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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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직이 인간을 잘못 만들기도 한다. 댓글:  조회:2488  추천:13  2012-11-13
낡은 사회에서 관리의 벼슬자리를 관직이라 했다.지금은 지위 혹은 직위라  부른다.  관직이든 직위든 아무튼 높은 자리를 이르는 말임에 분명하다. 누구도 직위에 금방 올랐을 때는 맡은바 사업을 잘 하겠다고 결심을 가진다.허지만 일부는 점점 세태에 오물이 들면서 흔히 처음과 달라지면서 변질한다. 지금 보면 사람중에 일단 지위가 올라갈수록 거만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위에 오르기만 하면 우선 틀부터 배우는가 하면 팔자걸음에 몸가짐도 무게를 보이면서 위엄기를 보이느라 애를 쓴다.우정 건가래를 떼면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성대에 무게를 주면서 말을 한다. 언론인 김대현선생의 시조 한수가 떠오른다. 공금을 뜯어먹고 /뚱뚱보 되더니만 / 이제는 /팔자걸음 량반틀 차리누나 /제기랄 /저런놈한테 /오줌이나 싸볼가. 틀차리는 량반들이 오죽 보기싫었으면 김대현선생이 이런 조시를 썼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퇴직간부가 들려준 이야기다. 자기가 국장일 때 후배를 점찍어 양성했고 자기 자리를 물려주었으며 후에는 자기보다 더 진급했다.누구의 생일에 갔는데 그 후배도 참석했다. 서슴없이 상좌에 앉고  행동도 거만했단다. 그 퇴직간부는 이 일을 말하면서 너무 꼴불견이더라고 서운한 심정을 토로했다. 거만한 태도로 위세를 부리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남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다. 지위가 올라가도 치마 례절이야 지켜야지 않는가? 례절바른 사람은 말로써 행위를 살수있고 남들한테 경의를 표한만큼 경의가 돌아온다. 평시에 틀만 차리던 한 령도는 자기가 직위에 있을 때 숱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후에 직위에서 나 앉으면 "고문"으로 모시겠다는 둥 "명예회장"으로 초빙한다는 둥 하던것이 정작 자리를 내놓으니 한 사람도 찾지 않더란다. 그런 사람들은 직위를 존중한것이지 사람을 존중한것이 아니다. 그 령도가 사업을 얼마나 잘했으면 그 정도까지 이를가?! 때문에 명지한 지도자라면 지위에 의해 존경을 받으려 하지 말고 덕과 재능에 의해 존경을 받아야 한다. 본인이 지위에 올라 틀거지를 부리는것도 보기 싫은데 안해마저 틀을 차리는건 더 꼴불견이라 하겠다. 이전에 그처럼 싹싹하고 인사성이 밝던 여인이 남편이 국장이 된후 잘아는 사람 만나도 인사를 하는지 마는지 골만 까딱한다.남편의 승진에 따라 안해도 승진했나 본다.남편이 국장이나 부장이 되면 안해는 고문이 된다더니 말이다.지어 국장의 차를 모는 기사도 부국장의 행세를 부려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지위에 있을 때 안하무인이던 령도가 자리에서 물러않은후 사람들을 만나면 유별나게 싹싹한 어조로 인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지않게 볼수 있다.상대방이 어리둥절할 지경으로. 지어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다. 자기가 국장으로 있을 때 한 하급의 주임자리를 떨궈버리려 하던것이 지위에서 나앉은후 그 주임을 보고 "원래 당신을 부국장으로 등용시키려 했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더란다. 이때 듣는 사람의 심정이 어떻했으랴?! 이처럼 지위에 있을 때와 나앉은후 판판 다르고 속과 겉이 판판 다르니 어찌 한심하다 하지 않으랴? 리발관에 가서 리발사가 머리를 숙이라면 누구도 머리를 숙여야 하고 병원에 가서 간호원이 바지를 벗으라면 벗어야 한다. 경찰이 경복을 벗으면 평민이 되고 관원이 관직을 내 놓으면 역시 평민이 되고 죄수가 죄수복을 벗으면 자유로운 공민이 된다.마치 사우나에 가면 모두가 알몸뚱이 되는것처럼. 지위가 올랐으면 그 고상한 상징의 참뜻을 터득하고 처사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연히 숭배할것이다.지위가 오를수록 틀을 버리고 남을 존중한다면 품위있는 지도자라고 평을 받을것이며 안목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을것이다. 권력이 어찌 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수 있으랴? 지위란 언제나 잠시적인것이다. 옛날에 자기를 "과인"이라고 자기를 스스로 낮추어 부르는 임금도 있었으니 말이다. 좀 더 높이 서겠다고 발끝으로 서 보라.오래 서 있을수 없다. 멀리 가겠다고 다리를 한껏 벌리고 가 보라.절대 멀리 갈수가 없다. 순리에 따라야지 이런 부자연스럽고 현실을 떠난 행동은 결코 본인의 의도에 역행되는 결과만 불러올것이다. 류소기는 "한 사람을 놓고 볼 때 최대의 행복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것"이라고 말하였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리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인민대중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의 자세를 실천해 보라. 틀림없이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의 방문과 만족감이 가슴 채워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것이다.
