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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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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깊은 동시는 깊은척 하지 않는다--김정도 댓글:  조회:1703  추천:1  2014-08-02
                        근간에 나온 림금산의 동시집 “사랑의 동그라미”를 읽으면서 참 좋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걷는 걸음마다 산꽃은 따라오며 핀다   내가 숲속에 숨어 들자 꽃도 숲속에 숨어서 핀다          -(“산길”전문)   이 얼마나 탐스러운 동시인가. 온통으로 동심의 덩어리이다. 기술로 만든 동시가 아니여서 좋다. 농도짙은 체험의 소산이여서 가상하기 그지없는것이다. 동심의 눈으로 본 대자연의 경이가 이 시를 낳게 한 체험적 바탕일것이다. 계절처럼 산에는 꽃이 핀다. 어디가나 꽃이다. 그처럼 이쁠수가 없다. 그러한 경이로움이 시인의 몸에 천연스레 옮아 꽃의 순수가 한수의 동시로 태여날을것이니 이 어찌 소담하지 않으랴. 유심한 독자라면 누구나 언어의 배면에서 강하게 풍겨나오는 미적인 호소에 압도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동시 “분계선”도 찾아보기 힘든 수작이다.   눈물겨보록 아름다운 진달래 무궁화   그 부드러운 꽃가지에 언제부터인가 파아란 뱀 한마리가 칭칭 감겼다.          -(“분계선”전문)   분단의 비극을 읊은 시치고는 참 야무진 절창이다. 깊은 동시는 깊은척 하지 않는다.오히려 얕은척 한다. 이것이 순수이며 경지이다. 림금산의 일부 동시는 이런 경지에 도달해 있다. 동시 “향기로운 강”을 보면서 림금산의 솜씨에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젖빛 다리가 불궈져서   물은 온통 젖내난다.   달랑 고추가 풀어져서 강은 더욱 향기롭다.   매일같이 강을 세탁하는 너희들이 진짜 강의 주인이구나.           -(“향기로운 강” 전문)   이 시집의 최고의 백미로 꼽을수 있는 “향기로운 강”은 중국조선족동시단이 이룩한 새로운 성취로 알고 싶다. 아이들의 달랑 고추, 그것이 풀어져서 향기를 풍기는 강, 참 빼여난 표현이다. 강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눈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동시는 강에 대한 상상적 표현에서 가볍게 벗어나 높은 미적인 각성에 접근한다. 강에 대한 기묘한 형상화작업을 바탕으로 마지막련에 이르러서는 시의 의미적 령역을 보다 높고 깊은 경지에로 확장시킨다. 읽는 이의 마음마저 세탁되게 한다. 오래만에 맑은 동시의 강에서 목욕을 하고난 후련한 기분이다. 현대시의 지나친 기술주의가 병페라고 한다면 림금산의 동시는 체험을 바탕으로 생리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런 자세를 높이 사고싶다.                     (연변일보 1998년 12월)
70    채마전의 숨결 댓글:  조회:1837  추천:1  2014-07-30
              나에게는 언제부터 갖고싶어하던 채마전이 생겼다. 옆집 로인님이 88세가 되니깐 더 가꿀 힘이 모자라다면서  나한테 선물하셨다. 낚시할줄도 모르고 마작같은거나 골프같은데는 뻐꾹인 나한테 이는 천하 그 무엇보다 더 좋은 굉장한 선물이였다. 너무도 감사하여 술을 사갖고 인사를 갖더니 이젠 술도 못드시고 지어 고추가루같은것도 못잡수신다고 하셨다. 헌데 얼굴은 희고 보얗고 하여간 좋은 모습이였다. 피끗 보기에는 70좌우가 돼보였다. 퇴직하여 여직껏 25년간 채마전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렇게 강건하신지 모르겠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역전 부근 철길 건너에 300여평이나 되는 채마전을 가꾸었단다. 헌데 점점 힘에 부치여 한뙈기 두뙈기 이웃들한테 선사하다보니 나중엔 나한테도 차려지게 되였다. 헌데 너무 크지도 않고 또 너무 작지도 않은 좋이 백평은 실히 될 밭이였다. 로인님은 밭을 나한테 넘겨주면서 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밭을 넘겨받은 그날부터 가슴이 둥-둥 부풀어 올라 어떻게 하나 로인님의 기대와 성의를 저버리지 않고 잘 가꿔보리라 작심했다. 남들이 채마전을 가꾸는걸 볼때면 늘 부러운 눈길을 던지군 하면서 나도 퇴직하면 밭뙈기나 잘 다뤄봤으면 하던 나였는데 갓 쉰다섯에 일찍이도 차례진 밭이였으니깐.    헌데 말이 쉽지 정말 쉽지가 않았다. 화학비료를 한줌도 안주고 순 유기농으로 만든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붕어나 잉어같은걸 사다 먹고는 그 밸을 딴것이라든지 묵어있던 밥이라든지, 쌀뜨물 등등 등속을 푹 썩여서는 밭에 가져다 내군 하였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씩 그 노릇을 하자니 쉽지가 않았다. 처음엔 10여가지 남새를 심어놓고도 어느곳에 뭘 심었던지가 기억안나 심은 자리에 또 심는다든지 이미 심어놓은걸 매버린다든지 …또 열심히 심었어도 빈자리가 많이 나왔다. 날씨가 차츰 푸르러 지면서 남새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니 너무 신기해서 가슴은 활랑거렸지만 진짜 가관이였다. 무질서하게 돋아오르는것이 참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였다. 자주 가서 김도 매주고 풀도 뽑고 했지만 기타 로인들이 다루는 밭보다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출근하면서 하다보니 전문으로 하는 로인들보다는 못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했다. 남새보다 풀이 점차 더 많아지고 어느것이 남새이고 어느것이 풀인지 가려보기조차 힘든 곳도 여러군데 있었다. 하지만 그랫어도 땅은 속일줄 모른다. 심어놓은 자리마다 우썩 우썩 잘도 자라올라 6월부터 7월사이에는 거의 사흘에 한번꼴로 달려가는 채마전엔 고추며 가지며 상추, 오이, 열콩, 호박 등이 쉴새없이 열려서 미처 뜯어올새없이 또 온 밭을 꽈악 채워주군 했다. 