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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라"고 할까? "편히 가라"고 할까?
2012년 09월 15일 14시 11분  조회:5770  추천:1  작성자: 백화상조
생명의 가는 이에게 "가지 말라" 할까? "편히 가라" 할까?
 


1000여명 임종환자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인간의 죽음을 말한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예쁘게 죽는 사람 없다고…
고독사 두려워 말고 혼자서도 즐겁게 살다가 안전하게 죽을수있는 시스템을 만들라.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질문

"비 오는 아침, 환자의 호흡이 멈추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오후에는 여러 가정을 방문했다. 작은 집, 큰 집, 따뜻한 분위기의 집, 조금은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집. '선생님, 이제 전 죽는 건가요?' '영양제라도 더 놔주세요. 어떻게든 해주세요.' 부딪칠 곳 없는 분노와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3번이나 응급왕진이 있었다."

오츠 슈이치(大津秀一·35)는 호스피스 전문의다.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완화의료 클리닉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본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000명 넘게 임종하고 쓴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21세기북스)가 일본에서 20만부, 한국에서 40만부 팔렸다. 이 책은 후속판이다. 간결한 문장은 여전하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전작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뤘다. 이 책은 '인간은 어떻게 죽는가'를 들여다본다.

◇당신은 TV에서 본 것처럼 죽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암 환자는 마지막 2개월까지 배변·보행 기능을 유지한다. 심·폐질환 말기 환자는 몇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 급속도로 최후를 맞기 쉽다. 치매와 노쇠처럼 진이 빠지게 기나긴 루트도 있다. 어느 쪽이건 남은 수명이 한 달 안쪽이 되면, 주위의 도움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동시에 극심한 권태감이 찾아온다.

수명이 일주일 이하가 되면 자주 의식이 혼미해진다. 시간과 장소가 뒤죽박죽 되고, 가족도 왕왕 못 알아본다. 죽음을 24~48시간 앞두고 최후의 고비가 찾아오는데, 의학의 힘을 총동원해도 이때의 고통은 없앨 수 없다. 이 고비를 넘기면 온화한 시간이 온다. 드라마 주인공은 맑은 정신으로 유언하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가족도 피가 마른다

오츠는 40대 주부의 임종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 장남이 막 숨을 거둔 엄마를 향해 울부짖었다. "지금 죽어버리면 어떡해! 살 수 있다고 해놓고!" 울던 아이를 진정시킨 건 동생이었다. "형, 이제 그만해."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아직 따뜻한 시신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잘 버텨줘서 고마워. 이제 우리는 서로를 위해주면서 잘 살아갈게."

오츠의 경험상,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단번에 "잘 가"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누구나 "가지 말라"고 매달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뒷일은 걱정 말고 편히 가라"고 말하게 된다. 환자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씨가 ○시○분에 사망하셨다"고 선언하는 의료진이 있다. 오츠는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1시간이든 2시간이든 기다려주고 있다.

◇사무라이와 작별하는 법

연로한 CEO가 오츠에게 불평한 적이 있다. "면회객이 밀려들지만, 다들 똑같은 얼굴로 빈말을 늘어놓을 뿐이야." 어느 날 한 청년이 문병 왔다. 청년이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자, CEO가 면박을 줬다. "말도 안 할 거면 뭐하러 왔나. 어서 가게." 청년이 그제야 싱긋 웃었다. "화내시는 걸 보니 여전하시네요."

오츠가 보기에 문병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청년은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갔다. CEO는 두고두고 이때 일을 유쾌하게 회상했다.

메이지 시대의 정객 가쓰 가이슈가 중병을 앓는 사무라이 야마오카 뎃슈를 문병 간 일이 있다. 가쓰는 "감회가 어떻냐"고 물었다. 야마오카는 "이승에서 볼일이 끝났으니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 가쓰는 간결하게 답했다. "그런가, 그럼 편한 마음으로 가시게."(124~125쪽).

◇고독사는 나쁘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그러나 현대인은 좀처럼 담백하게 죽음을 맞지 못한다. 고령화와 핵가족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노인과 함께 사는 사람이 적어졌다. 이런 사회 변화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음의 초보자'로 만들어 버렸다.(108쪽)이런 풍조가 현명할까. 오츠가 보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려면 우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모두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독사를 두려워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고독사는 슬프니까 어떻게든 가정을 꾸리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오츠가 보기엔 현명치 않다. "고독사는 불행하다"고 지레 못박기보다, 혼자서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낫다.

문득 궁금해진다. 오츠는 직업이 '임종'인 남자다. 아무리 많은 죽음을 봐도 그때마다 새롭게 무력감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 환자를 돌보러 힘차게 일어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이 괴롭다는 분들이 많다.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다." 인생은 유한한 만큼 멋지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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