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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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장로주의 전설 리동춘
2014년 04월 28일 16시 08분  조회:5553  추천:4  작성자: 박문희

 

태동하는 꿈

 

사람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는 꿈, 말하자면 집착이라 할 정도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아이템이나 목표가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꿈의 씨앗이라고 한다.

 

2005년 50세의 리동춘이 연변진출을 결심했을때 그의 가슴에서는 20대의 젊은이에 못지않은 꿈이 태동하고있었다. 그 꿈은 무엇이였을가?

 

연길시에서 약 60리 떨어져있는 산간계곡 의란향 련화동의 400헥타르 개활지에 한국의 한 기독교단체와 중국의 한 공산당원이 이끌어가는 조선족민간단체가 협력하여 생태과학의 시대를 선도하는 미래지향의 생태공동체사회를 조성해간다는 꿈이였다. 깊숙한 산속에 펼쳐갈 꿈속의 그림에는 록색산업단지, 생태민속촌이 있었고 생태주택과 별장단지, 로인시대에 대비한 실버타운이 있었으며 초대형 산중호수와 수상공원, 그리고 자연동물 서식지도 있었다.

 

아라비안나이트같은 허황한 공상인가? 하지만 사고하기를 즐기는 머리 하나와 젊은 패기와 미래로 향한 꿈 하나로 1997년 해체위기에 놓인 조선족촌들을 통합하여 조선족 신도시“백두산타운”을 일떠세움으로써 일약 중국 조선족사회의 밝은 별로 떠올랐던 이가 바로 당시 제9기 전국인대대표로 활약하던 흑룡강성 해림시 백두산그룹의 회장 리동춘이였음을 상기하면 이런 의문은 다소나마 풀릴것이였다.

 

당년, 북경주재 우리 민족의 엘리트들이 펼치는 강력한 유세에 못이겨 민족의 소임을 다하고자 친인척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창설한 백두산그룹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결연히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 북경에 려장을 풀었던 리동춘.

 

동북삼성과 북경 사이를 누비며 조선족농촌지도자 한국연수를 수차례 조직하고 농촌진흥을 위한 전국범위의 심포지움도 개최하는 등 조선족 농촌의 후계지도자 양성에 땀동이를 쏟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땅우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서있는것이 아니라 뜬구름우에 둥둥 실려가는듯한 석연치 못한 느낌에 남몰래 고민하고있던 차 리동춘은 뜻하지 않던 일로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연변진출로 인생의 궤적을 바꾸다

 

때인즉 한국두레공동체 김진홍목사가 당시 연길시정부로부터 심산유곡의 땅 400헥타르를 임대하여 추진하던 개발프로젝트가 연변 현지에 파견된 실무진의 불찰로 난항을 겪던중, 때마침 언론을 통해 리동춘의 사적을 접한 김목사가 리동춘을 비롯한 중국조선족사회에 땅을 기부해주는 방법으로 이 난국을 수습해볼 료량으로 리동춘에게 사업요청을 해왔던것이다.

 

“연변으로 들어가서 함께 사업을 해보심이 어떨가요?”

 

결국 리동춘은 김진홍목사로부터 모든 개발권한을 위임받고 우선 100헥타르의 땅을 인수받아 2005년 그 깊은 산속에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를 설립하고 개발사업에 본격 착수하게 되는데 비록 기획중의 프로젝트가 남들 보기에 너무 거창했던건 사실이지만 실제 첫 합작사업으로 택한 품목은 지극히 현실적인 전통된장 생산이였던것이다.

 

그 품목선택의 리면에는 혹 리동춘의 햇내기적 기억이 깔려있었을지도 모른다.

 

1955년 흑룡강성 해림시 한 농사군 집안 7남매중 셋째로 태여난 리동춘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소학교시절 갑자기 알지 못할 원인으로 페결핵과 결핵성 륵막염에다 또 한쪽 다리가 쫄아붙는 이상한 병까지 덮쳐 다들 그를 얼마 못살고 죽는다고 했었다.

