정신적인 고뇌, 즉 뇌즙을 짜내야 하는 아픔의 인고가 없음은 아니된다. 마치도 조개가 많은 아픔과 인고끝에 진주를 품어내는것 같이. 또 무한한 기다림이다. 3련의 첫행. 또 새로운 정서와 새로운 발상을 기다리는 늘찬 고행의 길이다 독자들한테는 아름다운 시의 꽃송이를 선물하지만 시인자신은 기다리고 아픔을 감내하고 물론 기쁨도 동반한 창작의 아픈 고뇌와 기다림. 나중에 시의 제일 마지막 련 마지막 행에서는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꽃은 피였다 질때에는 꽃씨를 남긴다. 그런데 쭉정이씨를 남겨서는 아니된다. 잘 여문 씨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시창작에 대한 신심과 희망과 용기를 말해주는듯 싶다.   신-네 시와의 뜨거운 련정을 읊어낸 좋은 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시 “낫갈기”를 감상하고 그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낫갈기 한춘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 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 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꿈꾸는 가지도 쳐주고 새둥지엔 풀도 깔아주고 막혔던 물길은 열어주고 배고픈 기다림은 깎아주고 그리고 마음의 잡동사니 하나 둘 썩뚝썩뚝 자르면 찬란한 비명소리 익어갈테다   혼자서 자꾸 낫 가는 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 낫 가는 일은 버릴수 없는 일.   신—네 낫을 간다는 뜻인건 같은데 여기서 낫으로 아지랑 쳐주고 마음의 잡동사니랑 썩뚝 썩뚝 잘라버린다고 했는데 그 밑에 “찬란한 비명”소리란 뭔뜻입니까?   림—여기서 찬란한 비명소리란 바로 몸의 어지러운 곳을 다 쳐버리고 또 쳐버릴때는 아프죠 그러니깐 비명소리가 나겠죠 하지만 다 대패질하고 몸매나 마음가짐이 잘 다음어지며는 거뜬하고 아주 잘 수련된 그런 말끔한 몸이 되겠죠 그래서 또 찬란하다고 한것같애요 그래서 결국 찬란한 비명소리라 했죠. 이 시는 시인으로서 시종 마음의 낫을 갈아야하고 또 잘 간 낫으로 자기의 이런 저런 거치장스럽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잘 다듬어야 한다는 걸 시화했습니다. 즉 마음의 다듬기, 정신의 다듬기…여기서 시인자신의 자신에 대한 높은 요구와 바른 자세를 우리는 잘 보아낼수 있습니다.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아주 요구가 높은 …시인의 고도로 자각적인 수련을 강하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신-네 시인의 적극적이고 엄격한 자아수련의 자세를 읊조린 좋은 시였습니다. 다음은 시 “락엽”, 참 한창 락엽지는 계절에 “락엽”을 함께 감상해 보시죠…   락엽 한춘   나비처럼 숨을 할딱이다 바람결에 떨어지는 락엽 떨어지는대로 불평이 없다 한여름 진록을 녹여주고 문득 무언가 깨닫고 하나둘 가지를 떠나고 떨어져서는 뿌리께로 간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조용히 몸을 돌린다 높은 가지 끝엔 까치둥지가 당실하다.   림—누구나 다 퇴직할때가 있다. 자리를 내야 한다. 락엽도 나무에서 떨어질때가 있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걸 별로 싫어하진 않는같다. 그러나 그건 결국 맥이 모자라거나 능력이 제한되여 그런게 아니다. 살구가 제일 잘 익어 무게가 제일 무거울때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것처럼 제일 성숙되고 완숙될때 즉 성숙을 완성했을때 떨어진다. 결실의 계절이다.락엽도 이젠 자기 무게로 떨어져선 내려온다. 그렇게 푸르를땐 엄마의 몸체에 딱 붙어서 젖을 빨아먹느라 떨어지지가 않던 락엽이 이젠 모체가 필요치 않아 자체로 떨어진다. 하지만 자기를 키워준 모체를 잊지는 않는다. 즉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잊지않는다. 그래서 락엽은 뿌리께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하늘을 우러러 보니 까둥지가 당실하다. 하늘은 그렇게 높고 넓은데 그리 높지않은 곳에 까치둥지가 댕그랗게 보인다. 그것이 자기가 성숙되기 전에 여물기 전에 그렇게 흠모하며 우러러보던 꿈이였다. 지금 다시 보니 아주 우스웁지만…이렇게 우습게 보는 자체가 바로 락엽의 성숙을 말한다. 결국 다시 뿌리께로 와서 뿌리에 비료를, 부식토를 제공해주려 즉 모체에 보답하려 하면서 보니 까치둥치는 좀 유치스러워 보이는, 이런 생각이 바로 락엽의 성숙미를 보여준다. 락엽귀근, 즉 이 시는 락엽귀근의 위대한 인생철학을 보여준 훌륭한 시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락엽이 떨어져서 뿌리게로 간다는 말까지 쓴 시인은 많다. 하지만 마지막 머리돌려 쳐다보니 까치둥지가 저만치 높은 가지에  달랑 매달려있다는 걸 쓴 이는 드물거나 거의 없다. 