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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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한글나라에서 외면당하는 한글 댓글:  조회:8408  추천:21  2011-05-02
한글나라에서 외면당하는 한글  청해 어느 나라를 가든지 도시의 거리를 나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우는 것이 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간판을 보노라면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요해가 얼마간은 갈 것이다.   한국에서 거리의 간판들을 보면 우리말 간판, 한자간판, 영문간판,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쓴 간판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간판 등을 볼 수 있다.   모회사를 지나다가 “XX엔지니어링㈜”란 간판(완전호칭을 밝히지 않고 한자어로 되여 있는 앞부분을XX로 표시)을 보았다. 그 회사의 직원들과 엔지니어링이란 무슨 뜻 인가고 물어보았더니 10여명 되는 직원가운데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럼 이 많은 회사직원들이 모르고 누가 아는가?”고 물으니 “사장이나 알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그 간판 옆에 “XX 機械工業(株)”라고 한자로도 표시되어 있어 중국의 조선족들은 그것이 모모 기계공업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란 “1. 공학(工學) 2. 재료, 기계, 인력 따위를 일정한 생산목적에 따라 유기적인 체계로 구성하는 활동”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어로는 ‘系統工程’라고 하였다.   필자는 여러 회사의 사장들과 “무엇 때문에 간판을 우리말로 표시하지 않고 영문 혹은 영어를 한글로 표시하는가?”고 물으니 대부분 회사사장들의 말은 “우리말로 하면 어딘가 촌스럽다. 그래도 영어로 명칭을 달아야 국제화 시대에 발을 맞추는 것 같다.”라고 하였고 일부 사장들은 “남들이 그렇게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한다.”라고 하였다. ‘통구이’는 순수한 우리말의 고유어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통구이’란 간판을 쓰지 않고 ‘바베큐’라고 쓴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바비큐’라고 표기하여야 맞는다.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들은 영어발음과 차이가 있어 영어를 잘 아는 외국사람들도 한글로 표기된 영어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본국사람도 모르고 외국사람도 모르는 그런 간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선일보’가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선 세종로의 간판을 조사한 결과, 총 58개 간판(중복 제외) 중 약 3분의 1인 18개가 한글 없이 영어로만 돼 있었다. 필자가 관찰한데 의하면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이 대부분이었는데 어쩌다 순수한 우리말의 간판을 보게 되면 아주 정답게 느껴졌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문화회관조차 복도와 게시판에 'SEJONG CENTER'라는 표기를 한글 없이 적었고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운영하는 건물에 세종대왕의 이름이 한글보다 영어로 더 많이 적혀 있다고 하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 죄송스러운 일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안내 문구도 영어로만 쓰인 경우도 많다. 얼마 전 한 할머니가 백화점에서 계단으로 나가는 문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가 "할머니 여기는 들어오시는 곳 아니에요"라는 직원의 말에 무안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거기에는 영어로 'Staff Only’이라고 씌여 있었지만 할머니는 그것이 ‘직원전용'란 뜻을 몰랐던 것이였다. 지금 대부분 담배갑에는 영어로만 씌여 있어 영어를 배우지 못한 젊은층들도 상표명을 몰라 손으로 가르키며 “이걸 주세요.”라고 하고 있다. 이런 간판, 상표 외에도 각종 언론 매체와 출판물에서 우리의 고유어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외국어, 외래어를 많이 쓰고 있다. 예하면 순수한 우리말인 흰색을 ‘화이트’’안해’를 ‘와이프’ ‘열쇠’를 ‘키’ ‘힘내라’를 ‘파이팅’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24가지 자모로 이루어진 우리글이 그 표기가 제한되어 외국어나 외래어 를 원음대로 표기 할수 없는 것이다. 례하면 힘내라는 ‘fighting’을 원음 대로 발음은 할 수 있으나 우리글의 문자로는 어떻게 하여도 정확히 표기할 수 없다. 하여 어떤 사람들은 ‘파이팅’, 어떤 사람들은 ‘화이팅’으로 표기한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음이 왜곡된다.    지금은 중국의 조선족들도 한국나들이를 많이 하면서 한국사회에 습관되어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이제 몇 세대 후에는 우리의 고유어가 점차적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려된다.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은 국제화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것 이라고 하는데 몇가지 외국어 단어를 장악하여 가지고 국제화시대에 발을 맞출 수 있겠는가? 우리말의 고유어거나 귀화어(귀화어란 한자어를 포함 하여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글이나 말이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면서 차용한 글의 原地의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우리글처럼 되어 우리글로 탈바꿈된 글이나 말)가 없는 말은 외국어거나 외래어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우리 겨레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면 고유어가 있는 단어들은 고유어를 쓰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 조선(한국)어 사용인구는 7739만 명으로 세계 언어 중 13위에 이르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조선(한국)어를 9번째 국제 공개어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올해 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자기 말을 적는 공식 문자로 채택하고 초등학교에서 한글 교과서로 찌아찌아어 교육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인구대국인 중국에서도 한국어 학원을 설치한 대학이 점차적으로 늘어 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 세계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세계통용 문자로 하자는 주장도 나 오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한글은 배우기 쉽다는 것이다.  24가지 자모로 우리말의 모든 문자를 다 표시할 수 있고 가, 나, 다, 아, 야, 어 등 기본음에 몇가지 받침을 넣으면 그 계렬의 음을 다 문자로 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이유는 컴퓨터 문자입력에서 육필의 필순에 따라 건반을 치면 모든 글자들을 순조롭게 쳐 내려간다는 것이다. 컴퓨터 사용에서 그 어떤 다른 글보다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여 세종대왕이 600년 뒤에 올 디지털시대를 예견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말 우리 글이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뛰어난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본국(한국)에서 자기의 글을 촌스럽다며 도외시 하고 우리글로 정확히 표기할 수도 없는 외국어에 집착하고 있는지? 이것도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간다고 할 수 있는지? 자기 나라의 우월한 문화를 보전하고 자랑하며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나가야지 이런 우월한 문화를 도외시 하면서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나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은 간판·현수막·벽보·전단 등에 반드시 한글 표기를 곁들여야 한다고 정해두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모호해 법이 있으나 마나 한 실정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이 집거한 연변 거리의 간판들을 보면 한가지 간판을 두 가지 문자로 표시하였는데 우에는 조선문자 아래에는 한자로 표시되어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행정수단으로 강제철거를 시킨다. 조선문자를 첫 자리에 놓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은 본적이 있다. “우리가 한국어와 한글을 더욱 사랑하 고 가꾸지 않는다면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00년 내지 200년 후에는 박물관에서나 한글을 찾아보겠지...... 온통 영어만 쓰고...... 이제 대한민국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한글을 사랑 하고 지키어 세계화하자.” 이는 외국어에 집착하고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가운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웨치고 싶다.   [주] 이글은 지난해 한국의 조선일보, 동북아신문, 한민족신문 한글학회 잡지에 게재된 글이다.   
19    국기게양관리를 잘 하자 댓글:  조회:7840  추천:25  2011-04-24
국기게양관리를 잘 하자 청해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고 오성붉은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이고 표징이다. 필자는 용무로 하여 모시에 가 며칠 체류하게 되였는데 지난 일요일(4월17일)거리를 지나다가 모 학교의 국기게양대에 국기가 그냥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얼마 후 또 다른 학교를 지나다가 역시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필자는 ‘이런 학교들에서 정말 국기게양관리가 잘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침 일요일이라 시내구경도 할 겸 다른 학교와 기관에서는 국기게양관리가 어떤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고9개의 중소학교와 시정부, 인대, 정협, 법원, 검찰원 등10개의 기관을 돌아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기법》제6조에는 《국무원 각 부문,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 인민정부, 인민법원, 인민검찰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지방 각급 위원회는 사무를 보는 날에 반드시 국기를 게양하여야 한다. 전일제 학교들에서는 겨울방학, 여름방학, 일요일을 제외하고 반드시 매일 국기를 게양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여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학교나 지방 각급 기관들에서는 사업일이 아닌 일요일에 국기를 게양하지 말아야 한고 본다. 그런데 필자가 돌아본 10개의 기관, 9개의 학교 가운데서 4개의 기관과 3개의 학교들에 국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국기법》 제16조에는 《파손, 오손, 퇴색하였거나 규격에 맞지 않은 국기를 게양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필자가 돌아본 가운데 한 학교의 국기는 붉은색 바탕과 황색 오각별 색갈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퇴색하였고 심지어 기발 끝자락이 바람에 찢겨진 그대로 펄럭이고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기법》 제12조에 의하면 《국기를 게양함에 있어서 반드시 아침에 게양하고 저녁에 내리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일부 학교와 단위들을 보면 아침에 게양한 국기가 밤새도록 그냥 걸려 있으며 어떤 때에는 일주일 내내 걸려 있을 때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국기법》에 대한 인식이 결핍하다는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국기의 존엄을 수호하고 국기정신을 선양하며 학생들의 국가관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강화하기 위하여 반드시 학생들에게 《국기법》에 대한 지식을 잘 전수하여야 하며 특히는 국기반(기수, 국기호위자)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하여 국기게양제도를 똑똑히 알게하며 국기게양과 강하에 대한 관리를 잘 하여 국기의 존엄을 수호하여야 한다고 본다.   
