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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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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젊은날의 물보라 댓글:  조회:2572  추천:1  2013-07-09
  그 치렁머리 그 눈덩이같이 흰 가슴 그 맑고 깊은 호수 그 휘늘어진 버들가지 모두다 나의 눈앞엔 하나의 황홀한 음악이였다 무르녹는  봄날의 기발이였다 그 수풀속에 숨어들면 온갖 새들의 지저귐소리 귀가 멍멍해 지도록 울렸지 그 향기속에 파묻히면 온갖 선률이 은은히 피부를 파고들었지 모두다 흘러간 구름이지만 하늘 한끝에 추억으로 가득 떠간다 눈귀에 물결쳐 내리는 물보라 물보라...
50    [수필] 항상 깨여있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댓글:  조회:3204  추천:0  2013-06-20
                                    언제부턴가 나는 이 세상이 싫어졌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젊은 시절 술을 너무 좋아하여 술상에만 앉으면 한근이고 두근이고 퍼 마이면서 많은 "미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씩 취하고는 쓰러지기도 했다. 한번은 술에 취해 쓰러졌는데 깨여나 보니 집구석이였다. 안해의 말이 나의 친구가 축 늘어진 나를 3층까지 메여올렸단다. 또 한번은 쏠로인 친구와 함께 비좁은 친구네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온 구들우가 맥주병천지로 되였다. 나중엔 진짜 우리가 마인 빈 맥주병을 어디에다 놓을 자리가 없었다. 아마도 둘이서 둬상자는 마인것 같다...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보니 나는 실오리 하나 안걸치고 홀랑 벗겨져 있었다. 아마도 술을 너무 마이고 번열이 나니깐 한겹한겹씩 겁찔을 벗으며 술잠을 잔것같았다...친구를 보기가 민망하였다... 또 한번은 어느 향진에 갔다가 술을 장밤 마이고 소피하러 밖에 나갔다가 급성술동독(나의 생각엔)이 와서 쓰러진게 계속 자기만 했다. 그 동네 사람들이 나를 밀차에 싣고 두세시간 다니다가 나중엔 차를 불러연길에 있는 병원에 보냈단다. 그런데 연길 중의원에서는 이 사람은 이미 거의 잘못됐으니깐 자기들은 치료할수 없다고 내버리더란다. 할수없이 연변병원에 가져가니 또 거의 한시간동안 화험하고 뭐 또 이것 저것 검사한후 점적주사를 놓더란다. 한병을 다 맞아도 그냥 쇼크상태,두병을 거의 맞으니 푸시시 일어나 엉뎅이를 툭툭 털고 집으로 곧추 내빼더란다... 나는 때론 술을 마시고 아이를 때렸고 술을 마시고 안해와 싸우고 술을 마시고 회사 령도와 싸우고 하여간 술을 마시고 좋은 글도 많이 써냈고 술을 마시고 친구도 많이 친했었다. 하지만 내가 술을 마신게 아니라 결국 술이 나를 마셔버린거였다... 나는 늘 술에 잠겨 정신 못추고 있은게다.  내가 언제부터 술을 완전 떼여버렸는지...술을 안마이는 지금에야 나는 내가 깨여있다는걸 알게 되였다. 사람은 하냥 깨여있을줄 알아야 한다. 단 한순간도 제정신이 아니면 그건 부모한테 자신한테 가족한테 새끼한테 미안한 일이다. 항상 흐리멍텅하게 10년 20년...살아가다보면 별 볼일이 없게 된다. 그때가서 후회하면 이미 늦은거다. 이미 나이가 들어있고 뭐도 쉽게 해내기가 늦어버린것이다. 지금부터 한순간이라도 탕개를 늦추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여있어야 한다. 헌데 밖에 나가보면 아직도 자기가 왜서 사는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저 여기가서 이런 일이 있음 이런 일을 하거나 아님 이런 일을 구경하고 저기가서 저런 일이 있음저런 일에 참견하거나 혹은 구경이나 하구...여기에 술이 있음 한잔하고 저기에 파티가 있음 끼이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날자를 보내고 세월을 허송한다...목적이 없다. 그래도 그중 제일 괜찮다는 사람들은 또 돈을 버는데 정신이 빠진다. 내가 왜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돈이 많음 좋다고만 생각한다. 사실 돈이 많으면 나쁜점도 아주 많건만.돈은 때론 죄악의 씨앗이 된다.  속세는 이래서 나쁘다. 이 세상은 이래서 흠이다.   엇저녁 회사에 나가 일을 좀 보다가 밤9시좌우에 집에 돌아오는데 길량켠이 실로 가관이다.날씨가 좋다고  모두 밖에 나와 맥주병을 끼고 앉았는데 참 볼만했다. 매캐한 고기 그으름 냄새에 영업집 앞마당마다 두세씩 서너씩 끼리끼리 앉아 맥주놀이를 하는게 ..술상마다 한창 나이인 아줌마들이 한둘씩 끼여앉아 소리치며 술잔을 부딪친다...모두가 한국같은데나 한두번씩 다녀왔다고 그 얘기를 오밤중까지 하면서 술이 술술 넘어간다. 나는 이게 싫다. 혹간 쪽쪽한 쏠로들 한둘이 적당히 술마일수는 있을지라도 이게 뭐냐? 아마 내가 집까지 오는 동안 머지도 않은 길거리에 거의 20-30상 정도는 술상이 벌어져 있어서 이 고즈넉히 넘실대는 여름밤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참 그래서 나는 어지러운 이 세상이 싫어진다. 아직 너무나도 거칠고 먼지가 많은 나자신도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참빗질하면서 가셔내고 있다. 하냥 깨여있다는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저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은근한 빛을 뿌리며 부드럽게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산다는게 사실 평생을 행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가?  2013년 5월
49    바다 댓글:  조회:2025  추천:0  2013-06-17
   나의 마음이 저 기슭 검푸른 산길로 오를때에는 햇순이 막 돋아오르고 잎이 활랑이고 아지가 휘늘어 졌었다 하늘은 그냥 부서진 꽃이요 뿌려진 별밭이였다 다시 마음은 푸름을 들쓰고 피로 벌겋게 색칠되여 저 기슭 소금향기 자욱한 산길로 울음에 절어 굴러내린다 때에 타는 저녁 놀 작은 조개껍질속에서 춥고 아리고 슬프다…                              2014년 잡지에서
48    쓰러진 옛말 댓글:  조회:2511  추천:1  2013-06-17
아버지가 마른 강대처럼 쓰러진 순간 온 머리에 뻥-하게 총알받아 구멍 뚫린듯 불효로 빚어진 후회가 왈칵 피를 토했다   화장터로 가는 차머리는 흔들흔들 내머리도 핑글핑글   길량켠의 코스모스는 화사하게 웃어주지만 눈앞엔 파란 귀신불빛만 휘휘 휘돌아간다 언젠가 반도에서 안고 온 옛말   쓰러진 옛말이 싸늘히 식어가는때 달아오른 눈물은 볼을 태우고   하늘기둥 무너지듯한 창자끊는 진통뒤 내 혼은 날아오르는 검은 연기속에 기혼한다   한줌의 식은 재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허리굽혀 사설하신다   이눔아, 좀 꿈을 갖고 살거라, 꿈을!!  
47    불효 댓글:  조회:2035  추천:0  2013-03-18
맏이는 허리가 꺾어졌다 그 왁새풀 가득 자란 거칠고 긴 수염밭에 둘째는 한잔 가득 눈물을 부었다 그 다시 더없는 늙고 이빠진 사발에 막내는 마지막 응석을 몸부림으로 휘감았다 그 축 처져내린 물렁젖꼭지에 참, 복도 없는 퍼런 하늘이다 잔밥들을 뼈를 깎아 일으키신 그 껍데기-
46    림금산 동시 10수 댓글:  조회:2449  추천:1  2013-01-26
산그늘이 물우에 흐르면   산그늘이 물우에 흐르면 산이 이사해 가는거래요 산이 이사하면 나무가 이사하고 꽃이 이사하고 버섯이 이사하고   산이 이사하면 숲이 이사하고 새들이 이사하고 향기가 이사하고 산그늘이 물우에 흐르면 물도 산따라 함께 이사해요      엄마의 손   사랑이 찰랑이는 손끝이다   더움이 떨어지는 손가락이다   불 지피면 봄날이 된다   감자알 구우면 함박꽃처럼 터진다   옥수수 삶으면 밥이 나와 흐드러진다   밥 지으면 윤나고 국 끓이면 파도친다.     라일락   향기에 언제 발이 생겼지 향기가 막 걸어다닌다   향기에 언제 팔이 생겼지 향기가 막 팔을 젓는다   향기에 언제 곡이 붙었지 향기의 노래 포올폴 메아리쳐 간다   물고기   요리조리 좋아서 야단입니다   물우로 올랐단 쪽- 내려갑니다   입으로 푸루루- 비누거품 내뿜고   헤염쳐 쏘-옥 쏘-옥 여름을 션히 보냅니다     이파리   숲에서 태여난 아기입니다   바람에 바라라- 노래하는 가수입니다   안개가 지나가면 이슬을 달고 그리움에 웁니다   해님이 빛을 뿌리면 그걸 받아먹고 더욱 푸르러 집니다       여름의 강          찰방찰방 해살을 밟습니다   강속에서 목욕하는 해덩이를 놀려줍니다   열만 뿜는 불덩이를 모여들어 물먹여 죽입니다       여름의 산     산이 무더워 헐덕입니다   숲이 무더워 땀 흘립니다   그늘에 앉아도 더운 바람이 달려듭니다   차디찬 산속시내만이 얼음물 촬-촬-촬 토해 여름을 부채질합니다     야경   숱한 달님이 창문마다에 웃고있어요   달의 부스러기들은 가로수 아지마다에 별떨기로 가득 열렸어요   한알씩 마음에 주어담으면 알마다 염글어 통통 소리나요    들나물   장에 갔다 들나물 한줌 사왔습니다. 맑은 물에 잘 씻어 고추장에 냠냠   카- 맵기는 해도 한입 가득 푸른 향기 감돕니다   마음에선 푸른 봄이 싱싱히 노래합니다.   새무리   파아란 하늘 호수   숱한 재재거림이 물결쳐간다   가다가 가다가 나무아지에 잎으로 열리고   날다가 날다가 반공중에 파문을 그린다.                   -(림금산 동시집 "살구꽃 복사꽃"에서)    
45    노벨문학상 후보로 각광받는 고은시인 댓글:  조회:5170  추천:1  2012-12-04
  리나(아나운서)-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 리납니다. 지난시간에는 9.3명절을 맞으면서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를 반영한 시들과 우리 민족 풍속도를 그린 시들을 중심으로 당의 정확한 민족정책의 빛발아래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있는 조선민족의 정서에 대해서 느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각광받고있는 한국의 저명한 시인 고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을 마이크 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네 수고많습니다. 리-그럼 먼저 수차에 걸쳐 노벨문학상후보로 선정되였던 고은시인님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죠.여러차 옥중에 같힌적도 있다면서요. 또 입산하여 승려도 했다면서요? 참 고운시인님은 기구한 운명이였던거 같아요 어떻습니까? 림--시인 고은 소개 1933년에 전북군산 출생. 범명은 고은태, 1947년 군산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50년 조선전쟁으로 휴학했다. 1952년 입산하여 승려가 되였다. 이때 법명은 일초,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동안 수선과 방랑의 날들을 보내다가 1962년에 환속했다. 1958년에 시 “페결핵”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여 등단한후 누구보다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벌렸다. 1970년 전태일분신자살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현실참여에 적극 눈을 돌려 민족문학의 발전과 민주화운동에 압장섰다. 1970년대 이래 네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거쳐 1990년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리--그럼 고은시인님한테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요?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네 아주 많습니다. 가히 방대하다고 할수있습니다. 그의 작품 시집으로는 “피안감성”, (1960),“해변의 운문집”(1963) “신언어의 마을”(1967),“문의마을에 가서”(1974) “입산”(1977),“새벽길”(1978),“고은 시전집” (1983) “중국의 별”(1984), “시여, 날아가라”(1987) “네 눈동자”(1988), “아침이슬”(1990) “눈물을 위하여”(1990), “해금강”(1991) “내일의 노래”(1992), 등이 있으며 단시집 “세노야”(1970)가 있다. 또 장편서사시 “백두산”(1-4) (1987-1991) 가 이미 나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간행될 예정에 있다. 소설집으로는 “산산히 부서진 이름”,  “밤부막”(1983) “화엄경”(1991)등이 있으며 “이상평전”(1974)등 150여권의 저서를 냈고 “고은 시전집”및 “고은 전집”이 간행되였다.   올해로 등단 54년째를 맞이하며, 이미 세계적인 시인으로 올라섰음 그의 시는 자연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가도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가도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그의 문학은 시에 국한하지 않고, 소설, 에세이, 동화, 동시 뿐만 아니라 문학비평과 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한국 최대의 민족시인’‘비판적 리얼리즘의 최고봉’으로 우러르는 것은 그러한 그의 활동에 대한 격찬의 일환이겠다. 리-고은시인님의 “만인보”란 련작시집이 이 세상에 아주 큰 센세이숀을 던지고 있다던데요 “만인보”란 작품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을  소개해주시죠? 림—네 고은과 “만인보” 시인은 지난해 4월 30권을 완간했다. 1980년 여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 갇혀 있는 동안 구상을 시작해서 1986년부터 2010년 4월까지 무려 24년에 걸쳐 4,001편의 시를 써 책으로 묶어냈다.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이라 평가받는 이 작품은 5,600여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사람의 삶을 만인보로 엮어냄으로써 우리 역사와 민중의 빛과 그늘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평가하는 작업을 비로소 완성하게 됩니다. 그의 우리 역사 다시쓰기 작업은 우리 문학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업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는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 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  1986년에 나온 1~3권과 1988년 나온 4~6권은 시인이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1989년에 나온 7~9권은 시인이 고향 군산을 벗어나 몹시도 가난하고도 힘겨운 삶을 살 때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7년이 지난 뒤인 1996년에 나온 10~12권과 1997년에 나온 13~15권에는 1970년대 만난 사람들의 삶이, 그 7년 뒤인 2004년에 나온 16~20권에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슬프고도 아픈 삶이 그대로 투영됐다. 2006년에 나온 21~23권은 4·19 혁명을 배경으로 학생들과 정권 실세, 민초들의 삶을 그렸고, 2007년에 나온 24~26권은 고승들의 발자취를 좇아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불교와 고승들의 삶을 담았다. 마지막 27~30권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싸고 처절하게 벌어지는 삶과 죽음을 표현했다. “사람들이 ‘ 이후에 작품을 쓰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지금 내 손은 놀고 있지만 도박꾼의 손가락처럼 긴장을 잃지 않고 있어요. 3월쯤에 두어 권 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나오지 않은 걸 미리 말하는 거면 볼품도 없고, 그래서 미리 말하기는 그렇습니다.” 리-고은시인님의 문학관에 대해서 말씀부탁드립니다. 림-네  고은의 문학관 “언어는 온몸을 다해서 세상에 바쳐야 한다” “나는 격류였다”란 책의 출판을 계기로 기자는 서울 인사동 어느 술집에서 고은을 만난다. “올해도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상에 많은 사태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구라는 곳은 사건의 행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해가 와도 새해 역시 사건 없이 조용하게 운행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해 두어 권의 책이 진행되는데, 그중 한 권이 먼저 나왔습니다. 책 제목을 하필 라고 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제목은 일본 도쿄대의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와의 대담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변변한 것으로 마주 앉아 있어야 하는데 변변치 못한 것 가지고 창피하게 앉아 있습니다. 원래는 봄 학기에 나와야 했는데 이번에 나왔어요. 한 해를 뜻 깊게 보냈다는 의미를 부여하겠습니다.” 그는 서울대에서 시 강좌를 하고 있는데, 1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기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세상의 이름 중 시인이라는 이름이 가장 낮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교사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마음을 다쳤을 때 위로해주는 힘없는 친구입니다. 이렇듯 시인은 세상에서는 가장 낮지만, 시가 몸에 들어왔을 때는 가장 높은 이름이 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평생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한때 시를 미워한 적도 있고, 때려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시를 태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결코 시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하나하나가 모두 시처럼 들렸고,  몸짓은 풍류로 가득했다. 그는 중간중간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고, 손가락을 모아 한쪽 귀 뒤쪽에 가져가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았고, 이후 인간의 소리가 듣기 싫어 한쪽 귀에 직접 청산가리를 넣는 바람에 고막이 녹아버려 지금은 한쪽 귀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시는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산과 들, 흐르는 물속에 있습니다. 시는 밖에서 떠돌아다니다가 하찮은 언어로 수습되는 것 같아요. 나는 모세혈관, 박테리아, 아메바가 검게 춤추는 그런 시를 쓰고 그런 시인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재주가 없어서 작품으로 반영되지 않네요. 시에서 얻어지는 자유라는 게 하룻밤 자고 얻어지는 게 아니네요.”  “나는 최근 ‘언어의 신체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를테면 으르렁거리는 고양이 꼬리의 뻣뻣하고 곧추선 떨림, 주인이 돌아올 때 개 꼬리의 하염없는 기쁨 같은 것을 인간의 언어가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온몸을 뒤흔들며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 가을밤 새벽까지 멈추지 않는 벌레의 울음소리는 어떻고요. 우리 언어도 이렇게 신체로 온몸으로 심신을 다해서 세상에 바쳐지는 언어가 되어야 되겠는데 단지 문자의 범위에서 문법이나 표현에 만전을 기하기만 하고 있죠. 우리 언어도 온몸을 다해서 세상에 바쳐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충정이 산문집에 반영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리—시를 쓰는 분들은 술을 좋아하는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고은시인님도 술을 아주 즐겨하신다면서요? 보통 한간에서는 “술도 못마이는 사람이 어떻게 시를 쓰나?”하고 시인들을 만나면 하는 일상용어라 생각되는데요 고운시인님은 술을 어느정도 즐기시는지요? 림—네 아마 그런거 같아요 고은과 술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읊듯 인사말을 하고 술을 주문했다. “한 잔 걸치면서 합시다. 술 좀 주쇼. 나는 소주 한 병 주쇼. 한 잔 합시다.” 시인은 소문난 술꾼이다. 