요기서 이 시는 성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해변의 고석(孤石)            한춘 돌은 절벽에 서있어야  돌이라 하겠는데  어느 누구의 재채기에 해변가로 던져졌나 철없이 채찍질하는 물파도에 온몸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여  청허한 마음 하나  해평선 저 한끝으로  눈길을 모으는 고석  날아가던 해조들이  잠시 내려 깃을 다듬을 때  바다의 너비를 받아안았고  둔덕에서 지는 꽃잎이 지심의 밀어를 실어다줄 때 대지의 기지개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낮 한나절  스쳐가는 바람도 한점 없다 썰물은 저 멀리 달아나고  뿌려진 조가비들도 말이 없다  이 시각은 합장기도하는 시각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이 시는 2008년 7월호에 실린 시인데요 참 무한한 인생의 막끝을 보는듯한 한생의 정점에 서서 그 넓이와 깊이를 응시하는 한 로시인을 마주한것 같은 그런 장중하고도 도고한 또 말없는 침묵을 우리는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필이면 절벽에 서있어야 할 바위가 바다 한모퉁이에 고독하게 버려져 파도의 채찍을 맞고 …조가비도 말이 없고 스치는 바람도 없고 …고독..고독으로부터 사색, 합장, 응시, 회포, 추억, 안으로 반추하는 그런 자세…마지막에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진 한마디…일생동안 방황해왔지만 이 시간만은 정도- 즉 바른 옳바른 인생길…그걸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한어로 时刻。 신-네 참으로 장중하고 엄엄하면서도 차분한 어떤 사색적인 무게로 우리들 마음을 눌러주고 다져주는 시였습니다. 다음은 또 한수의 시 “혜성”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혜성 한춘 굴레를 벗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방향이 없다 혹은 어디나 다 방향이다 밤이슬 오른 풀잎들이 입을 다물고있다 어둠이 쪼개지는 시각 또다시 끝없는 적막속으로 짧은 옷자락을 태운다 우주 사계절을 쌓아놓은 페허에서 시간을 략탈한다 무언의 대사(臺辞)를 입은 가사가 지친 조각돌의 아물지 못하는 상처우에 천서 한장을 올려놓다 신—역시 무게를 누루는 시인것 같은데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네 한춘시인의 시는 모두가 이토록 지긋이 무게를 눌러주는 맛이 있는것 같습니다. 역시 인생, 앤생의 자세, 다각적인 인생에서의 옳은 길, 정도를 제시해주는 그런 의미깊은 시인것 같습니다. 헤성은 궤도를 따라 돌지 않습니다. 궤도를 벗어나 밤하늘을 쭉- 가르며 어딘론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곹추 그 길로 뻗어나갑니다. 향방이 없습니다.하지만 또 향방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나 다 미개척지이니깐 어디나 다 내가 뚫고 들어갈수있는 방향이지요 그래서 길이 더구나 많습니다. 옛적 처음으로 상품경제시대에 들어설때는 무얼할가? 무슨 장사를 할가? 종래로 해보지못한 일이니 여러가지로 생각이 잘 안나지요 감이 잘 잡히지 않지요 하지만 이젠 뭐어든 다 해서 돈을 버는것과 마찬가지로 시창작같은것도 그렇죠 진정한 창작자유를 안아오기전에는 걍 그 길 …사상이 있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야 하고 주제를 둘러싸고 창작해야 하고 그 어떤 쾅쾅에 맞추려 했지만 요즘 세월엔 그게 아니죠 그저 어떤 느낌같을걸 아주 미감나게 쓰면 되죠 또 아주 길이 많죠 요기로 가면 새우는 수풀로 갈수있고 조기로 가면 사랑노래 질펀한 정감의 동산으로 가서 맘껏 상상을 펼칠수있는 호시절이 나타나죠 이 시에서는 바로 혜성의 과감하고 대담한 개척정신을 노래했고 “굴레를 벗어버리는” “남의 말을 듣지않는” 비록 앞에 그 어떤 곤난이 닥쳐도 떳떳이 어두운 밤하늘을 헤가르고 나아가는 그 고귀한 정신을 노래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마지막 “아물지못하는 상처우에 천서한장을 올려놓는다” 즉 개척하자면 아물새가 없지요 늘 상처를 지니여햐 하는 로고. 위기를 느껴야하죠 하지만 천서-하늘에서 보내는 약속의 편지가 우리몸에 올려지는 …하늘의 뜻인걸 어떻게 할가 그냥 가보자 또 그속에서 인생의 진가를 느끼게 되는 개척의 희열…보람같은걸…느끼게 된다. 신—네 다음은 “황야의 길”을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야의 길 한춘 산비탈을 에돌아가는  저 길우에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다   서리 내린 그날 아침  매가 채간 까투리 외마디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길바닥에 떨군 깃털   해볕이 이글거리는 삼복철  혀를 풀럭이며  빨간 눈알을 굴리던 미친개 그 지린내도 날려갔다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찌그덕거리던 굴림도  이즈음 어디까지 달려갔나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 길은  길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림— 2008년 7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문혁때의 살풍경을 통탄하며 쓴것 같습니다. 그때는 사실 황야지요 전반 중국이 경제가 붕괴의 변두리까지 갔으니깐 …사실 붕괴의 변두리인것이 아니라 완전히 붕괴되였다. 전문적으로 정치비판대회나 하고 구호나 부르고 투쟁대회나 하고 전쟁준비나 하고…고도로 긴장되고 고도로 고갈된 그때 –참 그때는 진짜 중국이 황야였다. 