18    《촌촌통》 내 고향을 바라보며 댓글:  조회:8677  추천:20  2011-04-20
  《촌촌통》 내 고향을 바라보며                       청해  해마다 청명, 추석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의 산소에 가서 제사를 올리던 내가 몇 년간의 출국으로 하여 이번 청명은5년 만에 향하는 고향길이였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5년 만에 가는 길이라 내 고향마을이 어떻게 변모 하였는가 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다.   룡정에서 출발한 뻐스가 남양령에 올라서자 내 고향 덕신이 한눈에 안겨왔다. 마 을마다 적색, 청색지붕을 얹은 하얀집들이 줄지어 들어 앉았고 《촌촌통》콩크리 트포장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놓았으며 홍수가 지면 경작지를 볼품없이 뜯어 가던 팔도하 량안은 담회색의 콩크리트 제방으로 쌍곡선을 이루어 그야말로5년 전에 볼 수 없었던 한폭의 그림이였다. 덕신정류소에 내리니 택시 여러대가 손님 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인차 택시를 타고 부모님께서 누워계시는 내고향 뒤동산에 올랐다.   우리는 부모님의 분묘에 정성들여 가토를 한 다음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올렸 는데 나는 공손히 술잔을 올리며《아버님, 어머님 몇 년간의 출국으로 하여 부모님의 산소에 찾아오지 못하였습니다. 불효한 이 자식 늦게나마 오늘 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오니 이 절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인사말을 하며 절을 올리였다.   청명절이라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온 고향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제사를 다 올린 다음 제사상을 물려놓고 산소에 온 고향친구들을 청하였다. 친구들도 반갑다며 너도 나도 자기가 차려온 제물들을 꺼내놓았는데 제법 산해진미가 다 오른 고향친구들의 모임이였다. 그것도 조상들을 모신 고향마을 동산에서의 모임이라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들이라 서로 권커니 작커니 하며 술을 마이면서 고향마을 내려다 보노라니 추억과 현실, 그리고 미래를 엇갈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벽돌집 한채 없던 그제날의 우리마을, 지금은 줄지어 앉은 적색, 청색의 지붕을 얹은 새하얀 주택들, “안까이(안해)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 못산다” 던 내 고향 덕신, 인제는 콩크리트포장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서로 이어놓았고 마을안도 몇갈래의 콩크리트포장도로로 이어져 있었다. 홍수가 지면 5리밖의 철교로 에돌 아 다니던 팔도하도 인젠 나무다리가 자취를 감추고 아치형의 콩크리트다리가 덩 실하게 팔도하에 가로놓여 있었다. 도시의 진출, 출국바람으로 가구수가 많이 줄 어들어 어딘가 서운한 점은 있었지만 고향의 새농촌건설의 변화들을 보노라니 그래도 우리고향 앞날의 발전에 대하여 희망이 보였다.   본 지방에 남아서 농사를 짓는 친구의 말이다. 《그전에는 소로 받을 갈고 호미로 기음을 맸지만 지금은 기계로 받을 갈고 살초제로 기음을 대체하니 혼자서 몇 쌍의 밭은 어렵지 않게 다룬다. 지금 집에 남아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도시진출과 출국한 사람들의 밭을 다 다루고 있지만 그전처럼 그렇게 바삐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한 친구는 《그전에는 진흙길이여서 농산물 운수에도 곤난이 많았지만 지금은 나라에서 《촌촌통》계획을 실현하여 콩크리트 포장도로로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놓고 국도와 이어져 아무리 큰비가 내려도 농산물을 싣고 씽-씽- 시장으로 달리수 있으며 길이 좋으니 농산물 수구를 오는 차들도 많아 어떤 것은 앉은자리에서 처리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남아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농업세 면제와 우량종자보조, 농기구구입보조, 디젤유보조 등등 나라의 《삼농보조금》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항목이 너무 많아 그들도 다 말하지 못하였다. 자기의 밭을 남에게 임대주고 도시에 들어가 막벌이를 하던 한 친구도 나라의 《삼농》정책이 좋아 인제 돌아와서 농사를 지으려는 의사도 밝히였다.   내고향의 이러한 변화들은 바로 11차 5개년계획기간의 성과들이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지만 내고향은 반 10년에 벌써 이렇게 변하였으니 이제 12차 5개년 계획이 실현되면 내고향이 또 어떻게 변화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더듬어 보게 되니 우리나라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의 희망이 확 트이는 듯 하였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아래를 내려다보니 《촌촌통》도로에서 승용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아마 산소로 오가는 자가용과 택시들 같았다. 우리는 이렇게 한시간 남짓이 고향정을 나누고 마을로 내려왔는데 오가는 택시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집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17    몇가지 호칭문제에 대하여 (주청룡) 댓글:  조회:108032  추천:16  2011-03-07
몇가지 호칭문제에 대하여 -주청룡 지금 인터넷이나 일부 사람들 가운데서 ‘香港’을 ‘홍콩’, ‘澳门’을 ‘마카오’, ‘朝鲜’을 ‘북한’, ‘朝鲜半島’를 ‘한반도’ 라고 하는 표현들을 많이 보거나 듣게 된다. 오늘 조글로에서도 어느 한 문장에 댓글을 올린 네티즌(누리꾼) 가운데서도 서로 ‘향항’이냐? ‘홍콩’이냐? ‘오문’이냐? ‘마카오’냐? 하는 쟁론도 보았다. 이 몇가지 호칭문제에서 각자 제나름대로 말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자기의 주장대로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이 없이 되는대로 말하고 있는데 필자는 오늘 이 몇가지 호칭에 대한 견해를 말하려 한다. 먼저 ‘香港’과 ‘澳门’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1일香港을 영국으로부터, 1999년 12월 20일澳门을 포도아로부터 도로 찾아 우리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고 각각 중화인민공화국의香港特別行政区,澳门特別行政区로 하였다. 그리하여香港과澳门은 외국의 식민지나 조계지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성한 령토이고 우리나라의 특별행정구이다. ‘홍콩’은 영어 ‘Hong Kong’에서 온 말이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어 ‘Macau’에서 온 말이다. 때문에 ‘홍콩’, ‘마카오’하면 아직까지 이 두곳이 외국에 예속되여 있는 감을 느끼게 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약간의 정치적 의미도 띠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 이 두곳의 명칭을 말할 때 반드시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여야 한다고 본다. 즉 한어로 말할 때에는 ‘香港’, ‘澳门’으로 우리민족의 말로 할 때에는 한자어로 ‘향항’, ‘오문’이라고 하여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朝鲜’, ‘韩国’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 한중수교 이전에 우리는 ‘朝鲜’을 ‘북조선’, ‘韩国’을 ‘남조선’이라고 불렀다. 1991년 9월 17일 유엔에서는朝鲜과韩国을 합법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동시에 유엔에 가입시켰다. 국제사회에서朝鲜과韩国을 다 합법적 주권국가로 인정하자 1992년에 우리나라는韩国과 외교관계를 건립하였다.‘북조선’, ‘남조선’하면 전체 ‘朝鲜半島’가 ‘朝鲜’이라는 뜻이 되고 ‘남한’, ‘북한’하면 전체 ‘朝鲜半島’가 ‘韩国’이라는 뜻으로 된다고 본다. 국제사회가朝鲜과韩国을 다 합법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는것만큼 우리도 두 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존중하여 ‘朝鲜’을 ‘북한’이라고 하지 말고 ‘조선’이라고 부르고 ‘韩国’을 ‘남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한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그다음 ‘朝鲜半島’에 대하여 말하여 보자‘朝鲜半島’를 조선에서는 ‘조선반도’라 하고 한국에서는 ‘한반도’라고 한다. ‘朝鲜半島’란 명칭은 이 반도가‘檀君朝鲜’, ‘李氏朝鲜’이라는데서 력사적상 장기적으로 ‘朝鲜半島’라고 불리워 왔다. 우리말로는 ‘조선반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에서는 ‘조선반도’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력사적인 관습에 따라 ‘朝鲜半島’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도 ‘朝鲜半島’ 라고 한다. ‘한반도’란 말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립되면서 한국에서 이 반도의 유일한 합법적 주권국가는 대한민국이라는데서 나온 말이다. 필자의 견해로 말하면 우리 중국의 조선족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 응당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에 따라 ‘朝鲜半島’의 한자어로 ‘조선반도’라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16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 우리가 가꾸고 지키자 댓글:  조회:9042  추천:28  2011-02-20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 우리가 가꾸고 지키자 김재범 주청룡 토지는 하늘이 무너져도 버티고 일어설수 있는 가장 튼튼한 밑천이자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억척스레 닦아놓은 삶의 터전이 1990년대에 들어서 조선족들이 대도시, 연해도시, 해외로 진출하면서부터 토지의 경영권을 타민족에게 임대 혹은 양도하여 점차 누에 뽕잎 먹듯이 타민족 에게 잠식(蚕食)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였다. 이런 현상들은 모종 의미에서 보면 농경인들로부터 도시인으로 전변되는 좋은 현상이라 하겠지만 우리 조상들이 닦아놓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 더욱 가슴아픔 현실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우리는 주농업위원회를 찾아 농촌조선족의 현주소에 대하여 깊이 있게 료해를 하고 농업위원회에서 많은 자료들을 제공받았으며 또 일부 현지조사자료, 연변일보, 흑룡강신문에 게재된 이 방면의 기사들을 선진적 자료로 하여 토지문제에서 조선족사회가 직면한 위기와 해결대책에 대책에 대한 약간의 견해를 제기하는데 우리 조선족사회 구축에 도움이 되겠는지? 1. 조선족의 분포정황(림시로 대도시, 연해도시에 진출한 것을 제외) 1860년대 후반기 22만 km²의 제한된 조선반도에서 련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특히는 토지가 척박한 함경도, 평안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생계를 위하여 조선정부의 월강금지령, 청정부의 무단월경자들에 대한 처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의 삶의 터전을 닦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우리 조선족(강제이주민을 포함하여)은 80만 km²에 달하는 전 동북지역에 산재하여 있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만 하여도 42,700 km²의 땅에 약 82만명에 달한 인구가 살고 있으며 연변의 면적만 하여도 조선반도의 1/5, 전 동북지역을 말하면 조선반도의 3.6배에 달하는 땅에 산재 혹은 집거해 있다. 이것은 우리 조선인들이 조선반도로부터 만주에로의 생활령역의 확장이였다. 지금 길림성에 한 개 조선족자치주(연변주), 한 개 조선족자치현(장백현)이 있으며 동북3성에는 42개조선족향(련합향을 포함)이 있는데 길림성에 11개, 료녕성에 12개, 흑룡강성에 19개가 있다. 2. 토지문제에서 조선족사회가 직면한 위기 우리 조선족들은 앞선 의식, 빠른 실천으로 개혁개방의 앞장에서 달리고 있다. 중-한수 교 이후 한국기업의 중국진출로 하여 조선족들이 대도시, 연해도시에로 진출하게 되였으며 특히 한국정부의 방문취업제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출국하면서 지금 농촌의 조선족 마을들이 옛날의 아담한 모습과는 달리 스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우리가 살던 마을과 그 주변 마을들은 순 조선족 마을로서 다른 민족이 한 가구도 없었다. 그렇지만 조선족들이 대도시, 연해도시, 한국에로 진출하면 서 토지경영권을 다른 민족 에게 임대 혹은 양도하면서 한족들이 들어 오기 시작하였는데 우리가 살던 마을에는 인제 한족호수가 절반을 넘어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이웃마을들에는 조선족이 한두호 지어는 한호도 없이 전부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하여 우리의 토지, 우리의 터전이 완전히 타민족 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 하여 우리 조선족들이 모두 한평생 지구의 껍질을 허비면서 피와 땀으로 이 땅을 적시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능력에 따라 떠나 갈수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과학적으로 규모화, 기계화, 현대화한 농업으로 가꾸고 지키면서 도시에 진출한 사람들보다 못지않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토지를 임대한 것이기에 기한이 되면 도로 찾을수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길고 세대가 바뀌게 되면 자연히 그 임대가 경영권으로 넘어갈수 있다, 이렇게 되면 후세 사람들이 대학교나 기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하여 과학적인 영농법을 배워가지고 본 고장에 와서 규모화 농업을 하려고 하여도 발을 붙일 자리마저 없게 될것이며 우리의 삶의 터전을 영영 잃게 될것이다. 지금 외국에 갔다 온 적지 않은 조선족 농민들은 토지는 타민족에게 임대하고 소비가 큰 도시에 들어와서 아무런 창업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몇 년간 뼈를 갈아 벌어온 돈을 물쓰듯 다 써버리고 다시 출국행을 선택하여 또 다시 리산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것도 로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수 있지만 노동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로후의 생활보장마저 없는 신세로 되고있다. 3. 위기해결책에 대한 약간의 견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농업인구가 점차적으로 도시인구로 전화되고 이전의 작은 자연부락이 감소되는 것은 필연적 추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삼림, 우리의 농경지, 우리의 삶의 터전을 가꾸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다. 아래에 토지문제에서 조선족사회가 직면한 위기해결책에 대한 약간의 견해를 말하려 한다. 첫째로 외지에 나간 촌민들의 토지를 촌민위원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는것이다. 지금 일부 지방을 보면 외지로 나간 농민들이 촌민위원회를 거치지지 않고 사사로이 타지방 사람들과 토지임대 또는 양도계약을 맺었기에 촌민위원회에서 토지경영권이 타지방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기 바쁘다. 길림성 룡정시 지신진(원 광신향) 동흥촌은 60헥타르의 경작지에 85호가 전부 조선족으로 되여 있는 룡정시 교외에 있는 마을로서 97%의 농호가 출국하였는데 처음에는 촌민위원회의 동의도 없이 사사로이 외지인들과 토지임대계약을 맺었기에 토지임대 금액도 낮거니와 법률적 효력을 상실한 계약이 많아 나중에는 법률보호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였다. 이러한 실정에서 이 촌의 촌민위원회에서는 무릇 본 촌민이 부치지 않는 토지는 촌민위원회에서 회수하여 통일적으로 관리하여 자지방 혹은 타지방 사람들에게 임대하여 주기로 하였다. 하여 처음에는 헥타르당 400원씩 임대를 주었던 토지를 모두 거두어 들여 촌민위원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며 지금 헥타르당 한전은 2500원, 수전은 2700씩 임대를 주고 촌민위원회에서 그 돈을 받아서 토지를 내 놓은 사람들에게 분배하여 주고 있다. 토지임대비가 자꾸만 오르는 것을 고려하고 촌민들이 아무 때든 다시 돌아와서 농사를 지을것을 고려하여 임대계약을 1년에 한번씩 맺고 있으며 임대 면적은 3헥타르 이하는 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촌에는 국가의 기본건설로 하여 7헥타르의 토지가 징용되였는데 헥타르당 100만원씩 700만원의 수입을 얻게 되였다. 촌민위원회에서는 이 돈에서 80%는 촌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20%는 촌의 공적금으로 하여 6층으로 된 아파트를 두채를 지어 차액은 본인이 내고 85호의 촌민이 전부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현지 조사자료) 흑룡강성 동녕현 량동구촌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마을을 우리가 굳게 지켜야 한다"면서 외지로 나간 촌민들의 농지를 전부 본 마을 사람들이 부치고 촌민위원회는 통일로 빈집에 자물쇠를 잠그고는 외지인들에게 팔지 않고 있다. 