9    부모 공적은 바다 같고 자녀 마음은 돛단 배 같아 댓글:  조회:2024  추천:13  2012-07-30
내가 15살 되던 해에 엄마가 세상 떴으니 인젠 40여년이 넘어 된다. 엄마를 일찍 잃다보니 사랑 받은건  별반 생각 안나고 욕 먹고 매 맞던 일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속담에 "귀한 자식 매 한개 더 때린다."고 엄마가 날 사람이 되라고 매를 댔겠지만 당시 엄마가 그처럼 미울수가 없었다.  나한테는 욕과 매를 들이댔지만 엄마는 너그러운 인품으로 친척이나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였다. 우리 집에 할아버지,할머니 고모네 식솔까지 아마 열둬명 식구가 한동안 한집에 모여산거 같다. 한번은 내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밥먹으러 정주간에 가니 그때야 엄마가 "아이구,저기 무스게 하나 더 있구나."하면서 나한테 숟가락을 쥐여주는것이였다. 이럴 정도였으니 집안에 항상 사람들로 벅적이였다. 허지만 이로해서 엄마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내 기억에 동네 아줌마들이 쩍하면 우리 집에 모여 한담을 나누기를 즐겼다.엄마는 항상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반겨주었고 지어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군 했다. 엄마는 특히 메밀국수를 잘 만들었다. 국수우에 닭고기를 몇점 놓으면 세상에 별미였다.그러면 아빠친구들이 몰려들어 술상을 벌리군 했다. 엄마는 남의 빨래도 잘 도와주고 군일이 있으면 동네 어느집에나 다 가서 일손을 도와주군 했다. 하기에 엄마하구 이웃 사이에 다투는 일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엄마는 례의가 몹시 밝은 분이라 보아진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나의 할아버지한테 "밤새 무고하셨습니까?", " 지난 밤 잘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식사때면 할아버지한테 작으마한 6각상을 받쳐드리고 중간에 좀 큰 네모나는 밥상에 아빠, 형님들 거기에 나까지도 끼여들수 있었지만 엄마는 누나랑 함께 구들에 밥사발을 놓고 식사를 하셨다.아마 밥상이 모자라서 그랬을거다.   이웃 마을에 아빠가 결의로 모시는 형님 한분이 계셨다. 간혹 큰 길에서 그 분을 만나면 엄마는 길 복판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군 했다. 엄마는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분이였다. 우리한테 늘 이상분을 보면 하루에 몇번이라도 곱게 인사를 해야 하고 어른들의 앞길을 질러건너지 말라고 당부했다. 더우기 누나들한테는 이상분 앞에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지 말며 하품을 짝짝 해도 안되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아도 안된다고 구속을 주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비록 일자무식이기는 하지만 유가사상에 물젖은듯 싶다. 엄마한테는 한가지 습관이 있었다. 내가 시험 칠 때마다 나한테 찰떡이 아니면 기장밥을 해주었다. 오죽하면 내 어린 생각에 매일 시험이 있었으면 싶을 정도였다. 엄마가 해준 찰떡이나 기장밥을 먹으면 배가 든든했다.그래서인지 시험장에 들어서도 당황하지 않고 평시 알고있는것은 제대로 다 적어넣을수 있었다. 어떤 학생은 평시에 공부를 잘하나 일단 시험장에 들어서면 긴장하여 항상 시험점수가 낮았다. 나는 엄마가 있는것이 항상 뒤심이 든든했나 본다.엄마의 소망과 념원을 담아서인지 나는 늘 시험성적이 좋았다. 우리 민족은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 소는 없었지만 엄마가 돼지,개,닭을 쳐서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해준건만은 분명하다. 엄마가 우리한테 본보기를 보여준것은 책을 사랑하는 점이였다. 엄마는 책을 귀중히 여겨야 공부를 잘할수 있다고 하면서 책가방에 책을 거꾸러 넣어도 안되고 책을 보다가 펼친그대로 놔두어도 안된다고 했다. 책이 벌어져 있으면 책의것이 다 밖으로 흘러버린다는 론리였다. 엄마는 내 베개에 책을 넣어주군 했다. 당시 베개에 짚을 보드럽게 썰어 넣기도 했지만 대부분 겨를 넣었는데 그 중간에 얇고 작은 책을 넣어 주군 했다. 책을 넣은 베개를 베면 책의 지식이 다 골속에 들어온다는것이였다. 그런 책을 절대 가로 타고 건너지 못해게 했으며 책을 밟기만 하면 혼줄이 날 정도였다. 커서 알게 되였지만 유태인들이 그처럼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민족이였다. 때문에 유태인들은 책을 절대 태워버리는 법이 없다. 지어 자기 민족을 비난한 책일지라도 불태우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유태인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면 "성서"를 펼치고 거기에 꿀을 떨어뜨리고 아이가 입을 맞추도록 한다. 책이 꿀처럼 달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의식이고 또한 귀한 자식들한테 "뽀뽀"를 해주는것처럼 커서라도 책을 귀여워하고 사랑해 주라는 뜻 같기도 하다. 유태인들은 이사해도 제일 먼저 차리는것이 책이란다. 그리고 유태인의 묘지에는 흔히 책이 놓여있다고 한다.비록 생명은 다 했더라도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한다.유태인들의 이런 민족전통의식으로 해서인지 전 인류의 1천 3백만명 밖에 안되는 민족이지만 경제,물리, 예술분야 등에서 그들의 행보는 세계의 중심을 이룬듯 하다. 노벨상을 보아도 물리,화학,의학부류 수상자가운데 12%이상을 유태인이 차지했으니 말이다. 울 엄마가 나한테 전수해준 보배가 바로 책을 아끼라는 그 정신이다. 비록 내가 인물이 되였거나 성공인이 된건 아니지만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책을 아끼고 독서를 즐긴다.나도 아들 딸한테 책을 아끼고 사랑하고 많이 읽으라고 충고한다. 또한 애들이 시험 칠 때면 찰떡을 사다 먹이군 했다. 그래서 애들이 중점고중이나 중점대학에 간건 아니겠지만 엄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저 풍속습관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애들이 시험에 못 붙어도 찰떡과 연관시켜 본적도 없고 애들을 한번 원망해 본적도 없다. 엄마는 날 낳아서 키워준 은인이고 제일 교육자이며 엄마의 품은 나의 둘도 없는 보금자리였다. 이 세상 엄마들이 다 그럴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고 극진히 보살펴 주는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당", "어머니조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느 지성인은 이럴게 말하였다.  "부모의 공적은 바다와 같고 자녀의 마음은 한척의 돛을 단 배와 같다"고.   