그는 소주를 ‘어머니의 두 번째 젖’이라고 하기도 했고, ‘이 하얀 액체는 20대 이후 내 삶을 증명하는 몸 밖의 혈액’, ‘내 청춘의 무덤’이라고도 했다. 때문인지 그가 1987년 일본 의 의뢰로 소주 광고 모델을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때문에 그와 인터뷰를 앞둔 기자들은 그와 소주를 거나하게 기울일 각오를 하고 찾아가야 한다.     시인은 잔에 ‘몸 밖의 혈액’을 가득 채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그의 외동딸인 고차령의 ‘저기’라는 그림이 표지를 장식했다. 좀처럼 자신의 가족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는 시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의 딸은 영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이 책의 표지그림은 그의 딸이 그린것…딸은 영국서 미술전공… 리: 노벨문학상 후보로 되였다고 하는데요. 이 방면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노벨문학상과 고은 “노벨문학상 이야기는 졸렬한 대화밖에 나올 게 없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150여 권의 방대한 저서’ ‘전 세계 15개 언어로 소개된 시’  시인 고은에게 이 같은 수식어나 숫자는 어색하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어떤 단어도 일체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시인 고은’이라는 단어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면서 ‘글자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를 뜻하는 동음이의어다. 그는 2002년부터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AP 등 외신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고은과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가 유력하다고 전했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했던 스웨덴의 일간지 다겐스 니헤터의 문학 전문가 마리아 쇼테니우스 역시 “두 사람의 수상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외 외신은 최근 6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5명이 소설가, 1명은 극작가로 그동안 시인이 수상한 적이 없었다는 점과 같은 기간 유럽 작가 5명, 터키 작가 1명 등 유럽 소설가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들어 비유럽 출신의 시인인 고은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게 돌아감에 따라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다시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유천희해’(遊天戱海·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노니네). 시인은 최근 노벨문학상과 관련해서 한마디로 잘라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가을만 되면 ‘노벨 계절’을 보낸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그는 집에 찾아오는 기자들이 노벨상의 노(N)자만 꺼내도 ‘예끼, 이놈’ 하고 쫓아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기자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의 속내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시인은 “졸렬한 대화밖에 나올 게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시인은 여러 가지 감회에 젖는 듯 ‘시’에 대한 속내를 밝혔다. 리—네 정말 많은 문학작품들을 펴냈고 또 독특한 인생관을 갖춘 시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먼저 고은시인의 서정시 “열매 몇개”를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열매 몇개            고은 지난 여름내 땡볕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열매 몇개 이룩하며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리—아주 짧지만 깊은 뜻이 깔려있는 시같아요. 삶과 인생에 대해서 썼나요? 좀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죠     림-해설 제1련 찔레열매가 새빨갛게 익어가는 성숙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찔레뿐만아니라 모든 식물들이 성숙한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여름내내 불볕같은 뙤약볕 아래서도 자신을 키워가고 칠흑같은 한 밤중에도 어둠과 더불어 익어가는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생명이 완성되였음을 노래하고 있다 제2련 심지어 새벽녁에는 귀뚜라미울음소리를 들어가며 새벽의 냉기를 이겨내며 찔레열매는 여물어 간다. 어느덧 가을이 되여 찔레는 그 생명을 완성시킨것이다.   감상-생명의 성숙과 완성의 과정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선시풍의 작품이다. 역기서 찔레열매는 자연 그대로의 찔레열매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가리킨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어떤 열매이든 자연환경의 악조건과 싸워야만 제대로 건강하게 자랄수있다. 그리하여 열매가 완숙하는 철(가을)이 되면 새빨갛게 여물어진다. 이같이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의 섭리와 그것의 위대성을 시인은 각성하여 노래한것이다. 생명의 성숙과 완성은 언제나 오랜 인고끝에 얻어지는것이다. 그래서 옳거니,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이 감탄사에는 단순히 놀라움의 정조만이 아니라 어떠한 깨달음이 내재되여있는것이다. 잘 익어염근 찔레열매는 영실이라 하여 (영양가 있는 과실)한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만일 찔레열매를 사람에 빗대여 생각해보면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밝은 래일을 준비하는 사람을 암시하는것으로도 읽을수 있다. 영실과 같이 어려운 환경을 뚫고 마침내 단단한 결실을 얻어 좋은 쓰임새를 내는 사람을 뜻하는것이다.   주제: 생명의 성숙에 대한 깨달음   리-계속하여 고은시인님의 시 “화살”을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화살         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여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갖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끊고 화살위를 떠나자 몇십년동안 가진것 몇십년동안 누린것 몇십년동안 쌓은것 행복이라든가 멋이라든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여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쇠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뿜으며 쓰러질때 단 한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리: 어떤 비장한 결전을 보여주지않는가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시에 대해서도 해설 부탁드립니다.   림-이 작품에서 활시위를 떠나 허공을 나는 화살은 1970년대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에 맞서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고 나섰던 사람들을 비유한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과 그 투쟁에 앞장선 전사들의 결연한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런점에서 이 시는 혁명적 낭만성을 강하게 띤다고 할수있다. 특히 제2연에서 가진것, 누린것, 쌓은것을 넝마로 버리자는 말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이 구절은 오히려 낭만적 선언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그러한 혁명적 낭만성은 과녁을 향해 허공을 뚫고서 날아가는 화살이 민주화투쟁의 결사대와도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때 더욱 분명해진다. 주제: 반독재민주화투쟁에 대한 결연한 의지   리: 계속해서 고은시인의 입니다. 시 제목부터 참된 인생을 갈망하는 시인의 소박한 인생이 들여다 보이는데요.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도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더밀었는지 나는 뒤돌아 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까지 온 것이나 다름 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 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리: 겨울 자작나무를 빌어 참된 인생을 적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속에 깊은 뜻이 담겨있을것이라고 느껴지는데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림-이 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경건성과 새로운 도약을 말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작나무숲속에 들어와 그 나무들을 통하여 타락하지 않음. 곧 정직함을 깨닫는다. 제1련 그리고 자신과 자연 세상전체가 일체되는 것을 느낀다. 제2련 이어서 자아를 반성하고 제3련 마침내 삶의 견건성을 발견한다. 제4련 그리하여 “험한 길”로 지향하는 새로운 출발 제5련 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제3련에서 나무의 “떨림”은 생명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하여 삶의 고운결을 암시한다.이는 시인의 인간주의적인 정신으로 이어지는데 가령(추운곳의 정막으로 태여나는 눈옆이나 삼거리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는 부분에서와 같이 삶에 대한 부드럽고 넉넉한 태도로 나타나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우쭐해)질가? 여기서의 우쭐함은 결코 교만함이 아니다. 나무의 가는 떨림을 보고서 삶의 진리를 깨달은 자의 자기 충족감에서 오는 우쭐함인 것이다. 즉 스스로에게 어떤 대견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시인은 거기서 생명의 충만속에 깃들인 삶의 경건함을 본것이고 그래서 순해지고 싶다는 자기반성에 도달할수있게 된다. 이러한 자아성찰은 자연과의 합일 제2련에 도달했을 때만이 온전히 달성되는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시의 핵심구절인 삶의 강력한 경건성, 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고 서슴없이 험한 길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게 된다. 시인은 우연히 자작나무 숲에 와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또 태여”났으며- 다시 말해 새로이 인생의 진리를 터득하였으며 그것으로써 더욱 풍부해지고 우연해진 자세로 삶의 시련과 고난에 대처해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죽음의 직전에 까지 이르렇던 시인자신에 대한 새로운 다짐이라고 읽을수있겠다. 즉 삶의 견건성에 대한 각성을 새로이 함으로써 참된 인간화 및 사회민주화에 대하여 자신을 다시금 도약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제: 삶의 경건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리-계속하여 고은시인님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시“선제리 아낙네들”을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선제리 아낙네들 고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치거리 아쉬울 때는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사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리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멀뚱거린다. 리—참 한밤중에 장보고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을 듣는듯 합니다. 아주 소박하고 민중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림-이 시에서는 민중의 꾸밈없는 생활의 한 부분을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서민(?)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즉 중소도시의 변두리에서 근대화의 혜택보다는 피해만 입으며 살아온 인생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시인은 유연한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런 민중적 삶의 모습은 우리들과 가장 친근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무서움과 지루함을 쫓으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들과 그들을 마중 가는 남정네들의 모습마저도 눈에 선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물건을 다 팔고 난 텅 빈 바구니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텅 빈 배를 냉수로 채우면서 길을 재촉하는 아낙의 모습이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서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개와 기러기 '어둠의 눈'(별)들은 이들에게 적의와 친근감을 동시에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아울러 이런 장치를 통하여 민중의 삶이 외로운 것만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시에 형상화된 생활의 진실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주변의 삶에 대한 또 다른 애정을 확인하고, 그들과 같은 삶 속에 우리 자신을 다시 위치시키는 행위를 반복한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어느 측면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형상화를 통하여, 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역사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역사의 한밤중을 저주하기보다는 '못난 백성','못난 아낙네'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는 '의좋은 한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 형상화된 민중은 확실한 역사의 전망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눈(별)의 멀뚱거림을 위안 삼아 길을 가고 있다. 자신들의 생활에 대하여 막연하나마 '밤은 내가 밤이다'라는 새로운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도중에서 그만둘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선제리의 아낙네 이야기가 주는 객관적인 정서와 그들의 이야기가 객관화된 시적 대상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시적 서술 구조는 서정 장르가 주로 의존하는 주관성과 주관의 진술이 주는 서정의 순간성이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나름의 서술적인 구조가 주는 서사적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객관성을, 시라는 장르를 통하여 구현한다. 이런 경우에 독자의 감흥도 직접적으로 시인의 정서에 동화되지 않고, 시 자체가 주는 객관의 정서에 독자가 감흥을 하는 방식을 보인다. 즉 시에 서술된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하여 독자가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받아들이는 형태를 취한다.   리—네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시간에는 림금산 시인님을 모시고 한국의 노벨문학상후보 고은시인님과 그의 일부작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까지 후보로만 당선되였다고 하니 좀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꼭 노벨문학상이 우리 민족에게도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림-네 수고 하셨습니다.    
