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ysdt 블로그홈 | 로그인
예술세계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월 2026 >>
    123
45678910
11121314151617
18192021222324
25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 -> 신문잡지/책 -> 대중잡지

나의카테고리 : 2025년

박송철, 음악으로 빛나는 삶
2025년 12월 09일 15시 39분  조회:70  추천:0  작성자: 예술세계
박송철, 음악으로 빛나는 삶
□ 최향미


 

연변의 문예계를 수십년간 뜨겁게 달군 한 예술가의 열정이 예나 지금이나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박송철지휘가는 처음 지휘봉을 잡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연변 음악의 력사를 노래하며 관객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새겨왔다. 그의 지휘봉은 시대의 숨결을 아름다운 선률로 담아냈고 합창과 관현악의 세계에 혼을 불어넣었다. 고통과 열정, 헌신이 어우러진 그의 음악려정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연변산꽃합창단의 전신은 2007년에 세워진 연변음악가협회 합창단이며 2013년에 연변중화문화촉진회에 소속되면서 ‘연변녀성산꽃합창단’으로, 2018년에 ‘연변산꽃예술단’으로 개칭하였다. 합창단 활동을 두고 말할 때는 흔히 연변산꽃합창단으로 통한다. 이곳에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연변의 예술을 사랑하는 중로년애호가들은 한목소리로 노래하며 만년의 열정을 불태운다. 박송철지휘가는 합창단 단원들에게 한 음절 한 음절 정성껏 가르치며 합창의 진수를 전했고 단원들은 그의 엄격하고 세심한 지도 아래 진정한 합창의 아름다움을 배워간다.
 

황순자 부단장은 박송철지휘가의 얘기가 나오면 감동을 금치 못하군 한다.
 
“박송철선생은 낮에는 합창대를 지도하고 밤에는 음악을 편곡하지요. 마치 소학교 학생을 가르치듯 한 소절씩 정성껏 배워주죠. 우리 합창단 단원중 70%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열정만으로 참여한 분들이지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모두에게 세심하게 가르쳐줍니다. 박지휘가님이 없었다면 이 합창단이 존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박송철지휘가의 세심한 지도 덕분에 연변산꽃합창단은 연변의 대표적인 녀성합창단으로 성장했다. 2008년, 복건성에서 개최된 해협량안합창절에서 동상을; 2011년, 길림시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 기념 길림성합창경연대회에서 2등상을; 2013년, 소주시에서 열린 전국새해맞이예술재능공연에서 특등상을; 2017년, 대만에서 열린 제10회 해협량안합창절에서 동상을; 2019년, 민족풍운계렬활동 및 전통문화 재예전시공연—타이 순회공연에서 금상을; 2021년, 장춘에서 열린 다민족 100인 합창단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박송철지휘가는 어떻게 이처럼 뛰여난 음악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가?
 
이에 대해 연변청송문학예술관 류영근 관장은 세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꼽았다. 첫째, 박송철지휘가는 조선 전통합창곡부터 중국 풍격의 곡목, 서양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쟝르의 곡을 선 보인다. 그는 합창단의 특성과 력량을 정확히 파악하여 최적의 곡을 선택한다. 둘째, 박송철 지휘가의 남다른 지도방식이다. 그는 악보 분석부터 반주 준비, 집중해야 할 부분까지 사전에 꼼꼼히 체크하며 항상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는 지도방식을 고수한다. 셋째, 단순한 음악지도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이다. 40여명의 아마츄어 단원들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박송철지휘가는 이 어려운 과제를 거뜬히 해결하여 ‘조직 관리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혼성합창단과 달리 녀성합창단만의 조화로운 음색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아름다움은 박송철지휘가가 연변산꽃합창단을 통해 이루고저 했던 음악적 비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연변산꽃합창단의 성공은 박송철지휘가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박송철지휘가는 어떻게 음악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을가?
 
그의 음악 려정은 어린시절부터 시작되였다.
 