8    부모에 대한 효도는 인간의 천직 댓글:  조회:2448  추천:20  2012-05-15
올해는 5월 13일이 어머니절이였다. 어머니절은 어머니한테 감사하다는 명절로서 제일 먼저 고대희랍에서 출현했다. 하여 세계적으로 류행되는 어머니절은 5월의 두번째 일요일로 정해졌다. 어머니절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번은 영국문화협회에서 4만명을 대상으로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 5위는 "영원", 4위는 "사랑". 3위는 "미소", 2위는 "열정", 그리고 1위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란 단어속에는 영원, 사랑, 미소, 열정이 다 포함되여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따스함과 친근함이 느껴지는 인류 모두의 언어이다. 나한테는 30여년을 막역지우로 사귀여 온 친구가 있다. 이 친구부부가 부모님을 어찌나 극진히 모시는지 린근에 소문이 자자하다. 우리 친구들끼리 술상에 앉아서 부모에 대한 말만 나오면 이 친구를 떠올리군 한다. 나는 이런 친구가 있는것이 자랑스럽고 자호감을 느낄 때도 많다. 몇년전에 그의 아버님이 세상 뜨고 지금은 90고령에 오른 로모를 모시고있다. 물론 그들 부부가  청춘시절에 사랑을 나눌 때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조건부로 그 어떤 낙언을 한것도 아니고 결심발표도 한적은 없지만 아들로서 며느리로서 부모를 모셔야 하고 모시면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을 천직으로 사명으로 받아들인것 같다. 지금도 그들 부부는 간혹 식당에서 식사를 해도 어머님이 즐겨 자시는 음식을 챙겨 갖고 가는가 하면 늘 상점에 들려 사탕,과자를 사가군 한다.  몇년전의 일이다. 친구가 장춘에 가서 근무하게 되였는데 시간이 긴박하고 임무를 채 완성못해 어머님의 생일에 참가할수 없게 되였다. 그는 한밤중에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이튿날 점심에 자신을 대신하여 어머님의 생일을 쇠여 달라고 흐느끼며 부탁을 해온적이 있다. 어느해 겨울 어머님이 얼음 길을 걷다가 그만 넘어져 팔,다리를 상하게 되였다. 이들 부부간은 어머님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한숟가락씩 음식을 떠 넣으면서 정성껏 간호했다. 노문(함경북도 방언)한 어머님은 쩍하면 화장실을 범벅이로 만들군 한다. 그들한테 이것이 제일 골치거리다.뒤를 보고 처리한다는 것이 아마 손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 모양이다. 친구의 아내는 원래 큰 병원의 총간호장으로 사업하다 퇴직하였다. 아무리 간호원출신이라 해도 이런 정경에 목격하고 나면 억이 막히군 했다. 친구의 아내는 울컥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레 참으면서도 부르튼 소리 한마디 없이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를 하군 했다. 이런 말은  듣기는 쉬워도 정작 자기가 할려면 너무나 아름찬 일이다. 현실에 부모를 모시기 싫어 자식들간에 부모를 마치 배구뽈처럼 이리 저리 넘기거나 부모를 모시기 싫어 료양원에 보내는 자식들에 대비하면 너무나 천양지차이다. 실지 지금 여자애들한테 시부모를 모신다고 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옛날 노인들은 부모를 괄시하면 "네가 장차 자식을 길러봐야 안다"고 말하군 했다. 내가 이 말을 아버지한테 들었다면 지금은 내가 아들한테 이 말을 해줄 차례다.결혼해서 새 생명이 태여나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재롱을 피워도 곱고 웃어도 울어도 곱기만 하다. 아빠의 머리를  쳐도 곱기만 하고 엄마의 젖꼭지를 물어뜯어도 곱기만 하다. 이처럼 쥐면 부서질가 놓으면 날아날가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이지만 커서 부모를 모른다면 어쩔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화김에 당장 저 세상 갈수도 없는 일이고 또 자식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하여 만족해 인생을 끝마치는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명이 있고 자식복이 따로 있는가본다. 말은 바른대로 하지만 자기에게 생명을 준 부모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정과 사랑을 운운할수 있겠는가?!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가정을 사랑하고 존중하겠는가?! 하기에 갚고 갚아도 평생 갚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의 은공이다. 그러므로 부모 세상 뜬다음에 눈물코물 쥐여짜며 땅치며 통곡하지 말고 부모 생전에 뜨거운 물 한컵이라도 마음으로 올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안하는것이 자식의 옳바른 처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마디로 말해 효도하고 감은할줄 아는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신성한 책임이고 의무라 하겠다. 부모에 대한 끝없는 효성과 부부간의 꿀같은 애정, 자식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지극한 사랑에서 나는  내 친구 부부야말로 유리같이 맑은 인생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하면 빛나면서도 깨끗한 삶이라겠다. 이러한 친구앞에서 나는 자연히 머리가 숙여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7    약속의 의미를 되새기며 댓글:  조회:2496  추천:13  2012-02-16