일상에 분주히 돌아치다 한주일만 못가보면 벌써 어떤 가지나 호박같은건 땅에 대여 썩기도 했다. 잡풀도 너무 기승스레 자라올라 한번 뽑아도 언제 뽑았던가 싶게 또 무럭무럭 자라올랐다. 나중엔 뽑은 풀마저 던질 자리가 없었다. 밭에 미안했고 나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옆집들의 채마전은 질서정연하고 풀대 하나 없이 깔끔한데 비해 나의 채마전엔 온통으로 잡풀천지이고 거기다가 땅이 선물한 각종 남새들을 제때에 받아주지도 못해 죄스러웠다. 온 여름 남새 한근 안사고 먹어댔지만 남새는 줄어들줄 몰랐다…오, 이런 재미에 모두들 남새를 가꾸는구나 생각하면서 힘들어도 힘든줄 모르겠고 채마전에서 돌아올때면 온 몸에 싱그런 식물들의 향기를 듬뿍 안고 돌아오는 멋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마다 나는 송나라의 저명한 문인 소식과 당나라 명시인 백거이가 생각나군 했다.   당송8대가의 한분이며 서예, 미술, 시와 사에 능한 소식은 후세에 소동파로 그 문명 널리 전해지고 있다. 그의 호를 동파거사라 부르게 된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원풍2년(공원1079년)12월에 소식은 황주로 좌천되였는데 생활이 몹시 빈곤하였다. 당시 황주의 통판으로 있던 마정경이란 사람이 주부(州府)에서 얻어온 묵밭 50무를 그한테 주어 다루게 하였다. 그 밭이 바로 황주의 동쪽비탈(东坡)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식은 그해 봄날에 그곳에 설당을 짓고 그 이름을 (东坡雪堂)이라고 하였다. 또 후에는 자신이 그렇게 우러르던 백거이거사가 역시 자기처럼 황주에 좌천되여 갔을때 그곳 동쪽비탈에 화초를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시를 지어 읊었던걸 생각하면서 자신을 라고 이름하였다. 이 시각 나의 채마전도 단순히 채마전의 의미를 썩 넘어서 소동파나 백거이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어 수확은 엄청 크다. 나는 잘 다루지 못한 거칠지만 그래도 알찬 열매를 많이도 나한테 선물해주는 나의 채마전에서 소동파의 숨결과 백거이의 , 등을 읊조리며 페부깊이 스며드는 싱그런 냄새속에 푹 잠겨버린다...                                                                                                                                                                                                                                                                                                                                                              2014년 음력7월 13일 에서
69    댓글:  조회:1577  추천:1  2014-07-30
    어느 새벽의 안개가 자욱한 숲을 걷는다. 숲으로 나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길은 사라지고 뒤돌아보면 내가 온 길을 찾을수가 없어 내가 어디로 가고싶은지 어디로 가려고 들어온 것인지도 잊어버린채 끝나지 않는 숲속의 미로를 걷고 또 걸어가고있다. 쉬어가고싶은데 멈춰있는것이 불안해진다. 방향도 안잡히는 낯선 곳에 머물고싶지 않아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이지만 그곳으로 걸어가고있다는 것이 안정을 준다.
68    에덴의 푸른 동산 댓글:  조회:1606  추천:2  2014-07-26
  나는 드디여 행운스레 나의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아냈다 아니, 내가 찾아낸것이 아니라 님께서 내게 하사하였다 그곳에는 맑은 물이 빛으로 흐르고 그곳에는 꽃사슴이 큰 눈을 슴벅이고 그곳에는 밝은 하늘에 흰 구름송이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푸른 풀을 뜯고 있는 어린 양들이 화목하게 서로 쫓니며 뛰놀고 있었다   거기 식솔들은 모두 겸손하였고 따뜻하였고 말수가 적었고 다정다감하였다 마치도 잘 다음어진 대나무 같았다 거기 여인들은 모두다 절세의 미인이였고 거기 남정들은 모두다 영준한 미남이였다   날개를 한번 상한 새는 날기를 저어한다 뒤돌아보니 내가 걸었던 길에는 아직도 피비린 내가 진동하고 혼탁한 공기가 자욱하다 나는 두눈을 차분히 내리깔고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祷告)한다 흰눈은 배꽃으로 가득 내려 나의 지나온 어지런 발자국을 깨끗이 묻어버렸다… …   나는 지금 평화를 찾은 신생하는 꽃구름이다                         잡지 2014년 1기에서    
67    살아간다는 것은 댓글:  조회:1815  추천:1  2014-07-24
눈물을 버리지 말아라 놋대야에 잘 담아뒀다 화분에 주어라 그러면 눈물을 먹고 꽃은 피여난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기는 눈물냄새가 나리라   아픔을 버리지 말고 하얀 손수건에 잘 싸두어라 그랬다가 가슴에 번열이 날때 꺼내보면 가슴에 봄이 내려앉는다 그 봄이파리에는 고름이 탐스럽게 열릴것이다                             2013년 4기에서
66    록차(绿茶)를 마시며 댓글:  조회:1629  추천:2  2014-07-23
            한결 젊어진다는 록차를 마시며 나는 장수(长寿)보다 그 사색의 록색수풀을 맘껏 날수 있는게 심히 편하다 일상에 젖어 부러진 날개죽지를 끼고 거친 숨소리 고누기 보담 은밀한 맛에 잠간이나마 헝클어지는 머리를 식히는게 더구나 가쁜한 기분이다 요즘 세월에 한순간의 정적을 찾아 고요와 평화(平和)를 마음에 고이 받음이 얼마나 착한 일인지 모르겠다 록차를 마시며 내밀한 자아를 반추하고 조용히 차물을 불며 한세상 어지런 티끌을 갈앉힌다                          에서
65    수필 옥천행 댓글:  조회:1908  추천:3  2014-07-22
