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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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 댓글:  조회:8839  추천:15  2011-05-13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 주청룡   2007년,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온지도 벌2년이 넘는다. 한국에 와서 처음 몇 달은 아무 곳도 다니지 않고 회사에서 일만 하였다. 아무리 돈 벌려 왔다고 일만하니 인생살이가 너무나도 무의미 하였다. 우리가 사는 것이 일하여 재부(財富)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문화생활도 겸하여 하는 것이 사람이 삶의 의의이고 삶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어느 하루 중국식품상점에 들렸다가《중국동포타운신문》보게 되였다. 나는 원래 신문애독자인지라 처음 이 신문을 보았을 때 한국에 우리 동포들을 위한 이런 좋은 신문이 있구나 하며 너무나도 기뻐 그 즉시로 신문사를 찾아가서 직접 김용필편집국장님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로부터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이 시작되었으며《중국동포타운신문》은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에서 가장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이 신문이 매 한 호가 나오면 1면부터 12면까지 하나의 기사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읽곤 하며 한편 정기적으로 원고를 써서 귀 신문에 투고를 하면 매 호의 신문마다에 내가 쓴 칼럼, 기행문, 생활수기 등 기사들이 한편 씩 실리군 한다. 나의 오래전부터의 소망이 나의 시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였다. 하여 나는 안해와 함께 토, 일 련휴일을 리용하여 멀리 전라남도 화순군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조선족 新安朱氏 始祖 朱濳(1194~1260)의 묘소를 참배 하였으며 그것을 글로 정리하여 여러 신문에 발표하였고《중국동포타운신 문》사 여행부의 안내로 한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유람을 하고 있으며 유람을 하고 돌아와서는 꼭꼭 기행문을 쓴다.   한국에 올 때 내가 행장을 꾸리면서 한국에 가서 볼 책들을 챙겨 넣자 곁에서 거들어 주던 친척들이 일하러 간다는 사람이 책은 무슨 책이야, 가서 일은 하지 않고 책만 보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나는 속궁리가 달랐다. 한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내가 일하러 간다고 어찌 책과 담을 쌓겠는가?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시간을 타 책을 봐야지, 하며 책을 넣은 것이 내짐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한국에 와서 짬짬이 시간을 타서 중국에서 가지고 온 책들을 볼뿐만 아니라 일요일이면 서점에 가서 새로운 책들을 사 보곤 하는데 책도 보고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글감이 생기고 그것을 칼럼, 수기, 기행문 등 형식으로 써서 한국의 여러 신문에 투고를 한다.   매 한편의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 원고료가 어김없이 나의 저금통장에 입금되는 것도 재미였다. 그것이 바로 내 머리속의것을 글로 정리하는데 소모되는 정력의 가치이며 그 가치가 화페로 전화한 특수한 상품 (商品)인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제주도 기행문을 썼는데 6번에 나누어《중국동포타운신문》 에 련재되였고 원고료도 24만원이나 나왔다.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제일 인상이 깊은 것은 그래도 제주도 유람이었다. 제주도의 경치는 물론이고 특이하다는 것은 우리가 간 날이 일년4계절 가장 춥다는 대한 날 이였는데 내륙과는 달리 모든 것이 푸른색 그대로였고 울긋불긋 가지각색의 꽃들이 만발하였으며 감귤도 나무에서 직접 따 먹을 수 있어 신비감을 느꼈다. 그리고 성읍민속마을을 참관하면서 지금까지 원시적으로 보존되여 온 제주도의 언어와 민속 문화를 현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특이하였다.   여러곳을 유람하려면 좋은 사진기가 있어야 했다. 원래 나에게 사진가가 한대 있었는데 필름을 넣고 쓰는 것이여서 컴퓨터와 디지털시대에 맞지 않았다. 하여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제주도기행문을 써서 받은 원고료 24만원을 기념으로 24만 원짜리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아무튼 객지생활이라 고정된 거처가 없어 부피가 큰 컴퓨터는 거처를 옮길 때마다 불편하였다. 하여 컴퓨터도 노트북으로 사 놓고 매일 저녁 퇴근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여러 신문의 뉴스를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으며 정기적으로 원고를 써서 신문사에 보내곤 한다. 매일 고향신문인 인터넷 연변일보를 보는것도 나의 하루 일과에 속한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 산업인력공단에서 외국국적동포 한국취업생활 수기 현상공모가 있었는데《한민족신문》사에서 나의《나는 어떻게 성공적인 취업을 하였는가?》란 글을 추천한 것이 3등상에 입선되여 아세아 14개 나라 대표들이 모인 ‘2008 외국인근로자와 함께하는 한마음 축제’ 국제적 무대에 올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였으며 또 50만원의 상금까지 타게 되였다. 그리고 이 수상작품으로 하여 KBS라디오방송의 ‘2008년 송년의 밤’프로에서도 출연하였으며 KBS1 TV 에서는 이 작품을 동화편 “행복한세상 프로를 제작하여 금년 11월 23일에 방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금년 초에는KBS TV와 중국동포타운신문사에서 공동으로 한국고용주와 중국근로자들의 간담회를 조직하였는데 중국동포신문사에서는 나를 중국동포를 대표하여 발언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감담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게 하였는데 중국동포들의 절찬을 받았으며 이것이 음력설 이튿날 저녁에 KBS1 TV에서 방영하여 재한동포는 물론 중국에 있는 동포들도 다 볼수 있었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일하여 돈도 벌면서 고국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을 통하여 나의 지식도 넓히고 공모전에 입선되여 국제무대에 올라 수상도 하고 KBS 와 함께 ‘송년의 밤’을 보내였으니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이 풍요롭기만 하다.    동북아신문,   한민족신문,   중국동포타운신문,  연변일보에 게재     [removed]//[removed]
39    중국 동포들 자각적인 준법의식 높이자 댓글:  조회:8036  추천:11  2011-05-13
중국 동포들 자각적인 준법의식 높이자   최근 여러 보도매체에서 “구로경찰서, 중국동포 마작도박 단속합니다”란 기사가 보도 되였으며 SBS뉴스 보도(08.8.31)에서도 최근 중국동포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휴게실을 빙자한 불법마작 도박장이 우후죽순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서울경찰청의 분석자료에 의하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3년에 대비해 2007년 106만 명으로 57.1%증가 하였고 외국인 범죄 건수는 2003년6,144건에서 14,542건으로 136.4% 증가 하였으며 중국동 포를 포함한 중국인의 관련된 범죄비률은 전체 외국인범죄중 61.2%(2,9 88 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들어 났다. 이상의 분석자료를 보면 중국인의 범죄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청은 외국인범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외국인 범죄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특히 중국동포밀집거주지역을 중점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구로경찰서는 올해 4월부터 가리봉거리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가리봉지구대가 지난 5월 거리에서 검문검색을 할 때 칼과 같은 흉기를 소지한 중국동포들이 걸려들었고 동포들간에 발생한 싸움에서 흉기로써 살인한 끔직한 사건들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로 하여 당지 지역주민 들의 안전에 위협을 주고 있으며 금년 4월과 5월 사이에 큰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였기에 한국의 언론도 중국동포 밀집거주지역 등 외국인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주는 선정적인 보도가 잇따라 있었다. 이로 하여 우리 중국동포사회의 이미지에 엄중한 손상을 받고 있다. 나는 중국동포의 일원으로서 중국동포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우리가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은 모두 잘살아 보자는 목적으로 부모처(혹은남편)자와 리별하고 이국(고국이라지만 필경은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국으로 밖에 될 수 없다.)땅에 와서 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국에서 열심히 일하여 고국건설에 힘을 이바지하는 한편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돈을 많이 벌어가지 고 본국에 돌아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동포들이 준법의식이 차하여 폭력행위로 한 싸움을 한다든가 비법적인 수단으로 위장영업을 하면서 퇴페업소를 꾸리거나 그런 퇴페업소로 드나들고 있다.《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을 다 흐려놓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러한 자들은 우리 동포사회에 끼어든 미꾸라지라 할 수 있다. 이런 미꾸라지들로 하여 우리 동포사회의 이미지는 엄중한 손상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법률을 준수하지 않고 불법행위로 하여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우리를 보내 준 중국정부와 우리를 받아준 한국정부에 모두 미안하게 될 것이 아닌가? 우리 동포들이 자각적으로 한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면 한국사회는 우리를 더욱 포옹해 줄 것이고 지역 주민들과도 더욱 잘 어울려 한국사회와 동포사회가 서로 어울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도 고국건설에 힘을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자기의 신근한 로동으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본국에 돌아가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자각적인 준법의식을 제고하여 한국의 법률을 준수하면서 한국사회와 동포사회가 화합, 공존, 통합의 사회를 가꾸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민족신문 2008.9.22, 동북아신문 2008. 9.9에 게재)
38    폭력행위를 엄격히 타격하여야 댓글:  조회:8127  추천:12  2011-05-13
폭력행위를 엄격히 타격하여야 주 청룡 2008년 7월 13일 일요일 본지 130호 제1면에 실린 외국인 범죄에 대한 관련기사를 읽고 놀라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사회에 외국인이 급증함에 따라 외국인의 범죄 률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분석자료에 의하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3년에 대비해 2007년 106만 명으로 57.1%증가 하였고 외국인 범죄 건수는 2003년6,144건에서 14,542건으로 136.4% 증가 하였으며 중국동 포를 포함한 중국인의 관련된 범죄비률은 전체 외국인범죄 중 61.2%(2,9 88 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들어 났다.  이상의 분석자료를 보면 중국인의 범죄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청은 외국인범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외국인 범죄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특히 중국동포밀집거주지역을 중점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구로경찰서는 올해 4월부터 가리봉거리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가리봉지구대가 지난 5월 거리에서 검문검색을 할 때 칼과 같은 흉기 를 소지한 중국동포들이 걸려들었고 동포들간에 발생한 싸움에서 흉기로써 살인한 끔직한 사건들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로 하여 당지 지역주민 들의 안전에 위협을 주고 있으며 일부 폭력자들은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경 찰의 단속에까지 대항해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로 하여 우리 중국동포사회 의 이미지에 엄중한 손상을 주고 있다. 금년 4월과 5월 사이에 큰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였기에 한국의 언론도 중국동포 밀집거주지역 등 외국인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주는 선정적인 보도가 잇따라 있었다. 나는 중국동포의 일원으로서 중국동포들의 폭력행위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우리가 한국에 온 것은 모두 잘 살아보자는 목적으로 고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한국정 부의 좋은 정책으로 고국에 와서 일하여 돈을 벌면서 하필이면 동포사이에 폭력행위로 한 싸움, 지어는 동포들 사이에 파벌싸움까지 별리여 한국의 사 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시민들의 안전에까지 위협을 주고 있는가? 이로 하여 일부 언론들은 이런 것을 흑사회라하며 ‘흑룡강파’와 ‘연변 흑사파’로 나뉘어 양대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도로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다면 우리는 우리를 보내 준 중국정부와 우리를 받아준 한국정부에 모두 미안하게 될 것이 아닌가? 우리 동포들이 한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면 한국사회는 우리를 더욱 포옹해 줄 것이고 지역 주민들과도 더욱 잘 어울려 한국사회와 동포사회가 서로 어울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지 않겠는 가? 그리고 우리도 고국건설에 힘을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정 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본국에 돌아가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폭력행위를 저지른 분자들을 모두 인간쓰레기로 여기며 거리에 나선 쥐를 모두 때려 잡아란 식으로 우리 모두 일떠나 그런 자들을 호되게 족쳐 중국동포의 거리가 평온의 거리, 안전한 거리로 되게 하며 전반 동포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자.     《중국동포타운신문》2008.7.20 131호 제2면에게재
37    아름다운《조선족사회》의 이미지를 가꾸어 가자. 댓글:  조회:8315  추천:12  2011-05-13
아름다운《조선족사회》의 이미지를 가꾸어 가자.  -- “조선족사회 어지럽히는 행위 철저히 근절돼야”란 기사를 보고 주청룡          한국에서는 한국 본토에서 사는 우리 한겨레들을 한족(韓族) 혹은 한민족(韓民族)이라하고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조선족이라고 한다. 1992년 중한수교이래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나들이를 하면 서 많은 돈을 벌어 생활이 많이 펴여 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정부에서 우리 동포들을 생각해 방 문취업제를 실행하고 있으며 보도매체로서는 중국에서 길림신문, 한국에서는 중국동포타운신문이 공 동협력하여 방문취업제를 올바르게 인도하여 나가고 있다.이로하여 많은 중국의 조선족들이 잘 살아 보자는 심정으로 고국에 와서 일하고 있으므로 하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조선족이 35만명에  육 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럼에 따라 조선족밀집지역이 생겨 나면서 조선족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 면 우리는 고국에 와서 우리 조선족사회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하겠는가?        필자는《 중국동포타운신문》제128호에 실린 “조선족사회 어지럽히는 행위 철저히 근절돼야”란 기사를 보고 마음이 몹씨 무거워 났다. 우리가 고국에 와서 일하는 것은 모두 잘살아 보자는 목적으로 부모처(혹은남편)자와 리별하고 이국땅에 와서 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국에서 열 심히 일하여 고국건설에 힘을 이바지하는 한편 한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돈을 많이 벌어가지 고 본국에 돌아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것이다. 하지만  일부 개명치 못한 사람들은 한국의 법률을 준 수하면서 자기의 신근한 로동으로 돈을 벌려하지 않고 조선족밀집지역에 끼여들어 비법적인 수단으로 위장영업을 하면서 퇴페업소를 꾸리거나 그런 퇴페업소로 드나들고 있다. 이러한것들은 우리 조선족 사회에 끼여 든 좀벌레라 할수있다.《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을 다 흐려놓 는다》는 속담과 같이 이 런 좀벌레들의 침습으로 하여  우리 조선족사회의 이미지는 엄중한 손상을 받고 있다. 이러므로 하여 일부 바르지 못한 언론들은 과거를 현재로, 개별적인것을 전면적인것으로, 국부를 전반으로 과장하여 떠들고 있다. 이에《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용필국장님도 일부 바르지 못한 언론의 비방도 들어가면 서 중국동포타운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꾸기에 로심초사하고 있다. 일부 개명치못한 사람들의 이런 불미스러운 현실에 대비해《중국동포타운신문 》사는 중국동포자율 방범대를 조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조선족사회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꾸느데 대하여 참으로 감사한 일이며 아주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필자는 이에 아주 공감을 느끼고 적극 호응하면서 선참으로 중국동포자율방범대에 자원봉사를 지원하는바이다   중국동포타운신문2008.6.20 제129호2면에 게재  
36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댓글:  조회:13182  추천:3  2011-05-13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1) 주청룡   우리말(한겨레의 말)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은 한자를 받아들여, 자국어 에 고전 중국어계의 어휘를 대량으로 차용한 동아시아지역을 가리킨다. 주로는 중국, 조선, 한국, 일본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 속하며 우리말의 단어에서 70%가 한자어에 속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우리 겨레들은 부동한 지역에서 살면서 언 어, 문자사용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은 조선 (한 국에서 말하는 북한)과의 같은 사회주의체제와 정치적 리념으로 하여 조선 과 많이 거래를 하면서 조선과 기본상 언어, 문자사용을 통일하여 왔다. 그러나 한중수교후 한국과의 민간교류를 통하여 한국에서 쓰는 언어를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의 공식적인 《언어, 문자사용규범》과 한국 의 언어, 문자사용에서 차이점들이 많다. 아래에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 그 차이점들을 비교하여 보자, 1.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만 중국 조선족은 원래 음의 그대로 발음하 거나 쓴다. 한국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두음법칙이란 단어의 첫머리가 다른 음으로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례하면 우리말에서 첫소리의 ‘ㄹ’과 중모음(重母音)앞의 ‘ㄴ’이 각각 ‘ㄴ,ㅇ’으로 발음 되는일. 래일(來日)이 내일로, 녀자(女子)가 여자로 되는 따위.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오는 페단: (1)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버들 ‘류’(柳), 도끼 ‘류’(劉) 수풀 ‘림’(林), 들보 ‘량’‘梁’자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두음법칙에서 버들 ‘류’,도끼 ‘류’를 모두 ‘유’라고 부르는데 성씨에 는 그러할 ‘유’(兪)도 있다. 그러므로 버들 ‘류’, 도끼 ‘류’가 그러 할 ‘유’와 혼돈하게 된다. 이외에도 두음법칙으로 하여 수풀 ‘림’과 맡 을 ‘임’(任), 모두 ‘임’으로, 들보 ‘량’과 버들 양(楊)을 모두 ‘양’으로 발음하여 ‘林’과 ‘任’, ‘梁’과 ‘楊’이 구별이 안 된다. 한국정부에서는 2007년 8월 1일부터 두음법칙으로 하여 다른 음으로 변화되 는 李, 柳, 劉. 林, 羅, 등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자원의 원칙으로 호적 등록에서 원래의 한자어의 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성명권을 존중한 것이라고 본다.   (2) 단어의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다.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하여 ‘로인’(老人)’을 ‘노인’이라고 하는데 ‘로인’이란 한자의 늙을 ‘로’자에 사람 ‘인’자를 써서 늙은이, 또는 늙은 사람이란 뜻인데 ‘노인’이라고 하면 한자어의 뜻이 상실된다. 또 한 데 가설한 무대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로천무대’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천무대’라고 한다, 원래의 뜻은 드러날 ‘로’(露)자에 하늘 ‘천(天) 자를 써서 하늘이 들어난 무대란 뜻인데 노천무대라고 하면 단어의 원 의미 가 없어진다.   2. 중국의 조선족은 중국의 인명, 지명을 한자어 발음대로 말하고 쓰는데 한국에서는 중국의 인명, 지명의 한자(漢字)음을 병음(拼音)화 하고 그것을 영어발음으로 읽는데 례하면 ‘모택동’(毛澤東)을 ‘ma o ze dong’화 하 여 ‘마오쩌둥’, ‘등소평’(鄧小平)을 ‘deng xia o ping’화 하여 ‘덩 샤오핑’, ‘호금도’(胡錦濤)를 ‘hu jin ta o’화 하여 ‘후진타오’로, ‘료녕성’(遼寧省)을 ‘랴오닝성’, ‘청도’(靑島)를 ‘칭다오’로 ‘신 강’을 (新疆)을 신장으로 쓰고 부른다.   3. 한국에서는 한자어도 아닌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어떤 것은 외국어 혹은 외래를 많이 쓰고 있다. 례를 들면‘아내’를 ‘와이프’, ‘열쇠’를 ‘키’, ‘흰색’을 ‘화이트’, 이외에도 많고도 많다.   4. 한국에서는 ‘이사짐’을 ‘이삿짐’으로, ‘오래동안’을 ‘오랫동안’ ‘수도물’을 ‘수돗물’로 쓰고 또 ‘ㅡ하고저’를 ‘ㅡ하고자’로, ‘ㅡ였다’를 ‘ㅡ었다’로 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못쓰게 된 차(廢車)를 ‘페차’로 표기하지만 한국에서는 ‘폐차’로 표기한다. 중국의 조선족들 은‘폐’자를 쓰지 않고 “페’자가 오는 단어는 모두 ‘페’로 표기하고 한국에서는 우리말에서 ‘페’자가 오는 모든 단어는 ‘폐’로 표기하고 외래어에서만‘페’로 표기한다. 같은 단어에서 발음은 한가지로 하지만 문자표기가 부동하다. 이 외에도 띄여쓰기, 문장부호 달기에서도 차이가 많다.   필자의 견해:   (1) 두음법칙의 사용으로 하여 오는 페단으로 하여 조선이나 중국의 조선족 들은 두음법칙을 찬성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두음법칙을 쓰는 리유는 우리 말에서 첫소리의 ‘ㄹ’과 중모음(重母音)앞에 ‘ㄴ’가 오면 발음하기 바 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 한겨레인 조선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ㄹ’과 ‘ㄴ’두음을 어려움 없이 발음하고 있다. 습관상의 문제이지 외국어나 외 래어도 순통하게 발음할라니(외국어나 외래어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 않고 있다.) 사실 ‘ㄹ’과 ‘ㄴ’는 우리말 우리글이기 때문에 발음이 어려울 것 없다. 두음법칙의 사용은 우리의 발음능력을 퇴화시킨것이 아니냐는 생 각이다. 한국에서는 다년간 두음법칙으로 발음하여 왔으므로 습관이 되지 않아 두음 법칙으로 오는 발음을 한자어의 원 발음대로 하려면 어려움을 느낄수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잠시적으로 발음은 두음법칙에 따라 하더라도 문자표 기는 한자어음대로 쓰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2) 중국의 인명, 지명의 한자(漢字)음을 병음(拼音)화 하고 그것을 영어발 음으로 하면 원래의 인명, 지명이 왜곡되여 중국에서 한족도 조선족도 다 알아 못 듣는다. 그래도 한자어 발음대로 하면 조선족들은 알아 들을수 있 지 않는가하는 생각이다.   (3) 24가지 자모로 이루어진 우리글이 그 표기가 제한되여 외국어나 외래어 를 원음대로 표기 할수 없는것이다. 례하면 힘내라는 ‘fighting’을 원음 대로 발음은 할수있으나 우리글의 문자로는 어떻게 하여도 정확히 표기할수 없다. 하여 어떤사람들은 ‘파이팅’, 어떤사람들은 ‘화이팅’으로 표기한 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음이 왜곡된다. 지금은 중국의 조선족들도 한국나 들이를 많이 하면서 한국사회에 습관되여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이제 몇 세대 후에는 우리의 고유어가 점차적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려된다.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은 국제화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것 이라고 하는데 몇가지 외국어 단어를 장악하여 가지고 국제화시대에 발 을 맞출수 있겠는가? 우리말의 고유어거나 귀화어(귀화어란 한자어를 포함 하여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글이나 말이 오랜세월동안 사용하면서 차용한 글의 原地의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우리글처럼 되어 우리글로 탈바꿈된 글이 나 말)가 없는 말은 외국어거나 외래어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우리 겨레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면 고유어가 있는 단어들은 고유어를 쓰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남북이 통일되여 하나의 통일된 나라, 통일된 민족, 통일된 언어, 문자사용이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2)   고유어와 한자어   고유어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한자어는 한자에서 온 말이지만 오래동안 사용하면서 우리 말로 탈바꿈하여 인제는 완전히 우리말로 쓰이고 있다. 