제1련: 그런데 지금은 그런 황야로 가던 길에 아무것도 없다 안보인다 텅비였다 지금은 중국이 황야로 가는 길이 아닌 부강에로 가는 길밖에 없으니깐 . 물론 황야로 가는 길엔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제2련:그때의 그 동란의 년대를 회상한다. 때리고 마스고 빼앗는 분자들이 나와서 살판치며 사람을 잡아가고 …하여튼 이런 일들을 회상 제3련:미친 시대의 미친 개들, 그때 그시기의 반면적인 인물들을 묘사, 그 지린내도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제4련: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결국 이젠 세월속에 묻혀버린 그때의 그 요란하던 차바퀴자국, 뜨락또르, 덜컹거리는 해방패차, 혹은 찌그덕 거리던 소수레, 마차 등 스산하던 차, 집체호로 가도 차, 시골에 연출가도 차, 자전자, 등 하여간 아주 스산한 년대의 소란스런 그런 차들… 제5련: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길은 길이 아니고 바람이라고”           -그렇다, 그 동란의 년대, 황야로, 지옥으로 가던 길은 사실 길이 아니다, 그저 한번 미친듯이 불어친 폭풍이였고 태풍이였다. 결국 바람이였다. 전반 중국의 옥토벌을 쓸어눕힌 미친듯한 바람의 세례였다. 지금애들이 그때를 뒤돌아 보면 야, 그때는 정말 정신병자들만 살았구나. 하고 개탄할것이다.그렇다. 그 길은 길이 아닌 길이요 그저 한시기 불어지나가 버린 바람일뿐이다…          결국 이 시는 황야와같던 시대를 비판하고 통책한 시라고 본다. 신-다음은 또 기분을 바꾸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늙으신 로모를 묘사한 시 “한 어머니의 화상”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어머니의 화상(畵像)                한 춘 꼿꼿이 선 여윈 겨릅대 그리고 박토에 박힌 지팡이 춘삼월 매화꽃이 되여  가지끝에 매달린 연보라  추위를 이겨온 자랑 아무런 욕망없이 흐르는 강물에  꽃잎으로 떨어져서  꽃잎으로 떨어져서 저 멀리 욕망을 실어보내고  구들웃목에 걸어둔 메주덩이 하얀곰팡이가 내렸네 찬바람을 쫓는 어려운 나날들이  락수물이 되여 떨어지는 추녀끝 아픈 가슴 가득채운  간 밤에 키웠던 꿈이  거미줄에 대롱거리네 림- 이 시는 2007년 8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제1련:늙고 무감각적인 현재의 어머니 외모묘사 서있는 모습.     제2련: 젊은 한철은 그 추운것처럼 맵짜게 어려웠던 때였지만 매화꽃처럼 피여 가지끝을 연보라빛으로 자랑하며 추위(즉 어려움)를 이겨낸 때도 있었다. 제3련:일생동안 아무런 욕망도 욕심도 야심같은것도 큰 포부도 없이            평범한 가정여인으로 자기의 청춘을 고스란히 세월에 맡긴 어머니다. 여기서 “흐르는 강물”은 류수같은 세월의 흐름을 말한다. “ 꽃잎으로”는 젊음의 한철을 말한다. 시는 다시 오늘로 돌아오는데 오늘날엔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구들 목의 메주가 하얀 서리 내렸다” 메주—엄마가 한생동안 반죽한 가정일, 가사를 말한다. 하얀서리—엄마의 꿈에도 이젠 흰머리, 엄마의 귀체도 이젠 늙었음을 암시한다 제4련: “락수물되여 떨어지는 추녀끝”—참 잘된 시구이다. 하나는 “그 어려운 나날들”이 다 물러갔음을 말해주고 또 거기에 어머니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비, 눈물—더 나아가서 시인과 독자들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얼굴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이 한데 엉켜 반죽된다. “아픈 가슴”-이미 많은 풍상고초를 받아당한 상처입은 가슴 –그런 아픈 가슴에다도 간밤에 또 꿈성을 가득 채워본다. 허나 이젠 모든 꿈들이 다 현실로 될수없고 거미줄에 걸려 가냘프게 대롱거릴뿐-또 이것이 잔혹한 현실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그 청춘의 매운 고개를 넘어오 고 시집살이의 추운 고개를 넘어온 이젠 늙으신 어머니가 지구의 한끝에 조용히 서서 인생의 허무를 생각하고 상실의 슬픔을 느끼는 인생무상을 읊조렸다. 또 그로부터 우리 매개 인간들이 자기 인생을 반추해 보게 만들었고 한없는 우주공간속의 티끌같은 인생을 다시 자아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시였다고 생각한다.참으로 명시이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북방문단에 하나의 작은 문학의 산을 만들어낸 시인 한춘과 그의 부분적 시편들을 감상해보는 아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춘시인께서 만년을 아주 불타는 석양노을처럼 더욱 황홀하게 장식하기를 빌면서 이 시간 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54    젊은날의 물보라 댓글:  조회:2572  추천:1  2013-07-09
  그 치렁머리 그 눈덩이같이 흰 가슴 그 맑고 깊은 호수 그 휘늘어진 버들가지 모두다 나의 눈앞엔 하나의 황홀한 음악이였다 무르녹는  봄날의 기발이였다 그 수풀속에 숨어들면 온갖 새들의 지저귐소리 귀가 멍멍해 지도록 울렸지 그 향기속에 파묻히면 온갖 선률이 은은히 피부를 파고들었지 모두다 흘러간 구름이지만 하늘 한끝에 추억으로 가득 떠간다 눈귀에 물결쳐 내리는 물보라 물보라...