외지에 있는 아들이 이번 음력설에 일이 바빠 집에는 못온다며 메일로 인사말과 함게 올 설을 계기로 꼭 술을 적게 마시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원래 술재간이 없었다. 어찌다 술을 마시면 토하가 일쑤다. 오죽하면 내가 술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서너살 된 아들이"아버지 세수대야를 가져오랍니까?"고 물어보았을까. 내가 술을 마시게 된것은 방송국 기자부에서 광고부로 건너간 후부터이다. 술 한두잔에 광고수입이 몇천원 지어 몇만원이 드나들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화장실에 가서 토할지언정 또 술을 마시군 했다. 반면 담배는 멀리했다. 대학다니는 아들한테 금연하라고 하니 아들은"아버지가 술을 끊으면 담배를 끊겠다."는 조건부를 내걸었다. 아들의 말에 고깝고 괘씸했지만 서로간 끊을수 없는 처지여서 처음으로 한 아들과의 약속이 무산되고말았다.   실상 연변에서 완전 금주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생일,환갑,결혼식이 매일이다싶이 있고 명절이 끼이고 장례식에도 참가하다보면 술상과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어제인가 싶었는데 벌써 손자의 첫돌생일에 참가해"빛을 내달라"고 청첩이 날아오니...나무는 고요히 서있으려 하나 바람이 잦질 않는다.   이번 설에 아들의 부탁을 받고 많이 생각해보았다. 아들이 전번처럼 술을 근절하라는 부탁이 아니고 신체를 고려해서 적게 마시라는것이다. 아들의 이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술 마시는 차수를 줄이고 술량을 줄이는것이다. 술차수를 줄이려면  피할수 있는 술장소를 될수록 피해버리고 생일상을 줄이는것이다. 내 생일에 50명이 왔다면 나도 그들의 생일에 한달 네번 정도는 참가해야 한다. 모든 일이 단지 술장소에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기에 메일,전화 등 통신기구를 많이 사용하면 될것이다.  이번 음력설에 나는 아들의 부탁대로 술을 적게 마시려고 노력했다. 아들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주는데는 물론 내 신체를 고려하는 점도 있지만 아들한테 미안한 점도 많기 때문이다. 한낱 젊어서 저녁늦게까지 술마시고 귀가하면 아들은 잠이 들었고 이튿날 아침 내가 깨여나면 아들은 학교로 갔었다. 이처럼 아들의 얼굴을 못 보고 아들과 대화 한마디 못하고 지난 시간이 너무 많았다. 훌륭한 아버지커녕 아버지 자격조차 잃을 정도였다. 훌륭한 아버지라면 애들의 선생님으로,친구로 되여야 한다.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것을 아들한테 차근차근 알려주고 또한 자연공간을 느끼게 하는것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새 장을 만들고 정이 오가게 하고 함께 하는시간을 채워야 한다.  아들이 유치원 때만 해도 우격다짐으로 눌러놓았지만 소학생이 되여서는 아버지와 시비를 캐려 들었고 우주에 대해서도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파고드는것이였다. 아들한테 좀 알려주다가  권태를 느끼고"모르면 래일 학교가서 선생님께 물어봐라." 하니 새침해 하던 아들의 그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걸린다.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나는 좋은 음식이나 물건을 사주고 소비돈을 푼푼히 주는것으로 보상하려 했지만 그건 오직 한부분에 속할 뿐이였다. 아들은 아버지가 곁에 있어주고 웃으면서 옛말도 듣고 공원놀이도 하면서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간절히 바랐고 많은것을 아버지한테서 터득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아버지라면 자식의 특성과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 개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노릇이 절대 돈으로만 할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돈으로보다 마음으로 시간으로 진정으로 하는 아버지노릇이 더 우월함을 느끼게 된다.  아들은 자기자신의 생명의 연장체이다. 그러므로 아들과의 약속도 약속이다. 피줄로 이어지는 약속이기에 절대 태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이번 설에 북경에서 온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한번 조카가 세살난 딸애를 데리고 장마당에 갔다가 기어이 새끼오리를 사라해서 한마리 사가지고 집으로 왔단다. 조카의 시어머니가 어찌나 잘 먹였는지 오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오리가 컸고"꽈ㅡ꽉"하는 울음소리가 싫었던지 조카의 딸애도 오리를 처리하는데는 동의하지만 죽이지는 못한다는것이였다. 하는수 없이 오리몸에 표시를 해서 의화원 호수에 놔주었다. 조카 딸애는 일요일이면 엄마손을 끌고 의화원에 가서 오리를 보고 온단다. 당시 나였다면 그 오리를 잡아먹고 시장에서 사온거라 거짓말 할지도 모른다.교원사업을 하는 조카는 어린애들한테 거짓말을 하면 안되고 어린 심령에 상처를 주지 말며 자그만한 일이라도 등한시 하지 말고 절대 약속을 저버려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부자간이든 모녀지간이든 서로간의 약속을 지켜주는것이야말로 서로 믿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실제 표현이다. 이런 리치를 늦게나마 깨달았고 또 아들과의 어릴적 만나는 시간을 보상해 줄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약속을 굳건히 지키는것으로  다소 위안을 얻으려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아들과의 약속을 명기하고 올 음력설부터 술차수를 줄이고 술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요만한 약속도 어긴다면 장차 중대한 약속을 어찌 실행할수 있겠는가?!  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 김진길은 어느 한번 눈치기 동원대회에서"눈치는 이런 작은 일조차 못하고 어찌 큰 일을 해낼수 있겠는가?"고 말한적이 있다.   작은 일은 하기 싫고 큰 일은 해내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는가? 서로간의 약속을 지키는데는 마음과 결심이 우선이다.무슨일인들 해야 한다는 의지가 송곳 같으면 아무리 단단한 나무라도 뚫고 들어갈것이다.