이 촌의 고춘길 촌민위원회 주임은 "눈앞의 리익만 보고 마을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땅과 집을 린근농민들에게 주었다간 후손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된다"며 "앞으로도 우리땅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한다. (흑룡강신문 2010.12.3) 둘째로 과학적인 규모화 농사를 짓는것이다. 규모화농업은 기계화를 할수 있는 경작지에는 단일한 작물을 다면적으로 기계화 작업을 하여 생산원가를 줄이고 다수확을 따낼 수 있는 훌륭한 영농법이다. 도문시 량수진 석두촌의 강태수 농민은 여러가지 농기계를 사놓고 지난해에 혼자서 농망기에 일군을 쓰면서 옥수수와 콩을 85헥타르를 다루어 74만원의 수입을 올리였다고 한다. 그는 새해는 100헥타르의 밭을 부치려 하고 있다. (연변일로 2010.11. 18. 흑룡강신문 2010.11.21) 길림성 훈춘시 마천자향 포태촌 3조에 살고 있는 최창선(49세)씨 역시 그러하다. 그는 일본에서 벌어온 돈 30만원으로 농용뜨락또르, 수확기, 이앙기, 파종기 등 각종 농기구를 구전히 갖추었고 또한 포태촌과 부근 마을의 유휴지 10헥타르(포태촌 1가구 평균 수전면적 4무)를 임대맡아 규모화한 농업을 해 지난해 10만원의 순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또 자기집 모내기나, 가을이 끝나면 마을의 곤난한 가정과 일손이 모자라는 집을 돌아다니며 기계를 사용해 무료로 모내기와 가을을 해준다고 한다. 그 외 타지방 농가의 삯가을 돈벌이에도 나서고 있는데 해마다 평균 50헥타르(헥타르당 1200원)의 기계화 수확을 하고 있다. (2010년 10월 22일 흑룡강신문) 셋째로는 생태농장을 꾸리는 것이다. 편벽한 산골마을들에는 기계화농업을 할 수 없는 25°이상의 비탈밭이 적지않게 있는데 이런곳에는 나무들을 심어 림지로 만들거나 (이번 조사자료에서 보면 이미 기본상 에서 실현되였다.) 초지를 만들어 거기에 목축장을 앉히는 것이다. 룡정시 로투구진 동불촌의 박금철(40세)씨는 한국에 가서 일하는 동안 소를 사양하면서 소사육기술을 장악하고 본 고장에 돌아와서 한국에서 번 돈 42만원을 투자하여 “룡정시구구(九九) 생태농장”을 세웠다. 그는 초창기에 소 60마리, 닭 800마리를 길렀는데 지난해에 소 30마리를 팔고 새해에는 160마리의 소를 기를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도급맡은 밭에 사료작물을 심어 가축, 가금의 사료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소를 사양하면서 배워온 발효사료기술로 옥수수대를 분쇄하여 발효시켜 소사료를 가공하여 자기 집 소사료로 하는 외 동업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연변일보 2010년 12월 1일, 흑룡강신문 12월 2일) 화룡시 투도진 룡평촌의 김홍준농민도 해외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규모화양돈업을 벌렸는데 이미 년간 2000마리의 발전규모를 형성하였으며 이 촌의 리홍화씨도 해외에서 벌어온 돈을 양돈업에 투자하여 이미 년간1500마리의 사양규모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모두 해마다 10만원이상씩 순수익을 올리고있다고 한다. (연변일보 2011년 1월 4일) 넷째로 당지의 자연우세를 충분히리용하여 수출형 농업을 하는것이다. 곳곳마다 자기의 자연우세를 갖고 있다. 례하면 연변에는 위만주국시기 강덕황제에게 올리 바치여 어곡미로 불리웠던 하천평벌 어곡전의 유기농업입쌀, 연변사과배, 검정귀버섯, 인삼, 록용, 송이버섯 등 농산물과 특산품들이 있는데 이런것들을 잘 가공, 포장하여 명브랜드로 창출시켜 국내외 시장에 진출시켜 높은 경제적 효익을 보고 있다. 길림성 룡정시 덕신향의 김영호는 당지에 잡곡이 많이 나는 우세를 리용하여 잡곡을 가공하여 명브랜드로 하여 수출형 농업을 하고 있다. 그는 건축면적이 4600m²달하는 페교된 집을 사들여 잡곡가공공장을 앉히고 150만 원을 투자하여 년간 만톤 가공능력을 갖춘 여러가지 잡곡가공기계들을 사놓고 농민들과 계약을 맺고 봄에 농민들에게 잡곡종자를 나누어 주고 가을에 전부의 잡곡들을 수구하는 방식으로 잡곡을 가공하여 《팔도하(八道河)》, 《덕신골(德新沟)》, 《두만강(豆滿江)》 등 여러가지 브랜드로 하여 북경, 상해, 천지, 청도, 광주, 심지어 한국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현지 조사자료)   길림성 화룡시 복동진의 박명자씨는 해외에서 벌어온 돈을 밑천으로 검정귀버섯 재배업을 벌렸는데 지난해에는 재배규모가 30만주머니로 늘여 이 항목에서 40여만원의 순수입을 창조하였다. (연변일보1011년 1월 4일) 다섯째로 농민전업합작사를 조직하여. 규모화, 기계화, 현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훈춘시 마천자향 하남촌은 경작지 면적이 293헥타르(수전 240헥타르, 한전 53헥타르), 13개 촌민소조, 417가구, 농업인구 1129명(조선족 811명, 한족 182명)으로 된 촌인데 분산된 농업으로는 다수확을 따낼수 없다고 의식하고 2008년 초로부터 촌민위원회에서 이끌어 반수이상의 촌민들이 자원의 원칙으로 농기구, 토지, 혹은 화페입고의 형식으로 농기복무전업합작사를 조직하였다. 목전 이 합작사는150여 만원 자산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일본 588형 벼수확기 2대, 이양기 7대, 파종기 1대, 복토기(覆土机)1대, 농용자동차 1대, 3대의 대중형 뜨락또르와 거기에 따른 농기구, 300m²의 차고(车库)를 가지고 있다. 이 합작사에서는 ‘다섯가지 통일’을 합작운행과정에 관통시콌는데 즉 통일관리, 통일생산, 통일수확, 통일가공, 통일판매하여 작년에 전촌200여 헥타르 수전을 몽땅 기계화를 실현하여 10만kg을 증산하였으며 매무의 수전에서 70여원의 성본을 감소시켰다. 농민전업합작사를 조직하니 농촌산업구조를 조정하고 로동력을 합리하게 배치 할 수 있어 더 많은 수입을 올릴수 있었다. (연변 주농업위원회의 추천자료) 전국 10대농민전업합작사의 하나로 5만무의 수전에 210호의 회원호를 거느리고 있는 흑룡강성 밀산시 록영고려미농민전업합작사에서는 합작사의 우세를 발휘하여 지난해 국가 해당부분으로부터 200만원어치의 최신 일본 이앙기, 콤바인 등 대중형 농기계들을 지원받았으며 지난해도 150만원을 지원받아 현대식 육모하우스 6만평방미터, 현대화 일광온실 600평방미터를 건설하는 등 현대화 시설들을 구전히 갖추어 놓았다. 2009년에는 '록영향벼연구개발보급중심'을 설립하고 동북농업대학 벼육종전문가인 김정훈교수가 자신의 모든 새품종개발연구항목을 가지고 합류함으로 협회의 과학기술함량을 크게 제고시켰다. 합작사에서는 또 회원농가들의 품종선택으로부터 육모, 전간관리, 가을걷이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통일적으로 책임짐으로써 농사비용을 대폭 줄이고 수입을 늘여 각종 혜택을 톡톡히 보게 하고 있다. (2010년 12월 31일 흑룡강신문) 여섯째 향진(혹은 촌)기업을 잘 꾸리여 공업화된 집중촌건설을 하는것이다. 흑룡강성 '녕안시 강남명성조선족집거구'가 최근 흑룡강성 해당부문의 비준을 얻어 '녕안시 명성조선족소진(小镇)'으로 승격하여 우리 조선족들의 본보기로 되고 있다. 이 진의 제1기 규획부지는 50만평방미터에 달하며 규획가구수는 1500가구에 달하는데 이미 1년남짓한 동안에 총 600만원을 투자해 상하수도공사, 중심도로공사, 전기공사, 주민시범주택공사, 부분 록화공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현재 건설중에 있는 항목으로는 6000평방미터에 달하는 두동의 아파트, 3200평방미터에 달하는 양로원, 명성조선족소진 사무봉사센터, 유치원, 레저오락광장, 중심도로 가로등설치 등이 있는데 총 투자가 2140만원에 달한다. 그리고 또 새롭게 생태농업관광구건설, 농업전시구, 조선민속풍경구, 조선족식품가공 등 항목을 본격적으로 시동고 있다. 이렇게 집중촌을 건설하게 되면 각급 정부로부터 정책, 자금 등 면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받을수 있다고 한다. (2010년 7월 28일 흑룡강신문) 강소성 강음시 화서촌의 경험은 전 촌의 제한된 경작지를 30여명의 감농군들에게 맡기고 촌기업을 확대하여 그외의 로동력을 모두 촌기업으로 전이 시킨것이다. 촌서기 오인보는 화서촌이 부유하여지자 주변의 16개 촌을 화서에 합병시켜 공동치부하여 촌민들의 년 평균 수입을 7만여 원에 달하게 하였고 나이 많은 농민들은 달마다 1000여원의 퇴직휴양금을 받을수 있게 하였으며 몇천세대의 촌민들 이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고 대부분 촌민들이 자가용차와 별장을 갖고 있으므로 많은 대학생들이 이 촌에 몰려 들고 외지에 시집가는 처녀는 없고 시집 오는 며느리와 장가드는 사위들이 날로 늘어나니 인구가 자연히 증장하게 된다. 새로 들어 오는 사람은 대부분 학력이 대학이상의 연구생이거나 귀국류학생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여1500여명 인구를 가지고있던 소화서가 3만여명 인구를 가진 소도시 —대화서촌으로 건설한것이다. 하여 농업소촌으로부터 공업강촌으로, 농민들은 로동자로, 촌락은 도시로 변하게 하였다.   우리도 이렇게 하자면 과거의 분산된 자연툰을 합병하여 유리한 환경조건을 갖고있는 곳을 선택하여 공업이 일떠 선 집중촌건 설을 하여야 한다. 일곱째 집중촌의 우월성 1)분산된 로동력을 집중시켜 통일배치를 할수 있다. 2)분산된 토지를 집중하여 규모화한 농업을 할수 있다. 3) 여유의 로동력을 집중하여 촌 기업을 꾸리는데 유리하다. 4) 인구가 밀집되여 있기에 거기에 따른 생활소비품을 경영하는 상점들이 앉아 농민들이 도시에 가지 않고 앉은자리에서도 생활소비품을 살수있다. 5) 인구가 집중된면 거기에 따른 문화시설을을 앉히여 농민들도 도시부럽지않은 문화생활을 할수 있다. 6) 공업화된 집중촌을 건설하면 도시에 시집가는 처녀들이 적게되며 따라서 조선족 총각들의 혼인균형파괴도 효과적으로 막을수 있다. 7) 인구가 증가되면 자연히 학생수도 늘어나 조선족학교의 페교위기도 해결할수 있으며 우리민족 교육도 보장할수 있다. 총적으로 조선족 집중촌을 건설하면 우리 조선족공동체를 더욱 건전히 구성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할수있다. 그러므로 도시에 들어가 창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출국하여 번 돈으로 본 고장에서 집중촌건설에 투자하여 과학적인 규모화농업을 한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도 가꾸고 지킬수 있으며 이 터전을 우리의 후세에 넘겨 줄수 있다고 본다. 4. 맺는 말 이상에서 모두 토지를 둘러쌓고 조상들이 가꾸어놓은 삶의 터전을 어떻게 가꾸고 지키겠는가 하는것을 거론하였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그렇다면 우리 조선족들이 한평생 토지를 떠나지 말고 땅과 씨름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의 락후한 소농경제 안광으로 문제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될 수는 있겠지만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알아야겠다. 우리 조선족들은 문화, 교육방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선진적인 문화, 과학기술을 장악하여 나라의 인재로 등용되여 국가공무원, 문화, 과학, 교육, 위생 등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울러 농업과학기술을 장악하여 가지고 현대화한 농업을 하는것도 역시 나라의 과학기술인재라는 점을 지적하여야겠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족 엘리트(우수한 인재)들이 전국의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떨쳐 우리 민족을 위하여 영광을 빛낼 뿐만 아니라 농업과학기술을 장악한 인재들도 이 땅에서 과학적으로 현대화한 농업을 한다면 우리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이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지리라고 굳게 믿어진다.   이 글을 마무리면서 우리의 조사를 적극지지하고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준 연변조선족치주농업위원회와 우리의 현지조사에 적극 호응한 많은 농민형제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김재범: 연변조선족자치주 제9기인민대표대회 대표, 룡정시 지신진(원 광신향) 당위서기 주청룡: 룡정시직업중등전문학교 퇴직교원
15    《兩彈一星》이란? 댓글:  조회:8679  추천:27  2011-02-20
《两弹一星》이란? 우리 나라에서는 1964년10월16일에 첫 원자탄 폭발에 성공 하였고 1966 년 10 월 27일에 첫 핵탄두(核弹头)를 실은 유도탄(地地导弹)비행 폭발에 성공 하였다. 1967년6월17일에 첫 수소탄폭발에 성공하였고 1970년 4월 25일에 첫 인공지구위성발사에 성공하였다. 이로 하여 우리 나라는 자체로 《량탄일성(两弹 一星)》의 연구, 설계, 제조에 성공하였다. 그 뒤를 이어 우리나라는 신주5호, 신주6호 유인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였고 또 상아1호, 상아2호도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사람들은 우리 나라 항공첨단과학기술의 거족적인 발전에 몹시 흥분하여 《량탄일성﹝两弹一星﹞》에 대하여 의논이 분분하다. 요즘 CCTV-1에서 저녁 8시에 TV련속극《五星红旗迎风飘扬》이 방영되고 있으며 이 련속극 에서 《량탄일성(两弹 一 星)》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개념에 대한 시청자들 의 인식이 혼란스럽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량탄(两弹)》이 란 원자탄과 수소탄 을 말하고《일성(一星)》이란 인조지구위성을 말한다고 그릇되게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초기에는 원자탄, 유도탄, 인조지구위성을 《两弹一星》이라고 하였는데 후에는 원자탄, 수소탄을 합하여 核弹이라하고《两弹一星》 의《一弹》은 核弹 이고 다른《一弹》은 导弹으로 연변(演变) 하였다. 원자탄은 핵분렬(核裂变)반응원리를 리용하여 핵무기를 만드는것이고 수소탄은 핵융합(核聚变)반응 원리를 리용하여 핵무기를 만드는것인데 원자탄, 수소탄은 모두 핵탄에 속한다. 유도탄은 근근히 하나의 운반 기구인데 核弹을 운반할 수 있는 기구이다. 유도탄은 무기가 아니며 유도탄의 위력은 주요하게 그가 실은 弹头 에서 온다. 이상의 것을 귀납하여 보면 《两弹一星》에서의 《两弹》은 핵탄 (核弹)과 유도탄(导弹)을 말하고 일성(一星) 은 바로 인조지구위성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两弹一星》에 대한 정의다. 다시말하면 《两弹一星》이란 核弹(원자탄, 수소탄)과 导弹(유도탄) 그리고 인조지구위성을 말한다.   주청룡
14    한일,군사교류협력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댓글:  조회:9409  추천:18  2011-01-15
한 - 일, 군사교류협력 어떻게 보아야 할까? 주청룡 김관진 한국 국방부 장관과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일본 방위상은 10일 서울에서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갖고 우선적으로 양국 간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고 아울러 양국 간 정보보호협정 체결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유엔평화유지(PKO) 활동과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조, 해군간 수색. 구조훈련 등의 분야에서 양국간 물자와 식량, 연료 등을 상호 지원할 수 있는 국가간의 구속력을 갖는 협정을 말한다. 즉 무기를 제외한 군수 물자와 수송 등 서비스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리해 할수는 있겠지만 이와 달리 군사비밀보호협정으로 불리는 '정보보호에 관한 협정'은 조선의 군사적 긴급사태에 대비한 한-일간의 군사교류협력 수준이 최고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선, 중국, 로시아는 물론, 한국 국민들마저 받아들이기 어려운 군사적 협정이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조선반도를 침략하고 강점했던 과거사가 있고 그 과거사 반성에 미흡하고 독도 령유권을 계속 주장하고있다. 이러한 일본과 심도 있는 군사교류를 한다는 것에 대해 한국국민들도 수용하기 어렵고, 한-일 또는 한-미-일 군사교류가 북(조)-중-로 동맹을 가속화해 오히려 한(조선)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각계 인사들의 반발적인 론란도 있다. 아래에 “한·일 군사협정 체결 논의 반대한다”라고 한 《평화재향군인회 성명》 의 한 단락을 들어보자. “군사협력강화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한 국가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종종 다른 국가에게는 군사적 경계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질서는 수년 내에 미국 중심에서 중국과의 2국 중심체제로의 변화가 예상되며,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 사실 중국과의 군사협력강화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그 필요성이 증대되는 실정이다. 이런 때에 남북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분위기를 이용해서, 그 목표가 북한과 중국, 러시아라는 것이 명백한 한일군사협력강화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부추기는 것이고, 오히려 정반대로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 것이며, 정작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위협은 가중시키는 것이다.” 한국이나 조선이나 할 것 없이 조선반도는 우리 한겨레의 신성한 령토이다. 무엇 때문에 한국 국방부는 력사적으로 철천지의 원쑤였던 일본과 협력하여 한 혈통인 조선을 대처하려 하는가? 우리는 력사의 쓰라린 교훈을 명기하여야 한다. 조선력사에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3국을 통일하여 어느 만한것을 얻고 어는만한 것을 잃었는가? 많은 력사학자들은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어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광채롭지 못한 력사로 보고 있다. 우리민족은 일본의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결속의 산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두 개의 나라로 되였다. 만약 2차세계대전 결속시에 조선반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조선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고 통일된 하나의 민족, 통일된 하나의 국가로 된다는 것은 세인이 다 아는바가 아닌가? 미군이 지금도 한국에 주둔하여 있고 한국에서 전시작전권도 아직까지 환수하지 못한 것이 현실인 아닌가?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화도 미국의 조선에 대한 위협이 있는 이상 조선에서 핵을 완전히 포기할수 없다. 때문에 핵문제의 초점은 미국과 조선이다. 조선을 포함한 6자회담 당사국들이 조선의 비핵문제는 공동한 인식이다. 만약 미국이 9.19 공동성명을 준수하고 조선이 제기한 평화협정을 받아들인다면 조선에서도 핵을 포기할것이다. 이러한 형세하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어 조선을 대처할것이 아니라 미군의 한국에서의 철거와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하는것으로써 조국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미, 일과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조선을 대처하려 하는 것은 외세의 힘을 빌어 자기 혈통을 멸망하려는 것이기에 이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며 천추에 용서 못할 짓이다.