    바곤이 여섯개밖에 안달린 작은 렬차가 옥천역에 도착하니 옥천역 자그마한 건물에 “명시 “향수”의 고향입니다.” 라는 그리 크지않은 현수막 글발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려보자- 이번까지 세번째로 오는 곳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던 옥천땅, 대시인 정지용님의 고향이 여서 올때마다 새로운 감수를 받아안게 되니 말이다!) 나는 청주에서 일하는 동생을 만나러 함안에서 “시조경창대회”행사가 끝나는 길로 상행차를 잡아탔지만 결국 동생이 있는 청주먼저 옥천땅에 내려버렸다. 깨끗한 려객휴식실을  빠져나오니 역광장 남쪽으로 치우쳐 조용한 “정지용시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자를 보니 2003년에 세워진 시비여서 그런지 그리 물이 낡지않았고 깨끗하고 우아한 멋이 다분히 풍기였다. 옥천읍쪽으로 향한 남쪽면엔 동시 “할아버지”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고 역전을 마주한 면엔 명시 “고향”이 새겨져 있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좀 쓸쓸한 분위기에 차분히 말려들었다.  그렇다 고향이라고 찾아왔어도 그 색동꿈 곱던 오색찬연한 고향일수가 없고 스산하고 망가진 동네일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태를 묻고 이역만리 넘나들다 그리워 달려오던 고향임은 숨길수 없고 자나깨나 베개머리에선 고향기슭을 누볏음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리라. 생가로 가는길엔 촉촉히 싸락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옥천의 비를 맞으면서 마음까지 촉촉히 적셨다. 생가는 3년전 보던 모습 그대로인데 삽작문이 반쯤 열려있고 웃방문이 활짝 열려있어 마치도 지용님께서 나더러 어서 오라고 부르시는것 같았다. 생가로부터 “정지용문학관”으로 가는 소로길은 온통 짚부스러기에 묻혀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촉촉히 내리다 보니 나의 신발엔 짚부스레기들이 가득 게발렸다. 문학관 정문앞에서 나는 신에 게발린 짚을 다 떨어버리고 정중히 문을 열고 문학관에 들어섰다. 나젊은 남성접대원 두명이 달려와서 반가히 맞아주었다. 나는 신을 벗고 끌신을 갈아신은다음 먼저 정지용님 동상앞에 가서 꾸벅 90도 경례를 드리고 다시 접대원실에 들어섰다. 나는 중국에서 올때부터 혹시나 해서 준비해온 “중국조선족소년보”를 꺼내서 접대원한테 정중히 드렸다. 그날 우리 신문엔 “정지용문학관”을 상세하게 소개한 나의 글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접대원은 아주 고맙게 우리 신문을 넘겨받아서는 유심히 들여다 보는것이였다. 그리곤 향기롭고 따뜻한 록차를 가져왔다. 조금후 다른 접대원이 증정본으로 갖만들었다는 “정지용시선집”을 선물했다. 받아보니 정지용님의 동시들도 거기에 실려있어 나는 더 기뻤다. 여러해 문학편집을 해오면서도 나는 정지용님의 동시들을 우리 신문에 소개하지 못하여 늘 민망한 마음을 안고있던 차라서. 문학관을 자세히 돌아보면서 나는 다시한번 지용님의 시세계에 포근히 잠겨버렸다. 문학관내에는 나외에 또 지식인인듯한 늙은 부부가 이쪽저쪽 거닐면서 사진자료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를 더욱 기쁘게 한것은 내가 지용문학상을 타서 찍은 나의 수상시집도 진렬대에 정연히 놓여있었다… 나는 시낭송실에 들어가서 이어폰을 귀에 걸고 목청돋우어 “향수”랑 읊으면서 오래만에 시예술의 향연에 포-옥 젖어 온몸을 시흥으로 가뿐히 샤워하였다… 내가 알고있는 원옥천군문화원장 박효근님을 찾아따난것은 그날 오후였다. 골프련습장을 꾸리고 있는 박원장댁에까지 찾아가니 원장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나는 중국서 갖고갔던 흰술한병과 조선명태를 인사로 내여놓고 박원장님이 차례주는 술상을 마주하고 긴 회포를 풀었다... 자유시장으로 가니 무우, 홍시, 배추 등이 우리 연변과 별반 차이없이 팔리고 있었다. 상냥한 얼굴을                                한 아줌마들이 곰살궂게 굴었다. 나는 팥죽집에 들어가 2천원을 내고 팥죽한그릇 맛보았는데 그렇게 향기로울수가 없었다. 저녁엔 또 옥천역앞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어가 보리밥에 된장국을 맛나게 먹었다. 진짜 조종의 음식맛(순맛) 그대로여서 뼈속으로 우리맛을 느껴봤다. 청주에 있는 “동양일보”에 전화를 넣으니 조철호 회장님께서 함께 진천군에 있는 조명희시비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문학을 즐기는 나의 동생도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 편집 실장 유영선님이랑 함께 간단다. 보고싶었던 얼굴들이다. 나는 지용님의 고향을 떠나는 마음이 퍼그나 서운했지만 또 포석님의 생가에 안길걸 생각하니 마음이 또다시 설레이기 시작했다…  
64    물의 세계는 우주만물 중심에 있다 댓글:  조회:1771  추천:1  2014-07-16
             1 물은 온 지구를 감싸고 있다 지도를 펼쳐라 남색으로 색칠된 부분은 모두 물이다 땅떵이는 결국 물우에 떠있다   물은 남색의 이불로 땅떵이를 꼬옥 감싸고 있다 물이 없는 지구는 피부없는 앙상한 뼈일 뿐이다   2 인간의 몸에는 70프로가 물로 형성되였다 인간은 결국 물에 실려간다 한방울의 물이 없어 말라죽은 생명은 벌써 사막의 이야기다 한방울의 물이 없어 갈라터진 입술은 지구의 표면이다 물은 형체뿐 아니다 물에 혼이 있고 물에 말씀이 있다   3 락락장송은 피처럼 흐르는 물에 사철 푸르름을 뽑낸다 민들레는 이슬방울에 노오란 웃음을 쓰겁게 웃고있다 새들은 물을 피처럼 쪼아먹고 날개를 파닥인다 산은 산속시내로 갈증을 던다 구름도 쥐여짜면 물이다 이 세상에 물이 없는 곳은 황페하여 상상하기조차 힘겹다   4 물은 부드럽다 부드럽다못해 해를 잠재우고 달을 안아올린다   물은 맑다 맑다못해 수정에다 비한다   물은 생명이다 우주 만물은 물을 만나 싱싱한 모습을 펼쳐준다   5   누구서 물은 무표정하다고 말했던가 아니다 물은 사실 제일 정감적이다 물은 음악을 들을줄 안다 음악의 날개를 펼칠줄 안다 날개의 색채를 가릴줄 안다   누구서 물은 냄새가 없다고 했던가 아니다 물은 향기롭고 물은 달콤하다 물의 향기는 물의 사랑에서 풍긴다 사랑은 물의 분명한 정감이다 물은 자기를 고와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물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분간할줄 안다 물의 애증은 분명하거늘 물앞에서 소홀히 희노애락을 던지지 말라   6   물은 무엇보다 부드럽지만 또 무엇보다 강하다 물은 무엇보다 순수하지만 또 무엇보다 짙은 색채를 가진다 물의 세계에서 거짓표현과 악담과 음모는 모두 금물이다   물의 세계는 오색찬란하다 물의 세계는 우주만물 중심에 있다 물은 곧 세상만물을 운행한다      