한자어나 고유어나 모두 우리 말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 쓰는 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아래에 한국과 중국조선족들 사이에 고유어와 한자어를 쓰는 차이에 대하여 알아 보자.   1. ‘달걀’과 ‘계란(鷄卵)’ ‘달걀’은 순수한 우리의 말 닭의 알이란 뜻이고 ‘계란’은 한자어 닭 ‘계(鷄)’자에 알 ‘란(卵)’란자를 써서 닭의 알이란 뜻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우리말로 ‘달걀’이라고 하지만 우리 민족고유어의 본국인 한국에서는 고유어로 된 ‘달걀’을 많이 쓰지 않고 한자어로 된 ‘계란’이라고 많이 쓰고 있다.   2. ‘편의 국수’와 ‘라면(拉麵)’ 한국에서 말하는 ‘라면’은 중국식 음식이다. 그런데 원래 중국음식 라면 과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되여 있다. 원래 중국식 음식 ‘라면(拉麵)’은 손으 로 쳐서 늘여 만든 국수를 말하고 한국에서 말하는 ‘라면’은 한국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기름에 튀겨 말리여 물만 넣고 끌이면 먹을수 있는 간단히 조리할수 있도록 만든 중국식 국수”라고 하였는데 중국에서 이렇게 만든 국수를 한어로는 ‘方便面(麵)’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편의 국수’라고 한다. 여기에서 ‘편의’는 한자의 ‘便宜’(간편하다는 뜻)에서 온 한자어이고 ‘국수’는 우리의 고유어이다. 즉 간편히 먹을수 있는 국수란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말하는 ‘라면’은 응당 ‘편의 국수’라고 말 하여야 맞는다.   3. ‘지붕우(위)’와 ‘옥상(屋上)’ ‘옥상’은 한자어 집 ‘옥(屋)’자에 우 ‘상(上)’자를 써 집우 혹은 지붕우(위)라는 뜻이고 ‘지붕우(위)’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붕우’를 ‘옥상’이라고 하지만 중국조선족은 ‘옥상’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지붕우’라고 한다.   4. ‘아주’ 혹은 ‘매우’와 ‘굉장히’ ‘아주’,  ‘매우’, ‘굉장히’는 모두 우리말의 ‘퍽’, ‘썩’, ‘대단하다’의 뜻인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아주’ 혹은 ‘매우’를 많이 쓰고 한국에서는 굉장히를 많이 쓴다. 굉장히는 한자의 클굉(宏)자에 장할장(壯)자에서 온 말이므로 중국의 조선족들은 물체가 대단히 큰 경우에  ‘굉장히 크다’로 말하고 감정, 인식, 감각 등에서는 ‘굉장히’를 쓰지 않고 ‘매우’ 혹은 ‘아주’를 쓰지만 한국에서는 감정, 인식, 감각 등에서도 ‘굉장히’란 단어를 쓴다.  (유형과 무형 구분)   5. ‘다치다’와 ‘상하다’  ‘다치다’와 ‘상하다’는 모두 부딪치거나 맞거나 하여 상처를 입는것을 말하는데 ‘다치다’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상하다’의 상은 한자어 다칠상(傷)자로서 ‘상하다’는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한국에서는 상처를 입는 것을 우리말인 ‘다치다’를 쓰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흔히 ‘상하다’로 많이 쓰고 있는데 이전 로인들은 다치다로 말하였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은 상하다로 많이 쓰고 ‘다치다’는 ‘건드리다’의 뜻으로 많이 쓰고 있다.   6. 간과(看過) 한자어 볼간(看)자에 지날과(過)를 쓴 ‘간과’는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1. 대충 보아 넘김, 2. 깊이 유의하지 않고 예사로 내버려둠”으로 되여있다. 이 간과에 대한 우리말 단어는 없다. 한국에서는 ‘간과’란 이 한자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간과’란 말을 쓰지 않는다. ‘간과’는 한자로 ‘看過’로 쓰지만 한어에서의 ‘看過’는 이미 보았다는 뜻이다.   7. 농성(籠城) 농성이란 본래 한자어로는 채롱롱(籠)자에 성(담)성(城)자를 쓴 ‘롱성’인데 한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하여 ‘농성’이라고 하는데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1.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 2. 어떤 목적을 위하여 줄곧 한 자리에 머물러 떠나지 않고 버티는 일”로 되여있다. 이 ‘농성’에 해당한 우리말 단어는 없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농성’이란 한자어 단어를 쓰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 말을 쓰지 않는다. 이상의 례에서 보면 1~5까지는 고유어와 한자어로 된 단어로서 1~4까지는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중국의 조선족들은 고유어를 쓰고 한국에서는 한자어를 쓰며 5에서는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자어를 쓰고 한국에서 고유어를 쓰고 있다.  6~7에서는 고유어가 없고 한자어만 있는 단어이다. 한국에서는 고유어가 없고 한자어만 있는 단어를 하자어로 아주 간편하게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간과’나 ‘롱(농)성’같은 것을 한자어로 쓰지 않기에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것을 단문(單文)형으로 길게 말하여야 한다.   필자의 견해: 한자어는 고유어와 별로 차이 없이 우리 말로 쓰이고 있으므로 한자어를 써 도 무방하겠지만 단일어에서 한가지 뜻으로 되여 있는 고유어와 한자어 두 가지가 다 있을 때에는 고유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고 복합어, 합성어에 서 한가지 뜻으로 되여 있는 고유어와 한자어 두가지가 다 있을 때에는 경우에 따라 다를수 있지만 일반적 경우에는 고유어보다 한자어를 쓰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본다.     고유어가 없이 한자어로만 있는 단어는 한자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본다. ‘간과’나 ‘롱(농)성’과 같은 단어는 고유어 단어가 없으므로 우리말로 표시하 자면 너무 길어지여 문자 표기에서 불편한 점들이 많으므로 한자어를 쓰는 것이 편리하다고 본다.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3)   고유어와 고유어   고유어는 순순한 우리 겨레의 말이다.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한 겨레이지만 서로 부동한 지역에서 살면서 우리 겨레의 순수한 고유어도 서 로 다르게 쓰고 있다. 아래에 한국과 중국조선족들의 고유어 사용에서의 차 이를 알아 보자.   1.    ‘우’,와 ‘위’ 아래의 반대어를 한국에서는 ‘위’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우’라고 한다. 한국국어사전을 보면 한국에서도 옛날에는 ‘우’라고 하였다.   2.    ‘웨’와 ‘외’, ‘웨치다’와 ‘외치다’ 중국에서는 ‘웨’와 ‘외’는 문자 표기가 부동함에 따라 그 발음도 표준적으로 는 구별된다. ‘외’의 발음은 ‘웨’와 ‘에’사이의 발음으로서 ‘웨’보다 좀 된소리 가 나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발음의 구별이 없이 모두 ‘웨’로 발음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구별이 없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웨’로 발음 한다. 매우 큰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한국에서는 ‘외치다’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 족들은 ‘웨치다’로 표기한다.   3.     ‘머리’와 ‘대가리’ 중국의 조선족들은 두부(頭部)를 말할 때 존대(尊待)와 천대(賤待)에 따라 구별하여 말한다. 사람의 두부(頭部)를 말할 때에는 ‘머리’라 하고 동물의 두부(頭部)를 말할 때에는 ‘대가리’라 한다. 사람에 대하여서도 아주 업신여 겨 말할 때에는 ‘대가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 구별 없이 두부(頭部)를 ‘머리’라고 말하며 또 동물에서도 소나 돼지의 두부를 말 할 때에는 ‘소머리’, ‘돼지머리’라 하고 개의 두부를 말할 때에는 ‘개머리’라 하지 않고 ‘개대가리’라고 한다.     4.    ‘빌리다’와 ‘꾸다’ ‘빌리다’와 ‘꾸다’는 구별된다. ‘빌리다’는 남의 물건을 잠시 갖다 쓰고 그 물 건을 그대로 돌려 주는 것을 말한다. 원 형태를 보존할수 있는 물건을 갖다 쓰고 도로 돌려 줄 때에 ‘빌리다’로 쓴다. 례를 들면 도구를 빌려 쓰다. 옷을 빌려 입다. 책을 빌려 보다. 등이다. 갖다 쓴 물건이 쓰고 나면 원 형태를 보존할수 없고 그 수량만큼 같은 종류 의 다른 물건을 돌려 줄때에 ‘꾸다’로 쓴다. 례를 들면 ‘돈을 꾸다.’, ‘쌀을 꾸 다.’ ‘기름을 꾸다’ 등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빌리다’와 ‘꾸다’를 이상과 같이 구별하여 쓰지만 한국에 서는 이런 구별이 없이 남의 물건을 갖다 쓰고 돌려주는 것을 모두 ‘빌리다’ 로 쓰고 있다.   5.    ‘미안하다’와 ‘죄송스럽다’ ‘미안하다’와 ‘죄송스럽다’는 완전한 고유어가 아니고 한자어와 고유어가 합 성된 단어이지만 완전히 우리 말로 쓰이고 있다. ‘미안하다’와 ‘죄송스럽다’는 모두 상대방에 대하여 불안스러운 마음을 가질 때 쓰이지만 중국의 조선족 들은 불안스러운 정도에 따라 달리 쓰이고 있는데 ‘미안하다’ 는 상대방에 대해 부끄럽고 겸연쩍은 마음이 있을때에 쓰이고 ‘죄송스럽다’ 는 마음이 죄 스럽고 황송할 때 쓰인다. 상대방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더 강할 때 ‘죄송 스럽다’로 쓰이고 상대방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좀 미약할 때에 ‘미안하다’ 로 쓰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안하다’란 말을 그리 쓰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불안한 마음의 강약차이 없이 ‘죄송스럽다’를 많이 쓰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과 중국조선족 사이에 우리겨레의 고유어상용에서 차이가 많고도 많다.   필자의 견해: ‘머리’와 ‘대가리’ 존대와 천대의 차이, ‘미안하다’와 ‘죄송스럽다’ 는 상대방 에 대한 불안스러운 마음의 정도 차이, ‘빌리다’와 ‘꾸다’ 는 남의 물건을 잠시 갖다 쓰는데 그 물건의 형태보존 여부의 차이에 의하여 구별되므로 이런 구별점이 있는 단어들은 그 구별점 따라 말하고 씀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주청룡 2009년 1월 27일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4)   거리의 간판   한국에서 거리의 간판들을 보면 우리말 간판, 한자간판, 영문간판,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쓴 간판 등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조선족이 집거한 연변 거리의 간판들을 보면 한가지 간판을 두 가지 문자로 표시하였는데 우에는 조선문자 아래에는 한자로 표시되여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행정수단으로 강제철거를 시킨다. 조선문자를 첫 자리에 놓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에서의 언어, 문자사용을 ‘짬뽕’이라고 한다. 그만큼 중국의 조선족들은 전국인구의 0.15%밖에 안되지만 그 넓은 땅, 그 많은 인구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굳건히 아끼고 지켜 왔다는 것을 설명한다.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는‘조선말사용에 관한 규정’을 내 왔고 또 ‘조선말 규범집’책으로 출판하였다.   모회사를 지나다가 “XX엔지니어링㈜”란 간판(완전호칭을 밝히지 않고 한자어로 되여 있는 앞부분을XX로 표시)을 보았다. 그 회사의 직원들과 엔지니어링이란 무슨 뜻 인가고 물어보니 10여명 되는 직원가운데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럼 이 많은 회사직원들이 모르고 누가 아는가?”고 물으니 “사장이나 알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그 간판 옆에 “XX 機械工業(株)”라고 한자로도 표시되여 있어 중국의 조선족들은 그것이 모모 기계공업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엔지니어링이란 1. 공학(工學) 2. 재료, 기계, 인력 따위를 일정한 생산목적에 따라 유기적인 체계로 구성하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여러 회사의 사장들과 “무엇 때문에 간판을 한글로 표시하지 않고 영문 혹은 영어를 한글로 표시하는가?”고 물으니 대부분 회사사장들의 말 은“우리말로 하면 어딘가 촌스럽다. 그래도 영어로 명칭을 달아야 국제화 시대에 발을 맞추는 것 같다.”라고 하였고 일부 사장들은 “남들이 그렇게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한다.”라고 하였다.   영어를 우리글로 표기하면 그 표기가 제한되여 많은 단어들을 정확히 표기할 수 없다. 하여 영어를 잘 아는 외국사람들도 우리글로 표기된 영어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본국사람도 모르고 외국사람도 모르는 그런 간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간판외에도 각종 언론 매체와 출판물에서 우리의 고유어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외국어, 외래어를 많이 쓰고 있다.   지금 세계언어학자들은 조선(한)글을 세계통용 문자로 하자는 주장도 나 오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조선(한)글은 배우기 쉽다는 것이다.  24가지 자모로 조선(한)글의 모든 문자를 다 표시할 수 있고 가, 나, 다, 아, 야, 어 등 기본음에 여러 가지 받침을 넣으면 그 계렬의 음을 문자로 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리유는 컴퓨터 문자입력에서 육필의 필순에 따라 건반을 치면 모든 글자들을 순조롭게 쳐 내려간다는 것이다. 컴퓨터 사용에서 그 어떤 다른 글보다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여 세종대왕이 600년 뒤에 올 디지털시대를 예견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말 우리 글이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뛰어난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본국(한국)에서 자기의 글을 도외시 하고 우리글로 정확히 표기할 수도 없는 영어간판을 쓰고 있는지? 이것도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간다고 할 수 있는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은 본적이 있다. “우리가 한국어와 한글을 더욱 사랑하 고 가꾸지 않는다면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00년 내지 200년 후에는 박물관에서나 한글을 찾아보겠지...... 온통 영어만 쓰고...... 이제 대한민국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한글을 사랑 하고 지키어 세계화하자.” 이는 외국어에 집착하고 조선(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가운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우 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웨치고 싶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5) 필자註: 원래는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를 네 번에 나누어 두음법칙, 인명, 지명, 거리간판, 한자어와 고유어, 고유 어와 고유어, 고유어와 외래어 등 몇 개 부류로 나누어 대표적인 것을 몇가지씩 례를 들면서 차이점들을 말하여 네기로 끝을 맺으려고 하였는데 많은 독자 들의 요구에 의해 앞으로 계속하여 쓰려고 한다. 이번 기부터는 부류를 나누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언어, 문자 차이를 말하려 하는데 이미 끝을 맺으려 한 것을 계속 쓰므로 문장격식에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수 있으므로 독자들의 량해를 구하는 바이다. ‘림업’(林業) 과’ 임업’ 각종 림산물(林産物)에서 얻은 경제적 리득을 목적으로 삼림을 경영하는 사업을 한국에서는 ‘임업’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림업’이라고 한다. 림업이란 한자 ‘林業’에서 온 한자어인데 삼립과 사업의 합성명사 이다. 때문에 림업이라고 하면 수풀 ‘림’온 업 ‘업’문에 되여 있기온 피득 듣거나 보아도 삼림을 경영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수 있지만 임업이 라고 하면 삼림과 사업의 합성어 의미에도 맞지 않고 하나의 단어만 써 놓 업의 무슨 뜻인지 리해를 하기 힘들고 원래 한자어의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림업’을 ‘임업’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상관없다’와 ‘일없다’ 념려할 것 없다, 괜찮다의 뜻으로 쓰이는 ‘상관없다’를 중국의 조선족들 은 ‘일없다’로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말은 표준적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일없다’는 중국의 한족들의 영향을 받아 온것이다. 동북의 한족들은 ‘상관없다’를 ‘没事’(일없다)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도 표준적인 것이 아니며 표준적인 것은 ‘没关系’(상관없다, 관계없다)이다. 중국의 조선족 들은 여기에서 쓰이는‘일없다’를 반드시 표준적인 ‘상관없다’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덜’과 ‘슬’ 어떤 기준이나 정도가 약하게 또는 그 아래로의 뜻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덜’로도 쓰고 ‘슬’로도 쓴다. 례하면 ‘덜 되다’, ‘슬 되다’, ‘덜 춥다’ ‘슬 춥다’로 다 쓰지만 한국 사람들은 ‘슬 되다’나 ‘슬 춥다’라고 말하면 알아 못 듣는다. 친인(親人)과 친인 (親姻) 한국에서는 ‘친인’하면 ‘親姻’의 한자어의 뜻으로 배우자 혈족 등의 친족을 말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친인’하면 ‘親人’의 한자어의 뜻으로 직계 친족과 배우자를 가리켜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도 ‘親人’의한자어단어는없다. ‘안해’와 ‘아내’ 결혼한 녀성을 그 남편에 상대한 처(妻)를 한국에서는 ‘아내’라 하고 중 국의 조선족들은 ‘안해’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안 해’를 “1‘아내’의잘못. 2‘아내’의 옛말. 3‘아내’의 북한 어.” 라고 하였다. 이러고 보면 옛날에는 ‘아내’ 라 고 한 것이 아니라 ‘안해’라고 하였는데 후에 한국에서는 ‘아내’로 고치여 말한 것이다. ‘애인’과 ‘정부’ 중국의 한족들은 안해를 ‘愛人’(애인)이라고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족말의 영향을 받아 ‘안해’를 ‘애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부녀가 몰고 정을 통하는 남자를 정부(情夫)라 하고 유부남이 몰고 정을 통한 녀자를 정부(情婦)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나 련인을 모두 ‘애인’이라고 한다. ‘시끄럽다’와 ‘떠들썩하다’ 듣기 싫게 떠들썩한 소리를 한국에서는 ‘시끄럽다’라고 말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떠들썩하다’혹은 ‘요란스럽다’라고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귀찮고 성가시러울 때에만 ‘시끄럽다’는 말을 쓰고 있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이 두가지 경우를 다 ‘시끄럽다’라고 한다. ‘당근’과 ‘홍당무’ 한어에서 말하는 ‘胡萝卜’를 한국에서는 ‘당근’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홍당무’라고 하며 사투리로 ‘닌지’ 라고도 한다. 그러나 당근이라는 말은 원래는 몰랐던 것이 한국나들이를 하면서 알게 된것이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껍질이 붉은 무우와 당근을 모두 홍당무라고 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6) ‘연체료’와 ‘체남금’ 금전의 지급이나 납입 등을 기한이 지나도록 지체하여 기간에 따라 지급하 는 추가료금을 한국에서는 ‘연체료’(延滯料)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의 영향을 받아 ‘체납금’(滯納金)이라고 한다. 한어에서 ‘滯納金’은 한국 에서 말하는 ‘연체료’ 뜻으로 쓰인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에는 체납금(滯納 金)을 한어에서의 체납금과 다른 뜻으로 기한까지 내지 못하고 밀린 돈이라 고 하였다. ‘컵’과 ‘고뿌’ 물, 차, 음료 등을 따라 마시는 잔을 한국에서는 영어발음으로 ‘컵’이라고 하 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일본어 발음으로 ‘고뿌’라고 많이 말하고 있으며 지 금은 한국나들이를 많이 하면서 일부 사람들음 ‘컵’이라고도 한다. 한국 국어 사전에 보면 이에 해당하는 명사는 우리말에 한자어단어 ‘잔(盞)’이라고 있지 만 민간에서는 컵(고뿌)보다 작은 술잔처럼 작은 용기 를 ‘잔’이라고 한다. ‘전분’과 ‘녹말가루’ 감자, 고구마 등을 가라앉힌 앙금을 말린 가루를 한국에서는 ‘녹말가루’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감분’ 혹은 ‘전분’ 이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에 도 녹말가루를 전분이라고 했다. ‘당면’과 ‘감자국수’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를 한국에서는 중국 당나라에서 유래되였다하여 ‘당면(唐麵)’이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 들은 ‘감자국수’ 혹은 ‘고구마국수’라고 한다. ‘맛난이’와 ‘맛내기’ 화학조미료를 한국 국어사전에는 속칭으로 ‘맛난이’라 하였고 식품포장에 는 ‘미원’이라고 하였는데 ‘미원’은 한국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화학조미료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맛내기’라고하는데 화학조미료가 생산되여 나온 력사가 이제 몇십년 밖에 안되기에 여기에 해당되는 우리말 고유어는 없이 민간에서 음식의 맛을 돋구는 조미료라고 하여 ‘맛내기’라고 하였으며 출판물에서도 민간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맛내기’로 쓰고 있다. ‘볼펜’과 ‘원주필’ 필 끝에 둥글고 작은 강철 알을 끼워 운필에 따라 회전하면서 기름잉크를 내리여 쓰게 된 필기구를 한국에서는 영어발음으로 ‘볼펜’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에서의 圓柱筆의 한자어발음으로 ‘원주필’이라고 한다. ‘상추’와 ‘부루’ 한어에서 말하는 ‘生菜’를 한국에서는 ‘상추’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부 루’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부루’를 ‘상추’의 옛말이라고 하 였다. 이러고 보면 예전에 조선반도에서는 ‘상추’를 ‘부루’라고 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피망’과 ‘사자고추’ 한어에서 말하는 ‘大辣椒’를 한국에서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피망’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준말로는 한자어와 고유어의 합성단어로 ‘사자고추’라 하며 민간에서는 ‘한족고추’라 하고 끝이 뾰족한 고추는 ‘조선고추’라고한다.   ‘청국장’과 ‘썩장’ 삶은 콩에 곰팡이를 자라게 하여 고유한 맛과 냄새를 나게 한 장(醬)을 한국에서는 ‘청국장’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썩장’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한국과의 거래를 통하여 ‘청국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먹는 음식을 ‘썩장’이라고 하면 좀 속스러운 말 같지만 청국장(淸麴醬)이라 하면 맑을 ‘청(淸)’, 누룩 ‘국(麴)’, 장 ‘장(醬)’자의 한자어의 의미도 있어 더 문명스러운 말 같기도 하므로 ‘썩장’보다 ‘청국장’이라 하면 듣기가 고상한 감을 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7) ‘서민’ 과 ‘백성’ 한국에서는 일반 평민을 ‘서민’이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서민’을 아무런 벼슬이 없는 평민이라고 하였고 ‘백성’을 일반 국민의 예스 러운(옛것 같은 느낌)말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예전에는 서민을 백성들 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일반 평민을 ‘백성’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한국과의 거래를 통하여 ‘서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도우미’와 ‘행사안내원’ 행사안내를 하거나 행사내용을 설명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요원을 한국에서는 ‘도우미’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행사안내원’이라고 한다. ‘도우미’란 말은 중국의 조선족들은 원래 모르고 있던 말들인데 한국과 거래를 한 사람들은 지금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두우미’는 93대전 엑스포에서 처음 쓴 말이다.   ‘처가집’과 ‘가시집’ 안해의 본집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처가집’, ‘가시집’ 두가지로 다 말하고 한국에서는 ‘처가집’이라하며 ‘가시집’라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해의 아버지, 어머니를 한국에서는 ‘장인’, ‘장모’라고 하고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라고 하지 않는다. 중국의 조선족들도 조선(한)반도의 북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은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라하고 남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은 ‘장인’, ‘장모’라고 말한다.   ‘달래다’와 ‘설복하다’ ‘달래다’를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에는 “1. 위로하다. 2. 좋고 옳은 말로 잘 이끌어 꾀다.”라고 하였고 ‘설복하다’는 “알아 듣도록 말하여 수긍하게 함”이라고 하였다. 사전의 해석으로 보면 두 단어의 뜻이 대체적으로 비슷한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달래다’를 어린이들에 한해서 떼를 쓰며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를 달래라’고 말하지 어른에 한해서는 ‘달래다’란 말을 하지 않고 ‘설복하다’로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른이나 어린이 구별없이 설복하다의  뜻으로 ‘달래다’로 쓰고 있다.   ‘꽃샘추위’와 ‘봄추위’ 이른봄 추위를 한국에서는 꽃이 필 무렵의 추위라고 하여 ‘꽃샘추위’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봄추위’라고 하지 ‘꽃샘추위’란 들어도 보지 못한 말이다.   ‘미쁘다’와 ‘미덥다’ 믿음성이 있다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미덥다’, ‘미쁘다’로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미덥다’로만 쓰고 ‘미쁘다’란 말은 들어 보지 못한 말이다.    ‘멍청이’와 ‘부실’, ‘부실’과 ‘실속없다’ 어리석고 정신이 흐릿하여 사물을 제대로 분석, 판다, 처리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한국이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준적으로 모두 ‘멍청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사람들을 민간에서는 또‘부실하다’ 라고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부실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부실하다’를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 1 몸, 마음, 행동 따위가 튼튼하지 못하고 약함. 2 내용이 실속이 없고 충분하지 못함. 3 믿음성이 적음.”