13    조선족 "중국에 돌아가 살겠다"가 다수 (주청룡) 댓글:  조회:8508  추천:41  2010-08-22
중국동포 절대다수 “중국에 돌아가 살겠다.” --“한국과 중국, 어느 나라에서 살고싶습니가?”실태조사를 분석하여 보다                        주청룡 지난해, 중국동포타운신문사가 한중수교 17주년 기획특집으로 재한 중국동포를 대상하여 “한국과 중국,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가?”란 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 응답자중 67%가 중국에 돌아가 살겠다 하고 33%가 한국에서 살고싶다고 하였다. 중국에 돌아가 살겠다 중국에 돌아가 살고싶다는 사람들의 리유를 정리하여 보면 첫째, 한국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살고싶지 않다. 한국사회가 전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업현장에서 보면 중국동포들을 조선족이라면서 눈높이를 아래로 하고 색다른 눈길로 보아 어쩐지 기시를 당하는 감이 난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중국동포들이 들어 보지도 못한 고유어가 아닌 외래어나 국어사전에도 없는 사투리로 말하는것을(례하면 쇠줄을 반생으로) 알아 못들어 주춤거리면 듣기 구차한 쌍소리로 욕할 때에는 한국에서 살기싶은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다고 한다. 둘째, 한국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겹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중국동포들을 보면 한국의 인력부족을 메우는 일을 하기에 대부분 3D업종(위험한 일, 힘든 일, 어지러운 일)에서 일한다. 한국은 중국보다 로동강도가 심하고 로동시간이 길다. “OECD(경제협력기구)국가 가운데에서 한국이 로동시간이 가장 길다.”란 KBS 보도가 나왔다. 한국에서 일하려면 하루의 절반이상의 시간은 작업현장에서 보내야 하므로 너무나 힘들고 지겹는것이다. 셋째, 한국에서 번 돈을 중국에 가서 써야 값있게 쓴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여 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고 그에 따라 인건비가 높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고 따라서 인건비가 낮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은 상대적인 이 차이를 리용하여 한국에서의 높은 인건비로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가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아 생활소비가 적게 들기에 한국에서 번 돈을 값있게 쓸 수 있으므로 모두 한국에 와서 돈을 벌려고 하고 있다. 한국에서 몇 년간 벌어 본 고장에 가면 도시에 현대화한 아파트를 사서 살수 있지만 한국에서 벌어서 한국에서 살면 집을 산다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한평생 세방살이를 하여야 한다는것이다. 넷째, 조상들이 개척한 땅,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돌아가 살겠다. 우리 조상들은 쪽박차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만주땅을 개척하여 우리의 삶의 터전을 닦았다. 중국정부에서는 소수민족들에 대하여 문화, 교육, 산아제한 등 방면에서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기에 한국에서 조선족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살기보다 중국에 돌아가 소수민족의 우대정책을 받으면서 마음편안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났다는것이다. 다섯째, 중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것을 보면 중국이 전망이 더 크다. 올해 상반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으로 된다는 KBS, 조선일보 등 언론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또 일부 언론매체는 2019년에 가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될 전망이라는 보도까지 하였다. 중국은 지금 미국과 더불어 G2국가로 부상되였다. 때문에 후손들을 보더라도 강국으로 발전하는 중국에 돌아가 살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싶다.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싶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3D업종에서 일하지 않고 자기의 경제실체 혹은 중국어강사로 일하거나 힘들지 않고 대우가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였는데 그들의 리유를 정리하여 보면 한국이 교통이 발달하고 질서정연하며 환경이 깨끗하여 살기 좋다는것이였다. 한국에 방문취업제로 온 중국동포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의 대도시에 못 가본 농촌이거나 자그마한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러한 곳에서 한국의 수도권지역에 와보면 자기가 살던 고장에 비하여 모든 것이 우월하게 느껴진다. 하여 북경, 상해 등 중국의 대도시도 한국의 서울처럼 지하철을 (서울 10개 로선 개통, 상해 11개 로선 개통, 북경 시공중 로선까지 포함하여 16개 로선) 비롯한 대중교통이 사통팔달하고 질서정연하며 환경이 깨끗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채 한국이 중국보다 문명하고 선진적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 한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열심히 일하느라면 영주권을 취득할 기회도 있다. 한국에서 살려 하던 중국에 돌아가 살려 하던 모두 제나름의 생각이다. 여하튼 한국정부의 좋은 정책으로 하여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와서 일하는것만큼 열심히 일하여 고국건설에도 힘을 이바지 하는 한편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0년 8월20일
12    ‘신조선족’論에 대하여 (주청룡) 댓글:  조회:7181  추천:55  2010-06-22
‘신조선족’論에 대하여  주청룡   지금 어떤 학자들은 ‘신조선족’論을 제기하고 있는데 필자도 오늘 여기에 대한 견해를 말해 보려고 한다.    조선족이란 조선말대사전에는 “인종상으로나 민족상으로 본 조선사람. 또는 조선사람으로 이루어진 인종이나 민족.”이라 하였고 한국어사전에는 “1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 2 ‘한족(韓族)’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한족(韓族 = 韓民族)이란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에서 예로부터 살아온,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민족. 한국어를 쓰며 한반도와 남만주에 모여 살고 있다.”라고 하였다. 조선족이나 한민족은 모두 우리겨레를 이르는 말이지만 남북의 분단으로 하여 우리겨레에 대한 지칭마저도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조선말대사전에는 아예 한민족(韓民族)란 단어는 없다.   중국에서 우리겨레에 대한 ‘조선족’이란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 되여 중국사람들에 대하여 민족을 획분할 때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한국에서는 한인이라고 함)들을 ‘조선족’로 명칭 하였다.‘조선족’이란 명칭은 중국 현대한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우리나라 소수민족의 하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이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보면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에 대한 민족구분 행정용어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과 중국 사람들은 지구촌의 모든 우리겨레들을 다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은 전체 조선족이란 대 가족의 일원에 속한다. 때문에 우리로서는 ‘중국의 조선족’이라면 자랑스럽지만 한국인들은 중국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만 ‘조선족’이라 하기 때문에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우리 한겨레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또 ‘신조선족’이란 새로운 명칭이 나오면 같은 우리겨레에서 또 새로운 민족이 파생되여 나왔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신조선족’論을 내놓은 학자의 말을 빌면 “‘신조선족’이란 한마디로 용이한 해석을 하면 새로운 생활문화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새로운 의식과 가치관, 시각을 갖춘 조선족의 새로운 패턴(型)의 탄생을 말한다.‘신조선족’은 국내(중국)에서는 대도시, 연해의 근대화문화, 산업의 도회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 조선족 (물론 나이와는 상관없이 중, 장년, 노인도 포괄), 그리고 해외 세계 각 대도시들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또는 정착하여 삶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족들, 이들은 국경을 넘은 越境者들로써, 신형의 디아스포라로써 ‘경계’를 살아가면서 문화적 창조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본 지방에서 사업하고 있는 국가 공무원, 문화, 과학, 교육, 위생 등 분야에서 사업하는 조선족들, 아직도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조선족들은 철학적 도리로 말하면 상대적으로 낡은 의식과 가치관, 시각에서 해탈되지 못한 ‘구조선족’ 또는 ‘낡은 조선족’으로 되지 않는가? 이들이 있음으로 하여 중국에서의 조선족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겨레들이 이역에 갔다가 다시 본 고장에 돌아와 생활할수 있는 삶의 터전이 있게 된다. 우리는 본 지방에 남아서 우리의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키고 조선족공동체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공적을 아주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우리겨레들은 혈통, 언어, 문화,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한 개의 민족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지만 남북의 분단으로 하여 지칭문제에서 ‘조선족’, ‘한민족’하는 정치적 론란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또 ‘신조선족’론을 내놓으면 한개 민족을 몇 개로 분류하겠는가? 같은 민족끼리 우리는 ‘한민족(韓民族)’, 너희들은 ‘조선족’하면 서로 차별시하는 감을 느끼게 되는데 또 ‘신조선족’론을 내놓으면 새로운 민족내부 모순을 초래하지 않겠는가 하는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신족선족’론에서는 또 외국에 나가있는 중국의 조선족들을 국경을 넘은 越境者들로써, 신형의 ‘디아스포라’라고 하였는데 ‘디아스포라[Diaspora]’란 그리스(희랍)어로서 고대 로마제국의 탄압에 의하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을 이르던 말이기에 우리 중국의 조선족들을 신형의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마치 민족탄압에 의해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는 의미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신조선족’론에 올린 댓글들을 보면 일부 긍정적인 글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의미로 쓴 글들이였다. 필자의 견해도‘신조선족’이라든가 ‘신형의 디아스포라’라든가하는 개념의 출연은 불필요한 론란을 잃으키며 이런 개념의 출현으로 하여 오히려 사회에 좋지못한 영향을 끼칠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갖게 되다.    2010년 6월 18일   한국에서    
11    적절한 명칭은 ‘재중동포’ 혹은 ‘중국동포’ 댓글:  조회:8284  추천:41  2010-05-23
적절한 명칭은 ‘재중동포’ 혹은 ‘중국동포’ 주청룡 5월 10일  조글로 포럼에 《조선족, 중국동포, 중국교포. 적절한 명칭은?》란 글이 실렸다. 필자도 오늘 여기에 대한 견해를 말해 보려고 한다.   조선족이란 조선말대사전에는 “인종상으로나 민족상으로 본 조선사람. 또는 조선사람으로 이루어진 인종이나 민족.”이라 하였고 한국어사전에는 “1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 2 ‘한족(韓族)’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한족(韓族 = 韓民族)이란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에서 예로부터 살아온,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민족, 한국어를 쓰며 한반도와 남만주에 모여 살고 있다.”라고 하였다. 남북의 분단으로 하여 우리겨레에 대한 지칭마저도 서로 다르고 있다. 조선말대사전에는 아예 한민족(韓民族)란 단어는 없다.   중국에서 우리겨레에 대한 ‘조선족’이란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여 중국사람들에 대하여 민족을 획분할 때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한국에서는 한인이라고 함)들을 ‘조선족’로 명칭하였다. 그러나 ‘조선족’이란 명칭은 중국 현대한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우리나라 소수민족의 하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이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보면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에 대한 민족구분 행정용어에만 국한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은 전체 조선족의 한 부분에 속한다. 때문에 우리로서는 ‘중국의 조선족’이라면 자랑스럽지만 한국인들은 중국국적을 가진 우리겨레들만 ‘조선족’이라 하기 때문에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같은 민족끼리 우리는 ‘한민족(韓民族)’, 너희들은 ‘조선족’하면 론리상에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끼리 차별시하는 감을 느끼게 된다.   ‘동포’에 대하여서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서 모두 한가지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한배에서 태여 난 형제자매라는 뜻으로 ‘한 나라, 한 민족에 속하는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포’라고 하면 형제자매라는 다정한 감을 느끼게 된다. ‘교포’에 대하여서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서 모두 같은 뜻으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라고 해석하여 별다른 거부감이 없지만 그 글자 뜻을 보면 더부살이 교(僑)자에 태의 포(胞)로 되여 있어 더부살이 하는 형제라는 듣기 좋지 않은 표현으로 느껴진다.  중국 국적의 우리겨레들에 대한 호칭을 당분간 통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상에서 말한 세가지를 종합하여 보면 ‘조선족’하면 정치적인 론쟁이 있게 되고 ‘교포’라고 하면 더부살이 하는 형제자매라는 듣기 좋지 않은 표현으로 느껴 지지만 ‘동포’라고 하면 한 형제자매라는 다정한 감을 주므로 ‘중국동포’혹은 ‘재중동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하는 소견이다.  
