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조선족녀성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2월5일 09시56분    조회:658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경자

동북아 간판통역가 ㈜JCK후렌즈 장경자사장 인터뷰

일본 후지TV 중일문제 평론가로 활약하고있는 장경자씨.

일본 도꾜에는《동북아의 평화를 산업으로 가장 필요한 일선에서 자신을 헌신겠다》는 조선족 녀문화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경자(張景子),주위에서는 그녀를 사회활동 열심가, 민족심이 꽉 찬 사장, 사회의 최고층에서 말단층까지 분망히 오가는 다챤넬(多頻度)활동가, 지식, 실력, 매너를 겸비한 외교가…라고 칭한다.

지난 1월 22일, 필자는 요행 기회를 만나 그녀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때없이 지구촌 나들이를 하는 《하늘 마당발》이였다.

《우리 집은 공항과 멀면 안됩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문화인이니 장사장이 아닌 장녀사로 불러주세요.》

그녀는 이런 화두로 말문을 열었다.

준비된 통역가

장경자, 길림성 연길 출생.

1986년 북경외국어대학(일본어학부)에 입학, 1990년 졸업.

대학졸업후 국제방송국 일본어아나운서(번역 겸)로 활약, 1997년 일본에 진출, 도꾜대학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 수료.

현재 일본 립교(立敎)대학 언어문화 겸임강사, ㈜JCK후렌즈 사장, 통역가.

《우리 말을 잘하면 외국어도 잘한다》,언젠가 어느 유지인사가 하던 말이다.

오늘 장녀사를 만나보니 그 말이 바로 장녀사를 모델로 한것 아닌가싶었다.

소녀때부터 그녀는 일단 웅변이나 연출에 나서면 거의 모든 상을 싹쓸이했고 연변인민방송국 소년아동프로와 련속방속극에 출연하여 어린이역을 잘 소화해 별명이 《꼬마로배우》였다고 한다.

1986년에 그녀는 제1지망으로 북경대학 일어학부를 지원했는데 아쉽게도 그해에 길림성에 지표가 없었기에 연변문과생 장원으로 북경외국어대학(북경외국어학원)에 입학했다.

《비록 아쉬웠지만 지금 보면 외국어 레벨에서 압도적 톱인 북경외대에 간것이 그래도 다행이였습니다.》

지금도 아쉽지만 자기의 오늘에 만족하는 그녀다.

장녀사는 어디서나 인기인물이였다.

북경외국어대학 일본어강연시합 1등,북경시대학생일본어경연 1등, 전국대학생일본어강연시합 사회자…아무튼 그녀는 일어분야에서 반짝이는 새별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국제방송국에 배치된 그녀는 일본어방송 간판아나운서로 4년 련속 당년에 년말인기프로였던 《홍백노래경색》에서 홍조팀의 간판으로 관중들의 눈도장에 찍혔고 1992년에 그녀가 제작, 방송한 특별프로(북경10원 택시 현상)가 《전국보도상》을 수상한 뒤를 이어 1994년에 집필, 제작한 《일본의 생활속에서 찾아보는 중국속담》은 중국 국제방송국 일본어방송 1등상을 수상했다.

월하따 쯔도무(羽田孜)일본 전임수상과 함께

중국국제항공회사에서는 그녀에게 기내 일본어방송록음제작을 전담시겼고 일본NHK 제1방송과 중국CCTV가 《중일시민홍백가요련합전》을 공동제작할 때도 그녀가 일본말 중계와 해설을 전담하였다.

1995년 5월, 중국경제전략방일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할 때 하따 쯔도무(羽田孜) 일본수상이 방문단을 접견하였는데 그때 쌍방 통역도 그녀의 몫이였다.

장녀사는 그만큼 준비된 통역가로 손색이 없었다.