44    북방시인 최화길 댓글:  조회:4778  추천:1  2012-12-04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시인 김응룡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흑룡강성 녕안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북방시인 최화길선생과 그의 일부 작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겟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수고합니다. 신-최화길시인은 어렸을때 량 부모를 모두 여인 아주 불행한 동년시절을 지냈다고 알고있는데요 먼저 최시인의 략력부터 소개해주시죠 림—네 최화길시인은 1962년 12월 28일(음력) 흑룡강성 림구현 룡조공사 (진) 흥풍촌의 경주최씨가문의 장남으로 태여남. 불행하게도 어머니는 그를 낳고 별세. 아버지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그가 태여난후 한달만에 별세. 그러다보니 사실은 할머니가 12살까지 그를 키웠음. 어렸을 때 그런 내막을 알리없는 그는 할머니를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며 12살까지 자랐습니다. 1968년 3월부터 림구현 룡조공사 민주조선족소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녔는데 그때가 1972년 5월이라 기억된답니다. 후에는 또 할머니의 사망으로 하여 그와 그보다 7년이상인 고모가 남게 되여 더는 그곳에서 생활할수 없는 상황, 하여 1972년 5월 녕안시 마하향 마련하촌에서 살고있던 큰아버지네 집에 얹혀서 살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1972년 5월부터 마련하촌조선족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공부는 남보다 좀 잘하는편이여서 선생님의 칭찬을 많이 받았으며 동네에서도 귀염둥이로 불리웠습니다. 그만큼 큰집의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신—그렇다면 큰집의 인정은 어떠했습니까? 그 때 당시 말입니다. 림-네 그나마 큰집일가는 인정이 풋풋한 화목한 가정이기도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그의 5촌숙이였는데 그가 고아로 되는 것이 그렇다고 후사를 깨끗이 처리해주고 마을촌간부들과 토론하여 그를 맡아주었답니다. 큰집에 짐을 풀고보니 웬걸 그가 맏이였습니다. 원래 대학공부하느라 장가를 그의 아버지보다 늦게 드신 큰아버지다보니 맏아들이 9살이였고 아래로 6살에 나는 녀동생, 그리고 3살짜리 막둥이 이렇게 3형제였습니다. 자연 그는 큰형님이 되였습니다. 그때 그의 학습성적은 좋았습니다. 20여명이 되는 우리 5학년 기말시험에서 그는 총점 2등을 따내여 큰집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의 총애를 한몸에 안기도 했습니다? 그후로 줄곧 2∼3등에서 벗어나본적이 없었으며 선생님들로부터 덕, 지, 체 모든 방면이 우수한 3호학생으로 평선되여 장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신—그래도 때론 눈치보이는 일도 있었겠는데요 특히는 큰 어머니한테는 더 어려웠지 않았을가요? 림—네 마침 큰엄마가 어려서부터 부모없이 자랐답니다. 하여  큰엄마는 그가 좀만 어색한 빛을 띄여도 인차 내속을 알아내여 따뜻한 마음으로 풀어주군 하였습니다. 눈치본 일도 있지요 돈을 달라할 일이 있으면 말하기가 좀 그랬죠 헌데 이때마다 큰 엄마가 눈치채고 그의 손을 펴주고는 그우에 동전을 올려놓아 주기도 했답니다…. 큰집에 와서 3년만에 그는 초중졸업생으로 자랐습니다. 바로 역시 좋은 성적으로 녕안중학교로 진학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생활형편으로 그를 현성중학교에 보낸다는것은 정말 그림의 떡이나 다를바가 아니였습니다. 그때는 생산대별로 가을에 분배하게 되였는데 농사가 안된 해는 한공에 십전씩 차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일년내내 일해서 3백공을 벌었다 해봐야 겨우 30원에 맞먹는 돈이니 그 돈으로 쌀값도 부족하였습니다. 그러하니 한학기에 입쌀 두마대를 내야 하는 현성중학교로 어찌 갈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또 억지로 떼를 쓸수도 없는 신분이다보니 그렇게 소원하던 현성고중으로는 갈수가 없어 향한족중학교밖에 갈수 없었습니다. 역시 아름다운 리념이 돌바위에 부딪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3년간의 향에서의 고중공부는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공부였습니다. 결국 아까운 황금시기를 한족말 몇마디 얼버무릴수 있는것으로 마무리게 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고중공부는 이렇게 시원섭섭하게 끝마쳤습니다.  신-그렇다면 최화길시인은 어떻게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되였습니까? 혹시 그가 문학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리유라도 있었습니까? 림-네 할머니와 함께 있을때 어려운 식구들이 없는 그의 집이다보니 그의 집에는 매일 할머니의 로인친구들이 한구들씩 차고넘쳤습니다. 그는 아마 그 시절부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구수한 옛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정감세계가 깃든 그 하나하나의 옛말들에서 그는 선한 사람에게는 복이 차례지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소박한 정감세계를 형성하였다고봅니다. 1979년 7월 그는 속에 별로 넣은것 없는 귀향청년으로 탈을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고중생이라고 촌에서는 막로동은 시키지 않고 농업기술원을 따라다니며 농업기술을 배우라고 배치하였습니다. 촌의 농업기술원이라야 논에 칠 농약을 비례맞추어 버무리고 치는 기술을 지도하고 함께 치기도 하는 체력로동이였습니다. 그러다 촌에 수도꼭지공장이 서게 되였는데 고중생인 그가 선반공의 적임자로 꼽혀 선반공으로 한 2년간 보내다가 그것도 경기가 시원치 않아 부도가 났답니다. 모든 아픔과 슬픔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던 그는 자연 학교문을 나서면서부터 책읽기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여 그때 당시 중국청년들이 꼭 읽어야 한다는 필독명작은 다 읽었으며 그것이 끈이 되여 문학작품이면 닥치는대로 읽었습니다. 오직 책과 동무할 때만이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때이르게 쓰고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하여 1980년 당시 《연변문예》잡지 제7월호에 풍자성을 띤 시《이런 간부 있다오》가 활자로 찍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불씨가 되여 나는 밤을 패면서 책을 읽었고 글을 쓰기에 여념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열광의 힘으로 그는 1983년도까지 시를 비롯한 통신, 수필 등 수십편이 해볕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쳐서 합격되여야 등용하던 민영교원을 그는 시험이라는 절차를 빼버리고 합격하는 혜택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앉을 자리 설자리가 확실하지 못했던 그에게 어떤 집착을 심어주었던것 같습니다. 그 집착이 바로 문학에로의 집착이였겠지요 그 집착은 그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여 그의 불운을 메워주었으며 그에게 차례지는 모든 불합리와 불평등을 느긋이 짓밟아나갈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분출구가 되였습니다.  모두가 글을 써서 발표한 덕택이였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맡은 과목은 소학교 5-6학년 한어과임 이였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교단생활이 오늘까지 꼭 29년입니다. 소학교에서 10년 민영교원으로 사업하면서 오상조선족사범함수 (84년부터 88년까지)를 졸업 1993년에는 오상조선족사범민사반에 시험쳐서 붙어 또2년간의 학습을 거쳐 1995년 7월 에 국가정식교원으로 되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1996년 녕안시 성동향조선족중학교로 전근되여 초중 1, 2, 3학년 담임교원, 정교교연실 주임으로 발탁되여 사업하였습니다. 2001년 7월에는 연변대학조문전업함수를 졸업. 그 당해로 녕안시중학교로 전근되여 초중어문 교학으로부터 현재 고중 어문과임으로 줄곤 맡아(대학응시지도도)교학일선에서 사업하고있습니다. 신- 그가 문학을 시작할때부터는 또 독서도 많이 한줄로 알고있는데요 주로 어떤 책을 읽었습니까? 림-네, 책은 그의 창작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시집은 닥치는대로 읽었고 그중 가장 인상이 깊은 시집들을 꼽는다면 “조기천전집” “김소월시선” “마야꼽쓰끼시집” “뿌슈낀시집” “김석정시집” “왕국진시집” “석무용시집” 등 국외 시집과 국내 조선족, 한족시인들의 시집을 섭렵했습니다. 소설은 “젊은 웨르터의 번민” “로빈손크루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두번째 악수” “청춘의 노래” “인간문제” “흙” “로신전집” “모순 3부작” “중국 4대고전명작” 등 자기취미에 따르는 소설을 섭렵. 신-그렇다면 최화길시인은 지금까지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습니까? 또 어떤 문학상들을 받았는지요 림-네 오늘까지 발표한 작품을 루계하면 시를 주선으로 수필, 동시, 가사 등 쟝르의 작품 500여수(편) 발표.. 그중 각종 문학상 10여차 수상. 구체적으로 밝히면 1987년 시 “봄날의 사색”으로 흑룡강신문 “진달래문학상” 1995년 흑룡강조선족출판사 은하수잡지에서 공모한 겨레컵에 시 “우리동네 참모습”으로 3등상 획득. 동시 “별들의 이야기”로 한국월간아동 “백두아동문학상” (부상)을 획득. 2006년 시 “꽃(외2수)로 흑토문학상 시부분 대상 획득. 같은해 수필 “세월련가”로 길림신문 “미인송컵” 수필 은상 획득. 2005년 시집 “봄날의 사색”으로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우수상 획득. 2005년 연변작가협회 시분과에서 조직한 제 25차 두만강여울소리시탐구회에서 시 “무언”으로 가작상 획득. 2006년 한국 KBS에서 조직한 해외동포수기공모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합니다”는 수기로 가작상 획득. 이밖에도 동시 “해님의 낚시질”로 교원온라인글짓기경색에서 흑룡강지역 금상. 흑룡강성조선어방송국에서 조직한 “우리사는 세상”수기공모에서 련 3차 3등상 획득. 그리고 2006년과 2007년 련2년간 연변작가협회 선진창작자로 표창받았음. 신—그렇다면 사회적으로는 지금 어떤 직무를 맡고있습니까? 림—네, 연변작가협회리사, 목단강지구창작위원회 주임, 녕안시조선족문인협회 회장,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조선족작가창작위원회 리사, 흑룡강성북방시회 부회장 등   림—그는 저한테 보내온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나의 시가 아주 예리한 상대성을 띤다고 봅니다. 나의 시 한수 한수는 모두 나의 마음의 심한 갈등에서 불꽃이 튕기여 씌여지고 이어집니다. 그속에 바로 아름다운 공중루각이 서고 칠색의 무지개가 찬연합니다. 그것이 순간의 반짝임이지만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쏟아지는 긴 마음의 려과가 있다는것을 선언하면서 나는 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시도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한다고 떳떳이 선고하고싶습니다. 한것은 20여년간 눈길 한번 다른데 돌릴세라 변함없이 사랑하는 《랑군님》을 어떤 《아가씨》면 외면하고 돌아서랴! 모든 지배권에 대하여 전혀 흥취가 없는 나였지만 자신의 마음 지배권만은 꼭 잡고있습니다. 하기에 나는 떳떳하게 말할수 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생명은 한줄에 함께 가지런히 놓여있다고.”   신—아 네 문학에 대한 집념이 아주 철저하군요 그리고 그 어떤 굳은 신념으로 안겨오는데요….   신—그럼 최시인이 가장 다루기 좋아하는 시적 제재로서의 평범한 나무에 대한 시 “나무읽기”를 먼저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무읽기             최화길   세월과 함께 오직 크기에 열중하는 나무의 조용하고 평범한 삶은 인생의 둘도없는 거울입니다.   흙과 물과 해빛 그리고 바람과 새와 달과 사랑 나누며 변함없는 지성으로 크는 나무   어디서 어떻게 태여났던지 원망없고 탐 없고 시샘 모르는 충성으로 아름다운 고매한 덕성   고독의 물안개 피여오르면 칠색의 무지개 떠올리며 참삶의 불길을 지피는 나무   언제 어디서나 거룩한 존재 나무를 쳐다보면 푸르는 숨결 산다는 의미를 즐기는 나무   슴슴한 일상을 깨워줍니다 무미한 살음을 불사릅니다 싱싱한 행복을 만드옵니다.   신-네 참으로 평범한 나무의 평범한 일생을 다루면서도 또 평범함속에 평범하지 않은 그 무엇을 안받침했다고 느껴지는데요 어떻습니까? 림-네 사실 이 세상 어디에나 흔하고 또 쉬이 우리의 눈으로 찾아볼수있는 나무를 적은 소박한 시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박하기 그지없는 나무일지라도 최시인의 시에 비친 나무는 그저 평범함을 떠나서 “언제 어디서나 거룩한 존재”인 나무로, “산다는 의미를 즐기는” 생명과 근원을 맺고있는 나무로, 자기의 삶을 “물사르는 나무” 즉 나무는 불을 피울수 있으니깐 자기를 불사르면서 온기를 세상에 남겨주는, 나중에 자기는 재로 남지만 …세상에 행복과 사랑과 따뜻함을 남겨주는 그런 나무로 한생을 마치지요 그리고 시에서도 얘기했다싶이 나무는 신분을 가리지 않습니다. 백두밀림에서 태여났는지 아님 어떤 이름없는 골자기에서 돋아났는지 출생에 대해 묻지않지요 그리고 욕심이 없습니다.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고 생활속의 부유함도 모르지요 지어 바위에 뿌리내렸던 사막에 뿌리내렸던 변함이 없고 요구가 없고 그냥 평범한 존재 그대로 자기로 자영분을 섭취하여 우로 우로만 뻗어나가는 그런 고매한 덕성을 갖고있는 나무입니다. 마치도 최시인의 일생이 그러하듯 엄마, 아빠를 잃고 할머니품에서 살때나 큰집에서 얹혀살때나 또 민영교원으로 있을때나 정식교원으로 있을때나 마련하에 있을때나 동경성에 있을때나 또 지금 녕안중학교에 있을때나 담임으로 있을때나 교도주임으로 있을때나 또 동경성성동에 있을때는 교장으로 발탁될번도 했지만 그냥 평범한 문학교원으로 일생을 불사르는 그런 자기자신의 인생과 나무의 일생을 대비적으로 쓴 감도 나고 나무이자 자신이고 또 자신이자 나무인 그런 소박미와 평범미가 이 시의 소중함을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수도 적고 성품이 아주 소박하면서도 끈질고 근한 그런 소박한 분이지요 아마도 그 인간과 그와 맞먹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한다는건   아파트층계 입구에서 들려오는 내 발걸음소리 용케도 가려내는 그 자상한 고운 마음 잊기에는 그럴만한 리유가 없다.   검은머리 그 속에서 유표한 흰머리가 오리오리 늘어가고 아름답던 홍조는 퇴색하여도 변함없는 순정에 목이 메이는 그런 감동 무엇으로 밀어버리랴! 한송이 꽃으로 마음에 닿기에는 향기를 달여내는 기-인 과정 보이지 않는 깊은 숨김으로 연연한 그리움이 이여지는것.   사랑한다는건 무정한 미운 세월 밀어버리고 누가 보던 말던 상관이 없이 깊은 속에서 용암처럼 우러나 대신 아프고 대신 죽음도 감내할수 있는 그런 행위에서 정립합니다.   신-별로 자기가 친히 겪은 사랑을 썼지않았는가 생각되는데요 림-네 아마도 그런거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사랑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가정을 극진히 사랑하지만 입으로는 잘 나타내지 않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 안해를 사랑하고 가정을 끝없이 사랑한다고 봅니다. 저와도 아주 친한 사이인데 저도 그의 부인을 만나본적 있는데요 문학하는 남편을 아주 잘 받들어주고 묵묵히 말없는 푸른 잎같은 부인이지요… 아마 이 사랑시는 최화길시인께서 자기의 직접적 체음으로 쓴 시같은데요… “대신 아프고 대신 죽음도 감내할수 있는 그런 행위”가 그의 값높은 사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빠 엄마도 없고 할머니마저 없는 그가 가정을 이룬후에는 그 가정만이 자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만큼 속으로부터 뼈맞히게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쉽습니다.   너의 삶에 내 이름 바꾸고싶다   짓밟히고 씹히고 할퀴우며 온갖 수모를 체험하여도 오똑오똑 다시금 일어서는 저 여리면서 강잉한 잔디 앞에서 너의 삶에 내 이름 바꾸고싶다.   너와 별로 다름이 없으면서도 너를 아주 하찮게 여기는 사상들에 너는 너의 소박한 행위철학으로 참다운 삶이 무엇임을 세워주거니 너의 삶에 내 이름 바꾸고싶다   차례진 모든것에 이악스럽고 주어진 약소한것에 만족 느끼며 어제를 이어 오늘을 즐겁게 사는 쾌청한 네 삶의 행보를 보며 너의 삶에 내 이름 바꾸고싶다   종점까지 초지일관 시종여일 한 독할만치 린색한 너의 일정표 푸른 빛 한오리에 생을 바치는 심금을 울리는 무거운 멜로디 너의 삶에 내 이름 바꾸고싶다.   신—여리고 평범하고 또 또 하찮은 잔디에 자기이름자를 새기고 싶다는 참 진솔한 숨결이 풍기는 시같은데요 림-그렇습니다. 작디작은 평범하나 강직한 잔디의 생명을 자기 일생에 비유하고 또 그것으로 자기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그 의지, 아마 이 시에서는 자기의 인생력사와 잔디일생의 비슷한 점을 골라서 잘 마무려 붙인것 같아요 “여리면서 강잉한 잔디”, “푸른 빛 한오리에 생을 바친다”는 잔디, “심금을 울리는 무거운 멜로디”라거나 또 “종점까지 초지일관 시종여일한” 잔디….   신-최화길시인에겐 또 희트친 노래 “엄마생각”이 있다는데요 일찍 엄마를 여읜 그가 어떻게 “엄마생각”이란 명가사를 썼을가요? 그럼 먼저 가사 “엄마생각”을 함께 감상하고 그 창작경위를 들어보도록 할가요?   가사   엄마생각   최화길   흙장난에 갈라터진 내 손목을 잡아쥐고 어머니는 호되게 호되게 때렸어요 흘러간 동년 그 시절 그리운 동년 그때는 그때는 정녕 몰랐습니다 아, 모진 엄마 아, 아픈 매가 모진 엄마 아픈 매가 그립습니다.   알사탕 사내라고 떼질쓰는 나를 잡고 어머니는 우시면서 우시면서 달랬어요 흘러간 동년 그 시절 그리운 동년 그때는 그때는 철부지 몰랐습니다 아, 못살던 아, 우리 엄마 한줌의 흙이 된 엄마가 그립습니다.   신- 참으로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명가사였습니다. 다른 가사와 다르게 가사언어가 아주 독특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안겨오는데요. 어떻게 “모진 엄마 아픈 매가 그립다”든가 또 마지막련에 “한줌의 흙이 된 엄마가 그립습니다” 고 썻을가요? 아주 독특합니다. 또 “알사탕사내”라고 우는데 함께 우시는 엄마죠 참 독특한 매력이 넘칩니다. 그렇다면 이 가사는 어떻게 창작되였습니까? 림-네 그의 엄마는 그를 낳은후 3시간 만에 사망. 그의 엄마와 아버지를 합장한 큰 묘가 있다. 장장 45년을 기록하는 묘이다. 어렸을적에는 할머님과 동행했었는데 할머님이 하도나 섧게 우시기에 그도 덩달아 따라서 울었다는 기억이 어슴푸레할뿐이다. 그만큼 그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그가 애절한 노래 《엄마생각》의 가사를 썼다니 아마 의심스러울것이다. 실은 그의 엄마의 원형은 할머님이다. 그는 열두살까지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다. 새파란 아들, 며느리를 앞세우신 할머님이고 보면 할머님께서 늘쌍 외우시던 말 그대로 할머님의 속은 재가 되였을것이다. 할머님께 있어서 기적같은 그의 생명은 금이고 옥이고 집안의 기둥이였으며 할머님의 전부이고 재속의 불꽃이였다. 그런만큼 그는 할머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집안의 둘도 없는 《황제》였다. 밥식기, 흰빛. 할머님은 죽이나 물누룽지. 그는 완전히 할머님의 등에서 컸으며 할머님의 포근한 품에 꼭 안겨 시름없이 자랐다. 하지만 이것이 할머님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일자무식인 할머님이여도 사람됨을 가르치는데는 마음이 모질었다. 커서 꼭 《큰사람》이 되여야 한다는것이 할머님의 그에 대한 기대였다. 《큰사람》이 뭔지? 그때는 몰랐지만도. 그는 할머님의 손에서 크면서 이 말만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다. 그러기에 사람됨에 어긋나는 일에 대한 할머님의 요구는 더없이 엄하셨다. 가사에서의 “아픈 매”라든가 “모진” 등—엄한 교육-란 말은 아마 여기에서 나온같다. 집안의 《황제》로 컸던만큼 그는 어렸을 때 장난이 심한편이였다. 때론 싸우다 울며 집에 들어서면 할머님은 언제나 그를 품에 꼭 껴안아주시고 함께 우시던 기억… 하지만 절대 그를 두둔하거나 역성은 들어준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자기절로 자신의 행위를 검토하여 우렬을 깨치라는데서였을것이다. 그리고 울음이 잦아든 연후에는 꼭 이렇게 타이르셨단다. “매를 맞은 사람은 다리를 쭉 펴고…”자아위안 성분이 다분한 말씀이지만 할머님은 신조같이 믿으시고 그것을 은근히 그한테 물려주려 하였다. 60, 70년대초 흙장난. 흙으로 인형,흙다마 흙장난으로 손등이 갈라터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손이 갈라터진다고 저녁이면 꼭 오줌물에다 손을 씻어주군 하였다. 갈라터진 손등-오줌물에 씻고난 이튿날이면 손등이 별스레 보들보들하였다. 이 가사는 사실 할머니를 썼고 그 밑에 엄마없는 애가 엄마를 뼈에 사무치게 그리는 그 피같은 그리움이 받쳐져 있지요 아이를 낳고 3일만에 돌아가신 엄마와 알사탕을 사내라고 할수도 없고 또 그런 엄마가 아프게 때릴수도 없었거든요 이런 사실은 모두 할머니와의 사실임이 확연이 들어납니다. 12살부터 큰집에서 크게 되였다. 물론 큰집에서는 그가 불쌍하게 컸다고 큰아버지나 큰어머니는 나에게 각별한것만은 사실이다. 그 사랑은 친자식을 초월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그때부터 빈구석이 있은것도 사실이였다. 적어도 엄마라는 부름을 더는 입에 올릴수 없었다. 그래서일가? 남들이 그의 앞에서 엄마라는 부를 때 그는 속으로 눈물을 떨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큰집의 막둥이 동생이 큰엄마의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릴라치면 내 베개잇은 눈물에 흥건히 젖기도 했다. 그렇다, 엄마 있는 애들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부름은 그렇게 평범한 이름이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이름은 그토록 소중한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엄마 없는 그가 《엄마생각》을 쓰게 된 경우일것이다. 결국 그는 “엄마생각”이란 노래를 지어 실컷, 목이 터지도록 자기가 그렇게 부르기 싶었지만 못불러본 엄마를 부른 것이다.   《엄마생각》이 오늘까지도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있는것은 이 노래가 그 뿌리를 어머님의   티없이 깨끗한 무한한 사랑에 두었기때문이라고 본다.   최화길시인은 저한테 보낸 메일에서 이렇게 적고있습니다. “이 노래가 세세대대 전창되리라 믿고싶다. 이 기회에 가사 《엄마생각》에 날개같은 좋은 곡을 달아주신 김광일선생님께 머리숙여 심심한 사의를 표시하고싶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갑니다. 오늘은 북방시인으로 각광을 받고있는 녕안중학교의 최화길시인이 걸어온 문학로정과 그의 일부 시작품을 살펴보았는데요 아마도 최화길시인에 대해서 많은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많았습니다.
