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 “70후”의 선두주자, 조선족 녀류작가 김인순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월15일 14시57분    조회:558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인순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게스트: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주임)
사회자: 신금철
편집: 남철


첫 방송  2012.  12. 19   16:00FM
재방송   2012.  12. 20   08:00AM
재방송   2012.  12. 20   08:00FM
                                                             
 
신: 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네 번에 걸쳐 저희들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이며 중견소설가인 김혁 선생님을 모시고 “막언과 노벨문학상” 시리즈를 방송해 드렸습니다. 그 시리즈가 방송된후 중국의 조선족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이 “문학살롱”프로에 뜨거운 반향을 보인것은 물론, 해외의 네티즌들도 저희 방송프로그램과 김혁작가에게 커다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열기에 이어 오늘도 김혁 선생님을 모시고 새로운 내용의 프로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조선족 녀류작가 김인순을 화제인물로 정했습니다. 인사. 조선족 녀류작가 김인순은 최근에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등 문학지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장편소설 “춘향”을 창작하여 제10기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선은 최근의 화제인 “준마상”부터 시작하여 김인순작가를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김인순은 한마디로 70후 녀류작가들의 선두주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 문단에는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일전 제10기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에서 장편소설 "춘향”으로 수상의 영예를 지니면서 알려지게 되였지요.

신: 준마상은 어떤 상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조선족작가들 가운데서 준마상을 받은 분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분들인지?

김: 1981년에 제정, 중국작가협회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준마상”은 "모순문학상”, "로신문학상”, "전국우수아동문학상” 등과 함께 국가급 4대 문학상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에는 김인순외에도 김호웅, 심승철이 각각 보고문학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여라ㅡ조선족교육가 림민호평전””, 번역작품 “불멸의 영령ㅡ최채”로 "준마상””을 수상했지요.
김인순은 우리 민족의 고전 "춘향전”을 번안한 장편소설 "춘향”으로 이 묵직한 상을 수상했는데 그 이전에 역시 "춘향”으로 길림성의 최고문예상-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한바 있습니다.

신: 김인순의 준마상 수상은 조선족문단에 어떤 의의를 부여했습니까?

김: 이번기 ”준마상”의 장편소설부문은 무려 70여편이 각축전을 벌여 경쟁이 치렬한 가운데 선정되여 그 함금량이 무거웠습니다.
"준마상” 심사위원들은 "나는 이 장편소설이 특별한 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생활을 서술하는 작자의 방식은 동방고전의 시적인 정취와 함께 현대예술의 운치를 풍기고있습니다. 초심토론시 나는 이 작품을 심시위원들한테 정중히 추천했습니다. 예술상 정교한 이 장편소설은 모든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았고 최종 <준마상> 수상작품중 하나로 선정되였습니다."고 그 선정 경위를 밝혔습니다.

신: 사실 조선의 고전명작인 “춘향”에 대해서는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김인순작가는 어떤 기법으로 “춘향”을 썼기에 그렇듯 농익은 이야기, 그리고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줄수 있을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중국 주류문단의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요?

김: 중국문단에서 그 독보적인 기량을 보이고있는 조선족 작가 김인순은 신작 "춘향”에서 한민족의 불후의 고전을 국계와 시공간을 뛰여넘은 현대인들의 시각에 맞추어 재구성하고 있으며 춘향의 회고로 된 일인칭 시점 등 파격적인 문체를 선보였습니다.

신: 김인순작가는 조선족이지만 한문으로 창작하고 있는데, 그러한 김인순작가가 어떤 계기에 의해 “춘향”을 쓰게 되었는지요?

김: 장편소설 "춘향”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을 받게 돼 기쁘다. 이는 나와 나의 작품에 대한 긍정이라고 본다. 사실상 춘향의 선재는 특수하다. 심사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인것은 그들이 큰 포용심을 갖고있음이 아닌가싶다. 고전 ‘춘향전’을 읽고 나서 ‘춘향’을 쓸 결심을 했습니다. 우연히 고전 ”춘향전”을 돌이키며 주인공 ”춘향”을 하나의 인물로 사고할 경우 녀성의 형상은 이런 "인형”형상이 아니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간이야기가 보여주는 전통적인것을 완전히 다르게 엮어보면 재미있을것이라 생각하고 쓰게 되였습니다. 춘향전이 중국 고전에 비해 스토리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선족으로서 고전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확장하는 소설을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내 작품은 원전과는 전혀 다르다. 작품의 결말에서 춘향은 리몽룡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기생으로 됩니다. 자유를 위해서이지요."

