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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삼, 로전사들의 소중한 기억을 렌즈에 담아
2025년 12월 24일 13시 20분  조회:50  추천:0  작성자: 예술세계
    리장삼, 로전사들의 소중한 기억을 렌즈에 담아
     □ 김향자
 

   

    시야가 닿는 곳마다 하얀 눈이 뒤덮인 날이였지만 리장삼은 만나고 싶었던 로전사의 주소를 알게 되자 주저없이 길을 나섰다. 차량으로는 진입이 어려운 곳에 이르러 그는 도보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촬영장비가방을 메고 얼마나 걸었을가. 쌓인 눈 속에서 반 쯤 드러난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잡아당겨 꺼내보니 헐망하고 색 바랜 옛날식 군복이였다. 력사나 전쟁 주제의 드라마 촬영에나 쓸 법한 복장이였지만 어쩐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군복에 묻은 눈을 깨끗이 털어냈다. 어떻게 되여 이 옷이 여기에 있을가를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이르렀다.
    로전사는 따뜻이 웃으면서 그를 반겨맞았다. 인터뷰시간이 길어질수록, 로전사의 피로 얼룩진 기억 깊이 따라갈수록 그는 감동과 경의에 찬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가렬처절했던 전투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로전사를 바라보며 그 역시 눈물에 목이 메이고 가슴이 울컥했다.
    잠시 후 그는 오는 길에 주은 낡은 군복을 꺼내 보였다. 로전사는 군복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건 내 옷이야.”라며 격동을 금치 못했다. 안해가 옆에서 “우리 집에 언제 이런 옷이 있었다구 그래요. 주책이네 정말!”라고 하며 핀잔했지만 그는 “젊었을 때 내가 이런 옷을 입었었어!”라며 울먹였다. 리장삼은 카메라 렌즈 속에 안겨들어오는 로전사의 흥분된 얼굴을 바라보며 렌즈에 홍색 기억을 담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서 잠간 리장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두루마리 화폭을 제작하여 순회 강연을 하고 있는 리장삼 
  

    리장삼(李长森), 한족.
    1955년 4월 12일, 산동성 제성현에서 출생.
    1976년, 참군.
    198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81년, 룡정현사탕술공사 단서기 겸 보위간사.
    1982년, 화룡현상업직공학교 교원.
    1984년, 화룡현위 선전부 간사 겸 과장.
    1989년, 화룡현위 판공실 부주임 겸 현위상무위원회 비서.
    1993년, 연변국제경제기술합작공사 부경리.
    2008년, 룡정시경제투자국 국장.
    2015년, 연길시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상무부주임.
 
    리장삼은 2014년에 촬영에 입문하였고 2017년부터 카메라 렌즈를 풍경에서 로전사들에게로 돌렸다. 그 때로부터 무려 8년 동안 그는 심양, 장춘, 통화, 농안, 구태 및 연변의 각 현, 시, 림업지구, 광산 일대를 누비며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등에 참전했고 지금까지 생존해있는 로전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300여명의 로전사들을 만나 시급히 기록되고 보존되여야 할 사진과 자료들을 수집해나갔다. 발품을 팔아가며 숱한 고생을 한 끝에 그는 8,300점의 진귀한 순간을 사진에 담았고 12,000자에 달하는 상세하고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했다. 로전사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홍색 기억이 남긴 력사에 대한 경외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작업이였다.
    날이 갈수록 리장삼은 시간이 얼마나 긴박한지를 절감했다. 로전사들 중에 최고령자는 102세에 이른 분이였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하루하루 년로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마치 시간과 달리기를 하는 듯한 심정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산의 진달래는 꽃이 피였다 져도 래년에 다시 피여날 테고 장백산의 설경은 녹았다가도 다음해면 다시 하얗게 덮이겠지만 로전사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소중한 력사와 기억들은 영원히 시간 속에 묻히고 말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리장삼의 마음은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다급했을가! 그는 추운 겨울이든 무더운 여름이든 가리지 않았다. 로전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즉시 그는 곧바로 달려갔다.
    2018년 한겨울, 리장삼은 통화시 이도강 구역에 사는, 항일전쟁에 참가했던 진동안 로전사의 주소를 알게 되자 폭설을 무릅쓰고 7시간을 차로 달려 그의 집에 도착했다. 진동안 로전사는 북경에서 열린 열병식에 두차례나 참가한 경력을 가진 분이다. 첫번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개국대전 열병식에서 륙군 열병대 전사로 모택동 주석의 검열을 받았고 두번째는 66년이 지난 2015년, 중국인민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 항일전쟁 참전 로전사 대표로 참가했다. 진동안 로전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리장삼은 그와 함께 로전사 대표로 참가했던 분이 5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리장삼은 이들을 찾는 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빠른 시일내에 나머지 5명의 로전사들을 모두 찾아내여 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고 그들의 영웅이야기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였다.
    조국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워온 로전사들을 취재하는 과정은 눈물겨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95세의 로전사 왕가흥과의 첫번째 만남은 그분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그분은 건강상태가 안 좋음에도 아주 락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번째 만남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이루어졌다. 리장삼이 모든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 로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화첩을 보면서 왕가흥은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전우들이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쳤소. 나는 부강해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단 한순간도 그들을 잊은 적이 없소.” 전우들과 함께 했던 세월을 추억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리장삼도 눈물을 흘렸다.
 