53    [수필] 항상 깨여있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댓글:  조회:3203  추천:0  2013-06-20
                                    언제부턴가 나는 이 세상이 싫어졌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젊은 시절 술을 너무 좋아하여 술상에만 앉으면 한근이고 두근이고 퍼 마이면서 많은 "미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씩 취하고는 쓰러지기도 했다. 한번은 술에 취해 쓰러졌는데 깨여나 보니 집구석이였다. 안해의 말이 나의 친구가 축 늘어진 나를 3층까지 메여올렸단다. 또 한번은 쏠로인 친구와 함께 비좁은 친구네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온 구들우가 맥주병천지로 되였다. 나중엔 진짜 우리가 마인 빈 맥주병을 어디에다 놓을 자리가 없었다. 아마도 둘이서 둬상자는 마인것 같다...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보니 나는 실오리 하나 안걸치고 홀랑 벗겨져 있었다. 아마도 술을 너무 마이고 번열이 나니깐 한겹한겹씩 겁찔을 벗으며 술잠을 잔것같았다...친구를 보기가 민망하였다... 또 한번은 어느 향진에 갔다가 술을 장밤 마이고 소피하러 밖에 나갔다가 급성술동독(나의 생각엔)이 와서 쓰러진게 계속 자기만 했다. 그 동네 사람들이 나를 밀차에 싣고 두세시간 다니다가 나중엔 차를 불러연길에 있는 병원에 보냈단다. 그런데 연길 중의원에서는 이 사람은 이미 거의 잘못됐으니깐 자기들은 치료할수 없다고 내버리더란다. 할수없이 연변병원에 가져가니 또 거의 한시간동안 화험하고 뭐 또 이것 저것 검사한후 점적주사를 놓더란다. 한병을 다 맞아도 그냥 쇼크상태,두병을 거의 맞으니 푸시시 일어나 엉뎅이를 툭툭 털고 집으로 곧추 내빼더란다... 나는 때론 술을 마시고 아이를 때렸고 술을 마시고 안해와 싸우고 술을 마시고 회사 령도와 싸우고 하여간 술을 마시고 좋은 글도 많이 써냈고 술을 마시고 친구도 많이 친했었다. 하지만 내가 술을 마신게 아니라 결국 술이 나를 마셔버린거였다... 나는 늘 술에 잠겨 정신 못추고 있은게다.  내가 언제부터 술을 완전 떼여버렸는지...술을 안마이는 지금에야 나는 내가 깨여있다는걸 알게 되였다. 사람은 하냥 깨여있을줄 알아야 한다. 단 한순간도 제정신이 아니면 그건 부모한테 자신한테 가족한테 새끼한테 미안한 일이다. 항상 흐리멍텅하게 10년 20년...살아가다보면 별 볼일이 없게 된다. 그때가서 후회하면 이미 늦은거다. 이미 나이가 들어있고 뭐도 쉽게 해내기가 늦어버린것이다. 지금부터 한순간이라도 탕개를 늦추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여있어야 한다. 헌데 밖에 나가보면 아직도 자기가 왜서 사는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저 여기가서 이런 일이 있음 이런 일을 하거나 아님 이런 일을 구경하고 저기가서 저런 일이 있음저런 일에 참견하거나 혹은 구경이나 하구...여기에 술이 있음 한잔하고 저기에 파티가 있음 끼이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날자를 보내고 세월을 허송한다...목적이 없다. 그래도 그중 제일 괜찮다는 사람들은 또 돈을 버는데 정신이 빠진다. 내가 왜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돈이 많음 좋다고만 생각한다. 사실 돈이 많으면 나쁜점도 아주 많건만.돈은 때론 죄악의 씨앗이 된다.  속세는 이래서 나쁘다. 이 세상은 이래서 흠이다.   엇저녁 회사에 나가 일을 좀 보다가 밤9시좌우에 집에 돌아오는데 길량켠이 실로 가관이다.날씨가 좋다고  모두 밖에 나와 맥주병을 끼고 앉았는데 참 볼만했다. 매캐한 고기 그으름 냄새에 영업집 앞마당마다 두세씩 서너씩 끼리끼리 앉아 맥주놀이를 하는게 ..술상마다 한창 나이인 아줌마들이 한둘씩 끼여앉아 소리치며 술잔을 부딪친다...모두가 한국같은데나 한두번씩 다녀왔다고 그 얘기를 오밤중까지 하면서 술이 술술 넘어간다. 나는 이게 싫다. 혹간 쪽쪽한 쏠로들 한둘이 적당히 술마일수는 있을지라도 이게 뭐냐? 아마 내가 집까지 오는 동안 머지도 않은 길거리에 거의 20-30상 정도는 술상이 벌어져 있어서 이 고즈넉히 넘실대는 여름밤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참 그래서 나는 어지러운 이 세상이 싫어진다. 아직 너무나도 거칠고 먼지가 많은 나자신도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참빗질하면서 가셔내고 있다. 하냥 깨여있다는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저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은근한 빛을 뿌리며 부드럽게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산다는게 사실 평생을 행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가?  2013년 5월
52    바다 댓글:  조회:2024  추천:0  2013-06-17
   나의 마음이 저 기슭 검푸른 산길로 오를때에는 햇순이 막 돋아오르고 잎이 활랑이고 아지가 휘늘어 졌었다 하늘은 그냥 부서진 꽃이요 뿌려진 별밭이였다 다시 마음은 푸름을 들쓰고 피로 벌겋게 색칠되여 저 기슭 소금향기 자욱한 산길로 울음에 절어 굴러내린다 때에 타는 저녁 놀 작은 조개껍질속에서 춥고 아리고 슬프다…                              2014년 잡지에서
51    쓰러진 옛말 댓글:  조회:2511  추천:1  2013-06-17