63    수녀 (외1수) 댓글:  조회:1711  추천:1  2014-07-15
  수녀   잎을 보면 잎이 되고 가지를 보면 가지가 되고 꽃을 보면 꽃이 되고 새를 보면 새가 된다   자연을 밟는 소리 산자락에 내려앉는데 안개속에서는 소원이 아롱지고 기슭을 마냥 씻어내리는 산속시내는 그 굽이를 돌아들면 더구나  싱싱하다.                     노인   권유에 못이겨 글한줄 남겨놓고 사막으로 들어간 전설 다시는 누구도 본적 없다.   인간에겐 영원한 숙제를 남겨놓고 고비에는 오아시스 차려놓고 하늘에는 총총 별을 돋쳐놓고   하얀 눈이 되여 내려오는가? 하얀 수염이 되여 휘날리는가? 하얀 신선이 되여 우렷이 우리들앞에 앉아계시는가?   누구도 알바없다 누구도 모른다 땅우의 풀들이나 알가? 하늘의 별들이나 알가? … …
62    내클리어(洗肠) 댓글:  조회:1786  추천:1  2014-07-10
내클리어(洗肠)     신이 보낸 제일 맑은 물 재워넣고 이 세상 가장 더러운 오물 뽑아낸다 언제부터 채워넣은 오수(污水)인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육붙이, 침이 튕기는 망발, 물거품이 가득 떠있는 맥주, 누런 빛을 띈 허황, 머리꼭뒤가 빠개지는 고독, 공허… 그래서 둥-둥- 북치며 솟아난 나의 배 이제 찬란한 빛을 주사처럼 쏴넣어 시궁창 밑창까지 시원히 가셔내면 생명나무는 아침의 채마전으로 오늘도 싱싱타.                               (2014년 에 발표)
61    수필 팔공팔팔 ok! 댓글:  조회:1817  추천:0  2014-07-06
                                                                               림금산   요즘은 세밑이라 날씨가 여물어 맵짜다. 하지만 나는 “팔공팔팔”이란 아이디를 가진 카페에 혼을 빼앗껴선지 마음이 퍼그나 따갑다.  출근하기 전에도 나는 컴퓨터에 마주앉아 “팔공팔팔”이란 아이디를 찾아 넋잃고 들여다 보다가는 아쉬운듯 출근길에 오른다. 퇴근후에도 짬만 있으면 팔공팔팔 카페에 들어가 이칸 저칸 드나드는 멋이 장밤을 흥분속에서 헤매인다.     부인보다도 애인보다도 술 한잔보다도 은근히 내마음을 끄잡아당기는 소힘줄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디. 나자신도 내가 점점 더 깊숙히 빠져드는걸 어찌할바 없다. 왜서 그토록 은근한 바줄로 나의 마음을 꽁-꽁 묶어서는 자꾸자꾸 끄당겨 가는지?     1980년대, 중화대지에 “과거”입시제도가 회복된지 4년만인 정확히 1980년 여름, 우리는 당시로는 쉽지 않은 전국 고등학교통일시험에 떳떳이 합격하여 잊을수 없는 대학시절에 들어섰다.     서로서로 낮도 코도 모르는 열혈청춘들이 한 대학의 한 학부 한 반급에서 남창 24명에 여창 23명으로 남녀 비례가 아주 비슷하게 46명이 단란하게 모여서 눈물나는 4년간의 뜻깊은 꿈길을 열어제꼈다.     그때로부터 장장 30년 세월(1980-2010)이 눈깜짝할사이에 바람처럼 물처럼 미처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어깨넘어로 흘러가버렸다. 그때 련애를 했던 학우들은 첫자식이 지금쯤 30살은 될게다. 참, 세월은 살같다는 옛말이 그른데 없다.     그 30년 세월에 우리는 저마다 달콤한 련애사도 있었고 황홀한 결혼도 했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으며 일터에서 공산당의 부름대로 헌걸찬 로동도 했다. 벌써 각 부서에서 중견으로, 령도로, 교수로, 박사로, 귀부인으로, 기업가로, 작가로 맹활약을 보이며 한오리 두오리 흰머리칼을 날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30년세월에 서로서로 학창을 자상히 추억해볼 시간적 엄두가 없었을때가 아주 많았다. 또 서로 멀리 떨어져있고 하는 일 또한 종종별별이다보니 쉽게 만나 운우지정을 나눌 계제가 못된것도 사실이다.     헌데 누가 “팔공팔팔”이란 이 유명한 아이디를 내놓았는지 진짜 우리 동창들로 말하면 큰 상을 안겨줘야 할 고마운 분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우리만의 동창카페를 만든 분은 지금 연변일보사에서 부주필로 있는 김천씨였다)     팔공은 연변대학조문학부80년급이란 뜻이겠고 팔팔은 이젠 쉬쉬한 쉰고개에 오르기 시작하니 더 팔팔해지라는 뜻에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8 즉 횡재하란 뜻으로 너무나 마음에 잘 다가서는 아이디어다. 넘 늙수그레하지도 않고 청춘의 활력소가 팍팍 풍기면서도 뜻이 알맞고 또 누구나 거의 좋아하는 88수자까지 있어 참 입에 올릴수록 마음에 드는 우리만의 아이디다.     더구나 좋은건 아무때건 서로 대화창에 들어가 대화할수 있고 “짜잔 사진방”에 들어가 얼굴모습도 볼수 있고 아침마다 서로서로 하루일을 시작하기전에 인사도 챡챡 나눌수 있고 누가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지조차 다 제때에 알수 있어서 넘 좋다.     북경에서 천안에서 상해에서 할빈에서 장춘에서 커얼친초원에서 연길에서 도문에서… 전국, 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오는 목소리, 얼굴모습, 포즈들을 다 볼수 있고 다 들을수 있고 다 담을수 있어서 넘 좋다…“풍노초”(닉네임)가 한국천안에서 공원놀이하거나 겨울바다 구경가거나 회를 자시는것까지 다 알수 있어 좋다.     “양다리”(닉네임)가 20년만에 상해에서 “훈남”이와 만나 함께 반기는것까지도 다 아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위원장”(길림신문사 부주필 한정일)이가 야밤중에 술마이고 카페에 들어와서 도도하게 읊어주는 시도 들을수 있고 “봄뫼”(시인 김춘산씨)가 새노래 가사를 쓰는 골똘한 모습도, “아지랑이”(수필가이며 교수인 최순희씨)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에서 남편(서영빈)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도 다 제1시간대에 알수가 있어서 넘 좋다. 