신: 그러니까 “춘향전”의 원래의 줄거리를 180도로 대전환을 시켰다는 말로 됩니다.

김: 네. “춘향전”을 아주 환골탈태시켰지요. 김인순은 "춘향”의 결말부분은 후에 고친것이라고 창작과정에 대해 말했습니다. 처음엔 ”춘향”과 "리몽룡””이 결혼하는것으로 결말을 맺었는데 왜서인지 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춘향”이 "리몽룡”을 거절하고 자유를 선택하는것으로 소설을 끝냈던 거지요.

- 신: 그럼 객관적 시각에서는 김인순의 장편소설 “춘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요?

= 김: 매체는 김인순의 "춘향”을 "로미오와 줄리에”, "서상기(西廂記)"에 견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극찬했습니다.
 

장편 "춘향"의 표지
 

- 신: 우에서 김인순의 장편소설 “춘향”이 준마상을 받은 정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김인순작가의 상세한 정황에 대해 소개 주시지요. 

= 김: 김인순은 데뷔한 이래 줄곧 중문으로 창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다년간의 창작과정을 거쳐 중국 문단에서 "70후” 대표작가의 반렬에 올랐습니다. "70후”란 출생년대를 기준으로 1970년대 이후에 태여난 작가를 말합니다. 1998년부터 문단에서 하나의 사조를 이루었는데 광주, 소주, 하남 등 남방에 대표적 작가들이 있습니다. 김인순은 "북방대표”라 불립니다.

- 신: 문단에서는 “70후”작가들에 대해 어떻게 정평하고 있습니까?

= 김: 중국문단에서 "70후”작가들은 "60후”작가들을 돌파하고 "80후”작가들을 껴안으며 문단의 중견력량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70후”작가들은 몇해전부터 실력을 인증 받으며 중국문단에서 부쩍 강세를 보이고있습니다. 몇해전 중국의 한 실력파 잡지가 10명의 "70후”실력파 “미녀작가”를 평선했는데 그중에는 용모와 실력을 구비한 김인순도 당선되였습니다. 그중 김인순은 유일한 소수민족이였습니다. 그 호칭에 걸맞게 그녀는 무용수같은 날씬한 몸매에 얼굴선이 아름다운 40대 초반의 녀류작가이지요. 그의 당선리유에 대해 작가들은 "김인순은 ‘70후 작가군에 새로운 숨결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침묵속에서 폭발하거나 침묵속에서 자취를 감출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인순의 폭발을 기다린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근년에 들어서 김인순은 창작에서의 폭발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 신: 김인순의 고향은 어디이고 그의 유년기부터 창작을 하기까지의 정황은 어떠한지요?

= 김: 김인순은 1970년 길림성 백산시에서 출생, 길림성 희극학원에서 희극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4남매중의 막내로 아버지는 문화계통의 일군이였고 어머니는 소학교 교원출신이였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구락부(극장)의 주임으로 있습니다보니 밥 나르는 심부름을 하면서 영화를 볼수 있는 행운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또 책도 많이 사주어 어려서부터 독서에 빠졌는데 그녀는 "후에 소설을 쓸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고중때부터는 작품을 투고했는데 원고료가 한달 생활비보다도 더 많을 때가 있었습니다. 미대지망생이였던 김인순은 길림예술학원 미술시험을 보러 왔다가 그냥 좋아하던 영화생각이 나서 연극문학학부에 입시하였는데 합격되였습니다. 그후 1학년때 우연히 숙제로 쓴 소품이 동북3성 공연에서 2등상을, 길림성정부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렇게 캠퍼스에서 꽤 알아주는 "작가”가 되였고 대학과정중에 10여편의 소설을 쓰게 되였습니다. 졸업후 잡지사 편집으로 배치받으면서 다시 문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였습니다.
2002년 김인순이 "작가”잡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물가의 아디야(水边的阿狄雅)"가 영화 "록차(绿茶)"로 각색, 제작되였습니다. “록차”는 강문, 조미 등 중국 연예계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아 당시 큰 화제를 모았지요. 이로서 김인순은 중국문단에서 문명을 얻었을뿐만아니라 영화계에도 명성을 날렸습니다. “록차”가 영화로 히트를 하자 그녀의 소설에서 갖는 시장효과의 비중은 얼마만큼인가? 하는 물음들이 제기된적 있었습니다. 이에 김인순은 "나는 글을 쓸때 시장효과를 종래로 념두에 두지 않는다. 시장효과는 영화텔레비죤이 많이 이끌어낸다. 어떤 영화텔레비죤작품은 문학엔 아무런 기여도 없지만 시장엔 기여가 아주 클수 있다.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작가가 크게 뜰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그의 또 한편의 작품 "시체멋 선생(时尚先生)"도 영화로 각색되였습니다.
- 신: 그럼 김인순의 본격적인 창작은 어느때부터 시작되였습니다고 볼수 있는지요?