10    천안함 침몰사건에서 내가 바라는 마음 댓글:  조회:9146  추천:62  2010-04-30
천안함 침몰사건에서 내가 바라는 마음   주청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크   3월 26일 밤, 한국 서해 앞바다를 지키던 한국 해군 2함대 천안호 초계함(哨戒艦)이 침몰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침몰 당시 승선해 있던 104명 장병중 58명이 긴급 출동한 해경정과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조되고 지금까지 40구의 시신을 찾아 내고 6명은 산화자(散花者)로 인정 되였다.   오늘(4월 29일) 대한민국은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이 46명의 희생자들을 海軍葬으로 치렀다. 나는 나라의 해역을 지키다 순국한 46명의 해군 장병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시하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안녕하시라.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에서 나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가슴 아프다. 천안함이 침몰되자 빨리 실종자를 구해내야 한다. 함미(艦尾)안에 갇혀있을 실종자들, 72시간 동안 생존가능성, 한시 급히 산소를 불어 넣어야 한다는 심정, 이는   실종자 가족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를 보는 그 심정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다 내 자식, 내 형제 같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실종자들의 생존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나의 마음도 실망으로 가슴 아파하였다.    또한 하루빨리 침몰된 함수, 함미를 인양하고 천안함 침몰원인 규명을 바라는 마음도 대한민국 국민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서 ‘외부폭발 가능성이 크다’, ‘기뢰나 어뢰에 의한 폭발가능성이 크다’, ‘북한소행으로 보고 있다’ 등의 보도를 들을 때에는 무엇인가 내 가슴을 내리 누른 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란 뉴스를 들을 때면 나의 마음은 더욱 가슴 아프다.   아직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북측의 소행이라면 민족의 비극이다. 어찌 한 핏줄로 이어진 같은 민족끼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북측의 소행이라면 한국에서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려 할 것이다. 그 대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느 한 권위적 인사는  "진상조사 결과 북한의 개입이 드러나면 UN 안보리 제재는 당연하고 남북항해 통행 차단과 개성공단, 금강산·개성 관광 등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무력제재를 배제해서도 안될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오늘 또 순국열사들의 영결식에서 해군의 한 고위급 장령은 “끝까지 찾아내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천안함 침몰사건, 이 비극에 이어 더욱 큰 비극이 벌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심을 갖게 된다. 제발 원인규명에서 북측의 소행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정치적 입장에서가 아니다. 나의 소박한 혈육의 감정에서이다. 남이나 북에는 모두 나의 혈육지친(血肉之親)들이 있다.   나는 조선이나 한국을 모두 적대시 하고 싶지 않다. 북이나 남이나 나에게는 모두 고국이다. 혈통적으로 우리는 모두 한겨레이다. 조선반도는 나의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고 조상의 넋이 슴배인 곳이다. 나는 남북이 화목하고 조화롭고 같이 잘 살기만 바라는 마음이다.    2010년 4월 29일  
9    한국언론의 "김정일訪中설"취급에 대하여 (주청룡) 댓글:  조회:7535  추천:34  2010-04-23
한국언론의 "김정일訪中설"취급에 대하여 주청룡   한국의 언론매체들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1월에 중국을 방문할것이라는 訪中설이 보도 되였다. 금년 1월부터는 여러 언론매체들에서 서로 다투어 김정일의 訪中설을 보도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이후 네번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중 2001년, 2006년 두 차려는 訪中이 1월 중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금년 1월의 訪中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압록강대교 보수작업을 하고 경비를 가강하는것으로 보아 김정일이 곧 중국을 방문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이 추운 겨울에 중국을 방문할 수 있겠는가는 의문점도 제기하였다. 이렇게 한달 내내 매일이다 싶히 訪中설을 제기하였어도 결국은 1월에 중국방문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러자 많은 언론메체들에서는 김정일이 2월에 중국국을 방문할것이라고 하면서 중국의 최대의 전통명절인 춘제(春節)가 2월 14일인 것만큼 2월 중순에는 안되고 2월 초순이나 하순이 가능하다고 보도하였다. 또 김영일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장이 2월 23일부터 중국을 방문하자 김부장의 중국방문은 김정일위원장의 중국방문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3월1일 모 신문에서는 “김영일 로동당 국제부 부장이 23일 베이징에 도착한 첫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을 예방하고,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회담을 가진데 이어 24일 톈진(天津)을 방문하여 장가오리(張高麗) 톈진시 서기를 만났고 27일에는 랴오닝(遼寧)성을 방문하여 왕민(王珉) 랴오닝 서기와 만났으며 28일에는 지린성을 방문고 쑨정차이(孫政才) 지린성 서기와 면담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을 위한 사전 답사 성격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3월 초와 중순사이에는 중국의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있으므로 3월하순에 중국방문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3월 6일 어느 한 언론은 김정일의 건강이 안 좋다는 점, 그리고 오는 8∼18일은 '키 리졸브' 한·미합동 군사훈련 기간으로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여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김정일 대신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 했다. 하지만 3월에도 김정일이든 김영남이든 여전히 중국방문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리고 3월 30일 안영기 소장(남측의 준장에 해당)이 이끄는 조선 인민군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자 일부 언론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의 '경호. 의전. 보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선발대라면서 방중이 임박했다고 보도 했다. 또 많은 언론매체들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오는 9일 개최되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4월 12일 미국에서 열리는 핵 안보회의에 참석하는 등 북. 중 양측의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4월초에 방문할 것이리라고 보도 하였다. 4월 2일 어느 한 언론매체는 “대북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르면 오늘(22일) 중국 국경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 유력한 근거는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부인하던 중국 정부도 발언 수위를 누그러뜨렸다. 중국 단둥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 잇달아 목격됐다. 중국과 북한 관계자들이 압록강 철교인 중조우의교의 상태를 점검했다. 또, 중국 해경과 북한군이 보트를 타고 압록강 주변을 순찰하기도 했다.”라고 했다. 4월8일까지 방중소식이 없자 한 동안은 방중설이 즘즘하던 것이 오늘 아침(4월18일)에는 모 방송사에서 또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 책임인원이 중국을 방문한것으로 보아 이달 말일에 방중이 가능할것이라고 일본 아사이 신문이 보도 하였다”고 하였다, 과연 이번에는 정말 방중이 이루어질것인지? 지난해 말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설이 주요 뉴스로 련속 보도 되였고 대북소식통의 이르면 오늘(4월 2일)이라던 것이 지금까지 중국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매체의 보도가 결국은 공담허설(空談虛說)에 불과하였다 보도매체라면 가능성이 높은 보도거나 근거가 확실한 결과적인 보도를 하여야지 “이럴가? 저럴가...... 그렇겠지.” 하는 식의 근거가 확실하지 못하고 가능성도 미미한 보도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언론매체의 보도가 참으로 믿기 어렵다.  
