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http://www.zoglo.net/blog/huangyoufu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칼럼/단상/수필

전체 [ 99 ]

79    한중문화의 이해를 통한 한중관계 개선 전략 댓글:  조회:6115  추천:120  2008-04-23
한국과 중국문화의 이해를 통한 한중관계 개선 전략 황유복 중국 중앙민족대학 박사지도교수, 한국문화연구소장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가장 많이 대두되고 있는 담론이 세계화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지역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재 그러한 시대에 맞추어 유럽 북미 등 세계는 서로 경제 협력을 하며 나아갑니다. 일본 한국 중국은 세계에서는 최초로 글로벌이 형성 되었었습니다. 고조선 시대부터 중국의 문화가 전해졌었고(예; 한자, 유교, 쌀문화 등) 중국 한국 일본 이 세나라는 같은 지형을 형성했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세 나라는  영토문제 역사문제 때문에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문화에 대하여 살펴보면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 하여 중화 문화가 서에서 동으로 전파되었습니다만,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본에 근대화를 유치하며 일본에서 중국으로 문화가 전달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며 일본의 문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이런 문화의 흐름은 이념대립 때문에 문화 단절이 되었고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일중 수교, 한중수교가 실시되면서 문화의 흐름이 다시 재개되고 있고 모든것이 평등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    지금 현재 문화의 주류는 ‘한류’입니다. 한류는 대중음악, 드라마,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쿼터제가 생기면서 한류의 한계도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류가 대중문화에만 국한되는것 같이 보이나 사실 더 큰 한류가 중국에 오고 있습니다. 현재 8억의 농민들이 <신농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본뜬 것으로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배워왔습니다. 새마을 운동에 내제되어 있는 한국전통 사상, 두레, 계 등의 협력 정신이 중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 전체주의 문화와 자유주의 문화 입니다.    제 수업을 들으러 온 한국한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중국에 와서 느낀점이 무었입니까? 대부분 크다고 얘기합니다. 그럼 저는 또 묻습니다. 고궁에서 나무를 본적이 있느냐고? 다들 이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사실 고궁에는 후화원을 제외하고는 한그루도 없습니다. 학계에서는 자객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중국에는 많은 오랑캐 나라(이웃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러 옵니다. 중국황제는 이들이 고궁에 들어오는 순간 그 웅장함으로 기를 죽여서 자신을 한없이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웅장한 느낌을 주려고 만든 고궁에 나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한 위엄이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황제는 평생을 이 웅장한 고궁에서만 살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다릅니다. 창경궁에는 나무도 있고 호수도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곳을 거닐며 쉴 수 있고 때로는 나가기도 합니다. 과연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까요?    민가에서도 두 나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민가를 가도 담장이 있습니다.중국의 민가는 잘 사는 집일수록 담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조선 전통민가들은 담이 없습니다. 싸리울이나 바자울이 있지만 이런담은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가축의 출입을 제한하는 정도입니다. 즉, 한국은 자연과의 조화속에서 생활을 한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잡종과 순종을 들 수있습니다.    중국은 인종적으로 북방과 남방이 전혀 다릅니다. 북방은 아시아 몽고로이드계이고 남방은 인도네시아 계열입니다. 지금의 중국이 있기까지는 한자문화로 통일된 한족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제가 대학에서 역사 강의를 들을 때 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중국의 漢族은 세상에서 가장 큰 잡종 그룹이다’ 라고 말입니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중국의 문화는 다양합니다. 한국은 반대로 단일 민족이고 순수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두나라 문화의 큰 차이 점입니다.    세번째, 문화에 대한 태도입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큰 변혁을 겪었지만 한국은 문화 혁명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한국은 계승의 개념이고 뒤집을 생각은 안합니다. 중국 불교협회가  불교를 한국에서 배웁니다. 유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유는 중국은 문화대혁명시기에 많은 문화를 손실하였지만 한국은 계승하였고 발전시켜 와서 중국보다 더 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중국의 문화 가운데 유교의 문화는 현재 거의 없습니다.  또 다른 예로, 거북이 모양으로 한 금속, 옥 같은 것을 한국 노인들은 가지고 다니는데 이러한 문화는 예전에 중국에서 숭배하던 사상이 한국에 전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거북이의 뜻이 사용됩니다.  송나라에서 원나라로 넘어 가던 시기에 이야기꾼들이 많이 생기면서 거북이의 의미를 하늘에서 땅으로 낮추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지어내기를 ‘거북이는 암수가 교배를 못한다. 암? 탄舅隔?숫뱀과 교미를해서 가진다. 암거북이가 오줌으로 원을 그리면 뱀이 다가와 교미하고 숫 거북이는 오줌으로 경계를 만든주위에 다가가지 못하고 안타까워한다’라는 이야기가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남방 사람들의 욕가운데 鬼儿子(gui er zi;사생아) 있습니다. 또한 북방에서는 王八蛋(wang ba dan;거북이 알)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이러한 문화의 차이들을 깊이 알고있다면 중국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를 존중하고 공동으로 발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유교는 중국이 전통인데 중국에서는 예절이 없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인이 착각하는 점 중 하나입니다. 한국은 온돌문화이기 때문에 절을 하는 것이 보통이나 중국은 침대문화이기 때문에 절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식으로 예절을 표합니다. 특히 요즘은 악수하는 서양문화로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다른 분야에서도 훨씬 더 빠르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세계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 접근한다면, 중국과 한국의 교류는 훨씬 더 원활해 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78    조선족문화는 있는가? (황유복) 댓글:  조회:6277  추천:95  2007-07-01
조선족문화는 있는가?황유복《연변일보》사에서 《조선족문화에 대한 북경사람들의 시각》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부탁받고 의도적으로 북경사람들과 조선족문화에 대한 대화를 해보았다. 북경에서 20년이상 거주한 《북경사람》들가운데 60대에서 20대까지 될수록 다양한 직업과 년령층을 골라 인터뷰해보았다.  그런데 생각밖에 북경사람들은 조선족문화에 대해 거의 아는것이 없었다. 50대의 한 공무원은 《우리가 어릴 때 최미선의 장고춤을 보고 무용예술의 극치라고 탄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라는 노래는 누구나 다 부를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조선족의 춤도 노래도 있는지조차 모릅니다》라고 했고 몇명의 대학생들은 《우리 반에도 두명의 조선족이 있는데 조선말도 모르고 우리랑 별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족문화는 한족이나 만족의 문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조선족음식문화는 경험해보셨을것 아닙니까? 불고기, 김치, 랭면 그런것 말입니다》라는 나의 물음에 한 택시기사는 《글쎄요.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북경의 거리마다 <조선족풍미(风味)> 라는 음식점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한국풍미>라는 음식점만 남아있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경에서 관찰되는 조선족문화는 중국주류문화에로의 동화와 한국문화에로의 《동화》라는 두개의 극으로 달리고있음을 쉽게 파악할수 있었다. 《문혁》시기부터 조선족사회는《조선어무용(无用)론》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시달리게 되였고 수없이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의향에 따라 조선족학교를 포기하고 한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세기 90년대초 동북3성의 주요도시에서 80%의 조선족어린이가 유치원에서 고중까지 한족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언어를 완전히 상실해왔다. 지금 점점 더 많은 민족언어를 모르는 조선족청소년들이 북경으로 진출하고있다. 언어와 문화는 떼여서 생각할수 없다. 민족언어가 민족문화를 그 민족사회성원들에게 공유하게 하고 또 그것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게 하기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이어가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말을 상실하면서 민족문화를 전달받지 못하고 주류문화에 동화되고있음을 안타깝게 지켜볼수밖에 없다. 북경에 거주하는 우리 말을 아는 부분적 조선족젊은이들이나 50대이상의 조선족들에 의해 조선족문화는 한류에 편승한 한국문화에 《동화》되고있다. 조선문 신문이나 잡지는 《한국어》로 편집되고있고 지난 세기말에 존재했던 2000여개의 조선족음식점은 사라지고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한식점》들만 살아있다. 선대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50년이 넘는 어려운 정착과정을 거쳐 형성된 조선족사회는 아직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유했던 조선족문화도 건재하는가? 이제 우리는 조선족문화의 총체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문화의 총체성은 우리가 조선족일수 있는 기본요소일뿐만아니라 조선족이 외부를 향하여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경쟁력이기도 하기때문이다. 21세기의 화두는 문화이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국가나 민족 발전의 키워드는 문화이다. 때문에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조선족문화이고 중국문화의 한 부분이며 세계문화의 한 부분인 우리 문화를 재창출해야 한다.