6    퇴직은 새 생활의 시작 댓글:  조회:2758  추천:2  2012-02-06
20년전, 로선배가 퇴직환송대회에서 마이크 잡고 격정을 살려 이런 말을 하였다,  "몸은 비록 퇴직하지만 마음은 재직에 있습니다. 석양에 지는 해도 빛을 뿌릴 때가 있다고 우린 아직 성쌓고 남은 돌이 절대 아닙니다..."  그 당시 무심히 지나쳐버린 말이였으나 내가 오늘 정작 퇴직증서를 받아쥐니 그때 로선배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안겨오며 미묘한 심리상태에 빠지는걸 어쩔수가 없다.  어느 누구는 퇴직하는 날 아쉬운 마음을 걷잡지 못해 회사 주위를 다섯바퀴나 돌았다 한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그 정든 회사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수십년 고락을 함께 나누다가 서로 갈라지게 되니 말이다. 허지만 어찌하랴? 자연의 섭리는 막을수 없는 법이다. 중앙국제방송국의 내 친구도 인차 퇴직하게 된다. 그는 38년간 아나운서의 방송생애로 해서 가슴 뿌듯하다고 한다. 그는 "영원이란 없으므로 때가 되면 웃으며 물러서는것이 옳바른 자세"라고 하면서 퇴직후 좋은 일거리가 기다려 언제 섭섭한 생각을 할 사이가 없다고 속심을 털었다.  퇴직후 할일이 있다는 자체가 안위이고 보람이다. 육체로동이든 정신로동이든 가릴거 없이 영예로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나는 트럼프도 마작도 모르고 문구나 등산도 별반 즐기지 않는다. 다만 독서하는것만이 취미생활이다. 우리 집 재산이라면 책밖에 없다. 전문가나 학자가 되려고 그런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독서를 즐기면서 부지런히 책을 모은 덕이다. 그래도 새책을 사면 한번은 읽기가 마련이다.  학자들은 "책을 읽는 민족은 희망이 있으며 책을 읽는 인간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했다. 난 이런 비전을 바라서가 아니고 책을 쥐기만 하면 책속에 빠져 울적하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리군 했기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책을 모았기에 나의 서재는 가정의 장식품으로 드러났다.  아버지는 농민이다보니 사망할 때가 퇴직이였지만 나한테는 퇴직이 있다. 직장에 참가한 누구든지 "퇴직"이라는 이 정거장에는 꼭 들려야 하는 법이다.  퇴직은 결코 생활의 종점이 아니다. 조용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퇴직이란 생활의 전환점이고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라 하겠다.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남들의 작품을 수없이 편집,출간해 주다가 퇴직 후 자기 작품집을 륙속 출간하는 분들이 많다. 한 신문사에서 퇴직한 명망있는 기자선생은 로임전부를 털어 자기 작품집을 출간한다고 들었다.얼마나 돗보이는 소행인가? 퇴직 "종합증"에나 걸렸는지 세상만사를 고깝게 생각하면서 쩍하면 성내는 분들, 그리고 우울증에 걸려 머리를 푹 숙이고 기를 못펴는 사람들을 보면 리해가 안간다. 사람마다 취미가 있는한 자기 생활의 공간을 스스로 창조하고 하고싶은 일을 잘 만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항상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사람의 심정은 언제나 즐겁고 젊어질것이며 마음도 편하고 몸은 청춘으로 약동할것이다.  한낱 젊어서 나는 사업의 수요라 핑게대고 매일 숙취해 몸을 망가뜨렸지만 지금은 책이나 읽고 간혹 친구들과 마음의 회포를 풀고 스트레스나 풀려고 술을 청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오늘 퇴직증을 쥐고 서산을 바라보니 서산마루에 비낀 부채살같은 저녁노을은 한결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하다.  