8    漢字교육의 필요성 (주청룡) 댓글:  조회:8512  추천:43  2010-04-16
漢字교육의 필요성                                                           주청룡 재한 칼럼니스트   조선일보가 1월 30일 “학부모 89%, 교사 77%가 원하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발표하여 교육과정평가원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한자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교육부에 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조선일보 4월 7일자 A1면에"漢字 가르쳤더니 국어실력 늘더라",  4월 9일자 A37면에는 “漢字 많이 쓴 신문은 '어휘력 교과서’”란 두 편의 글이 실렸다.   필자는 이 두 편의 글을 읽고 漢字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이 두 편의 글을 보면 첫 편의 글은 퇴계학연구원과 전통문화연구회 두 연구팀이 지난해 3~12월 경북 포항 영일중학교 1학년생 4개 반(14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한자를 가르쳤더니 우리말 어휘력이 향상 되였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는 보도였고 두 번째 글은 한자교육의 필요성으로부터 생활 속에서도 漢字를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신문에서 한자어표기를 한자로 많이 하였으면 하는 요구였다. 하지만 우리글을 오염시키다고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한국에 와서 한자를 배운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자어 이해력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말 단어에서 70%이상이 한자어에 속한다고 한다 한자어에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많은데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이므로 어떤 단어들은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를 병기 하여야만 그 단어의 뜻을 이해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화장’이란 단어를 보면 동음이의어가 9개나 된다. 예를 들어 ‘지금 화장을 한다’에서 ‘화장’에 한자를 병기(倂記)하지 않으면 얼굴에 화장품을 바른 다는 말인지 아니면 죽은 사람을 불에 태워 장사를 지낸다는 말인지 모른다. 만약 ‘화장’에 ‘化粧’혹은 ‘火葬’이라고 한자를 병기한다면 그 뜻을 대뜸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광주’라고 하면 광주(光州)광역시 말하는지 아니면 경기도 광주(廣州)시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광주’에 한자 ‘光州’혹은 ‘廣州’를 병기하면 어느 곳을 말하는가를 대뜸 알 수 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사기'라는 한자어만 27개가 실려 있다. 이러한 단어들을 漢字로 표기하면 그 뜻을 모두 이해 할 수 있지만 한글로 한 개 단어만 표기하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이러한 실례로 보아 한글은 한자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한자를 떠날 수 없다고 본다. ‘漢字’를 우리가 ‘한자’로 발음하듯이 중국에서도 한가지 한자를 놓고 지금도 지방에 따라 자지방의 방언으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서로 다른 음으로 발음한다.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한글과 漢字는 그 표기방식이 다를 뿐 漢字를 우리 조상들이 중국사람들과 같이 수천 년 연구하고 사용하여 온 글이므로 漢字도 우리글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1월 30일 사설에서 “작년엔 전직 총리 20명이 청와대에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한자교육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냈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낸 이해찬·한명숙·한덕수씨도 참여했다. 총리들은 ‘반세기 동안 잘못된 문자정책으로 나라가 문화위기에 놓여 있다'며 ‘국어생활을 정상화하기 위해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하면 어린 학생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준다는 일부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위에서 제기한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어휘력의 향상, 국가경쟁력의 수요로부터 고려할 때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漢字교육을 하되 중국대륙에서 쓰는 간체자(簡體字)를 가르치면 학생들의 부담을 많이 덜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漢字나 簡體字 를 번체자(繁體字)로 쓰면 매우 힘들지만 간체자로 쓰면 汉字, 简体字로 표기하기에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덜 수 있고 본다.   만약 학생들에게 간체자를 가르치면 번체자를 배운 기성세대 사람들과 모순이 있고 한국 역사속의 많은 고문서들이 번체자로 되어있어 많은 불편한 점들을 주지만 영원히 이어나갈 새 세대를 위해서라면 잠시적인 폐단을 극복하면서 간체자를 가르치는 것이 옳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자문화권에서 간체자를 쓰는 것은 중국대륙뿐이지만 그 사용인구가 세계인구의 1/5(2007년 통계)이라는 점으로부터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로 보아도 간체자교육이 옳지 안는가 하는 생각이다.   2010년 4월 15일
7    두음법칙의 페단 (주청룡) 댓글:  조회:9299  추천:56  2010-04-03
두음법칙의 페단                                               주청룡 한국에서는 일부의 소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발음되는 것을 꺼려 다른 소리로 발음되는 두음법칙(‘ㅣ, ㅑ, ㅕ, ㅛ, ㅠ’ 앞에서의 ‘ㄹ’과 ‘ㄴ’이 ‘ㅇ’이 되고, ‘ㅏ, ㅓ, ㅗ, ㅜ, ㅡ, ㅐ, ㅔ, ㅚ’ 앞의 ‘ㄹ’은 ‘ㄴ’으로 변하는 것)을 한글맞춤법에 적용하고 있다. 례하면 래일(來日)이 내일로, 녀자(女子)가 여자로 되는 등이다.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모종방면에서 우점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우점보다 두음법칙으로 오는 페단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오는 페단들을 보면 (1) 서로 다른 성들사이에 혼돈이 생긴다.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버들 ‘류(柳)', 도끼 ‘류(劉)' 수풀 ‘림(林)', 들보 ‘량(梁)’자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두음법칙에서 버들 ‘류(柳)’, 도끼 ‘류(劉)’를 모두 ‘유’라고 부르는데 성씨에는 그러할 ‘유’(兪)도 있다. 그러므로 버들 ‘류’, 도끼 ‘류’가 그러 할 ‘유’와 혼돈하게 된다. 이외에도 두음법칙으로 하여 수풀 ‘림(林)’과 맡 을 ‘임(任)'이 모두 ‘임’으로, 들보 ‘량(梁)’과 백양 양(楊)을 모두 ‘양’으로 발음하여 ‘林’과 ‘任’, ‘梁’과 ‘楊’이 구별이 안 된다.   (2) 한 사람의 성이 경우에 따라 두가지로 된다. 례를 들면 리(李), 류(柳), 림(林)씨 등 성을 가진 아가씨를 부를 때 ‘미스리’, ‘미스류’, ‘미스림’으로 부르는데 이때에는 성이 뒤에 오므로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본래의 한자음대로 리, 류, 림으로 부르고 성이 앞에 올때에는 두음법칙이 적용되므로 이, 유, 임으로 부르게 된다. 이렇게 두음법칙으로 하여 한 사람이 두가지 성을 쓸 경우가 있다.   (3) 친 형제사이에도 서로 다른 성을 가지게 되다. 례를 들면 금강산 리산가족상봉에서 북쪽의 형님은 ‘리’씨인데 남쪽의 동생은 ‘이’씨이다. 분명히 동부동모(同父同母)의 친 형제인데 한국의 두음법칙으로 하여 성이 서로 다르게 된다. “조선의 태조 리성계가 후손들에게 물려준 성은 리씨인데 너희들은 리성계의 후손이라면서 왜서 성이 이씨냐?”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4) 성명권 침해로 된다. 1996년 10월, 한국대법원에서 사람의 이름 성씨 적기는 두음법칙에 따른다는 내용을 담은 '호적예(례)규'를 발표하여 성씨 사용에서 강제적으로 두음법칙을 적용하였기에 두음법칙으로 하여 성씨가 변화된 사람에게는 성명권 침해로 되였다. 류(柳)씨성을 가진 사람을 비롯한 두음법칙으로 하여 성씨가 변화된 일부 사람들이 우리의 성씨를 돌려 달라는 함성도 있었다.  하여 2007년 8월 1일부터 두음법칙으로 하여 다른 음으로 변화되는 李, 柳, 劉. 林, 羅, 등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자원의 원칙으로 호적 등록에서 원래의 한자어의 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성명권을 존중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한글맞춤법에서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현실에서는 상기의 페단을 극복하기 힘들다고 본다.   (5) 자전을 찾기에 불편을 준다. 한글은 표음(表音)문자이기에 뜻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글자나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한자자전에서 표의(表意)문자인 한자를 찾을 때가 있다. 성이 ‘羅(라)’씨인 사람이 두음법칙에 의해 성이 ‘나’씨로 되여있다. 자기의 성을 한자로 찾으려면 ‘나’자로 들어가면 찾을수 없기에 이때에는 ‘라’자로 들어가야 한자 ‘羅’를 찾을수 있다. 얼마나 불편을 주는가?   (6) 두음법칙은 한자어와 한자어단어의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다.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하여 ‘로인’(老人)’을 ‘노인’이라고 하는데 ‘로인’이란 한자어 늙을 ‘[老]로’자에 사람 ‘[人]인’자를 써서 늙은이, 또는 늙은 사람이란 뜻인데 한자어에 늙을 ‘노’자는 없으므로 ‘노인’이라고 하면 단어의 원 뜻이 상실된다. 또 바깥에 가설한 무대를 한자음대로 하면 ‘로천무대’로 되지만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하여‘노천무대’라고 한다, 한자어 원래의 뜻은 드러날 ‘로’(露)자에 하늘 ‘천(天) 자를 써서 하늘이 들어난 무대란 뜻인데 한자어에 드러날 ‘노’자가 없으므로 ‘노천무대’라고 하면 단어의 원 뜻이 상실된다.   한국에서 두음법칙을 쓰는 리유는 우리 말에서 첫소리의 ‘ㄹ’과 중모음(重母音)앞에 ‘ㄴ’가 오면 발음하기 바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두음법칙으로 쓰이는 말도 기실 전체 우리 겨레들이 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고 일부 지방의 방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두음법칙으로 만들어 한글맞춤법에 적용한것이다 .우리 한겨레인 조선과 중국의 조선족들 그리고 재일동포들은 ‘ㄹ’과 ‘ㄴ’두음을 어려움 없이 발음하고 있다. 습관상의 문제이지 한국에서 말하는 ‘라면(拉麵)’은 ‘나면’이라고 하지 않아도 아주 순통하게 발음되지 않는가? 외국어나 외래어도 순통하게 발음할라니(외국어나 외래어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 않고 있다.) ‘ㄹ’과 ‘ㄴ’은 우리말 우리글이기 때문에 발음이 어려울 것 없다. 오히려 두음법칙의 사용은 우리의 발음능력을 퇴화시킨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페단으로 하여 한국에서도 지금 두음법칙페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한국에서는 다년간 두음법칙으로 발음하여 왔으므로 습관이 되지 않아 두음 법칙으로 오는 발음을 한자어의 원 발음대로 하려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일부 중국의 조선족들이 왜 무턱대고 한국을 따라배워 많은 페단을 갖고 있는 두음법칙을 쓰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중국조선족은 반드시 중국조선어언어규범에 따라 두음법칙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흑룡강신문 2010년 4울 1일, 동북아신문 2010년 8월 3일,      중앙인민방송 2011년 10월 3일
6    영어 발음을 대체, 새 문자 찬성할 바 아니다 댓글:  조회:7452  추천:56  2010-03-27
영어 발음을 대체할 새 문자를 만들려는 것은 찬성할 바 아니다   주청룡   올해 년초 이인철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교수가 ‘f, v, z, r, th’ 등의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다섯 개의 새 한글 문자를 제안하는 글이 조선일보에 발표되자 지금 찬반양론(贊反兩論)계속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한국체 류중인 중국동포로서 여기에 대한 견해를 말해 보려 한다.  우선 우리는 외국어와 외래어 개념에 대하여 똑똑히 분별하여야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외국어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의 말”이고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여 와 국어처럼 쓰이는 말이다.” 즉 외국의 말을 들여다가 원래의 음을 따르면서 우리말의 발음과 우리 문자가 있는 단어로 만들어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다.   문자표기에서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려는 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본다. 외국어라면 반드시 그 나라의 문자로 표기하여야 정확히 표기할 수 있으며 외래어는 이미 국어화(國語化)하였기 때문에 원어의 발음과 똑 같을 수 없으며 또 한글로 표기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예하면 라디오, 텔레비전, 컵, 넥타이, 페이지, 바나나, 아파트, 베란다 등은 외래어로서 완전히 우리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글로 충분히 표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우리의 고유어는 물론 외래어까지 충분히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이다.  만약 이인철 교수가 제기한 것처럼 ‘f, v, z, r, th’ 등의 영어 발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한글에 보충한다면 한글의 의미를 떠나게 되며 그것은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일종 기호이지 한글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말에 ‘f’의 발음이 없기 때문에 ‘file’과 ‘pile’을 모두 한글로 ‘파일’로 적는데 원어의 발음과 의미를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한자어에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것처럼 ‘파일[file]’, ‘파일[pile]’ 등으로 원어문자 표기를 병기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소견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 ‘아내’를 ‘와이프[wife]’ 흰색을 ‘화이트[white]’, ‘힘내라’를 ‘파이팅[fighting]’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고유어가 있는 단어들은 우리 말의 고유어로 쓰면 발음 표현과 문자 표기에도 아무런 장애도 생기지 않고 우리말, 우리글의 순결도도 높이고 있는데 하필이면 발음하기도 불편하고 정확히 표기도 할수 없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며 영어 발음을 대체할 새 문자를 만들어 한글에 보충하여 우리의 글을 영어에 예속시킬 이유는 더구나 없다고 본다.   지금 한국에서는 우리의 고유어를 포기하고 외국어나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말의 순결도를 점차적으로 낮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새로운 세대들은 외래어는 많이 쓰지만 그것으로 순화되는 고유어를 모르는 것이 적지 않다. 하여 기성세대 사람들은 우리의 고유어가 점차적으로 희박하여지고 우리말의 순결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한글을 쓰는 것은 한글을 장악하고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하는 것이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을 대상한 것이 아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글에 외국어나 외래어를 쓴다고 하여 알아 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필자는 우리말, 우리글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며 더욱이는 영어 발음을 대체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찬성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5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조선족 댓글:  조회:8405  추천:45  2010-03-11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조선족   주청룡   중국조선족의 이주 력사를 보면 대부분은 19세기 중엽부터 1910년 《한일 합병》까지 생계를 위한 이주였는데 1860 년대에 조선반도 지역에 련속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극히 곤란하였으며 특히 토지가 척박한 함경도, 평안도에서는 그 피해가 엄청났었다. 