“제 음악인생은 형님과 삼촌의 영향으로 시작되였습니다. 삼촌은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분이였고 형님은 악기연주에 재능이 있었죠. 명절마다 열리는 문화행사에서 저는 형님을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였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박송철지휘가는 소학교와 중학교 시절 음악반에서 리론과 연주법을 배웠고 이후 연변가무단에서 호른선생님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호른선생님의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지도 아래 그는 음악의 깊이를 리해하기 시작했고 연변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며 실전경험을 쌓았다. 더 높은 수준의 음악을 갈구하던 그는 중앙음악학원 통신반에서 4년간 작곡과 음악 리론을 공부하며 탄탄한 기초를 다졌다. 이 시기는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값진 나날이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8년, 암이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이 그를 덮쳤다. 건강이 무너져 내리는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병상에서도 악보를 펼치고 머리속으로 선률을 그려보았다.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밝히는 등불과 같았습니다. 몸이 아플 때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음악을 더 연구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오롯이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같았어요. 가끔은 눈물로, 때론 분노로 화음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음악은 제 삶을 연장시켜준 령약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창작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음악이 주는 힘으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또한 그 뒤에는 한 녀인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다. 생사를 건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그의 안해는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였다. 그녀는 단순히 음식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건강식으로 남편의 회복을 도왔다. 그녀의 정성은 보이지 않는 치료제가 되여 남편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였다.
 
“무엇보다 음악이 남편을 살린 것 같아요. 남편은 음악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으며 오로지 음악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음악이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안해의 헌신과 음악의 힘으로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피아노 건반 우에서 흐르는 선률은 고통을 잊게 하는 위안이자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되였다. 박송철지휘가는 지금까지 수십수의 창작곡을 대중들에게 선 보였다. 〈민들레 홀씨〉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피여난 아름다운 예술의 결실이다. 이외 〈진달래여 연변이여〉를 비롯한 다른 창작곡들도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며 연변 음악계의 소중한 재부로 남았다. 비록 곡에 담긴 정서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사랑을 담고 있다.
 
특히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주년, 60주년, 70주년 등 력사적인 행사에서 대형 광장무용곡을 편곡하여 예술적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대 우에 펼쳐진 선률들은 고향땅에 바치는 사랑의 편지이자 연변문화의 자부심이였다.
 
1급 극작가 김정권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박송철지휘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즉흥적인 창작방식입니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시절인데도 저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 만든 선률을 흥얼거리며 의견을 나누군 했죠. 곡이 완성되면 저를 불러 록음현장에서 함께 들으며 제 의견을 물었고 제가 조언을 하면 즉석에서 수정해 다시 록음하는 등 작업방식이 정말 인상적이였습니다.”
 
연변음악가협회 부주석 김창근선생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대중가요나 민요풍 가요도 있지만 주를 이루는 것은 품격 있는 예술가요입니다. 예술가요 창작은 대중가요에 비해 더욱 정교한 작곡기법이 요구되며 작곡가의 높은 음악적 소양을 필요로 합니다. 박송철작곡가의 작품은 서정성이 풍부하고 우아하며 창의적이고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르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곡들은 작곡기법이 매우 정제되여있어 가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박송철지휘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피아노 조률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수업전마다 악기를 정성껏 다듬는 시간을 가진다. ‘정확한 소리는 모든 음악의 시작’이라는 신념으로 그는 조률을 단순한 작업이 아닌 악기의 령혼과 대화하는 신성한 시간으로 여긴다.
 
“피아노는 습도를 보장해야 합니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민감한 악기라는 점을 꼭 알아둬야 합니다. 더우면 팽창되고 추우면 수축되는 원리에 따라 건조한 겨울에는 줄이 팽팽해집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줄이 끊어져요. 때문에 항상 습도가 적합한지 류의해야 합니다.”
 
피아노 조률을 완벽히 마친 후에야 비로소 합창지도를 시작하는 박송철지휘가, 피아노의 정확한 음높이는 합창단 단원들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오랜 조률경험은 그의 귀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합창단 단원들의 미묘한 음정 변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해내고 수십명의 목소리를 하나의 완벽한 화음으로 이끌어나간다.
“목소리는 악기의 음정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피아노 조률을 철저히 점검해 음정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하죠. 합창단이 피아노의 선률에 정확히 맞춰 노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음정을 완벽히 잡은 후에야 비로소 합창 련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음정과 리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음정이 정확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하모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단원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저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정확한 음악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세심한 주의와 과정이 합창의 질을 결정 짓는다고 믿습니다.”
 
박송철지휘가는 합창단 단원들의 목소리를 악기처럼 소중히 다듬으며 음악을 전수하고 따뜻함을 전했다. 그의 인내심은 단원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꽃 피워주었다.
 