아버지가 마른 강대처럼 쓰러진 순간 온 머리에 뻥-하게 총알받아 구멍 뚫린듯 불효로 빚어진 후회가 왈칵 피를 토했다   화장터로 가는 차머리는 흔들흔들 내머리도 핑글핑글   길량켠의 코스모스는 화사하게 웃어주지만 눈앞엔 파란 귀신불빛만 휘휘 휘돌아간다 언젠가 반도에서 안고 온 옛말   쓰러진 옛말이 싸늘히 식어가는때 달아오른 눈물은 볼을 태우고   하늘기둥 무너지듯한 창자끊는 진통뒤 내 혼은 날아오르는 검은 연기속에 기혼한다   한줌의 식은 재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허리굽혀 사설하신다   이눔아, 좀 꿈을 갖고 살거라, 꿈을!!  
50    문학살롱 고독과 시 댓글:  조회:2359  추천:1  2013-04-28
고독과 시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달래와 시에 대해서 얘기나누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고독과 시에 대해서 얘기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학이라고 하면 고독을 안고 몸부림치는 과정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의 우수한 작품은 이처럼 고독을 씹어삼키는 과정에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중에도 고독한 시인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그렇다면 고독과 시는 또 어떤 관계가 있을가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 고독이라고 하면 어떻게 리해해야 할가요? 문학에서의 고독이나 시인들한테서의 고독은 또 어떻게 봐야 할가요? 림-네 사실 시인들중에 고독한 시인들이 참 많아요. 헌데 여기서 말하는 고독은 우리 사회적으로 말하는 즉 속세에서 말하는 그런 고독과는 조금은 다른 어딘가 차원높은 고독이라 할가요? 하여튼 속세와는 다른 무게있고 뜻이 깊은 고독이라 해야겠지요. 례하면 시인 윤동주라하면 그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남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까지 내며 분전하는데 나는 6첩방에 앉아 시를 쓴다.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질수 있을가 라고 하며 자기적인 회의, 자초 등으로부터 오는 고독, 김소월의 고독…나중엔 고독속에서 자결의 길을 택하는 그…이상의 고독…역시 나중에 병으로 죽지만 역시 “금홍아, 금홍아”를 보면 고독속에서 술과 색과 시와 나라를 잃은 허무와 그런 모든 고독과 질곡속에서 세상을 떠나가는 …뿌쉬낀 결투, 레르몬또브결투, 마야꼽쓰기 권총…등 헌데 이와 반면 평화시기엔 어딘가 높은 고독이요 지적인 고독이요 값진 고독…그래서 어떤 시인들은 고독은 누가 팔아라 해도 너무 아까워 팔지않겠다는 그런 심태를 가진 시인들도 있습니다. 물론 윤동주랑 살던 당시는 일제치하의 암흑기였던 만큼 이런 고독이 쌓였겠지만 요즘에도 시인들은 고독을 붙안고 창작적 고민에 깊숙히 빠져있는 분들 상당히 많은줄로 알고있습니다. 이분들의 대부분은 현실사회에 대한 불만족, 즉 령적인 삶에 대한 공허로부터 오는 그 어떤 고독이겠죠. 시인은 아주 아름다운 령적 삶을 갈망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현실은 필경 시적이지 않죠. 스산하고 옴니암니 따지고 미적인 감수성이 미약하고 …등등 그래서 시인은 늘 고독할때가 많죠. 또 그런 고독이 시를 낳게 되죠. 알기쉽게 말하자면 한 시인이 강변으로 천천히 산보하면서 피같이 붉은 피빛 저녁노을을 감상하면서 정회에 푹 젖어있는데 많고 많은 사람들은 그 저녁노을이 자기와는 무관계한 것으로 알고있고 드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든가 술집으로 음식점으로 향하면서 속세의 암투로 들끓고 있죠. 이때 시인은 홀로 눈물지으면서 타는 저녁노을을 마주하고 눈물짓지요. 한없이 고독하죠. 미래에 대한 동경속에서 또 자기 혼자만의 앞선 의식 앞선 향수속에서 아직은 채 따라서지 못하는 속세 인간들을 나무라며 고독속에 깊숙히 젖어들지요. 즉 일상과 탈리한 그 어떤 사념속에 살고있으니깐 고독은 밥먹듯 하게 되죠. 만약 시인이 고독하지 않다면 시인이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신경을 도사리고 살지 않는다면 그는 시인이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늘 고독한 늘 마음한구석이 아픈 늘 동경속에 울고 그리움속에 탄식하고 술잔속에 향수를 불궈 마실때 그는 뭔가 심리적 준비가 갗춰진 시인이 아닐가…라고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신-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창작적 고민 또는 고독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경우 좌절과 고독을 많이 감내한 문학인일수록 정말 더 마음에 와 닫는 작품들을 펴내더라구요. 문학적 고독의 함의는 여러면으로 분석할수가 있을것같은데요. 그러면 여기서 먼저 김현승시인의 시 “절대고독”살펴보고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절대고독(絶對孤獨)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나의 시(詩)는.   신-김현승시인의 시 이였습니다. 고독을 아주 잘 다룬 시였는데요. 먼저 시인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림-시인 김현승(金顯承, 1913년~1975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광주에서 자랐고,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34년 무렵부터 시창작을 계속하다가 해방 직전부터 침묵을 지켰고, 해방전쟁 직후부터 다시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숭일중학교 교감, 조선대•숭전대 교수,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죠. 