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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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또 다른 이름-사랑>
2022년 12월 17일 10시 54분  조회:196  추천:2  작성자: 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사범학교를  졸업한 애숭이 처녀시절, 나에게는 아이들의 훌륭한 계몽교사로 되리라는 포부가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쌓으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던 나에게 어느  갑자기 청천벽력과도 같은 불행이 닥쳐왔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쓰러져버린 것이다. 후사를 각오하라는 의사의 말에 우리 가족은 지옥을 헤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생이 수술을 받은  한참 지나 나는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 한편을 보게 되였다.

 

“오늘 나는 아들애의 생명을  대수술—골수이식수술에 앞서 부모로서의 담보싸인을 하여야 했다. 허나 위험 확률이 성공 확률보다  높다는 의사의 말에 손이 떨려 좀체로 서명할 수가 없었다. 13살  아들녀석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마냥 이제 다시는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어린 것이 모진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얼마나 좋을가. 어쩌면 영원한 리별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예감에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쯤, 아들애는 수술실에 옮겨졌고 흐릿한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당시의 정경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동생을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으로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바삐 드나들었다. 

“아니, 혹시?” 가슴을 조이며 몇번이고 붙잡고 물었는데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여섯시간을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데  간호사가 나오더니 눈물을 쏟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상태가 위독해져 정신을 잃기 직전에  어린 것이 글쎄 “우리 가족들이 속상해할 테니 절대 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간절히 한마디를 남겼다는 것이다.

생명이 경각에 이른 순간에조차 응석 대신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스럽고 착한 애가 세상에 몇이나 될가?

아버지의 일기는 계속되였다.

 

“죽어가는 자식의 가냘픈 모습을 보며 아버지로서 아무 것도 해줄  없는 자신이 저주롭기 그지없다. 부모로서 치료비마저 지불할  없어 여태 수술을 미루어오다가 상태가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수술을 받게 하였으니…  엄청난 빚을 가난한 농민인 내가 무슨 수로 갚는단 말인가? 수술후의 영양보충은  어떻게 시킨단 말인가? 

아, 혼란스럽다! 아들아, 제발 살아서 나와다오…”

 

눈물로 얼룩진 아버지의 일기를 읽노라니 가슴이 미여지는  같았다.

 

시상식에서 상장을 받아안고 (오른쪽 두번째)

 

처음으로 백혈병 진단서를 받아쥔  가족의 처참한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초들초들 말라버린 입술로  한모금 마시지 못한  시들어가고 있는 불쌍한 동생, 너무나 갑작스러운 타격에 심장병이 발작하여 인사불성이  어머니, 떨리는  손으로 의사를 부여잡고 무작정 자신의 피를 빼서라도 어린 자식을 살려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년로한 아버지, 이토록 처참한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던 22살  나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같았고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절망을 헤쳐나가리라 이를 악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경을 헤매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생과 막대한 경제난으로 휘청거리는 부모님은 절망에 빠져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있을가?

이런 고민으로 애간장을 태우던 어느 날, 동생이 조금 차도를 보이자 나는 동생의 손을 이끌고 부모님에게 편지 한통을 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우리 부모님께: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니! 항상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한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게 사시는 두분의 미더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자식들은 자호감을 느낍니다. 자라나면서  누구보다 훌륭한 성적, 헤아릴  없이 많은 상장과 영예를 따내며 남들의 부러움을  때마다 이토록 예쁘게 낳아주시고 옳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날  있도록 인도해주신 우리 부모님이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비록 평범하게 살아왔음에도 분명 가난한 삶이 아니라 풍요롭고 성공한 삶이였다고 우리는 긍정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식농사를 잘한 것이 영원하고 진정한 것이니까요!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인간이 살아가는  있어 가장 필요한 것, 즉 정직하게 살며 례의를 지키고 남에게 베풀  아는 훌륭한 도덕품성을 가르쳐주셨으니 그것이  삶의 지혜이자 유력한 무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금전과도 바꿀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  어떤 자책도, 비관도, 한탄도 마십시오. 아들이 비록 지금은 병마의 시달림을 받고 있더라도 사회에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떳떳하고 행복한 마음의 부자입니까?

우리 둘은 이제 다시 태여나도 아무런 주저 없이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딸로 태여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힘과 마음을 합쳐 고통을 딛고 일어서 행복한 가족의 미담을 엮어봅시다!

아들딸, 올림.”

 

 편지를 받은 이후로 부모님은 많이 달라졌다. 더는 우리 앞에서 눈물을 이지 않았다.

이토록 자식이라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으려는 우리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그런 부모님들의 로고를 조금이나마 리해하고 함께 감당하고 싶어하는 우리 자식들의 작으면서도  효성의 마음, 서로가 아픔을 감싸주고 보듬어주고 힘이 되여주려고 모지름을 쓰는 우리 식구들의 끈끈한 가족애가 하늘을 울렸던지  무서운 병마도 동생을 우리 곁에서 앗아가지 못했다.