이라고 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 사전 해석의 첫번째의 해석에 한해서는 쓰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해석에 한해서는 쓰지 않는다. 사전의 이런 해석으로 하여 한국에서는 ‘부실기업’,  ‘부실공사’,  ‘부실건물’ 등 단어들이 있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단어를 쓰지 않고 있으며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 단어가 없이 대개는 ‘부실’의 대신 ‘실속 없다’로 쓰고 있다.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8) ‘진작’과 ‘언녕’ 주로 기대나 생각대로 잘되지 않은 지나간 사실에 대하여 뉘우침이나 원망 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에서‘좀 더 일찍’이란 뜻으로 한국에서는‘진작’이란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진작’과 ‘언녕’두가지 단어를 다 쓰고 있는데 보편적으로 ‘진작’보다 ‘언녕’이란 단어를 더 많 이 쓰고 있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언녕’이란 단어가 없다. ‘나중’과 ‘후’ 얼마 지난 뒤 또는 먼저 할 일을 한 다음의 뜻으로 한국에서는 ‘나중’이란 단어를 쓰면서 ‘나중에’라고 많이 말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나중’보다 ‘후’란 단어를 많이 쓰면서 ‘후에’라고 많이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에 보면 ‘후(後)’를 일이 지나간 얼마 뒤의 뜻으로‘추후(追後)의 준말이라고 하였는데 ‘추후’란 중국의 조선족들은 들어 보지 못한 단어이다. ‘오순도순’과 ‘오손도손’ 의좋게 지내거나 이야기하는 모양을 한국에서는 ‘오순도순’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오손도손’이라고 한다. 다 같은 순수한 우리말 고유어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이 서로 다르게 쓴다. ‘표현’과 ‘표달’ 중국어사전에는 ‘표현(表現)’을 “드러나다. 나타나다. 보이다. 활약하다.”로 해석하였으며 ‘표달(表達)’을 “(생각, 감정을) 나타내다. 드러내다. 표시하다. 표현하다.”로 해석하였다. 의사나 감정따위를 표현하여 전달하는것을 한국에서는‘표현’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현’,‘표달’두가지 단어를 다 쓰고 있는데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와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낼 때에는 ‘표현’이라는 단어를 쓰면 적합하지만 형상이 없는 단순히 언어로 의사를 전달할 때에는 ‘표현’보다 ‘표달’의 단어다 더 적합하다. 하지만 학국 국어사전에는 ‘표달’이란 단어가 없다. ‘굵다’와 ‘실하다’ ‘가늘다’ 의 반대어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굵다’ 혹은 ‘실하다’라고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굵다’라고 만 말하지 ‘실하다’라고 는 말하지 않는다. 한국 국어사전에도 ‘실하다’는 ‘가늘다’의 반대어로 쓰이는 의미가 없다. ‘시사’와 ‘안민고시’ 미리 간접적으로 일러주는 것을 한국에서는 ‘시사(示唆)’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시사(示唆)란 말이 없이 이에 해당하는 단어는 ‘안민고시(安民告示)가 있다. '시사(示唆)'란 보일 '시'자에 부추길 '사'자의 한자어이지만 한어에는 '示唆'란 단어가 없고 한국 국어사전에는 중국의 조선족들이 쓰는 ‘안민고시’가 없다. ‘휴식’과 ‘휴무’ 중국의 조선족들은 직무를 보지 아니하고 하루 또는 한동안 쉬는 것이나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는 것을 모두 휴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쉬는 시간의 차이를 가지고 ‘휴식’과 ‘휴무’두 가지 단어를 각이하게 상용하고 있는데 직무를 보지 아니하고 하루 또는 한동안 쉬는 것을 쉴 ‘휴(休)’자에 힘쓸 ‘무(務)’자를 써서 ‘휴무(休務)’라고 하며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는 것을 쉴 ‘휴(休)’자에 숨 ‘식((息)’자를 써서 ‘휴식(休息)’이라고 한다. 중국 조선족들에게는 ‘휴무’가 너무 생소한 단어이다. ‘휴식’과 ‘휴무’는 모두 한자어로서 한자어 의미로 보면 한국에서 쓰는 쉬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휴식’과 ‘휴무’를 구별하여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식목’과 ‘식수’ 나무를 심는 것을 한국에서는 ‘식목’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식수’라고 한다. ‘수(樹)’와 ‘목(木)’ 은 모두 나무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목(木)’ 은 산 나무나 죽은 나무를 다 말하지만 ‘수(樹)’는 산 나무만 말 한다. 그러기에 심을 ‘식(植)’자에 나무 ‘수(樹)자를 써서 ‘식수(植樹)’라고 하는 것이 ‘식목(植木)’이라고 하는것 보다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한국 국어사전에도 식수란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식목’이라고 한다.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 (9) ‘밥솥’과 ‘밥가마’,‘누룽지’와 ‘가마치’ 밥을 짓거나 국 따위를 끓이는 그릇을 한국에서는 ‘솥’혹은 ‘밥솥’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가마’ 혹은 ‘밥가마’라고 한다. 같은 뜻으로 되는‘가마’와‘솥’이란 단어는 우리말의 고유어로서 한국이나 중국의 조 선족들에게 다 있는 말이지만 습관상에서 그 단어의 사용이 다르다.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한국에서는 ‘누룽지’라 하고 중국의 조선 족들은 가마 바닥에 붙었다고 하여 보편적으로‘가마치’라하고 ‘누룽지’ 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가마치’를 ‘눌은밥’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전(煎)’과 ‘지짐이’ ‘전’이란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얇게 썰어 밀가루를 묻혀 지진음식의 총칭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음식을 ‘전’이라고 하지 않고 ‘지짐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지짐이’ 란 “1 기름에 지진 음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국물이 적고 간이 좀 짜게 끓인 음식의 총칭”이라고 해석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 사전의 두번째 해석에 대하여서는 ‘지짐이’라고 하지 않고 ‘졸임’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한국어사전에도‘졸임’이란 단어가 없다. 개장국(개탕)과 보신탕 개고기를 고아 끓인 국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준적으로는‘개장국’이라 하고 비표준 적으로는 ‘개탕’이라 하고며 한국에서는 허약한 몸에 영양을 보충해 주는 국이라는 뜻으로‘보신탕’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개장국’을 ‘보신탕’이라고도 하였는데 민간에서는 ‘개장국’이란 말보다 ‘보신탕’이라고 더 많이 말하고 있다. ‘산적(散炙)’과 ‘뀀’ 쇠고기나 양고기 따위를 잘고 얇게 썰어 양념을 하여 꼬챙이에 꿰여서 구은 것을 한국에서는 ‘쇠고기산적’ 또는 ‘양고기산적’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준적인 말이 없이 꼬챙이에 꿰였다고 하여 형상적으로 ‘소고기뀀’ 또는 ‘양고기뀀’이라고 하다가 한국과 거래를 하면서 한국말을 본받아 지금은 ‘쇠 고기산적’ 또는 ‘양고기산적’이라고도 한다. ‘백미’와 ‘입쌀’, 그리고 ‘백반’과‘이밥’ 벼를 찧어 나온 쌀을 한국에서는 흰쌀이라고 하여 흰 ‘백[白]’자에 쌀‘미[米]’자를 써서 ‘백미[白米]’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우리말의 고유러로‘입쌀’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입쌀’을 “멥쌀을 보리쌀 따위의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으나 민간에서는‘입쌀’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입쌀로 지은 밥을 한국에서는 흰밥이라고 하여 흰 ‘백(白)’자에 밥 ‘반(飯)’자를 써서 ‘백반(白飯)’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이밥’이라고 한다. ‘이밥’이란 한국어사전에도 있는 단어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느껴지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백반’이라하면‘명반(明礬)’을 구어서 결정수를 제거한 다음의 물질인 백반(白礬)으로 여기지 흰밥이란 뜻의‘백반(白飯)’으로는 너무나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조선말대사전에서 ‘이밥’에 대한 해석을 보면 “흰쌀밥을 이르던 말. 리조봉건시기에 흰쌀로 지은 밥을 왕만이 먹는다는 뜻에서 ‘왕밥’또는 ‘이(리)밥’이라고 불렀다.”즉 이(李)씨 왕의 상에만 오르는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고 하였다. ‘찰떡’과 ‘인절미’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찹쌀 따위의 차진 곡식으로 만든 떡을 ‘찰떡’이라 하였고 찹쌀을 쪄서 떡메로 친 다음 네모나게 썰어 고물을 묻힌 떡을 ‘인절미’라고 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찰떡’과 ‘인절미’구별이 없이 이 두가지를 모두 ‘찰떡’이라하였고 ‘인절미’란 단어는 없었다. 지금은 한국과의 거래를 통하여 ‘인절미’란 단어를 쓰는 사람도 있다. ‘수제비’와 ‘뜨더국’ 밀가루를 반죽하여 맑은 장국이나 미역국 따위에 적당한 크기로 떼어 넣어 익힌 음식을 한국에서는 ‘수제비’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표준말로는 ‘뜨더국’이라 하고 비표준 적으로‘뚜데국’이라고도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뜨더국’을 ‘수제비’의 북한어라고 하였다.‘수제비’와 ‘뜨더국’은 모두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뜨더국’은 너무 생소한 단어이고 ‘수제비’는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 생소한 단어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0) ‘문어’와 ‘서면어’,‘구어’와 ‘구두어’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이 아닌 문장에서만 쓰는 말을 한국에서는 문어(文語)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서면어(書面語)’라고 하는데 한국어사전에도 ‘서면어’ 란 단어가 없다. 문장에서만 쓰는 특별한 말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을 한국에 서는 ‘구어(口語)’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구두어(口頭語)’라고 한다. 한국어 사전에도 ‘구두어’란 단가 없다. ‘갈림목’과 ‘갈림길목’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을 한국에서는 ‘갈림목’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갈림길목’이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갈림길목’을 ‘갈림목’의 북한어 라고 하였다. ‘고고성’과 ‘고고지성’ 어린애가 갓 태여낫을 때의 울음소리를 한국에서는 ‘고고지성’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고고성’이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고고성’을 매우 높고 크게 내는 소리 뜻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줍다’와 ‘줏다’ 남이 분실한 물건 또는 바닥에 떨어지거나 흩어져 있는 것을 집는 것을 한국에서는 ‘줍다’로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줏다’로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줏다’를 “1‘줍다’의 방언(강원, 경기, 경남, 전남, 제주, 충청). 2‘줍다’의 옛말. 3‘줍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으로부터 보면 ‘줏다’란 단어를 옛날에도 썼고 지금도 조선(한)반도의 절대 대부분 지역에서는 쓰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통틀다’와 ‘통털다’ 있는 대로 모두 합하여란 뜻으로 한국에서는 ‘통틀다’로 말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통털다’로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통털다’를 1‘통틀다’의 잘못, 2 ‘통틀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가득’과 ‘골똑’ 분량이나 수효 따위가 어떤 범위나 한도에 꽉 찬 모양을 한국에서는 ‘가득’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가득’이라고도 하고 ‘꼴똑’혹은‘골똑’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골똑’을 ‘가득’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하였다. ‘해지다’와 ‘판나다’ 옷 같은 것이 닳아서 떨어진 것을 한국에서는 ‘해지다’라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서면어에서는 ‘해지다’라고 말하지만 구두어에서는 일반적으로 ‘판나다’로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판나다’를 ‘해지다’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하였다. ‘싸다’와 ‘눅다’,‘싼거리와’ ‘눅거리’ 물건값이 마땅한 값보다 적은 것을 한국에서는 ‘싸다’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싸다’와 ‘눅다’두가지 단어를 다 쓴는데 일반적으로는 서면어(문어)에서는 ‘싸다’로 쓰고 구두어(구어)에서는 ‘눅다’로 많이 쓴다. 물건을 싸게 팔거나 사는 일. 또는 그렇게 팔거나 산 물건을 한국에서는 ‘싼거리’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눅거리’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눅거리’를 ‘싼거리’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앉으세요’와 ‘사세요’ 한국에서는 로인들에게 세배를 올릴 때 “오래 오래 사세요.”라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오래 오래 앉으세요.”라고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말하는‘오래 앉으세요’는 ‘오래 사세요’의 존대어로서 웃어른에 한해서 말하고 대등관계에서는 오래 살라고 한다. 한국사람들 앞에서 “오래 오래 앉으세요.”라고 말한다면 앉은자리에서 잃어나지 말고 오래 앉아있으라는 뜻으로 리해를 하기에 오해를 할수 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1) ‘자재’와 ‘재료’ ‘자재’나 ‘재료’는 모두 무엇을 만드는데 쓰이는 원료이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자재’나 ‘재료’를 언론매체나 출판물에서는 구별이 없이 쓰지만 구두어에서는 한어의 영향을 받아 보통 ‘재료’라고 많이 말하고 ‘자재’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한어에는 재료(材料)란 단어는 있지만 자재(資材)란 단어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가구, 건축 등 부분에 쓰이는 원료들을 ‘자재’라 하고 음식, 복장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원료를 ‘재료’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국어사전에는 ‘자재’와 ‘재료’를 엄격한 구별이 없이 해석하였고 ‘건축재료’라고도 하였다. ‘졸대’와 ‘오리대’ 나무를 가늘고 길게 켠 막대기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오리대’라 하고 한국에서는 ‘쫄대’라고 말한는데 문자표기로는‘졸대’로 쓰고 있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오리대’를 북한어라고 하였다. ‘깔창’과 ‘신받치개’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을 한국사람들은 ‘신발’이라고 많이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신’이라고 많이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신발’을 “‘신’을 똑똑히 일컫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발의 바닥에 까는 것을 한국에서는 ‘깔창’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신받치개’라고 한다. ‘전봇대’와 ‘전선대’ 전선이나 통신선을 늘여 매기 위하여 세운 기둥을 한국에서는 전봇대(電報대)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전선대(電線대)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전선대’를 1‘전봇대’의 잘못. 2‘전봇대’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도 이전에는 ‘전선대’를 ‘전보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전선대’혹은 전기(번개) ‘전(電)’자에 기둥‘주(柱)’자를 써서 전주(電柱)라고 한다. ‘완행열차’와 ‘보통렬차’ 한국이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다 운행 속도가 빠르고 큰 역에서만 정차하는 렬차를 '급행(急行)렬차'라고 한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며 각 역마다 정차하는 렬차를 한국에서는 느릴‘완(緩)’에 다닐‘행(行)’자를써 서 ‘완행(緩行)열차’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한어로 느릴 ‘만(慢)자’에 수레 ‘차(車)’자를 써서‘慢車’라고 하는데 그 한자어 발음으로는 ‘만차’인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만차’라고 하지않고 ‘보통렬차’라고 한다. ‘레일’과 ‘레루’ 철도 차량이나 전차 따위를 달리게 하기 위하여 땅 우에 까는 가늘고 긴 강철재(鋼鐵材)를 한국에서는 영어 발음으로 ‘레일[rail]’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일어 발음으로 ‘레루[レ―ル]’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레루’를 ‘레일’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차량’과 ‘바곤’ 기동차에 줄줄이 이어놓아 사람이 타거나 물건을 싣는 부분의 매 한칸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바곤’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차량’이라고 한다. ‘바곤’이란 말은 로시아어로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다. ‘차량’이란 한어 ‘車輛’의 한자어 단어인데 한국 국어사전의 해석은 1. 여러가지 수레의 총칭. 2. 열차의 한 칸이라고 하였다. 단순히 차량이라고 하면 기동차를 말하는지 기동차에 달려 끌려 다니는 부분(바곤)을 말하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바곤’을 ‘차량(車輛)’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2) ‘날인’과 ‘도장을 찍다.’ ‘날인’은 누를 ‘날(捺)’자에 도장 ‘인(印)자의 한자 ‘捺印’의 한자어 단어로서 도장을 찍다의 뜻으로 되는데 한국에서는 ‘도장을 찍다’를 ‘날인’이란 한자어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날인’이란 너무 생소한 단어이며 이에 해당하는 합성명사가 없이 우리말 그대로 ‘도장을 찍다’로 말한다. ‘날인’은 ‘捺印’의 한자어 단어이지만 한어에는 ‘捺印’이란 단어가 없다. ‘ 방치’와 ‘내버려두다’ ‘방치’는 놓을 ‘방(放)자에 둘 ‘치(置)’자의 한자 ‘放置’의 한자어 단어로서 ‘내버려두다’ 뜻으로 되는데 한국에서는 ‘내버려 두다’의 뜻으로‘방치’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방치’라는 단어를 모르고 있다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통하여 지금은 언론매체에서 ‘방치’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민간에서는‘방치’란 단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에 해당한 합성명사도 없이 고유어 그대로‘내버려 두다’로 말하고 있다. ‘중차대하다’와 ‘중요하고 크다’ ‘중차대하다’는 중할 ‘중(重)’자에 또‘차(且)’자, 클‘대(大)’를 쓴 ‘重且大’의 한자어 단어로서 한국에서는 ‘중요하고 크다’의 뜻으로 쓰고 있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중차대하다’란 말을 모르고 있으며 그에 해당하는 합성명사도 없이 우리말 그대로‘중요하고 크다’로 말하고 있다. ‘중차대’는 ‘重且大’의 한자어 단어이지만 한어에는 ‘重且大’란 단어가 없다. ‘고참자’와 ‘참가한지 오랜 사람’ 한국 국어사전에는 오래 전부터 한 직장이나 직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예 ‘고(古)’자에 참여할 ‘참(參)’자를 써서 ‘고참자(古參子)’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이런 단어가 없이 우리말 그대로 ‘한 직장이나 직위에 오래 있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고참자’란 한자어 단어를 쓰기보다 매우 불편하다. 한어에도 ‘古參子’란 단어가 없다. ‘청가’와 ‘휴가를 신청하다’ 직장, 학교, 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어떤 사유로 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쉴것을 신청하는 것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청할 ‘청(請)자에 겨를 ‘가( 假)’자를 써서 ‘청가(請假)’를 맞는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쉴 ‘휴(休)’자에 겨를 ‘가(假)’자의‘휴가[休假)]’를 신청하다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도 ‘청가’라는 단어가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장기간 ‘청가’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생소한 단어로서 ‘청가’란 뜻을 모르고 있다. ‘청시’와 ‘지시를 청하다’ ‘상급 기관이나 상사(上司)에게 지시를 청하다. 물어보다’ 의 뜻으로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請示’의 한자어 단어로 ‘청시’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청시’라는 단어를 쓰지않고 ‘지시를 청하다’라고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도 ‘청시’란 단어가 없다. ‘지참’과 ‘가지고 옴’ ‘지참’이란 가질 ‘지[持]’자에 참여할 ‘참[參]’자 ‘持參’의 한자어단어로서 한국 국어사전에는“무엇을 가지고 모임 따위에 참여함.” “지니고 옴”으로 순화 한다고 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지참’이란 한자어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무엇을 ‘가지고 혹은 지니고 옴’이라고 한다. ‘지참[持參]’은 한자어 단어이지만 한어에는 ‘持參’이란 단어가 없다. ‘오도’와 ‘그릇된 길로 이끎’ ‘오도’란 그릇될 ‘오[誤]’자에 이끌 ‘도[導]’자 ‘誤導’의 한자어 단어로서 한국 국어사전에는 “그릇된 길로 이끎”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오도’란 한자어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그릇된 길로 이끎 혹은 그릇된 길로 인도’라고 말한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3) ‘편도’와 ‘한쪽 길’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왕복’이라고 하고 가고 오는 길 가운데 어느 한쪽 또는 그 길을 한국에서는 ‘편도(片道)’라는 한자어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쪽 길’이라고 한다. ‘편도(片道)’는 한자어단어이지만 현대한어에는 ‘片道’란 단어가 없다. ‘편도’라는 단어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있는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추돌’과 ‘뒤에서 들이받다’ 자동차나 기차 따위가 뒤에서 들이받는 것을 한국에서는 쫓을 ‘추[追]’자에 부딪칠 ‘돌[突]’자를 써서 ‘추돌[追突]’이라는 한자어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을 이에 해당한 한자어 단어나 우리말 합성명사도 없이 우리말 그대로 ‘뒤에서 들이 받다’라고 말한다. ‘진화’와 ‘불끄기’ 불이 난 것을 끄는 것을 한국에서는 진압할 ‘진[鎭]’자에 불 ‘화[火]’자로 된‘鎭火’의 한자어 단어로 ‘진화’라고 말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진화’라고 하지 않고 순 우리말의 고유어로 ‘불끄기’라고 말한다. ‘진화[鎭火]’는 한자어 단어이지만 현대한어에는 ‘鎭火’란 단어가 없다. 지금은 한국의 영향을 받아 일부 방송, 출판물에서 진화란 단어를 쓰기 시작하고 있다. ‘직진’과 ‘곧게 나감’ ‘직진’이란 곧을 ‘직[直]’자에 나아갈 ‘진[進]자의 ‘直進’의 한자 어 단어로서 곧게 나간다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직진’의 한자어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직진’이란 단어를 구령[口令]에서나 쓰지 일반적 대화에서나 서면어에서는 우리말 그대로 ‘곧게 나아감’이라고 말한다. ‘농무’와 ‘짙은 안개’, ‘박무’와 ‘옅은 안개’ 날씨정보를 알릴 때 한국에서는 자욱하게 낀 짙은 안개를 짙을 ‘농[濃]’자에 안개 ‘무[霧]’자를 써서 한자어 단어로‘농무[濃霧]’라 하고 엷게 낀 안개를 엷을 ‘박[薄]’자에 안개 ‘무[霧]’자를 써서 한자어 단어로‘박무[薄霧]’라고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농무’나‘박무’란 한자어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짙은 안개’, ‘옅은 안개’라고 하는데 ‘농무’, ‘박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알아 못 듣는다. ‘야유’와 ‘들놀이’ ‘야유회’와 ‘들놀이 모임’ 들에 나가 노는 놀이를 한국에서는 ‘들놀이’ 혹은 들 ‘야[野]’자에 놀 ‘유[遊]자의 한자어 단어로 ‘야유[野遊]’라 하고 집단적으로 하는 들놀이 모임을 ‘아유회[野遊會]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한자어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고유어로 ‘들놀이’라고 만 한다. ‘출하’와 ‘내여보냄’, ‘입하’와 ‘들여옴’ 짐이나 상품 따위를 내여 보내거나 생산자가 생산품을 시장으로 내어 보내는 것을 한국에서는 나갈 ‘출[出]’자에 짐 ‘하[荷]’자의 한자어 단어로 ‘출하[出荷]’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창고에서 나간다고 하여 ‘출고[出庫]’라 하거나 ‘내여 보냄’이라고 한다. 