하여 이곳의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몰래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간도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생계를 위한 이주이고 두 번째로는 한일합병부터 9.18 사변까지 항일을 위한 애국지사들의 이주였고 세 번째로는 9.18 사변부터 일본항복까지 일제는 식량 생산기지를 건설하여 군량을 공급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만주 내륙으로 강제이주를 시켜 농사를 짓게 했는데 이것이 일본의 이민정책에 의한 강제이주였다.   광복 후 일부 강제이주민들과 대부분의 조선독립을 위한 항일투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조선(한)반도로 돌아가고 대부분의 생계를 위한 이주민들은 만주 땅에 남아서 농사를 지었다. 우리 조선족이 간도 땅에 발을 붙인 력사는 150 년이 되며 간도의 벼농사는 우리 조선인들로부터 시작 되였고 그 기술은 전 만주에 보급 된 자랑찬 력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국적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살다가 새중국이 창 건된 후 중화인민공화국은 우리를 품에 안아 주어 떳떳하게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되였고 전국의 56개 민족의 대가족 일원으로 나라의 어엿한 주인으로 되였으며 연변에는 조선족자치주를 건립하여 자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전에 중국에서 어떤 민족은 땅을 농민의 명맥이라고 자식들을 공부도 채 시키지 않고 농사일을 시켰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은 예로부터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의 뜻인 즉 소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면서라도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켜 출세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후대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한 꿈이였으며 우리들에 대한 기대였다. 이렇게 하였기에 우리 조선족들은 괭이 메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닦았고 오늘은 그 후대들이 국가 공무원이나 문화, 교육, 과학, 위생 등 지식분야에서 크나 큰 활약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 조상들이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정신이 없었더라면 우리 조선족들은 아직까지 농촌의 소농경제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1992년 중한수교이래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을 방문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지여 한국나들이를 많이 하고 있으며 생활도 많이 피여 가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조선족’ 하면 눈높이를 아래로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전반 한국사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에서 우리 중국의 조선족에 대하여 일정한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때 재외동포법에 중국조선족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이전에 출국하였다는 리유로 재외동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론란도 있어고 지금도 이미 국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시행되지 않아 출입국, 취업 등 방면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에 대하여 눈높이를 아래로 하는 이런 사람들은 우리 중국의 조선족은 중국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한국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주변인이라면서 아무런 정치권리도 인권도 없는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주: 필자와의 대화에서) 사실 우리는 중국에서 모든 정치권리를 다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소수민족의 우대정책을 향수하고 있다.   중국 연변에는 조선족인구가 전주 인구의 37%밖에 안 되지만 나라에서는 연변을 조선족자치주로 정하고 민족자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하여 중대한 회인《당대표대회》와《인민대표대회》도 조선말로 진행하고 학교에서도 조선족 언어, 문자로 교육을 받으며 거리의 모든 간판도 조선문자와 한자 두 가지 문자로 표시하는데 조선문자를 우에 한자를 아래에 놓고 있다. 연변에는 길림성에서 세 번째 순위에 이른 20개 학원을 가진 조선족 종합대학이 있다. 연변 외에도 조선족이 집거 해 있는 곳에는 국가에서 꾸리는 조선족 중소학교와 언론매체들이 다 있다. 그러므로 중국조선족의 문화수준은 전국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15세이상의 인구문맹률을 볼 때 전국 평균수준은 22.21%인데 조선족은 7%밖에 안된다. 그리고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자료에 의하면 대학수준소유자가 전국 평균수준은 매 만명당 122명인데 조선족은 381명에 달하고 석사, 박사는 전국 평균수준이 매 만명당 8명인데 조선족은 17명이다. 교육에서 이렇게 전국 평균수준을 훨씬 초과를 하였을 뿐만아니라 방송, 출판, 문예, 체육 등 방면에서도 전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여 1993년 10월 20일, 중앙텔레비죤방속국 아침 뉴스에서도 조선족은 우생우육(优生优育)에서 돌출한 성과를 취득하였으며 문화교육이 세계 선진수준에 접근하였다고 방송하였다. 산아제한 정책에서도 대민족인 한족은 한 쌍의 부부가 아이 하나만 나을 수 있지만 우리 소수민족은 아이 둘씩 나을 수 있다.   조선족은 로인을 잘 모시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례절바르고 깨끗하며 문명스러운 민족이라고 전국에 널리 자랑을 떨치고 있다.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것은 연변가무단의 아름답고 화려한 무용《연변의 봄》을 2008북경올림픽개막식에 올리여 전 세계에 우리 중국의 조선족을 널리 자랑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서 소수 민족이라 하여 소외를 당하였거나 소외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 겨레의 한국에 와서 일부분 사람들에게서 ‘조선족’이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서 살길이 없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다. 한국에 와서 취업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서민들이지만 중국에서 모두 유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여 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기에 그에 따라 인건비가 높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고 따라서 인건비가 낮은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은 상대적인 이 차이를 리용하여 한국에서의 높은 인건비로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가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아 생활소비가 적게 들기에 한국에서 번 돈을 값있게 쓸 수 있으므로 모두 한국에 와서 돈을 벌려고 하고 있다.   한국정부에서도 우리 동포들을 생각해 조선민족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는 중국과 구 쏘련 지역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친척 없는 동포들에게도 무연고 방문취업제를 실시하였다고 본다. 우리 동포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한국정부의 우리 동포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런 좋은 기회에 우리 동포들도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을 잘 하여 한국건설에 힘을 이바지하는 한편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돈도 많이 벌어 가지고 본국에 돌아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려 한다.   여러 가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우리 조선민족은 모두 한 겨레의 피줄로 이어진 동포라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은 단군이 나라를 건립하였을 때의 국호가 조선이였고 1392년 리성계가 나라를 세워서부터 1910년 한일합병까지 역시 조선시대였으며 그 후에도 '조선'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여 왔으며 한국에서 말하는 북한도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후손이므로 자랑스럽게 중국의 조선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조선(한)반도의 우리 겨레를 한민족(韓民族)이라 하고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겨레를 재외 동포라고 하며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 만 조선족이라고 한다. 중국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겨레들은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조선족’이라고 세상에 널리 자랑하고 있다. 동북아신문 2009년 3월 30일, 료녕신문 2009년 4월 5일, 흑룡강신문 2009년 4월 11일, 중앙인민방송 2011년 9월 26일
4    우정과 애정에 대하여 (주청룡) 댓글:  조회:7890  추천:43  2010-03-10
우정과 애정에 대하여   주청룡       우정과 애정은 이성 사이, 동성 사이에 다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오늘 여 기에서는 이성간의 우정, 애정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남녀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서로 이성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는 것은 인간 의 본능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이성간의 호감으로부터 가깝게 지내면 점차적으로 우정이 생기고 어떤 우정은 평생 그 우정으로 유지되고 어떤 우 정은 점차 애정으로 발전한다. 우정은 어디까지나 친구 사이에 오가는 정으로서 서로 정치, 사상, 사업, 생활, 애호 등에서 서로 돕고 고무하고 추동 하면서 리상과 목표를 향해 나 가며 서로 다른 점과 곤란한 점들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청하고 도와 주면 서 나가는 것이다. 우정은 여러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비슷한 년령단계에서 많이 생기게 되지만 어떤 때에는 부동한 연령단계에서도 같은 리념, 같은 애호로 하여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많은 혁명가들이 부동한 년령 단계 이지만 같은 리념으로 하여 동지적인 우정을 맺고 함께 사업을 해가고 있다. 또 유부녀 유부남 사이의 우정은 어떤 때에는 기형적인 애정으로 넘어 가는 것도 있다. 이런 기형적 애정은 가장 위해로운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두 가정이 다 파멸되고 원래의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막심한 심리적 고통을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유부남 유부녀 사이에 우정관계를 유지할 때에는 우정과 애정의 경계선에서 절대로 한계를 초월하여 기형적인 애정으로 넘어 가지 않도록 서로 자제하여야 한다.  애정은 련인 사이, 부부 사이, 보모자식 사이, 형제자매 사이, 사제(师弟) 사이에 다 있을 수 있는 감정인데 이런 애정은 모두 정상적인 애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연애를 동반하는 애정은 기형적 애정이다. 오늘 말하려는 애정은 련인, 부부 사이의 애정을 말한다. 애정은 일부 일 처제의 사회제도하에서는 딱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 부부 사이의 애정은 많은 경우에는 이성간의 우정으로부터 련정(恋情)으로, 련정으로부터 부부 사이 애정으로 발전하고 그 애정을 기초로 하여 부부관계가 형성된다.  부부 사이의 애정이 견고한가 견고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그 애정기초가 어떠한가에 달렸다. 지금 한국으로 나와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와 리별 하고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 사람들은 오직 지금의 내 남편(안해)을 일생의 동반자로 하고 내 한 가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돈을 버는데 정력을 몰 붓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미 이런 마음으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본국에 돌아가 행복한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애정기초가 건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런 리념도, 감정기초도 없는 우정도 애정도 아닌 단순한 이성호감을 갖고 동물의 본능적인 이성접촉으로 한 육체적 성 만족을 느끼기 위해 같이 붙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이성관계는 아주 저속적인 이성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저속적인 이성관계는 아무런 감정기초도 없기 때문에 서로간에 조금이라도 심리적, 물질적 욕구에 맞지 않으면 대판 싸움을 벌리고 갈라지며 최악의 경우에는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사례도 있다. 또 일부 애정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생이 얼마라고 고독하게 내 혼자서 보내겠는가 하며 이성을 친하여 한집에서 부부처럼 생활하고 있다. 이런 것이 나중에는 본국에 있는 배우자한테 소식이 가서 ‘네가 거기에서 그렇게 하는데 내라고 여기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겠는가’ 하며 그도 이성친구를 사귀어 부정당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내 안해(내 남편), 내 자식, 내 가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자기만 림시적 욕구를 만족시키면 된다는 건전하지 못한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저속적인 행위가 나온다.  이런 련쇄반응으로 하여 그들의 가정은 종당에는 파멸로 되여 버린다. 결국은 가장 큰 심리타격을 받는 것은 그들의 자식이다. 그러한 심리타격으로 하여 일부 청소년들은 사회상의 어중이 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며 기로에 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악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한 인생관 가치관을 수립하여 우리의 삶의 의의를 정확히 인식하고 우정이든 애정이든 모두 건전한 사상기초를 닦고 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 나가야 한다.
3    한국의 중국 인명, 지명에 대한 나의 견해 (주청룡) 댓글:  조회:7928  추천:65  2010-02-28