감각적 언어망을 통한 참신한 서정으로 생의 예지를 추구한 시를 썼습니다. •     전라남도 광주소학교 수료 •     제주도 북제주 하도보통학교 졸업 •     전라남도 광주 숭일고등보통학교 수료 •     평안남도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졸업 •     평안남도 평양 숭실전문학교 중퇴 [편집] 명예 박사 학위 •     숭전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제1회 전남문화상을 수상했다. 작품집 《김현승 시초》, 시로는 〈견고한 고독〉, 〈옹호자의 노래〉, 〈절대 고독〉, 〈눈물〉 등이 있다.   신-그럼 방금 우에서 감상한 시에 대해서 말씀 주시죠. 림- 이 시는 시인 자신의 그 어떤 깨우침을 쓰고있습니다. 방황이나 헤매임으로부터 일정한 삶의 지향점이나 방향 목표를 찾아냈을때의 그 기쁨과 환희, 즉 절대적인 고독 아무 잡질이 안 섞인 순도높은 고독으로 찾아낸 (혹은 연구해낸 모색해낸) 인생의 영원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현승시인은 참한 시인인데 이 시에서는 종교적으로 새로운 어떤 깨우침을 썼을수도 있고 또 일상적인 각도로 보면 방황하던 삶이 새로운 지향점을 찾고 영원을 찾은 즉 참삶의 참 도리를 깨친 점을 아주 조리정연하고 사유의 흐름이 정연하게 잘 내리 읊었습니다. 시가 참 아름답습니다. 이미지가 잘 되였습니다. 특히 마지막 행에서 나의 시는 입을 다문다고 한것은 참 재치있게 썼습니다. 즉 내가 나의 나아갈 방향점, 즉 영원을 찾았으니깐 이젠 고민, 방황, 비탄이라든가 등을 애써 써내던 시는 입을 다물때가 됐다고 합니다. 시적 표현이 아주 묘하게 또 싱그럽게 잘 되였습니다. 그리고 사색도 깊고 더 깔끔하게 해주는 맛이 있구요.   신-네 고독을 재치있게 다룬 좋은 시였습니다. 계속해서 황금찬시인의 고독에 대한 시를 살펴보겠는데요. 먼저 시인의 생평에 대해서 소개를 주시죠.   림-황금찬시인 생애.  1918 8.10일생1953년 『문예』지와『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수상대한민국문화보관훈장 그 외 다수 시집:  '현장',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물새의 꿈과 젊은 잉크로 쓴 편지'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행복을 파는 가게'옛날과 물푸레나무'아름다운 아침의 노래' 등 총 32권 산문집-'행복과 불행사이''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들국화''모란꽃 한 잎을 네에게'창가에 꽃잎이 지고' '나의 서투른 인생론''나는 어느호수의 어족인가?' 등 21권… 신-여러가지 쟝르, 그리고 많은 작품을 펴낸 작가인데요. 그럼 황금찬시인의 시 “잔인한 고독”을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록 하겠습니다.   잔인한 고독             황금찬   언제부턴가 내게 와서 벗이 되었다. 입이 없다. 한번 오면 갈 줄 모르고 끝장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외출이라도 하면 책갈피 속에나 서랍 안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어느새 나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선다. 키는 신통히도 나와 꼭 같다. 눈을 감으면 그는 반대로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새벽 다섯시 오분 전 꼭 그 시각에 잠을 깨우고 싸늘한 만년필 뚜껑에 앉아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듣고 있다.   심: 창작적 고민이 늘 따라다닌다는 뜻을 담은듯싶은데요. 이시에 대해서 해설부탁드립니다. 림- 이 시는 주로 시인의 창작적 고민으로부터 오는 고독을 썻습니다. 역시 차원높은 고독 아름다운 고독이라고 해야겠지요. 이 고독은 참 시인한테 잔인합니다.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고 잘때에도 자지 않고 눈뜨고 있고 아침에는 게으름을 피우며 더 잘수있어도 자지 못하게 하고 필끝에 매달려 나만 빤히 쳐다보는 …즉 깊숙히 빠져있는 늘 함께 붙어있는 창작적 고민으로부터 오는 고독을 썼습니다.시인의 끈질긴 시탐구 정신과 깊숙한 창작고민을 예리하고 정말 “잔인하게” 썼습니다. 96세까지 살았는가요? 참 장수한 시인입니다. 신-다음은 이해인 시인의 시 “고독을 위한 의자”입니다.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고독을 다룬 시인데요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속에 헤아려볼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심: 홀로인 고독의 순간이 참된 삶을 찾아볼수있는 좋은 기회입을 적은듯싶은데요. 림—이해인시인은 여류시인이구 수녀입니다. 지난시간에 소개했기에 시인소개는 약하구요. 이 시는 고독을 아름다운 “호수”에 비유하기도 하고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속에 헤아려볼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 을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수 있”고, 혼자있기때문에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라고 한다. 즉 고독은 나를 반추하고 나의 수양을 잘 닦아내는 좋은 일이라고 한다. 이때의 고독은 자신을 한차원 높일수 있는 그런 고독인것이다… 심: 네 고돌을 두고 그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시로 역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류정숙시인의 입니다. 