짐이나 상품 따위를 들여오는 것을 한국에서는 들일 ‘입[入]’자에 짐 ‘하[荷]’자의 한자어 단어로 ‘입하[入荷]’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창고에 들여온다고 하여 ‘입고[入庫]’라고 하거나 ‘들여 옴’이라고 한다. ‘입고[入庫]’나 ‘출고[出庫]’는 한국이나 중국의 조선족들이 모두 쓰는 한자어 단어이지만 ‘입하[入荷]’나 ‘출하[出荷]’는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4) ‘신장개업(新裝開業)’과 ‘새로 개업’ 새로 단장해서 영업을 시작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새 ‘신(新)’에 차릴 ‘장(裝)’자를 써서 ‘신장개업’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새로개업’이라고 말하지만‘신장개업’이란 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부 영업집 문에 ‘신장개업’이라고 써놓은 것을 볼수 있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그 옆에 한자를 써놓지 않으면 ‘신장개업’이란 무슨 뜻인지 모른다. ‘잔업’과 ‘연장작업’ 정해진 로동 시간이 끝난 뒤에 하는 로동을 한국에서는 남을 ‘잔(殘)’자에 업 ‘업(業)’자의 한자어 단어로 ‘잔업(殘業)’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연장작업’(습관상 한어 그대로 加班)이라고 한다. ‘잔업(殘業)’ 이란 한자어 단어이지만 현대한어에는 ‘殘業’란 단어가 없기에 한국나들이를 하지 않은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잔업’이란 생소한 단어이다. ‘약비나다’와 ‘새나다’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진저리가 날 만큼 싫증이 나는 것을 한국에서는 ‘약비나다’로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새나다’로 말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새나다’를 “1‘약비나다’의 잘못. 2‘약비나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약비나다’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있는 말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도정’과 ‘정미’및 ‘아주먹이’ 와‘입쌀’ 곡식을 찧거나 쓿는 것을 한국에서는 찧을 ‘도[搗]자’에 찧을 ‘정[精]’자를 써서‘도정[搗精]’이라고 하며 중국의 조선족들은 찧을 ‘정[精]’자에 쌀 ‘미[米]’자를 써서 ‘정미[精米]’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정미’란 “1기계 따위로 벼를 찧어 입쌀을 만듦. 2 깨끗하게 쓿은 흰쌀.”이라고 하였으며 정미하여 나온 쌀을 아주먹이라고 한다. ‘도정’이나 ‘아주먹이’란 단어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수록된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이고 ‘정미’란 단어도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든 곡식을 찧는 것을 모두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벼를 찧거나 그 찧어 나온 입쌀을 말하므로 같은 단어이지만 그 뜻이 좀 다르게 된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벼를 찧어 나온 쌀만 ‘입쌀’이라고 하지만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입쌀’을 “멥쌀을 보리쌀 따위의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으며 민간에서는‘입쌀’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흉터’와 ‘허물’, ‘딱지’와 ‘더데’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을 표준말로 ‘흉터’라고 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또 ‘허물’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허물’이란 단어를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을 보면 “1 살갗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꺼풀. 2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중국 조선족들이 말하는 ‘허물’의 뜻과 완전히 달리 해석되였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허물’이란 단어를 사전해석의 뜻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 때 피, 진물 따위가 나와 말라붙어 생긴 껍질을 한국에서는 ‘딱지’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더데’라고 하는데 ‘다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의 해석을 보면 ‘다대’를 “해어진 옷에 덧대어 깁는 헝겊 조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다대’란 단어를 사전의 해석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에피소드 중국동포가 일하는 한 건축현장에서의 일이다. 철근이 떨어지면서 아래에서 일하는 중국동포의 얼굴에 와 마쳤다. 상처가 좀 심하여 오야지가 차로 린근 병원으로 호송하여 몇 코 꿰여 매였다. 그 동포가 “상처가 아문다음 허물이 가지 않는가?”고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그 말을 알아 못 듣고 반문하니 그 동포는 여전히 그 말을 되풀이 하였다. 의사도 오야지도 다 알아 못 듣자 옆에 있던 동포가 “흉터가 가지 않는가?”고 하자 “그러면 흉터라고 하여야지 허물이란건 뭔가?”고 의사가 물었다. 옆에 있던 중국동포가 중국의 조선족들은 ‘허물’을 ‘흉터’와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고 말하자 서로 웃음이 나왔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5) ‘통째’와 ‘통채’ 나누거나 덜거나 헤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전체를 한국에서는 ‘통째로’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통채로’라고 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통채’를 “1 통째의 잘못. 2 통째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통째’와 ‘통채’는 모두 순수한 우리말의 고유어 단어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는 발음과 문자표기가 다르다. ‘담력’과 ‘담량’ 겁이 없고 대담하고 용감한 기운이나 기백을 나타내는 것을 한국에서는 쓸개 ‘담[膽]’자에 힘 ‘력[力]’자를 써서 ‘담력[膽力]’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쓸개 ‘담[膽]’자에 량(양) ‘량[量]’자를 써서 ‘담량[膽量]’ 이라고 한다. ‘담력’이란 단어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있지 만 ‘담량’은 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담량’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한어의 영향을 받아 한어의‘膽量’을 한자어로 하여 ‘담량’이라고 부르고 있다. ‘담력[膽力]’이나 ‘담량[膽量]’은 모두 같은 뜻의 한자어 단어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서로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다. ‘천시’, ‘멸시’와 ‘기시’ ‘천시[賤視]’, ‘멸시[蔑視]’, ‘기시[歧視]’는 모두 천할 ‘천[賤]’, 업신여길 ‘멸[蔑]’, 갈라질 ‘기[歧]’자에 볼 ‘시[視]자를 쓴 한자어 단어로서 업신여겨 낮게 보거나 천하게 여겨 깔보는 뜻의 동의어인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민족기시’, ‘종족기시’등 단어를 쓰지만 한국어사전에나 조선말대사전에는 다른 뜻으로의 ‘기시’란 단어는 있어도 천시하다, 멸시하다의 뜻으로는 ‘기시[歧視]’란 단어가 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기시’란 단어를 쓰는 것은 한어의 영향을 받아 한어의‘歧視’를 한자어로 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내’와 ‘인차’ 그리고 ‘금방(방금)’ 한국어사전에는 ‘이내’를 “1 그때에 곧. 또는 지체함이 없이 바로. 2 어느 때부터 내처. 3 멀지 않고 가까이 곧.”이라고 해석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뜻에서 구두어에서는‘인차’, ‘인츰’, ‘이내’란 단어를 모두 쓰고 있는데 표준적으로 서면어에서는 ‘인차’란 단어를 쓰고 있다. 한국어사전에는 ‘인차’를 ‘이내’의 북한어라고 하였고 ‘인츰’을 ‘이내’의 함경남도 방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어사전에는 ‘금방(방금)’을 “1 말하고 있는 시점(時點)보다 바로 조금 전. 2 말하고 있는 시점과 같은 때. 3 말하고 있는 시점부터 바로 조금 후”라고 해석하였는데 ‘금방(방금)’이란 단어를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으로 다 사용하고 있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해석 1 의 경우에만 ‘금방(방금)’의 단어를 쓰고 해석 2 와 3의경우에는‘금방(방금)’의 단어를 쓰지 않는다. 즉 과거형으로만 ‘금방(방금)’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현재형, 미래형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삐다’와 ‘풀치다’ 발목이나 손목, 허리나 목, 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 따위의 뼈마디가 접질린 것을 한국에서는 ‘삐다’라고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삐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혹시 있지만 대부분은 ‘풀치다’라고 말한다. 한국어사전에는 ‘풀치다’를 북한어라고 하였다. ‘부수다’와 ‘부시다’ 그리고 ‘마스다’ 단단한 물체를 여러 쪼각이 나게 두드려 깨뜨리거나 만들어진 물건을 두드리거나 깨뜨려 못 쓰게 만드는 것을 한국에서는 ‘부수다’라고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마스다’혹은 ‘부시다’라고 말한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부시다’를 “1 ‘부수다’의 잘못. 2‘부수다’의 북한어.”라고 하였으며 한국에는 ‘마스다’란 단어가 없이‘마스다’를 북한어라고 하였다. [에피소드] 어느 언론인, 지성인들의 모임이였다. 필자가 우리 조선족은 소수민족이지만 중국에서 민족기시를 당하여 본적이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고국에 와서 일부 하류계층의 고용주들에게서 기시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 있는 한국인들이 기시라는것이 무슨 뜻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중국의 한 언론인이 천시, 멸시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말하자 한국인들은 기시란 말을 처음 듣는다고 하였다. 하여 필자는 집에 돌아와서 한국어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을 찾아보았는데 기시란 단어가 없었다. 이때에야 필자도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의 영향을 받아 한어의‘歧視’를 한자어로 하여 ‘기시’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구나 하는것을 느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6) ‘토마토’ 와 ‘도마도’ 한어에서 말하는 ‘西红柿’를 한국에서는 영어발음으로‘토마토’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도마도’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도마도’를 ‘토마토’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도마도’도 원래는 영어에서 온 말인데 발음이 좀 달리 번져졌다. ‘자두’와 ‘오얏’ 한어에서 말하는 李子를 한국에서는 ‘자두’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방송, 출판물에서는 표준적으로 ‘오얏’이라 하고 민간에서는 대부분 함경도방언으로 ‘놀’혹은 ‘왜지’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오얏을 ‘자두’의 잘못, ‘자두’의 옛말이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한자 ‘李’를 한자어로 ‘오얏리’라고 하였다. 이러고 보면 ‘자두’를 예전에는 ‘오얏’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말대사전에는 ‘오얏’을 ‘추리’라고도 하였다. ‘연근’과 ‘련꽃뿌리’ 련꽃의 구멍이 많이 난 땅속줄기를 한국에서는 한어 ‘蓮根’의 한자어 ‘련근’을 두음법칙으로 하여 ‘연근’이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순수한 우리말로 ‘련꽃뿌리’혹은 ‘련뿌리’라고 하는데 ‘연근’이라고 하면 생소한 말처럼 느껴진다. ‘목이벗’과 ‘검정귀버섯’ 한어에서 말하는 ‘黑木耳’을 한국에서는 보통 나무에서 나는 귀모양의 버섯이라고 하여 나무 ‘목[木]’자에 귀 ‘이[耳]’의 ‘목이버섯’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보통 참나무에서 난다고 하여 ‘참나무버섯’혹은 귀모양의 검은 버섯이라고 하여‘검정귀버섯’이라고 한다. ‘부추’와 ‘염지’ 한어에서 말하는 ‘韭菜’를 한국에서 는 ‘부추’라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출판물에서는 표준적으로 ‘부추’라고 쓰지만 민간에서는 ‘부추’라 말하는 사람이 극히 적고 보편으로 함경도 방언으로‘염지’라고 말한다. ‘연골’과 ‘삭뼈’ 연골질로 이루어진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뼈를 한국에서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연할 ‘연[軟]’자에 뼈 ‘골[骨]’자로 된 ‘軟骨’의 한자어 단어, ‘연골 [軟骨]’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또 구두어에서는 ‘삭뼈’라고 많이 말하는데 한국에는 ‘삭뼈’라는 단어가 없다. 한국어사전에는 ‘삭뼈’를 ‘연골(軟骨)’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발쪽’과 ‘족발’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각을 뜬 돼지의 발. 또는 그것을 조린 음식을 ‘족발’이라 하고 짐승의 다리에서, 땅을 밟아서 살가죽이 변형된 각질 (角質) 로 둘러싸인 부분을 ‘발쪽’ 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족발’과 ‘발쪽’ 이란 단어를 구별하여 쓰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족발’이란 단어가 없이 ‘족발’과 ‘발쪽’의 뜻을 모두 ‘발쪽’으로 쓰고 있다. [에소드피] 한번은 중국동포 몇이 한국의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서빙아가씨가 자리를 안내하면서 무었을 드시겠는가 하자 한 친구가 ‘돼지발쪽’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서빙아가씨가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한국생활을 오래 한 다른 한 친구가 “야, 한국에서는‘발쪽’ 이라면 각을 뜨지 않은 짐승의 발을 말하고 ‘족발’이라면 각을 뜬 돼지의 발이나 그것을 조린 음식을 말한다.”그리고 서빙아가씨와 “‘족발’을 주세요.”라고 하자 서빙아가씨가 캐드득 웃으며 “그러세요? 알았어요. 발쪽을 달라고 하니 깜짝 놀랐어요.”라고 하자 먼저 말을 꺼낸 친구가 “허-허, 중국에서 우리 조선족들은 ‘발쪽’이라고 말하는데”하며 서로 웃음이 나왔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7) 중국의 조선족들 가운데서 대부분이 그 선조들이 함경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 갔으므로 지금도 그 후대들이 서면어에서는 표준말을 쓰지만 구두어에서는 함경도 방언을 많이 쓰고 있다. 친속관계에서 표준말과 중국의 조선족들이 쓰는 함경도 방언을 비교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맏아바이’와 ‘큰아버지’, ‘고모부’, ‘이모부’ 표준적으로 아버지의 형님을 ‘큰아버지’, 고모의 남편을 ‘고모부’, 어머니의 남자형제를 ‘외삼촌’. 이모의 남편을 ‘이모부’라고 하지만 함경도방언을 쓰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구두어에서 아버지의 형님, 아버지보다 년상인 고모의 남편, 어머니의 년상으로 된 남자형제, 어머니보다 년상인 이모의 남편을 모두 ‘맏아바이’라고 부르고 아버지 녀동생의 남편, 어머니 녀동생의 남편을 모두 ‘아즈바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남동생을 표준적으로는 ‘숙부’혹은 ‘삼촌’이라고 하지만 함경도방언으로 ‘아즈바이’라고 한다. ‘닫아매’와 ‘큰어머니’, ‘고모’, ‘이모’ 표준적으로 아버지 형님의 안해를 ‘큰어머니’, 아버지의 누님이거나 녀동생을 ‘고모’, 어머니의 녀자 형제를 ‘이모’라고 하지만 함경도방언을 쓰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구두어에서 아버지의 형님의 안해, 아버지보다 이상인 고모, 어머니보다 년상인 외삼촌의 안해, 어머니보다 년상인 이모를 모두 ‘맏아매’라고 부른다. ‘아재’와 ‘고모’, ‘이모’ 한국어사전을 보면 ‘아재’를 “ 1 ‘아저씨’의 낮춤말. 2 ‘아주버니’의 낮춤말.”이라고 하였다. 표준적으로 아버지의 녀동생을 ‘고모’, 어머니의 녀동생을 ‘이모’라고 하지만 함경도 방언을 쓰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구두어에서는 아버지의 녀동생, 어머니의 녀동생을 모두 ‘아재’라고 부르는데 한국어사전의 해석과는 완전히 다르게 부르고 있다. ‘매부’와 ‘자형’, ‘매형’, ‘매제’ 한국어사전에는 ‘매부[妹夫]’를 “1 손위 누이나 손아래 누이의 남편. 2 친정 언니나 여동생의 남편.”이라고 하였고 ‘자형[姊兄]’이나‘매형[妹兄]’을 “손위 누이의 남편”이라 하였고 ‘매제[妹弟]’를 “1 누이동생. 2 손아래누이의 남편”이라고 하였으며 ‘형부’를 “언니의 남편”이라 하였고 ‘제부’를 “여동생의 남편”이라고 하였다. 함경도 방언을 쓰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형부’, ‘제부’, ‘자형’, ‘매형’, ‘매제’란 말을 쓰지 않고 남자일 경우에는 손우 누이나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모두 ‘매부’라고 부르며 녀자일 경우에는 언니의 남편을 ‘아저씨’, 녀동생의 남편을 ‘생원’이라고 부른다. ‘누나’와 ‘누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사이에서 남자가 나이가 위인 여자를 부를 때 또는 남남끼리 나이가 적은 남자가 손위 여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를 때 한국이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누나’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또 ‘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한국어사전에는 중국의 조선족들이 부르는 뜻과 달리 ‘누이’를 “같은 부모에게서태어난 사이거나 일가친척가운데 항렬이 같은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형제를이르는말. 흔히 나이가 아래인 여자를 이른다.”라고 해석하였다. [에피소드] 한국남성과 중국조선족 녀성의 결혼식장이였다. 결혼 당사자 녀성의 외조카가 자기의 이모를 보고 ‘아재’하고 불렀다. 그 자리에 앉았던 한국측 손님들이 의아해 하며 “저 애가 어쩌면 이모를 보고 아재라고 할까?”라고 하자 그 자리에 앉았던 중국측 손님이 “중국의 조선족 가운데서 함경도 방언을 쓰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녀동생, 어머니의 녀동생을 ‘아재’라고 부른다.”고 하자 한국측 손님들은 “아, 그런가요? 한국에서 서울권내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고 지방에서 ‘아재’란 ‘아저씨, 또는 ‘아주버니’를 따로 부르는 말인데요.”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완전히 다른 것은 한국에서는 ‘아재’란 호칭 대상이 성별상으로 남자이고 함경도 방언에서는 녀자라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8) ‘꼴등’과 ‘말등’ 맨 마지막 등급을 한국에서는 ‘꼴등’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말등’이라고 한다. 맨 마지막 등급을 한어에서는 ‘末等’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의‘末等’을 한자어로 하여 ‘말등[末等]’이라고 하며 구두어에서는 ‘망꼬리’혹은‘빼꼴’이라고도 하는데‘꼴등’이란 단어는 쓰지 않고 있다. ‘꼴등’이란 말은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있는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꼴등’이라는 단어를 모르거나 쓰지 않고 있다 ‘늘’과‘하냥’ 계속하여 언제나의 뜻을 한국에서는 ‘늘’, ‘항상’ 이란 단어로 표현 하고 있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늘’, ‘항상’의 단어로 표현하면서도 문체에서는 ‘하냥’이란 단어로도 표현한다. 한국어사전에는 ‘하냥’을 “1‘늘’의 잘못. 2‘함께’의 방언(전북, 충청).”이라고 해석하였으며 조선말대사전에는 방언의 뜻이 없이 중국의 조선족들이 쓰는 말과 같이 “(글체) 계속하여 줄곧.”을로 해석하였다. ‘쪽’과 ‘페이지’ 책이나 장부 따위의 한 면, 또는 그 면을 세는 단위를 한국에서는 순수한 우리말로 ‘쪽’이라고도 하고 원래의 영어가 귀화어로 된 ‘페이지’라고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순수한 우리말인 ‘쪽’이란 단어가 없이 귀화어로 된 ‘페이지’를 우리말처럼 쓴다. 한국어사전에는 ‘쪽’이란 단어가 있지만 조선말대사전에는 ‘쪽’이란 단어가 없다. ‘조각’과 ‘쪼각’ 어떤 물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부분을 한국에서는 ‘조각’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쪼각’ 이라고 한다. 따라서 반달보다 더 이지러진 달을 한국에서는 ‘조각달’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쪼각달’ 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쪼각’을 ‘조각’의 북한어라고 하였으며 ‘쪼각달’을 ‘조각달’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설레다’와 ‘설레이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서 두근거리는것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설레이다’ 혹은 ‘설레다’ 두 가지로 다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설레다’로만 말하고 한국어사전에서는‘설레이다’를 “1‘설레다’의 잘못’2‘설레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하마터면’ 과 ‘하마트면’ 조금만 잘못하였더라면. 위험한 상황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에 쓰는 말의 뜻으로 표현되는 말을 한국에서는 ‘하마터면’ 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하마트면’ 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하마트면’ 을 “1‘하마터면’ 의 잘못, 2‘하마터면’ 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에피소드] 한국의 한 초등생과 중국에서 온 이모 사이에 있은 대화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가 집에 돌아 와서 그날 학교에서 운동대회를 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모: “그럼 너는 오늘 달리기에서 몇 등을 하였니? 학생: “등수에 못 올랐어요.” 이모: “그럼 말등을 했지 않았니?” 학생: “말등이라는것이 무슨 뜻인가요?” 이모: “제일 마지막 등수에 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학생: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말등’이라고 하지 않고 ‘꼴등’이라고 해요.” ‘꼴등’이란 말은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있는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되고 한어의‘末等[말등]’을 한자어로 하여 ‘ 말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19) ‘사이-시옷’과‘사이-시읏’ 한글 맞춤법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났을 때 쓰는 ‘ㅅ’의 이름을 한국에서는 ‘사이시옷’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사이시읏’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사이시읏’을 ‘사이시옷’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순 우리말 또는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거나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ss’소리가 덧날 때에 한국에서는 사이시읏 맞춤법에 따라 ‘ㅅ’를 받치여 쓰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원래의 합성어 그대로 표기한다. 례하면 ‘머릿기름’과 ‘머리기름’, ‘이삿짐’과 ‘이사짐’, ‘아랫사람’과 ‘아래사람’, ‘나뭇잎’과 ‘나무잎’등과 같은것이다. 한국어사전을 보면 사이시읏 맞춤법에 따라 Tm지않고 원래의 합성어 그대로 표기한 단어들을 모두 북한어라고 하였다. ‘정상’과 ‘수뇌’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한국에서는 꼭대기 ‘정[頂]’자에 우 ‘상[上]’자의 한자어로 ‘정상(頂上)’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머리 ‘수[首]’자에 머리 ‘뇌[腦]’자의 한자어로 ‘수뇌자(首腦者)’라고 한다. ‘정상’이나 ‘수뇌자’자나 모두 한자어인데 한어에서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수뇌(首腦)’라고 하지만 ‘정상(頂上)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어의 영향을 받아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정상’이라고 하지 않고 ‘수뇌’혹은 ‘수뇌자’라고 한다. 지금은 일부 조선족언론매체에서는 한국의 영향을 받아 ‘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상’이나 ‘수뇌자’는 한국어사전에나 조선말대사전에 다 있는 단어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은 습관상에서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원수’와 ‘원쑤’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사이에 문자표기에서 부동하다. 한국에서는 ‘원수’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원쑤’로 표기한다. 발음에서도 ‘수’와 쑤’구별된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원쑤’를 ‘원수’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의지력’과 ‘의력’ 어떠한 일을 이루고저 하는 마음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힘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뜻 ‘의[意]’자에 뜻 ‘지[志]’자, 그리고 힘 ‘력[力]’자의 한자어단어 ‘의지력[意志力]’ 혹은 ‘의지력[意志力]’의 준말로 ‘의력[意力]’, 이 두가지 단어로 다 표현하는데 주로는 ‘의력’이란 단어를 많이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의지력’이란 단어로만 표현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의력’을 ‘의지력’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에피소드] 한국인과 중국동포들이 같이 앉은 모임이였다. 