인생가치의 창조와 실현을 위하여

장녀사가 중국국제방송국 일본어 간판아나운서와 유명통역원으로 활약하자 당년에 국가외교부 아세아 사장이였던 왕의(중국외교부 부부장)는 그녀를 강택민주석과 리붕총리의 통역으로 국가외교부에 오라고 하였다. 이런 어마어마한 현실앞에서 한참이나 모대기던 그녀는 그래도 자기만의 인생가치를 창조, 살현하겠다며 남들은 그렇게 부러워하는 일터와 보좌를 과감하게 버리고1997년에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에 오자 그녀는 제일보로 도꾜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충분하게 충전했고 일본 립교대학 언어문화 겸임강사로 활약하면서 동북아의 주체인 중, 일, 한 3국간의 우호협조 관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고저 ㈜JCK 후렌즈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활약했다.

《JCK》는 일, 중, 한 3국의 영문국명 이니셜(3국 국명 영문 첫자를 조합), 《후렌즈》는 영어로 친구들이라는 뜻, 회사는 동북아의 주체인 일, 중, 한3국을 사이좋은 친구로 만드는것을 사명으로 했다.

일본서 15년간 장녀사는 여러 가지 언어무대와 국제적활동에서 돋보이는 통역가와 사업가로 부상했다.

일,중,한 3국어가 표준적이다보니 그녀에게 통역은 물론 3국어 해설,록음 등 실무를 의뢰하는 사업들이 련줄로 이어졌다.

중국진출을 시도하는 업체들에서는 그녀에게 홍보, 비디오 제작, 해설, 록음을 청탁했고 관광명소에서는 그녀를 음성가이드로 택했다. 일본 아이찌세계박람회때 NHK에서 제작한 일본문화PR프로의 번역, 해설, 록음, 중국 상해세계박람회 일본관 미끼하우스(회사명)부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명랑한 중국말도 그녀의 목소리다.

장녀사의 표준적이고 세련된 언어표현, 유순하고 매력적인 례모, 때에 맞는 옷차림, 령활한 실무처리와 응변은 일본의 통역계와 텔레비죤프로제작담당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1997년 9월, 중국 서장자치구 방일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할 때 무라야마(村山)일본 전임수상의 방문단 접견, 일본문부성, 외무성 등 정부관원들간의 회담과 연회석의 쌍방 통역을 장녀사가 전담, 2000년 7월, 일본의 저명한 화가 히라야마 유끼오(平山郁夫)씨가 조선문화부대표단을 초청하였을 때 그녀는 10여일간이나 수행하며 일본의 정계, 문화계의 저명인사들과의 빈번한 활동을 쌍방 통역했다.

그녀에게는 지금도 잊을수 없는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선문화부대표단의 한 단원이 오사까에서 삼십여년간이나 못 만났던 누님을 만나보고 도꾜에 돌아와서 히라야마씨를 비롯한 여러분들에게 만남의 그 장면을 얘기할 때다. 그 장면을 통역하던 장녀사는 그만 감격에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다행히도 일본말을 얼마라도 할줄 아는 조선대표단 단원이 그런대로 대역을 한데서 장녀사가 요행 궁지에서 빠져나왔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선다는 그녀는 그 일이 계기로 되여 평화로운 동북아를 이루는데 자기가 앞서 나서겠다는 마음을 굳혔단다.

국제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언어소통이다.

그녀가 설립한 《JCK화음(話音)》은 국제교류일선에서 활약하는 전문인에게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를 가르치는 언어학원이다.

일본의 유명한 영화배우 구리하라 고마끼(栗原小巻)씨는 1980년대 일본의 유명영화배우(《사랑과 죽음》, 《고향》의 주연임)로 지금은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친선대사로도 활약하고있다.

장녀사가 북경외대에서 공부할 때 구리하라 고마끼씨의 대표작인 《사랑과 죽음》의 영화대사를 카세트테프에 록음하여 들으면서 청력훈련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구리하라 고마끼씨가 《JCK화음(話音)》학원을 다니며 장녀사에게서 인사말 작성, 통역, 번역 등 중국어와 한국어 스피치(연설)지도를 받는다며 장녀사는 구리하라 고마끼씨가 자기의 록음을 들으면서 중국어, 한국어 스피치련습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없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단다.