43    김일량 시인 댓글:  조회:3809  추천:0  2012-10-25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녀성시인으로 아주 인끼를 모으고 있는 여류 시인 김영춘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알찬 시농사도 함께 지어온 농민시인 김일량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감상하는 기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 시인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일량시인이라고 하면 다년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시들을 써내고 또 많은 상들도 안아온 시농사의 감농군이라구 알고있는데요 지금 어디에서 살고계시죠. 먼저 김일량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부탁합니다. 림—네 김일량시인은1957년 안도현 량병진 신흥촌에서 출생하여 50여년 줄곧 그 곳에서 쌀농사도 짓고 시농사도 지으면서 순수한 문학도의 깨끗한 마음을 안고 많은 알찬 시들을 펴냈습니다. 언젠가 저도 한두번 김일량시인네 댁에 찾아가 술잔도 나누고 시와 인생담도 얘기나눠 봤는데요 농민을 치고는 시를 참 잘 쓰더라구요. 농민. 김일량시인은 고졸(그것도 문화혁명때후기의 농기반이랑 있을때 공부를 별로 안할때의 고중)이 전부의 학력으로서 대학교대문 근처는 한번도 어슬렁거린 적도 없고 전문적인 문학교육도 전혀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또 어느 유명한 시인이나 무슨 작가, 교수한테서 개인적인 사사를 받은 경력도 전혀 없다. 그의 말을 빈다면 그는 그저 《사랑방에 책을 쌓아놓고 시를 읽었고 마을앞 버드나무숲에서 좋아하는 시를 외우며》 푸른 하늘아래 넓은 들판에서 시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가슴속에 한수 또 한수의 시가 씌어지면 그것을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조심스레 편집부에 투고하였을 뿐이다. 참 김일량시인의 집은 그럴듯이 시가 흘러나올수도 있는 비교적 아름다운 전형적인 연변농촌마을이다. 남쪽으로 골연을 따라 아기자기한 야산들이 높낮게 올리 뻗어있고 북쪽엔 푸르하통하가 서에서 동으로 흘러갔다. 강량안은 몽땅 벼밭인데…비교적 휘넓다. 겨울같을때면 아예 강이 얼어붙으니깐 량병태로 올라가서 휘돌아 오지않고 걍 강을 얼음으로 건너면 지름길로 장도 국도와 장도렬차의 철길을 건널수있다 즉 북쪽으로 국도와 철로가 가로 흘러지난다… 신—그렇다면 김일량시인은 어떤 문학상들을 수상했나요? 또 사회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있습니까? 림--연변일보 제일제당한상 본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백두아동문학상 등 다수. 시집: “남자의 피는 술이다” 등 사회적 평가--길림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번(2007년) 시상식의 CJ상 본상에 안도현 량병진 신흥촌의 농민시인 김일량의 시 《여름산은 새소리 따라간다》인데 마음을 비우고 고향의 청산록수를 친구삼아 써낸 김일량시인의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력과 탁월한 언어구사력이 돋보인다고 썼다. 여기서 감히 탁월한 언어구사능력이라고 했는데요 참 저도 김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진짜 시어들이 아름답고 알차게 구사되였다는 감을 강하게 받았어요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이며 시인인 석화씨는 그의 시에 대한 평론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자연속에서 자연이 이루어내는 풀과 나무와 꽃처럼 이루어진 김일량의 시편들은 시상이 뚜렷하고 철리가 깊으며 의미지가 선명하고 특히 시적 언어구사가 유려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신-아, 그러세요 그럼 김일량시인의 구체 작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시인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감상할 시는 “가을밤”입니다. 가을밤 10                 김일량 작은 곤충이 가릉가릉 코고는 소리를 쟁쟁 영그는 풀씨만이 가만히 듣고있다 풀씨의 화려한 꿈으로 깊어가는 가을밤은 산의 이미지를 땀내음으로 안내하고 달빛은 자기의 흰살속에서 가장 하얀 속살만 뽑아 한채두채 집을 짓고있다 림-이 시는 2004년 장백산잡지에 실린 시이다. 아늑하고 아련한 한폭의 수묵화이다. 시인은 시에 《작은 곤충》을 불러와 삼라만상이 어우러지는 대천세계를 그려내었으며 《가릉가릉 코고는 소리》로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을밤의 한 경지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또 《화려한 꿈》으로 담백한 《삶의 이미지》를 《땀내음으로 안내하는》것이다. 여기에 시의 마지막 부분의 《달빛은 자기의 흰살속에서도/ 가장 하얀 속살만 뽑아/ 한 채 두 채/ 집을 짓고 있다》는 구절에 대하여서는 감히 우리의 언어로 이루어낸 기막힌 표현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싶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시인의 예민한 언어감각은 시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첫째가는 요소로 작용한다. 신-다음은 시 “가을밤 16”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가을밤 16             김일량 섬섬옥수 같은 하얀 달빛이 변모하는 산간마을 붉은 기와지붕을 쓸어준다 북두칠성은 은빛 낚시로 꼬부라져 풍년벌을 낚으려는가 밤이 깊어질수록 가까워지고 낮에 채석공들이 돌 캐는 소리가 아직도 은은한 길녘의 흰 바위는 하늘폭포로 무너진다 림---현대문명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오늘의 시대를 명명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업과 경제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연파괴도 잇달아 가속화 된다는 악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거부가 바로 물신주의에 반기를 드는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입니다. 우리의 향토시인 김일량은 리론적으로 이 생태주의적 문학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이미 자기의 작품으로 생태주의적 문학의 기발을 높이 추켜들고 또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렇지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흐름으로 봄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여름의 성장을 거쳐 "풍년벌을 낚으려는가"하는 가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산업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지요. 이 작품은 이에 대한 반항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우리가 자연을 허물지 말고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면서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길로 나가야 함을 적고 있습니다. 《하늘폭포로》 무너지는 《길녘의 흰 바위》는 시인의 가슴에서 현대문명에 의하여 무너져 내리는 자연의 반항을 그대로 그려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각일각 파괴되어가는 자연이 현대 인간들에게 보내는 항변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다음은 시 “풀새둥지”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풀새둥지               김일량 풀새둥지는 우주의 말소리를 붙잡고 바람우에 걸려있다 바람이 떠나갈 때 해빛 품고 떠나갔다가 바람이 돌아올 때 달빛 업고 돌아온다 풀새둥지에 꿈이 모이는 밤에는 우주가 가까이 다가서서 자장가를 흔들어주고 새날 아침이 깨여날 때 풀새둥지는 우주를 찾아 길을 떠난다 신-다음은 시 “버드나무숲”을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게습니다. 버드나무숲             김일량 이야기 길게 하얀 시내바닥 소리따라 가면 자연의 깊이가 은밀히 숨은 곳 그늘따라 가면 큰산이 다가오다 멈춰선 곳 싱싱한 여름이 세상을 활 벗어버리고 하늘속 노란 마을로 가고있다 주: 여기서 “시내바닥”은 시내물이 흐르는 그 바닥을 가리킴. 림-마을앞 시내가의 버드나무숲속을 거닐면서 느낀 대자연의 아름다움의 깊이를 짚어낸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참 역시 고향의 버드나무숲을 아주 재치있게 시화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에서 첫련에서는 시내를 긴 이야기로 비유하고 두번째련에서는 버드나무숲이 자연의 은근한 그 깊이를 은밀히 숨겨놓은 곳이라고 형상화했습니다. 그래요 우거진 버드나무숲에는 자연의 은근한 비밀, 즉 뭔가 싱싱하고 신선한 오염안된 자연의 이야기가 한가득 숨겨진 곳. 즉 고향의 아름답고 속깊은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거죠 역시 고향의 자연에 대한 높은 찬미라고 생각됩니다. 3련에서는 큰산이 다가오다 멈춰선곳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역시 큰산 즉 자연의 큰 아름다움이 머물렀다고 고향의 산을 노래하고 있는것 같애요 마지막 련에서는 싱싱한 여름이 세상을 활 벗어버리고 하늘속 노란 마을로 가고있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세상을 활 벗어버리다는 것은 속세를 활 벗어버리고 즉 자연이 속세로 부터 오염을 활 벗어버린다 즉 오염될 가능성을 활 던져버리다—오염돼서는 안된다는 의지. 그리고 하늘속 노란 마을로 –이것은 상상속의 또 이제 도래할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로 가고있는 마을을 암시한거죠 가을은 노란속으로 즉 익어가는 색갈로 꽉 차 있는거니깐요 한마디로 이 시는 고향의 버드방천으로 부터 오염안된 여름이 가을로 가고있는 풍요로운 자연미를 찬미하고 고향의 자연에 대한 시인의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것이라고 봐야겠지요 훈 춘         김일량 세개 나라 세가지 언어를 푸른 물빛에 꽃무늬로 수놓으며 비단필로 흐르는 강물에 고기떼와 물새들은 국경없이 자유롭고 자연 물오리떼들이 꿈을 푸근히 삶아내는 풀빛 늪이- 주방에 옥그릇처럼 곳곳에 알뜰히 진렬되여있는 동네 아침의 서늘한 그늘 쪼각들이 한낮까지 게으르게 그늘 무거운 나무숲속에서 싱싱한 여름빛으로 새여나오고 호랑이 이야기가 옛말같이 귀뿌리를 선뜩하게 찍는, 경신 거리에는- 현대무송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해발높이 5메터에 바다를 찾아 풀쩍 뛰여내려 룡왕중에서 보배를 건져내는 풍요한 방천마을은 물우에서 아침이 깨여나고 물속으로 저녁이 잠든다 산그늘 구름 무게로 깊고 나무숲 바람 두께로 울창한 춘화 밀림에는- 새소리 푸른 하늘 업고 날며 심심산천 길고 짧은 옛말을 마디마디 물어다가 하늘둥지 틀고 살찐 벌레들은, 산울림소리 비옥한 흙속에 묻으며 차고 더운 계절을 늘구어 당겨간다. 푸른 물속에 드넓은 하늘이 깊숙히 빠져 새삶의 궁전을 짓고 둥그런 하늘벽안에 세계를 마중하는 서비스광장을 꾸려가며 배타고 바다길 개척하고 비행기 타고 하늘길 날아가며 열린 가슴으로 온천하르 포옹하는 동네… 봄의 계절에- 옥구슬 주렁주렁 걸리고 있는 땅 바로, 여기란다 훈춘(珲春)… 림—이 시에서는 주로 개혁개방의 전초지인 삼국변계의 약동하는 훈춘이란 곳을 아주 강개하게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김일량시인이 처음으로 훈춘이란 곳에 여행갔다가 거기에서 보고 느낀 설레이는 감수를 적은것 같다. 시골시인이 어쩌다 훈춘 버덕에 나가보니,또 3국변계인 세계로 탁 열리는 곳에 가보니 감개가 무량했는것 같다. 보통 김일량은 이렇게 긴 시가 거의 없다. 짧고 깔끔한 잘 익은 서정시를 주로 다루는 시인인데 이 시는 그로 말하면 조금 긴편이다. 나는 그가 쓴 시들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만큼 긴시도 사실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점은 이 시에 자연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사랑과 친환경적인 시인의 새로운 의식의 높이가 잘 표현되였다는 점이다. 매개 련마다 다 잘된 생태환경을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는것이 확연히 알린다. 또 거기에 신경을 많이 기울인점이 돋보인다. 제1련에서는 주로 지리적으로의 훈춘의 중요한 위치와 아름다움을 쓰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단필로 흐르는 강물”이라든가 “고기떼와 물새들”의 “국경”의 제한없는 “자유로움”이라든가 “자연 물오리떼들이 꿈을 푸근히 삶아낸”다든가 등 제2련에서는 경신을 쓰고 있으면서 그 무성한 자연과 귀뿌리를 선뜩하게 하는 호랑이얘기 즉 친환경적인것을 쓰고있다 제3련에서는 방천을 쓰고있는데 역시 해발 5메터밖에 안되여서 풀쩍 뛰여내리면 물이라는 즉 낮의 물과 밤의 물 즉 자연생태를 위주로 썼다. 뭐 옛날 시들처럼 새기와집이 쭉쭉 들어서구 뭐 색텔레비요 랭동기요가 아니라 숲, 물, 물속의 새요, 고기 등 하여간 그런쪽을 많이 노렸다. 제4련에서는 춘화진은 역시 생태가 잘 되고있는 곳이란걸 강조하면서 밀림, 비옥한 땅, 울창한 살림, 싱그런 바람 …즉 다시 말하면 오염없는 춘화의 잘 된 생태환경을 썼다 지어 벌레까지 오염이 없는 친환경에서 살이쪘다고 쓰고있다… 제5련에서는 종합적으로 훈춘시와 전반 훈춘지역을 노래했다. 총적으로 전반시에서는 개혁개방으로 하여 약동하는 훈춘을 썼는데 특점은 개방되고 탁 트이는 국제무역쪽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훈춘만 쓴것이 아니라 훈춘의 오염없는 친환경과 그 무르녹은 자연속의 훈춘을 더욱 유표하게 노래하였다. 이것이 이 시의 성공에서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여름                   김일량 깊은 산골짜기를 바람이 칫솔질하며 드나들 때 코구멍을 쑤시는 산향기에는 벌레들이 살찌는 소리가 간지럽다 태양이 뜸뜨는 코등에서 지렁이가 그물그믈 기여내리는 여름은 애교 같은 사랑으로 진득진득하고 비온뒤 칠색무지개가 황홀한 긴다리로 먼산을 껑충 건너뛰는 모습은 너무나 장관이다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뻘건 쇠물 같은 혀바닥으로 땅을 피나게 핥는 여름 태양은 너무나 지독하고 모기들이 떼지어 저녁 무더위를 톱질하며 살점에 꼭꼭 못을 박는 여름은 피나게 아프다 여름은 때리고 만져주는 손이다가 발이다가… 림-이 시는 2007년 3월호에 발표한 신데요 고향의 여름에 대한 시인의 피부에 와닿는 느낌을 적은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헌데 고향의 여름을 씀에 있어서 먼저 여름바람에 꽉 차 실려오는 산의 향기를, 다음엔 태양의 지질듯 뜨거운것을 진득진득한 사랑으로 다음은 비온뒤 칠색무지개의 모습을 , 다음은 모기때문에 아프다는 즉 고향의 여름날의 지친 노동과 그로부터 오는 만풍의 가을을 에워오자면 아픈 노력이 있어야함을 살짝 건드렸다가 마지막 두행에서는 여름이 주는 혀택과 로동의 고달픔을 반죽해서 내용있는 여름, 웃음과 울름이 동반된 현실적인 여름을 쓰고있다. 물론 고향의 여름을 그저 아름답게 만 묘사한게 아니라 시골의 희노애락이 동반된 그런 살아숨쉬는 여름을 그려내고 있는것 같다…즉 고향의 여름은 좋기만 한게 아니라 또 여러가지로 어려움과 무더움, 고달픔 등도 감내해야 함을 사실적으로 비례맞게 시화하고 있다. 또 거기에서 진득진득한 내고향의 여름의 깊이를 한층 무게있게 파내고 있는것이다. 아직도 현대화가 못된 내고향은 농사를 위주로 하고 있고 잘 살아보기위해 모지름쓰는 고향은 이런 저런 땀과 노력이 곁들어야함은 사실이다. 그걸 시속에 담아주었기에 더욱 진실한 진성이 시에 비쳐지는건 당연한 일이 아닐가? 신-그렇다면 김일량시의 예술특징을 귀납해본다면 어떻게 말할수 있습니까? 림-네, 첫째 일량시인의 전체적인 시작품을 내용면으로 본다면 그 경향을 한 마디로 《자연》이라는 단어로 모아서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향토적인 느낌을 밑그림으로 하여 그려지는 그의 작품들은 논과 밭과 계곡과 숲과 그 우에 펼쳐진 높은 하늘과 그리고 이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골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으며 그들의 정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즉 시골농민들의 순박하고 깨끗한 티끌없고 오염한점 없는 그 정서의 기록이라는 이것이 첫째 특징 둘째: 특별히 돋보이는 언어감각, 이것이 김일량시의 두번째 특징이다. 김일량시인의 시작품에서 우리는 시인의 훌륭한 언어감각으로 이루어진 보석 같은 구절들을 자주 만나게 되어 기쁘며 특히 이런 언어표현들이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물이라는 데서 더욱 감탄하게 된다. 가을밤이라는 제목으로 련작시를 한 50여수를 썼는데 그것을 여기서 다 례를 들수는 없고 그가운데의 시구절들을 몇개만 봐도 알수있을것이다. 《높은 나무 우듬지/ 까치둥지에 감추어 놓은/ 이야기 한바구니/ 누가 꺼내가지 않았을가》(《가을밤 ․ 8》), 《차츰 열리는 가을길이/ 은하수 한끝을 이어갈 듯》(《가을밤 ․ 9》), 《밤을 자지 않는 벌레의 자취가/ 바람의 꿈을 간지럽힌다》(《가을밤 ․ 12》) 등 구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말의 아름다운 운률과 그 조화로운 운률이 이루어내는 해맑은 이미지에 상큼한 입맛을 다시 느끼게 된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농민시인 김일량의 아름다운 친환경시들과 우리 고향의 풋풋한 모습을 생동하게 그려낸 시작품들을 감상하는 아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독특한 시들과 가까이 만나서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에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42    초가 댓글:  조회:3420  추천:0  2012-10-09