77    한편의 동화,사람 얼마 먹여살리나? 댓글:  조회:5375  추천:116  2007-04-27
한편의 동화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수있을가? 황유복(교수)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독일 하멜른(Hameln)이란 동네의 전설을 정리하여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서사시를 썼다. 브라우닝의 시때문에 하멜른의 전설은 세계적인 동화로 되였다.      브라우닝의 시에 따르면 13세기말 하멜른에서는 쥐가 들끓어 ⟪개를 떠밀고 고양이조차 물어 죽인다./ 요람속의 갓난아이를 물고/ 치즈 통을 휘젓고/ 주걱에 묻은 스프를 핥고, 소금에 절여놓은 생선을 갉아먹고⟫ 하여 사람들은 골치를 앓게 되였다.     어느날 마을에 광대옷을 입은 사나이가 나타나 상금을 주면 쥐들을 쫓아주겠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은 거액의 상금을 약속했고 사내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 동네의 쥐들은 피리소리에 끌려 줄을 지어 광대의 뒤를 따랐다. 사내는 따라오는 쥐들을 강물속으로 인도하여 모두 빠져죽게 하였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약속했던 상금지급을 거절하자 광대는 다시 마을 복판에 나타나 또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 어린이들이 쥐떼처럼 사내를 따라나섰다. 사내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곳펠벨크의 산중턱에 있는 동굴속으로 들어가버렸고 동굴입구는 절로 닫혀져버렸다. 그후 어린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하멜른은 2차세계대전 때 파괴됐다가 도심은 옛모습 그대로 복구되였고 지금은 6만명이 사는 작은 도시로 되였다. 그런데 매년마다 하멜른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50만명을 넘어선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때문이 아니고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때문이다.  하멜른사람들은 동화를 문화관광산업에 활용했다. 쥐모양의 액세서리와 기념품, 심지어 치즈와 빵도 쥐모양으로 만들어 팔고있으며 옛 도심의 길바닥에는 하얀 페인트로 그린 쥐들이 줄을 이어 관광객들을 인도한다. 동화속의 쥐떼와 어린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행로라는것이다. 주요 포인트마다 주변건물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여있고 붕겔로젠(Bun gelosen) 거리의 한 건물외벽에는 ⟪1284년 6월 26일, 성 요한과 성 바울로의 날, 하멜른에서 태여난 아이들 130명이 피리 부는 광대를 따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하멜른의 전설은 하나의 문화콘텐츠이고 브라우닝은 그러한 콘텐츠를  세계적인 동화로 개발하면서 콘텐츠산업(content industry)화를 실현한 셈이다. 다시 하멜른사람들은 성공적으로 그러한 콘텐츠산업을 문화관광산업으로 이어나갔다. 한편의 동화때문에 몰려온 50만명의 관광객들이 소비하고 간 돈으로 6만명의 하멜른사람들이 먹고산다.      중국조선족은 150년이 넘는 이민과 정착의 력사를 갖고있다. 우리들의 고향마을마다에는 선대들의 얼이 슴배인 이민, 개척, 항일투쟁 등의 전설과 실화들이 깃들어 있다. 그러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것은 우리 문화인들의 몫이다.  얼마전 연변 진달래문화원정초식에 초청된적이 있다. 해란강변의 산야를 어떠한 형태의 문화산업단지로 개발할것인가 라는 자문을 받았을 때 나는 ⟪선구자의 노래⟫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레저관광산업을 권장했다.      노래의 작자가 구설수에 오르고있지만 ⟪선구자의 노래⟫ 자체는 반일성향으로 받아들여진 노래이고 또한 세계의 우리 민족가운데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고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 깊었나.       이 노래는 해란강변의 산야에서 말을 탈수 있는 경마장을 테마산업으로 한 레저관광산업의 성공을 뒤받침할수 있는 문화콘텐츠라고 생각된다.      사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에서 약속을 어긴 하멜른사람들의 행위도 자랑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하멜른사람들은 조상들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문화관광산업에 활용함으로써 더욱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게 된것이다.      문화의 세기를 살아가면서 우리도 문화산업, 콘텐츠산업, 창의산업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따라서 ⟪조선족의 브라우닝⟫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작자 E-mail : iks937@hanmail.net 2006년 4호
76    '돈 중독' 탈피 발상전환 필요하다 댓글:  조회:6429  추천:118  2007-03-08
'돈 중독' 탈피 발상전환 필요하다황유복2006년 12월 31일 밤, 프랑스의 낭트시 사람들은 «한해가 끝나는건 무덤으로 한발 더 다가서는것이고 그건 비극»이고 «우리는 늙어가는것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면서«새해 반대 전선» 이라는 뜻의 «포나콩(FONACON)»이 주도한 «2007년 새해 저지»시위에 나섰다고 합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들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여나 볼가»라는 노래가락과 같이 세월을 흘러가지 못하게 하고싶은 인간들의 심리는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그러나 세월은 인간들의 심정을 전혀 읽지 못하는가 봅니다. 때가 되면 그 언제나처럼 낡은 해는 가고 새해는 저절로 찾아오니 말입니다. 정해년 돼지해도 꿀꿀거리며 찾아왔습니다. 물론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에서 돼지가 상징하는 문화적기호가 «재부(財富)»인만큼 «돈(豚)의 해에 돈(金錢) 많이 버십시오.»라는 덕담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사실 돼지해와 관계없이 돈 많이 벌라는 말이 새해 덕담으로 된지는 오래되였습니다.개혁개방이후 우리는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는 하나의 신념을 갖고 열심히 뛰여왔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중국에는 30개의 소수민족자치주가 있는데 그가운데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봉급수준이 가장 낮습니다. 하지만 개인저축은 가장 많고 소비수준도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회는 지금 «재부바이러스»에 감염되여 있지 않나싶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벌어 부자가 될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마저 상실해버린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분명히 돈 중독현상입니다. 돈 중독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계속 금전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하여 우리가 버렸기때문에 지금 점점 사라져가고있는것들을 다시 불러봅니다. 우리 선대들의 피와 땀과 얼이 절어져있는 고향의 땅과 마을이 사라져가고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선족일수 있게 했던 민족문화의 령토입니다. 우리의 후대가 계속 조선족일수 있게끔 우리 말과 글과 문화를 가르치던 학교들이 사라져가고있습니다. 56개 민족가운데서 가장 높은 리혼률을 자랑하면서 우리의 가정들이 해체되여가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대를 이어가야 할 아기들이 줄어들고있습니다. 2006년 현재까지 10년동안 우리의 출산아기수는 60%나 줄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도시화», «세계화»라고 불렀습니다.전통, 가치, 도덕, 문화, 인성…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져가고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던 기쁨도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노을을 마주하고 조용히 마시던 차의 향기도 사라지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던 온정도 사라지고…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감도 퇴색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쫓는 속도경쟁속에서 우리 개개인들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초라해지고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보», «발전»이라고 했습니다.1979년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실시한후 우리는 28번째 새해를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GNP수준으로 세계의 제4대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고 세계는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정보화사회에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는 하와이대학 미래전략센터의 짐 데이토(Jim Deator)소장은 «정보화사회 다음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꿈의 사회)라는 해일이 밀려온다.»고 단언하고있습니다.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사회에서는 경제의 주력 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 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국가의 핵심경쟁력이 된다는것입니다. 경제발전만을 강조하던 중국도 지난해부터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두개의 날개로 정했고 창의(創意)산업을 부각시켜 «민족발전의 령혼»이라고 정의하고있습니다. 우리도 시대의 발전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지나간 한해를 돌이켜볼수 있고 새로운 꿈을 꿀수 있다는것이 새해의 문화적의의일것입니다. 우리 민족 구성원들도 새해를 맞이하여 «돈 중독»증을 탈피하고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조선족의 문화이고 중국문화의 한 부분이며 세계문화의 한 부분으로 우리 민족문화를 재창출해야 합니다. 문화는 단순히 인간의 정신적삶을 풍요롭게 할뿐만 아니라 오늘 이미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적 기간산업으로 등장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려서는 안되는, 그러나 이미 버렸던 소중한것들을 다시 주어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독창적상상력과 창의적사고방식의 능력을 길러 미래에 대한 슬기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새해의 벽두에 «문학과예술»지의 지면을 빌려 우리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머리를 조아려 세배 드립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다 사랑과 행복과 희망이 깃든 새로운 꿈 꾸어보세요.-«문학과예술»2007.1
75    [평론] 감자와 열매 댓글:  조회:6585  추천:72  2006-07-19
감자와 열매황유복 지난해 3월 외국의 어느 영향력 있는 일간지가 뉴욕, 파리, 도쿄, 상해, 서울 등 세계5대 도시 대표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종합 비교분석한 적이 있다. 감동과 지혜를 동시에 주는 따뜻한 이야기와 인생 충고를 담은 생활관련 실용서적들이 가장 많이 팔렸다는 통계가 나왔다. 소설분야에서는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을 융합시킨 팩션(faction)을 선호하고 비소설분야에서는 위로와 지식을 함께 얻는 《멀티플 독서》가 세계적 경향으로 되고있다. 그것은 오늘의 독자들은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원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우리 문단의 수필계에서도 이제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필들이 많아지고 있어 "신변잡기"보다는 "감동과 지혜(지식)를 동시에 주는" 수필쓰기에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하고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수필에서 담론되는 지식은 우선 정확해야 한다. 사이비지식이나 비틀어지고 왜곡된 지식으로는 차라리 쓰지 않기만 못하다. 공자가 당나라말기 혹은 그 이후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뭘? 정신 나갔다고? 그러면 "4대발명이후 사상사에는 공자가 있고 시에는 리백과 두보가 있으며 서법에는 왕희지가 있고 그림에는 오도자가 있다"고 한다면? 유머가 아니다. 어느 지성인이 쓴 수필 《신성한 비애》에 버젓이 나와 있는 말이다. 중국의 4대발명중 제지술은 동한(東漢)때(기원 105년), 인쇄술은 수(隋)나라 때 (약 1300년 전), 지남침은 전국시대(약 2300년 전)에 그리고 화약은 당나라말기(약 1000년 전)에 각각 발명되였다. 때문에 "4대발명이후"라면 시간적으로 당나라말기이후여야 한다. 따라서 공자, 리백, 두보, 왕희지, 오도자 그 어느 한사람도 4대발명이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공자가 죽을 때까지는 4대발명중의 그 어느 하나도 발명되지 않았었다. 글쓴이는 4대발명외에도 도자기에서 지페의 발명 등 여러가지 발명들을 라렬한후 ⟪그러고보면 고대 중국은 세계첨단기술을 언녕 장악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강국이였다. 그런데 그후의 염황자손들은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부처님의 발아래 대국을 높이 베고 잠들어버렸는가? 인생고해를 건너서 래세의 극락으로 가느라고 그동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것을 몰랐단 말인가?⟫라고 중국의 2천년 력사를 비틀고있다. 그런데 왜 2천년 력사를 싸잡아서 야유해야 하는가? 4대발명가운데도 1천년전이나 1천 300년전에 발명된것이 있고 글쓴이가 라렬한 수많은 발명가운데는 불과 수백년전의 발명도 있는데 어떻게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라는 질문을 할수 있단 말인가? 글쓴이의 론리적사유에 문제가 생긴것인지 아니면 수학개념에 혼돈이 생긴것인지 독자로서는 리해할수가 없다. 글쓴이가 그렇게 비틀어버린 중국의 2000년 문명사를 전문가들의 눈을 빌려 잠간 바라보기로 하자. 프랑스의 중국연구 전문가 에이리크 레푸쉐는 ⟪르몽드(Le Monde)⟫지 2005년 6월 16일자에 기고한 《룡의 약점》이라는 글에서 ⟪1820년전까지 중국은 세계의 주요한 강대국이였다. 그러나 공업혁명의 기회를 놓치면서 중국은 19세기의 유럽과 20세기의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아래 놓이게 되였다. 오늘 이 모든것들은 력사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중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돌아왔다.⋯2020년 중국의 GDP는 현재의 4배로 증가될 전망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연구원은 《아시아경제, 힘의 이동》이라는 론문에서 ⟪경제사가들은 력사적으로 중국을 세계 최대의 가장 앞선 국가라고 본다. 1820년부터 내전과 기근으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1820년의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GDP의 33% 정도를 차지하였고, 2000년 이상 중국은 세계의 최고국가였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12세기까지는 서방세계의 1인당 GDP보다 높았고, 18세기까지는 세계 평균보다 더 높았다. 16세기 대 항해의 시기에 중국은 포르투갈이나 네델란드보다 더 대규모의 기술적인 선단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했다. 2004년 중국의 GDP는 세계에서 제6위였고, 2005년 GDP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4위가 되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05년 12월에 "구매력평가기준으로 중국 경제력이 2017년쯤 미국을 앞지를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것은 1820년 이후 세계력사의 흐름에서 강자의 위치를 내놓았던 중국이 200년 후에 다시 세계의 최강자로 재등장하게 된다는것이다. "염황자손들은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부처님의 발아래 대국을 높이 베고 잠들어버렸는가?"라는 글쓴이의 물음에 중국경제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수치를 따지면서 "1820년전까지 중국은 세계의 주요한 강대국이였다","2000년 이상 중국은 세계의 최고국가였다"라고 대답한다. "진부한 관념상에서는 유구한 력사가 일종의 자랑일수도 있으나 현대시점에서는 전진의 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주지하다싶이 유구한 력사는 획시대적이고 거족적인 발걸음에 반하여 현대화의 큰 강을 건너는데 이미 짐이 되였다"라고 하는 글쓴이의 시각에서는 중국의 "유구한 력사"가 아니꼽기만 하다. 그러나 만약 그 "유구한 력사"와 유구한 력사과정에서 축적해온 문화의 힘이 없었다면 중국이 최근 20여년간 세상을 놀라게 한 경제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룩해 제4의 경제대국으로 될수 있었겠는가? "모종 의미에서는 력사가 간단한 나라일수록 좋다", "미합중국을 보라. 그들은 200여년의 짧은 력사를 기록하고있으나 과학기술발전사는 세계를 놀래우고있지 않는가? 초대강국이 되여서 아메리카사자마냥 온 지구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제패의 발톱질을 하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미국이라는 "국가"의 력사가 길지 않더라도 미국을 만든 사람들은 원래 공업혁명을 주도하던 "대영제국"의 국민들이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력사는 결코 간단하지도 짧지도 않다. "와스프(WASP-백색, 영국계, 개신교도)"들은 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가서 원주민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의 주도권을 쥘수 있었다. 미국은 력사가 짧기때문에 초대강국이 된것이 아니다. "채륜의 종이, 장형의 지동의, 꽃불로 하늘을 수놓는 폭죽, 좌청룡우백호따위나 찾는 지남침"이라고 글쓴이는 중국의 4대발명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폄하하고있다. 중국의 4대발명은 제지술, 인쇄술, 지남침과 화약이다. 지남침의 경우 "좌청룡우백호따위나 찾는"것이 아니라 "16세기 대 항해의 시기에 중국은 포르투갈이나 네델란드보다 더 대규모의 기술적인 선단(船團)을 거느리고있었다"고 한것처럼 중국은 16세기에 지남침을 항해에 리용했던것이다. 수필의 마지막에서 글쓴이는 "사람은 감자가 아니다. 뿌리에 매달려 클것이 아니라 뿌리가 공급하는 자양분으로 무성하는 가지에 주렁진 열매로 향기 풍겨야 바람직하다"라고 한다. "뿌리가 공급하는 자양분으로" 자란다는 의미로는 "뿌리에 매달⟫린 감자나 "가지에 주렁진 열매"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아무리 "향기 풍기"는 열매라도 뿌리가 없으면 자랄수도 존재할수도 없다. 구태여 감자와 열매를 구별시킨다면 괴상(塊狀)의 땅속줄기인 감자는 열매에 비해 모양이 투박하지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영양소가 거의 다 들어있는 《건강식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열매도 비교되지 않는다. 쌀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식민통치시기 감자는 우리 민족 농민들을 아사(餓死)에서 구제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별 리유없이 글쓴이는 18세기 영국인들처럼 감자를 비천하게 생각하고있다는 느낌을 주고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글쓴이가 "200여년의 짧은 력사를 기록하고있으나 과학기술발전사는 세계를 놀래우고있"다고 한 미국도 감자가 아니면 력사가 분명히 바뀌였을것이다. 스튜어트 리 앨런이 쓴 "악마의 정원"이라는 책에 따르면 감자는 18세기 영국인 신교도들에게는 라태의 상징이였다. 그들은 아일랜드인들이 빵 대신에 지저분한 뿌리(감자)나 먹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잠이나 자고 간통이나 즐기는 족속으로 변해가고있다고 여겼다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영국인들도 감자를 받아들이였다. 감자는 밀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수 있었기때문이였다. 1845년 감자마름병이 발생하여 아일랜드의 감자산량이 5년간 90%가 감소되자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130만명이 미국으로 이민했다. 케네디대통령의 조상도 그때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국의 국부로 모셔지는 조지 워싱턴도 감자를 심던 농장의 농장주였다. 감자는 병사들의 식량으로 미국 독립전쟁에도 공헌했다. 1995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식량으로 착안한 작물도 감자였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프렌치 프라이를 만드는데 년간 140만톤의 감자를 쓰고있다. 감자가 없는 미국의 음식문화는 상상조차 할수 없다. 감자이야기하다 보니 이승희의 시 《씨앗론》이 생각난다. 《꽃이 피거나/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본성이 아닌 거야/검은 흙 속을/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온 시간들이/단단하게 뭉쳐 있다가/풀리는 일이야//감자꽃이 피는 것은/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땅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생겨나고 있다고/고백하는 것이지》.