 

페결핵은 전염이 되는 병이라 그는 메주덩이를 가득 달아맨 두 간벽사이의 어두운 골방에 자기를 가두어넣고 진동하는 메주냄새와 씨름하며 어머니가 만들어준 메주가루를 일년 넘게 먹으며 버텼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삶의 의욕이 생겨나면서 그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한다. 문제의 다리를 어린 동생들더러 꽁꽁 묶어 단단히 붙잡게 한다음 자체로 수십방의 쑥뜸을 뜨면서 이를 앙다물고 일어서는 연습에 매달린다. 두다리를 와들와들 떨면서라도 기적적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설수 있게 되자 그는 한술 더 떠 겨릅대같이 마른 다리로 아버지가 신던 무거운 구식군용구두를 끌고 비칠거리며 매일 한시간씩 마을둘레를 철벅거리군 했다.

 

이렇게 하기를 일년 여, 그는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특유의 인내력과 위기극복의 지도력으로 스물한살에 공청단 서기를 하고 서른살에는 신합촌의 당총지서기로 되여 촌기업 백두산그룹을 일떠세운다.

 

혼신을 던져 일하는 그의 의지를 떠보기라도 하듯 위기가 또 한번 그를 시험대에 올린다. 40대 초반 몸속 위장에 종양 다섯개가 생겨서 대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러나 민간처방대로 날된장을 밥먹듯 먹으면서 위장을 씻어준덕에 종당에는 무리없이 이승에 남겨진다. 두번에 걸쳐 살아남은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그는 된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저도 모르게 가득 차오른다고 한다.

 

오뉴월에 된서리야 내리든 말든

 

한데 오뉴월에 된서리라더니 김진홍목사가 리동춘사장을 협조하라고 현지에 파견한 일군이 리동춘이 비 기독교인이라는 리유 하나로 협조는커녕 오히려 김진홍 목사와 리동춘이 제정하여 추진중인 사업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훼방을 놓을 줄이야.

 

된장합작공장건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당대문을 닫아걸고 들어가지 못하게 저지하는가 하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경찰에 신고하고 쩍하면 연길시와 자치주정부에 찾아다니면서 리동춘이 저들의 기업전체를 빼앗으려 한다고 고발하는 통에 리동춘은 수년간 파출소로부터 공안국 안전국 당기률검사위 등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은 일이 얼마였는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김진홍목사가 리동춘에게 기부한 100헥타르의 땅도 기부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린터였다. 공장도 땅도 없어져 아주 거지신세가 된것이다. 불행중 다행이랄가 김진홍목사는 동료들 앞에서 “리동춘은 우리가 필요해서 모셔온 분인데 그를 이런 곤경에 처하게 하여 너무도 안타깝다”면서 림시공장을 짓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도록 한화 2,000만원을 지원해주어 그나마 엉덩이를 들여놓고 된장생산은 할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였다. 그러나 암만 역경에 처해도 굴할줄 모르는 리동춘은 끈질긴 성미와 함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나이였다.

 

“합작이 안되면 우리 단독으로라도 하자! 크게 할수 없으면 작게라도 하자!”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과 끈기있는 도전정신으로 기운을 추스르며 자그마한 집에서 된장 개발과 생산을 견지하는데, 고마웁게도 민들레마을 전통된장을 알아주는 연변소비자들로부터 주문이 꽤 자주 들어오는 편이였다. 회사의 녀직원을 시켜 뻐스를 타고 집집이 배달을 다니게 하면서 얼마 안되는 수입으로 연명을 해오던 일을 리동춘은 가끔 옛말처럼 외우군 한다.

 

된장의“오덕”문화, 우리 조선족은 된장을 많이 닮아있다

 

어려운 와중에도 해마다 전통된장축제를 치르면서 관련연구를 지속해오는 가운데 “장인합일 오덕문화(酱人合一五德文化)”의 리념을 확고히 수립하게 되며 아울러 그는 개량된장이 아닌 전통된장문화를 끝까지 지켜내기로 작심한다.