한 중국동포가 5살 때 한 정신질병환자의 칼에 두 손목을 잘리운 연길시2중의 김련화 학생이 금년 대학교 입시에서 전교 2등으로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였다는 인터넷에서 본 기사를 이야기하자 한 중국동포가 “야! 걔가 의력이 대단하다.”라고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한 한국인이 “의력이란 것이 무쓴 뜻인가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필자가 “‘의력’이란 ‘의지력’의 준말”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한국인이 “그런가요? 우리 한국에서는 ‘의력’ 이라면 무슨 말인지 몰라요.”라고 하는것이였다. 필자는 ‘무엇 때문에 ‘의지력’이라면 알고 ‘의력’이라면 모를가 하며 집에 와서 한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의력’을 ‘의지력’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0) 련결어미 ‘-고자’와 ‘-고저’ 어떤 행동을 할 의도나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련결 어미를 한국에서는 ‘-고자’로 표현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고저’로 표현한다. 주로는 련결어미 ‘-려고’ 와 같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데 례하면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하려고 서울로 떠났다.” 에서 한국에서는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하고자 서울로 떠났다.”로 표현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하고저 서울로 떠났다.”라고 표현한다. 한국어사전에는 “‘-고자’는 의도나 욕망의 뜻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이며, ‘-고저’는 ‘고자’의 옛말이다. 따라서 ‘-고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하였으며 조선말대사전에는 ‘-고자’를 ‘-고저’ 의 비규범적인것이라고 하였다. ‘안쓰럽다’ 와 ‘안스럽다’ 손아랫사람이나 약자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쳤을 때 마음에 미안하고 딱하거나 혹은 손아랫사람이나 약자의 딱한 형편이 마음에 언짢고 가엾게 여겨질 때의 단어표현을 한국어사전에서는 ‘안쓰럽다’라고 하였고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안스럽다’라고 하였다. 이런 표현을 한국에서는 한국어사전에 따라 문자상‘안쓰럽다’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조선말대사전에 따라 문자상‘안스럽다’로 표기한다 ‘샅’과 ‘ 가달두새’ 또는 ‘두 물건의 틈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는 두 다리의 사이, 또는 두 물건의 틈을‘샅’ 이라고 하였다. ‘샅’ 은 표준적인 우리말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이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두 다리 사이를‘가달두새’ 라고 하는데 한국어사전에는‘가달두새’ 를 ‘샅’ 의 함경북도 방언이라고 하였다. 내’와 ‘내굴’ 그리고 ‘연기’ 물질이 탈 때에 생겨나는 흐릿한 기체나 가루상태의 물질(즉 연기)을 한국어사전에 나 조선말대사전에는 모두 ‘내’라고 하였고 조선말대사전에는 ‘내굴’ 이라고도 하였으며 한국어사전에는 ‘내굴’을 ‘내’의 함경도방언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내굴’이나 ‘연기’를 모두 서면어나 구두어에서 다 쓰는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서면어에서는 ‘연기’라고 많이 쓰고 구두어에서는 ‘내굴’ 이라고 많이 말하지만 ‘내’라고는 하지 않는다. ‘굳은살’과 ‘썩살’ 잦은 마찰로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생긴 두껍고 단단한 살을 한국에서는 ‘굳은살’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썩살’이라고 하며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을 ‘장알’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의 해석을 보면 ‘썩살’을 ‘굳은살’의 북한어라고 하였으며‘장알’을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을 뜻하는 북한어라고 하였다. [에피소드] 한 건설현장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휴식시간이 되여 한국근로자와 중국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한 중국동포가 “한국에 와서 이렇게 일을 세게 하니 손에 썩살이 다 배기였다.”고 말하자 한 한국 근로자가 “썩살이란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중국동포가 손바닥을 내 보이면서 “한국에 와서 일을 세게 하니 손바닥의 살이 두껍고 단단하여 졌다.”라고 말하자 그 한국인은 “우리는 그런 것을 ‘굳은살’이라고 해요.”라고 말하는것이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1) 격식체와 비격식체 한국과 중국조선족의 언어 사용에서의 가장 큰 차이는 격식체와 비격식체이다. 한국에서는 공식적 행사나 장소에서는 격식체를 사용하고 비공식적 장소나 실생활에서는 비격식체를 사용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공식적인 행사나 장소에서 격식체를 사용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격식체를 사용하고 남도( 경기도 이남의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를 통털어 이르는 말.)사람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 비격식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격식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서 의례적으로 쓰며 표현은 직접적, 단정적, 객관적이다. 격식체에는 해라체,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 따위가 있다. ‘해라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 상대편을 아주 낮추는 종결형의 말체로서 “승호야, 빨리 일어나라. 이번 주일은 네가 주번이여서 일찍이 등교하여야 한다.”에서 ‘일어나라’, ‘한다’가 ‘해라체’에 속한다. ‘하게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 보통으로 낮추면서 약간 대우하여 주는 종 결형의 말체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화자가 나이가 든 손아랫사람이나 같은 년배의 친숙한 사이에 쓴다. “상호, 이걸 좀 해 보게. 혼자 할수 있겠나?” 에서 ‘보게’, ‘있겠나?’가 ‘하게체’에 속한다. ‘하오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 상대편을 보통으로 높이는 종결형의 말체로서 현대 한국어의 구두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빨리 일하시오. 왜 지금도 시작하지 않았시오?”에서 ‘일하시오’, ‘않았시오?’가 ‘하오체’에 속한다. '합쇼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서 상대편을 아주 높이는 종결형의 말체로서 ‘안녕히 계십시오’,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에서 ‘십시오’, ‘입니다’, 습니다’가 합쇼체에 속한다 ‘비격식체’란 표현이 부드럽고 주관적인 느낌을 주는 상대 높임법으로서 ‘해체’, ‘해요체’ 따위가 있다. ‘해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 상대편을 높이지 않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형의 말체로서 격식체인 ‘해라체’와 ‘하게체’를 쓸 자리에 두루 쓰는 비격식체이다. “강호야, 어서 먹어” “빨리 일해”에서 ‘먹어’, ‘일해’가 ‘해체’에 속한다. '해요체’란 상대 높임법의 하나로, 상대편을 보통으로 높이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형의 말체로서 격식체인 ‘하오체’와 ‘합쇼체’를 쓸 자리에 두루 쓰는 비격식체이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오겠어요’에서 ‘계세요’, ‘오겠어요’가 ‘해요체’에 속한다. ‘화장실’, ‘위생실’, 그리고 ‘변소’ 중국의 조선족들은 밖에다 전문 대소변을 보도록 한 곳을 ‘변소’라하고 실내 에 대소변도 보고 세수도 할수 있게끔 위생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을 위생실이 라 하지만 한국에서는 밖의 것이나 실내의 것이나 구별없이 화장실이라고 한다. 따라서 중국의 조선족들은 위생실에서 쓰는 휴지를 ‘위생지’라 하고 한국에 서는 화장실에서 쓰는 휴지를 ‘화장지’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화장실’을 “‘변소’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고 조선말대사전에는 ‘화장실’을 “거울, 손씻는 설비를 갖추어 놓은 ‘변소’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2) 뛰여쓰기의 차이 일반적으로 중국조선족에 비해 한국에서는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더 많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뛰여쓰기에 엄격한 규정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띄여써도 되고 붙여써도 되는 규정이 좀 느슨한 점들이 있다. 그 주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불완전명사(의존 명사) 불완전명사(한국에서는 의존명사라고도 한다)를 앞의 단어와 한국에서는 띄여 쓰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붙여 쓴다. 수사와 단위명사의 띄여쓰기도 중국의 조선족들은 다 붙여 쓰지만 한국에서는 고유어수사와 단위명사는 모두 띄여쓰고 한자어수사와 단위명사는 붙여쓰는 것을 허용한다. 불완전명사: 것, 김, 나름, 녘, 둥, 대로, 데, 리, 만, 무렵, 바, 번, 법, 분, 사, 상, 수, 시, 자, 적, 줄, 즈음, 지, 짓, 척, 체, 터, 폭, 따름, 때문, 뿐, 쪽, 양, 이, 나위, 따위…… 한국 중국조선족 내 것 내것 할 수 있다 할수 있다 한 개 한개 세 마리(3 마리 혹은 3마리,) 세마리(3마리) 열 장(10 장 혹은 10장) 열장(10장) 열 시(10 시 혹은 10시) 열시(10시) 2. 보조 용언 보조 용언은 한국에서는 띄여 쓰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붙여 쓴다. 단, 한국에서는 일부 경우에 붙여쓰기도 허용한다. 한국 중국조선족 먹어 보다(먹어보다) 먹어보다 올 듯하다(올듯하다) 올듯하다 읽고 있다 읽고있다 하고 싶다 하고싶다 우와 같이 한국에서는 ‘-아/-어’형이나 관형사형 뒤에 보조 용언이 올 때 붙여쓰기를 허용하고 있으나 ‘-고’ 뒤에서는 허용하지 않는다. 3. 하나의 개념을 나타낸 것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서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에서 원칙적으로 띄여쓰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붙여쓴다. 단, 고유 명사와 전문 용어에 관해서는 한국에서도 붙여쓰기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 중국의 조선족 국어 사전 국어사전 경제 부흥 상황 경제부흥상황 연변 대학교 사범 학원(연변대학 사범학원) 연변대학교 사범학원 그러나 한국에서는 띄어쓰기의 기준이 불확실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일성이 없다. 례를 들어 ‘국어 사전’만 보아도 이것을 두 단어로 인식한 사람은 띄여쓰고 한 단어로 인식한 사람은 ‘국어사전’처럼 붙여 써 실제 띄어쓰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3) 문장부호의 명칭의 차이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는 같은 부호이지만 서로 다르게 부를는것들이 있다. 아래에 서로 다르게 부르는 부호들은 렬거 한다. 한국 중국조선족 . 온점 . 점 : 쌍점 : 두점 { } 중괄호 { } 대괄호 [ ] 대괄호 [ ] 중괄호 - 줄표 - 풀이표 - 붙임표 - 이음표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따옴)하여 쓸 때 “ ”를 쓰고 ‘따옴표’라고 명칭하며 ‘ ’를 ‘작은따옴표’라고 명칭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 》를 쓰고 ‘인용표’라고 명칭하고 〈 〉를 ‘거듭인용표’라고 명칭한다. ‘에어컨’과 ‘공기조절기’ 실내공기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의 기계를 한국에서는 우리말 단어가 없이 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에어컨’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공기조절기’ 또는 ‘공기조화기’라고 하며 구두어에서는 한어 ‘空氣調和器’를 간략하여 ‘空調[쿵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국어사전에는 ‘공기조화기’ 또는 ‘공기조절기’를 ‘에어컨’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리모컨’과 ‘원격조정기’ 텔레비, 오디오, 공기조절기 등에서 사용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기기나 기계류를 제어하는 장치를 한국에서는 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여‘리모컨’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서면어에서는 ‘원격조정기’라고 하지만 구두어에서는 간편하게 한어로 ‘遙控器[요쿵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어사전에 ‘리모컨’은 올랐지만 ‘원격조정기’는 오르지 않았다. ‘배터리’와 ‘전지’ 핸드폰, 노트북컴퓨터, 록음기 등에서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 전기를 제공하는 부분을 중국의 조선족들은 ‘전지’라 하고 한국에서는 ‘전지’라고 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일어로‘밧데[patteri ]리’라고 하는데 방송, 출판물에 서는 영어로‘배터리 [battery]’라고 한다. ‘케이크’와 ‘단설기’ 밀가루, 달걀, 버터(우유의 지방을 분리하여 응고시킨 식품), 우유, 설탕 따위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서양 음식을 한국에서는 우리말이 없이 영어발음으로 ‘케이크[cake]’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우리말로 ‘단설기’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단설기’를 북한어라고 하였다. 따라서 생일축하선물로 한국에서는 ‘생일케이크’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생일단설기’라고 한다. [에피소드] 한 회사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중국동포 강호의 생일이였다. 저녁에 동료들이 강호의 생일을 축하하기로 하였다. 한 한국동료가 “그럼 ‘생일케이크’를 준비하여야지.”라고 하자 갓 한국에 온 동포가 “‘생일케이크’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라고 하자 한국생활을 오래 한 중국동료가 “한국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생일단설기’를 ‘생일케이크’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국동료가 ‘생일단설기’란 말은 처음 듣는다고 하였다. ‘케이크’란 영어이므로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이고 ‘단설기’란 북한어라고 하였으니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밖에 될수 없는것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4)  ‘신정’과 ‘원단’ 양력 1월 1일, 즉 양력설을 한국에서는 ‘신정[新正]’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元旦’ 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元旦’ 의 한자어로 ‘원단’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양력설을 ‘원단[元旦]’이라고 하지만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는 ‘원단[元旦]’을 설날 아침이라고 하였다. ‘구정’과 ‘춘절’ 음력 1월 1일, 즉 음력설을 한국에서는 ‘구정[舊正]’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春節’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春節’의 한자어로 ‘춘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음력설을 ‘춘절[春節]’이라고 하지만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는 춘절[春節]’을 ‘봄철’이라고 하였다. ‘증정[贈呈]’과 ‘증송[贈送]’ 어떤 물건 등을 성의나 사례, 축하나 기념 등의 표시로 드리는 것을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는 줄 ‘증[贈]’자에 들릴 ‘정[呈]’자의 한자어로 ‘증정[贈呈]’이라고 하였고 한어에서는 줄 ‘증[贈]’자에 보낼 ‘송[送]자로 ‘贈送[증송]’ 이라고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방송, 출판물에서는 이런 것을 ‘증정’이라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한어의 영향을 받아 ‘贈送’을 한자어로 하여 ‘증송[贈送]’이라고 많이 말하고 있다.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는 정한 수량보다 더 늘려 보내거나 실어 나르는 뜻으로의 ‘증송[增送]’은 있지만 ‘증정하다’ 의 뜻으로 되는 ‘증송[贈送]’은 없다.    정치 체제, 사회 제도로 인한 일부 명사차이 한국                               중국조선족 북한(北韓)                    조선(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한반도(韓半島)                       조선반도(朝鮮半島) 한국 전쟁(韓國戰爭)             조선 조국해방전쟁(朝鮮祖國解放戰爭) 초등학교(初等學校)                       소학교(小學校) 중학교(中學校)                      초급중학교(初級中學校) 고등학교(高等學校)                    고급중학교(高級中學校) 교감(校監)                            부교장(副校長) 대학교 총장(大學校總長)                  대학교 교장(大學校長)   [에피소드] 한 회사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휴식시간이 되여 한자리에 모여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한 한국근로자가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어느덧 2009년을 마감하고 새해 신정도 며칠 안 남았구나!”하자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한 중국동포가 “신정이라는 것이 무었인가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국생활을 오래한 한 중국동포가 “한국에서는 원단을 신정이라고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한국인들은 중국에서는 양력설을 원단이라고 하는가요? 그러면 음력설은 뭐라고 하는가요?”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한국생활을 오래한 그 중국동료가 “한국에서는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춘절이라고 해요.”라고 말하자 한국인들과 중국동포들은 모두 “한국과 중국에서 양력설과 음력설을 부르는것도 서로 다르구나.”라고 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5) ‘트랙터’와 ‘뜨락또르’ 여러가지 농기계를 끌거나 짐을 나르는 특수한 자동차, 즉 한어에서 말하는 ‘拖拉機’ 를 한국에서는 영어로 ‘트랙터[tractor]’ 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로시아어로 ‘뜨락또르[traktor]’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뜨락또르’를 ‘트랙터’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헬리콥터(헬기)’와 ‘직승비행기(직승기)’ 기체 우에 대형의 회전날개를 달아 수직상승, 하강, 전진, 후퇴, 공중정지를 할수 있는 항공기 즉 한어로 直昇飛行機(直昇機)라고 하는 비행기를 한국에서 는 영어로 헬리콥터(Helicopter) 또는 헬기(helicopter機)라고 하며 중국의 조 선족들은 곧을 ‘직[直]’자에 오를 ‘승[昇]’자 즉 곧게 오르는 비행기라는 直昇飛行機 (直昇機)를 한자어 단어로 하여 직승비행기(직승기)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직승비행기(직승기)를 ‘헬리콥터’의 북한어 라고 하였다. ‘탱크’와 '땅크’ 물, 가스, 기름 등을 넣어 두는 큰 통, 그리고 무한궤도를 갖추고 두꺼운 철판으로 장갑(裝甲)하고, 포와 기관총 따위로 무장한 군사에 쓰는 차를 영어로 ‘tank’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것을 ‘탱크’로 표기하고 발음하며 중국의 조선족들은 ‘땅크’로 표기하고 발음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땅크’를 ‘탱크’ 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크레인’과 ‘기중기’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려 아래우나 수평으로 이동시키는 기계를 영어로 ‘ crane’ 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이것을 ‘크레인’ =‘기중기’ 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기중기’라고 말하는 것보다 보편적으로 ‘크레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기중기’라고 만 말하지 ‘크레인’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콤프레샤’와 ‘공기압축기’ 공기를 대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압축하여 압축공기를 만드는 기계를 영어로는 ‘aircompressor’라고 한다. 이것을 한국어사전에서는‘공기압축기’또는‘에어 컴프레서’라고 하였고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콤프레샤’ 라고 하였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이기계를 ‘콤프레샤’라고 말하고 ‘공기압축기’란 단어는 기본상 쓰지 않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서면어에서는‘공기압축기’라고 말하 지만 구두어에서는 보통 한어 ‘空氣壓縮機’의 략칭으로‘空壓機[쿵야지]’ 라고 말하고 ‘에어 컴프레서’혹은 ‘콤프레샤’ 라고 하면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에피소드] 한 건설현장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힘든 일을 하고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하늘에서 직승기(헬기)가 날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한 중국동포가 한국인을 보고 “저 직승기는 무얼하느라고 매일 저렇게 날고 있는가?”물었다. 그러자 그 한국인은 “‘직승기’란 무었인가?”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중국동포는 하늘에서 날고 있는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지금 저 하늘에서 날고 있는 비행기를 직승기라고 하지요.”라고 하자 그 한국인은 “아, 저것을 중국에서는 직승기라고 하는가요? 우리나라에서는 ‘헬기’라고 하는데요.”라고 하였다. 같은 물체이지만 한국에서는 외래어로 말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자어로 말하니 서로 다 못 알아들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6) 한국에서는 자모 중에 합성 모음 ‘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와 합성 자음 ‘ㄲ, ㄸ, ㅃ, ㅆ, ㅉ’을 정식 자모로 인정하지 않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러한 합성 자모도 정식 자모로 인정한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14개 자음과 10개의 모음으로 24개 자모라고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19개의 자음과 21개의 모음으로 40개의 자모라고 한다. 이로 하여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 사전 표제어 배열에서 아래와 같은 구별이 있다. [모음] 한국: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중국: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 [자음] 한국: ㄱ ㄲ ㄴ ㄷ ㄸ ㄹ ㅁ ㅂ ㅃ ㅅ ㅆ ㅇ ㅈ ㅉ ㅊ ㅋ ㅌ ㅍ ㅎ 중국: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ㄲ ㄸ ㅃ ㅆ ㅉ 일부 자음의 명칭에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 ㄱ 기역, ㄷ 디귿, ㅅ 시옷, ㄲ 쌍기역, ㄸ 쌍디귿, ㅃ 쌍비읍. ㅆ 쌍시옷, ㅉ 쌍지읒 중국: ㄱ 기윽 ㄷ 디읃, ㅅ 시읏, ㄲ 된기윽, ㄸ 된디읃, ㅃ 된비읍, ㅆ 된시읏, 된지읒 ‘산책로’와 ‘유보도’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걸도록 만들어 놓은 거님 길을 한국에 서는 ‘산책로[散策路]’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유보도[遊步 道]’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유보도’를’산책로’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산책로[散策路]’나 ‘유보도[遊步道]’는 모두 한자어단어지만 현대한어에는 이런 단어들이 없다. 고사(考査)와 고시(考試) 한국어사전에는 ‘고사[考査]’를 “1 자세히 생각하고 조사함. 2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라고 해석하였고 ‘고시[考試]’를 “1 공무원의 임용 자격을 결정하는 시험. 2 과거(科擧)의 성적을 살펴서 등수를 매기던 일.”이라고 해석하였다. 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을 한국에서는 고사[考査]라 고 한다. 례하면 ‘중간(기중) 고사’, ‘학기말(기말)고사’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것을 ‘고사’라고 하지 않고 표준적으로는 ‘시험’이라고 하지만 한어 ‘考試’를 직역하여 고시라고도 한다. 례하면 ‘중간(기중)시험’, ‘학기말(기말)시험’ 혹은 ‘중간(기중)고시’, ‘기말고시’라고 말한다. 한어에서 ‘考査’는 평가나 심사를 목적으로 하여 일정한 표준에 따라 사찰하는 것을 말한다.   ‘소정’과 ‘정해진 바’ 한국에서는 ‘정하여지는것, 또는 정하여진 바’의 뜻으로 바 ‘소[所]’ 자에 정할 ‘정[定]’자의 한자어단어 ‘소정[所定]’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소정[所定]’이란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정하여지는것, 또는 정하여진 바’라고 말 하고 있다. ‘소정[所定]’이란 단어는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있는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 단어를 모르거나 쓰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한국의 영향을 받아 일부 방송, 출판물에서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하고 있다. 례하면 '소정의 절차를 밟다.' '소정의원고료를 지불하다.' '한달의 소정 근로 시간 수' 등이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7) 용언 어형에 관한 문자표기의 차이 1. -아/-어형 어간 끝소리가 ‘ㅣ, ㅐ, ㅔ, ㅚ, ㅟ, ㅟ’인 모음 어간은 한국에서는 ‘-어’가 붙지만 중국의 조선말규범에서는 ‘-여’가 붙는다. 