74    [수필] 푸른 꽃 댓글:  조회:6500  추천:66  2006-06-22
푸른 꽃황유복 독일 랑만파의 대표시인인 노발리스(Novalis)는 1801년, 29세의 나이에 페병으로 죽으면서 "푸른 꽃(Die Blaue Blume)"이라는 소설을 남겼다. 소설의 주인공 하인리히는 꿈에서 푸른 꽃과 푸른 꽃이 변한 상냥한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를 찾아 먼 려행길을 떠난다. 마침내 아우구스부루크에서 시인 크링스오르와 그의 딸, 푸른 꽃에서 본 모습의 마틸데를 만난다. 그는 다시 마틸데가 거센 풍랑을 만나 죽는 꿈을 꾸는데 그 꿈은 현실로 변하고 마틸데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녀의 죽음은 그가 시인으로 되는 결정적인 체험으로 된다. 노발리스가 푸른 꽃을 사랑과 행복의 상징으로 선택했고 또 주인공이 그것을 찾아 먼 려행길을 떠나게 하는것을 보아 독일에서는 푸른 꽃이 너무나 희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문단의 한 수필인은 최근에 발표한 수필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장백산" 2005년 5호)에서 "푸른 꽃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우리 조상들은 왜 "하늘빛과 초록빛⟫을 구별하지 않고 합쳐서 푸른빛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푸른 꽃⟫이라면 번거롭더라도 일단 그것이 하늘색 꽃인지 초록색 꽃인지를 가릴수밖에 없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하늘색(Blaue) 꽃이 분명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하늘빛의 푸른 꽃으로는 현호색이나 염아자를 들수 있다. 현호색은 양귀비과의 독이 있는 작은 풀로 이른 봄 양지바른 숲속이나 논둑에서 연한 하늘색의 꽃을 피우는 약용으로 쓰이는 풀이다. 염아자는 도라지과의 식물로 골짜기 습지변에서 자라는데 꽃은 짙은 하늘색이다.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를 쓴 수필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푸른 꽃"은 초록색 꽃인것 같다. 글쓴이는 "꽃은 푸르른 생명의 빛갈인 초록을 피"한다면서 "수많은 꽃중에 유독 저 흔한 푸른색은 없는 리유를 다시 생각는다. 빨강, 노랑, 분홍, 하양, 감장, 보라, 주홍 그리고 알락달락 혼합 꽃"그러나 유독 파란 꽃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푸른빛 꽃을 상상해보라. 너무 기름져서 꽃이 꽃다워 보이겠는가"라고 자신의 주장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 "푸른빛 꽃을 상상"해야 할 리유는 전혀 없다. 초록색의 푸른 꽃은 현실세계에 엄연히 존재할뿐만아니라 "꽃이 꽃다워 보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그 푸른 꽃들은 "과학이 발전"하여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것도 절대 아니다. 우리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산이나 들에서 볼수 있는 고유식물중에서 초록빛의 푸른 꽃으로 가장 흔한것은 아마 천남생일것이다. 천남생과의 유독성식물로 중국 고대의 청동술잔모양의 록색 혹은 자색 꽃을 피우며 가을에는 붉은 열매를 맺는데 덩이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북경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푸른 꽃은 록색꽃 란초와 록색꽃 국화일것이다. 꽃과 잎이 모두 록색이지만 꽃의 색갈은 잎보다 좀 연하기때문에 소박하면서 운치가 있어 좋다. 홍화록엽(紅花綠葉) 의 꽃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눈에 강한 자극을 주기때문에 글을 쓰거나 책을 보다가 지친 눈을 휴식시키기에는 별로이다. 그러나 연한 록색꽃이 피는 춘란, 나비란(蝴蝶蘭) 그리고 소국(小菊), 국화는 서재에서 키우면서 눈의 피로를 가셔내는데는 일품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불교학사전"에서 수련(睡蓮)을 찾아보면 수련을 우담바라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푸른 꽃이 피는 수련을 가장 높이 치고있다. 련꽃도 푸른색 꽃을 피우는데 불교에서는 푸른색 꽃이 피는 수련을 가장 귀중하게 본다는것이다. 그보다도 우리가 가장 흔히 볼수 있는 푸른 꽃은 아마 강아지풀일것이다. 시골은 말할것도 없고 도시의 길가에서도 곧잘 자라기때문에 누구라 할것 없이 자주 만날 수 있는 풀꽃이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과 놀면서 강아지풀의 꽃차례를 따 반으로 갈라 코밑에 붙여 수염으로 삼기도 했고 또 꽃차례를 따 손바닥에 놓고 가볍게 흔들어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강아지풀 게임도 했다. 우리는 흔히 강아지풀을 보잘것 없는 잡초로 생각하기때문에 강아지풀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린다. 그러나 그토록 하찮게 보이는 강아지풀꽃에도 아름다운 꽃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옛날 로마에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료로 병도 치료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머리도 깎아주었다. 또한 그는 왕실 사람들의 치료와 리발도 맡아해주었다. 하루는 왕자가 평민들의 머리를 자르는 의사의 가위가 싫어 황금가위를 주면서 머리를 깎으라 했다. 황금가위가 잘 들리 없었고 몇올의 머리카락이 가위에 씹혀들자 왕자는 벌컥 화를 내면서 의사를 처형하겠다고 감옥에 처넣었다. 의사는 자신의 생명보다 왕자가 무고한 자기를 처형함으로써 왕자의 덕성에 허물이 생길것이 걱정되여 자결했다. 한편 부왕의 꾸지람을 듣고 잘못을 깨달은 왕자가 감옥을 찾았을 때 의사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후 의사의 무덤에 작은 풀이 돋아나 바람에 나부끼면서 긴 목을 빼들고 누군가를 향해 그건 아니라고 애처롭게 도리질을 했다. 바로 강아지풀이였다. 그 강아지풀들이 이제는 《푸른 꽃은 없다》고 하는 인간의 독선을 향해 그건 아니라고 도리질하지 않나 싶다. "꽃이 푸른빛을 피하는 까닭을 알면 세상이 편해진다.⟫라는 담론으로 시작되는 수필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의 짜임은 3단 구성으로 되여 있다. ①꽃은 푸른빛을 피한다(파란 꽃은 없다) ②그 까닭을 알면 ③세상이 편해진다. 그런데 론술의 대전제로 되는 ①⟪파란 꽃은 없다⟫는 판단이 완전히 틀리기때문에 ② 푸른 꽃이 없는 까닭에 대한 론리의 전개는 공중루각일수밖에 없고 ③ ⟪세상이 편해진다"는 결론도 무효일수밖에 없다. 그리고 론술과정에 "꽃은 여러 식물중에서도 유독 생명력이 짧다"라는 주장도 보이는데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여서 리해가지 않는다. 꽃을 식물의 한 종류로 분류할수 있단 말인가? 꽃은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에게 있어서 생명의 한 순간일뿐이다. 론술형 수필을 쓰면서 잘못된 판단을 대전제로 삼은 글들이 가끔 보인다. 수필 《팔이 안으로 굽혀지는 리유》("도라지"2005년 제5호)에서 글쓴이는 "조물주는 왜 인간에게만 안으로 굽히는 팔을 선사했을가"라는 질문으로 론리를 전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물주"가 인간뿐만 아니라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이나 원숭이들에게도 "안으로 굽히는 팔을 선사⟫했음은 유치원어린이들도 다 알고있는 상식이라는 점이다. 과학철학자 어니스트 네이글은 "과학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상식이란 코앞의 헛간을 총으로 쏘아 맞히는 정도의 헐렁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지식이라고 했다. 누구나 다 알고있는 "헐렁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지식"조차 올바르게 쓰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꽃은 인간을 위해 피는것이 아니다. 꽃은 자기 종족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피여난다. 렬악한 환경에서 피여난 야생화일수록 꽃의 색갈과 향기가 더 짙어진다는것은 너무 어렵게 만나는 벌이나 나비들을 놓치지 않고 유혹하기 위하여 한껏 꽃의 매력을 발산하기때문이다. 꽃을 피우는것은 절박한 상황에서 종족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식물들의 처절한 몸짓이다. 그러한 꽃을 바라보면서 인간들이 정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된다. 한떨기의 작은 풀꽃들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전설이나 꽃말을 만들어주는것은 인간의 랑만이다. 보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작은 풀꽃 하나라도 생명이 소중하다는 리치를 알고 그 꽃들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이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으니 이런 혹은 저런 꽃은 없다든지 내가 싫어하는 색상의 꽃은 없다는, 상식조차 무시한 인간의 독선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73    남호손의 수필을 읽을 때 댓글:  조회:5910  추천:74  2006-06-01
구운 옥수수를 먹는 기분으로 손 뜨거운줄 모르고 쥐기는 쥐였지만 뜨거워서 입에 대지 못한다.급하면 안되는줄로 안다. 너부 술술 읽게 되기 때문에 내가 속도를 공제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다 읽어내려가 버린다. 절대 급히 읽어서는 안되는, 빨리 읽어버리기엔 너무도 아까운 글이라 나는 이렇게 천천히, 앞질러 달려가는 눈길의 옷자락을 당긴다. 천천히 읽어내려가며 음미하는 재미란 옛날 맛있는 사탕알을 천천히 녹여먹는 기분이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순수한 사랑이 아름답고 국제적의식이 우리 문화에 융합되여 표현이 된다. 아메리카에서 춘향의 수집음이 등장해도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허무궁: “나는 글을 이렇게 읽는다” 《도라지》2005.2
72    단평 댓글:  조회:5330  추천:70  2006-05-30
단평 황유복선생의 《선택》은 바로 우리 조선족들 모두의 앞에 놓여진 선택을 설교가 아닌 명확한 수치와 사실적 근거들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으로 태여나서 유아시절의 선택으로부터 성장기에 들어서 개인적인 인생선택,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인 민족의 선택, 황유복선생은 개인과 민중, 민족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들이 거쳐 온 선택과 또 해야 할 선택들을 하나하나 귀맛있는 의론으로 렬거하면서 나중에 우리 민족앞에, 조선족으로서의 우리앞에 놓여진 선택을 끄집어낸다. 하기에 수필은 정론성이 강하지만 딱딱하지않고 읽을 맛이 있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배사람을 위한 순풍은 있을수 없다》 는 철리적인 결론으로 황유복선생은 이런 선택 저런 선택 하지만 결국 우리앞에는 오로지 정진(精進)하는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는것을 말해준다. 전경업: “수필, 정서의 매듭을 풀어라”,《도라지》2001.4 현실적인 삶은 현장의 감각을 위주로 진행이 되지만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의미부여도 삶의 주요한 부분이 아닐수 없다. 토속적인 고향, 사모했던 처녀의 모습이 그에의 그리움으로 차있는 화자의 모습이 과거와 현재에 걸쳐 유기적인 관계로 잘 펼쳐지고있는《옥년이와 봇나무》(《도라지》,2002.1) 에서, 참된 인간성에 대한 추구는 여전히《완강》하게 안겨왔다. 어릴적 옥년이한테서 봇나무를 배우고 젊어서 련인에게 봇나무를 읊조리고 이제 봇나무의 순리를 익히고 따르려는 저 모습은 하얀 내음이 가득 풍기는 살아있는 또 다른 봇나무인가. 김경훈: “정, 사랑, 진실과 가공의 사이”, 《도라지》2002.2 《도라지》에 실린 남계의 《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 》, ⋯는 그 어떤 생활현상이나 사실, 사건과정에 대한 표층적인 따분한 서술정도에 그치고마는것이 아니라 생활의 섭리, 인생에 대한 심층적사고에로 접근해가는 자세가 유달리 이뻤다. 《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에서 작자는 학창시절 어느 한번 학습에서 성적 1등을 따냈지만 가난때문에 람루한 옷으로 하여 선생이 다른 학생을 무대에 나가 상장을 받도록 하고 기념사진마저 못 찍게 한 설음을 되새기고나서 이렇게 쓴다. 《가난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바가 더욱 많다. 우선 가난은 인간에게 불편함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주면서 세상을 정확하게 볼수 있는 혜안을 선물해준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항상 꿈이 있기 마련이다. 그 꿈은 인간으로 하여금 눈앞의 가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갖게 한다. 부족함과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뜻의 넉넉한 삶을 살아갈수 없다.》(《도라지》2002,3호, 제105페지) 그래서 공자님은 《인(仁)》과 함께 《인(忍)》을 인덕이라 하고 다른 한 현인은《궁하면 변혁을 꿈꾼다》고 튕겼던것일가. 상기 인용문은 작자의 인생살이에 대한 진실한 체험의 개괄, 신념의 확인일것이다. 인생을 심오하게 체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런 글을 써낼수 없는것이다. 이 수필은《가난》과《선물》이란 두 개 부호로 체험된 인생의 철학을 깨쳐주고있는것이다. 책이나 일상에서 떠도는 개념이나 설교에서 초월하여 자기나름대로의 사고를 할줄 아는 그 근엄한 얼굴표정이 유난히 미쁘다. 전국권:“수필창작의 황금시대”,《도라지》2002.4 수필가가 현실의 방관자일수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면 수필이 과거지향적일수 없다는 말도 성립된다. 우리의 과거는 오늘을 위한 과거이고 우리의 력사는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본 력사이며 우리의 자연은 현제와의 관련속에 존재하는 자연이다. 현실과 격리된 과거는 과거를 위한 과거일뿐이고 현실과 떨어진 자연은 음풍영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그러나 우리는 관조와 달관이라는 미명아래 꽤 오랜 시간동안 수필을 현실에서 격리시켰었다. 거기에는 또한 현실비판의 수필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리유도 한몫했다.하지만 남계의 수필은 우리의 이러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를 잘 보여주고있다. 필자는 일찍《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란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남계의 수필에 흠뻑 취했던적이 있다. 담담하고 조용하지만 진지하고 무게가 있었다. 