로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화첩을 보여주고 있는 리장삼

    2017년 12월, 남경대학살 희생자 추모의 날에 리장삼은 94세의 로전투영웅 왕총문을 방문하였다. 로전사는 마침 인터넷으로 추모행사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중이였다. 리장삼은 미리 준비해간 군복을 로전사에게 입혀드리고 그분이 오래도록 소중히 보관해온 훈장들을 달아드린 후 숙연한 마음으로 샤타를 눌렀다.
    촬영이 끝난 후 로전사는 어린아이처럼 군복을 꼭 잡은채 벗으려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후 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날 찍은 사진을 유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리장삼은 필요한 크기로 두장의 사진을 만들어 직접 전해주었다.
이 일은 리장삼의 마음을 아프게 자극하였다. 그는 군복을 많이 준비해 앞으로 인터뷰할 때 모든 로전사에게 선물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문의 한 기업가가 감동하여 군복 80벌과 솜옷 40벌을 후원했다. 그후 리장삼은 매번 취재와 촬영을 마친 후 로전사에게 한벌씩 선물로 드렸다.
    2023년초,  리장삼은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는 건 물론이고 자기와 뜻을 함께 한 전우들의 지원금도 모아 기념 티셔츠 120벌을 구매했다. 리장삼은 이 티셔츠를 취재현장에서 만난 로전사들에게 선물하고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옛 군복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는 로전사 장명순

    홍색자원을 가치 있게 활용하고 홍색유전자를 의미 있게 계승하기 위하여 리장삼은 큰 결심을 했다. 2019년 9월,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대청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을 기념하여 ‘로전사들의 정신을 기리고 홍색유전자를 계승하자’는 주제의 사진전람회를 열었다. 그는 관객들이 영상 자료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감동받기를 바랐다.
    리장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로전사들의 홍색정신을 알리기 위해 2019년말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홍색기억》 화첩을 편집, 출판하였으며 이를 홍색교재로 학교와 가두, 향촌에 보급했다. 그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를 주제로 한 3부작 대형 화폭을 제작, 인쇄하였다. 여기에는 백여명의 로전사가 담겼으며 각 두루마리의 크기는 너비가 1.2m, 길이가 15m에 달했다. 그는 이 작품들을 소중히 들고 학교와 향촌을 다니며 순회전람을 열었다.
    2023년 8월, 그는 연길에서 항미원조 승리 70주년을 기념하여 로전사 주제 개인 사진전람을 열어 80여점의 촬영작품과 진귀한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전람회의 참관 인수는 4,600명을 넘었다.
 