어떤 고독을 적고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독 류정숙   깨물면 오도독 뼈마디 무너지는 소리를 낸다 삼키면 양주보다 독하게 취해온다 뱉어내면 단장의 아픔 깨물수도 삼킬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형벌이구나   신-고독의 어려움과 간고함을 쓴것 같은데요 림:.네 …맞습니다. 고독의 어려움과 견뎌내기 힘든것을 썼습니다. 사실 고독을 이겨내는데는 내공이 필요하죠.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류관순 열사의 친 오빠의 따님이신 류정숙, 그니깐 류관순렬사의 친조카지요 류 시인님은 청하문학회 부회장이고 30여권의 시집을 출간. 류시인님의 남편이신 고 박재규 박사는 교육부 장학실장이며 공주대학 총장도 역임하셨고 전주교육대학 학장도 역임 심: 계속해서 홍인숙시인의 시 입니다. 서울출생이지만 적은 미국에 두고있다고 합니다. 홍인숙시인은 어떤 고독을 적고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독 홍인숙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시를 썼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시를 쓴다 그러나 내 앞엔 언제나 백지 한 장 눈물에 젖는다. 심: 쓰고 써도 백지장은 자기를 기다린다는 즉 창작적 고독을 적은듯싶습니다. 림: 네 ….그렇습니다. 어제와 앞으로의 창작고독을 쓰고있습니다. 고독을 지그시 물고 계속 자기를 닦고 갈고 또 그것으로 시를 써내는 …역시 간고함을 읊조리고 있는것 같아요 심: 계속해서 김민정시인의 시입니다. 여기서 이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그대로라는 뜻으로 리해하면 될뜻싶습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고독의 순 김민정   네 고독 그 절정은 순도가 얼마일까 네 고독 그 빛깔은 채도가 얼마일까 네 침묵 그 뜨거운 파문 명도는 얼마일까   신-네 짧지만 뜻이 깊은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여기서 고독의 순도라든가 채도라든가 명도란 어떤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림- 네 김민정시인은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99년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 가 있다. 2007년 박인환문학상 등 다수 이 시에서 고독의 순도 –즉 순수도     고독의 채도 –즉 고독의 빛갈의 색채의 농도     침묵(고독)의 명도-즉 투명도 순도가 어느정도 투명한가? 잡질이 섞이면 투명도가 낮다… 이 시는 고독의 질감을 말했다 즉 질감높은 고독을 추구하는 시인의 자아반추와 또 읽는이들에 대한 높은 요구… 고독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순도가 낮은 고독에는 질투로 오는 고독, 야심으로 고독, 시기심, 암투, 복수 등등으로 오는 질감이 낮은 고독도 있는데 순수한 고독은 차원높은 고독이고 반드시 감내하고 나아가야 할 지적인 고독이다. 심리적 내공이라 할가…자아수양의 깊이라 할가 하여튼 그런 쪽의 고독은 질감높은 고독이다. 이 시에서는 이런 질감높은 고독을 강조하고 있는것이다.   심: 다음은 박인혜시인의 시 입니다. 역시 좋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고독       박인혜   하나의 인간임을 알게 하는 것,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더욱 자신답게 하는 것,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 빛으로 인해 또 다른 빛을 찾아 헤매는.... 무엇이든 닿고 싶고 닿으면, 빛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하나의 불꽃   심: 자신만이 추구하고있는, 내심으로 우러나오는 고독을 적어내고 있는것같습니다. 림-네 그렇습니다. 박인혜시인은요 충남 논산 출생(1961)연세대 간호학과 졸업 《자유문학》등단(2005),미주크리스천문학가협회 총무,한국문인협회,한국기독교문인협회 북미주지부 회원,미주이민문학상 수상 시집『하늘을 바라보는 행복이 있습니다』,『널 생각하면 왜 비가 내릴까』,『차가 있는 풍경』, 동시집『노랑꽃』 이 시에서는 한차원 높은 고독에 대한 추구 즉 참인간의 참삶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고독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인간임을 알게 하는 것,--인간답게 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인간답게 살자 인간임을 알게 하게위한 고독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일반인보다 다른 빼여난 자신으로 거듭나기위한 고독 나 자신을 더욱 자신답게 하는 것,-즉 더욱 자신답게 사는, 개성이 있고 빛이 나는걸 위한 고독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빛을 내는 인간으로 되기 위한 고독 그 빛으로 인해 또 다른 빛을 찾아 헤매는....—빛이 있은 다음 또 변화를 가져올줄 아는 그걸 가져오기위한 고독 무엇이든 닿고 싶고—새로운 목표로 또다시 닿고싶은 고독   신-마지막으로 조명희의 시한수 감상하겠습니다. 조명희시인에 대해서 적지 않는 분들이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하지만 이시간을 빌어 다시 한번 포석 조명희 생애에 대해 소개하시죠. 림-네 조명희는 1894년 충북 진천군 진천면 벽암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포석(包石)이다. 1919년 겨울,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소재 동양대학 인도철학부 윤리학과에 적을 둔다. 