현란한 수사나 의도적인 구성이 없지만 문맥이 류창하고 문체가 탄탄했다. 이번 《도라지》 4호에 실린《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역시 남계 특유의 진지한 자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삶과 죽음의 비교속에서 오늘의 삶에 충실하는 인생이고 싶다는 소박한 다짐이 설득력 있게 잘 안겨온다. 이 수필의 설득력을 필자는 작자의 진지한 창작자세, 몸소 겪었던 두 번에 걸친 사고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성, 그리고 탄탄한 문체에서 찾고싶다. 한마디로 작자의 진지함과 그 진지함을 설득력으로 바꿀수 있는 문학적능력이 이 수필의 진정성을 확보하게 한다. 인생관조의 수필이 많아지면서 우리 수필계에도 죽음을 대상으로 한 수필이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사실 그 진지함보다는 일시적인 호기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아 이 수필과 대조를 이룬다. 당위성을 강조한 제목에서 혹 설교조가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본문을 읽다보면 잔잔한 서술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력사학이 전공인 작자의 글이 어느 문학인의 작품 못지않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점은 시사하는바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서영빈:“수필의 진정성을 위하여”, 《도라지》2002.5 황유복의 수필쓰기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리유는 그로 하여 우리가 학구적 치밀성에 바탕을 둔 진정한 의미의 학자수필을 대할수 있었다는 점이다. 서영빈:“소비적인 삶과 수필문학의 선택”,《장백산》2004.1 남호손의 《,4월을 보내면서》에서는 례년보다 일찍 찾아온 작년 북경의 봄 더위와 그 《잔인한 더위》에 워낙 짧은 화기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져버린 봄꽃들, 그리고 작자 자신의 지나온 청춘의 아쉬움을 관련시키고 있다. 나이 지긋한 분이 웬 꽃타령이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꽃에 대한 감정은 나이에 별로 상관이 없다.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의 소실에 대한 서글픈 감정이 누구라고 다르랴. 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의 존재기간은 매우 짧다. 거기다가 작년봄 북경의 화기는 이상기온 즉 너무 일찍 찾아든 고온과 강한 햇볕 때문에 더구나 짧았다. 그러니까 워낙 짧은 생을 너무 일찍 마감하고 스러진 꽃을 보며 처녀들이 떨어진 꽃잎을 줏는 행위는 너무도 당연하다하겠다. 저 유명한《홍루몽》의 림대옥도 그래서 떨어진 꽃을 주어 매장하고 장사한것이리라. 그런데 이 수필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문화대혁명이라는 너무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자신의 청춘을 서글퍼한다는데 있다. 그것은 작자 한사람만의 불행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공명과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품에 인용된 꽃에 깃든 옛 시인들의 시구들은 이러한 감동을 우리 인생사 일반에 확산시키는 구실을 하는것 같다. 로년에 수필에 입문하여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써나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르익어가는 문장의 세련미도 이 수필가를 돋보이게 하는 한 측면이다 장춘식: “도시적상상력: 수필시대가 도래하는가”,《도라지》 2005.1
71    한 사람의 힘 댓글:  조회:5544  추천:96  2006-05-26
한 사람의 힘 김 화(수필가, 교사) 대학시절에 죤 G. 아빌드슨이 감독한 영화 《파워오브원(The power of one)》을 본후로 한 사람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힘은 얼마나 될까? 인간세상의 움직임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던 위인들 개개인의 힘은 얼마이고 문학작품에서 풀로 자주 비유되는 평민백성의 힘은 얼마일가? 한 사람의 힘을 물리에서 뉴톤의 개념으로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눈으로 귀로 그 힘의 정도를 느끼며 살고 있다. 지구상의 인간 개개인의 힘의 크기는 참으로 천차만별일것이지만 그런 힘이 합쳐서 인간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다시 영화를 상기시켜본다면 주인공인 PK는 특이한 생활경력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인민들의 마음속에 레인메이커(rainmaker)로 추앙되여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들에게 확고한 신념과 힘을 심어주었다. 영국인인 PK가 결국은 인종철폐운동에 나서는데 영화에서는 주인공 PK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아주 감명 깊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조선족사회의 한 성원인 이분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힘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 교수님이시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직접 황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지난여름 한국에서 열린 《2003년 한국학국제학술회의》에서였다. 가까이에서 만난 황교수님은 듣던 소문 그대로 《틀이 없고 대방을 편하게 해주고 리해를 해주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며 상대방을 끌어가는 강한 힘》이 있었다. 중국, 미국, 일본… 등 17개 나라에서 온 동포교육자들이 참석한 그번 학술회의에서 황교수님은 중국조선족동포교육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존재하는 문제점과 해결책들을 제시하였다. 그는 2000년 전후의 한국경제와 중한경제교류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소위 한국 내 《조선족불법체류자》들은 한국경제가 IMF를 극복하는데 일조한 공로자들이고 중국조선족은 한국경제발전의 공신들임을 역설하였다. 이어서 황교수님은 《한국정부와 한국국민은 대 중국 시각과 대 조선족 시각을 전환해야 할 시대가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영부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황교수님은 조선족을 대변하여 한국은 조선족동포들의 도움으로 생기는 대중무역흑자의 천분의 1이라도 조선족교육에 써달라고 요청했다. 황교수님의 연설은 마디마디 설득력이 있어 때론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고 때로는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했다. 황교수님의 파워는 조선족사회문제점을 적시적으로 감안하며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또한 행동으로 밀고나가는데 있다. 황교수님은 민족교육이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중국 내지 도시의 우리 민족 학생들의 민족언어상실문제를 제기하였다. 부모들을 따라 중국 내지도시에 들어온 학생들은 현지에 조선족학교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민족어를 상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조선족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말을 상실하는 청소년의 증가도 빨라지게 된다. 그는 민족언어를 상실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민족교육은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민족언어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황교수님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아껴 모은 돈으로 1989년에 북경조선어학교를 설립하였다. 현재까지 심양, 장춘, 할빈, 목단강, 단동, 길림,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등 도시에 분교를 설립하여 우리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가담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9회에 걸친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의 개최를 통해 민족교육, 민족경제, 민족인구, 민족문화 그리고 민족정체성 등 조선족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벤처산업인재육성, 장학재단운영, 민족문화사업 지원, 록색기술대학설립 등 황교수님은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국제적인 학자로서, 교육가로서, 사회활동가로서 맹활약하고 있는 황교수님은 우리 마음속의 레인메이커이다. 그가 조선족발전에 기여한 많은 업적들은 필자의 짧은 필력으로 다 표현할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황교수님과 같이 우리민족을 위하여 힘을 바치는 사람들을 필자는 다 레인메이커라고 말하고 싶다. 가뭄이 들어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대지와 모든 생명에 비를 청하여 주고 지켜주는 레인메이커라고. 《우리 민족의 전체 구성원들은 남과 녀, 로와 소를 가리지 않고 힘을 합쳐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황교수님의 이 한마디 말로 끝을 맺으면서 우리 모두 이 사회속에서 자신의 힘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 어떨가 싶다. (《연변통신》2004.2)
70    인생달관자의 여유 댓글:  조회:5313  추천:89  2006-05-24
인생달관자의 여유 남복실(수필가) 《도라지》에 실린 황유복교수님의 수필을 거의 다 읽었다. 력사학자가 쓴 글인데도 오랜 문학수련을 거친 작가의 글처럼 참 편하게 읽혀진다. 첫사랑, 눈사람, 이름, 저녁노을, 할머니…등을 주제로 한 글에서 진솔한 내면의 고백이 가슴에 와닿는가 하면 사학자로서의 박학다식, 정의를 부르짖는 작가의 주장 등이 생경한 설교로서가 아니라 진실한 삶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글 중간에 문득문득 튀여나오는 위트나 유머는 읽는이들을 흥분시킨다. 또한 비전문인이 쓴 글이라서 소재면에서 신선하고 다양하여 언제나 기대가 되는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남자․술․ 그리고 약속》이란 글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서두, 결말은 물론이고 글 사이사이에 인생달관자의 여유와 멋이 넘치여 아주 인상깊다. (《도라지》2004.1)
69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댓글:  조회:5076  추천:80  2006-05-22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최순희(수필가, 교수) 남계선생님의 인생수필을 읽은 감수를 한마디로 얘기하라고 한다면 한장의 흑백사진과 다른 한장의 컬러사진을 같이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말하고싶다. 선생님의 수필에 등장하는 할머님, 옥년이, 군감자, 이바구 등이 한장의 흑백사진이고, 빨간 홍당무코에 흰 옷을 떨쳐입은 눈사람도, 푸르고 무성한 잎의 흰 봇나무도 흑백사진으로 찍혀서 안겨온다. 설사 색을 낸다고 해도 슬프고 어두운 색조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 시절은 설사 흑백사진으로 찍는다 해도 컬러으로 남는다. 세계 각국에서의 학술경력과 박학다식한 모습은 분명 화려한 컬러사진이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과 같은 저녁노을도 소년 유복(遺腹)에게는 흑백사진이고 성공한 유복(有福)에게는 찬란한 컬러사진이다. 수필을 두 가지 사진으로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해사해서가 아니라고 말하고싶다. 남계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춥고 배고팠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시종일관 변함없이 남아있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생, 미래, 사랑, 행복, 진실, 학문에 대한 진지한 추구였다. 선생님의 인생관이 오늘의 인생수필을 잉태했다. 남계선생님에게는 컬러사진이나 디지털사진보다도 흑백사진이 더 보귀하고 값지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도라지》2004.1)
68    인간의 향기와 철학이 있는 글 댓글:  조회:5332  추천:90  2006-05-18
인간의 향기와 철학이 있는 글 김훈(소설가) 지난해 저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해변문학제에 참가한적이 있습니다. 해변문학제에서 한국에서 온 한 수필가가 한국의 수필문학에 대해 피력하면서 《한국엔 수필독자보다 수필작가가 더 많다》고 개탄했습니다. 한국의 수필문학상황에 비해 중국 조선족수필문단은 날이 갈수록 활약적이고 또한 다른 쟝르의 문학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대체로 소설은 재미로 읽는 글이고 수필은 감명깊게 읽는 글이라고 합니다. 아마 중국 조선족문단의 수필이 감명깊게 읽혀지는 글이여서 날이 갈수록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있는가봅니다. 황유복교수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것은 황유복교수님의 글에서 예리한 관찰력, 풍부한 상상력, 박학다식한 사고력과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개성을 읽을수 있고 많은 지적정보를 얻을수 있다는점입니다. 워낙 교수님이 오래동안 민족학에 대해 전공해오시고 또 미국 하버드대 방문학자 경력까지 거치면서 세계적인 안목을 넓혀오신 학자여서 그런지 황유복교수님의 수필에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담은 사색적이고 충격적인 글이 있는가 하면 고향, 동년, 사랑, 자연에 대한 동경과 정감을 담은 글도 있고 또한 철학적 서정과 여운을 남기는 글도 있습니다. 심미적, 철학적 가치와 솔직한 정감이 겸비된 글이 수필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향기가 넘치고 철학이 있는 글, 독자들의 마음에 가장 먼저 와닿는 교수님의 력작이 새해에도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도라지》2004.1)
67    여운의 아름다움 댓글:  조회:5372  추천:95  2006-05-16