커얼친초원에서 20주년동창회때 찍은 전설같은 동영상과 사진도, 할빈에서 25주년때 찍은 드라마같은 동영상과 사진들도 볼수 있고 “도리도리”(닉네임) 안방마님의 달콤한 웃음도 자글자글 넘쳐나 더욱 좋다.     “시내물”님이 남편없는 사이 시아버님을 알뜰히 보살피는 모습도 감명깊게 볼수 있고 “대박”이가 신정공급때문에 3일간이나 돌격전을 벌리고나서 맥진해 쓰러진 모습도 볼수 있고 “신여”님이 애들을 가르치느라 흑판에 멋스런 판서를 날리는 반가운 모습도 볼수 있어 넘 좋다. 토실토실 “감자”(수필가 남춘애씨)가 보내주는 명언록도 볼수 있고 “훈남”님의 멋진 탁구동작도 볼수 있어 좋다.     요즘 하늘이 구멍났는지 하많은 눈이 하많은 사연을 싣도 줄창 내린다.  천안엔 20센치..북경에는 40년만에, 한국엔 103년만에 눈이 많이도 내린다. 눈을 타고 우리의 아까운 한집 식솔들도 하늘나라에서 놀러온다’.     우린 너무 일찍 아까운 식솔들을 잃기도 했다.  어찌 인생 중반에 우리 오붓한 식구들을 두고 먼저 성큼 저 눈이 내리는 차가운 하늘길로 가셧는지. 시인 남상수, 소설가 한정화, 편집 최철수. 최철수는 할빈의 동창회에 참가하겠다고 연길 동창들을 조직하느라 앞뒤로 뛰여다니더니 종내는 그 동창회에도 못 참가하고  공부하는 아들애를 떼여놓고 그렇게도 급하게 우리곁을 떠나갔다. 아깝기 그지없는 우리 식솔들. 그들이 남겨준 명까지 우리가 더 살아줘야 하기에 우린 누구나 자기로써 자기의 건강을 챙겨야 하지않을가. 여창들은 술에 빠져 허우적이는 남창들이 아까워 카페에서 만날때마다 그 부탁이건만 왜 술은 그렇게도 끈질기게 우리 남창들을 괴롭히는지.     팔공은 팔팔해야 할줄로 믿는다. 사회에선 중견으로, 가정에서는 호주로, 우로는 늙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아래로는 한창 대학공부를 하는 자식들을 섬기는 우리의 팔공 동창들. 신체만 잃으면 모든걸 다 잃는다는걸 금방 깨쳐야 한다.      그리움이 힘을 낳고 열정을 낳는다는걸 요즘에야 진정 깨친다. 정이 시를 낳고 수필을 낳는다는것도 요즘에야 아는것 같다.  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시와 수필을 많이 써서는 우리 안방인 팔공팔팔(8088)의 “학우창작실”에 올린다. 아니, 내가 창작하는것이 아니라 아마도 동창들이 나한테 매일같이 입김을 불어넣고 진실을 강의하고 그리움과 정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리라.     글이 오르기 바쁘게 줄줄이 댓글을 달아 고무해주고 박수를 보내주는게 어쩜 이리도 가슴이 찡해올가! 대학졸업후 거의 30년세월을 단 한번도 못 만나본 커일친초원의 혜연이랑 상해의 옥자랑 번마다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20대초반에 갈라져 이젠 모두 쉰고개에 올라섰지만 그냥 30년전처럼 맘대로 이름을 불러 또한 넘 좋다.     그립다. 매일 목소릴 듣고 심심잖게 실모습을 볼수록 더 그리운게 우리 사이다.     우리 사인 금전관계도 아니고 상하급관계도 아니다. 평등하고 서로 서로 헤여지면 그립고 만나면 정다운 위선과 가면과 허식이란 꼬물만치도 찾기 힘든, 진실과 진정이 반죽된것밖에는 더 없다. 누가 싫다고 해도 안된다. 친구는 친했다가도 마뜩잖으면 그만둘수 있지만 우린 다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동창들이다. 하늘의 뜻으로 무어진 한집 식솔이니 피할수도 없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젠 년세들도 적잖으니 서로 애지중지 아끼면서 도우면서 배려하면서 다 함께 즐길수밖에.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대들을!! 그래서 난 오늘밤에도 팔공팔팔에 졸시나 졸수필이지만 정을 담아 알뜰히 올린다…                                                                                                                                    에 발표
60    리유가 필요없다 댓글:  조회:1778  추천:1  2014-07-03
왜서 좋아하나 묻지를 말라 사랑하는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왜 싫어하나 묻지를 말라 사랑할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유가 왜 필요해…                          (2014년 4호에서)
59    태양이 너무 찬란해 싫다 댓글:  조회:1592  추천:0  2014-07-02
              태양이 없었을땐 해바라기도 없었을걸 태양이 생겨나면서부터 해바라기도 하는수없이 땅을 뚫고 나와 고행을 시작했다   태양은 줄기줄기 해빛을 뻗쳐 해바라기를  머리로부터 줄기, 발까지 꽁꽁 묶어놓았다   해바라기는 늘 목을 비탈아 태양으로부터 머리를 돌려보려 애썼다 해빛바줄을 끊어버리려 몸부림쳤다   태양의 뜨거운 “사랑”이 싫어 해바라기는 이를 악물다 못해 결국 온 얼굴에 까만 송곳같은 이빨을 가득 돋혀냈다…                           (2014년 4호에서)
58    동시 댓글:  조회:1723  추천:0  2014-07-01
눈은 하얗다 하얀것은 솜이다 솜은 부드럽다 부드런것은 봄이다 봄은 푸르다 푸른것은 잎이다 잎은 빛난다 빛나는것은 해빛이다 해빛은 뛴다 뛰는것은 마음이다
57    엄마는… 댓글:  조회:1504  추천:0  2014-06-30
나의 몸에서 젖내가 날때 엄마는 그대로 분통같은 젖가슴이였습니다   내가 유치원에 뛰여갈때 엄마는 그대로 꽃씨를 뿌리는 원예사였습니다.   내가 글눈을 티울때 엄마는 그대로 자음과 모음이였습니다.   내가 대학으로 날아갈때 나의 농짝을 챙겨주며 “이렇게 떠나문 이젠 집에는 다시 못 들어오나…” 하며 눈굽을 찍던 엄마는 눈물이였습니다.   내가 도시처녀를 데려다 그 분처럼 하얀 얼굴을 보여드릴때 엄마의 까맣게 탄 얼굴은 해살이였습니다   내가 사업차 눈코뜰새없이 돌아칠제 나의 자식들을 안고 업은 엄마는 자장가였습니다   이젠 지팡이 되여 람루한 몸 겨우 지탱하지만 나만 보면 푹 꺼진 눈에 한가닥 마지막 빛을 쏘아내는 엄마는 비-인 껍데기입니다…                   2013년 6월 20일 엄마의 려권을 만들고…..        