노오랗게 구워진 햇감자다 벼짚으로 꽁-꽁 동여맨 메주떵이다 소월이랑 동주랑 뒹굴어 놀던 찰랑찰랑 눈물이다                - ("중국조선족시화선집")에서
41    시 시와 김치 댓글:  조회:2335  추천:0  2012-06-17
달이 지고 붉은 해가 창턱에 매달리면 아침상에 오른 김치포기를 앞에 놓고 나는 잘 절여진 전래동화를 맛나게 먹는다 그러면 그러는 내가 대견하다고 안해의  얼굴도 해처럼 밝아진다   그래서 나는 늘 햇김치로 싱싱하고 김치포기를 마주할때마다 그게 바로 나에게 시로 불붙기도 한다…   안해는 며칠에 한번꼴로 통통 소리나는 통배추를 사다가 초절이 하고 살진 살색마늘을 많이 다져넣고 김치를 담근다   물론 동해에서  자유로이 노닐던 멸치들의 흥분한 숨결도  방울방울 골고루 뿌리고 싱그러이 코를 치는 진한 생강도 부벼넣고   그녀는 팔려고 이렇게  많은 김치를 담그는게 아니다 사각사각 먹어버리는 붉은 입들이 많기때문 그 입은 나와 딸년들이 달고있다   그녀는 력사를 다 알지못해도 손끝에 향기만은 뭍혀왔다 그녀는 사랑철학은 다 몰라도 깊은 맘으로 잎잎에 애정선률 감는다   그녀의 김치는 한포기 두포기 그녀의 손에서 빨갛게 춤추고 나의 시는 한수 두수  내맘에서 자꾸자꾸 물결친다   시집간 딸들이 김치가지러 줄서오면 나는 환한 딸들구경에 신바람이 나고 그녀는 해덩이같은 김치를 꿍져주는게 벅차단다   이렇게 그녀손에서 김치는 수십, 수백포기씩 줄줄이 탄생하고 우리들 입에서 김치는 향기를 터치며 우리 몸에 붉은 피를 수혈한다   저멀리 푸르른 배추밭은 그냥 파도친다 붉은 땅고추가 퐁퐁 솟는 철길옆 터밭도 노을빛에 찬란하다 줄기줄기 뻗어오는 저 빛은 언제 다 시로 쓰나 눈맛부터 뜨겁다   그리고 저 많은 고추와 배추는 언제 다 먹나 눈만 감아도 얼큰한 태양이 입속에 감돈다   나는 해와 달에 취해가듯 그녀와 김치에 깊이 절어간다… (2011년 10월 연변일보에서-)
40    수필 충북으로 가다 8 댓글:  조회:2808  추천:0  2012-05-21
9. 이상설 사당과 생가   우리는 리상설(1870-1917) 사당앞에 숭엄히 모였다. 이 세상에 민족의 자존심과 얼을 휘뿌리며 필생의 정력으로 이 나라와 이 나라의 존엄을 위해 분투해온 리상설의 얼을 가슴깊이 새기였다. 우리는 리상설동상앞에서, 리상설숭모비앞에서, 그리고 그가 탄생한 곳인 초가앞에서 수없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상설은 1894년에 문과에 급제한뒤 한림학사, 의정부 참찬 등을 지냈었다. 이상설은 왕조관인이지만 누구보다 앞장서 근대사상과 학문을 받아들여 구미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섭취하였고 스스로 영어, 프랑스어, 로씨야어, 일어를 구사할수 있었다. 그보다도 국가정치와 섹계대사를 인식하여 국가와 민족의 진로를 밝힐수있는 당대의 동량으로 추앙되였고 또한 스스로 앞장서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뜨락에서 우리는 그의 숨결이 지금도 맥맥히 굽이치는 가마뚜껑이며 온돌이며 그리고 모래불로 되여있는 앞마당가며를 마주하며  실로 리상설님의 모든것이 되살아나 우리한테 민족을 강의하시고 자존심을 력설하시는상 싶었다. 나는 리상설사당안에 있는 자료에서 중국연변룡정시 실험소학교의 현모습도 찾아보게 되였고 당시 현임교장인 정금석과 진천군관계자들이 함께 리상설기념모임준비에 서두르는 사진도 찾아보고 감개가 무량했었다.   룡정시실험소학교의 전신은 서전서숙인데 중국에서는 제일 초기의 우리 민족학교중 하나였고 리상설이 자기의 사재를 털어 세운 학교라는데서 더욱 유명하게 되였다..그때 이상설은 서전서숙을 세우고 얼마안되여 황제의 밀사로 리준등과 함께 네델란드(화란) 헤이그에서 소집된 만국회에  주요 조직자로 참가했었다… 그때 리준이 비참가국가에 몰쫓기우게 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결로서 대항하였었다..그후에도 리상설은 순국할때까지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었다. 후에 리상설은 비분의 마음을 억누루며 리준을 당지에 안장하였다가 후에 충북으로 모셔 지금의 사당을 앉힌걸로 전해진다…   이제 룡정에서 있게 된다는 중한리상설기념모임은 더욱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 생각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10. 송강정철사당   우리를 실은 봉고차는 또 정송강사에로 흘러갔다… 송강정철이라고 하면 우리는 중국조선족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송미인곡”, “사미인곡”을 돌이키게 된다. “관동별곡”은 우리가 중학시절에 그렇게도 애독하고 외우기까지 한 가사였으며 우리 민족에게 둘도없는 천하명작임에 틀림없다. 강원도, 전라도, 함경도 삼도의 관찰사를 차례로 지낸후에 좌의정에까지 오른송강정철이다….   송강사당은 정면 3칸, 옆면두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1665년에 묘소를 이장한후 창건되였다. 우리는 시간의 제한으로 곧추 가파로운 산록에 있는 정철묘소로 올리달렸다. 나와 시인 최룡관씨, 장백산잡지사 부주필 리여천씨, 종합신문 주필 양은희씨는 헐레벌떡거리며 진땀을 빼서야 겨우 높은 언덕우에 있는 송강정철묘소에 이르렀다. 온통 푸른 수림이 우거지고 잔디가 쭉-깔린 잠풍한 정철의 묘쇼가 조용히 우리를 맞아주었다. 양은희씨와 리여천씨는 묘비를 마주하고 비문의 내용을 메모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최룡관시인님은 묘우에 막 엎드리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참 우리 모두는 거대한 옛문학신선의 뜨락에서 아이들처럼 몸과 맘을 들뛰며 거침없이 활랑이였다.   잠시후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더없이 흥분된 상태로 정연히 서서 송강정철의 묘쇼에 절을 올리고 경모의 심정을 휘뿌렸다. 나에게는 아마 이 순간이 내가 문학을 사랑해서 제일 숭엄한 심경을 안았던 때이리라… 일대 문학의 거인앞에서 옷깃은 여며지고 가슴이 솟구치도록 세차게 일렁임은 당연한 일이 아닐가? 송강사당남쪽 100메터 지점의 산록에 위치한 정철묘는 높이 1.6메터, 둘레 20메터의 봉분과 상석, 묘비, 문인석과 망부석으로 되여있었다. 묘는 조선 현종 6년에 송시렬선생이 지금의 자리로 묘지를 정하고 후손 정양이 이장하였단다..   날거든 뛰지마나 섰거든 솟지마나 부용을 꽂았난닷 백옥을 묶었난닷 동명을 박차난닷 북극을 괴왔난닷 … …   나는 천고의 명구인 송강가사를 소리내여 읊으며 자주자주 송강정철의 묘소를 돌아보았다. 진짜 일대기를 주름잡아 굵게굵게 금을 긋고간 대작가의 묘소를 뒤에 두고 발길을 옮기자니 누가 뒤에서 자꾸 잡아당기는것 같은 느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산아래에서 봉고차의 경적소리가 울리기에 그냥 아쉬운대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종합신문에 련재)
39    수필 깨여나는 고향에 한포기의 풀이라도 댓글:  조회:2724  추천:1  2012-05-18
    깨여나는 고향에 한포기의 풀이라도                                                             림금산 고공7700메터, 지금 구름층을 뚫고 대한한공기는 북으로 북으로 난다. 오늘따라 기창밖날씨가 특별히 좋아 구름들이 여러가지 어여쁜 자태를 뽑낸다. 고층빌딩만큼이나 키높은 구름들이 서로 서로 엉겨져 마치도 희고 아름답고 우중충한 구름나무숲속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크나큰 눈덩이같이 너무나 호함지고 탐스런 구름속을 누비며 비행기는 연길하늘로 자꾸자꾸 날아간다. 헌데 한 시간쯤 날았을가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행기가 부르르 몸을 떤다. 비행기는 연길공항상공에 와서도 착륙하지 않고 다시 한바퀴 크게 더 돌아서야 연길공항활주로에 착륙한다. 딱 일주일만에 돌아오는 려행이다. 지난 5월 9일에 갔다가 오늘 5월 16일에 돌아왔다. 해마다 5월이면 거행되는 한국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문학제(제25회)참가차 향수의 고향 옥천군에 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헌데 기창밖의 풍경이 말이 아니다. 인천공항서 비행기에 탑승할때만도 그렇게 맑고 푸르던 하늘이 연길에 도착하니 얼어붙은듯 퍼러딩딩하고 이미 착륙한 기창에 가끔 차가운 비방울이 튕긴다. 비행기의 스피카에서 흘러나오는 공중아가씨의 말소리. “… 오늘 연길 날씨는 섭씨 16도입니다…” 인천은 23도, 연길은 16도. 인천은 맑고 푸르른 날씨, 연길은 궂은 날이고 비내리는 날이다. 인천공항은 환하고 너르고 밝은 신형의 국제공항이고 연길공항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고 낡고 어두운 “창고”같은 국제공항이다. 인천시는 그렇게 록화가 잘되였고 문화분위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여러가지 현대적 시스템과 현대적 문화이벤트같은것이 아주 잘 조화부리는 활역과 랑만의 도시였고 연길시는 아직은 어리고 어둡고 록화가 판부족한 어딘가 뒤쳐진 중국동북변경의 한 작은 산간도시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가 내가 나서자란 고향이다. 내가 태여나서 태를 묻고 글공부하고 20여년 울고 웃으며 시를 써온 죽도록 사랑한 나의 피묻은 고향이다. 여기에는 나의 조상의 산소가 있고 나의 부모님이 계시고 나의 동창생, 나의 친구들, 나의 동료들이 있는 나의 모체이다. 헌데 고향의 초라한 모습은 거짓말이 아닌 진실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 어떤 사상이나 리념, 철학을 떠나서 아주 객관적으로 너무 뒤쳐져 있다. 한시간전에 인천서 본 풍경과 한시간후에 본 연길의 풍경, 도시의 크고 작고를 떠나서 인간생활의 질적향상면에서 볼때 확실히 큰 차이를 보이는건 어쩔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때부터 너무나 가슴아파 이제 고향에 내리면 나무하나라도 더 심고 풀한포기라도 더 옮겨야겠다고 속으로 재삼 다짐했다. 아마 그래서 이 시각도 새벽을 달리는 시침을 붙잡고 이렇게 뭔가 두두리며 더운 숨결을 토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지용의 고향 옥천역 작은 광장에 세워진 지용시비에는 시 “고향”이 새겨져 있다. 시 “고향”은 정지용시인이1932년에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휘문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에 쓴 지용의 시이다. 지금 이 시각 시 “고향”을 읊조려보는것이 별로 이 순간의 분위기에 알맞을것 같은 심정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립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당시 고향에 돌아온 정지용시인이 빼앗긴 향토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정과 또 빼앗기였기때문에 너무나 가슴 한구석을 꼭 물어뜯을듯 그리운 정한의 심정, 또 고향잃은 쓸쓸한 마음때문에 “떠도는 구름”처럼 헤매이는 기분을 이 시는 잘 읊어냈다. 아직은 우뚝 일어서지 못한 걸음마 타는 나의 고향-연길 하지만 다시 머리돌려 개혁개방전의 말라붙은 고향과 종적으로 비해볼때 고향은 그래도 세찬 모래바람을 맞받으며 종래로 없던 공항을 앉혔고 일반공항을 국제공항으로까지 부상시켰으며 크게 한바퀴 돌아누웠다. 여기저기에 공간만 있으면 꽉 차 메여지는 자가용들… 이제는 깨여난 고향이다. 희망이 보이는 고향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아직도 떨쳐 일어나야 하며 분발해서 달음박질치며 살아야 할것이다. 고향의 발빠른 래일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계속 이땅을 지켜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는 밤잠을 좀더 적게 자고 좀 더 희질긴 악땀을 흘려야겠다…                                2012년 5월 16일.  (아리랑주간지에서-)
38    수필 아이들의 눈빛같은 저하늘 댓글:  조회:3484  추천:0  2012-05-17
  아이들의 눈빛같은 저하늘                               림금산   어언 25년이나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강산이 두번반이나 돌아누울때까지  나젊은 녀성들이나 잘해낼수 있을법한 소년아동신문사업을 내내 해왔다. 물덤벙 술덤벙하고 거칠은 나한테는 별로 어울릴상 싶지않은 어린이사업이였으나  오래 해오다보니 차츰 어린이들의 눈물방울과 웃음방울을 자주 접하게 되였고 지금쯤은 길가에서 코를 길게 흘리는 코풀레기 애들을 만나면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서 닦아주고야 직성이 풀릴만큼 그애들한테 감정이 가게 되였다. 아마도 직업병이란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만큼 나는 또 그애들의 순진한 마음이 옮아들어서인지 내마음도 점점 새파랗게 젊어지는 감을 느낄때가 많다...   20년전, 나는 연변8개 현시에서 선발된  우수학생 7명을 이끌고 조선사로청중앙국제부의 초청을 받아 조선을 방문하는 영광을 안게 되였다. 대표단 단장이랍시고 나만은 새빨간 매미차에 앉아 조선사로청중앙국제부 김룡철씨의 배동하에 앞에서 달렸고 그 뒤로 우리 신문사의 몇명 기자들과 애들이 함께 평양국제관계대학의 두 대학실습생들과 함께 봉고차에 앉아 13일동안이나 평양으로부터 원산, 송도원, 묘향산, 서해갑문, 만경대,금강산에  이르끼까지 한고패 잘 돌아보았다. 그때 내가 이끌고 갔던 애들은 이젠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장가 가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주고받군 한단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나의 머리속에서 잊혀지지않고 그 얼굴이 더욱 새록새록 떠오르는 애가 있으니 그가 바로  그때 우리 팀원중의 제일 나어린 애였고 소학교 2학년밖에 안되였던, 눈이 새까맣고 눈망울이 특별히 큰 룡정에서 온 김찬이란 애다. 금강산 구룡연에서 내려오다 목란각이란 널찍하고 큰 정자가 있는데 몇개 기둥은 맑은 물이 감돌아드는 깊은 계곡에 뿌리내리고 세워져 있고 절벽엔 총총총 소나무들이 보초병인양 푸르게 서있었다. 기화요초 만발한 산속, 맑은 공기와 신령한 기운이 떠도는 이 천하절경속에서 말쑥한 한복을 차려입은 젊고 이쁜 여성이 코신을 신고 나온다. 그녀는 나의 옆에 꼭 붙어앉는다. 그녀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두 눈을 살풋 내리깔고 강원도감자로 만든다는 감자지짐을 부드럽게 구워서는 나의 접시에 자꾸만 담아준다. 섭죽이 오른다. 금강산고사리채가 오른다. 금강산돌에다 직접 구워낸 불고기가 질질 가는 소리를 내며 고소한 향을 진하게 풍긴다... 술이 여러순배 돌자 우리는 저마다 흥이 나서 저가락장단에 우리 가락을 한두곡씩 뽑기 시작했다. 축축 솟은 바위가 멋지고 바위에 총총히 발을 묻은  소나무가 미끈한데 깊은 계곡에는 집채만큼 큰 돌들이 맑은 물속에 마구 쏟아져 내려 시원히 발을 잠그고 있는게 참 가관이다. 만포식한 나도 계곡에 내려가 그 맑은 물에 시원히 목욕하고는 바위에 올라 드러누웠다. 시름없이 남으로 흘러가는 구름송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시를 토해냈다   신령한 자연 계곡에 내려 천년바위에 누웠네 기화요초 싱그런 속에 인간무상을 베고누워 늘어지게 코 고는데 그우에 발가벗은채 누운 나도 신선되여 천년만년  늘어져 볼가나 송진내 향기론 속에 바위는 미인송 총총 세워 키재기에 한창인데 숲 이룬 소나무 그림자 잘 생긴 바위를 슬슬 간지르네 겨드랑 밑으론 구름 흐르고 머리우론 맑은 바람 휘파람 불어라   ...  ...   헌데 누가 막 나의 발을 잡아당긴다 잠간이나마 잠들었던 나는 눈을 떴다. 찬이가 바지가랭일 다 적시면서 맑은 물을 딛고서서 나를 조른다 "선생님, 빨리요 이젠 떠난대요" 나는 벌떡 일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자연속에 취해버린 일행을 모아놓고 인원수를 확인하곤 출발을 명했다. 모두들 소학생인지라 그들의 짐은 거의다 우리 성인들이 메고 다녔다. 사로청중앙의 김룡철씨와 두 대학실습생, 그리고 촬영기자와 우리 단위의 두분이 사실상 애들에겐 짐군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나도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특별히 살갑게 구는 찬이의 큼직한 등산가방을 책임지였다. 