남호손의 수필《태항산기슭에 핀 들국화》 읽기 윤해란 꽃이 화두로 되였다면 누구라 할것없이 하고싶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우리가 제일 많이 사랑하고 례찬해온 자연물은 단연코 꽃일 것이다. 운치의 상징으로 꼽히는 매화나 련꽃,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이나 작약, 사랑을 대표하는 장미, 번영으로 비유되는 진달래나 무궁화를 망라한 수없이 많은 봄꽃과 여름꽃, 가을꽃들에 대하여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간직하고 있을 《꽃같은 시절》이나 기쁨으로 《웃음꽃피우》던 지난날의 추억에 대하여 그 누가 하고픈 말이 없겠는가? 남호손은 수필 《태항산 기슭에 핀 들국화》에서 《기운이 쇠잔해진 가을햇살이 게으름을 피우면서 찬서리를 걷어낼 때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들과 락엽들 사이에 청초하게 피여있는 들국화》를 화두로 삼고 있다. 어릴 때 할머님을 따라 가을걷이를 하는 논밭에 가서 메뚜기를 잡다가 조우하게 된 《숨막힐 정도로 예쁘게》 피여있는 들국화를 처음 보게 된다. 《아무리 임자없이 들판에 피여있는 꽃이라도 일단 꺽었으면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할머니의 소박한 교육과 할머님의 사랑으로 한 겨우내 《들국화의 특이한 꽃향기에 취해》 잠들던 어린시절의 추억에서 작가는 《나는 들국화를 할머님의 사랑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고 《모든 꽃들 중에서 들국화를 제일 사랑하게 되였다》라는 고백을 이끌어 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 방황하던 작가는 천진시 교외의 들판에서 보게 된 들국화를 고향과 할머님을 향한 마음의 《망향초》로 인식한다. 그때 작가가 쓴 한시중《아시원(兒時願)》과《남호(할머님의 택호)심(南湖心) 》 에서 작가의 절절했던 그 때의 심정을 쉽게 읽을수가 있었다. 이제 《세계적 석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남호손은 이순의 나이에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하기 위하여 태항산오지로 들어간다. 태항산 기슭에 묻힌 조선의용군 렬사들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그의 들국화사랑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생명까지 바친 조선의용군 선렬들의 넋》으로 승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남호손 수필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작가는 들국화라는 화두를 빌려 자신의 일생을 쓰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님의 사랑과 젊은 시절 할머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족사랑 이 오늘의 선렬들에 대한 추모로 대표되는 민족사랑으로 승 화되는 과정을 청초한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청초한 삶을 살아 가는 사람만이 쓸수 있는 청초한 글은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수필은 독자로 하여금 강요나 설득을 요구하지 않는 문학장르라고 한다. 독자들을 우선 배려해주는 여운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수필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 할수 있다. (《도라지》2004.1)
66    5. 나오면서 댓글:  조회:5298  추천:62  2006-04-28
5. 나오면서 지금까지 필자는 남계의 수필을 3개 항으로 나누어 해석해보았다. 남계의 수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니까 남계는 수필을 통하여 참삶의 가치란 어떤것인지를 보여주면서 그러한 참삶의 가치를 포기하고 소모적인 외래의 류행문화에 물젖어 리기주의, 향락주의에 빠져가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인생태도를 비판하고있는셈이다. 그러면서 그런 인생가치의 구명 과정에 인간의 정체성, 나아가서는 민족적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다시 참삶의 가치를 구하려는것이 남계의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물론 문학작품으로서 남계의 수필은 여러가지 예술적인 장치도 동원하고있다. 인문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그리고 생활적 지식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론리적전개라든가 지나간 청소년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통한 순수미의 추구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때로 그러한 문학적장치를 리용할 때 늦게 문학에 입문한 수필가로서의 한계도 더러 로출된다. 가장 눈에 뜨이는것이 딱딱한 문장구성과 한어(漢語)적표현의 흔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면에의 한계는 점차 극복될것으로 보이며 또 남계의 수필을 읽을 때는 이런것들보다 남계의 삶의 가치인식, 사회적책임의식을 리해하는것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는게 아닐가 한다. (《도라지》2004.1)
65    4. 민족의 정체성 확인하기 댓글:  조회:5875  추천:78  2006-04-26
4. 민족의 정체성 확인하기 일반적으로 정체성(identity)은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속에서 대답되여지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자기다움의 사상을 뜻한다. 이를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자아 외부의 변화에 직면하여 이루어지는 자아의 적응(adaptation)기제》로 정의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정체성이 타자와의 차이―그것도 그 사회에 있어 문화적으로 강화된 차이를 만들어가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그 사회속에서 자신의 존재의의와 위치는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한편 정체성은 순간적인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의 산물(상황적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역할, 상황, 그리고 집단들과의 관계속에서 고정된 의미로 남기도 한다(사회적정체성 및 개인적정체성). 정체성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정체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해석하고 해석된 의미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사람은 진공상태에서 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존재이기때문에 개인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개인이 소속감을 갖게 하는것은 피부색이나 얼굴모양과 같은 생물학적, 육체적 특징만이 아니고 오히려 공동의 력사적, 문화적인 관습과 전통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이러한 공동의 경험과 습관의 의미가 의심스러울 때 인간의 정체성은 도전받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정체성을 모색하게 된다. 민족정체성은 인간이 갖는 정체성의 한부분이다. 민족정체성은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 공유된 민족적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a sense of belonging)이라고 볼수 있다. 이것은 한 개인의《자아개념(self-concept)》의 일부분인데 이것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를 스스로 정의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서 정의되여질수 있다. 정체성 리론을 장황하게 설명한데는 물론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남계의 수필에서 그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특별히 강조된데도 원인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있는것은 아닐가, 바로 이점이 남계가 자신의 수필에서 정체성의 문제에 특별히 주목하고있는 원인이 아닐가 하는 생각에서다. 한 개인의 삶의 의미는 인간의 정체성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즐거운 삶이라고 하더라도 정체성을 상실하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기때문이다.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가 이 경우다. 이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기호라 할수 있다. 그런데 남계는 이름다운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유복자여서 유복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를 이름으로 써온것이다. 그러나 수필에서 사실상 소학교에 입학하는 날 김선생님이 유복(遺腹)이 아닌 유복(有福)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것은 이미 고유명사가 된셈이다. 남계의 이름콤플렉스는 수필을 발표할 때 《남계》라는 호를 사용하고있는데서도 은연중 드러난다. 이 수필에서 남계가 말하고자 한것이 사실은 유복이라는 이름의 래력,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속에 담겨진 해방후 우리 사회의 정신사였다고 보여지지만 그 정신사속에는 남계라는 한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정이 드러나고있다. 그러나 남계의 정체성인식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민족적이다. 그는 첫사랑의 실패에서 그러한 민족적정체성을 처음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첫사랑의 실패는 가장 참담한 방식으로 나에게 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다. 그것도 내가 중앙민족대학 이라는 학과목에서 배울수 없었던 심층적인것을 터득케 했다.》(《내가 만들었던 눈사람》에서) 여기서 남계가 터득한 리치는 민족성을 통한 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다. 그래서 《그때의 깨달음이 ⟨조선족⟩에 대한 나의 사랑의 씨앗이 되였고 오늘에 성취한 나의 학문의 에너지》가 될수 있었던것은 아닐가? 내가 알기로 남계가 이룩한 풍성한 학문은 한마디로 조선민족의 문화적특징 혹은 민족적개성에 관한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구는 결국 남계가 소속된 집단, 즉 중국의 조선족이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존재할수 있는, 혹은 중국에 존재해야 하는 리유를 밝히고있는셈이고 이는 곧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확인과정이기도 하다.《사랑의 언어학》이나 《사랑의 민족학》 등 남계의 중수필들에는 이러한 남계의 학문적업적이 단편적으로나마 모습을 보인다. 《사랑의 언어학》에서 남계는 《아이 러브 유》나 《워 아이 니》형의 사랑표현은 마치 규격화되여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된 공업제품과 같아 개개인의 개성이 완전히 함몰된 상태라 하고 그래서 애쓴다거나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한번 구해놓으면 변하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쓸수 있는 조화(造花)와도 같은 말이며 거기에는 생기도 향기도 없다고 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민족어에는 그런 규격화된 사랑표현이 없기때문에 우리 말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남과 녀는 개개인의 문화적개성을 추구할수밖에 없다고 했다.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사랑의 표현은 진한 향기로 되여 상대에게 전해질수 있다.》고 한 남계의 결론은 남계의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사랑의 민족학》에서는 더구나 비슷한 모티프를 가진 아랍, 유태, 조선 등 세 민족의 고사를 비교하면서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감싸안는다. 비록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랑의 선택에서 철저하게 아랍민족의 상업주의 원칙을 적용시킨 아랍공주나 계약주의 원칙에 따른 유태공주, 그리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을 선택한 조선처녀중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모두 자신의 문화적인 기준에서 사랑을 선택한것일뿐이다. 그러나 《사랑을 주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사랑을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충일하고 지순하다.》는 남계의 평가는 어쩔수없이 민족적이다. 비교하고자 한 세 이야기의 선택 자체가 그렇고 주는 사랑을 참사랑이라고 한 인식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사랑은 문화적산물이다. 사랑이 구성되는 방식은 사랑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그 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특성에 좌우된다.》는 결론 역시 민족적인 견지에서 도출된것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중수필 《선택》에서는 그러한 민족애를 바탕으로 오늘날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고있다. 1999년 한해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신생아수는 3800명인데 이는 10년전의 4분의 1을 좀 웃도는 정도라 하고는 이대로 나간다면 2049년에는 0출생을 기록할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제시한다. 그 중요한 원인이 조선족녀성들의 한국 출가와 도시 유흥업소 류입에 있다고 보고 이런 국면을 역전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족남성들이 열심히 배우고 일하며 책임성있는 인생길을 새롭게 선택하는것뿐이라고 지적한다. 남계의 민족적 책임의식을 나타낸 대목이라 하겠다. 남계는 또 이렇게 촉구하고있을뿐만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책임있는 립장에서 실천하고있다. 북경의 조선족을 위해 조선족학교를 운영한다든지, 민족문화의 생존을 위해 경제난에 처한 《도라지》잡지를 지원해준다든지, 우리 민족의 농업경제와 민족경제를 글로벌시대에 적응시키기 위해 China-corean.com이라는 인터넷싸이트를 창립 운영한다든지, 조선족집중촌건설을 추진하는 등 남계의 민족엘리트로서의 책임있는 실천은 또다른 측면에서 민족정체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있다.