56    아라랑 (조시) 댓글:  조회:2065  추천:1  2013-12-27
        1     걷고 또 걸어 발바닥이 소리를 낸다 발바닥 껍질이 벗겨져 아픈 소리를 낸다 뜯고 뜯어 손가락에서 소리가 흐른다 기고 또 기여 무릎팍뼈가 소리를 낸다 부서지는 고름이 흩어지는 소리를 낸다 봇나무껍질을 벗겨다 귀틀집 구멍난 벽을 막으며 아버지, 어마이 찬바람을 막아 신음하던 소리다 가슴에 실오리를 긁는 소리다 긁어낼때마다 아파서 비명지르는 소리다 두만강에 널어 말리는 흰 옷의 펄럭이는 소리다 두만강 모래사장에 피자국을 찍어가던 소리다 두만강 모래무치를 구워먹으며 가슴을 까맣게 태우고 입술을 까맣게 칠하던 타는 소리다…아리아리 아리랑…     2   눈귀에 또르륵 구을던 빛이다 울때뼈가 울컥하게 눈물을 삼키던 껄끄러운 모습이다 가난티를 씻어내고 다듬이돌 두드리던 토닥토닥 절주있는 리듬이다 아침안개 서려올라 무명저고리가 벗은 산허리를 둘러주고 저녁연기 타채쳐올라 초가삼간을 배불리던 이야기다 토실감자, 구운 고구마, 말린 미꾸라지, 더덕반찬… 했어도 하늘이 구멍난 날 또다시 주루룩- 가난이 가득 흘러내리던 소리 아리랑 아라리요…     3     일송정에서 내려다보면 한눈에 안기는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에 선률이 물기둥처럼 드리우고 피빛 노을은 피진한 눈동자를 돋쳐올리고 구슬픈 곡조 익어가는 강끝엔 해가 저문다 돌아 굽이돌아 울려가는 해란강의 소리 모아산이 잠에서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 멀리 바다쪽 하늘 우러른다…아리랑 아라리요…       4   아리랑 아리랑 윙-위잉-위이잉… 북국의 눈보라는 반만년을 휘몰아친다 바람소리 나무사이에 걸려 아츠럽게 가슴 파내린다 박날나무 터지는 추워우는 동북쪽 백두산도 얼어터져 백호마저 눈물짜는 얼음과 얼굼이 가슴 비비는 소리 지동치는 겨울의 소리가 어설프고 뼈마치게 울려간다 말세가 도래하는가 보다   따뜻하던 남쪽나라 수평선이 그립다 푸른 논의 개구리울음소리 그립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남겨나 주소… …   5   육(肉)이 육(肉)에 타버린 자리 혼(魂)이 혼(魂)을 부른다 령(灵)이 령(灵)을 부른다 령혼속에 바위가 세워진다 바위속에 뼈가 세워진다 뼈속에 쇠쪼각이 세워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조상이 피를 토하는 소리다 할배의 수염발이 몸을 후려치는 숨결이다 세상의 공통어가 빛처럼 사방에 튕겨간다 민족의 국제가가 반공중에 하얀 기발로 펄펄 휘날린다                                                                    (2014년잡지에서)      
55    <시> 오빠 댓글:  조회:1971  추천:1  2013-12-02
                          일대 폭풍이 강하게 불어쳤다 나무는 부러지고 수풀은 누렇게 황이 들었다 바람이 갈앉자 세월은 기운이 없어졌다 그저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그림자만 울고 앉았다 그 무렵 시골을 환하게 밝히던 집체호의 그 언니도 종내는 도회지로 떠나버렸다 오빠와 그렇게도 좋아하던 언니 온 마을에 생기를 더해주던 미인 언니였다 오빠와 마지막 눈물로 작별을 고하고 퉁퉁부은 눈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막차의 여음으로 길게 울음을 흘리며 떠나갔다   그때로부터 오빤 실신한 사람처럼 방에 들어박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엄마말씀이 오빠가 크게 앓고있단다 의사분도 다녀갔지만 오빠는 그냥 그본새다   마가을 잎이 다 떨어진뒤에야 오빠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록음이 우거지던 오월, 사랑하는 오빠가 잃어진뒤 온 마을을 샅샅이 뒤졌고 린근 마을에까지 내려가 발칵 뒤집어도 찾지 못했는데 초록이 다 빠져나가고 잎이 다 진 뒤에야 마을앞 내가의 백양나무밭에서 목을 매고 자결한 오빠의 시신이 드러났다 살가죽은 다 그을어서 윤기나고 검은 빛을 띄였다 하늘향해 쏘아올린 눈길만이 여전히 날카로왔다
54    <시 > 장모님 댓글:  조회:2075  추천:0  2013-11-28
당뇨병으로 앓던 장모님 어느날부턴가 한쪽 눈이 멀었다 한쪽눈이 먼 장모님 다른 한쪽눈은 더욱 커보인다 근심이 묻혔는지 울음이 숨었는지 한쪽눈이여서 잘 알리지 않는다 그저 이왕보다 더욱 깊어지고 우묵한 눈이다 한쪽눈으로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애절한 바램은 무엇일가? 말한마디 못 번지며 운명하던 그 시각 이미 멀어진 다른 한쪽눈으로 당분이 피처럼 진하게 흘러내린다                 (도라지 2013년 6기)
53    수필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댓글:  조회:2039  추천:0  2013-11-02
오늘은 무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로 가는 계절의 길목인 처서(处署)이다. 또 한계절이 하늘로부터 날아내린다. 바야흐로 눈앞에 날아내리는 크나큰 가을앞에 인간은 구경 어떤 답안지를 펼쳐내야만 할가?           요즘 중국시단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있는 락영시인(원명:황노파)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게 되였다 참 탄복이 가는 시인이였다. 그가 어린 시절, 부대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가 퇴대하면서 조직의 분배에 잘 복종하지 않았다 하여 3년판결을 받는다 아버지는 화김에 약을 먹고 자결한다 란주로부터 녕하 은천으로 이사하여 고독한 동년을 보내던 락영시인은 중국서남의 편벽한 곳에서 고등학교시험을 치는데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대학인 북경대학에 입학한다. 1998년에 그는 또 중국구라파국제공상학원을 졸업하고EMBA학위를 획득한다.             더구나 그후에는 중공중앙선전부에 배치받는다. 더 후에는 또 중국시장협회 회장조리(中国市长协会会长助理)로도 사업한다. 이만하면 어느정도 학자타입이고 또 권력기관의 정치물도 어지간히 맛보았다고 할수있을것이다. 하지만 그한테는 이것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은가 보다 후에 그는 또 북경중곤투자집단동사장(北京中坤投资集团董事长)으로 있으며 유람풍경구를 개발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제4대상업모식을 창도하여 기업계에도 엄청난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물론 돈도 많이 벌었다.           