= 김: 1997년부터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랭기류(爱情冷气流)", "백일몽처럼(仿佛一场白日梦)" 등 지금까지 백만자에 달하는 소설과 산문을 창작했습니다. 그가 창작한 많은 중단편소설은 중국문단의 주요 문학지들인 "수확”, "작가”, "화성”, "종산”, "대가” "소설선간(小说选刊)", "소설월보”, "중국문학”, "단편소설선간” 등 잡지에 발표되였습니다. 그중 소설 "기(伎)"는 "20세기 중국 단편소설선집”에, "물가의 아디야”는 "2002년 중국 년도 최고 단편소설”에, "해변의 풍경은 아름다워라(人说海边好风光)"는 21세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평선에 당선되였습니다. 2009년에는 문화유적지 돈황을 찾은 한쌍의 신혼부부의 이야기로부터 물욕의 시대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 작품- "돈황”으로 21세기 중국문학대계 "2009년 단편소설선”에 선정되였습니다. "돈황”은 중국작가협회 주석, 철응, 저명한 소설가 한소공 등 10여명 중국문단의 유명 작가들과 나란히 소설선에 수록되였습니다. 이외 산문집 "백일몽처럼”, "달빛아 달빛(月光啊, 月光)" 그리고 드라마 "엄마의 장국집” 등 다양한 쟝르의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 신: 김인순의 창작특점은 무엇이며 작품의 주제성향은 어떠합니까? 주로 어떤 분야의 내용을 다루었는지요?

= 김: 김인순은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현시대 젊은이들의 삶의 양상에 대해 다루었고 또 민족의 운명을 묘파한 작품도 간간히 써내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 신: 김인순의 수상정황은 어떠한지요?
다년간의 꾸준한 창작활동을 거쳐 김인순은 풍성한 창작성과를 쌓아올렸습니다. 그 성과들을 돌이켜보면-
2002년 단편소설””물가의 아디야(水邊的阿狄雅)"로 중국소설학회 단편소설 순위 제4위, 제1회 길림문학상 수상.
    2004년 화극””타인(他人)"중국 제8회 종목상, 감독상, 표현상, 조직상 수상.
    2005년 시나리오"록차(绿茶)" 제1회 장춘문학상 금상 수상.
    2008년 단편소설””상호(彼此)" 중국소설학회 2007년 단편소설 순위 제1위.
    2008년 단편소설””소나무진(松树镇)""중국소설격년상””수상.
    2010년 단편소설"돈황(敦煌)" 21세기 중국문학대계 "2009년 단편소설선””에 선정.
    2010년 장중문(庄重文) 문학상 수상.
    2011년 장편소설””춘향(春香)"장백산문예상 수상.
    2011년 단편소설””벽오동(梧桐)"작가출판그룹상, 민족문학년도상 수상.
    그리고 올해 2012년에 장편소설”춘향”으로 제10회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준마상 수상했습니다. .

- 신: 김인순은 산재지역에서 생활해온 작가인데 드라마속의 주요장면은 조선족집중지 역의 생활이다. 그럼 그는 이런 생활체험을 어떻게 구사했는가?