5    어릴때 버릇이 예순한살까지 가오니 댓글:  조회:4506  추천:6  2012-01-05
-위생환경 대한 시민의식 제고 급선무   얼마전 연길시는 "아무곳에나 가래침 뱉거나 담배꽁초를 던지면 5-10위안 벌금시킨다"고 규정내렸다. 이는 바로 연길시를 국가급 위생도시로 부상시키고, 위생환경관리를 강화하고, 도시 품위를 인상시키기 위해 출범한 조치라 보아진다.   규정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망라해서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보아도 벌금범위에 속한다. 필자는 일전에 시내버스에서 애완견이 의자에 척 앉은걸 본적이 있는가 하면 버스안에서 마음대로 쏘다니다가 오줌을 싸는 것도 본적이 있다.여객들은 코를 찡그렸지만 애완견 주인은 좋다고 웃어댔다. 하루 새벽 필자 조깅을 나갔는데 마주오던 애완견이 배변하는 것을 봤다.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젊은 여성이 인차 휴지를 꺼내기에 그래도 문명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애완견의 뒤를 씻어주고 그 휴지를 길바닥에 버리는 것이었다.    화초를 꺾거나 잔디밭을 짓밟는 행위도 역시 처벌표준에 들어있다고 한다.그런데 연길시 일부 아파트앞에 화단을 보면 정성스레 심어놓은 나무,꽃을 뽑아버리고 남새를 심는다.  이런 정경을 보면 한창 미소 지으며 다가오던 문명이 '홱' 하고 돌아설 것이 분명하다.   남새는 지은 사람이 먹지만 나무,꽃은 만백성이 즐길 것이 아닌가?    한국에 가보면 한줌의 흙이라도 있으면 나무 심고 꽃을 심는다. 먹을거리가 없으면 그래도 이해가 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환경미화문화를 옮겨온 연변과학기술대학이나 연변한국국제학교에 가보면 환경미화가 어찌나 잘 되였는지 마치 공원에 온 듯한 기분이다.    물론 벌금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벌금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고 목적은 정갈하고 아름답고 산뜻한 거주환경,생활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자면 우선 시민들의 위생환경의식을 제고시키는 것이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사람들의 위생환경의식을 높이자면 조기교육이 중요하며 가정,학교,사회가 화합하여 어릴적부터의 교양을 앞세워야 한다고 보아진다.    연길시 모  중점  중학교 대문 앞에 서서 보느라면 상학기간 닫아놓은 철문으로 남여 학생들이 뛰여넘는 현상이 꼴불견이고 학교대문에 와서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학교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담배를 꼬나무는 학생들을 보면 참 억이 막히고 가슴이 아프다.   이른바 중점학교라는 자체가 이러하니 말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겠다 필자와 가깝게 지내는  정모모는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차문을 열고 휴지를 버리자 인츰 차를 급정거시키고 뒤걸음질 쳐가서 애더러 휴지를 주어 쓰레기통에 버리게끔 채찍질했다.참으로 이 광경을 본 필자는 내심으로 감탄했다.   몇년전에 연변새벽대학에 한국 교수 한분이 왔는데 학생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한마디 질책없이 조용히 그들이 버리는 휴지나 담배꽁초를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군했다.이러한 교양방법이 대학생들을 놓고 볼 때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라"고 열번 선전하기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자아내게 하였다. 감독원들이 벌금을 시키더라도 가만히 숨어있다가 달려 나와서 벌금시키는 것은 벌금을 위한 벌금이기에 명지하지 못한 처사라 하겠다.    연길시는 지금 국가급 위행도시로 부상하기에 급급해한다. 비록 작은 연길시라 할진대 수만명의 감독원을 풀어보라, 어찌 가래침 뱉고 휴지를 버리는 현상을 근절시킬 수 있으랴!    우리들의 교육체제에서 우선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어른들이 솔선수범해 위생을 지키지 않는 현실에서 어릴 때 버릇이 예슨한살까지 갈수밖에 없지않겠는가?!    
4    사냥개. 똥개. 애완견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5090  추천:61  2011-12-05
군인들이 기르는 개는 군견이라 하고 지금 시내에서 총애를 받으며 기르는 개는 애완견이라 하고 개가 미쳐버리면 광견이라 한다. 전문 사냥을 하는 개는 사냥개이고 농촌에서 아무거나 줏어먹으며 사는 개는 똥개라 한다. 내가 태여난 고장은 형편없는 산골이다. 룡정의 평두산이라는 곳인데 멧돼지며 노루가  특히 많았다.물론 연변은 어느 고장이나 모두 시골이니 말이다.그래서 연변은 그제날은 물론 오늘도 자연이 잘 보존되여 있는 고장이라 하겠다. 거두절미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보자. 그 시기만 해도 동물보호법이 실행되지 않았기에 겨울이면 메돼지 잡으러 오는 수렵군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냥개 5ㅡ10여마리씩 데리고 와서 사냥을 하군 했다. 보지도 못하던 사냥개가 오면 동네 똥개들이 몰려와서 마구 짖어댔다. 똥개들이 아무리 으르렁거리고 미친듯이 짖어대도 사냥개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너무 짖어대면 시끄러운지 한번만 눈을 흘기면 똥개들은 제바람에 무서워 달아나군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냥개가 똥개와 싸워봤댔자 상대가 안되는건 물론,그래도 함께 뒹군다면 겨나 똥밖에 묻을것이라는게 사냥개의 심리였을것이라고 판단한다.그러니  똥개들이 아무리 짖어대도 사냥개는 바위돌처럼 끄떡없다. 아마  쓰거워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나 본다. 우리 집에서 사냥개 새끼를 사왔는데 제멋대로 바라다니다 보니 그만 똥개로 변했다.수렵군들은 우리 집 개를 찬찬히 보더니 훈련시키면 사냥개로 쓸 수 있다면서 한번 사냥에 데리고 갔다.영리하고 경험있는 사냥개들은 절대 멧돼지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고 뒤로 덮쳐 엉뎅이를 문다. 멧돼지가 홱 돌아서면 엉뎅이를 물던 사냥개는 피해버리는 한편 다른 사냥개가 달려들어 엉뎅이를 엇갈아 물군 했다. 헌데 우리 집 개는 멧돼지한테 정면으로 달려들다가 한번 띠인 것이 배가 터져 그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똥개는 어디까지나 똥개지 사냥개로 쓸수 없는가 본다. 즉 사냥개 종자라 해도 똥개로 길렀으니 말이다.그 누가 비유한것처럼 “걸레를 암만 빨아도 걸레지 양복을 해 입을수 없다”는 도리이다. 사냥개나 똥개보다 더없이 영리한건 애완견이다. 애완견은 사냥개처럼  용맹하지는 못해도 정만은 너무 많다.하기에 유럽에서는 애완견을 집식구처럼 취급해 준다고 한다. 한번은 내 조카가 친구집에서 애완견을 갖고 왔다. 먼저 나하구 친했는데 내가 집에 없을 때면 안해 곁을 떠나지 않지만 일단 귀가하면 내 곁을 뱅뱅 돌면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애완견도 먼저 친한걸 알고있다. 밤늦게라도 내가 1-2층에 들어서면 4층에 있는 애완견은 냄새를 맡는지 아니면 발자국소리를 알아듣는지 문에 매달리면서 짖어 댄다. 아마 환영의 전주곡이런듯.... 또 심부럼 잘하는 애완견도 있다고 들었다. 주인이 광주리에 돈하고 상품명을 적어주면 애완견은 광주리를 물고 슈퍼로 달려간단다. 슈퍼주인이 물건과 거스름돈을 광주리에 놓으면 집으로 곧추 달려온단다. 옛날에 양반과 상놈 그리고 묘한놈이 구분되듯이 사냥개,똥개,애완견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지금 사람들속에서도 똥개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개", 아무일도 못하면서 짖기만 하는 "개",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파서 허망 물기만 하는 "개"들이 있다. 명지하고 현명한 사람은 이러저러한 "개"들이 짖든 물든 개의치않고 욕도 안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대범하게 자기 일만 잘 한다. 사냥개와 똥개가  명확히 구분되듯이 명지한 사람과 무지한 사람의 차이가 이처럼 뚜렸다는것은 오늘 사회에서 재삼 거론할 필요성을 느낀다.  