 

그의“오덕문화론”에 따르면, 된장은 령성(靈性)이 스며있는 식품인데 그 령성인즉 “5덕”이라는 것, 요컨대 다른 음식속에 섞여도 자기의 맛을 잃지 않는 화이부동 본성고수(和而不同 本性固守)의 단심(丹心)문화, 다른 음식과 잘 조화하면서 자기 맛을 내는 구동존이 관후포용(求同存異 寬厚包容)의 화심(和心)문화,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렬성순화 화목공존(烈性淳化 和睦共存)의 선심(善心)문화, 기름기와 비린내를 제거하는 거성제유 렴결봉공(驅腥除油 廉潔奉公)의 불심(佛心)문화, 오래 두어도 변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기능으로 승화하는 항구불변 송백지조(恒久不變 松柏志操)의 항심(恒心)문화! 이것이란다.

 

이 “오덕”은 우리 중국조선족의 특성과 너무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우리 조선족은 150년이나 중국속에서 다른 민족과 어울리면서 살아왔지만 종래로 자기의 문화를 잃은적이 없습니다! ”이런 “오덕”이 있기에 우리 조선족은 자기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중국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꿋꿋이 살아올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템은 오아시스, 장로주 일거에 국가급브랜드로

 

“된장문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생태된장 개발의 큰 꿈이 있었기에 2008년의 “연변생태문화예술협회”의 창설과 그 이듬해 “민들레표”전통된장 무형문화재의 출원 등록이 비로소 가능했음은 그 누구라도 짐작할수 있을터이다. 전통된장의 성, 자치주“무형문화재”등록은 기실 된장술의 탄생을 예고한 전주곡이였다.

 

한차례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하였던 조선의 한 과학자가 우리민족의 음식중에서 두가지 식품이 오래 두어도 영원히 변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맛과 기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발효식품인 전통된장과 술이며 이 두가지를 결합시키면 세계적 브랜드창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된 리동춘은 “바로 이거야!”하며 두 손벽을 짝!소리나게 마주쳤다. 연구 실험 생산 성공의 연결고리는 이음새가 탄탄하고 얼음에 박밀듯 거침이 없었다.“오덕(悟德)”장로주 발명특허를 출원한게 어제같은데 어느새 시중 소비자들 속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판매량을 10만 상자에 훌쩍 끌어올리고 두만강지역 국제투자무역박람회에서 국내외 여러 회사와 무려 3000만원에 달하는 판매계약까지 체결했으니 리동춘 자신마저 혀가 내둘릴 지경이였다.

 

2012년 5월 국가급간행물《중국브랜드》잡지사와 민들레의 전략합작파트너관계가 이루어지고 "오덕표"장로주는 일약 국가급브랜드로 승격했다. 이 소식에 접한 상해로마방(上海老磨坊) 그룹의 보스 오가빈은 즉시 불원천리하고 연길로 날아왔다. 공장과 기지를 며칠동안 깐깐히 돌아보면서 오가빈은 거대한 중국의 수천년 술양조력사를 바꾼 이가 어찌하여 중국의 동북변강 오지에서 나올수밖에 없었는지 심사숙고해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한다.

 

어쨌거나 장로주에 대한 그들의 칭송은 한결같았다. 술과 된장의 융합, 이는 수천년 양주리념의 돌파이고 술에 영양가를 부여한것 역시 수천년 양주공예의 돌파라는 것. 술을 마시면서도 숙취의 고통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양을 흡취할수 있음은 그 자체가 일대기적이라는 것.“오덕표”장로주의 출현으로 중국의 무숙취 배갈생산의 새 기원이 펼쳐졌다는 것.  

 

무지개 같은 전설이나 진배없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던 리동춘이였다.

 

이어지는 된장꿈

 

된장술과 민들레술, 블루베리(蓝莓)술 등 계렬영양형“장로주”개발에 이어 연변의 지방특산물들인 사과배와 복분자로 사과배된장술, 복분자된장술 등 계렬상품도 개발해 출시한 리동춘은 올해의 된장축제행사는 여러 형제민족이 공동히 참여하는 “민속전통주축제”로 한다는 발상이다.

 

사과배된장술, 도라지된장술, 더덕된장술, 홍경천된장술...어느 술이든 된장과 만나면 기이한 변화가 일어난다니, 얼마나 신기한가...동북아의 “노란 자위”황금의 삼각주인 연변땅에 꿈씨를 심고 싶다는 리동춘, 이제 록음이 우거진 연변대지에 보다 시원한 미래가 펼쳐지려나보다.※

 
<
문화시대> 2014년 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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