박송철지휘가의 엄격함과 세심함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은 관현악단에까지 이어졌다. 그는 지휘봉으로 음악의 령혼을 깨워 악사들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끌었고 악기들의 소리를 분석하고 조률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갔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음색과 관악기의 강렬한 음색은 대비가 뚜렷하기에 연주시 이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이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려면, 다시 말해서 멋 있으려면 악기중에서 저음악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건축에서 말하는 기초가 여기서는 저음악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때문에 저음악기 연주에 신경을 써주는 것이 지휘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악기의 특성을 꿰뚫는 박송철지휘가의 예리한 통찰력은 현장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조용한 카리스마로 악단의 전반 흐름을 이끌어나가면서 련습을 거듭하였고 날카로운 청각으로 악기 하나하나의 숨소리를 읽어냈다. 결국 모든 소리들이 그의 손짓에 녹아들어 절절한 화음으로 변신하였다.
 
연길시로년대학 관현악단 단장 홍순남은 박송철지휘가의 지도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곡을 련습할 때 박지휘가님은 먼저 음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음악의 흐름과 악절 구성 등 다양한 측면과 더불어 강약 처리, 음악적 감정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설명하죠. 그리고 그 설명에 따라 련습을 할 때는 모든 부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어려운 소절에 중점을 두어 숙련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지휘가의 요구가 높기에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덕에 각 악절을 마무리할 때면 모든 단원들이 음악의 흐름을 제대로 리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지요.”
 
박송철지휘가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악보와 씨름하군 한다. 그의 책상 우에는 늘 다양한 악보와 음악 리론책이 쌓여있다.
 
그는 “련습중에도 좋고 공연중에도 좋고 연주원들이 믿음으로 가득찬 눈으로 저를 바라볼 때면 아픈 것이 다 잊혀집니다. 음악은 최고의 진통제이고 저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동력이라고 봅니다.”라고 고백한다. 병마와의 싸움 속에서도 음악이 준 위로와 힘은 그로 하여금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했다. 이제 주어진 삶은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것을… 그 순간부터 박송철지휘가의 발걸음은 묵묵히 사회를 위한 봉사의 길로 향했다. 그는 자신을 살려준 음악으로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저 했다. 한곡한곡 악보를 만들고 한 소절 한 소절 멜로디를 생각하며 그는 하루하루 주어진 선물 같은 인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안해 장선옥은 항상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제가 항상 얘기하지요. 좀 무리하지 말라고요. 남편은 100% 음악봉사자예요. 어떤 분들은 저한테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서 어디에다 씁니까?’라고 묻기도 해요.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죠. 남편이 돈 한푼 따지지 않고 봉사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잘 믿지 않아요. 합창단 활동도 그렇고 지금까지 의뢰 받은 곡들의 편곡비만 계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일 거예요. 그런데 다 무료봉사였죠. 계속 무리하다가 건강까지 해칠가 봐 걱정돼요. 앞으로는 봉사도 좋지만 건강도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봉사의 삶이 그의 음악인생에 새로운 활력소로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을 위한 공연과 후배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예술의 본질을 깨달았고 이는 그의 음악에 깊이와 진정성을 더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11일 오후, 연변산꽃예술단 창립 30주년 기념 음악회는 그 꿈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전이였다. 30년의 세월을 담은 특별한 순간, 모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맞이했다.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탄생시키고 박송철지휘가의 오랜 꿈이 이 무대에서 찬란한 꽃으로 피여났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변산꽃합창단은 연변의 문화예술을 빛내준 여러분의 사랑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무대는 모든 단원들의 열정과 관객들의 응원이 만들어낸 값진 결실입니다. 특히 이번 음악회에서 저희는 전통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로 련결하려고 노력했는데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가장 큰 보람이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역문화의 정수를 전하는 합창단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손짓 하나에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합창의 하모니, 열정으로 빚어낸 찬란한 순간들, 박송철지휘가의 삶은 오롯이 음악으로 새겨진 수십년의 고집이였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연변의 문화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며 모두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진정한 예술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하는 박송철지휘가, 음악이 동반된 그의 려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예술세계》 2025년 제5호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 리장삼, 로전사들의 소중한 기억을 렌즈에 담아 2025-12-24 0 49
5 박송철, 음악으로 빛나는 삶 2025-12-09 0 70
4 배움의 길 2025-06-20 0 159
3 연변군중예술관, 전통문화예술의 현시적 가치 재현 2025-04-27 0 126
2 평범한 일상, 희망의 노래—뮤지컬 《희망아빠트》를 두고 2025-02-21 0 261
1 춘향의 꿈을 찾아서 2025-02-21 0 26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