유명한 영화배우 구리하라 고마끼(栗原小巻)씨와 함께

장녀사는 또 일본TV 동아세아평론가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있다.

그녀는 텔레비아사히의 《TV태클(프로그램명)》, 일본텔레비《오오타 총리》, 후지텔레비의 《신보도2001》등 인기프로에 수시로 출연해 일본의 국회의원과 여러 분야의 담당평론가들과 함께 중일관계 문제들을 평론한다.

한번은 중국 서장문제를 화제로 평론할 때 일본의 우익정치가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을 비난하자 장녀사는 서슴없이 나서 《저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입니다. 중국공산당의 소수민족정책은 아주 좋습니다…》며 많은 생동한 실례를 곁들어 그를 반박했다.

일본 TV에서 인기인물로 된 그녀에게 많은 일본 기업과 단체들이 강연과 사회를 청탁했고 그녀가 거리, 전철, 공항 등 공공장소에 나타나면 많은 낯모를 일본사람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건네며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단다.

동북아평화를 산업으로 자기의 모든 능력을 기여하겠다는 그녀의 꿈 너머 꿈은 나중에 이 산업에서 얻은 체험과 퍼부은 노력을 집필하는것이란다.

특히 상호간의 리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시대에 집필로 후세에 남기는것이 정녕 필요하다고, 또 하는 일에 자신이 있다는 그녀는 이렇게 부언한다.

ㅡ아세아의 주체는 중국, 일본, 한국이다. 나는 중, 일, 한 언어에 비교적 능하고 상대적이고 평행적으로 3국을 리해하고있다.

ㅡ동북아공동체에서 활약할수 있고 잠재력이 겸비된 인재들은 중국조선족이다. 아세아의 주역으로 우리는 어디서나 그리고 어디까지나 여러모로 통한다. 일본, 중국, 한국인들이 우리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장면들이 너무 많다. 때문에 우리는 할 일이 많고 신심으로 넘친다.

자신감으로 충만된 격정어린 그녀사의 언보(言步), 예지로 넘치는 그녀의 눈길… 꿈 너머 꿈을 마중하는 그녀의 태세는 그렇게도 락관적이였다.

연변과 조선족이 힘이였다

장녀사는 자기의 오늘과 래일은 연변이 키워준 덕분이고 그녀의 성공은 조선족이기때문이라며 말을 잇는다.

ㅡ조선족은 례모가 있고 깨끗하며 특히 적응력이 강한 민족이다. 조선족은 선량하고 약자를 돕는 민족으로서 남을 모질게 굴줄을 모른다. 우리 민족의 이런 소질은 어디서나 통하며 또 누구한테서나 사랑을 받을수 있는 가장 귀중한 요소로 된다.

특히 일본은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사람을 도와주는것을 중히 여기는데 우리는 이런 민족소질을 갖고있기에 일본사회에서 질적으로 통한다.

ㅡ우리는 어려서부터 연변의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제때에 신문잡지를 읽을수 있었고 신문잡지를 통해 정신적, 물질적 자양분을 섭취할수 있은것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였고 어디에서나 맡은바 일에 충성하게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장경자녀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당년의 선생님들은 정말 헌신적이고 직업도덕이 좋았다. 일단 락제생이 있다 하면 아무런 보수도 없이 그 학생을 자기 집에 데려다가 배워줬고 또 어느 학교나 어느 학생의 성적이 출중하면 여론계에서 찾아와 제때에 홍보한데서 연변의 훌륭한 환경이 우리를 키웠다.

지금 일본에 온 많은 사람들이 국적(중국)과 족적(조선족)을 밝히기를 꺼려하는데 나는 오히려 어디서나 먼저 나는 중국사람이다, 나는 조선족이다며 자기를 소개하며 중국과 조선족을 자랑한다.