한식경이나 나의 짐과 그애의 짐을 메고 비탈을 내리고 보니 방금전 목욕했는데도 온몸에 또 땀이 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헌데 가만히 짐무게를 가늠해 보니깐 찬이의 짐짝이 나의 짐보다 두세배는 더 무거움을 느낄수가 있었다. "얘, 찬아 너 여기에 무얼 넣었길래 돌덩이를 처맨것처럼 무겁니?" 나의 물음에 그앤 해해 죽어라 웃으며 저만치 앞쪽으로 몸을 피한다...나는 더는 참을수가 없어 그애의 가방을 내려놓고 쪼로로기를 열어보았다. 헌데 이게 뭔가? 가방속에는 진짜 둥글넙적한 돌멩이가 두개나 들어있었다. "얘, 찬아 너 정신있니? 선생님은 힘들어 죽을지경인데 여기에 돌덩이까지 넣다니?" 나는 그애를 크게 핀잔주면서 당장 돌을 꺼내 그 깊은 계곡에 던져버렸다. 돌은 큰 바위에 부딛치며 산산 쪼각나 깊은 계곡속으로 떨어졌다... 헌데 이건 또 뭐냐? 찬이가 주저앉아 아주 섧게 울면서 길을 떠나지 않는다. 나더러 그 돌을 배상하라는 거다. 자기는 그 돌을 집에 가져다 따갑게 불에 달구어서 아버지한테  불고기를 구워드리겠단다...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그애의 심사에 뭐라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확실히 애는 애다. 천진하다고나 할가 철부지라고나 할가. 했어도 티끌한점 묻지않은 순진함만은 진실이였다. 9살짜리 애가 그 마음이 언제 오염될사이나 있었을가? 우리가 점심을 먹을때였다. 금강산 아지미가 불고기를 돌에 구워주면서 불고기할때 쓰는 돌은 꼭 금강산의 돌이여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그때 찬이는 큰 눈을 새똥그랗게 뜨고 유심히 듣더니만 진짜 그걸 아버지앞에서 실천하여 자기의 효심을 보여주려는 심사였다. 그래서 내가 목욕이랑 하고  바위우에 눕고 할때 그앤 맑은 물가를 오르내리면서 온 점심나절 그 돌 두개를 고르고 고른거였다. 허허 이를 어쩌누, 나는 퍼더버리고 앉아 발버둥치며 울어대는 그애를 어쩔방도가 생각나지 않아 계곡저쪽 벼랑만 우두키 바라봤다. 근데 그쪽 벼랑에선 공작새 날개처럼 활짝 깃을 편 가늘고 긴 몇줄기의 폭포가 보란듯이 날아내리고 있었다... 나중엔 그래도 우리사의 권선생이 그앨 달래냈다. 평양가서 그애아빠한테 선물할 좋은 기념품을 사주마고 겨우 달래냈다. 그러던 그애가 조선에서 돌아온 이듬해 그만 백혈병에 걸려 1년간 앓다가 애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갈줄이야...막상 애가 떠나고 보니 나는 모든것이 후회되였다. 그때 좀더 땀을 흘리더라도 그냥 그 돌들을 메여다 주는걸 그랬다. 그애의 애어린 효심을 그 깊은 계곡에 처넣은게 어린 혼앞에서는 어딘가 잔인하게까지 느껴졌다 ... 금강산계곡을 누비며 그애들과 함께 웃고 울며 떠들던 일이 어제같은데 벌써 20여년 세월이 살같이 날아갔다... 지금쯤 그애가 살아있다면 이젠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까지 이루었겠는데...그러면 다시는 그때처럼 나를 원망하며 울지않고 되려 자기의 소행에 수집음을 타겠는데...그애는 끝내 그 티끌한점 묻지않은 순진무구하고 깨끝한 효심을 안고 저 세상으로 상큼상큼 구름을 밟아 걸어갔다...   나도 이젠 50을 넘은 나이이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찬이와 같은 그런 티끌한점 묻지않은 깨끗한 마음을 안고파 저하늘 맑고 부드런 구름송이를 자주자주 바라본다. 그러면 내마음도 순화되고 려과되는감을 느낀다. 아마도 아이들속에서 매일매일 울고 웃으면서 그애들을 위해 뛰는 일이 점점 새파랗게 젊어질수 있는 비결인것 같다...취재길에 오른 오늘도 아이들의 눈빛같은 저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말쑥하다                                                                                                                                                                                          2012년 5월 5일 (아리랑주간지에서-)
37    수필 충북으로 가다 -1 댓글:  조회:2754  추천:0  2012-05-07
 우리 일행이 대한민국 충청북도로 떠난것은 에서 주최하고 충청북도가 후원하는 전국 에 참가하려고 간것이다. 초청은 동양일보에서 했고 우린 연길시에 있는 의 성원으로 활약한것이 인연이 되어 조명희고향에 초청된것이다. 비록 한국행은 여러차 했지만 충북만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들 서울이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바다가 쭉-깔린 부산이 더욱 좋았고 작지만 깜찍한 문화도시 목포같은데도 마음이 들었고 더구나 남국의 신선하고 따뜻함을 뽐내는 한국의 명주-제주는 더구나 좋았다. 마산이나 대전, 광주나 대구 등지는 별로 큰 인상을 못받았었다. 하다면 충북은 도대체 어떤 곳일가? 한국의 중심부위에 위치해있고 또 한국에서는 륙지에 속한다는 큰 강과 바다가 없는 충북, 충북은 과연 어떤 곳일가? 첨으로 충북행에 나선 나의 마음은 너무너무 설레였다. 한때는 또 서울수도를 충북에 옮긴다는 말도 떠돌았고 충북은 너무나도 이름있는 문화향토란 말도 나를 신비로움에 빠지게 한것이다. 헌데 세계속의 도시를 지향하는 충북 수부도시 청주에 도착하니 벌써 문화의 향연이 확-확 풍기였다 청주국제공항에는 벽체에 큰 TV가 걸려있는데 큰 글자 그대로 시줄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고 공항2층에는 여러군데에 충북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충북 공예품 등이 그득 전시되여 전람되고있었는데 2층 대청의 크나큰 공간을 거의 채우고있었다. 때는 10월20일 가을도 막 가 우리가 사는 연변땅은 쌀쌀한 바람이 몸을 옴츠리게 하였었지만 충북에 도착해보니 한창 무르녹는 가을이여서 산빛도 곱고 단풍도 확 불타올라 우리 마음을 짙은 가을로 포옥 감싸주었다. 동양일보에 도착하여 우리일행(시인,수필가,언론인,기업인)7명을 맞아준것은 우리를 초청해주신 동양일보 조철호회장님과 조성훈사장님이였다. 그분들의 열정적인 환영사와 일정배치를 듣고 나의 호기심은 더해갔다. 아니 글쎄 이번 를 충북 12개 시 ,군가운데서 11개 군을 순회하면서 펼친다는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시랑송전문가들과 대전, 충북 등지에 있는 시낭송전문가들, 우리 일행 7명, 그리고 각 도, 시, 군의 명사(충북도 도지사, 시장 ,군수, 의장, 경찰서장, 교장 등)들이 근 200여명이나 이번 랑송회에 참가하여 랑송한단다. 의 맛과 멋은 어떤것일가? 충북에는 도대체 어떤 문화재들이 그냥 숨쉬고있을가? 우리를 연길역까지 배웅해주던 연변일보 리임원선생이 말하던 속리산단풍과 정2품송은 또 어느만큼 멋질가? 나의 궁금증은 더욱 더 기승스레 내마음을 달구었다.   1. 가을밤 적신 청주명사시랑송회   이번 순회랑송회 첫 코스는 당연 충북 수도 청주시에서 펼쳐졌다. 동양일보가 매년 문화의 달 (11월)을 맞아 를 여는것은 채바퀴를 돌듯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지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그리고 사회를 받쳐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시를 읽는한,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희망이 있을것이라는 믿음때문이였다. 깊어가는 가을밤 첫 랑송회가 성황리에 세계인쇄문화의 요람인 청주고인쇄박물관 대회청에서 펼쳐졌다. 청주시 시장으로부터 시랑송이 시작되여 의장님들, 교수님들, 경찰서장님들, 중국 문인들, 학생들이 한국명시와 세계명시를 위주로 자작시까지 정에 푹 젖어 랑송하였다. 사실 시끄러운 말같겠지만 우리 중국같은데서 어느 당위서기나 어느성장, 현장어른님들을 시랑송회에 참가하여 세계명시같은걸 랑송하라고 초청장을 보내면 이게 무슨 미친놈인가 하고 이상해 할것이다. 무대우와 무대아래가 동심일체로 가을밤을 익혀들었는데 시를 랑송한 명사들한테 생화묶음이 날아들고 시랑송가운데 무용수들도 가끔 나와 고차원의 무용을 선물했다. 그리고 올 행사에서는 특별히 포석-조명희시인님의 11수의 시로 엮어서 만든 새로운 실험시극이 공연되였다. 서울서 오신 시랑송전문가 (대통령상 수상자) 이화선양을 비롯한 이들이 비장한 선률과 색채속에서 시극을 연극하였는데 크나큰 인기를 끌었다. 더우기 서울서 오신 대통령상을 받아안았다는 절색으로 이쁘게 생긴 사회자 박현진양의 사회는 시랑송회를 고조에로 밀어갔다. 우리일행도 모두 무대에 올라가 인사말씀과 시를 랑송하였는데 명사로 된 기쁨을 한껏 만끽하였으며 따뜻하고 행복한 감회속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오래오래 가슴속에 새겼다.                                                              2005년 11월   (종합신문에 련재됨)
36    수필 살구꽃 복사꽃 피는 계절에 댓글:  조회:3274  추천:1  2012-05-06
  아침 출근길에 올라 연길시아동도서관을 지나 소년궁쪽으로 걸음을 재우치는데 소년궁과 아동도서관청사 사이의 수림속에는 어저께까지만도 안보이던 살구꽃 복사꽃이 만발하게 피여났었다.너무도 반가웁고 신비로와 취재가방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그 뭉클한 꽃향기 의 아릿다운 모습을 단숨에 여러장 찍었다. 소나무, 비수나무 숲속 사이사이에 언제 옮겨심었는지 살구꽃과 복사꽃이 해사한 얼굴을 하고 보란듯이 렌즈속에 들어왔다. 면적은 그리 크지않지만 사면이 높은 층집으로 꼭 막힌 그 사이에 펼쳐진 요 자그마한 공간엔 별의별 문화가 꼴똑 넘쳐나게 담겨져있다. 엄마공룡, 아기공룡이며 한시랑 새긴 정원석이며 소나무, 뽀뿌라, 살구나무, 복사나무. 그외에도 갖가지 이름모를 나무와 숲이 자못 문화적 휴식의 향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는게 장하다… 참 언젠가 연길시정부에서 이 땅을 남방에서 온 어느 부동산회사에 팔아 이곳에다 고층빌딩을 짓자는걸 소년보사 령도와 직원들이 일떠나서 막았고 또 그 일이 순순히 풀리지 않게 되자 자치주정협위원들까지 수십명 동원되여 련명으로 싸인해 주정부에 반영한 결과로 이땅은 지금까지 꽃과 나무와 정자와 아름다운 정원석속에 싱싱히 살아서 연길시민들과 아이들에게 좋은 휴식터와 공원으로 숨쉬고 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수가 없다. 가뜩이나 광장문화와 호수문화가 아직도 많이 역부족한 연길시로 말하면 이같이 별로 크지는 않지만 시민과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꽃숲과 소나무숲과 새들의 지저귐소리를 마련해주는 곳이 살아있다는건  진짜 고맙기까지 한 일이다. 요즘 연변인민방송국 AM 문학살롱프로에 근 1년간 작가초대석 케스트로 명시인소개생방송을 맡아 하느라 한국 명시인 이육사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이육사시인은 꽃에 대해서 좋은 시를 남겼었다.         이른 매화 만발하고         늦은 매화 꽃잎을 여니         진달래도 보란듯 활짝활짝         고운 꽃일수록 열흘 못넘긴다         누가 말했더냐         아마도 또 하나 더 큰 꽃봄을 만드는게지   그래서 이육사의 생가로 문학탐방을 떠났던 신경림시인이 이육사의 고향 경북 안동 도산면에 갔었단다. 헌데 이육사생가주변을 지나다니는 여러 택시기사들과 물어서도 이육사에 대해 너무나 모르니 아연해 졌단다. 나중에 이육사의 꽃에 대한 시를 생각하고 여러가지 꽃이 만발한 그 언덕에서 시인의 생가를 찾아냈다는 말이 인상에 퍽 깊다.         언젠가 동양일보사의 초청으로 한국전국명사시낭송회에 참가차로 가던길에 인천공항에 빠져나가게 되였다. 한창 공항출구로 나가는데 우리 일행 7명가운데 몇이 걸렸다. 어디로 가느냐? 뭐하러 가느냐? 대답은 동일하다. 포석 조명희문학제로 명사시낭송회의 참가차 한국에 왔다고 대답올리자 포석이란 눈구인가? 조명희한테 전화를 넣으란다. 진짜 조명희가 우리들을 아는가 확인해보자는 심사다. 어처구니 없었다. 문화로 세계에 이름떨치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포석 조명희를 공항에서부터 의심을 가득 물고 물어오다니? 할수없이 포석 조명희는 여차여차한 한국의 명시인이고 우리 중국에 사는 하많은 조선족학생들도 조선어문 교과서에서 수년간 그의 소설 “락동강”을 배운다는 등등 해석을 올리는 우리 심정은 어딘가 쓸쓸하고 비참하기까지 했다. 나도 10여년전 처음으로 윤동주생가로 찾아갈때 룡정시에 가서 윤동주생가로 가는 차길을 여러 시민들에게 물었으나 역시 뭔 쌩뚱같은 물음이냐는 반문을 많이 받은바 있다. 나는 그때 하는수없이 김재권선생이 꾸리는 룡정시독서사에 찾아가 물어서야 길을 알수가 있었다. 기가 막혔지만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윤동주라 하면 우리 연변에서는 1호시인이자 명동의 윤동주생가는 1호문화브랜드로 꼽을만도 한 곳인데 더구나 그의 고향이고 그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룡정의 시민들이 그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건 비극이 아닐수가 없었다. 세월이 산업화시대에로 밀착해갈수록 시인이나 기타 문인들의 이름을 아는 시민과 사회성원들이 많이 줄어든 시점이라해도 일본이나 프랑스에 다녀왔던 문학친구들한테 들었지만 웬만큼 알려진 자국의 시인이나 소설가에 대해 물으면 소학생을 잡고 물어도 그 생가나 문학비, 문학관쯤에 대해서는 다 알더라는 것이였다. 참으로 확연한 대조가 아닐수 없다. 지금 중국에 살고있는 우리 민족은 역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올리막길을 힘겹게 톱아오르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누구나가 자기민족문화에 대한 일을 자기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우리 민족과 우리 문화는 기필코 이 나라와 세인의 진두에서 힘차게 펄펄 휘날것이 아닐가? 나는 이 찬란한 봄날에 연길공원같은데 자주 발길을 돌리게 된다. 하나는 봄을 맞아 아침 조깅을 하는데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연길공원 그 아늑하고 조용한 동쪽언덕에 가면 우리 민족의 걸출한 아동문학인들의 동시동네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안쪽으로부터 우리 민족 아동문학의 정초자의 한사람인 채택룡동시비가 세워져있고 다음으로 남쪽으로 오면서 김례삼동시비, 윤정석동시비, 윤동주동시비 등이 줄느런히 세워져있어 우리 고장 문화인들의 알뜰한 문화공간을 착실하게 세상에 자랑하고 있다. 채택룡동시비에는 유명동요 “병아리”가 새겨져있고 김례삼동시비에는 역시 유명동요 “고개길”이, 윤정식동시비에도 유명동요 “앵콩타령”이, 아까운 청춘을 다바쳐 일대기를 주름긋고 간 윤동주의 동시비에는 명동시 “참새”가 새가져 있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에서 이 몇년간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여 이같이 눈부신 동시동네를 알뜰히 가꾸었고 거기에 이같은 이쁜 동시비들을 심어서 이젠 어지간한 규모를 이룩하여 새들의 싱싱한 봄노래를 불러오고 있는것이다. 뽀송뽀송 봄날이 한창 물오르는 요즘 연길공원의 이런 문화공간은 이쁜 향기를 우리 생활에 펼쳐주어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이는 어느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만은 아직 많이 부족한것이다. 자그만한 가두의 어느 공간이나 도심의 어느 광장이나 일반공원일지라도 우리는 애써 가꿔야 한다. 우리 함께 손잡고 거기에다 우리 문화의 숨결 한오리라도 꾸준히 심어준다면 이 봄날 이쁘게 피여나는 살구꽃, 복사꽃처럼 우리의 주위환경도 한결 높은 차원으로 발걸음을 옮길것이며 우리의 생활도 단순한 경제적인 차원을 초월한 보다 문화적인 차원으로 톺아오를것이다. 소박한 나의 생각이 살구꽃 복사꽃 숲속에서 가져보는 단순한 일개 나혼자만의 욕심이 아니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1년 봄에 씀.     ("문화시대"2012년 2기)
35    칼럼 청명날의 풍경 1,2,3 댓글:  조회:2271  추천:0  2012-04-04
풍경1 청명날 아침일찍 산소에 갔다. 여기저기에 벌써 많은 "효자", "효녀"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헌데 오가는 말이 참 귀에 거슬렸다. "나는 양, 참 재미없소. 다 한국가고 나혼자 이렇게 제사지내오. " 홀로 외로울순 있겠지만 그게 어디 재미로 하는 일인가? 들놀이도 아닌데... 또 옆에서 께낀다. "글쎄말이요, 청명이란게 좀 많이 와서 왁짝거리면 남들보기도 좋겠는데.." 참, 남들보기 좋게하기위해 제사를 지내는가? "야, 우리 끝난담 불고기먹으러 가자. 한잔술이 좀 모자란다. 시원한 맥주나 좀 하자. 어찌다 모였는데..." 참, 제사날인게 아니라 잔치날인가? 2차, 3차 하자는 심사다. 풍경2 어디서 쓸어오는지 남녀한족분들이 여기저기 몰켜다니며 동정을 살핀다. 눈주어보니 남들이 고인한테 남기고 간 과일같은걸 서로 밀치며  달려들어 먹는다. 그리고 남자분들은 또 고인한테 붙다남은 술병에 남은 술을 꿀꺽꿀꺽 마인다. 최종목적이 또 있다. 술병과 광천수병을 주어서는 보자기에 챙긴다. 가져다 팔아서 돈을 번다. 물론 돈을 버는건 욕할수는 없다. 헌데 숱한 제사군들이 서로 울며 또는 심각한 표정들을 하고  고인한테 절을 올리는데 여기저기 도둑놈처럼 헤매다니며 분위기를 망가놓는게 참 보기에 민망하다. 제사가 다 끝난다음에 상을 물린후 주의해서 나타나서 주어가든지 했으면 몰라도... 풍경3 젊은이들이 대여섯이 와서 한일자로 죽-서서 고인의 초상을 향해 절을 올리는데 자꾸 킥킥거리며 웃는다. 하나는 젊은이들이 돼서 이런 동작이 우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인이 뭘 안다고 이런 동작을 하는가 하는게다. 그래도 절을 할때는 어딘가 차분하고 공손하게 올려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가?