로전사 한룡철과 그의 부인

    리장삼의 헌신과 공헌은 광범한 대중들의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연길 좋은 사람’으로 선정되였고 길림성 새일대관심사업 특수공헌상과 새일대관심사업선봉(关工先锋) 등 영예를 받았다. 그의 사연은 《인민일보》, 《해방군보》, 《대공보》, 《문회보》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되였고 그의 부분 작품들은 길림성 제대군인사무청, 연변조선족자치주 서류관, 연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였다. 작품 〈가장 아름다운 길림의 로전사〉는 제23회 길림성촬영예술전에서 길림이야기 부문  금상을, 〈백명 로전사 군상〉은 길림성 ‘로전사의 자취를 찾고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홍색정신을 전승하자’ 주제예술작품전에서 1등상을, 〈불타는 기억〉은 중국홰불잡지사에서 주최한 ‘성세의 빛과 어둠, 홰불의 본보기’ 촬영콩쿠르에서 2등상을 받았다. 리장삼의 이런 사적은 CCTV-4 채널의 ‘대동북(大东北)’에 올랐다.
    올해는 중국인민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에 리장삼은 연변인물연구위원회와 연길시로구역건설촉진위원회(延吉市老区建设促进会)의 지지하에 특별한 기념활동을 기획했다. 실내 전시의 한계에서 벗어나 30명 로전사들의 초상화를 두개의 실외 기둥광고판(室外擎天柱广告牌)에 선전영상자료로 올렸고 연길백화청사 광고전광판(广告显示屏)과 12개 BRT정류장 광고판에 스크롤형식으로 한달 동안 방영하였다. 또한 백명 로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두루마리 화폭을 제작하여 화룡, 훈춘, 돈화, 도문 등지와 연변대학에서 순회전시를 하였다.
    로전사들을 촬영하는 려정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장면들이 늘 그의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해빛이 정수리를 뜨겁게 비추던 어느 무더운 날, 두 눈을 실명한 로전사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와 로전사의 안해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데 로전사의 안해가 자기 집 창문 쪽을 가리켰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 로전사가 선물로 받은 군복을 입고 서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두 눈으로 무엇을 찾으려는 것일가? 앞을 향해 흔들어주는 저 두 손의 방향은 어딜가? 순간 목이 꺽 멘 리장삼은 창문을 쳐다보며 무릎을 꺾었다.
    또 한번은 한 로전사의 취재를 마치고 나와 차 열쇠를 찾으려고 호주머니를 더듬었는데 구겨진 현금이 손에 잡혔다. 자기는 현금을 주머니에 넣은 적이 없었기에 로전사의 안해가 몰래 넣어준 것이 분명했다. 리장삼은 로전사들을 취재하러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간 적이 없다. 누구를 만나러 가든 경의의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꼭 사들고 갔다. 그러나 이 돈이 그런 물건 값이 아님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리장삼이 돈을 돌려주려고 다시 되돌아갔을 때 대문밖에서 로전사의 안해가 그가 떠난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는 로전사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아껴주는 리장삼에 대한 깊은 고마움과 믿음의 표현이였던 것이다.
    홍색기억을 찾아다니는 려정에서 리장삼은 로전사들로부터 같은 말을 여러번 들었다. “내가 싸웠던 그 지역들을 다시 돌아보고 싶지만 이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로전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임을 리장삼은 직감했다.
 

로전사 한룡철과 그의 부인령혼이라도 목숨 걸고 싸웠던 그 땅을 둘러보길 바라며

    지금까지 그가 만난 300명의 로전사중 아직 살아계신 분은 10명에 불과하다. 리장삼은 로전사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세상을 뜬 로전사들의 젊었을 때의 사진들을 수집하여 1.5m 크기로 확대하여 액자에 담은 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변방지역에 세워놓았다. 그들의 령혼이라도 오늘의 그 땅을 둘러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금도 그는 로전사들이 다시 가보고 싶어했던 지역을 찾아다니며 이 뜻 깊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리장삼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로전사들을 관심하며 홍색자원을 발굴하고 홍색유전자를 계승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이 결실을 맺어 후대들에게 진귀한 력사적 재부를 남기고 홍색정신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술세계》 2025년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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