= 김: 김인순의 작품중 우리 민족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춘향”외에도 “벽오동”(梧桐), “종달새(雲雀)”, "도라지(桔梗)", "고려옛일(高麗往事)", "판소리(盤瑟里)" 등 작품들은 모두 우리 민족의 력사를 소재로 하고있습니다. 조선 말은 못하지만 조선족으로서 한민족에 관심이 많다고 김인순은 루차 밝힌적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조선족을 볼수없는 산재지구의 탄광구역에서 자라면서 성장환경의 제한으로 민족언어문자를 배우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완전한 조선족이다. 음식을 포함한 모든 가정생활환경은 순 조선족문화이다. 지금도 집안에서는 김치를 담그고 장국도 늘 끓여먹는다. 때문에 우리 민족 생활을 다루고싶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중문으로 번역된 관련서적을 통해 우리 민족 문화 풍속 등을 료해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민족의 락인이 찍힌 자신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낙언대로 드라마 "엄마의 장국집”이 나왔습니다. 연길을 배경으로 한 8부작 작품은 중앙텔레비죤드라마채널의 청탁을 받고 각색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주년에 선물한 헌례작품이였습니다. 작품은 2002년 중앙텔레비 8채널에서 방송되였지요.
당시 김인순은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후 소설에만 집념해 오면서 씨나리오 제의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다 거절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족을 제재로 하는 내용의 청탁이였기에 자치주설립 기념 헌례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한다는 소명감으로 흔쾌히 응낙했다고 합니다.
김인순은 누구도 알리지 않고 홀로 조용히 연길에 가서 한주일간 체류하면서 생활체험을 했습니다. 송기호텔에 류숙하면서 매일 호텔에 딸린 장국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조선족 고유의 그 맛과 멋이 너무 인상깊었습니다. 하여 이를 제재로 드디여 우리민족 고유의 맛이 다분히 풍기는 "엄마의 장국집”이 창작된것입니다.
앞으로도 조선족제재의 영상작품을 쓴다면 농촌제재보다는 도시제재, 현대생활을 제재로 쓰고싶다고 그는 또 밝혔습니다. "례로 연길을 쓸 경우 민족풍토와 인정이 있는 특별 히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보겠다. 적어도 라싸, 샹그릴라처럼 관중들의 심목속 에서 중요한 위치가 느껴질수 있는 영상작품을 만들고싶다."고 말했습니다.

- 신: 비록 한문으로 창작하는 작가이지만 김인순이라는 이름자체는 참 우리의 고유한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이름인데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할가요?

= 김: 김인순이라는 이름 참 고전적이고 민족적인데 다른 작가들처럼 구태여 흥감스럽게 요란한 필명이 필요없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 이름자를 듣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조선족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그때마다 그녀는 아주 기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을 들여 우리 말, 우리글을 배울 타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민 도 껴안고 있더군요.
"조선족이라는 신분은 나한테 있어 큰 보고(宝庫)이다. 한족작 가와 같은 자원을 갖고있으면서 조선족이라는 ‘무기’를 더 갖고있기때문이다. 한켠으로 당혹스러운 점이 있다면 어디서나 나는 주변인물(邊緣人)이라는 것이다. 연변문단에서는 외지인이라는것때문에, 한족작가들 앞에서는 조선족이 라는 것때문에, 한국문학계에서는 중국작가라는것때문에… 많은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고 그는 언젠가 고백한적 있습니다.

- 신: 김인순작가는 우리와는 멀고도 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면 그의 현상황은 어떠합니까? 앞으로의 창작행보를 어떻게 잡고 있는지요?

= 김: 현재 장춘에 거주하면서 전직작가로 몹시 빼곡한 창작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중국 70년대생 작가는 이전 문학의 정치적 편중에서 벗어나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린 첫 세대라 할수 있습니다.
“창작은 반드시 현실생활의 무엇을 반영해야 한다. 현실 리념이 저도 모르게 작용을 하게 된다. 문학은 문학다워야 살아남는다."고 자신의 창작리념을 밝혔습니다. 또 "현 국제상 열점으로 떠오르는것이 바로 민족의 국제 융합인데 세계적으로 이민이 점점 많아지면서 국가와 민족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의 모순, 충돌 그리고 어떻게 융합을 이루는가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방향이 다. 나 역시 소설창작시 조선족, 민족적인 요소를 많이 쓸것이다."고 앞으로의 창작행보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밝혔습니다.
“준마상”을 받은 “춘향”은 김인순이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인데 다음 장편소설 창작은 그에게서 큰 도전이라고 수상소감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다음 장편소설은 현재의 생활을 쓸터이지만 지금 은 단편소설창작에 한창이다.”고 밝혔습니다.
“문학은 나에게 있어 신앙과 같은 존재이다. 문학이 랭대받을 때에도 나의 심목속에는 문학이 최고였다.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것이다. 나의 바람 이라면 ‘내가 죽은후에도 나의 소설이 단 몇편이라도 계속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램을 말했습니다.
 