64    3. 현대인의 타락한 도덕 꼬집기 댓글:  조회:5540  추천:68  2006-04-24
3. 현대인의 타락한 도덕 꼬집기 그러한 남계의 가치기준 혹은 삶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또다른 화법이 있다. 현대인의 타락한 도덕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외관적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며 돈독에 찌들어(물질만능주의) 황페해진 마음을 가리려는 현대인의 현대병에 대한 비판은 앞의 《옥년이와 봇나무》에서도 보았거니와 남계는 그러한 꼬집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 가치있는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먼저 《가슴속에 새겨진 할머님의 초상》에 나오는 훈이의 이야기를 보자. 훈이의 이야기에 앞서 이 수필에서 남계는 마을 잔치집에 따라가려는 손자를 떼놓고가면서 하던 할머니의 의미심장한 타이름을 적고있다. 이 소년, 즉 어린시절 남계에게 있어서 할머니는 《언제나 엄격하시면서도 때로는 너그러우신 위대한 부성의 사랑과 자애로우시면서 항상 강인하신 모성의 사랑》을 함께 지닌 어버이다. 유복자로 태여나서 두살에 어머니마저 잃은후 줄곧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기때문이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참조) 그에 이어 훈이의 불우한 경력이 서술된다. 요약하면 부모의 리혼때문에 버려져 이집저집 옮겨지면서 모든것을 운명에 맡기고 체념해버린 무감각한 상태에 처한 아홉살짜리 소년이였다. 그 소년을 남계는 자신이 관여한 소학교 기숙반에 들여보내며 기를 살려주기 위해 옷이며 학용품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장만해준다. 할머니의 기억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남계가 훈이의 이야기를 꺼낸 목적이 자신의 소행을 자랑이나 하려는데 있는게 아니다. 어처구니없이 높은 리혼률때문에 훈이와 같이 버려지는 애들이 점점 늘어가고, 또 돈벌이를 나간다고 애들을 할아버지 할머니나 친척집에 맡겨놓고 한국으로, 국내 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꼬집기 위해서다. 일부일처제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리혼률은 당사자에 대해서나 그 자녀에 대해서나 모두 합리적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우리 조선족사회에서 급속히 늘어난 리혼률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그중에는 당사자 자신들에 대해, 혹은 그 자녀들에 대해, 아니면 당사자와 자녀들 모두에게 불리한 리혼이 상당히 존재한다고 보기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의 오류를 부채질하고있는것이 바로 향락주의와 리기주의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향락주의와 리기주의는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것이라 할수 있다. 신문을 통해 훈이의 부모를 찾아냈을 때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잠적해버린 대신 어머니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훈이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찾아온다는 이야기에서, 특히 기쁨에 도취되여 엄마의 손을 꼭 쥐고 따라가고있는 훈이의 모습을 통하여 남계가 우리에게 제시한 삶의 가치는 의미심장한것이 아닐수 없다. 현대인의 이러한 삶에 대한 무책임함에 대하여 남계는 《사랑의 사회학》에서 보다 예리하게 꼬집고있다. 사랑에 대한 TV특별토론에서 20대 젊은 처녀로부터 6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자신들의 남자친구나 남편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아끼고있다고 불만이더라는것이다. 서양문화 특히 헐리우드영화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의 영향임은 더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곧이어 남계는 중국남자들은 《워 아이 니》라는 사랑표현을 람용하지 않는 대신 한번 결혼하면 쉽게 리혼하지 않는데, 즉 백년해로가 아직까지도 중국에서는 기성세대의 보편적인 사랑의 가치로 되여있지만 《어쩌면 숙녀들에게 저토록 친절할수 있을가》라고 감탄할 정도로 하루에도 수십번씩《아이 러브 유》를 곱씹어대는 미국남자들은 결혼후 쉽게 리혼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제 TV나 영화를 통해 헐리우드문화에 물젖어가고있는 상황에서는 중국남자들의 《워 아이 니》라는 표현이 잦아질수록 리혼률도 높아질수밖에 없다는것이 남계의 견해이다. 리혼률의 상승은 곧 불행한 아이의 양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모들의 사랑으로 커야할 어린시절, 가장 친밀했던 보호자들의 관계해체로부터 받은 상처는 평생을 두고 아픔을 줄수 있다.》(《사랑의 사회학》에서) 여기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는 사실을 보게 된다. 1999년에 연변조선족의 리혼률은 2:1에 이르러 미국을 릉가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이런 리혼률의 급상승은 한국인과의 위장결혼, 시골 젊은이들 특히 처녀들의 도시진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더욱 우려를 금할수 없게 한다. 남녀의 성적매력은 3년정도밖에 유지하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듯이 결혼제도와 사랑의 자유는 언제나 모순된다. 따라서 결혼제도는 사실상 사랑의 자유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족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하에서 리혼도 마다하지 않고 사랑의 자유를 추구하는것은 대개가 리기주의나 향락주의때문이라고 볼수밖에는 없는것이다. 사랑의 자유를 위해 발굴(?)해낸 또다른 방법이 외도라고 남계는 말한다. 그러나 불륜은 사랑을 말초적이고 단순한 성접촉으로 전락시킨다. 그렇다면 《사랑은 없고 포르노만 남은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을 계속 희망할수 있을가.》라는 질문은 너무나도 절실한것이다. 남계가 현대인의 도덕적타락을 꼬집으면서 가장 많이 지적한 내용은 리혼문제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나서고있는 리혼률의 급격한 상승현상과도 관련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것은 그러한 리혼률 급상승의 리면에 무책임한 현대인의 리기주의나 향락주의가 도사리고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무책임함이나 리기주의가 한두사람의 개인의 문제라면 몰라도 그것이 심각한 사회적문제로 부상했을 때는 전반 사회의 가치관이나 도덕적기준이 해체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63    2. 삶의 가치 찾기 댓글:  조회:5428  추천:96  2006-04-20
2. 삶의 가치 찾기《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그 다음날 날씨가 맑아진다. 다시 말하면 저녁노을은 세상사람들에게 다음날의 맑은 날씨를 기약하며 혼신을 불태우는것이였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에서) 여기서 저녁노을은 희망이나 기대 혹은 꿈이다. 흔히 저녁노을은 가을단풍과 더불어 인생의 만년을 표현하는데에 사용되는데 남계에게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개인적인 체험때문이다. 유복자로 태여나 두살때 어머니마저 잃은 남계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이 바로 저녁노을이였기때문이다. 혼자서 집을 지키다가 저녁이 되여 외롭고 배고플 때 할머니가 돌아오는 길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였으므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그러한 외로움과 배고픔마저 잊을 정도였으므로 소년은 실제로 그 저녁노을의 실체를 찾아나서기까지 한다. 당연히 불가능하였지만 남계는 그러한 노을의 아름다움을 인생의 꿈으로 승화시킨다. 그렇게 저녁노을에 깃들인 소년시절의 꿈은 가난과 고독에 쪼들리던 어린 가슴에 행복을 가득 채워주었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수 있는 능력과 의지력을 키워주었다고 했다. 그것을 다시 인생의 가치에 련결시키고있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기준은 물질적인것이 아니라 정신적인것, 다시 말해서 마음의 풍요로움에 있다.》는것이다. 이러한 남계의 가치기준은 돈과 권력, 사회적지위 등 일반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것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풍요로움을 남계는 사회와 민족 그리고 나라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하였고 그것이 《저녁노을과 같이 아름다운 삶》이라 했다. 작자의 가치관과 인격을 잘 드러낸 대목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남계는 《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로 터득한다. 학년말시험에서 1등을 하고서도 람루한 옷때문에 단상에 올라가 상장과 상품을 타지 못하고 기념사진도 찍지 못했던 소년기의 추억때문이다. 가난은 불행만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아쉬움일뿐이며 오히려 그러한 아쉬움이 아쉬움 없는 넉넉함을 지향하면서 더 노력하게 한다는 할머니의 가르침 또한 그러하다. 《부족함과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뜻의 넉넉한 삶을 살아갈수 없다.》는것이 남계의 깨달음이다.(《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에서) 이는 물론 무능이나 게으름때문에 가난을 영위하는 부끄러움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단지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속에서 세상을 보는 인간의 눈은 밝아》질뿐이라는것이다. 가난이 힘이 된다는 리치를 남계는 할머니에게서 배운다. 마을잔치에 따라나서려는 손자를 남들이 《저 할멈은 얻어먹이려고 손자까지 데려왔다》고 흉보며 그러면 인격과 자존심이 떨어진다고 한것이다. 가난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겨낼수 있지만 가난하다고 인격과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건 구제불능이라는 가르침이다.(《가슴속에 새겨진 할머님의 초상》에서)이렇게 살면서 터득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순수함이라고 했다. 순수한 삶, 순수한 아름다움을 남계는 원하고 주장한다. 그러한 순수한 아름다움, 순수한 삶을 그는 봇나무에 비유한다. 겉보기에 미인형이기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가지를 마당비로 쓸수 있고 《이른 봄날 산에 올라 더덕을 캐다가 목이 마르면 손칼로 봇나무 껍질에 Y자형 상처를 내고 흘러내리는 즙을 그릇에 받아 마시면 시원한 음료수가 된다.》(《옥년이와 봇나무》에서)는 리유에서만도 아니였다. 외롭던 어린시절 처음으로 사귄 친구 옥년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있기때문만도 아니다. 대자연과 더불어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옥년의 모습을 보며 순수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서 《머리염색만 하면 십년은 젊어지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단 한번도 염색해본적이 없다. 젊어지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젊어지고싶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가고싶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때문에 미쳐버린 세상》을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 성형수술로 외모가 아름다워지는것보다는 《돈때문에 싸우고 리혼하고 자식을 내다버리고, 자신의 무능과 비겁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술로써 자신을 마비시키》는 현대인의 타락을 치유하는것이 훨씬 더 요긴한것이다. 이러한 순수한 아름다움, 순수한 삶에 대한 지향을 키워준것이 고향이고 고향마을 사람들이다. 밤이 긴 겨울날 밤, 화로불에 감자를 구워먹으며 마을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옛날옛적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이바구》에서 남계의 가치관은 형성되였다고 한다. 《할머님들의 이야기동산에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즐거움과 함께 꿋꿋한 힘, 반짝이는 지혜, 따스한 우정, 달콤한 사랑, 소박한 꿈, 훈훈한 인정들이 가득 차있》었던것이다.(《군감자와 ⟨이바구⟩》에서) 그러고보면 남계의 가치기준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문화에 기반을 두고있는것 같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치관 자체만을 주장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최하층 인간들의 삶에서 가장 순수한 인간성을 체험하고 인간의 가장 진실된 삶의 가치를 터득한것이다. 즉 오늘날 물질적풍요에 의해 가려진 정신적풍요의 모습을 상기시키고있다 하겠다. 《나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행운》(《오늘날의 삶에 충실해야》에서)이라는 인생인식에도 결국 이러한 가치기준이 담겨져있는것이다.