한국                                            중국조선족 피어                                               피여 내어                                               내여 세어                                               세여 되어                                               되여 뛰어                                               뛰여 희어                                               희여 2. 어미에서 ‘ㄹ’ 직후의 경음 표기 종성(끝소리) ‘ㄹ’을 포함한 어미들 가운데 한국에서는 ‘-ㄹ까, -ㄹ쏘냐’ 등으로 표기되지만 중국의 조선말규범에선 ‘-ㄹ가, -ㄹ소냐’와 같이 ‘ㄹ’ 직후가 평음 글자로 표기한다. 이러한 어미는 어원적으로 관형사형 ‘-ㄹ’을 포함한 형태인데 중국의 조선말규범에서는 ‘-ㄹ’ 직후의 경음을 평음 글자로 표기한다. 례하면 “찾을까(을가)?”에서 한국에서는 ‘ㅡ을까?’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ㅡ 을가?’로 표기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지겠느냐?’의 표현에서 한국에서는 “내가 너에게 질쏘냐?”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내가 너에게 질소냐?”라고 표기한다. ‘참’과 ‘간식’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먹는 음식을 한국에서는 ‘참’혹은 ‘새참’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사이 ‘간[間]’자에 먹을 ‘식[食]’자의 한자어단어 로‘간식[間食]이라고 한다. ‘숙주’와 ‘녹두나물’ 녹두를 시루 같은 그릇에 담아 물을 주어서 싹을 낸 나물을 한국에서는 ‘숙주’ 또는 ‘숙주나물’이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녹두나물’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의 잘못이라고 하였다.‘숙주’나 ‘숙주나물’은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대사전에 모두 있는 단어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느껴진다.   ‘두부’와 ‘초두부’ 눌러서 굳히지 않은 두부를 한국에서는 ‘순두부’라고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초두부’라 하며 비 표준적으로 함경도 방언으로‘두부’ 를 ‘두비’라고 하며 ‘초두부’를 ‘초두비’라고도 하는데 한국어사 전의 해석을 보면 ‘초두비’를 ‘순두부’의 함경도 방언이라 하였고 조선말대사전에는 ‘초두부’를 ‘순두부’의 비규범적인 말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초두부’를 아주 표준적인 말처럼 사용하여 왔었는데 지금은 한국과의 거래를 통하여 ‘순두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피소드] 초두부를 주세요. 한국에 금방 온 중국동포 녀성이 시장의 두부상가에 가서 “초두부를 주세요.”라고 하였다. 상가주인이 초두부라는 말을 몰라 멍해 있자 같이 따라갔던 조카애가 “아이, 이모도 한국에 와서 초두부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들어요? 한국에서는 이것을 순두부라고 해요.” 라고 하자 상가 주인이 벙긋이 웃으면서 “중국에서는 이것을 초두부라고 하는가요?”라고 하면서 순두부를 건네주었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8)   한자음 표기에서의 부동한점   한자 廢, 閉, 肺, 弊, 幣, 陛, 蔽, 등을 한자음으로 표기할 때에 한국에서는 모두 ‘폐’로 표기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모두 ‘페’로 표기한다. 한국어사전에서는 외래어에서 오는 ‘페’ 발음은 모두 ‘페’로 표기하지만 한자어에서 오는 ‘페’는 모두 ‘폐’로 표기하고 발음은 ‘페’로 한다. 조선말대사전에는 ‘폐’로 오는 음절이 없다.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 같은 단어에서 발음은 한가지로 하지만 문자표기에서 이렇게 부동한 점들이 있다.   일부 한자는 한자음이 다른 경우가 있다. 한자 비뚤 ‘歪’자를 한자음으로 한국에서는 ‘왜’로 표기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외’로 표기한다. 례하면 ‘歪曲’을 한자음으로 한국에서는 ‘왜곡’이라고 표현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외곡’이라고 표현한다. 한자 쉴 ‘憩’자를 한자음으로 한국에서는 ‘게’로 표기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계’로 표기한다. 례하면 ‘休憩所’를 한국에서는 ‘휴게소’라고 표현하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은 ‘휴계소’라고 표현한다.     짐’과 ‘하물’ 그리고 ‘하치장’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을 고유어로는  ‘짐’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또 짐 ‘하[荷]’자에 물건 ‘물[物]’자의 한자어단어 ‘하물[ 荷物]’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물[荷物]’이란 단어는 한국어사전에나 조선말대사전에 다 있는 말이지만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그리고 짐을 두는 곳, 짐을 부리는 곳, 또는 쓰레기 따위를 거두어 두는 장소를 한국에서는 짐 ‘하[荷]’, 둘 ‘치[置]’, 마당 ‘장[場]’자의 한자어단어 ‘하치장[荷置場]’으로도 표현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하치장[荷置場]’란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이다.   ‘상차[上車]’와 ‘裝車[쫭처]’, ‘하차[下車]’와‘卸車[쎄처]’    짐 따위를 차에 싣는 일을 한국에서는 오를 ‘상[上]’자에 수레 ‘차[車]’자의 한자어단어 ‘상차[上車]’로 표현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차에 짐을 싣는다’로 말하지만 구두어에서는 쉽게 한어로 ‘裝車[쫭처]’라고도 말한다. 한어에서 ‘上車’는 ‘차를 타다’또는 ‘차에 오르다’의 뜻으로 되지 ‘차에 짐을 싣는다’의 뜻으로는 되지 않는다. 타고 있던 차에서 내리거나 차에서 짐을 내리는것을 한국에서는 또 내릴 ‘하[下]’자에 수레 ‘차[車]’자의 한자어단어 ‘하차[下車]’로 표현하는데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런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차에서 내리다’혹은 ‘차에서 짐을 부리다’라고 말한다. 차에서 짐을 부리울 때에는   구두어서 쉽게 한어로 ‘卸車[쎄처]’라고 말하기도 한다.    ‘승강기’와 ‘리프트’ 동력을 사용하여 사람이나 화물을 아래우로 나르는 장치를 영어로 ‘lift’라고 하는데 한자어로는 ‘승강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한자어를 기본상 쓰지 않고 영어발음으로‘리프트’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오를 ‘승 [昇]’자에 내릴 ‘강[降]’, 틑 ‘기[機]’즉 오르내리는 기계란 뜻의 ‘昇降機’의 한자어로 ‘승강기’라고 한다. [에피소드] 작업반장이 갓 한국에 온 중국동포에게 이 물건들은 리프트에 올리라고 하였다. 그 중국동포는 무슨 말인지 리해를 못해 멍하니 서 있자 작업반장이 “왜 빨리 하지않고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가” 라고 하자 먼저 한국생활을 한 중국동포가 “이 물건들을 승강기에 올리란다. 한국에서는 승강기를 리프트라고 한다.”라고 말하여서야 그 중국동포는 작업반장의 말을 리해하고 물건들을 리프트에 올리였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우리말의 한자어로 ‘승강기’라 하고 한국에서는 영어로 ‘리프트’라고 하니 서로 의사소통이 않되였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29)    합성어의 표기에서도 사이읏표기법외에 일부 어근 표기에서도 부동한 점이있다. 합성어 표기는 낱낱 어근을 명시하는 것이 원칙이나 어원 의식이 희박한 경우에는 명시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 이것은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이 동일하다. 그러나 어근을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따라 몇몇 합성어의 경우 표기법의 차이가 보인다. 한국                            중국의 조선족 올바르다                             옳바르다 벚꽃                                  벗꽃 우에서 ‘올바르다’는 한국에서는 ‘올’의 부분이 어원 의식을 잃었다고 판단하여 발음대로 ‘올바르다’라고 표기하는데 반해 중국의 조선족들은 ‘옳다’의 어간이라 판단하여 ‘옳바르다’(발음은 [올바르다]로 동일함)라 표기한다. ‘벚꽃’은 한국에서는 ‘벚’과 ‘꽃’의 합성어로 파악한데 반해 중국의 조선족들은 어원 의식을 잃었다고 판단하여 ‘벗꽃’으로 표기한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승강기’ 사람이나 화물이 자동적으로 위아래 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계단 모양의 장치를 한국에서는 영어로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자어로 ‘계단승강기’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계단승강기’를 ‘에스컬레이터’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계좌’와 ‘구좌’ 금융기관에 예금하려고 설정한 개인명이나 법인명의 자리를 한국에서는 ‘계좌[計座]’라 하고 그 자리의 번호를 ‘계좌번호’라하며 중국의 조선족들은 ‘구좌[口座]’라고 하고 그 자리의 번호를 ‘구좌번호’라고 한다.    ‘ ‘택배’와 ‘문전송달’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일을 한국에서는 ‘택배’라 하고 중국이 조선족들은 ‘문전송달’이라고 한다. ‘택배(宅配)’의 어원을 보면 ‘집 배달’ 또는 ‘문 앞 배달’을 たくはい (宅配) 라고 하는 일본어한자음[宅配]에서 온 것으로서 한국에서도 ‘택배’란 단어를 쓴 력사는 20년도 안된다.   ‘장갑’과 ‘수갑’  손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거나 장식하기 위하여 손에 끼는 물건을 한국에는 ‘장갑’이라 하며 중국의 조선족들은 ‘장갑’ 또는 ‘수갑’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수갑’을 ‘장갑’의 북한어라고 하였으며 조선말대사전에는 ‘수갑’= ‘장갑’이라고 하였는바 중국의 조선족들은‘수갑’을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수갑’이라고 하면 죄인이나 피의자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도록 양쪽 손목에 걸쳐서 채우는 형구인 ‘쇠고랑’으로만 리해를 한다.    [에피소드] 한 회사에서 있은 일이다. 갓 한국에 온 중국동포가 자기가 쓰던 장갑이 닳아 구멍이 나자 작업반장에게 “수갑을 주세요. 저에게 수갑이 없어요.” 라고 하자 작업반장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사람 죄수라고 수갑을 달라고 하나? 무슨 뜻인가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중국동포는 장갑을 낀 손을 내 밀며 나의 수갑이 닳아서 구멍이 났어요.”라고 하자 작업반장은 “그것이 장갑이지 어디 수갑인가?”라고 하자 다른 한 동포가 “중국의 조선족들을 이것을 장갑이라고 하지만 수갑이라고 도 해요.” 라고 해석하였다. 작업반장은 그저 웃고 말았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30)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차이   1.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파열음(페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그 막은 자리를 터뜨리면서 내는 소리. ‘ㅂ’, ‘ㅃ’, ‘ㅍ’, ‘ㄷ’, ‘ㄸ’, ‘ㅌ’, ‘ㄱ’, ‘ㄲ’, ‘ㅋ’ 따위가 있다.)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소리 나는 대로 된소리로 표기한다. 례하면 사람들을 실어 나늘수 있도록 만든 합승자동차를 영어로 ‘bus’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버스’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뻐스’로 표기한다. 한국어사전에는 ‘뻐스’를  ‘버스의 잘못, ‘버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실제 발음은 된소리를 그대로 내고 있다.   아래에 이에 관련되 몇가지 례를 들면 영어표기            한국에서의 표기         중국조선족들의 표기 Soviet             소비에트(소련)              쏘베트(쏘련)  Portugal          포르투갈                     뽀르뚜갈  Haiti             아이티                       아이띠 PortauPrince       포르토프랭스                 뽀르또쁘랭스 Stalin            스탈린                      쓰딸린  Boat(작은 배)     보트                        뽀트  Ball (공)         볼                          뽈 Sofa             소파                         쏘파    Dam(언제)         댐                          땜 Dollar            달러                        딸라 2.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하면 공산주의 (맑스주의)창시자인Marx, Karl 를 중국의 조선족들은 겹받침 ‘ㄺ’써서‘맑스’로 표기하지만  한국에서는 우의 표기법 원칙에 의하여 받침 ‘ㄺ’를 쓰지 않고 ‘마르크스’로 표기한다.   3.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는 또 쟈·져·죠·쥬·챠·쳐·쵸·츄 등은 쓰지 않고 대신 자·저·조·주·차·처·초·추 등을 쓴다. 이로하여 한국과 중국의 조선족들이 외래어 표기에서도 차이점을 갖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고르바쵸브’ 1985년-1991년에 쏘련공산당 총서기로 있던 정치인물을 한국에서는 ‘고르바초프'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고르바쵸브’로 표기한다.   ‘초콜릿’과 ‘쵸콜레트’ 코코아 씨를 볶아 만든 가루에 우유, 설탕, 향료 따위를 섞어 만든 과자 [chocolate]를 한국에서는 ‘초콜릿’으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쵸콜레트’로 표기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쵸콜레트’를 ‘초콜릿’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찬스’와 ‘챤스’ 기회란 뜻의 ‘chance’ 를 한국에서는 ‘찬스’로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챤스’로 표기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챤스’를 ‘찬스’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같은 영어 외래어라도 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라 결과적으로 다른 어형이 되는 경우도 있다. 례하면 높은 압력의 류체를 날개바퀴의 날개에 부딪치게 하여 힘을 얻는 원동기를 영어로는 ‘turbine’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터빈’이라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타빈’이라고 한다. 례하면 한국에서는 ‘수력터빈’, ‘증기터빈’, ‘가스터빈’이라 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수력타빈’, ‘증기타빈’, ‘가스타빈’이라고 한다. 한국어사전에는 ‘타빈’을 ‘터빈’의 북한어라고 하였다. 이런 차이들은 또 ‘러시아’와 ‘로시아’, ‘캐나다’와 ‘카나다’ ‘필름’과 ‘필름’, ‘레이더’와 ‘레이다’ 등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언어, 문자사용에서의 차이(31)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차이   4.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는 “중국의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라 고대인인 ‘孔子’, ‘孟子’같은 과거인들은 한자음대로 ‘공자’, ‘맹자’로 표기하지만 현대인에 대해서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자어로 표기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므로 그 표기와 발음이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례하면 ‘毛澤東[모택동]’을 ‘마오쩌둥’, ‘鄧小平[등소평]’을 ‘덩샤오핑’, ‘胡錦濤[호금도]’를 ‘후진타오’ 등으로 표기한다.   5.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는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의하여 한국에서는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고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자어로 표기하기에 그 표기와 발음이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료녕성(遼寧省)’을 ‘랴오닝성’, ‘청도(靑島)’를 ‘칭다오’, ‘신강 (新疆)’을 ‘신장’,  ‘길림[吉林]’을 ‘지린’, ‘연변[延邊]을 ‘옌볜’, ‘룡정[龍井]을 ‘룽징’으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6.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는 “중국 및 일본의 지명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르 허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례하면 東京을 도쿄 또는 동경, 京都를 교토 또는 경도, 上海를 상하이 또는 상해, 臺灣을 타이완 또는 대만, 黃河를 황허 또는 황하 등이다. 한자음으로 표기할때에는 중국의 조선족들의 표기와 같게 된다.       그리고 외국 국명이나 지명은 한국에서 영어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음역(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것)에 의한 명칭이거나 현지 언어에 의한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은데 반해 중국의 조선족들은 영어명칭을 사용하거나 현지 언어에 의거한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고 주로는 음역에 의한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        한국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                                         로시아 베트남                                         월남           태국                                       타이 터키                                          토이기 호주                                           오스탈리아 그리스                                         희랍 미얀마                                         버마 네덜란드                                        화란 폴란드                                          뽈스까 이집트                                          애급 오스트리아                                      오지리 아랍에미르트                                    아랍련합추장국 캐나다                                          카나다 쿠바                                            꾸바 스페인                                          에스빠냐 캄보디아                                        캄보쟈 홍콩                                            향항 마카오                                          
35    폭죽문화에 대하여 댓글:  조회:8164  추천:12  2011-05-13
폭죽문화에 대하여   우리 나라에는 설을 쇠거나 경축활동을 할때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습관이 있 는데 2000여년의 력사를 갖고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깊은 바다물속에  《년(年)》이라고 부르는 흉악한 괴물이 있었는데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 면 물에서 나와 마을을 덮쳐 사람과 가축을 해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해 섣 달 그믐날 저녁에 마을의 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추워서 대나무를 태우면서 놀 았는데 대나무속의 공기가 열을 받아 팽창하여 땅땅 소리를 내면서 터지니 아이 들은 재미있다고 떠들석 하였고 이때 마침 그《년》이라는 괴물이 마을로 왔다 가 이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바람에 그날 밤부터 1년간 무사하였다고 하여 사람들 은 대나무를 태워 터뜨리여 소리를 내는것을 귀신을 쫓고 화를 막는것으로 여기 여 매년 섣달 그믐날은 물론 경사스러운 일에 모두 참대를 불태워 터뜨리였으며 폭죽이라는 말 뜻은 여기로부터 기원되였는데 (爆竹)참대를 터뜨린린다는 뜻인것 입니다. 후에 화약이 발명되면서 대나무에 화약을 넣어서 터뜨리다가 북송 때에 와서 민간에서 화약을 종이에 말아서 폭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폭죽을 터뜨리는것은 선진적문화라고는 할수 없지만 중화민족의 2000여년 내 려 온 전통풍속으로서 막기는 어려운것입니다. 폭죽으로인한 소음, 화재, 환경오염, 경제적랑비 등 원인으로하여 북경시 에서 1993년10월에《폭죽을 터뜨리는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세워 10여년간 폭죽을 터뜨리는것을 금지하였다가 백성들의《명절분위기가 없다 명절멋이 너무 없다》는 등 의견과 폭죽을 터뜨릴것을 요구한데 근거해 2005년12월에 다시 《폭죽안전관리규정》을 세워 금지하던것을  제한한다고 고친것입니다. 폭죽을 터뜨리면 확실히 화재가 발생한다든가 어린이들이 손을 상하거나 눈 이 실명하는 페단들이 있는데 몇년전에 연길공원앞에서 폭죽상가들의 부주의로 큰 화재가 났고 매년 설, 보름 사이에 폭죽으로 인한 화재로 하여 소방차들의 사 이렌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런 사고를 미연히 방지하기 위하여 12일, 리경호 부 주장은 해당부문 책임일군들의 안내하에 폭죽시장안전정황을 검사하여 문제점들 을 발견 하고 제때에 조치를 대도록 하였으며 보도매체에서 폭죽관리안전집법정 황과 비법 경영정황을 제때에 보도하여 사회적으로 경영법을 준수하고 안전하게 폭죽을 터치우는 여론분위기를 형성하도록 하였습니다.   북경시의 규정을 보면 문물보호단위, 기차역, 비행장과 같은 교통중심, 기름, 가스 등 쉽게 불이 붙고 폭발할수있는 위험품이 저장된곳과 기타 소방단위, 전기 수송설비, 의료기구, 유치원, 경로원 삼림, 묘포장과 같은 중점 방화구, 중요한 군 사시설 등 금지구역을 정하였으며 제한된 지점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시간은 섣 달 그믐날, 정월 초하루, 초이틀, 대보름으로서 매일 아침7시부터 저녁12시까지 사이이며 기타 시간에는 터뜨리지 못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폭죽을 터뜨릴 때에도 사람, 차량, 건축물에 뿌리지 못하며 건축물내, 지붕, 베란다에서 터뜨리거나 밖에 뿌리지 못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행인과 차량의 안전통행을 방애하여서는 안되며14살 이하의 미성년은 후견 인 혹은 기타 성인의 감시하에서 터뜨린다고 하였으며 경축활동이거나 기타 명 절에 폭죽을 터뜨릴 경우에는 정부에서 결정하고 공고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지방을 보면 결혼식이나 상가들이 개업식에 폭죽을 터뜨리는것이 규범화 되지 못하여 문명하지 못하게 아무때 아곳에서나 터뜨리고 행인이 있던 없던 관계하지 않는데 어느 개인의 희사에 주민들이거나 행인들이 소음이나 환 경오염의 곤혹을 겪을 리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세상에서 타인 과 도시 환경오염을 고려하여 결혼식, 상가들의 개업식에는 폭죽을 터뜨리지 않 는것이 좋지 않는 가하는 견해입니다. 그리고 설, 보름기간에 일부 집들에서는 남 들이 다 잠든 0시 후에도 터뜨리는데 북경시에서는 설, 보름기간에도 0시부터 7 시 사이에 못 터뜨 린다고 합니다. 또 어떤 집들에서는 층집에서 밖에내다 뿌리 면서 터뜨리는데 이는 행인들에게 매우큰 위험으로 될수 있는것입니다. 때문에 북경에서는 집안에서 밖에내다 뿌리지 못한다는 규정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어 린이들이 터뜨릴때에는 북경시에서 결정한것처럼 꼭 어른들이 감시하여 의외의 사고를 미연히 방지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폭죽을 터뜨리는것을 너무 막을바가 못되는 이상 터뜨리데 문명하게 터뜨리며 폭죽을 사되 상징적으로 얼마간씩 사고 서로 경쟁적으로 한아름씩 사는 과소비를 반대하였으면 합니다.   연변인민방송국 2007년2월16일 아침 6시30분 생방송
34    제1차《현대가정교육컵》공모작활동을 마무리면서 댓글:  조회:7904  추천:11  2011-05-13
제1차《현대가정교육컵》 유상공모작품경색활동을 마무리면서   전사회적으로 가정교육을 중시하고 교육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 본 구락부에 서는 연변대학조선족교육연구소와 함께 제1차 《현대가정교육컵》유상공모작품경 색할동을 벌렸습니다. 저는 이번 이 응모작품평심위원회의 위탁을 받고 이 활동을 마무리면서 이번 응모작품들에 대한 감수를 말하려 합니다. 이번 이 응모작품경색활동통지가 나간다음 가정교육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많 은 분들이 문장을 써서 본 구락부에 보내여 왔는데 모두 106 편의 문장을 받았습 니다. 그가운데서 1등상 1명,  2등상 2명,  3등상 3명, 우수상 7명을 뽑앗습니다. 우리는 이번 이 입선작품들을 선후로 《현대가정》신문을 통하여 발표하며 아 리랑방송에서 수상자들과 직접 생방송을 하려합니다.    이 응모작품가운데서 우리는 가정교육에 대한 성공적인 사례와 경험, 새로운 교 육모식 대한 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받았습니다.    1등에 입선된 흑룡강성밀산시라디오텔레비죤방송국의 리동식이 쓴 《드팀없는 삶의 신조에 비낀 눈부신광환 — 역경속에서도 간난신고로 자식들을 룡으로 키우 기까지》의 문장에서 문현출, 허채숙부부는 큰아들 흥식이 부부가 중국의 최고 학 부인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박 사학위를 따낸다음 조국에 돌아와서 국 가의 첨단전자학 분야에서 고 급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작은 아들 흥엽이 역시 중 국의 명문대학인 중국과 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계속 박사공부를 하고 있으 므로하여  농촌에서 아글타글 고생스레 자식들의 뒤바라질을 하엿지만 이 고생이 락으 로 느껴진다는 가슴뿌듯한 기뿜.    2등상에 입선된 훈춘시반석중학교 주현길이 쓴 《황금을 줏는 사람 — 딸 백 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많은 결손가정들에서는 비록 외국 나 들이바람에 돈은 많이 벌어 왔지만  자식농사를 잘 짓지 못하여 땅을 치 며 통곡하고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외국으로 돈벌이 갔던 너의 어머니도 여러해 만에 많은 돈을 벌어 왔을 뿐 만 아니라 나도 집에서 자식농사를 잘하여 딸애를 중국의 최고학부인 청화대 학에 보내여 어거리 풍년을 거 두어 자식교양에서 황금을 줏는 사람이라고 가슴 뿌듯이 자랑하는 백설의 아버지.    2등상에 입선된 길림대학과 일본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어 교육석사학 위 를 따내고 현재 천진남개대학빈해학원 일본어강사로 사업하고 있는 양화가 쓴 문 장 《내가 본 우리부모님의 가정교육》에서 《응 아!》하는 딸애의 첫 울음소리 와 함께 자기도 엄마가 되였다는 양화,  자기의 곁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딸애를 볼 때, 캐득캐득 웃으며 자기를 반겨 맞아주는 딸애를 볼때마다 부모님의 생명의 연장 인 자기가 인젠 엄마로 된 기쁨, 또 자기생명의 연장인 딸애를 보는 기쁨과 딸애 의 미래를 그려보는 마음으로 자기를 어엿한 대학교선생으로 키워온 부모님들의 가 정교육에 대하여 돌이켜 보면서 자기도 딸애에 대한 교육을 잘 하여 딸 애로 하여금 나라의 인재로 키워보려는 양화, 이 모든것들은  현대가정 교육에서의 본보 기로 되고 산교재로 되고 있습니다.    이번 응모작품들 가운데서 미읍한 점들이라면 가정교육에 대한 성공적인 사례 와 경험, 새로운 교육모식을 찾는데서 어떤 작품은 사적만 있고 리론적 서술이 없 으며 어떤 작품은 리론적 서술만 있고 사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자식본인의 흥취보다 부모의 기습으로 아이를 이런저런 모든 써클에 다 참가시키여 아이의 부담을 가중화 시키는데 아 이가 받아 당하기 어려운데도 억지로 시키는 현상입니다.    바라건대 제2차 《현대가정교육컵》공모작품경색부터는 실제 사적과 리론이 결 합된 완전한 경험과 모식이 있었으면 하는것이고 이번의 작품은 모두 성공적인 경 험들만 있는데 다음번부터는 실패된 교훈의 문장도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우리 구락부에 가입하여 구락부의 각종 활동에 적 극 참가하시여 우리함께 가정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사회각계의 여러 분 들의 열정적인  지지와 방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번 이 응모작품의 평의심사에 참가하시여 심혈을 몰부으신 연변대 학 조선족교육연구소 소장 박태수교수님, 연변일보사 론설위원이며 고급기자인 송철운 선생님, 현대가정신문사 총편 김범룡선생님, 연길인민방송국아리랑방송 총감독 김 춘극선생님, 연변TV방송국사회교육부 주임 리승희선생님 이 다섯분의 선 생 님 들 에게 충심으로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제1차《현대가정교육컵》응모작품평의심사위워회      (주청룡) 2006년 7월 28일