3    사랑있는 곳 천국, 사랑없는 곳 지옥 댓글:  조회:2602  추천:2  2011-11-11
며칠전 연변텔레비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 제130회가 텔레비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였다.   과거 텔레비에서 수차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를 시청했지만 정작 촬영현지에 참가하니 분위기나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이날 3명 학생의 불우사연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우리 신변에 눈물겨운 불우의 사연이 있구나.) 이런 놀라움과 함께 나는 다음회부터 다문 얼마라도 헌납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연변성보백화에서 만원, 성보상인들이 2만원 기증했고 서시장 고추가루매대, 2000년 노래방, 그외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러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이 륙속 전해왔다. 과연 감격이 없이는 지나쳐 버릴수 없는 장면이였다. 더우기 무겁고 다소 쓸쓸히 울려나오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에 코마루가 찡해 났다.   사회 각계 사람들의 뜨거운 손길과 후더운 마음에 감동을 먹으면서 다른 생각이 뇌리를 치는것이였다. 이 세 학생을 불우의 길로 몰아넣은 임자가 바로 부모가 아니겠는가? 이들 부모 모두가 리혼한 처지였다. 물론 아버지가 세상 뜨고 중풍에 걸려 운신하지 못하는거야 어쩔수 없지만 외지로 외국으로 돈벌러 갔다는 어머니는 모두 종무소식이란다. 물론 남편이 밉고 지어 원쑤가 되였다 할지라도 자식이야 자기의 태줄을 받은게 아닌가?! 예로부터 자식을 부모생명의 연장체라 했다. 옥이야 금이야 하면서 낳은 자식, 들면 날아날가 쥐면 부서질가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이 매일 매시마다 고달픔에 모대기는걸 어머니들은 알고나 있는지?   연길시조양천태양학교 김룡학생은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며 공부를 한다. 고중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아버지를 모시면서 공부하겠다는 김룡학생, 힘들 때면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면서 눈물을 쏟는 길룡학생의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을 지경이였다.   연변성보백화 정영채회장은 말한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그 어떤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라고. 그리고 남아서 남을 돕는다는것은 절대 될수 없는 일이라구."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글타글 벌어서 모은 돈을 선뜻이 성금한다. 이날 7명의 소학생마저 30원, 50원, 100원씩 보내왔다. 그들한테 무슨 돈이 있으랴? 부모들한테서 가진 소비돈에서 절약했을것이다. 이런 사연을 그 세 학생의 어머니들은 알고나 있는지?!   우리 조선족녀성은 어질고 선량하며 마음씨 고운 미덕을 갖고있다고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이것은 결코 봉건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긍지로 느껴야 할것이며 고스란히 이어나가야 할 전통이라고 본다.   자식에 대해 모성애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부성애라는 단어는 별반 언급하지 않는다. 바로 녀자로 태여난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그런 녀성, 최상의 기품을 완수하는 부드럽고 고상한 어머니야말로 순결과 우아함의 상징인 녀성이 아니겠는가? "낳자고 해서 낳았는가 생기니 낳았다는" 무책임성, 자기가 낳은 자식마저 거들떠 보지않는 이런 녀성들 앞에서 어찌 도덕과 품성, 그리고 참다운 인간미를 론할수 있으랴?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함함한다고 한다. 이 속담은 누구나 다 제 자식을 고와한다는 뜻으로 쓰이고있다.   연변텔레비의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는 불우 학생들이 웃음과 용기를 잃지않고 아름다운 삶을 이룩하도록 이끌어주고 고무해주고있다.   사랑을 주자. 하늘에 사랑이 가득 채워지면 우리의 희망도 꿈도 채워질것이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꽃을 심어가고 키워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2    좋은 사람은 오래오래 앉으라 댓글:  조회:2790  추천:8  2011-11-01
사람의 죽음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어떠한 죽음이 태산보다 무겁고 깃털보다 가볍다할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 평범한 사람이 죽은 후에 평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추도회에 참가했다가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추모하러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당정간부들도 있고 노인, 젊은이, 여성들...여직 추도회에 참가한 중에 사람이 가장 많은 추도회였다. 이는 그 분이 살아 생전에 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분이 위대해서가 아니고 직위가 높아서도 아니다. 지구급 방송국의 국장, 신문사 사장을 하셨던 분이다. 