한국의 중국 인명,지명에 대한 나의 견해주청룡 강원구, 김광림 교수의 한국의 중국 인명, 지명에 대한 두편의 글을 보고 지난해 12월 24일 흑룡강신문에 실린 강원구 교수의 " '북경'이냐, '베이징'이냐"와 금년 1월 27일 흑룡강신문에 실린 김광림 교수의 “한국의 중국 인명. 지명 표기의 혼돈”을 보고 이 두편의 글은 다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한국의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원칙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글이라고 생각되어 아주 공감을 가지고 필자도 나의 견해를 발표해 보자는 충동을 느꼈다.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중국어 표기는 웨이드식[Wade式](중국어의 로마자 표기 방식의 하나)을 한글로 표기하고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의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서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 (예를 들면 上海를 상하이 혹은 상해, 黃河를 황허 혹은 황하)”고 하였다. 우리말에서 한자음은 강원구 교수가 말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들여오면서 무려 2천년 동안 갈고 다듬어 완전히 우리말로 만든 아주 세련된 말이다. 이런 세련된 말은 우리 민족은 들기도 쉽고 발음 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다. 그러나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중국어의 원음과도 같지않고 우리말의 한자음과도 같지않은 중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로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의 인명, 지명을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웨이드식을 한글 표기로 하면‘모택동[毛澤東]’을‘마오쩌둥’, ‘등소평[鄧小平]’을‘덩 샤오핑’, ‘호금도[胡錦濤]’를‘후진타오’로, ‘료녕성[遼寧省]’을 ‘랴오닝성’, ‘청도[靑島]’를 ‘칭다오’로 표기한다. 이렇게 하면 ‘모[毛]’는 ‘마오’로, ‘소[小]’는 ‘샤오’로, ‘도[濤]’는 ‘타오’로, ‘료[遼]’는 ‘랴오’로, ‘도[島]’는 ‘다오’로 표기하는데 이것들은 한자와 한글 한자음으로는 모두 한 음절이지만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두 음절이 되므로 중국어의 원음도 아니고 우리의 한자음도 아닌 말로 된다. '장쩌민[江澤民]'에서의 '江[강]', '신장[新疆]'에서의 '疆[강]' 은 원음대로 하면 ‘쟝’으로 표기 되어야 하고 원자바오[温家宝]에서 ‘家[가]’는 원음대로 하면 ‘쟈’로 표기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의 ‘ㅈ, ㅉ, ㅊ’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는 원칙에 의하여 ‘쟝’을 ‘장’으로 ‘쟈’를 ‘자’로 표기한다. 이렇게 하니 이것도 중국어의 원음도 아니고 우리의 한자음도 아닌 왜곡된 말로 된다.  그리고 또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의 “성조(聲調)는 구별하여 적지 는다.”는 원칙과 웨이드식 한글표기는 어떻게 하든지 중국어의 원음대로 표기할 수 없는 왜곡된 말로밖에 되지 않는다. 김광림 교수가 말한 것처럼 '國家體育場', '鳥巢'을 ‘국가체육장’ ‘새둥지’라고 하면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 명칭의 뜻을 이해하겠는데 ‘궈자티위창’, ‘냐오차오’라고 말하거나 쓰면 누가 이 생소한 단어를 알아 듣거나 알아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의미가 불명확한 명사를 쓰면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가져다 주는가? 지금 한국에서 중국의 지명에 대하여 완전히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원칙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강원구 교수가 말한 것처럼 대만(臺灣)은 타이완으로 부르면서, 중국(中國)은 왜 쭝궈로 발음하지 않고, 중국의 천안문(天安門)은 듣기만 해도 대뜸 알 수 있는데, 톈안먼으로 발음하고,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자금성(紫禁城)은 완리창청과 쯔진청이라 쓰지 않는 등이다. 그리고 중국의 인명을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으로 하여 성명권을 침해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조선족인 강원도(姜元濤)의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에 이름이 병음으로 JIANG YUAN TAO로 표기되어 있는데 한국에서 이 사람의 서류를 작성할 때에는 한국의 중국 인명, 지명 표기법에 의하여 ‘장위안타오’라고 한글로 표기한다. 이러한 사례들이 많고도 많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이 사람의 조선어로 된 이름도 아니고 중국어로 된 이름도 아닌 한 사람의 이름을 마구 뜯어 고친 성명권 침해로 된다고 본다. 하여 중국의 조선족들은 “어떻게 하면 ‘강원도’가 ‘장위안타오’로 되는가?”우리 이름을 되돌려달라고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웨이드식은 한자음이 없이 로마자를 사용하는 영어권에서는 중국어의 음역(音譯)사용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말, 우리글은 한자문화권내에 속하기 때문에 웨이드식 한글표기는 정확하지 못하며 우리의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기방법이다. 때문에 필자도 김광림 교수가 제기한 것처럼 한국의 중국 인명, 지명에 대해서는 우리의 한자음으로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서 한자를 병기하거나 원음으로 부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2    언어문자에서의 조선족과 한국의 차이 (주청룡) 댓글:  조회:12268  추천:64  2009-01-28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 두음법칙 ‘로인(老人)’을 ‘노인’,‘로(露)천무대’를 ‘노천무대’라 하는 한국말원래의 의미가 상실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주청룡    우리말(한겨레의 말)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은 한자를 받아들여, 자국어 에 고전 중국어계의 어휘를 대량으로 차용한 동아시아지역을 가리킨다. 주로 중국, 조선, 한국, 일본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 속하며 우리말의 명사에서 70%가 한자어에 속한다고 한다.여러가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우리 겨레들은 부동한 지역에서 살면서 언어, 문자사용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은 조선(한국에서 말하는 북한)과의 같은 사회주의체제와 정치적 리념으로 하여 조선과 많이 거래를 하면서 조선과 기본상 언어, 문자사용을 통일하여 왔다. 그러나 한중수교후 한국과의 민간교류를 통하여 한국에서 쓰는 언어를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의 공식적인 《언어, 문자사용규범》은 한국의 언어, 문자사용과 차이점들이 많다.아래에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 그 차이점들을 비교하여 보자, 1.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만 중국 조선족은 원래 음의 그대로 발음하거나 쓴다. 한국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두음법칙이란 단어의 첫머리가 다른 음으로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례하면 우리말에서 첫소리의 ‘ㄹ’과 중모음(重母音)앞의 ‘ㄴ’이 각각 ‘ㄴ,ㅇ’으로 발음 되는일. 래일(來日)이 내일로, 녀자(女子)가 여자로 되는 따위.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오는 페단:(1)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버들 ‘류’(柳), 도끼 ‘류’(劉) 수풀 ‘림’(林), 들보 ‘량’‘梁’자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두음법칙에서 버들 ‘류’,도끼 ‘류’를 모두 ‘유’라고 부르는데 성씨에는 그러할 ‘유’(兪)도 있다. 그러므로 버들 ‘류’, 도끼 ‘류’가 그러할 ‘유’와 혼돈하게 된다. 이외에도 두음법칙으로 하여 수풀 ‘림’과 맡을 ‘임’(任), 모두 ‘임’으로, 들보 ‘량’과 버들 양(楊)을 모두 ‘양’으로 발음하여 ‘林’과 ‘任’, ‘梁’과 ‘楊’이 구별이 안 된다.  한국은 2007년 8월 1일부터 두음법칙으로 하여 다른 음으로 변화되는 李, 柳, 劉. 林, 羅, 등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자원의 원칙으로 호적등록에서 원래의 한자어의 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성명권을 존중한 것이라고 본다. (2.)단어의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다.한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하여 ‘로인’(老人)’을 ‘노인’이라고 하는데 ‘로인’이란 한자의 늙을 ‘로’자에 사람 ‘인’자를 써서 늙은이, 또는 늙은 사람이란 뜻인데 ‘노인’이라고 하면 한자어의 뜻이 상실된다. 또 한데 가설한 무대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로천무대’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천무대’라고 한다, 원래의 뜻은 드러날 ‘로’(露)자에 하늘 ‘천’(天)자를 써서 하늘이 들어난 무대란 뜻인데 노천무대라고 하면 단어의 원 의미가 없어진다. 2. 중국의 조선족은 중국의 인명, 지명을 한자어 발음대로 말하고 쓰는데 한국에서는 중국의 인명, 지명의 한자(漢字)음을 병음(?音)화 하고 그것을 영어발음으로 읽는다.  례하면 ‘모택동’(毛澤東)을 ‘ma o ze dong’화 하여 ‘마오쩌둥’, ‘등소평’(鄧小平)을 ‘deng xia o ping’화 하여 ‘덩샤오핑’, ‘호금도’(胡錦濤)를 ‘hu jin ta o’화 하여 ‘후진타오’로, ‘료녕성’(遼寧省)을 ‘랴오닝성’, ‘청도’(靑島)를 ‘칭다오’로 ‘신강’을 (新疆)을 신장으로 쓰고 부른다.3. 한국에서는 한자어도 아닌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어떤 것은 외국어 혹은 외래를 많이 쓰고 있다. 례를 들면‘아내’를 ‘와이프’, ‘열쇠’를 ‘키’,   ‘흰색’을 ‘화이트’, 이외에도 많고도 많다.4. 한국에서는 ‘이사짐’을 ‘이삿짐’으로, ‘오래동안’을 ‘오랫동안’ ‘수도물’을 ‘수돗물’로 쓰고 또 ‘ㅡ하고저’를 ‘ㅡ하고자’로, ‘ㅡ였다’를 ‘ㅡ었다’로 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못쓰게 된 차(廢車)를 ‘페차’로 표기하지만 한국에서는 ‘폐차’로 표기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폐’자를 쓰지 않고 “페’자가 오는 단어는 모두 ‘페’로 표기하고 한국에서는 우리말에서 ‘페’자가 오는 모든 단어는 ‘폐’로 표기하고 외래어에서만‘페’로 표기한다. 같은 단어에서 발음은 한가지로 하지만 문자표기가 부동하다. 이 외에도 띄여쓰기, 문장부호 달기에서도 차이가 많다. 필자의 견해 (1)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오는 페단으로 하여 조선이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두음법칙을 찬성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두음법칙을 쓰는 리유는 우리말에서 첫소리의 ‘ㄹ’과 중모음(重母音)앞에 ‘ㄴ’가 오면 발음하기 바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 한겨레인 조선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ㄹ’과 ‘ㄴ’두음을 어려움 없이 발음하고 있다. 습관상의 문제이지 외국어나 외래어도 순통하게 발음할라니(외국어나 외래어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 않고 있다.) 사실 ‘ㄹ’과 ‘ㄴ’는 우리말 우리글이기 때문에 발음이 어려울 것 없다. 두음법칙의 사용은 우리의 발음능력을 퇴화시킨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다년간 두음법칙으로 발음하여 왔으므로 습관이 되지 않아 두음법칙으로 오는 발음을 한자어의 원 발음대로 하려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잠시적으로 발음은 두음법칙에 따라 하더라도 문자표기는 한자어음대로 쓰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2) 중국의 인명, 지명의 한자(漢字)음을 병음(?音)화 하고 그것을 영어발음으로 하면 원래의 인명, 지명이 왜곡되여 중국에서 한족도 조선족도 다 알아 못 듣는다. 그래도 한자어 발음대로 하면 조선족들은 알아 들을수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다.(3) 24가지 자모로 이루어진 우리글이 그 표기가 제한되여 외국어나 외래어를 원음대로 표기 할수 없는것이다. 례하면 힘내라는 ‘fighting’을 원 음대로 발음은 할수있으나 우리글의 문자로는 어떻게 하여도 정확히 표기할수없다. 하여 어떤사람들은 ‘파이팅’, 어떤사람들은 ‘화이팅’으로 표기한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음이 왜곡된다. 지금은 중국의 조선족들도 한국나들이를 많이 하면서 한국사회에 습관되여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이제 몇 세대 후에는 우리의 고유어가 점차적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려된다.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은 국제화시대에 발맞추기 위한것이라고 하는데 몇가지 외국어 단어를 장악하여 가지고 국제화시대에 발을 맞출수 있겠는가? 우리말의 고유어거나 귀화어(귀화어란 한자어를 포함하여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글이나 말이 오랜세월동안 사용하면서 차용한 글의 原地의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우리글처럼 되어 우리글로 탈바꿈된 글이나 말)가 없는 말은 외국어거나 외래어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우리 겨레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면 고유어가 있는 단어들은 고유어를 쓰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언젠가는 남북이 통일되여 하나의 통일된 나라, 통일된 민족, 통일된 언어, 문자사용이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1    학부모위원회 옳바른 역할 해야 (주청룡) 댓글:  조회:7208  추천:150  2007-04-11
학부모위원회 옳바른 역할 해야주청룡학부모위원회는 학교, 사회, 가정 3결합 교육련락망의 한 부분이고 학부모회의의 상설기구이며 민주적으로 학교를 꾸리는 중요한 형식의 하나로서 보편적으로 학급마다 (일부 학교들에서는 학교학부모위원회,학년학부모위원회,학급학부모위원회를 건립하고있다.) 학부모위원회를 건립하고있다. 학부모위원회 취지는 학교의 관리를 강화하고 학교교육, 사회교육, 가정교육을 유기적으로 결부하여 서로 협조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덕,지,체,미,로가 전면 발전하는 교육방침을 견지하고 전체학부모들을 단결하며 학부모가 학교의 교육,교수 사업에 참여하고 감독하는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며 수시로 학부모를 대표하여 학교에 의견,건의,요구를 제기하여 학교교육개혁을 추진하고 교수질을 제고하는데 동참하는것이다. 전 주적으로 중소학교들에서 학부모위원회를 건립하여 학교,사회와 련계를 하고 학교교육을 위하여 많은 좋은 일들을 하여 학교,사회,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절찬을 받고있다. 반면에 일부 조선족학교의 학부모위원회에서는 그 역할을 잘 발휘하지 못하여 학교와 사회의 불만을 자아내고있다. 그 주요한 표현들로는 다음과 같다. 일부 학부모위원회의 위원들은 그 자체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모르고 사업하기에 본인들은 매우 수고를 하지만 사업효과에 대하여서는 긍정을 받지 못한다. 매번 학부모회의를 한 뒤끝에는 담임,과임을 포함한 여러 교원들을 모시고 식당,노래방으로 가는것은 규례로 되고있는데 이런 행위는 사회의 질책을 받고있으며 <<저런 돈으로 그 학급의 불우한 학생들을 돕는다면 얼마나 빛이 나겠는가?>>하며 뒤공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학부모위원회에서는 경제적,물질적으로 교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역할만 한다. 운동대회요,들놀이요,교원절이요,설명절이요,졸업식이요,방학이요 하며 아무튼 수금명목이 많다. 때문에 이런 학부모위원회를 사회에서는 수금위원회라고 부르기까지 하며 생활이 곤난한 일부 조선족학생들이 한족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하여가는 현상들도 있다. 일부 소학교들에서는 들놀이거나 교내 운동대회를 조직하면 학부모위원회에서 나서고 학부모들이 나서서 열을 올리는통에 교내 학생들의 활동의미를 떠나고있다. 어느 부문에서 학교로 위생검사를 오거나 개학 혹은 방학이 되면 소학교의 일부 학부모위원회에서는 학부모들을 동원하여 대청소를 하고있는데 그들의 동기는 리해를 할수 있으나 이것은 학생들에 대한 고생교육과 자립의식 양성에서는 상반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학부모위원회의 사업이 사회의 질책을 받지 않고 지지와 옹호를 받자면 각 학교들에서도 학부모위원회의 규약을 제정하여 학부모위원회의 사업을 정규적으로 진행하여 학교교육,사회교육,가정교육이 유기적인 련계를 가지게 해야 한다고 본다. 학급마다 새로 학부모위원회를 선거할 때 먼저 그 학교 학부모위원회의 규약을 학습하여 학부모들이 모두 그 규약을 알게 하여야 하며 새로 당선된 학부모위원회 위원들도 자기들의 사명을 알게 해야 한다. 다년간의 교육사업의 경험으로 보면 학부모위원회의 위원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1. 학교교육사업에 참여하여 학교,사회,가정 교육의 일체화를 실현하여야 한다.2. 학교 교육사업의 현상태를 료해하고 학교의 교육과 교수 사업에 대하여 수시로 의견,건의,요구를 제기하여야 한다.3. 적극적인 요소(인력,물력,재력)를 동원하고 쟁취하여 학교운영조건을 개선하는데 지원을 하여야 한다.4. 학생들의 건전하지 못한 행위(싸움,음주,련애 혹은 황색소설,록화를 보는것)거나 고상한 행위를 발견하면 제때에 학교측과 련계하여 교   육조치를 대거나 표창하여야 한다.5. 학생과 학생지간,학생과 교원지간,학부모와 교원지간에 분규가 있을 때에 중재를 한다.6. 학부모와 학교사이에서 교량작용을 하며 가정교육면의 성공적인 경험과 사례들을 수집하여 교류를 진행한다.7. 학급의 결손자녀 학생들의 심리,생활 면의 곤난한 점들을 료해하고 해결하기에 힘써야 한다.8. 과외교육보도소를 건립하고 훌륭한 과외보도원을 초빙하여 법제교육을 진행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법을 알고 법을 지키도록 하여 애국주의교양을 진행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정확한 조국관,력사관,민족관,향토관을 수립하도록 하여야 한다. 학부모위원회 사업이 전체 학부모와 학교, 사회의 옹호를 받는가 아니면 질책을 받는가 하는것은 학부모위원회의 역학을 어떻게 잘 발휘하는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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