헌데 그가 창업초기부터 아니, 중공중앙선전부에 있을때부터 절친하게 진했던 그의 동아리들이 그를 배신할줄이야. 그들은 락영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회사돈 3천만원이나 움직여 락영이 몰래 회사하나를 더 꾸렸던 것이다. 일시에 전신에 배신감이 몰려들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은 오랜 옛정까지 여지없이 짓뭉개버리고 돈의 회오리바람에 휘청인것이다. 그는 강한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꼈고 고독의 심연속에 깊숙히 빠져 허우적이였다. 3천만원이 그한테는 별로 큰돈은 아니였지만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인간의 비탈아진 량심은 더는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썼다. 고독과 방황, 인간에 대한 절망과 우정에 대한 불신임, 그는 그래서 아마 시에 그렇게도 많이 비탄과 우수를 담아낸것은 아닌지? 그런 시들이 차츰 축적되면서 중국시단을 놀래웠다. 하여 그는 중국시가학회 리사로, 북경대학신시연구소 부소장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그는 근년래 시단에서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시집 “다시는 나를 사랑하지 말라”, “우수를 거절한다”, “락영집”, “도시류랑집”, “7+2등산일기” 등 시집과 중편소설 “푸른 태양”등을 써냈다.         몇몇 기업가들이 그한테 도대체 얼마만큼한 돈이 있을가고 서로 맞춰보기까지 했다는데 나중에는 그가 어지간히 큰 섬(岛)을 살수있는 돈까지 있다고 짚고 있는걸 봐선 그는 돈에서도 자유를 얻은 시인이였다. 하다면 이제 그한테 무엇이 더 필요할가?        헌데 그는 이에 만족함이 없다. 그는 크게 배신당한 일이 있고 인간의 존엄과 량심에 한대 얼얼하게 얻어맞은 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을것이다. 요즘 그는 세계적으로 폭팔성적인 소식을 또다시 터쳐내 세인을 놀래우고 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고 시를 쓰는 와중에도 등산을 꾸준히 견지하면서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이미 전 세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7대봉우리를 다 독파하고 남극주와 북극에도 다녀왔단다 지금까지 7+2를 성사한 분은 전 세계적으로 15명밖에 없다는데 그가운데의 한사람이 바로 락영시인이다. 하여 그는 세계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 되였다.            그의 시는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였다. 그의 특이한 경력으로 하여 그의 시 또한 아주 특이하고 개성적이였다 헌데 거기서도 제일 주목되는건 그의 시에는 한결같이 랑만이 없다는것이다 시편마다 쓸쓸하고 비참하고 지어 랭혹한 그늘까지 비껴있는게 독특하다. 그가 해발 5,895m의 세계 7대륙 최고봉중 하나이자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을 독파하고 돌아올 무렵 북경대학에서는 그의 시집 “7+2등산일기”에 대한 출간기념회로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참이였다 그가 금방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면서 생명의 위협속에서 살아나와 인간속세에 내려와서 자기의 시집 출간회 분위기에 들어설때 그의 감수는 과연 어떠했을가? 절대로 기쁘지만은 않았을것이다.             그한테는 지위나 권력이나 돈도 다가 만족을 줄수없다. 그가 지금 제일 관심하는 일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 약점에 대한 투시(透视)와 인간의 극한(极限)에 대한 도전과 그런 도전으로부터 오는 짜릿한 시적인 그 어떤 감수일것이다 그는 자기를 포함한 인간을 항상 이 세상의 제일 끝머리의 한계점에 세워놓고 그 심태와 느낌을 새김질하면서 인생을 다루고 인간을 사색하고 있는것이다. 그는 일단 이런 소재로 시를 쓸때면 비애와 그리움과 동경속에 푹 젖어 밤잠도 설칠때가 많단다               참으로 우리 속세인간들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그런 경지에 매달려 자기를 저울질해보고 자기를 반추하고 인간의 심령깊이를 자대로 재보면서 세상의 풍전등화를 눈여겨 보고있는것이다. 인간의 삶의 시작은 구경 어디서부터이고 인간은 구경 어디로 가야하는가? 돈이란 무엇이며 지위란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이며 인간덕성의 최고경지와 최저경지는 또 어떤것인가? 락영시인앞에서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물(物)보다 령(灵)을 속속들이 참빛질하는 그 예리함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락영시인은 바로 이런 속세인간들이 엄두도 못내고 있는 그 인간심해의 바다에서 티끌과 진주를 가려내며 인간이 아직 닿지 못하고 있는 극한에 우뚝 서서 찬서리가 뽀얗게 낀 짜릿한 느낌을 혼자만 맛보며 세상을 웃고있는게 아닌가?  추구란 무엇이며 성공이란 또 어떤 것일가? 이런 숙제앞에 락영시인이 엄숙한 모습으로 또 현란한 빛으로 지금 우리앞에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처서를 맞으며
52    수필 어느날 갑짜기 시골이 그리워 댓글:  조회:2193  추천:0  2013-09-23
