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에 안자(晏子)로 불린 명재상 안영(妟嬰)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수하로 벼슬을 하는 고료를 해임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안영에게 “고료가 그렇게 오래동안 선생을 모시면서 과실을 범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적당한 지위를 주지 못할망정 사퇴시키시니 참으로 합당치 못합니다.”며 극구 말렸다.
이에 안영이 말했다.
“나 안영은 마치 굴곡이 많은 목재와 같이 매우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때문에 반드시 규격에 따라 도끼와 대패로 잘 다듬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목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고료는 나와 함께 3년 넘게 일했지만 한번도 나의 과실에 대해 말하거나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사정이 이럴진대 그를 나의 밑에 두어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느냐? 그래서 사퇴시킨 것이니라.”
어느 부문이나 단위의 사업 성패와 흥망은 간부를 등용함에 공평무사했는가 아니면 불평유사했는가 또는 등용된 간부가 직언, 직필 하는가 아니면 명철보신하면서 ‘찬송가’만 부르는가에 달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2500년 전에 안영이 고료를 해임할 때의 주위 사람들이‘그가 과실을 범한 일이 없었다’, ‘적당한 지위를 주지 못할지언정…’이라며 떠들듯이 오늘까지도 인사배치나 간부를 등용함에서 있어서‘사람을 먼저 책임’지려 하고 간부 고찰 표준이 ‘착오를 졌는가 안 졌는가’를 선제로 하니 문제라 하겠다.
실례로 향급 간부가 착오를 지면 시급 간부로, 공장장직에서 락방되면 국급 간부로 등용되거나 당과 정부의 중요 기관에서 출납, 타자, 운전기사를 지낸 하사들을 다른 단위에 보낼 때 00장이나 00주임 등의 급별을 달아주는 상황도 없지 않다. 하기에 백성들이 그런 ‘특수출신’ 00장이나 00주임을 “안된 00장”이라며 안목에 두지 않는다.
언젠가 연길시 모 단위의 책임자가 본 단위의 평가에서는 ‘100% 만족’평가를 받았는데 시민 사회민주평의에서 말단 3위로 평가되여 연길시규률검사위원회에서 그 책임자에게 통보비판과 함께 반년 간의 고찰 처분까지 주었다.
좋은 신하란 백성의 귀와 입이 되여 백성이 어디를 아파하고 어디를 긁어주어야 하는가를 제때에 있는 그대로 임금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면 제 욕심만 차리려고 임금의 귀를 흐리게 하고 임금의 눈을 어둡게 하는 신하는 간신이라 하겠다.
필자는 상급에 아부하는 간부를 ‘손금 없는 간부’로, ‘장애자’ 간부로 칭한다. 원인은 그들은 늘 상급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예, 옳습니다”, “예, 제가 하지요!”를 읊조리며 두손을 맞잡고 손바닥을 싹싹 비벼대기에 손금이 닳아서 없다는 말이다.
로자의 도덕경에 “믿을 만한 말은 화려하지 아니하고 화려한 말은 믿음성이 적으니라”는 경언이 있다.
다국기업인으로 lBM를 설립한 왓슨의 말로 이 글을 맺는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휴가 때 낚시를 함께 갈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람들만 중용하여 주위를 포진한다면 기업으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찾는 사람은 개성이 강하고 사소한 절차에 구애됨이 없이 사람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직언을 서슴지 않는 그런 인재들이다. 주위에 이런 사람들을 많이 발굴하여 배치하고 또한 당신이 그들의 의견을 인내적으로 듣는다면 아마 조직경영은 매우 순조로워질 것이다.”
길림신문 2017-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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