62    정체성과 삶의 참의미-1. 들어가면서 댓글:  조회:5516  추천:75  2006-04-19
정체성과 삶의 참의미 -남호손 수필 읽기 장춘식(문학평론가, 연구원) 1. 들어가면서 수필평론을 쓰면서 매번 부딪치는 문제는 도대체 수필의 가치를 어떻게 보아야 하고 또 평가해야 하느냐 하는것이다. 여타의 문학쟝르들, 이를테면 시, 소설, 희곡 등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평방법들이 개발되여 어떻게든 분석하고 평가할수가 있는데, 수필에 대한 비평방법은 아직도 모색단계에 처해있어 번마다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남계(남호손)의 수필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즉 삶의 참모습을 찾아보려는것이 남계의 글쓰기 리유나 목적이 아닐가 하는것이다. 삶의 구경(究竟)을 찾으려는 시도는 문학하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든 한두번은 있음직한 일이고 또 문학인생의 전 과정을 통하여 그것을 중심과제로 삼은 문학인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수필이라는 문체가 허구가 아닌, 실화이기때문에 남계가 수필을 통하여 그러한 삶의 구경, 삶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는 보다 더 치렬해보이고 또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것 같다. 그리고 삶의 구경이라는것은 어차피 한 인간의 정체성(正體性)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남계의 수필은 결국 정체성 확인의 한 수단이 되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61    리성의 혼 자유의 옷 댓글:  조회:5816  추천:73  2006-04-17
리성의 혼 자유의 옷-남계(남호손) 수필을 읽고 서영빈(문학평론가, 수필가, 교수) 1 여러 문학쟝르가운데서 수필만큼 작품과 작가 자신이 밀착되여있는 경우도 드물다. 《문이재도(文以載道)》나 《문여기인(文如其人)》의 전통적인 문학관을 이야기한다면 소설이나 시 쪽에서는 지난 세기의 고물쯤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수필계에 있어서만은 그래도 관대한편이다. 수필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인생관과 미학관을 추출해내는 일은 시나 소설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작품과 작가 자신을 일치시키는 그 리유를 우리는 일차적으로 수필의 허구성 부재에서 찾을수 있다. 상상에 의한 허구를 철저히 배제하고 실제 사실만을 강요하는 수필의 이른바 진실요건이 일단 작품과 작가를 하나로 묶어놓는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수필의 담론은 통상적으로 일인칭이 될수밖에 없으며 수필에 등장하는 인물도 실재 인물일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수필의 자유로운 문체적특징 또한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한층 밀착시킨다. 수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시나 소설보다 훨씬 어려운 리유는 수필의 범위가 그만큼 넓기때문이다. 흔히 소설이나 시, 희곡이 아닌것은 다 수필이 된다. 오늘날 평론으로 통하는 많은 작품들도 따지고보면 수필인 경우가 많다. 이른바 《붓 가는대로 쓰는것이 수필》이라는 견해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누구나 쓸수 있는 글이 수필이요, 또한 그러기때문에 전문적으로 수필만 써서는 문인취급을 받지 못하는것이 수필이다. 수필인구의 량적팽창에도 불구하고 《수필가》란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의 현실은 수필의 이러한 문체적특징의 반영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수필의 범위를 좁혀서 문예수필만이 수필인것처럼 인식시킴으로써 수필문단의 정통성과 권위성, 전문성을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과연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며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보인다. 이른바 《무형식의 형식》, 《자유로운 스타일》로서의 수필이 자칫 정형화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어느 쟝르를 막론하고 좋은 글과 별로 좋지 않은 글은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꼭 수필의 범위와 련관되여있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형식의 형식》은 작가 개개인의 재능과 《끼》를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이빙이나 체조에서 규정동작보다는 오히려 자유동작에서 선수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규정을 지키기보다는 자유를 누린다는것이 훨씬 창조적일뿐만아니라 또한 더욱 큰 시련이 될수도 있다. 진짜 춤군의 실력은 타인이 안무한 무용에서의 역할로가 아니라 오히려 막춤에서 드러나는것과 일맥상통한것이다.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이기에 그 실력차이가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쟝르가 수필이다. 따라서 수필의 이러한 문체적특징은 작가와 작품을 하나로 묶어놓는 다른 하나의 요인이 된다. 주로 《도라지》잡지를 통해 발표되는 남계의 수필은 작품과 작가의 이러한 합일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례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것이지만 남계 수필은 한마디로 학자의 량심이자 스승의 가르침이며 선배의 충고이자 사나이의 고백이다. 그속에는 정직한 민족애가 있고 치렬한 학구적인 탐구가 있으며 따뜻한 고향의 숨결이 있고 감동적인 어제날의 추억이 있다. 저자 내면의 투철한 사상과 진솔한 감정, 희로애락의 력사가 수필속에 살아숨쉬는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수필이라는 자유의 옷을 떨쳐입은 리지의 혼으로 평가하고싶다. 2 력사학자로서 일찍 학계에서 탄탄한 립지를 구축한 남계로서는 어쩌면 이순(耳順)의 나이에 수필로서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그의 글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문학적소양으로 보아서는 오늘날 그가 수필에서 이룩한 독보적인 위치가 우연이 아님을 가늠케 하지만 사회활동가, 민족사학가, 박사지도교수로서의 그의 행동반경을 감안할 때 만약 《도라지》잡지사의 간곡한 부탁이 없었다면 아마 그의 수필은 영영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그의 수필은 출발이 특이하다. 문학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없기에 그의 수필은 첫시작부터 부담없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런 심리적부담이 없는 그의 이런 글쓰기 환경은 그에게 두개 층위의 자유를 부여하게 되는데 하나는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수 있다는점이고 다른 하나는 꼭 쓰고싶은 글이라야 쓴다는점이다. 물론 시간적인 제약 같은것은 있었겠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독자들의 평가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글쓰기에 림할수 있었을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가 시나 소설이 아닌 수필을 선택하게 된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꼭 하고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쟝르가 수필을 제외하고 또 어디 있는가?! 꼭 하고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하기 위해 수필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필을 관통하고있는 가장 큰 흐름은 엄숙성이라 할수 있다. 남계 수필의 엄숙성은 제재선택, 단어사용, 작품구성을 비롯한 형식적인 측면의 섬세함과 치밀함에서도 나타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수필에 림하는 저자의 자세에서 나타난다. 그의 수필은 수필을 위한 수필, 자아과시를 위한 수필, 문학유희로서의 수필이 아니라 《도라지》 칼럼명(남계인생수필)에서도 나타나듯이 인생을 위한 수필이다. 인생의 아름다움, 인생의 진지함, 인생의 행복, 인생의 진실을 찾아다니는 구도자의 자세가 글속에 그대로 드러나있는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의 글속에 죽음의 유혹을 찬미하고 죽음을 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그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진지함을 역설한다.(《오늘날의 삶에 충실해야》) 그는 자신의 경륜과 인생 선배들의 잠언으로 죽음은 결코 회피할 성격의것이 아니지만 삶의 목표가 될수는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다. 이처럼 그의 글은 멋을 위한 글이나 한때의 호기를 위한 글이 아니라 사명감과 리성에 바탕을 둔 엄숙한 글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엄숙한 글쓰기가 쉽게 빠질수 있는 중세기적 도학자들의 설교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뛰여넘는다. 당위성에 립각한 보편적인 론리로서가 아니라 개성화에 바탕을 둔 정서철학으로서의 문학이 태여나게 되였던것이다. 남계수필의 근저에는 학자로서의 량식, 민족사학가로서의 력사의식이 자리잡고있지만 그것이 수필로서의 성공으로 이어지는데는 그의 박학다식, 탁 트인 국제감각, 몸에 배인 문학적소양이 크게 기여한것으로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의학, 어학, 문학 제반에 걸친 그의 전문가적인 식견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객관성을 보장하였고 미국의 명문 하버드에서의 연구경력과 세계 각국에서의 학술경력은 그에게 국제적인 감각과 시야를 부여하였으며 중국고전에 대한 조예를 포함한 풍부한 문학적소양은 그에게 상징, 낯설게 하기, 대상화, 구체성을 아우른 탄탄한 문학적 기교를 제공하였다. 이러한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남계 수필은 우리 수필문단에서 좀처럼 발견할수 없었던 학자수필의 령역을 개척하게 되였던것이다. 남계 수필이 우리 수필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는 필자의 평가는 맹목적인 찬사의 언어가 아니라 그의 수필이 지니고있는 이러한 학자수필로서의 경지를 가리키는것이다. 엄숙한 리성의 혼과 자유로운 수필의 옷이 완벽하게 결합된 남계 수필에 있어서는 결코 과찬이 아닐것이다. 3 수필에서 문학의 여러 표현기법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리유는 허구를 배제한 실제 사실만으로 승부를 거는 쟝르이기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도 저자 본인이 말하는 사실과 독자들이 느끼는 사실 사이에는 흔히 거리가 있게 된다. 이러한 거리를 가리켜 필자는 사실과 진실 사이의 거리라고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사실로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서술이 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에서부터 진실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문학성의 획득과정이며 동시에 문학적장치의 실현과정이 되는것이다. 수필의 설득력은 의미화과정을 통해 부여되는것이 일반적인데 의미화의 기법은 작자에 따라 다르다. 그럼 아래에 남계 수필이 지니는 의미화기법의 몇가지 특성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자. 최근에 발표된 《사랑의 언어학》은 《아이 러브 유》를 언어에 따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데서 시작된다.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어느 외국인의 론문을 인용하여 일단은 사랑표현을 ①《나 사랑 너》류형과 ②《나 너 사랑》류형으로 대별하고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조선어의 표현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조선어의 사랑표현이 과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통할수 있느냐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은 저자는 《사랑》이란 낱말의 어원을 찾아나선다. 