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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전"(련재 15)
2020년 06월 01일 04시 54분  조회:329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15. 못 잊을 기생
1994년 음력 1월 2일이다.
나는 한국의 이상래 박사, 이종일 교수, 안상덕 박사의 안내하에 3대루의 하나인 경상남도 진주의 남강 기슭에 자리한 촉석루를 유람했다. 촉석루는 고려말에 김춘광(金春光)이 세운 웅장한 목조루각이다.
이날 나에게 눈도장이 찍힌 것은 촉석루 뒤에 우뚝 솟은 의기사당(义妓祠堂)이였다. 의기사당에는 채색으로 그려진 명기생 주론개(朱论介)의 령정이 모셔져있었고 사당 앞 선바위에는 주론개의 애국정신을 노래한 시가 주옥같이 새겨져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론개의 애국절개를 상징하는 참대나무들이 의젓하게 자라고 있었다.
의기사당엔 한(恨)의 피눈물이 슴배여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丰臣秀吉)는 15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반도에 출정했다.
일제놈들은 경상남도 진주성을 함락하고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촉석루에서 승리의 축하연을 열었다.
그 때 왜놈들은 조선의 젊은 녀인들을 끌고 와 흥청망청 술을 마셔대며 희롱하였는데 끌려온 녀인들중에는 주론개라는 기생도 들어있었다
그 날 연회에서 론개는 언녕부터 사무치는 원한이 있었는지라 거나하게 된 왜장을 껴안고 분노에 사품치는 남강에 몸을 던졌다.
나는 의기사당을 돌아본 후에야 론개가 실존인물임을 알게 되였고 기생의 신분으로 나라에 충성한 론개의 애국정신에 매료되여 발걸음을 멈추고 필을 들어 그 자리에서 주론개를 노래한 주옥 같은 시문을 필기하였다.
론 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릿답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라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리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그런데 내가 소홀했던 걸가? 그만 시인의 방명(芳名)이 빠진 것이다. 너무나 유감스러웠다.
나는 촉석루를 떠나면서 아쉬워 몇번이고 다시 뒤돌아보았다. 남강의 푸른 강물은 도도히 흐르고 재빛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의기사당의 상공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날새들도 슬픔과 한에 찬 우리 민족의 력사를 잊지 못하여 의로운 기녀인 론개를 기리는 듯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시대 충절의 본보기인 주론개의 생가와 마을의 복원공정이 1999년말까지 한화 50억원 투자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론개의 생가는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다.
일설에는 론개는 장령의 부인으로서 왜놈 장령을 죽이기 위해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장들의 축연에 참가했다고 하는데 그 진위 여부는 앞으로 연구할 문제이다.
나는 한국 유람을 통해 명기생 주론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였고 론개의 애국정신에 감동을 받아 이 글로 론개를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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