수필 어느날 갑자기 시골이 그리워                                                  림금산  어느날 갑자기 국자가가 싫어지고 옛친구가 살던 시골이 그리워 진다 그래서 먹기싫은 아침도 아예 뭉때버린채 무작정 친구가 살던 그 마을로 향하는 뻐스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세수도 하지 않은채다. 한식경이나 몸을 흔들리우며 먼지가 이는 시골길로 달리다 보니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침 한때를 걸러서 배고픈걸가? 아님 덜렁거리는 뻐스땜에 더 시장기가 빨라진걸가? 암튼 배에서 연신 나오는 꼬르륵 소리보다 친구가 살던 마을모습이 그립고 거기에 거친풀처럼 그냥 남아있을 친구의 숨결이 더 간절하다 굽이 굽이 자아올라 깊이 파고 들어가니 칙- 하고 뻐스도 숨찬지 서버렸다. 친구네 집 울타리가 보인다 그만 고심하고 뻐스에서 내려버렸다.   겅정겅정 걸어서 친구네 집 사립문을 열었다. 인기척이라곤 없다 그저 고양이 한마리가 여느때와 마찬기지로 야옹거리며 두리번 거리다가 저 쪽으로 사라지고 이웃집 황둥개가 비린내를 확- 풍기며 꼬리젖는다. 하지만 친구는 없다 아니 없는걸 알고서 일부러 온것이 아닌가? 딱히 친구를 만나보자는것보다 이 거친 풀숲과 저기 저 강, 저나무숲속 옛추억의 향기나 맡아볼 양으로 온것이 아닌가. 7년전 친구의 안해가 숨막힐듯 정막한 이 시골이 싫어져 한국에 날아간것이 다시는 무소식이 돼버렸다…그후 우리는 서로서로 몇편의 시쪼각을 잡지나 신문에 낸것이 인연이 되여 마치도 옛친구나 만난것처럼 대하자부터 허물없는 친구가 돼버렸다.   친구가 이사간지도 벌써 거의 2년은 되여온다. 헌데 뜨락은 모든것이 예전 그대로다. 좀 더 초라해진 벼짚이영과 그리 빤빤하지 않은 앞마당이며 바자밑의 능쟁이 풀까지 다가 그대로다. 이 스산한 집에서 이 고적한 마당에서 이 인적기 드문 시골에서 그와 나는 열렬하게 중국인기 시인들인 해자며 로향이며 흑마의 시들을 열변했고 익지도 않은 시구를 목에 피대를 세우며 하늘에 별들이 도글도글 여물때까지 토론했었다. 헌데 그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래도 도회지가 살아가는데 나을듯 싶어 집은 “팔집”이란 간판을 내달고 훌쩍 A시로 이사가 세방살이를 한다. 참 좋은 결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괜한 짓을 햇다고나 할지? 나로서도 판단하기가 좀 그렇다. 그는 한낫 농사군 후예이고 시골에서 잔뼈를 굳혔다지만 농사일에는 별로 재미를 붙이지 못한것 같다. 그 친구의 밭은 이미 다른 주인을 찾은지가 오래다 마당의 채마전이나 조금 남아있을뿐이다 그래도 시골티가 나고 시골냄새가 나는 글은 몇편 멋있게 조겨낸 그였다. 아마도 안해없는 살림에 문학은 그의 애인으로 둔갑한것이나 아닌지? 도회지에 가서 여기저기 눈동냥 귀동냥하면서 각종 문학세미나같은데 참가하면서 전전한것이 밑천이 되여서 그냥 그게 재밋다고 도회지의 한쪽 구석에 발을 묻었는가 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겠기에 도회지의 어느골목에 풍막을 치고 신수리를 하고있는게 나한테는 자꾸만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생각엔 어쩐지 이 시골이 그한테는 안성맞춤한 삶의 토양이라고 늘 생각되여온 터다 그래도 그의 글에서 황소의 씩씩 거리는 숨결소리가 나고 흙내가 나고 땀내가 나는건 바로 이 한적한 시골의 생활경력때문이 아닐가고 생각해 본다. 뒤뜨락엔 아직도 그가 예전에 심었던 오이씨가 싹터올랐는지 오이넌출이 그냥 기여가고 있었는데 손가락 두개만큼한 오이가 몇개 댕그랗게 걸려있다 배고프던 차라 몇개를 따서 먹어보니 오이냄새와 더불어 친구의 냄새가 묻어난다. 나는 스적스적 걸어서 마을앞 시내가로 갔다 맑은 시내물이 나더러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듯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세수도 안했음을 알고 맑은 물에 세수를 했다 몹시도 차고 시원하였다. 이 물가에서 그가 “천렵놀이”이란 수필을 건진건 아닐가? 그리고 이 물가에서 그가 미나리를 뜯던 장면을 “들나물캐기”란 글로 묘사한것은 아닌지? 참미나리들이 누구도 뜯어가지 않아 무성하게 자라올랐다 나는 손가는대로 미나리 한묶음을 뜯었다 그날밤 나는 나의 심방을 파고드는 이 시골의 신령한 정취와 친구의 묻어나는 그 추억속에 감싸여 아예 려관집을 찾아 하루밤 지새웠다. 친구의 생각에 또 시골의 고요한 밤장막속에서 잠시나마 속세를 잊을수가 있고 홀로인 나만의 공간에 잠길수가 있어 더없이 편하고 좋았다 산을 맘껏 느끼고 달의 향기를 맘껏 마시고 곤충들의 합창을 맘껏 듣고 …또 며칠전 내가 다녀왔던 경기도 안성부근의 숲속에 조용히 깃들어있던 조병화시인님의 문학관도 다시금 새김질해 보았다.그리고 빛과 바람과 이슬과 그리움에 대한 시도 몇편 긁적거려 보았다…   지금 친구는 정녕 A시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있을가? 매일같이 펼쳐지는 여러가지 문학이벤트속에 잠겨서 들뜬 기분에 행복한건가? 아니면 분위기가 제대로 안된듯하던 시골을 활활 털어버린데서 나오는 자유로운 기분일가? 아님 문학을 한답시고 번마다 이쁘게 단장하고 행사에 나와 웃음을 날려주는 그 해반주그레한 녀성문학도들을 대하는 기분좋은 멋 때문일가? 나는 새벽까지 시골의 햇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풀었다 감았다 해보았다… 이튿날 나는 논두렁옆에서 한송이의 이슬묻은 이쁘장한 풀꽃을 꺾어들었다 어쩌면 그 풀꽃이 이 순간 도회지의 녀성문학팬들보다 더 진한 싱그러움을 나한테 속삭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삽시에 멀리로부터 나의 몸을 안아주는 차고 시원하고 부드런 시골바람이 내달아 와서 나의 얼굴이며 온 몸을 속속들이 애무해 주어 한결 가쁜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여 이 돈주고도 못사는 시골의 청신한 바람으로 나의 페부를 가셔냈다. 나는 되회지가 숨막혀서 시골로 내리달리고 그는 시골이 싫어서 도회로 올리달리고 우린 서로 다른 분위기를 찾고있는거나 아닌지? 정오가 되여오는때 뻐스가 저만치서 빵빵-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거의 하루반동안 이곳에서 친구의 그림자와 시골의 정취와 함께 놀았으니 이젠 돌아갈때도 됐다고 생각하고 뻐스있는데로 걸어갔다… 문뜩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쩌린 몸을 활- 털어보려고 도회지를 떠나 시골로 올때는 시골의 밝은 달이 좋아서 내달아 왔거늘 한적한 시골 그 적막의 밤을 몇일 지나고 나니 샨데리야 불빛이 번쩍거리는 도회지가 또 생각난다 … …   그렇다, 나도 이제 어느날 갑짜기 또 이 시골로, 친구가 가고 없는 이 시골로 달려올것이다. 그러면 논두렁옆의 풀꽃이며 시내물속에 빠진 둥근달이며 저 꼬불길로 달려오는 황둥개가 또 나를 짜릿하게 맞아줄것이다…하지만 거푸 몇밤을 못지나 또다시 인간들 오염속에 돌아눕는 도회지로 올라오고 말것이다. 인간의 심성이란 원래는 이같이도 미련한것일가?…                                                                        (연변일보.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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