34    수필. 가을밤의 맥주맛 댓글:  조회:2267  추천:0  2012-03-29
 가을밤의 맥주맛   림금산   어언 8월도 막 저물어 저기 지평선으로부터 가을빛이 서서히 떠오른다. 아침이면 썰렁해지고 정오때에만 여름이 남긴 볕이 마지막 열도를 쏟아내느라 애쓴다. 재글재글 끓던 그 따가운 여름날, 랭장고안에서 들춰내는 얼음덩이같은 빙천맥주 두어병은 게눈감추듯해버려 시원한 맛을 새김질해볼새없이 땀으로 쪽 빠져버렸지만 이 가을날밤에 마시는 맥주맛은 벌써 별다른 멋이 풍긴다. 두어병은 싫다. 친구들이 모여앉았을때 도도하게 마시던 한상자는 더구나 싫다. 딱 한병, 빙천맥주 (그간 맥주를 배우면서부터 입에 맛을 붙인것이 우리 고장의 빙천맥주이니깐.) 한병이면 족하다. 안해도 아이를 끼고 잠에 골아떨어진 밤 10시좌우, 빙천맥주 한병을 꺼내들고 뒤창문에 마주서면 열어젖힌 창가로 은은한 가을달빛이 뛰여들어오고 황소 한마리가 돌아누울만한 뒤울안터밭에선 설렁대는 옥수수잎새들의 설레임소리가 마음에 헌헌하고 선선한 느낌을 던져준다. 맥주잔도 따로 준비가 없이 병나발을 한번 꿀꺽꿀꺽 불어대곤 넌지시 바라보는 달밤의 가을풍경, 때론 맥주병을 추켜들때 병밑으로 새여드는 은빛 달빛을 그대로 맥주에 반죽해마시는 그 재미, 더구나 쏟아지는  불볕, 내리쏘는 무더위를 막느라 연거퍼 부어넣던 여름날의 맥주놀이때완 판판 다르게 한가닥 두가닥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사색쪼각을 안주해서 마실때의 맥주맛은 자별나게 주흥을 살궈준다. 당시 (唐诗) 《진우(陈祐)》에선고 했어도 어딘가 부글부글 끓던 한여름이 다사중에 어느덧 지나가버렸구나 하고 생각되니 오히려 한시름 놓여지는 마음이 앞선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 가을밤은 사색이 쪼각쪼각 영글어 터지는 차거웁고 깔끔한 한때이다. 하아얀 무서리도 이 가을밤에 아직까지 푸른색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잎새들에 내려져선 여름의 흐드러지고 타락된 심사들을 차갑고 깨끗이 씻어내는것이요, 선들선들한 갈바람도 낮에는 신선한 맛을 풍겨준다는 인상뿐이지만 이 저녁엔 누군 열매를 많이 수확했소, 누군 농사를 망쳤소 하는식의 말귀를 나의 창가에 뿌려주지 않는가? 가을은 또 내마음에도 숱한 추억의 불심지를 돋구어주어 나로 하여금 재글재글 끓던 지난 여름의 다사중에 어느것은 옳음이요, 어느것은 틀림이요 하고 명석한 속말을 선명하게 해준다. 여름날의 열뜬 한때 나도 무더위속을 헤치며 여기저기에 발 닳게 뛰여다녔고 이것저것 수첩에다 깨알같이 긁적이기도 했으며 때론 낯을 붉히며 누구와 싸움도 많이 했다. 강물처럼 많은 맥주도 어떻게 다 마셔버렸는지 모르고 속괭이 없는 말도 얼마나 많이 불어제꼈는지 모른다. 허나 모든것의 옳고 그름을 그토록 가차없이 저울판에 올려놓는 이 가을, 가을의 엄격한 판결은 나의 여름철 한때가 영글지 못했던 한때요, 다사중에 허영과 허위 혹은 허위에 가까운 속셈을 배운 한때였음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아, 그토록 열정에 젖어 부글부글 괴는 징글스런 여름은 종내 지나갔다. 이 가을밤에 창가너머로 터밭이며 울바자며 울바자너머 멀리 보이는 남산과 남산가까이의 거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어딘가 실제적이면서도 마음이 잘 정리되여감을 감득하게 된다. 그래서일가, 이 밤에 마시는 빙천맥주맛은 뿌려지는 가을달빛속에 더더구나 시원하다. 당나라 리하가 가을저녁에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의 위대한 만남을 기도드렸다는 시구도 이 가을밤에 그 어느때보다 귀가에 삼삼하다. 이 시각, 가을밤의 맥주맛은 나의 삶엔 둘도 없는 안주인가 생각된다.                             (1990년 가을  "연변일보"해란강부간에서)
33    작가초대석 중국몽롱시파의 대표시인 서정(舒婷) 댓글:  조회:4339  추천:0  2012-03-28
 중국몽롱시파의 대표시인 서정 신금철—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 시간에는 중국몽롱시파의 황제로 불리운 고성시인과 그의 대표적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역시 몽롱시파의 대표시인의 한분인 녀성시인 서정과 그의 대표적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네 수고합니다. 신금철- 그럼 먼저 서정시인의 생평부터 살펴볼가요? 역시 한창 공부할나이에 제대로 되는 학업을 못하고 농촌에 갔다지요? 림금산—네 서정생평 서정시인의 원명은 사배우이다. 서정은 1952년에 복건성천주에서 출생하였다. 서정은 북도, 고성 등과 함께 중국에 몽롱시의 풍경선을 강하게 몰아와 한 세대의 시가류파로 전국을 휩쓸었다. 1964년 서정은 하문1중을 졸업하고 1969년에는 천서산골에 지식청년으로 내려갔다가 1972년에 하문에 돌아와 로동자, 통계원, 연색공, 등일을 하면서 전전하였다. 그러다 1979부터 시를 쓰기시작.   신금철—그가 문학을 하게 된데는 가정의 영향도 많았다면서요?   그가 문학을 하게 된데는 가정의 영향이 크다. 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그한테 중국고전시가를 곡을 붙혀 그한테 불러주었단다. 그의 조상들속에선 여러명의 한림학자, 진사급제한 사람들이 나왔단다 서정도 농촌에 내려갈때 당시집과 리청조의 시사같은걸 몸에 지니고 내려갔단다. 당시에는 또 서양의 현대시들이 (손으로 베껴낸것)많이 류행되였는데 번역한것이여서 시적 기교는 배울수 없었지만 그 시적 관념이나 이미지, 사회를 보는 시각같은건 적지않게 영향받을수 있었단다. ” 하문에서 돌아온후 서정은 공장의 자동흐름선우에서 일하는 로동자로서 낯에는 일하고 저녁이면 시를 썼다. 후에 그는 하문시에 있는 일부 시인들을 면목익히게 되였고 또 그들을 통하여 수도 북경의 몇몇 시인들을 알게 되였다. 그후 그의 시 “상수리나무에게”가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 당시 중국의 유명짜한 대시인인 애청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단다. 그때까지 애청은 해방받지 못했었다. 북도가 매일 애청을 모시고 산책하고 있었을 때였다. 북도는 서정의 시를 본후 그한테 편지를 썼는데 그 때 “모든 것”이란 시와 “대답” 등 그외 5수의 시를  함께 보내주었다. 그때 서정은 북도의 시를 읽어보고 놀랐으며 큰 고무와 신심을 얻게 되였다. 그전까지는 아주 고독하였다. 전국이 다 구호식시를 쓸때여서 북도와 같은 시인이 있다는것이 그에게는 아주 큰 고무와 힘이 되지않을수 없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자체로 시잡지를 꾸렸는데 서정의 “상수리나무에게”등 여러수의 시들도 그 잡지에 실렸고 1979년 4월 드디여 중국의 제일 큰 시잡지 “시간” 오르게 된것이다. “4인무리”고 타도된후 그들은 중국이 아주 희망이 있고 미래가 양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국이여, 사랑스런 조국”이란 시를 써냈는데 광주에 있는 “작품”지에 투고했으나 퇴고되고 말았다. 시의 내용이 너무 소침하고 저조여서 한 젊은 녀성로동자의 감수가 아니라고 했다. 그대서 북경에 있는 “시간”잡지에 보냈더니 발표되였고 전국을 놀래웠으며 제4차전국문대회에서 저명한 영화배우 손도린(孙道临) 에 의해 낭송되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중국에 서정이란 이같이 유명한 녀시인이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上世纪70年代末80年代初,诗歌成为全民情绪出口,北岛、芒克、舒婷等朦胧诗代表人物也广受欢迎。   舒婷说:“我们那个时代有独特的背景,放在今天,也许我们也不会出名。随着时代的变化,诗歌的观念也发生着巨大的变化。不能说哪个时代的诗人写的就比另一个时代的要好。现在,人人都可以写诗。诗人的起点也更高了。好处是,诗歌成为全民之事,谁想写就能上网写。但是读者也越来越疑惑,因为他们找不到传统意义上的伟大诗人了。1985年我在法国,问一个年轻的法国诗人:谁是当代法国最好的诗人?他的回答是:我。我觉得现在中国的情况也是这样,谁都可以说自己是中国最好的诗人。诗歌已经没有中心,读者也已经不是当年的读者。现在的读者都希望能读到轻松的东西,中国人在经历了那个严酷的年代之后,都喜欢过轻松的生活。但是我觉得无论时代如何发展,诗歌都不会消亡,她专注于语言的敏感,集纳了语言的音律和精髓。好的诗歌,一定会流传下去。”   신—그렇다면 서정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습니까? 1980년 복건성문련에서 전진작가로 사업。시집들로는  “쌍돛단배”(《双桅船》)、《会唱歌的鸢尾花》、 “시조새”(《始祖鸟》),산문집《심, 연》、《가을의 정서》、《능소화》、《이슬속의 시》、《서정문집》(3권) “진수무향” 等。 “아버지 미안해” “서정자선시집” “흐름선”, “신녀봉”등 시집. 신—그렇다면 서정시인은 어떤 상들을 받았나요? 림—네 “조국이여 내 사랑스런 조국”은 1980년 전국 중청년우수시가작품상을 받았고 고중1학년 어문교과서에 올랐다. 시집“쌍돛단배”는 전국제1차신시우수시집상, 1993년 장중문문학상을, 산문집 “진수무향”은 제6차전국화어문학매체성전에서 “년도산문가상”을 수상, 그외 “그 별아래에서-중학시절의 한가지일”은 6학년교과서에 수록   신-그럼 먼저 서정시인의 대표작으로 불리우는 시 “상수리나무에게”를 함께 감상해 뵈시죠   상수리나무에게     서정    내가 만약 너를 사랑한다면 너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능소화처럼 네 키를 빌어 내 자신을 뽐내지 않으리 내가 만약 너를 사랑한다면 치정에 빠진 뭇 새를 닮아 나무그늘 아래서 단조로운 노래만 부르지 않으리 한줄기 시냇물처럼 청량한 위안을 그침 없이 실어 오지도 않고 너를 높여 네 위세를 받쳐주는 험한 산봉우리로도 되지 않으리 햇빛이라면 무엇이랴 봄비라면 무엇이랴 아니, 이 모든 것들은 아직 모자람이 많은 것을! 나는 반드시 네옆의 한그루 목면나무가 될지니 나무의 모양으로 너와 함께 서 있으리라. 뿌리는 땅속에서 굳게 손을 잡고 잎사귀는 구름가에서 서로 얼굴 만지리라. 한줄기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 안부를 전하리니 아무도 우리의 속삭임을 알아듣지 못하리라. 너는 네 철같이 단단한 줄기가 있어 칼날인듯, 검인듯 또 창끝인듯 하리니 나 또한 붉은 꽃 한송이를 무거운 탄식인듯 그리고 용감한 횃불인듯 커다랗게 피워내리라. 우리는 같이 나누리라 차가운 서릿발을, 비와 바람을, 우레와 번개를 우리는 함께 향수하리라 아늑한 물안개도, 흘러가는 아지랑이도, 휘우듬한 무지개도 언제까지나 헤어짐 없이 그리고 항상 서로에게 몸을 기대리라. 이것이야말로 진정 큰 사랑이라 부를지니 올곧은 절개는 바로 여기에 깃들어 있어라. 네 위엄 넘치는 자태를 사랑할 뿐만아니라 네 튼실한 위치, 발아래의 대지를 사랑하노라. 신—한수의 아름다운 사랑시라고 느껴지는데요 한 녀인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뭔가 고백하는듯한 그러면서도 또 인생철리같은것이 깔려있는 그런 뜻깊은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맞습니까?   림—네 맞습니다. 바로 그런거죠. 이 시는 매우 우아하고 고상한 남녀간의 위대한 사랑을 쓴 시입니다. 참 1977년에 이런 시를 써낸다는건 진짜 시인적 천재가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거죠. 그때 당시 깡마른 풍토속에서 잘못하면 고상한 사랑을 하라고 부르짖는 정치시나 고갈된 메마른 시로 흘러버릴수 있는 시인데 서정시인은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하고 외유내강하게, 즉 부드러움속에 강한 뼈가 있는 그런 작품을 우려냈습니다. 화자는 지금 상수리나무와 목면나무란 두개의 이미지를 내세워 자기의 시를 시화하고 있죠. 목면은 절대로 상수리나무에 기대거나 의지하려 하지않습니다. 그도 자기의 독립인격이 있는거죠. 이 시에서의 상수리나무는 어느 구체적인 나무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리상중의 님에 대한 상징물이죠. 때문에 이 시에서의 사랑은 단순히 자신개인뿐만의 사랑을 넘어서 일종 리상적인 사랑에 대한 호소와 신념이죠 상수리나무에 기탁하여 자기의 의지를 표달하는것. 상수리나무는 크고 위풍이 있고 매력적이고 또 풍부한 내함이 있는 그런 나무죠. 하지만 시인은 절대 그같이 풍도가 있는 상수리나무에 기대고 의존하고 릉소화처럼 그 나무에 엎혀서 피는 그런 용속한 사랑을 원하지 않지요 또 그 나무에 기대여 사랑을 구걸하고 그나무에 앉아 매일마다 노래하는 작은 새로 둔갑하려 하지 않지요.  시인이 여기서 요구하고 호소하는 사랑은 서로 나란히 어깨를 결은 인격적인 평등이 있고 독립적인 개성이 있고 호상존중하고 의기투합한 그런 사랑인겁니다.  시인은 자기를 목면에 비유하여 목면은 상수리나무와 나란히 서서 서로 뿌리를 맞대로 아지를 다치면서 긴밀히 서있기를 원하지요. 누가 누구의 밑에 있거나 우에 얹혀살거나 의지하는게 아니라.그래서 광풍폭우가 불어와도 서로 눈길을 주어 고무하고 격려하는 그런 심령의 맞는 궁합을 원하는거죠. 이래서 두개의 견정한 나무가 서로 신선한 생명의 빛을 함께 발산하고 서로의 고상한 마음을 함께 고유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이겨나가는 그런 위대한 사랑을 호소. 시인은 아주 기발한 이미지조합과 합당한 비유와 상징으로 시인마음속의 애정관을 잘 표현해 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속에서 일종 청신하고 철리적이고 무게있는 삶을 사색하게 하고 미묘한 암시를 받게 하며 무한한 상상의 아름다운 공간에 행복하게 빠지게 합니다   신녀봉                서정   너를 향해 휘젓던 숱한 오색의 손수건 헌데 누구의 손이 주춤거리며 뻗어가는 자기의 눈길을 참는거냐? 그리고 뭇사람들이 헤여질때도 누가 아직도 배머리에 그냥 남아 옷자락을 휘날리며 파도치는 구름처럼 때론 높게 때론 낮게 물소리를 울리느냐? 고운 꿈은 고운 우수를 남겨 인간사에 대대로 전해졌지만 사람들 마음은 절대로 돌이 될순 없느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안타까운 바램속에 흘러갔느냐 지금 강기슭 따라 금빛 국화꽃과 맑은 정조는 하얗게 반역하고 있으매 천년 벼랑가를 우러르며 바라본 전시물보다 하루저녁 사랑하는 내님어깨에 시원한 통곡이나 쏟아부을것을 (与其在悬崖上展览千年 不如在爱人肩头痛哭一晚)   신—배에서 신녀봉을 바라보면서 읊은 시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은 신녀봉을 우러르며 손수건을 흔드는데 한사람만이 흔들지 않는다는 아마 그런 뜻인것 같은데요 마지막 련에 시인의 깊은 의도가 있는것 같은데요 시적인 깊은 의미는 무엇인지요? 설명해 주시죠. 림—해설: 네 서정은 명작 “상수리나무에게”를 발표한 4년후에 또 명작 “신녀봉”을 발표합니다. 서정은 이 시를 통하여 전통관념과 전통사유, 전통적 시각에 대하여 예리한 비판, 통책의 칼을 안깁니다. 시는 첫시작에서 배가 신녀봉앞으로 흘러가자 사람들이 열관적으로 환호하면서 저마다 손수건을 흔들어대는 장면을 썼다. 이는 몇천년간의 봉건 정조관념의 침해가 얼마나 크고 그 관성이 얼마나 오래가는가는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들의 정신속에는 아직도 정조관념이 못처럼 박혀서 겉으로는 아름다운 소행을 가진 녀인이란 고운 가치관을 숭배하게 했다. 하지만 겉으로의 아름다운건 결국 녀성의 정신과 육체적인 희생으로 피눈물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것임은 뻔한 일이다. 사실 대대로 전해내려온 정조관 도덕관은 기실 크나큰 슬픔이였고 비극의 연속이였다. 그래서 화자는 손을 흔들지 않고 사색과 불안과 쓸쓸함에 잠긴다.   사람들 마음은 절대로 돌이 될순 없느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안타까운 바램속에 흘러갔느냐 원래는 언녕 자기에게 속할수 있는 행복이 그 벼랑가에 우뚝 선 신녀봉때문에 즉 소위 “정조관”떄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고 늙어가게 되고 나중엔 죽어가고 마는 …여기서 마지막 두행은 재래의 전통적 도덕관을 부수고 여성의 사랑관의 새로운 해방을 호소한다.   벼랑가에 천년이나 전람되느니 차라리 님의 어깨에 얼굴묻고 하루밤 통쾌하게 울어버리라   “신녀”들의 일종허영으로 장식된 도덕관과 정조관은 이미 오래동안 녀성들을 고독하게 하고 고통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아주 아름다운 소행같지만 그 리면에는 사실 고통과 암흑이 깔려있는것이다. 서정은 바로 이 문제를 잘 포착하고 낡은 봉건적 도덕관과 정조관에 칼을 댄것이다. 즉 가짜로 된 도덕관과 정조관의 희생물이 되지말고 세속을 벗어나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맘속고백을 시원히 터쳐놓으라는, 아무 의의도 없는 전람품이 되지말고 자기의 행복을 감히 찾아 떨쳐일어나라는 호소인것이다. 그래서 몇천년동안 중국부녀들을 억압하고 억누른 소위의 도덕관과 정조관이란 이 정신적 쇠사슬을 부수고 악몽을 긁어버리도록 호소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속에 통쾌한 감상효과를 크게 일으켜주었다.   신—“신녀봉”이란 시의 예술적특점을 짚어본다면요? 림--  “신녀봉”의 예술적 특점을 살펴본다면 1.우선 이 시는 배에서 신녀봉을 바라보는 찰라에 떠오른 령감을 인차 사진찍어냄으로서 녀성시인으로서의 섬세한 관찰과 민감성이 잘 드러난것 같다. 2. 선명한 반차적인 이미지를 잘 살려냈다. 광열하는 유람객들과 고민하는 한사람, 멀리 바라보이는 꿈속같은 바램과 눈앞 현실에서의 행복의 상실, 벼랑가의 전람품과 님의 어깨에서의 통곡을 아주 선명하게 대비적으로 시화했다. 3.그리고 전반 시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배를 타고 가다가 배에서 바라보는 신녀봉, 또 신녀봉을 보면서 파도가 오르락 내리락한다는 묘사는 작자의 마음의 세찬 설레임을 상징하고 …첫시작부터 이념적이고 관념적인걸 쓴것이 아니라 이야기식으로 시를 차츰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의 흥분점이 자연스럽게 시적 고조에로 오를수 있게 한것이 인상적이다. 신—다음은 역시 서정시인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인 “쌍돛단 배”를 함 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쌍 돛단배             서정   안개는 나의 귀밑머리를 적시지만 바람은 나더러 더 늦지 말라네 대안이여, 사랑하는 나의 대안이여 어제 금방 그대와 고별햇나니 그대는 또 여기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네 래일은 우리 함께 다른 위도에서 만날수도 있으련만 한차례의 폭풍과 하나의 등불은 우리를 한데 억세게 묶었놨네 이제 또 다른 폭풍과 또 다른 등불이 우리를 재다시 동서로 갈라놓으리니 하지만 천애지각에서라도 우리는 조석으로 함께 있을것이니 그대는 나의 항로에 그냥 있을것이고 나는 그대의 시선에서 그냥 떠나지 않으리   림—해설: 몽롱시파가운데서 서정시인이 제일 낭만적인 기분을 많이 사용하였다. 아마 이것이 청년독자들이 그의 시를 열광하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상수리나무에게”가 나무를 이미지로 잡았다면 이 “쌍돛단 배”에서는 대안을 이미지화 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전반시에는 두가지심태가 복잡한 정감을 동반하고 있다 하나는 리상을 추구하는데서의 “등불”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추구하는데서의 “대안”이다. 자기 리상을 실현하기위하여 달려가는 와중에 가끔씩 만나게 되는 님-대안, 또 만났다간 헤여져야 하고 합함과 헤여짐 화합과 모순, 시인앞에 놓인 리상으로 가는 길은 아주 긴급하다. 안개는-시대적 긴박감…문혁때 많은 시간을 허송해버렸으니깐..하지만 또 바람은- 이 시속에서 표현한 심태는 시인의 개인적인것이면서도 또 그 특정된 시기의 청춘남녀들의 보편적인 심태인것이다. 시인은 이 특수성과 보편성의 통일을 기하여 셈세하고 상징적인 기교로 아주 완미하게 이런 심태를 시적으로 표달해냈다 현대시에서(몽롱시) 상징은 모종 구체적 사물과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느낄수있는 상관물에 의탁하여 형상적이고 주관적 정서나 모종 사회태도를 표현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구체적 상황이란 구상(具象)으로 추상(抽象)을 표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정시인은 서방현대주의 창작기법과 중국시의 훌륭한 이미지화작업을 동시에 사용하여 자기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사랑과 참여를 표달하였다. 신-다음은 서정시인의 시 “이 역시 모든것”이란 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도시인의 “모든 것”이란 시에 화답한 시라고 하는데요 함께 감상하시죠 이 역시 모든 것         --한 청년시의 시에 화답하여                                           나무들이 다  폭풍에 쓰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씨앗들이 다 뿌리내릴 토양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진실한 마음들이 다  인심의 사막에 유실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말처럼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꽃이 다  자신만을 태우고 남을 비추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별들이 다  어둔 밤만을 가리키고 서광를 알리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외침에  메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심연이  멸망인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당신의 어깨위에                     올려 놓으세요. 림: 해설— 이 시는 서정이 북도의 모든것이란 시를 읽고 깊은 시적 감동과 촉동을 받고 쓴 시이다. 당시 북도는 북경에서 하문에 있는 서정에게 이 시를 보냈었다. 서정은 이 시를 보고 아주 감동먹었단다.  시인은 여기에서 생명은 처처에서 고난과 파도에 휩쓸리지만 삶은 또 도처에서 희망을 안고 달릴수있다는 미래지향적인 신념을 보여주었다. 북도가 모든 것이란 시에서 개체의 생의 첩첩한 고난의 행군길을 시화했다면 서정은 “이 역시 모든 것”에서 생의 빛발치는 앞길을 제시했다. 북도의 위치가 한 학생이라면 이때의 북도의 위치가 한 학생이라면 이때의 서정의 각도는 보도원선생님각도다. 북도가 이 시를 힘들게 피가 뛰면서 썼다면 서정은 북도보다는 좀 쉽게 쓴것 같다. 나 개인적인 견해라면 나는 북도의 시가 더 마음에 든다.   신—그렇다면 서정시인의 시특점을 어떻게 귀납할수 있을가요?   림--서정시의 예술특점:   서정의 시는 표현방식에서 녀성으로서의 섬세하고 민감한 시적표현이 특징적이다 내용방면에서는 인생고난속에서의 심각한 체험이 돋보이며 낭만주의와 리상주의 색채, 또 거기다가 사실주의 색채까지 잘 결합되고 잘 반죽된 특점이 있다. 조국과 인생, 남녀의 사랑, 땅에 대한 사랑 등이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또 그 밑에 깔린 격정이 한데 잘 융합됐다. 그리고 비유(은유)와 상상, 련상 등이 잘 결합된 작품이 많다. 또 직설적인것보다 에둘러서 혹은 어떤 상관물에 의탁하여 시를 써낸다. 례: 상수리나무와 목면나무로 남녀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시화한다든가 “신녀봉”에서 벼랑우의 봉우리와 사랑하는 님의 어깨 등 상관물로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자기만의 독특한 정서로…등 또 “쌍돛단배”에서 “대안”을 님으로 상징한것 등. 그래서 그의 시는 다층차적이고 다의적이다. 또 몽롱한것같지만 사실 내용전달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오고 시가 아름답고 류창며 론리적으로 사유가 잘 짜여서 내리 흐릅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 문학살롱시간에는 몽롱시파의 대표적 시인 서정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작들을 살펴보았는데요 당대 가장 인끔높은 여성시인의 특유한 시맛을 느껴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칩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32    작가초대석 중국 몽롱파시의 황제-고성 댓글:  조회:2570  추천:0  2012-03-25