그는 동경에서의 유학 생활이 힘들고 고달팠지만, 유학생 모임님 학우회에 적극 참여, 활발하게 활동한다. 1923년 초, 조명희는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다. 귀국 후, 그는 극도의 궁핍을 체험하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세계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1925년 2월 조명희는 (개벽 1925.2~3)를 발표, 작가로 선을 보인다. 그는 같은 해 8월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KARF의 정치학습 그룹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다. 이후 단편소설 창작에 몰두,(개벽 1926.2)를 비롯하여 ,,등을 발표한다. 1927년 그는 (조선지광 1927.7)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이 제2기적 작품으로 넘어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작가로서 당대에 높이 평가받는다. 그후, 조명희는 1928년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농민청년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1931년 황명희를 만나 재혼한다. 이때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산문시 를 발표(1928.10), 한인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해 9월, 장편소설 를 탈고하였으며, 시,수필,희곡,평론등 여러 부문에 걸쳐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친다. 러시아 혁명을 찬양한 (1931)을 비롯하여,(1931),(1931) 등은 이때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1937년 정체 불명의 러시아 군인들에게 연행된후, 일본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협력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938년 5월 11일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늦게나마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러시아 문학계에서 러시아 한인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그의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1959년에는 러시아 내의 조명희 문학유산위원회 주관으로 『조명희 선집』이 나왔으며, 타슈켄트 문학박물관에는 조명희 기념실이 따로 있고 조명희 거리도 시내에 있다. 또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고향인 충북 진천에서는 그를 기리는 포석 문화제가 1994년부터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심: 네 다시 돌이켜본 조명희였습니다. 그러면 조명희시인은 어떤 고독을 다루고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를 찾아 조명희   저녁 서풍 끝없이 부는 밤 들새도 보금자리에 꿈꿀 때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터벅거리노   그 욕(辱)되고도 쓰린 사랑의 미광(微光)을 찾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그 험하고도 험한 길을 훌훌히 달려 지쳐왔다.   석양 비탈길 위에 피 뭉친 가슴 안고 쓰러져 인생고독의 비가를 부르짖었으며 약한 풀대에도 기대려는 피곤한 양(羊)의 모양으로 깨어진 빗돌 의지하여 상한 발 만지며 울기도 하였었다 구차히 사랑을 얻으려고 너를 만나려고.   저녁 서풍 끝없이 불어오고 베짱이 우는 밤 나는 누구를 찾아 어두운 벌판에 헤매이노.   심: 우에서 감상한 많은 시들은 창작을 위한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을 다루었다면 조명희의 이 시에서는 현실의 고독을 다루고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어떻게 보아야 할가요? 림-심한 고통으로 방황하고 갈길을 찾아 헤매이다 지치고 다시 일어나 걷고 걷다 지치는 그 모습…나중엔 카프를 거쳐 구쏘련에 까지 가서 계속 버티는 물론 종내는 처형당하지만 …그 고독의 걸음걸음엔 실로 피가 질펀히 고인다. 우리말로 한다면 리상을 찾아 헤매이는 그 거친 숨결을 느낄수가 있다. “그 욕(辱)되고도 쓰린 사랑의 미광(微光)을 찾으려고” –여기서 욕되다, 미광-미세한 광선도 찾지 못하고 어두운 벌판을 터벅거리는…   이 시는 피 뭉친 가슴 안고 쓰러져 인생고독의 비가를 부르짖었으며 약한 풀대에도 기대려는 피곤한 양(羊)의 모양으로 어두운 벌판을 터벅거리는…서정적 주인공의 방황하는 모습을 읊조리고 있다.   신-네 고독속에 몸부림치다보니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문인들의 고독을 비롯한 시인들의 한차원 높은 지적인 고독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고독으로 마음 한구석을 불사르며 시창작의 깊이와 넓이를 다져가는 시인들의  내면을 잘 드려다 볼수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시간 프로 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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