《춘향전》이나 《가루지기타령》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적인 사랑표현방식에 《사랑》이라는 말이 결코 등장하지 않음을 확인한 저자는《석봉천자문》,《왜어류해》, 《신증류합》,《전운옥편》,《훈몽자회》 등 문헌을 통해 《사랑》이란 낱말의 등장시기를 밝히고 《광주본 천자문》을 통해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임을 지적하였으며 문헌고증을 통해 사량이 사랑으로 바뀐 시기도 소상히 밝힌다. 《사랑》의 어원찾기에서 저자는 학구적인 치밀함을 잃지 않고 철저하게 언어학적인 방법론에 근거해 추적하지만 만약 거기까지라면 수필로서의 《사랑의 언어학》은 자격미달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어서 사랑의 개성적인 성격과 조선어 사랑표현의 개성적성격을 병치시킴으로써 규격화된 조화(造花)와 같은 《아이 러브 유》와 생기와 향기를 겸비한 조선어의 사랑표현을 대비시켜 언어사랑을 통한 민족애를 나타내고있다. 작품의 주제는 언어사랑을 통한 민족애지만 그러한 주제에 이르기까지의 진행과정이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철저한 학구적 치밀함을 그 바탕에 깔고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구체성을 통한 언어사랑, 언어와 사랑의 《개성》에 립각한 대상의 병치, 어원찾기에서 보여준 학구적인 태도, 이 세가지가 하나의 작품에서 통일을 이루면서 학자수필의 한 전범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남계 수필의 이러한 학구적치밀성은 계렬수필인 《사랑의 민족학》, 《사랑의 사회학》, 《사랑의 신화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빛을 발한다. 이 계렬수필의 궁극적인 주제는 민족애지만 그의 이러한 보편화된 주제가 공허하게 안겨오지 않는 리유는 구체성의 획득과 학술적인 엄숙함을 겸비한 설득력에 있다. 필자가 루루이 강조하고있는 과정의 중요성(《무엇》보다는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남계 수필의 또 다른 특징은 집중적인 사고력이라 할수 있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 차분한 분석, 정연한 구성은 바로 이러한 집중적인 사고력의 결실이다. 본인의 이름을 두고 쓴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는 이러한 집중적인 사고력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수필은 먼저 《이름 없다》는 말의 사전적해석에서 시작하여 이름의 기호적성격, 이름의 사회적성격, 개인 이름과 그룹 이름의 분별성에 대해서 서술하고있다. 여기까지는 구체화되지 않은, 일반적의미의 이름론에 해당된다. 다음 저자는 개체론으로 들어가 《유복》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한다. 그룹 이름 유복(遺腹)에서 개인 이름 유복(有福)으로의 전환과정과 대학시절 이름으로 인한 고민, 엥겔스 어록으로 인한 봉변 모면, 성경에서 다시 찾게 된 《유복(有福)》의 의미로 이어지면서 결론부분에 와서는 나만의 이름과 나만의 인생철학, 나만의 가치관으로 대비된다. 일반론에서 개체론으로, 표면에서 심층으로, 기표에서 기의로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이 과정을 살펴보면 이름과 관련된 저자의 사고력이 얼마나 집중적인가를 알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바탕에는 물론 평소 루적된 지식의 축적이 깔려있겠지만 한국문단을 포함하여 이름과 관련된 많고 많은 수필중에서 아직까지 이처럼 설득력 있는 수필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집중적인 사고력의 결실로 볼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남계 수필은 많은 특징들을 안고있다. 정서적인 색채가 농후한 상징물들을 통한 대상화의 기교(《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옥년이와 봇나무》,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군 감자와 ⟨이바구⟩》)거나 전문작가들을 뺨치는 정확하고 유려한 언어표현들도 지적될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두개의 례문을 통한 유머감각만을 제시하는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한 이제는 혼전성관계나 동거도 사회적간섭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며칠전 신문을 보다가 상해, 북경, 청도 등 대도시에서 《누드 신혼사진붐》이 일고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놀란 나머지 이제는 누가 공공장소에서 《라체결혼식》을 치렀다 해도 놀라지 않기로 작심했다. - 《사랑의 사회학》 중용론으로는 우리가 평시에 자주 듣게 되는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요, 과음하면 독약이다》라는 말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해학적인 속담을 1992년 몽고를 방문했을 때 울란바또르의 한 애주가가 들려준적이 있다. 《술을 마시면 죽는다. 그러나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남자․술 그리고 약속》 (《도라지》2004.1)
60    무궁한 위력 댓글:  조회:5716  추천:64  2006-04-13
무궁한 위력 황유복교수를 마주하면 하나의 커다란 위력을 느끼게 된다. 술담배를 일절 거부한다고 하여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고 몇십년 학술을 연구한다고 하여 틀이 있는것도 아니다. 대방을 편하게 해주고 리해를 해주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며 상대방을 끌어가는 강한 힘, 항상 쉴줄 모르고 정열적으로 밀고가는 왕성한 투지력과 민족의 애환으로 가슴 끓이며 그것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하나의 매력이 되어 커다란 위력을 과시하고있는것이다. 한생을 교육에 몸담고 교수를 해오면서 그는 학술연구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껏 그가 펴낸 저서로는 《조선족혁명투쟁사》,《중국 조선족 사회와 문화의 연구》,《중국 조선족 연구》등 26권에 달하고 《중국과 미국의 조선민족사회와 문화의 비교연구》,《중국에 있어서의 조선족의 실태와 그의 장래》,《우리 민족과 도라지》,《21세기를 지향하는 중국 조선족의 교육》등 90여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론문과 저서는 거의가 조선족에 관한 연구로서 중국내 조선족연구의 권위로 꼽히고있다. 실로 그의 령혼과 마음은 조선족과 끈끈이 이어져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래서 흔들리는 조선족사회를 보며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기나 한듯 걺어지고서 아파하고 안타까와하며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고있는 그다. 그 해결책의 하나로 해마다 한차례씩 《조선족의 지속적발전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왔다. 민족문화 정체성에 관한 리념을 정리하고 민족발전전망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1994년부터 시작된 심포지엄은 지금까지 9차에 이어져왔으며 공동으로 관심하는 조선족의 인구문제, 경제발전, 민족교육문제, 문화사업, 벤처산업 등을 둘러싸고 토론을 벌리고 발전방향을 모색하여왔다. 황교수가 보기엔 현재 조선족사회는 격변기를 겪고있다. 특히 중한수교후 조선족사회는 커다란 구조적변화를 가져오고있는 상황. 우선 인구의 대이동은 조선족사회를 마구 흔들어놓았다. 한국으로 물밀듯 쓸어가고 연해도시의 한국기업으로 몰려가고 대도시로 자리를 옮기고. 그래서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 조선족 녀성들이 한국으로 시집가고 매춘녀로 빠지로 그 결과 인구의 격감을 초래. 또한 대도시에서 자란 애들은 거의가 우리 말을 못하고 녀자애들 60%이상이 한족에게 시집가는 등 민족성 상실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련쇄반응처럼 일어나는 조선족의 문제점을 진맥하고 그 해결책을 얻고저 전국 각지로부터 심포지엄에 모여온 학자, 연구원, 지도자들은 번마다 뜨거운 분위기속에서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쳤으며 실제적인 일을 성숙시키기도 하였다. 지난 8차 심포지엄에서는 21세기-지식의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로 젊은이들이 많이 동참하여 민족의 운명과 앞날을 론함으로서 생신감과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995년 황교수는 한국 령사관앞에 비자를 받으러 줄서있는 조선족처녀들을 설문조사한적 있다. 왜 꼭 한국으로 가려고 그러느냐는 물음에 《돈 벌어 잘 살기 위해서죠》라는 대답. 뒤이은 《조선족 남자들이 무능해서 평생을 의탁하여 살수가 없어요》라는 한마디는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또 심양시 로무시장에서 구직자들의 상황을 알아본 결과 한족들은 료리사, 운전면허증 등 각종 자격증을 갖고있지만 조선족 청년은 겨우 초중, 고중 졸업장만 달랑 들고있는 상태였다. 오래도록 조선족의 생존출로를 찾기 위해 모지름을 써오던 황유복교수는 이 두가지 사실에서 불현듯 답을 얻어냈다. 우리 조선족 청년들에게 기술교육을 시키는 대학을 설립하자. 청년들에게 삶의 길을 개척하고 고기 잡는 현대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기술을 익혀 생존의 길을 찾고 자립할수 있으면 조선족처녀들이 흘러나가지 않을것이고 그러면 인구감소도 적어질것이 아닌가. 사립대학의 설립을 위해 황교수는 미국에 가서 8개 대학을 돌아보며 이쪽 실정에 맞는 학교를 모색, 결과 그는 21세기에 걸맞는 벤처창업교육을 위한 대학을 세우기로 자리를 굳히였다. 벤처창업기술은 위험부담이 많고 성공률이 높지 못하나 일단 성공하면 엄청남 자본을 창출해낸다. 따라서 벤처창업교육이란 전 지구적인 치렬한 시장경쟁에서 딛고 일어설 새 천년의 현대화창업인재 즉 창조적이고 과감하며 기술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것으로서 이 대학을 나오면 인차 경영인이 될수 있고 창업할 수가 있다. 좋은 손재간,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명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벤처산업기술은 조선민족의 심리기질에 적성적이며 또한 민족문화심리에도 걸맞는다고 황교수는 그 가능성을 주장했다. 《조선족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학문교육이 필요하다. 리론적인 교육은 다른 대학들에 맡기고 조선족을 빨리 국제적기술수준에 적응시킬수 있는 기술대학이 시급하다.》며 대학교에 못간 조선족 고중생들과 청년들에게 각종 산업기술과 민족언어문화, 외국어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켜 중국이라는 큰 땅덩어리우에서 생존하기 위한 능력, 경쟁력을 키워주는데 그 설립취지를 둔다고 황교수는 말한다. 이미 학교부지를 마련하고 한국, 미국등으로부터 경제적원조를 받는 등 황교수는 대학설립의 적극적인 추진을 위해 오늘도 뛰고있다. 하냥 보면 황유복교수는 론문을 쓰거나 연구생을 지도하거나 손님을 만나는 바쁜 모습이며 국내외학술회의도 빈번하다. 중앙인민방송국, 《중국민족》잡지사, 《도라지》잡지사의 고문을 맡은 황교수는 정기적으로 방송에도 나가야 하고 원고집필도 해야 한다. 황교수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도라지》잡지사와 《중국민족》잡지사에서는 조선족기업가 정귀남회장으로부터 해마다 거액의 후원을 받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황교수는 문화사업을 적극 도와줄뿐만아니라 조선족기업인들에게도 항목과 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조선족사회의 전반을 자기 일처럼 맡아나서는 분이다. 실로 그는 저명한 교육가이며 학자이자 출중한 사회활동가이기에 손색이 없다. 《21세기가 열리는 이 시점에서 저는 중국 조선족사회에 두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산업경제시대가 지식경제시대로 바뀌고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면서 기술경제발전에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 민족공동체의 정체성 정립입니다. 잘 살기 위한 노력에 앞서 올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이 더 요청되고있습니다. 옳바르게 그러면서도 잘 살수 있는 길을 다 함께 열어가야 합니다.》 2001년 1월 1일 중앙인민방송을 통해 황유복교수가 조선족사회에 드리는 신년 육성메시지를 들으며 민족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그이의 고상한 인격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 일개인의 위력에 의해 그토록 큰 이 사회의 한 공간이 움직이고있음을 우리는 보아낼수 있다. 바로 황유복교수와 같은 지성인들의 노력과 실천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조선족사회는 보다 건실하고 아름다워지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