ㅡ당년에 전국적으로 조선족처럼 외국어학과로 일본어를 선택한 민족과 학교는 극히 희소했다. 그래서 출국붐이 일자 우리의 출국나라선택이 첫째로 일본이였다. 그러니까 조선족의 1류인재들이 일본에 왔다. 이에 비춰 타민족들은 비록 전부는 아니라지만 미국, 영국 등 발전한 유럽국가에 못가게 된 2, 3류 인재들이 일본에 왔다. 그러니까 그들과의 경쟁을 올림픽에 비한다면 1류 선수와 2, 3류 선수와의 경기로 우리가 그들을 이길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우수했던 인재는 어느 나라에 가나 우수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신심이 있다. 나는 언젠가는 고향을 위하여 필요한 기여를 할것이다.》
맞춤한 몸매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은 말끝마다에 웃음이 방울짓고 예지로 가득 찬 눈매에서 신심으로 가득찬 조선족녀성의 매력을 느꼈다.




일본 도쿄에서 통역사로 방송인, 대학 강사, 기업가 등으로 활동하는 재일 조선족 장경자(45·張景子) ㈜JCK후렌즈 대표. 장 대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역내 국가 간 이해 증진을 통한 관계 개선에 앞장서겠다며 3개국의 영문 이름 첫자로 조합한 ㈜JCK후렌즈(일본·중국·한국의 친구들)를 설립, 국민들 간 우호협력과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일·중·한 코디네이터'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사진은 1997년 중국국제방송국 방송실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인생은 한권의 책이다.

기자는 동북아평화를 위해 《헌혈》하는 조선족녀사의 저서ㅡ《동북아평화와 나》(필자의 작명임)가 고고성을 울릴 그날을 예축하며 《장경자 화이팅!》을 높이 불러본다.

/오기활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
  • 당대 걸출한 민족시인시가상 수상자 《장백산》잡지사 남영전 전임 사장을 만나 남영전. 1948년 3월 3일(음력) 출생, 고중을 졸업한 뒤 농촌에 하향도 했고 로동자로도, 선전부문 간부로도 있었으며 《장백산》잡지 주필로 있다가 2010년 3월 퇴임했다. 그의 학력을 보면 길림성작가진수학원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미국세...
  • 2013-03-13
  • 동북아 간판통역가 ㈜JCK후렌즈 장경자사장 인터뷰 일본 후지TV 중일문제 평론가로 활약하고있는 장경자씨. 일본 도꾜에는《동북아의 평화를 산업으로 가장 필요한 일선에서 자신을 헌신겠다》는 조선족 녀문화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경자(張景子),주위에서는 그녀를 사회활동 열심가, 민족심이 꽉 찬 사장, 사회의 최...
  • 2013-02-05
  •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게스트: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주임) 사회자: 신금철 편집: 남철 첫 방송  2012.  12. 19   16:00FM 재방송   2012.  12. 20   08:00AM 재방송   2012.  12. 20   08:00FM &nb...
  • 2013-01-15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8)   중국조선어문잡지사 전임 부주필 최기자시인의 일가견      글을 쓰기에 앞서 인격부터 갖추라   한편의 시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아   사실주의 랑만주의 결합, 현대시 전통시 접목     중국조선어문잡지사 전임 부주필이며 시인인 최기...
  • 2012-12-18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0) 숨은 작가 방채봉녀사                              연변우전국에서 30년동안 내내 모범이요, 선진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했고 길림성 우전계통...
  • 2012-12-18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64)   아동문학가 전춘식작가의 일가견     요즘 연변인민방송청소년프로와 《아동문학》잡지,《아동세계》잡지 등 방송과 잡지에서 아동문학가 전춘식작가의 글을 시리즈로 펴내고있다. 30여년간 아동소설, 동시, 동화 등 작품을 600여편 발표하면서 줄곧 아동문학창작에 몰두해온 ...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8)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리상규시인을 만나     나는 가장 순수한 일을 하는 사람   조선족과 한족은 동반성장을 이룩해야   한번 시작한 일 포기하는 법 없어     어제 오후에 행사를 마쳤다. 연변대학사범학교 반디불 문학상 시상식이다....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0)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 못할 “통신학습”       장장 2년동안 국제서신 “통신학습”   궁체, 판본체 대가들로부터 가르침 받아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서 서예에 심...
  • 2012-12-10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