33    장정정신을 발양하자 댓글:  조회:7753  추천:11  2011-05-13
장정정신을 발양하자   장정은 전 세계에서 있어 본적이 없는 력사적 기록인것입니다. 왕명의《좌》경기회주의로선의 착오적인 령도로하여 제5차《반포위토벌》이 실패하자 홍군은 할수없이 1934년10월에 중앙혁명근거지 서금을 떠나 장정을 시 작하여 1935년 10월에 제1장면군이 섬서성북부의 오기진에 이르기까지 12개월간 에 공중에서는 매일 수십대의 적기가 정찰, 폭격하고 지상에서는 수십만의 적군이 포위, 추격, 차단, 저격하였지만 이 모든것을 격파하고 적수하를 네번이나 건너고 오강천험을 돌파하고 금사강을 뛰여 넘고 로정교를 탈취하여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 대도하를 도강하고 천험한 랍자구를 돌파하고 눈사태에 파묻기면 시신도 찾기 어려운 설산과 사람이 빠지면 나오기도 바쁜 초지를 지나면서 2만5천리를 걸었는데 매일 평균 70리를 걸은것으로 됩니다. 로정교를 탈취할 때에는 적들은 홍군이 네바퀴가 달렸다 하여도 밤새에 로정교에 이르지 못 할것이라고 한것을 홍군은 두발로 강행군하여 로정교에 도착하여 로정교를 탈취하 였던것입니다. 장정은 이루다 형언할수 없는 간난과 위험에 봉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발로 11개 성을 종형하면서 2 만5천리의 험로를 답파하였다는것은 그야말로 세상을 놀래우는 인간기적을 창조한것입니다. . 장정정신은 고도의 애국주의 열정과 그 어떤 난관도 두려워 하지않고 영용분 투한 공산주의 정신인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은 장정정신이 있었기에 국민당반동파와 일본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새중국을 창건할수 있었던것입니다. 장정이 승 리한지 70년이 되지만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장정정신을 고양하고 발양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란들은 그것은 그 시기 그 런 환경이였기 때문에 장정을 하였지만 지금 와서 왜 그렇게 하며 지금 와서 그런 정신이 무슨 필요한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대한 도사 맑스께서는 《과학에는 탄탄대로가 없다. 오직 가파로운 오솔길 을 톱아 오르는 자만이 과학의 빛나는 절정에 오를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자탄, 수소탄을 만들고 인조지구위성을 태공에 올린 과학가들의 그 과학의 탐구의 길도 그렇게 순탄한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들도 그 어떤 난관도 물 리치는 장정정신이 있었기에 방사성원소의 인체에 대한 위험도 무릅쓰고 원자탄, 수소탄을 만들었고 인조지구위성을 태공에 올릴수 있었으며 양리위, 비준룡, 섭 해승도 바로 그런 장정정신이 있었기에 그 간고한 기술훈련도 이겨내고 마침내 태공에 오른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수있는 일인데 참군하여 신병훈련을 이겨내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 오는 현상들이 있는가하면 저당금까지 합하여 6만원, 거기에 가옥소유증까지 저당시키고 로무송출로 나갔다가 간고한 로 동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것을 볼수 있 는데 이런것들은 모두 장정정신과 같은 그런 간고분투의 정신이 없기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장정정신을 고양하는것은 당년의 그 홍군의 간고분투의 정신을 기리는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사업은 지금에나 앞으로나 이 장정정신을 수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할것없이 계속하여 우리의 후대 들에게 장정정신을 고양하고 장정정신으로 애국주의교육을 진행하여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우리 주의 리완빈이 바로 이런 사람가운데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아 들을 데리고 1년내에 홍군 제1방면군의 전반 장정코스를 답파하면서 아들에게 홍 군의 장정력사를 알게끔하고 홍군의 그 어떤 난관도 물리치는 장정정신을 체득시 키는것으로써 애국주의교육을 하였고 또 아들을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시킨것입 니다. 그리고 그 자신으은 또1년을 거쳐홍군 제2방면군의 장정코스를 전부 답파 하였을뿐만 아니라 이달부터 시작하여 또 홍군 제4방면군의 장정코스를 따라 제3 차 장정을 시작하려고 한답니다. 우리는 이 리완빈처럼 장정정신을 고양하고 장정정신을 발양하여 장정정신으 로 하여금 영원히 빛발치게하여야 하겠습니다.   2006.11.12.6:30 연변인민방송 《일요칼럼》에서 방송
32    인체의 로출현상을 어떻게 볼것인가? 댓글:  조회:7932  추천:10  2011-05-13
인체의 로출현상을 어떻게 볼것인가?    삼복철에 택시를 타다보면 운전사들이 웃옷을 훌떡 벗고 차를 몬다든가 로천 음식 점에서 웃옷을 훌떡 벗고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들을 보게되 는데 공중장소에서 웃옷을 훌떡 벗고 있다는것은 문명치 못한 행실이 아닌가 봅니 다.     의복의 기원을 보면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석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짐승의 가죽으로 자기의 알몸을 가리우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보는데 이렇고 보면 원시사회에서 원시인들도 자기의 알몸을 드러내는것을 꺼려하엿다는것을 알수 있 으며 옷을 입는것은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구별점의 하나라고 볼수 잇습니다.     인류는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발전으로하여 자기의 몸치장을 주로 의복으로 가꾸고 있습니다. 생활조건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자기의 몸치장을 어떻게 잘 하 는가 하는것은 자중의식을 높이고 공식장소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고 례절이라 고 봅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품위를 보여주고 잇는데 공중장소에서 웃옷을 훌떡 벗고 있다는것은 첫째는 자기의 존재가치와 품위를 너무 낮추는것이고 둘째는 상 대방 혹은 공중들에 대한 무시이고 례절스럽지 못한 행실이며 셋째는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문명치 못한 행실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일부 청소년들은 텔레비죤이나 영화에서 어떤 배우가 그 어떤 양식의 옷을 입었다면 무작정 그것을 패션으로 보고 그것을 모방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색 하여 볼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생산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옷이 해여지면 깨긋히 빨아 서 기워 입는것으로써 인간의 문명을 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생산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일부 청소년들이 새옷을 뜯어서 바지깃이 너덜너덜하고 무릎이 보기싫게 들여다 보이게 입고 다니고 젊은 녀성들이 배꼽을 들어내놓고 다니는것 을 어떻게 보아야 할가?     강택민동지는 《세가지 대표》의 중요한 사상을 제기할때에 《중국의 선진문 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여야 하다.》고 지적 하였습니다. 배꼽을 들어 내놓고 다니거나 새옷을 뜯어서 허들허들하게 입고 다니는것은 아무 리 어떻게 보아도 선진적 문화라고는 볼수 없지 않는가?       2006.8.20 일요일 연변인민방송《일요칼럼》에서 방송 2006.10.25. 수요일 10:10아리랑방송《녀성시대》에서 생방송  
31    음력설을 어떻게 쇨것인가? 댓글:  조회:6969  추천:9  2011-05-13
음력설을 어떻게 쇨것인가?    음력설은 중국에서는 춘절이라하며 최대의 전통명절로 하고 나라에서도 법적 으로 7일 련휴일하고 있으며 조선, 한국에서도 전통명절로하고 3일간 휴식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전통명절 음력설을 어떻게 의의있고 즐겁게 쇠겠는가하는 저의 소견을 말한다면 매 가정마다 정황에 따라 5.1절, 국경절 련휴일을 리용하여  가정유람을 하는것처럼 가정유람을 조직할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의 발전에따라 자식들이 모두 부모를 떠나 외지에 나가 사업하다나니 한집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을 기회가 매우 적은것입니다. 사람은 늙을수록 친인을 더 그린다고 특히 부모, 조부모되는 분들은  자기의 자손들을 몹씨 그리워하고 있는데 우리의 전통명절 음력설 련휴일 기간에는 한집 식구 혹은 친척들끼리 한자리에 모여앉아 그리운 정을 나누면서 즐겁게 설을 쇠는 것이 좋지않는가하는 생각입니다.     예로부터 설날아침이면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형식으로 절을 올리면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간단한 생활소비, 혹은 학업에 유리한것들을 사라고 약간의 세배돈을 주는것으로써 어른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풍속이 내려왔는데 지금도 많은 집들에서는 이 풍속을 지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집들에서는 어린이들 에게 세배돈을 주는것이 몇백원, 몇천원 지어는 그 이상으로 되고 있는데 어린이들 은 또 설이 지나면 학교에 나가서 나는 이번 설에 세배돈을 얼마 받았다. 너는 얼마를 받았니 하며 서로 비기고 있는데 이러한것들은 우리의 전통 풍속과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세배돈은 그 아이의 지배능력만큼 주는것이 합당하지 않는가? 기 실 어린아이들이 몇백원, 지어는 몇천원이상의 돈을 지배할 능력이 없는데 그 많은 돈을 준다면 전통풍속 의미를 떠날뿐만 아니라 세배를 하여 많은 돈을 가지려는 사상을 키워 줄수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학습에 유리 한 그 어떤 도구를 사라고 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세배돈이라는 명목으로 주지 말고 직접 학업에 유리한 도구를 사주면서 학습을 잘 하라고 한다면 그 아이에게 는 더 큰 고무가 될수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릴때에는 방학기간의 활동으로 그믐날이면 동네 학생들이 모여서 렬군속, 오보호가족을 방문하고 렬군속영광패에 꽃을 달아주고 집뜨락을 청소하고 땔나무를 패 준다든가하는 유익한 일들을 하고 설날아침이면 동네 년세가 많은 로인들을 방문하고 세배를 올리는 활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우리 조선민족의 이런 전통 미량풍속이 많이 사라지고 있지않는가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가끔 이런것들을 듣거나 보게 되는데 야—설이 돌아 오는데 상급 령도에 어떻게 인사를 하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인사는 몇백원을 놓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몇천원, 몇만원 지어는 그 이상을 말하는것이며 일부 부패한 령도간부들은 이런 인사를 받는것을 응당한것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 와는 10만 8천리 떨어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설이면 집단적으로 윳놀이, 상모춤, 널뛰기, 썰매타기 등 민속놀이와 레포 츠활동을 많이 벌리였는데 지금은 이런것들이 전부 살아지고 친척끼리 모여않아 트럼프치기, 마작판을 벌리고 잇는데 그것도 돈이 엄청나게 나들어 설뒤끝에 출근하면 나는 이번 설에 몇백원 땃다는둥, 나는 이번설에 몇백원 잃었다는 등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데 이런 도박성적인 눌음은 금지하고 집단적인 민속놀이 레포츠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집안끼리 앉아서 노래와 춤, 윳놀이 등 활동을 벌 린다듣가 스케트장, 스키장 등 곳에 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영원한 기념으로 남길수 있는 가족사진같은것을 찍는것이 좋지않는가하는 소견입니다.   2006.1.27.금요일 6:30 연변인민방송에서 생방송 2006.10.25. 수요일 10:10 아리랑방송《녀성시대》에서 생방송  
30    연변인민방송국 성립60주년 축하 댓글:  조회:7758  추천:10  2011-05-13
연변인민방송국 성립60주년 축하    지금 연변인민방송국 성립60주년을 맞는 이때 저는 연변인민방송국 령도동지 들과 전체 임직원들에게 축하를 드릴니다.     우리 나라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연변인민방송이 제일 처음으로 자기 민족 언어로 방송되였다는것은 연변인민방송국의 자랑이자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자랑이 며 나아가서는 해내외 조선족동포들의 자랑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위 성방송을 개시한다고 하니 더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저의 하루일과는 아침에 깨여나 라디오를 켜놓고 연변인민방송을 듣는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소식보도와 사회교육프로는 저의 하루일과에서의 필수과로 되고 있습니다.     연변인민방송이 60주년의 력사를 갖고 있다면 제가 이 방송을 들은 력사는 소 학교때《과학할아버지와 꽃분이》프로부터 시작하여 들었으니 50년의 력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일생에서 소학교로부터 대학까지의 이 학교가 제1학이고 연변인민방송이 제2학교인것입니다.제가 이렇게 말할수 있는것은 제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외의 절 때대부분의 지식은 독서와 연변인민방송을 통하여 장악한것이고 학교에서 배운지 식과 독서는 정력을 집중하여 학습하여야 하지만  방송은 아침에 깨여나서 잠자리 에서도 들을수 있고 또 밥먹고 일하면서도 들으며 학습할수 있기에 저의 제2학교 이자 제일 좋은 교실이라고 할수 있으며 연변방송의 매 프로는 저의 훌륭한 교재 로 되고있습니다.  제가 연변인민방송을 즐겨 듣는것은 또 소식전파가 제일 빠르기 때문입니다 텔레비보다도 빠르고 신문보다도 빠른것입니다. 오전에 발생한 사건이 점심이면 방송되고 생방송을 통하여 청취자들과 아나운서가 직접 대화하고 교류할수 있기 때문입니다.《법제사회》이 프로는 청취자들에게 법제선전교육도 되고 이프로를 통하여 백성들이 민사분규에서 법을 몰라 해결 하지 못하던것을 이 프로를 통하여 해결하는것입니다.《김대용열선》이 프로는 백성들이 어려운일을 해당부문을 찾아 여러번 다녀도 해결을 받지 못한것을《김대용열선》에 전화를 걸면 기자들이 직접 현장 혹은 해당부문을 찾거나 전화로 련결하여 해결해 주어 백성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프로입니다.     그리고 조선족의 문화를 학습하고 잘전시키자면 그래도 연변인민방송을 들어 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족력사의 발자취거나 조선족문예프로들은 연변방 송 이거나 연변TV에서만 듣고 볼수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연변인민방송을 더욱 잘 꾸려 우리 조선족문화를 더욱 다채롭게 가꾸 고 발전시켰으면 하는것입니다. 2006년7월1일6:30연변인민방송《사회교육》프로와 12시《연변뉴스》프로에서 방송  
29    부패현상ABC 댓글:  조회:7701  추천:11  2011-05-13
부패현상ABC 주청룡   지난해8월, 중앙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제2차전체회의를 가지고 《반부패투 쟁》을 벌릴것을 정식으로 호소하였다. 뒤이어 금년2월, 중앙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또 제3차전체회의를 열고 반부패투쟁을 지구적으로 심도있게 전개할것을 강조하였 다. 하다면 백성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부패현상에는 구경 어떤것들이있는가?   A.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현상 공금으로 마구 먹고 마시는 바람은 력사가 오래고 뿌리가 깊은 부패현상인데 지금 줄어들대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떤 지도간부들은 손님을 접대한답시 고 마구 먹고 마시는가 하면 경축활동을 한답시고 마구 먹고 마시는데 여하튼 무슨 명 목을 대서든지 매일이다 싶이 고급술, 산해진미로 만포식하고있다. 자료에 의하면 재작년에 우리 나라에서 도합 1,000억원의 공금을 허비하였 는데 그중 절대대부분이 먹고 마시는데 처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들의 배를 가 리키며 이렇게 풍자하고있다.《〈만삭〉이 된 저 배속에는 공금이 꽉 들어 찼다 오!》 B. 공금으로 유람하는 바람 지금 지도간부들이 참관, 학습이란 턱을 대고 공금으로 전국 각지를 유람하 거나 지어는 외국고찰이요 하는 미명하에 공금으로 외국까지 유람하는 바람이 일 고있다. 진짜로 참관, 학습에 열중했다면 그건 나무랄바가 못되지만 숱한 공금을 팔아 참관, 학습햇다는 사람이 머리속에는 명승지인상뿐이고 들가방에는 유람사진 뿐이니 이거야말로《개대가리를 내 걸고 양고기를 파는》격이 아니고 뭔가. 그래서 룡정시 모 단위의 공회주석은 공회주석회의에서 이렇게 유모아적으로 불만을 터놓았다. 《〈장〉자가 붙은〈나으리〉들은 유람길에 흥이나고 우리 공회 주석들은 화장터﹝본 단위거나 관계단위에 사망자가 나면 공회에서 책임지고 연길 화장터로 간다.﹞다니기에 바쁘다오.》고.   C. 회뢰, 수뢰하는 바람 지금 개인일을 처리하거나 집체일을 처리하거나를 막론하고 회뢰,수뢰라는 이 매개가 굉장한《배역》을 놀고 있는듯 하다. 룡정시 모 진의 어느 기업소에서는 성 해당부문의 공인을 맞으려고 몇번이나 찾아가 비나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쓴외보듯 랭대만 받았다. 그런데 5,000원짜리 현금봉투를 내미니 일이 그렇게도 쉽사리 풀릴줄이야.   D. 주택분배에서 한목 보는 현상 이 몇년간에 룡정시에서 많은 주택들이 즐비하게 일떠섰다. 이런 살림집의 면적 은대부분이 70,80평방메터, 90평방메터쯤 되는데 120평방메터되는 살림집도 있다. 평 방메터당 1,000원도 넘는 살림집을 백성들이 사기에는 힘에 부친 일이 아닐수 없다. (1) 파가이주호들도 엄청난 웃돈을 물 엄두를 못내고 시내밖으로 쫓겨나 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실권을 틀어쥔《나으리》들은 손쉽게 이런 집을 손안에 넣는다. 그들 은 단위에서 헐값으로 처리한 이런 주택을 쓰고 살다가도 전근이나 하게되면 그 집을 고가로 팔아버리기도 한다. 군중들의 반영에 의하면 룡정시 모 국의 국장어른 은 300여 평방메터나되는 집을 쓰고 산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유족한 생활수준 에 이르러 우리나라 도시의 인구당거주면적은 8~10평방메터에 달한다고 한다. 그 렇다고 할 때 이 국장어른은 진작 유족한 생활수준을 벗어난 주택에서 호강생활을 누리고있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E. 관혼상제를 돈벌이하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하는 현상 지금 일부 지도간부들은 생일잔치, 결혼잔치, 환갑잔치 지어 부모의 장례식 까 지도 돈벌이하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기회에 자기와 관계가 있는 모든 단위와 개인에게 청첩을 보낸다. 그러면 청첩을 받고 오는 단위 나 사람들은 청한 사람의 직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례물이나《부조》를 들고 온다. 룡정시 모 단위의 한 지도간부는 련속 일주일이나 식당에서 어린애의 돌잔치를 차 렸는데 여기에 요청된 손님이 얼마이며 들어온《부조》가 얼마인지 누구도 알수 없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째지게 곤난한 현인 하북성 량수현의 현위서기 류청방은 어머니 상사를 치르는 기간에 당지 각 단위와 개인으로부터 실물외《부조금》 30 여만원을 받아들엿는데 1,000원이하되는《부조금》은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다 한 다. 하기에 백성들은 어느 간부가 잔치나 상사를 치르게되면《또 목돈을 벌게 됐!》라고 개탄하고있다.   F. 고급승용차에 앉아 호강하는 현상 지금 기업소, 사업단위의 부분적인 지도간부들은 단위의 경제가 어떻든간에 승용차만은 남한테 짝지려 하지 않는다. 불경기상태에 처한 룡정시의 어느 기업소 에서는 일거리가 없어 대부분 종업원들이 집에서 놀거나 거리에서 인력거를 밀고 다니지만 공장장만은 날마다 고급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고있다. 그리고 기자가 하루아침 정주시 모 소학교문앞에서  관찰한데 의하면 단위의 승용차로 제집아이를 학교까지 실어다준 실례가 176여차에 달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연변농학원의 장기건원장은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마땅한 일이지 만 날마다 보통 교원, 종업원들과 함께 뻐스에 앉아 출퇴근하고 있으며 남경군구 모부《주덕경위퇀》은 1985년부터1993년까지의 8년사이에 선후로 다섯명의 정위가 바뀌였지만 모두 제일임 정위가 남겨놓은 자전거를 타고《하향》하고잇다. 얼마나 선 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이상에서 백성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몇가지 부패현상에 대해 두루 렬거해 보았 다. 그럼 이뿐인가? 아니다! 이밖에도 공금으로 가라OK, 사우나 출입을 하는 현상, 의례 국가에 들어가야 할 세금으로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현상, 직권을 리 용하여 가족, 친척의 직업, 주택을 해결하는 현상 그리고 또…   《지부생활》1994년제6기에 발표
28    모아산 남쪽비탈 흰돌을 메울수 없을가? 댓글:  조회:7620  추천:12  2011-05-13
모아산 남쪽비탈 흰돌을 메울수 없을가?   평균 해발150m인 연길분지에 해발 517m의 높이로  우뚝솟은 모아산 국가삼 림공원은 우리 연변에서 관광코스의 하나로 될수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다.  모아산은 산봉우리 모양이 모자모양이 같다하여 모자모양의(帽儿)자를 써서 모아산이라고 하였을것이다. 모아산도 해발517m의 높이므로 매우 높다고는 말할수 는 없지만 모자모양으로 분지에 우뚝솟아 상대고도가 높아 보이기에 유람객들의 마음을 끌수 있는것이다. 그리고1962년6월23일 경애하는 주은래총리께서 연변시 찰시에 연길에서 연변농학원을 시찰하러 가실때 모아산을 지나면서 모아산이 록 화가 잘 되지않은것을 보시고 의미심장하게《우리는 자손후대를 위하여 생각을 하 여야 합니다. 절때로 삼림을 잘 보호하여야 합니다. 이는 나라의 경제와 인민의 생 활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삼림을 잘 보호하지 못하면 자손 후대들이 우리를 욕합 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여 연변에서는 주총리의 지시를 받들고 모아산에 식수 조림을 하고 봉산육림을 잘하여 오늘에는 아름다운 국가삼 림공원으로 가꾸었다. 해마다 봄이면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이 되면 여러가지 나무 들이 울긋붉긋 단풍이 들어 북경 향산공원의 가을 풍경을 구경하는듯한 감이 든다. 모아산은  모자모양 으로 분지에 우뚝 솟아 보기에도 가관이지만 또한 이렇한 력사적 의의도 갖고 있 는 국가삼림공원이다.     뻐스를 타고 연길—룡정으로 다녀온 분들은 모아산을 지날때 옥에 티라할가 남쪽비탈에 돌을 캐낸자리 같은 흰 돌들이 보이는것을 보았을것이다. 이것은 예쁜 색시가 구멍이 뚫린 꽃저고리를  입은듯한 감을 주고있다. 연룡도(延龙图)도시 발전협조사업지도소조 판공실에서 제공한데 의하면 연룡도로(延龙道路)의 모아 산구간을 조선민족특색이 있는 유람구를 건설한다고 한다.(지부생활 2006년 제10 기에서) 이런 아름다운 삼림공원에 조선민족특색이 있는 유람구를 건설한다 할 때 이러한 흠집이 보인다면 아주 서운한 감이 들게 된다. 금년도 9월22일 연변일보에 최병태 림업고급공정사가 모아산 생태림 환경조절을 할것을 제기하였는데 아주 좋은 건의였다. 그렇 다면 어떻게 좋은 방법을 대여 허물로 되고있는 이 흰 돌들을 메울수는 없을가? 필자는 건축부문의 여러 전문가들을 찾아 의론하여 보았는데 그 흰 돌이 내놓인 부분을 뒤벽으로 하고 금자탑식의 건축물을 지으면 그 허물을 지우기도 하고 미관에도 하주 좋지 않는가하는 구상들이였다. 그렇게되면 연변에도 라싸 부다라식의 건축물이 있어 보기에도 좋고 모아산이 주은래총리의 배례하에 오늘은 력사적 의의를 가진 국가삼림공원으로 가꾸어졌는데 그 건축물을 조선민속 박물관이나 그 어떤 전람관 같은것으로 하여 모아산을 연변의 관광코스의 하나로 하면 유람객을 더 끌수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다. 필자의 졻은 견해를 이렇게 내놓으니 여기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 이렇게 력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모아산삼림공원을 잘 보호하고 가꾸어 연변의 아름다운 조선민족특색이 있는 풍경유람구로 건설하자는 마음이다.   2007年3月23日星期五연변일보제4면에 실렸음  
27    맹인도로를 가로 막지 말았으면 댓글:  조회:7772  추천:12  2011-05-13