 중국 몽롱파시의 황제-고성 신금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3.8절을 맞으면서 여성시인들과 그들의 시들을 감상했는데요 오늘시간에는  중국몽롱시의 황제-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네 수고하십니다. 신금철—고성이라고 하면 지난번 북도시인을 얘기할때 북도시인이랑 서정시인이란 함께 중국몽롱시파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했죠? 몽롱시의 황제라고 한데는 어떤 리유라도 있나요? 림금산—네 북도는 몽롱시파의 선구자라 할수있고 고성은 시의 량이나 시적인 삶이나. 또 그 작품수로 보나 황제라고 함이 맞먹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생명을 다할때 까지도 계속 시창작상태에 빠져있었고 국내적이나 국제적으로 그 파워가 너무나 컸다. 전문적인 고성카페가 건립되였고 영화, 장편소설, 팬들의 활동. 거기다 왕관같은 높은 모자를 계속 썼고 …물론 황제란 어디까지나 독자들이나 학계에서 그렇게 불러주었기 때문일것이고 아무튼 제일 말밥에 많이 오르고 강렬하게 올라 차츰 몽롱파의 중심으로 솟아올랐다. 처음엔 부차적 인물이였으나 나중에는 중심인물로 서서히 올라오게 되였다. 아미 이런 여러가지 원인으로 그를 몽롱파의 황제라고 일컬은것 같다. 신금철—그럼 37세밖에 못살았다는데 좀 구체적으로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금산--고성의 짧은 생애 고성은 1956년 9월 24일, 북경에서 태어났다.  1969년에 비판을 받아 산동성 광북(廣北)농장으로 쫓겨간 아버지 고공(顾工)을 따라 그는 12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돼지를 키웠다. 1973년부터는 그림을 배우다가 1974年 북경으로 돌아와 운반공과 목수일을 하며 가끔 차출되어 편집을 도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1980년초 직장은 해체되고 한 때 표류생활을 하면서도 21세인 1977年《민들레蒲公英》라는 시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24세이던 1980년엔 《별들(星星)》이라는 잡지에 이란 시를 발표, 역시 시단의 강렬한 반향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몽롱시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北京文艺》、《산동문예》、《소년문예》등에 시를 발표하며 80년대 주류를 이뤘던 파의 애청, 북도, 서정에 이어 4대 대표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85년 그는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87년엔 구미문화교류방문단에 끼어 창작강의활동을 하다가 88년엔 뉴질랜드로 가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쳤으며 오크란대학의 아시아언어연구원으로 초빙,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곧 사직하고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한편 1992년, 그는 독일학술교류중심(DAAD) 창작기금을 받으며 잠시 독일에서 시작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을 허물지 못한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그마저 사직하고 뉴질랜드북방의 한 작은 섬(격류도激流岛)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닭도 키우고... 신금철-안해를 도끼로 죽인 끔직한 일을 벌렸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원인은 무엇입니까? 림금산-네, 생활고로 인한 리혼제기, 시창작고조기, 사회적인 압력, 정신착락,영아와의 리별 등이 주되는 원인인것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함. 그러나 근 일년만에 생활고와 섬약한 그의 정신상태 등을 이유로 그의 아내(사엽)가 이혼을 요구하자 1993年10月8日 급기야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서 자살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많은 매체에선 “고성이 도끼로 부인을 살해하다”라고 보도하면서, 동화시인이었던 그가 악마에 의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후 일부 그 누명은 벗겨졌지만 (고성의 누나 고향顾鄕은 “고성최후의 14일”이라는 기획물에서 말하길, 도끼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참혹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1993年 3月 그들 부부는 중국으로 귀국하여 가족과 문인들을 만나고 다시 독일을 거쳐 뉴질랜드로 돌아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내 사엽과 고성은 1979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4년간 연애를 하다가 1983년 결혼했다. 1987년 같이 조국을 떠나 자살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그의 잦은 실직과 이사, 가난, 그리고 고성을 쫓아다니며 함께 살기도 했던 여인,‘영아’ 등으로 많은 심리적 고초를 견뎌내는 중에도 관용과 미덕을 겸비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극단의 자기 중심적이었던 고성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이자 누나 노릇을 해오던 그녀를 떠나가게 할수 없었는지 모른다.  신금철—홍콩에서 고성시인의 이야기로 영화도 찍었다면서요? 림금산—네, 홍콩에서 찍은 《고성의 이별과 사랑 》이란 영화는 고성자신이 남긴 《영아英儿》라는 소설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고성이 최후에 보여준 광폭한 모습은 그의 시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한 여인때문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는데, 그 ‘영아란 여인의 실제 본명은 리잉李英으로 현재《시간诗刊》잡지사의 편집을 맡아보는 매기麦琪라는 필명의 여인이다. 그러나 매기는 고성이 죽은후 그녀에게 남겨진 이런 주홍글씨를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 신금철—유서도 여러통 남겼다고 들었는데요? 한편 1993년 12월 22일 뉴질랜드 경찰국을 통해 중국영사관에 전달된 그의 유서는 모두 네통이었다. 부모님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아들 무얼木耳에게,..! 이 유서들은 사건현장에서 경찰이 취합했는데, 통합해서 보면, 그는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곳에 스스로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아들木耳(三木Sam)에게만은 눈물을 보이며 아빠를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성은 사진과 원고 등을 누이에게 부탁했으며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되며 집이나 그밖의 것 역시 아들에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후 모든 원고나 모든 고성의 것들은 자연스레 누나가 보관, 최근 고성의 탄신 50년에 즈음하여 북방문예출판사에서 4권의 “고성문학계열顾城文学系列”을 냈는데 그 첫 권《고성문학선: 다른 세계 顾城文选别有天地》은 고성이 1987년 5월 독일 밍스터明斯特에서 가진 “국제시가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1993년 10월 8일 그의 아내와 한 섬으로 도피했을 때까지 쓴 작품들을  “고성의 성顾城之城”이라는 웹싸이트의 강소민江晓敏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총 150만 여개의 문자로 산문 및 시를 실었다.     신금철-고성은 많은 시와 문장, 서법, 그림 등을 남겼다면서요? 어떤 작품들이 있습니까? 림금산—네 방금 우에서 소개한 4권의 고성문학계절작품집이 있는가 하면 고성의 성이란 웹사이트가 있고 …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집 《검은 눈동자》(1986年 인민문학출판)《한낮의 달빛》、《서정, 고성서정시선집》、《북방의 고독한 노래》、《쇠방울》、《북도,고성시선》、《고성의 시》、《고성의 동화우화 시선》、《고성현대시자선집》과 그의 사후 부친 고공이 편집해서 출판한 《고성시전편》이 있다.。그 밖에 1998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낸 《고성의 시》와 장편소설《잉얼》(1994年 1월 북경 화예사출판 그의 아내 시에예 합작)、《성城》등 작품들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그외 문집《생명이 정지된 곳, 영혼이 나간다 》,조합시집《성城》、《귀신이 성으로 들어간다》、 《자아로부터 자연》、《목적없는 나》가 있다。 고성시의 예술적 특징 첫 째, 비교적 우화적 의미와 상징성을 신중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의 음악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종의 동화 색채가 엿보이며 그것도 소위 개구쟁이 성격을 띤다는 것이었다. 고성시의 최대 특징은 이미지의 실현이다 그 실현을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한 표현은 상징은유법이었다. 이 수사법은 진실 그대로 그리거나 내심을 직접 토로하는 전통 방식을 깼으며, 서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의 시중의 상징은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적으론 무한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어서 시의 감염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짧은 단시《한세대사람》에서 “까만 밤”,“나”“까만 눈동자”등은 감성 형성 구성을 위한 이미지의 조합이다. 이 시어들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객관적 의의를 갖고 있다. 더불어 제목에서 주는 암시 때문에 더더욱 강렬한 상징성을 가진다.   즉, “까만 밤黑夜”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의 암울한 배경을 상징한다. “눈동자”는 광명을 갈망하는 한 세대의 눈동자를 상징하며 시 중의 “나”는 바로 가장 고통받고 인간의 말로까지 가보았던 문혁세대들, 그 세대를 가리킨다. 이로 인해 시 상징의 심미적 특성은 실제 이미지의 내재의 미학 특성이기도 하다. 총정리하면 시의 이미지는 본래 언어라는 기호를 본체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늘 그는 공식화된 언어를 초월하기를 꿈꿨다. 따라서 고성시의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천진함과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표현 아래 자아비판적이고도 풍자성이 농후한 예술풍격을 낳았다고 본다. 신금철—그럼 고성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의 짧은 명시 “한 세대 사람”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한 세대 사람                     고성 캄캄한 밤은 나에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지만 허나, 나는 그 눈으로 되려 광명을 찾는다     림금산-이 시는 “시간”에 발표되여 당시 큰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문혁을 거친 한 세대 청년이었던 고성은 웃 시 두 행으로 몽롱시의 대표시인(1956年9月∼1993年10月)이 되었다. 20세기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초의 몽롱시는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해방”이라는 중요한 한 문학 조류를 만들었는데 그는 바로 이 당대 현대시의 혁신의 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웃 시에 대해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란만장한 문혁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 역시 이 세대에 속한 자로서 “까만 어둠”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의 눈동자가 까만 이유가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더군다나 광명조차 이 까만 어둠을 건너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음을, 그것도 까만 눈동자 아니면 바라볼수 없음을 극명하게 아이러니컬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표현속에 감춰진 당시  현실에 대한 냉소와 反思想이 시인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신금철—다음은 역시 대표적 시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 ____저  착오의 시대에 나는 이런 "착시"를 일으켰다______   나는 굳게 믿으련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련다   고운 무지개는 분수 속에서 아른거리며    부드러이 행인들을 반기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독사의 그림자로 변해버리겠지   괘종시계도 교회당에 은거하면서 고요한 새벽시간을 갉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깊은 우물로 변해버릴거야   붉은 꽃은 화려한 무대위에서 봉우리 터치며 흥분속에 봄바람 맞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피비린내로 변해버릴테지   하지만 굳게 믿으려고 믿어보려고 나는 두 눈을 그냥 부릅뜨고 있다    - 80년 4월호 발표   림금산-이 작품은 80년 4월 “시간” 잡지에 고성시인이 24세 때 발표한 것이다. 즉, 문화혁명이 막 끝난 직후 착오의 시대를 살아온 인민들의 반력사적인 "착각"과 그 "오류"를 치기(유치한 기가)섞인 반어적, 역설적 기법으로 표현, 기막힌 냉소를 보여주고 있다. 눈을 깜박거릴수 없는 한 세대의 긴장감, 그러나 깜박거릴 수밖에 없어 지켜내지 못한 나의 과오이자 인민들의 과오는 ‘무지개’가 독사의 그림자로, ‘교회당 시계’는 시간을 쏠아대는 깊은 침묵의 우물 속으로, ‘붉은 꽃’은 문혁을 질풍노도로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홍위병의 봄바람으로 변하고 말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신처럼 받들어졌던 틀린 개념에 대한 숭배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시인은 과연 어떻게 시로 표현할수 있으며 이율배반적 현실에 적응할수 있었겠는가?  반어적 농담으로 내뱉는 아픈 시선이 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고집센 아이   ___ 난 대지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_____                                       어쩌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처럼 난 제멋대로인지 모른다   나는 매 시각이 색깔 예쁜 크레용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맘에 드는 흰 종이에 서툴고 거친 자유를 그려내거나 영원히 눈물 흘리지 않는 눈동자를 그려내길 바란다 넓은 하늘 그 하늘의 깃털과 나뭇잎 그리고 엷은 녹색의 어둔 저녁과 사과를 그려내기를 바란다   난 새벽을 그리거나 이슬을 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싶다 가장 젊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 그녀는 검은 구름을 본적이 없다 그녀의 눈은 하늘빛 그녀는 영원히 나를 바라본다 영원히, 바라본다 절대로 머리 돌려 홀연히 가지 않는다 난 요원한 풍경을 그리고 싶다 또렷한 지평선과 물결을 그리고 싶다 많고 많은 쾌락의 시냇물을 그리고 싶다 구름을 그려본다______ 잔털이 잔잔하게 가득 찬, 난 그들을 아주 가까이 붙게 하고 그들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모든 묵계와 봄날의 모든 조용한 격동이 한송이 작은 꽃의 생일이 되게 한다   난 또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고, 또 그럴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는건 안다. 난 그녀의 가을코트를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단풍잎을 그리고 수없이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가 돼버린 마음을 그린다 결혼식을 그리고 일찌감치 깨어난 경축일을 그린다 그위에 유리빛 사탕종이와 북방동화의 삽화를 붙여 넣는다 난 제멋대로인 아이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대지위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들이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난 바람을 그리고 싶다 하나하나 점점 높아지는 산들을 그리고 동방민족의 갈망을 그리고 막힐것 없는 큰 바다의 유쾌한 소리를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종이 한 모퉁이에 나는 또 나자신을 그리고 싶다 한마리 코알라를 그린다 빅토리아의 깊은 숲속에 조용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그는 집이 없고 한 조각 마음은 먼곳에 나가 있다 그는 단지 수많은 장과(浆果)와 같은 꿈과 아주 아주 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색깔있는 시각을 얻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뿐 나의 손가락과 상처의 아픔 한장 한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뿐 그들이 나비를 찾아가게 하고 그들이 오늘부터 사라지게 할뿐이다.   나는 어린 아이 환상속 엄마로부터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나는 고집센 아이다 림금산—해설: 시《 나는 고집센 아이》는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 ”임을 선포하고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맞춰 자기만의 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억압된 성인세계 속에서 고성의 의식은 “눈을 감으면 세계와 나는 관련이 없어진다 ”고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고집센 아이》에서 차용한 아이들의 시각은 아동의 이상 안에서 개조된 성인세계다. 고성은 이 시에서 보여준 아이들 형상은 맑은 바람처럼 성인세계의 오염된 땅을 뒤흔들었다. 또 하나 몽롱시의 대표시인 북도北岛도 한탄하며 말하길 “비천함은 비천한 이들의 통행증이 되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될 때, 고성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서툴지만 ‘자유’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는 그야말로 고성의 성격과 그만의 색깔이 드러난 시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아英儿≫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섬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없는 그를 괴롭힌다. 그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생략../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생략.../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이다. 문혁은 끝났으나 뉴질랜드까지 도피해 왔으나 그가 살아남는 길은, 천진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지’만 있고 ‘크레용’이 없다. ‘손가락도 다쳤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신—다음은 고성의 “먼것과 가까운 것”이란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아주 짦은 시인데요 먼 것과 가까운 것                    당신은                                                 , 나를 한번 바라보다                   또 구름을 한번 쳐다보고                      난 이제 알것같아요                               당신이 나를 볼 땐 아주 멀리 느껴지겠죠           당신이 구름을 볼 땐 아주 가까이 느껴지고       1980년 발표작 림—해설: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말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것일까, 단절은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고 말하는 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작 먼 구름은 가깝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눈 너와 나 사이에서는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틈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린 느낀다, 깨닫는다. 신금철—다음은 고성의 시 “리별”을 함께 감상하시죠 리별          고성 봄의 한가운데서  너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드는구나 나더러 멀리 가라는 뜻일가 아니면 곧 돌아오라는 뜻일가 아니, 아무뜻도 아닐거야 별다른 뜻이 없을테지 마치도 물우에 지는 꽃잎과 같고 꽃잎에 떨어지는 이슬과 같을거야 그림자만이 그뜻을 알수 있을가  바람만이 느낄수 있을가 오직 탄식으로 놀란 꽃나비만이 아직도 내 마음의 꽃밭에서 분분히 날고있구나  림금산—해설: 이별이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단지 손수건 한 장 흔들듯 그대는 가고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봄날속에 우리들 이별은 바람 한점 남기며 떠난다. 그것도 봄날에, 아무도 귀 기울여 아는 체도 없는데, 오직 채색나비가 꽃잎 떨어지듯 그림자를 잠시 남기며 바람인듯 날아가는 그 가벼운 탄식아래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가볍고 또 가볍게 봄을 풀어내고 있다니,..!  신금철—다음은 시 “작은 항구”입니다. 작은 골목 작은 골목 굽이굽이 길구나       문도 없고 창도 없어   난 오래된 열쇠를 들고 두터운 담장을 두들긴다   림금산—해설:   아주 작은 항구에 몸을 숨겨도 여전히 창도 없고 문도 없다. 그를 가려줄 현관문 열쇠를 찾아보지만, 너무 녹슬어 쓸모가 없다. 별수 없이 막힌 담장에 가서 두들긴다. 자기 안의 성안에서 그만의 소통을 꿈꾼다. 그의 말을 들어주던 누이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 들어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뉴질랜드의 아주 작은 섬, 그곳에서 그는 숨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생활을 맡은 그의 아내의 질책이 뒤따른다. 숨 막히는 그의 막다른 골목을 “작은 골목”이란 이 두 글자에서 찾는게 그리 어렵지않다.              신금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도 림금산선생을 모시고 중국몽롱파 시의 황제 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중국을 놀래운 시인이면서 또 세계적인 시인인 고성시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금철—그럼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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