- 신: 어느 매체와의 취재에서 문학창작에 관심있는 조선족 청년 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어떤 조언을 주었는지요?

= 김: "우선 그들이 모어로 창작할수 있다는것이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 된다. 모어로 창작된 작품이 중국 나아가 세계문단에 오르려면 번역손실문제에 부딪치지만 사실상 이는 그 어느 작품이나 다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은 번역의 ”시련”을 견뎌내기때문에 모어로 창작할수 있는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음, 여러 나라 우수작품을 다 보며 국제적인 흐름을 료해하고 시야를 넓히자. 적어도 문학교 류의 무대에 오르자는것이다. 내가 보는 작품중 80%는 외국작품이다. 언어의 감각, 구조, 사용방법이 다 변화하고 있기에 이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 다."고 김인순은 좋은 창작담을 들려주었습니다.

- 신: 오늘 김혁소설가의 소개를 통해서 주류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조선족작 가 김인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마련된 문학살롱 프로 역기서 줄입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
  • 당대 걸출한 민족시인시가상 수상자 《장백산》잡지사 남영전 전임 사장을 만나 남영전. 1948년 3월 3일(음력) 출생, 고중을 졸업한 뒤 농촌에 하향도 했고 로동자로도, 선전부문 간부로도 있었으며 《장백산》잡지 주필로 있다가 2010년 3월 퇴임했다. 그의 학력을 보면 길림성작가진수학원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미국세...
  • 2013-03-13
  • 동북아 간판통역가 ㈜JCK후렌즈 장경자사장 인터뷰 일본 후지TV 중일문제 평론가로 활약하고있는 장경자씨. 일본 도꾜에는《동북아의 평화를 산업으로 가장 필요한 일선에서 자신을 헌신겠다》는 조선족 녀문화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경자(張景子),주위에서는 그녀를 사회활동 열심가, 민족심이 꽉 찬 사장, 사회의 최...
  • 2013-02-05
  •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게스트: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주임) 사회자: 신금철 편집: 남철 첫 방송  2012.  12. 19   16:00FM 재방송   2012.  12. 20   08:00AM 재방송   2012.  12. 20   08:00FM &nb...
  • 2013-01-15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8)   중국조선어문잡지사 전임 부주필 최기자시인의 일가견      글을 쓰기에 앞서 인격부터 갖추라   한편의 시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아   사실주의 랑만주의 결합, 현대시 전통시 접목     중국조선어문잡지사 전임 부주필이며 시인인 최기...
  • 2012-12-18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0) 숨은 작가 방채봉녀사                              연변우전국에서 30년동안 내내 모범이요, 선진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했고 길림성 우전계통...
  • 2012-12-18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64)   아동문학가 전춘식작가의 일가견     요즘 연변인민방송청소년프로와 《아동문학》잡지,《아동세계》잡지 등 방송과 잡지에서 아동문학가 전춘식작가의 글을 시리즈로 펴내고있다. 30여년간 아동소설, 동시, 동화 등 작품을 600여편 발표하면서 줄곧 아동문학창작에 몰두해온 ...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8)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리상규시인을 만나     나는 가장 순수한 일을 하는 사람   조선족과 한족은 동반성장을 이룩해야   한번 시작한 일 포기하는 법 없어     어제 오후에 행사를 마쳤다. 연변대학사범학교 반디불 문학상 시상식이다....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0)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 못할 “통신학습”       장장 2년동안 국제서신 “통신학습”   궁체, 판본체 대가들로부터 가르침 받아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서 서예에 심...
  • 2012-12-10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