그는 인격이 고결하고 명망이 높았다. 자기 앞에 와서 침을 튕기며 좋은 말만 하고 아부하는 사람을 보고는 "발바리"라고 했고 뒤에서 자기를 욕하지만 덕을 겸비한 사람이면 중용하였다.   그는 너그러이 수용하는 허심한 아량을 구비했던 것이다. 재능이야 있든 없든 자기 눈에 잘 보이기만 하면 중용하고 아첨이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직심으로 일만 하는 사람을 배격하는 그런 지도일꾼에 비한다면 너무나 천양지차이다. 우리 신변에 자기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자기를 나무란다고 고깝게 생각하면서 재능있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전근하지 않으면 자리를 내놓게 만드는 지도일꾼이 적지 않다고 본다. 이런 지도일꾼은 자리를 내놓으나 현직에 있으나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기가 높은 급에 앉아 있을 때 주위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주어야 한다. 직위가 높든 낮든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국장, 사장으로 지낼 때 눈에는 아부하는 사람만 보였는데 자리를 내놓고 아첨하는 사람 하나 없어지니 아첨쟁이를 비난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아마 그때는 선글라스를 써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그 분은 평시에 돈후한 덕성과 너그러운 인품으로 하여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 받들린 것이다. 하여튼 퇴직한 후에도 아무 장소에서나 남여노소 할 것 없이 받들렸던 것이다.   진주와 보석은 아무곳에서도 눈부신 빛깔과 고귀한 기질을 변함없이 발산하는 법이다. 비록 그 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가치관이나 도덕관은 그의 인품과 신념을 여실히 알려주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비록 살아서 위대하지 못하고 죽어 영광스럽지 못하다 할지라도 죽은후에 "참 아깝다", "참 좋은 분이었다"라는 평판을 들어야지 "그 사람 잘 죽었다"는 말은 절대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인사도 일종의 베품이다 댓글:  조회:3499  추천:3  2011-11-01
인사는 서로 주고 받는것으로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거나 헤여질 때에 안부를 묻고 례의를 지키는 감정교류의 매우 좋은 교제술이다. 이전에 노인들이 아침에 만나면 "밤새 무고하셨습니까?", "밤새 별고 없으셨어요?" 하고 오가는 인사를 많이 들어 왔다. 그때 당시 노인들의 최상의 인사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저녁까지 펀펀하던 양반이 밤새 저세상으로 가는 페단이 푸술했으니 말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흔히 "급을 얼마나 췄나?", "돈을 얼마나 벌었나?" 하는 인사가 오간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인사의 내용과 형식이 다를 뿐이지 인사법도는 별로 변하지 않은줄로 알고있다. 인사의 목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자세를 갖게 하는것이다. 내가 인사하면 대방에서 곱도록 인사를 해온다.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주는것과 같다. 남에게 준다는것은 언제나 남한테 받는것보다 더 즐거운것이다. 타인에게 베푼 례의,은혜는 결코 자기한테 되돌아온다는것이 인지상정일것이다. 우리 민족은 깨끗하게 살오온 민족으로서 례의를 중히 여기는 례의지민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언어도 문자도 옷차림도 몸가짐까지 례의를 벗어나면 욕먹는다. 헌데 지금보면 인사법이 많이 무드러진것 같다. 하기에 노인들은 지금 젊은이들이 인사법을 전혀 모른다고 나무람한다.이런 나무람이 전혀 지나친건 아니다.앞뒤집에서 아래 웃층에서 자주 만나면서도 서로 외면한다.서로간에 마음의 장벽을 쌓고 살아가는것이다. 아마 이상들이 서로 인사를 모르고 살아가니 젊은이들이 따라배우는가 본다. 나이 분명 아래면서도 이상이 인사를 먼저하기를 기다리면서 빤히 쳐다만 볼 때면 쓰겁기 그지없다. 학생들이  인사 안하는건 그런가 지나쳐 버릴수 있지만 이상앞에서 담배대를 꼬나문것을 보면 발칵 역증이 생기군 한다.  60년대 농촌의 학생들이 짚차를 보면 길옆에 서서 소선대경례를 하던 일, 교원을 보면 사회적으로 깍듯이 인사하는 일, 면목을 몰라도 이상한테 공손히 인사올리던 일들이 그리워지면서 생각을 40년-50년전으로 치달아오른다. 인사가 계기가 되여 서로간에 정이 오간다. 정을 나눔에 있어서 선차적인것이 인사가 아닐가? 급별이 따로 없이 이상제하가 따로 없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즐거울것이다.  아침에 인사받으면 온 하루가 즐겁고 점심에 인사받으면 점심밥이 맛있고 저녁인사 받으면 밤잠이 잘올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아침,점심,저녁인사가 다른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노인한테 자리를 권하는것이 지금 예사로운 일로  되고있다. 헌데 노인들은 그저 응당하다고 여기는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권하는 자리에 않는다. 그들이 자리를 권하는 "행동인사"에 "고맙다"는 말인사 한마디 해주면 얼마나 좋을가?! 젊은이들이 늙으면 이런 본새대로 행할가 걱정된다.  참 돈도 안받는 인사야 왜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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