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시민족사무위원회 김매 부주임으로부터 상해 조선족을 알아본다
상해시민족사무위원회 김매 부주임
4월의 상해는 꽃피고 바람 잔잔한 날씨의 련속이다. 도심공원에서는 어린이들이 고함치며 뛰놀고 길거리 나무그늘 우거진 곳에는 벤치가 설치되여 있어 좋은 사람과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도시이다. 상해시민족사무위원회 김매(1971년생) 부주임에 대한 취재는 포동 엑스포촌에 위치한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기자: 오래전부터 김매 주임에 대해 전해들었습니다. 상해로는 언제 오셨고 어떻게 되여 민족사업을 하게 되였습니까?
김매: 상해에 와서 얼마간 있다보면 발목이 잡힌듯 떠날수 없습니다. 1989년 흑룡강성 녕안시에서 고중을 졸업하고 상해교통대학 금속재료학부에 입학하여 처음 상해로 왔으니 25년째입니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즐기는 저는 대학에서 줄곧 학생회간부로 있었습니다. 리공과를 배우는 녀대생인 저는 학교의 다채로운 활동에 참가하는것으로 대학생활을 더욱 풍부히 했습니다. 졸업후 본 대학에 남아 공청단위서기를 맡게 되였습니다. 리공과를 배워서 후에 행정사업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후에 조직의 배치에 따라 대학교를 떠나 공청단 상해시위 학교부 부장, 공청단위원회 상무위원, 조직부 부장, 직속기관 당위 부서기, 규률검사위원회 서기를 력임하였습니다. 2009년에 상해시민족종교사무위원회 부주임으로 부임되였으며 주요하게 상해민족사무위원회 핵심부서인 이슬람교사업을 책임지고 그 외 인사 등 행정사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기자: 현재 상해에 있는 조선족들 상황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김매: 90년대 푸둥지역의 개발과 중한 수교를 계기로 급증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1989년 금방 대학에 입학하여 상해에 왔을 때만 해도 조선족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민행구와 같은 조선족 집거구가 형성되였으며 상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소성 곤산에도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들은 자신을 상해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전체 조선족인구는 2000년(도합 192만 3,842명, 상해 5,120명)에서 2010년(도합 183만 929명, 상해 2만 2,257명)까지 10년 사이 9만여명 감소되였지만 상해의 조선족인구는 1만 7천여명이 증가한것으로 상해의 소수민족중 5번째로 많은 민족(회족이 가장 많음)입니다.
상해에 호적을 둔 조선족 인구는 2만 2천여명이지만 류동인구까지 합치면 10만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기자: 상해에 진출한 조선족들 대부분 농촌지역에서 태여나 성장한 사람들인데 상해에서 문화적 충돌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요?
김매: 누구나 시골에서 처음 도시에 왔을 때 가장 고민되는 점이 “규칙”입니다. 우리 민족은 오래동안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생산활동도 많은 사람이 어울려서 완성하는 논농사를 해오며 살아오면서 “규칙”보다 “인정”을 말하고 “언약”으로 “서약”을 대체해왔습니다. 우리는 말로 계약이 되지만 상해에서는 계약은 문서로만 되는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상해사람들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라는 삐딱한 시각을 갖고 있는데 상해사람들의 실속과 실용이 오늘날의 상업정신에 걸맞는다고 봅니다.
저는 부모님이 모두 국가간부인 원인인지 어려서부터 가정분위기가 민주적이고 평등하였으며 유치원부터 고중까지 줄곧 한족학교에 다니면서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상해에 오니 더욱 차별이나 특권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해는 기회의 땅이고 평등의 도시라는 느낌입니다. 상해 토박이도 아니고 아무런 인맥관계도 없는 이방인인 제가 38세에 국장급 간부로 발탁되자 고향사람들은 크게 놀라와했습니다. 기타 지방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기자: 상해에서 직위가 높은 간부로서 민족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사고를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조언이나 기대같은것을 부탁드립니다.
김매:누구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대담히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해볼만한 곳이 상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선족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민족입니다. 많은 조선족들은 상해의 상업분위기에 금방 적응하고 시장경제활동을 활발히 벌려 우수한 기업인, 기업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조선족들의 상해진출은 20년, 그동안 우리의 전통관념은 많이 개진되였으며 점차 상해사회에 적응되고 융합되여 가고 있습니다.
현재 상해시민족사무위원회는 조선족이 2명, 제가 알기로는 상해의 당정기관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수는 매우 적습니다. 더욱 많은 조선족 출신의 대학졸업생들이 공무원시험에 참가하고 앞으로 정치, 행정 분야에 진출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취재후기: 김매 주임 취재를 끝마치고 상해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리는 민행구 홍교진을 찾아갔다. 시내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인가봐. 택시비가 40원 나왔다. 길옆에 근사한 커피숍을 찾아 들어가 커피 한잔 받아놓고 있으니 아이스크림 사러 온 한국 꼬마, 빵 사러 온 연변 아줌마, 창밖에는 우리 억양과 비슷한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 할머니 두분… 그들 모두가 무엇이 인연이 되여 상해란 대도시에 와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닦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갈마든다. 문득 10여년전 한 매체에서 기획보도한 “우리 민족도 더 살기 좋은 고장에서 살아봅시다”하는 기사가 떠오른다. 그렇다. 수세대를 거쳐 땅과 씨름하며 살아오면서 꿈도 못꾸던것들이 우리 세대가 상해탄에서 하나하나 이루어가리라 믿는다.
중국민족잡지 서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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