맹인도로를 가로 막지 말았으면    주청룡 우리나라 맹인들도 중화민족 대가정의 한 성원으로서 그들도 공민의 모든 권리 를 향수할수 있으며 거리에 나와서도 그들이 가야할 길을 걸을 권리를 가지고있습 니다.《중화인민공화국 장애자 보장법》제46조에는 《국가와 사회에서는 점차적으 로 장애인들이 편리하게끔 도시도로와 건축물설계를 규범화하고 무장애조치를 대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여 연길시 정부에서도 거리에 맹인도로를 만들어 그들의 걸음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차량운전수들과 영업업 주들은 맹인도로에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차를 세우거나 물건을 가로 놓아 맹인 들의 걸음에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도로교통안전법》제56조에는 《기동차는 반드시 규정한 지 점에 세워야 하며 인행도에 기동차를 세우는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제59조에는 《비기동차는 반드시 규정된 지점에 세워야 하며 차를 세우는 지점을 정하지 않은 곳에 비기동차를 세울때에는 기타 차량과 행인의 통행에 방애를 주어 서는 않된다.》고 규정하였으며 제 46조에는 《맹인이 도로에서 통행할때에는 반 드시 지팽이(盲杖)를 사용하거나 기타 맹인을 부축시키는 수단을 써야 하며 차량들 은 반드시 맹인들에게 양보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때 보면 한 화물차(吉H-07487)가 연길시 모 음식점(海兰路 1450-13)앞의 맹인도로에 가로 세워  있는것을 보게 되며 매일 점심때면 해란 로의 미식거리의 음식점 앞을 보면  각종 승용차들이 전체 미식거리의 맹인도로 에 한줄의 횡대로 가로 세워져 있는것을 보게 되는데 한번은 한 맹인이 지팽이를 더듬으며 길을 가다가 맹인도로에 가로 놓여 있는 자동차에 막히게 되였는데  그 옆에 있던 행인이 인차 그 맹인을 부축하여 그 차량을 에돌아 다시 맹인 도로까지 모셔 가는것을 보게 되였습니다. 이 얼마나 고상한 행위입니까? 성한 사람도 길을 가다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불편한데 앞 못보는 맹인들이 길에 장애 물이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하지만 맹인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음식점에 들어 가 식사를 하는 운전사들은 자기들의 차로하여 맹인들의 걸음에 얼마나 불편을 주 는지 알고나 있는지?     그리고 또 해란로에 있는 모 미발청(绿世界美发)에서는 영업간판을 맹인들에 대한 붉은 교통신호등마냥 맹인도로에 세워 놓고 밤낮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다른 거리를 돌아 보아도 상업운수를 하는 각종 기동차와 인력거들이 아무런 꺼리 낌도 없이 맹인도로를 가로 막고 있는것을 보게 되는데 앞으로 차량운전수거나 영 업간판을 맹인도로에 세워 놓고 영업을 하는 영업업주들은 이 방면에 중시를 돌려 다시는 맹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말고 정상적인 교통질서를 유지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06년 10월18일 연변일보 제2면 2006.6.30 일요일 연변인민방송 《일요칼럼》에서 방송 2006.10.25. 수요일 아리랑방송《녀성시대》에서 생방송     //    
26    례식사회자의 자질을 높였으면 댓글:  조회:7949  추천:11  2011-05-13
례식사회자의 자질을 높였으면   지난해 12월21일 연변일보에 송철운선생이쓴 《사회자 책임감 높여야》란 문 이 실린후《연변의 사회자들도 장춘의 사회자들처럼 하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응당 사회자증서제를 실시하여 사회자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는 독자들의 반향이 아주 컷다. 지금 연변의 례식사회자들은 하루에 여러집의 사회를 맡아 보다니 첫집의 사 회는 10시전부터 하다니 대부분의 하객(贺客)들이 도착 하였을 때에는 이미 례식이 끝난 때여서 희사를 축하하려 갔다는것이 례식을 보지도 못하고 음식만 먹고 오는 때가 많으며 마지막집은 하객들이 다 모인 다음에도 사회자를 기다리는것이 두시 간 더되니 주인측과 하객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 얼마전 필자는 은사님의 회갑잔치에 참석하였는데 사회자가 와락와락 나그네 말죽먹이듯 대충 해치우고 례식장을 떠나는 바람에 은사님의 가속은 물론 모든 하 객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필자는 은사님의 회갑잔치라 례식장을 찾는데로부터 거들어 주었는데 여러 례 식장을 돌아 다녔지만 명절대목이라 례식장이 모두 예약이 있었다. 어쩌다 우리의 행사날에 예약이 없는 례식장을 찾았는데 그나마 사회자와 가수, 악사를 모두 자기 들이 지정한다는것이였다.(알아본데 의하면 명성이 없는 사회자들은 보스에게 수수 료를 주고 보스는 또 수수료를 주는 사회자만이 추천하는 희극까지 논다고 한다.) 사실 그 집안에는 단위에서 각종 행사에 사회를 맡아 하던 사람이 있어 그집 회 갑잔치에도 얼마든지 사회를 맡아 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또 전국성적인 노래콩 쿠르에서 대상, 금상을 받은적이 있는 가수도 있었지만 그 례식장을 쓰기위해 례식 장의 보스가 추천한 사회자가 사회를 맡도록 하였다. (만약 문장이 길면 붉은부분을 삭제)예약한 날이 오래되니 혹시나 날짜를 잊지 않나하여 회갑날 이틀을 앞두고 사회자 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책임지고 간다는것이였다. 그런데 회갑날 예약된 시간이 썩 오래된 후에야 사회자가 왔으며 예약은 박모모와 하였는데 박모모는 다른 몇집의 사회를 맡고 이때까지 사회를 맡아 보았다는 말을 들어 못본 김모모 가 나타나서 이집의 사회를 맡아 한다는것이였다. 사회를 시작하여서부터 매우 서 투른 인상을 주었는데 그나마 주인측의 의사(많은 하객들은 다 자기들의 명목으로 절을 올리려 하였다.)에 따라 하는것이 아니라 친자식, 친척, 사돈, 친우, 제자 이렇 게 다섯번에 나누어 절하는 순서를 끝내려 하며 빨리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였다. 단 독 명목으로 절을 하려던 사람들이 막 나서서 따로 절을 하려고 하니 그럼 집체행 사가 끝난 다음 개별적으로 하라며 례식도 끝을 맺지 않고 부랴부랴 례식장을 떠 나는것이였다. 아마 또 다른 사회를 맡은것 같았다. 너무나도 한심한 일이였다. 례 식장은 은사님에 대한 축수의 희열로부터 삽시에 사회자에 대한 분개로 번지여졌 다. 례식을 수습하기 위하여 그 집안에서 한 사람이 나서서 사회를 마지막까지 원 만하게 진행하여 나갔다. 송선생님이 쓴 문장을 보면 장춘에서는 사회 자가 9시전에 례식장에 찾아와 주인측과 인사순서와 인사형식 등을 구체적으로 토론하며 자기의 다년간의 경험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좋은 건의도 내놓으며 회갑례식을 정식 시작하기 전까지 함께 준비사업에 바삐 보낸다고 한다. 보통 약속한 시간이 훨신 넘어서야 땀을 뿌리면서 부랴부랴 달려오는 연변의 적지않은 사회자들 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례 식이 정식 시작되면 사회자는 마지막까지 열렬 하면서도 질서있게 행사를 리드해 나간다고 한다. 모든 인사순서가 끝나고 식사도 끝난 뒤 친척들의 오락판이 시작 되면 장춘의 사회자들은 그 오락판을 사회해 주고 가수와 악사도 마지막까지 노래 를 불러주고 연주해 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도 그들이 받는 보수는 연변의 사회 자들이 받는 보수보다 높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연변의 일부 사회자들은 우에서 말한것처럼 나그네 말죽먹이듯 대충 해치우고 례식장을 부랴부랴 떠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것은 하루에 두세집, 지어 너덧집의 사회를 맡으니 그렇게 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장춘의 사회자들은 한번에 여러 집에서 사회를 맡아달라는 청탁이 들어 와도 하루에 한집의 사회밖에 맡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연변의 일부 사회자들은 전혀 되지도 않을 승낙을 하면서 청탁이 들어오는대로 다 맡아놓으니 돈은 돈대로 챙겨넣어도 행사뒤끝은 서운하기만 하다. 례식이 어떻게 되든 그들의 머리속에는 돈밖에 없는것 같다. 이렇게 하는 사회자들이 자책감이 없는지? 한번 검토하여 보 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 일부 사회자들은 사회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여 그저 웃기려는데서 저 속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구촌이 도래되면서 섭외혼인도 있고 외국에서 친 척들이 와서 결혼, 환갑잔치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렇게 저속적인 말로 사회를 한 다면 우리 연변의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본다. 사회자들에 대한 문화시장관리부 문의 감독도 필요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다.   2007년5월23일 연변일보 제2면에 실림
25    기자절 축하 댓글:  조회:7364  추천:12  2011-05-13
기자절 축하오늘 일곱번째 기자절을 맞으면서 방송국의 전체 기자선생님들과 방송인들에 게 충심으로 되는 명절의 축하를 드립니다. 저는 기자들의 사업을 동경하면서 기자들의 사업이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사업 이면서도 간고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선생님들 정말 수고 많습니다. 기자선생님들은 당의 후설로서 당의 방침, 정책을 선전할뿐더러 그 어떤 로고도 마다하고 가장 빠른 속도로 사건 헌장에 달 려가 진실한 뉴스를 그 자리에서 발송하기때문에 가장 빠른 속도로 뉴스가 청취자 들에게 전달되므로 청취자들의 환영을 받고있습 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어려운 문제들을 해당부문을 여러번 찾아 다녀도 해결을 보 지 못하였지만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면 기자들이 직접 현장 혹은 해당부문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련결하여 해결하여 주므로 백성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것입니다. 기자들의 사업은 필을 들고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가는 아주 사치스러운 사업 이 같지만 거기에는 생명의 위험도 병존하고 있는것입니다. 례하면 큰 홍수 혹은 화재현장취재를 할때에도 생명의 위험이 존재하고  범죄자를 나포할 때 현지 보도 나 촬영같은것은 그 범죄자가 총기 혹은 그 어떤 흉기를 휘대하고 있기에 공안전 사들과 마찬 가지로  수시로 생명의 위험이 존재하고 이라크전쟁과 같이 전쟁마당 에서의 현지보도 같은것은 어느때 어디에서 어떤 총탄이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를 생사판가리 싸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분자들의 범죄사실에 대한보도도 기자들 이 어느때 어디에서 보복당할지 모를 일인것입니다. 하여 매년 기자들이 이런 불법 분자들에 의해 중상을 입거나 피살되는 일도 적지 않은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자들의 사업을 아주 존중해여 할뿐더러 그들의 업적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하 여야 할것입니다.   2006년11월 8일 6:30. 연변인민방송 사회교육프로에서 방송
24    금장신구에 대하여 댓글:  조회:7382  추천:15  2011-05-13
금장신구에 대하여    금은장신구가 딱히 어느때부터 나왔는가하는것은 똑똑한 력사적 기재가 없지 만 그 유래를 보면 금과 은이 화페로 사용되면서부터 부자들의 재부의 상징으로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금은장신구들이 사용되여 온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금과 은 이 많고 적음은 낡은 사회에서는 빈부의 차이를 말하여 주며 존귀와 비천을 의미 하고 있었다. 하여 부자들은 자기가 부유하고 권세가 있다는 위풍을 보여 주려는 데서 금은장신구를 몸에 걸치게 된것이다. 근은장신구의 유래가 이러할진대 력사적 으로 보면 구중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금은장신구를 몸에 거는것으로써 자기 들과 비천한 사람들의 상대적 지위를 나타내고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새중국이 건립된후 30여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금은장신구들이 개혁개방이래 일부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짐에 따라 또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 녀성들이 금은 장신구를 몸에 거는것은 구사회와는 달리 빈부의 차이나 존귀와 비 천의 상대적 상징으로 거는것이 아니고 녀성의 매력에 이채를 돋구려는데서 걸 겠지만 전통관념으로 하여 황금이 재부의 상징으로 표현되는것만큼 금장신구를 몸 에 거는것도 저그나마 하게는 빈부의 차이가 상징되고 잇는것이다.     금은 전자공업과 장식품에서의 그 실용가치는 대단하지만 금장신구로서의 인 체에 대한 작용은 조금도 없는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금장신구의 실용가치 에 대하여 물으면 병을 예방치료한다고 하는데 그럼 정말 금장신구가 병을 예방 치료할수 있는가하는것은 금의 원자구조와 화학적 성질로부터 알수 있는것이다.     금은 원소주기표에서 제6주기 제IB족에 속하는 원소로서 원자반경이 매우 작 고 핵전하수가 많은 원소이므로 그 화학적성질이 극히 안정하여 왕수거나 시안화 칼륨, 혹은 시안화나트륨용액에 용해할뿐 염산, 질산, 류산 등 강산에도 용해 되지 않으며 심지어 렬화속에서도 산화되지 않고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고잇다. 그 러므로 피부에 약간 접촉한 금장신구가 화학반응을 진행할수 없거니와 더구나 병 을 예방치료한다는것은 천만 불가능한것이다. 다만 분말상태에서의 금만이 인체내 에서 일정한 작용을 할수 있는것이다. 오히려 어떤 자료에는 황금을 제련하는 과 정에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함유되기 때문에 그 방사성원소의 방사성으로 하여 인 체에 해롭다고까지 한다. 그리고 손을 씻을 때에 손가락과 금반지사이가 잘 씻기지 않기에 그 사이에 세균이 번식할수 있기에 인체에 유리한 점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국제화페기금기구는 1978년에 법적으로 황금의 화페역할을 취소하였 고 그후의 국제황금회의는《황금은 국제금융에서 퇴출하고 있으며 단순한 상품속 성으로 전화하고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로부터 알수 있는바 금장신구는 실용가치가 거의 없다싶이 되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국제적 특수화페의 역할도 할수 없게된것이다. 다만 황금이 그어떤 상 품에 비해 가치보존이 상대적으로 안정하고 관념상에서 녀성미를 돋군다 할뿐이 다.     그러므로 금장신구의 가치는 모종 의미에서 부호와 상징에 지나지 않는것으 로서 마치 하느님에 대한 종교신앙처럼 사람들의《신념고조》에 의해 수립된것이 지 객관적 실용성에 의해 수립된것이 아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부 젊은 녀성들은 아무런 실용가치도 없는 금장신구에 대한 신경과민으로하여 녀성의 가장 보귀한 정조까지 서슴없이 바치고있다. 그리고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인데 한 젊은 녀성이 열손가락에 모두 금반지를 낀것을 깡패들이 보고 그것을 탐내여 이 녀성을 죽이고 그 열개의 반지를 빼앗았던것이다. 사건발생후 이자들이 인차 공안경찰에 의해 붙잡혔는데 공안부문에서 검증한데 의하면 열개의 반지가운데서 진짜 금반 지는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약 이녀성이 그 진짜 금반지 하나만 끼였었다면 목숨은 잃지 않았을것이다. 금장신구가 녀성의 매력에 이채를 돋구고 있으므로 금 장신구에 대한 녀성들의 욕구는 리해를 할수 있지만 불필요한 허영심과 신경과민 으로 하여 정조를 바친다든가 생명까지 잃는것은 이 얼마나 미련한가? 이런 녀성 들에 대하여 참으로 가소 롭게 생각된다. 그러므로 젊은 녀성들에게 권고하기 싶 은것은 불필요한 허영심을 버리고 가정경제형편을 보아 금장신구를 거는것이 좋고 금장신구를 살 형편이 못되면 그것에 대하여 너무 신경을 쓰지말것을 권고하는 바 이다.  2000年12月25 日
23    굳센의지, 의력, 막을수 없는 금호의 인생행로 댓글:  조회:7769  추천:17  2011-05-13
굳센의지, 의력, 막을수 없는 금호의 인생행로 —《금호의 삶의 이야기》를 보고서   연변TV방송국의 다큐멘터리 《금호의 삶의 이야기》를 보고  금호의 현재의 정황을 알게 되였습니다. 30여년전 《연변일보》에 금호가 고압선에 의해 두팔을 잃은 기사가 실린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신문을 보면서 두팔이 없이 어떻게  생 활하여 나가겠는가하는 동정의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와보니 두팔이 없이 두발로 밥짓기, 저가락질, 바느질, 가정용전기기구수리 등 일들을 하면서 생활하여  나간다 는것은 참으로 인간기적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두손 두발을 다 가지고도 금호가 하는 기술적인 일들을 하지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금호가 두팔이 없이 글을 쓰고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보고 저도 낯이 뜨거워 났습니다. 한평생 교육사업을 하였다는 나의 글씨가 금호의 글씨보다 못하 고 커퓨터도 아직 익숙히 다루지 못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아마 노력 이 부족한 탓이라고 봅니다. 금호가 두팔이  없이 두발로 모든 생활을 자립하여 나가고 있다는것은 상상만 하여도 얼마나 고생스럽겠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일부 사람들은 두손 두발을 가지고도 일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워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고 남의 신세에 살아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도적질, 강탈을 일삼다가  살인까지 저질러 징역살이 지어는 사형에까지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가? 호금도 총서기께서 제기한 영욕관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아주 수치스러운 사람들이며 금호의 깨끗한 삶이야말로 아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을 보면 금호에게 사랑의 뜨거운 손낄을 뻗치고 금호 역시 자기의 재능으로 가정용전기기구를 무상으로 수리해 주며 서로 관심하고 도 우며 살아 가는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인가? 주당위와 주정부에서는 올해 전 주 범위내에서 《학습, 창의, 창업》교육실천 활동을 잃으킬것을 제창하였는데 《금호의 삶의 이야기》가 바로 훌륭한 산 교재 로 되여 이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활의 활력소로 되여 정확한 세계관, 인생관, 가치 관을 수립하여 더욱 아름다운 사회를 가꾸어 갓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06.8.9. 연변일보 제2면에 실림 2006.10.25수요일10:10아리랑방송《녀성시대》에서 생방송
22    공공뻐스에서의 공중도덕을 지키자 댓글:  조회:7872  추천:20  2011-05-13
  1. 공공뻐스에서의 공중도덕을 지키자                                               주청룡 지금은 교통조건이 좋아서 뻐스가 오면 서로 밀고닥치고하는 현상은 그리 없 지만 뻐스안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공중도덕과 질서방면에서 차한 점들이 좀 있다고 봅니다.     한번은 제가 직접 목격한 사실인데 공공뻐스에 한 젊은 녀인이 올랐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배가 만삭인것을 보아 임신부 같아서 자리에 앉아던 50대의 한 남성이 자리를 내여 앉으라고 하니 그 녀인은 아무말도 없이 앉아습니다. 목적 지에 도착하자 그 녀인은 내리면서 그 남성에게 다시 앉으시라든가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 없이 내리였습니다. 하여 뻐스에 앉은 많은 승객들이 그 녀인을 흘겨 보게 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남성의 행실은 아주 문명스러운 행실인데 이때 그 녀인은 최저한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말은 있야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연변일보에서 본 기사인데 운남성 소통시의 한 80대의 할아버지가 곤 명시에 가서 공공뻐스를 타게 되였는데 년세가 많아 몸을 제대로 가눌수 없게되자 녀운전수가 급히 운전실에서 뛰여 내려와 이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안전하게 빈자 리에 모셧습니다. 편안하게 앉아 목적지에 도착한 이 할아버지는 차에서 내린 뒤에 야 비로서 녀운전수가 부축하여 오르는 바람에 뻐스표값 1원을 현금통안에 넣지 않은것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 할아버지는 그 1원때문에 량심의 가책으 로 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여 이 할아버지는 궁리하던끝에 1000리 떨어진 곤명시 뻐스회사에 편지와 함께 뻐스표갑 1원을 부쳐 보냇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호금도 총서기가 제기한 영욕관으로 볼때 녀뻐스운전수, 할아 버지, 임신부에게 자리를 내여준 남성의 행실은 모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 임신 부의 행위는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러해 전에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인데 항주에서 온주로 가는 야간행 뻐스 안에서 한 녀인이 한 불한당한테 두번이나 강간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이 녀인이 애절한 구원을 바랏지만 뻐스안의 승객이거나 운전수, 승무원은 모두 모르쇠를 놓았습니다. 이때 만약 운전수나 승무원의 지휘하에 승객들이 단합하여 제지시켯더라면 그 불한당은 감히 그 녀인을 강간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여기에서 승객들이 모르쇠를 놓은것은 공중도덕과 정의감이 없는것이고 운전수와 승무원은 공중도덕이나 정의감보다도 려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송하지 못하였기에 법 률적 책임을 져야 하는것입니다.    또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인데 공공뻐스에서 한 녀인이 돈지갑을 도적마쳣다 고 소리를 치며 안달아 하였습니다. 이때 운전사는 아무일이 없는듯이 차를 몰고 가다가 어느 한 파출소 문앞에 가져다 차를 세우고 파출소에 들어가 사건제보를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민경들이 차에 올라와서 의심스러운 사람을 검사하여 그 도 적을 붙잡았던것입니다. 또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인데 어떤 도적놈이 뻐스안에서 한 중년남성의 호주 머니에 손을 넣으려는것을 한 젊은녀인이 보았는데 자기의 힘으로 제지시킬 힘이 없자 기발한 생각을 굴려 그 중년남성을 다치면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를 모르겠습니까? 저는 아무아무개인데 선생님의 제자애요.》그러자 그 도적놈은 자기 의 행동을 지켜보는 이 녀성과 그 중년남성이  사제간인것으로 알고 손을 쓰려던 것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이 중년남성은 자기가 선생이 아닌데 선생이라고하니 이 녀인이 자기를 잘못 보고 선생이라고 한다고 생각하고 어물어물하여 지냇는데 뻐 스에서 내린 다음에야 그 녀성이 힘으로 도적의 행위를 제지시킬수 없으니 지혜로 도적의 행위를 제지시킨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파출소로 뻐스를 몰고 간 운전수와 이 녀성은 자기의 힘으로 해결 할 방법이 없을때  머리를 써서 지혜로 미연히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문제 를 해결한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녀성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지혜로써 도적사건을 방지한것 은 얼마나 고상한 일인가?     그리고 뻐스에 앉으면 가끔 승무원이 담배불을 끄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승 무원이 담배불을 끄라고하여  끌것이 아니라 우선 승객 자신이 자기가 담배를 피 우면 다른 사람의 건강에 해로우므로 뻐스안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는 공중위생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기 싶은것은  지금 일부 뻐스운전수와 승무원들은 교 통경찰의 눈을 피하여 유격전을 하면서  지정된 정차지점이아닌 곳에서 손님을 마 구 싣거나 초과하여 싣는것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아무곳에서나 승객을 실으니 승 객들도 지정된 정차지점이 어디인가 하는것을 모를고 아무곳에서나 손을 들고 있 는데 이는 교통질서의 혼란늘 가져오므로 앞으로 이런 유격전을 더는 벌리지 말았으면 하는것입니다. 룡정시직업중등전문학교                            주청룡 2006.5.14.일요일 6:30 연변인민방송 《일요칼럼》에서 방송 2006.10.25.수요일 10:10 아리랑방송《녀성시대》에서 생방송
21    ‘비암산’인가? ‘벽암산’인가? 댓글:  조회:8365  추천:32  2011-05-10
 ‘비암산’인가? ‘벽암산’인가? 청해 한국의 지명 ‘智異山’을 한자어 발음대로 읽으면 ‘지이산’이어야 맞는데 왜 ‘지리산’으로 읽는가? 이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의문을 갖고 오던 문제인데 오늘 정인갑 선생님이 글 “지리산(智異山)”을 읽고 그 의문을 풀게 되였다. 이외에도 몇가지 더 의문되는 지명들이 있다. 1. ‘비암산’인가? ‘벽암산’인가? 룡정시의 서남쪽에 위치한 ‘碧岩山’을 우리말로‘비암산’이라고 하는데 한자의 뜻대로 하면 푸를 ‘벽(碧)’, 바위 ‘암(岩)’, 메 ‘산(山)’이기에 응당 ‘벽암산’이라고 하여야 맞겠는데 무엇때문에 ‘비암산’이라고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 하여 필자는 이때까지 불러오던 ‘비암산’을 ‘벽암산’라고 부르자는 뜻은 전혀 없고 다만 어떻게 되여‘비암산’이라고 부르게 되였는가 하는 의문스러움을 제기할 뿐이다 2. ‘개산툰’인가? ‘개산둔’인가? 두만강변에 자리잡고 있는‘开山屯’을 우리말로는 ‘개산툰’이라고 한다. ‘开山屯’도 한자어로 하면 ‘개산둔’이라고 하여야 맞겠는데 무엇 때문에 ‘개산툰’이라고 하는지? 이외에도 중국에 ‘屯’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모두 ‘둔’이라고 하지 않고 ‘툰’이라고 한다. 례하면 ‘皇姑屯(황고툰)’, ‘马家屯(마가툰)’, ‘柳家屯(류가툰)’ 등 이다. 우리말의 한자사전을 보면 ‘屯’을 진을 칠‘둔’이라고 하지 ‘툰’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럼 ‘屯’을 ‘둔’이라 하지 않고 ‘툰’이라고 하는 것은 한어발음을 그대로 음역으로 부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가지여 보았는데 음역으로 하면 세글자를 모두 음역으로 하지 않고 왜‘屯’자만을 음역으로 하였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3. 굳어진말을 써야 하는가? 한자어를 써야 하는가? 조선족들이 오랜 세월 한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자의 음역으로 써온 지명이 인젠 그 말이 굳어져 한어발음 그대로 부르는 지명들이 있다. 례하면 ‘大蒲柴河’를 ‘다푸차이허’, ‘夹皮沟’를 ‘쟈피거우’라고 한어발음 그대로 부른다. 그런데 일부 지명들을 보면 음역도 아니고 한자어도 아닌것도 있다. 례를 들면 화룡시의‘头道’를 한자어로 하면 ‘두도’라고 하여야 맞는데 예전부터 완전한 음역도 아니고 한자어도 아닌 ‘투도’라고 하였고 룡정시의 ‘老头沟’를 한자어로 하면 ‘로두구’라고 하여야 맞는데 이것도 완전한 음역도 아니고 한자어도 아닌 ‘로투구’라고 불러왔다. ‘투도’, ‘로투구’는 이미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굳어진 말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언론매체에서는 한자어로 ‘두도’, ‘로두구’ 등으로 말하는데 구경 ‘투도’냐, ‘두도’냐? ‘로투구’냐, ‘로두구’냐? 하는것이다. 하나의 지명을 언론매체마다 서로 다르게 부르니 매우 혼란스럽다. 구경 굳어진 말을 그대로 써야 하는가? 아니면 한자어로 써야 하는가? 하나의 지명을 두가지로 말한다 하여 기성세대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새시대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는 혼란스러울수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명들을 구경 어느것으로 써야 하는가 하는것을 해당부문에서 통일적인 규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의 글을 읽어보면 큰 의미 없는 글 같다. 다만 필자의 의문스러운 점들을 지성인들을 통하여 해결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는 해당부문의 통일적이 규정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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