오래동안 투병생활을 이어가면서 수없는 고통과 번뇌를 감내해야 했음에도 우리 네식구는 오직 사랑의 힘으로  크나큰 시련을 이겨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엄숙하게 나에게 당부하였다.

“사위도 자식이라는데  네가 든든한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소원이다!”

동생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속을 태워온 부모님의 의사를 내가 어찌 거역할가. 나는 냉큼 맞선을 보았다. 
 

그이와 나는 지인의 소개로 어느 조용한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얼굴을 들어 남자를 얼핏  순간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앉은키는 큰데 겨릅대처럼 말랐고 게다가 안경까지 끼고 있었다.

‘뭐야? 남편이  사람이 이렇게 비실비실하면 싫은데. 게다가 시력도 나쁘네. 그리고  보러 오는 남자가 단추도 잠그지 않고 나오다니. 상대방에 대한 례의도 없는 사람이네.’

이렇게 속으로 저울질하고 있는데  남자가 입을 열고 한다는 첫마디가 “저, 죄송한 대로 솔직한 말씀 한마디 드려도 될가요? 저는 화장을  녀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자연미가  좋지 않습니까?”라는 것이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워낙 얼굴화장에 신경을 쓰는 편인 데다 선을 보는 날인지라 분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두껍게 발랐으니…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자기도 안스러웠던지  남자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음식은 어떤  좋아하는지요? 전 돼지고기를 좋아합니다. 하루 세때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나는 말고기든 당나귀고기든 심지어 기름개구리까지  먹어도 유독 돼지고기만은  먹는다. 아니,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돼지고기가 들어갔다 싶으면 국물만 봐도 코를 싸쥐고 밀어놓는다. 

새초롬해 앉아있는 나의 표정을 눈치 챘는지 남자는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바로 작별인사를 청했다. 얼씨구나 잘됐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마음에 들면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텐데  아무  없이 그냥 보내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만날 의향이 없다는 거지? 재수 없네!’

자존심 때문에 이렇게 찜찜하게 끝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속시원히 튕겨주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남자 쪽에서 먼저 만나자는 련락을 보내왔다.

‘그럼 그렇겠지, 내가 누군데, 너 오늘 녀자한테 거절당하는   봐라!’ 나는 쾌재를 부르며 약속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남자는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만나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는커녕 도리여 

“소개해주신 분이 하도 다시 만나보고 결정 지으라고 권고하셔서…”라며 말끝을 흐리우는 것이였다.

‘그러니까 뭐야? 자기는 정리하기로 생각이 다돼있었는데 남의 낯을 봐서 하는수없이 다시 나왔다는  아니야? 이 남자 웃기네! 난  좋아 나온  아나? 그래, 오늘 어디 한번 당해봐라.’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하자니 소개시켜준 분의 체면도 있고 해서 렬악한 우리 친정집 가정배경을 실토정하면 십중팔구 저절로 물러나 줄행랑을 놓을 것이라 믿고 입을 열었다.

“한가지 알려드릴  있습니다. 저에게는 열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백혈병진단을 받고 골수이식수술을 금방 받은 터라 집에서 엄청난 빚을 졌고 심지어 우린 집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살핌을 받으며 삶을 유지해야 하니까 큰딸인 제가 모든 부담을 도맡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반응을 살펴보았더니 원래는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던 남자의 실눈이 화등잔 만해지더니 목석이 되는 것이였다.

‘그래, 놀랄 만도 하겠지. 이제 정신을 차리면 핑게를 대가면서 거절을 하려고 식은땀을 빼겠지. 더구나 권세 있는 부모 슬하에서 가문의 유일한 대학생으로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귀공자라니  같은 최악의 조건을 가진 녀자를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을 거야! 호박 쓰고 돼지굴에 들어갈 머저리가 어데 있을라구.’

어쩌면 나조차도 스스로  밉살스러운 남자의 립장을 리해할  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을  쯤, 그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꺼냈다.

“사업을 잘하려고 무척  쓰고 아주 락천적인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헌데 어린 나이에 그토록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도 사업에 의연히 열중하는 그런 강한 분인  미처 몰랐습니다. 명랑하여 행복하기만   알았는데. 제가 혹시 사정을 모르고 얘기중에 아픈 곳을 건드렸다면 량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에게  고통을 분담할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면 먼저 친구 사이로라도 좋습니다. 제가   있는 범위내에서 진심으로 돕고 싶습니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뜻밖의 다정한 말에  마음은 옴짝달싹 못하고  남자에게 사로잡혔다.

나의 가장 아픈, 가장 여린 곳을  사람이 감싸주려고 하지 않는가? 용기를 내여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얼마나 진지한지, 꽁꽁 얼었던  마음이 삽시에 녹아버렸다. 훌륭한 남자에 근접하는 멋진  남자!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새롭게 다가오는  남자!

안경을 써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한쌍의 실눈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다보니 저렇게 되였겠다는 리해심으로 바뀌였고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꾀죄죄하던 모습도 대뜸 가식이 없고 대범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말하여 언어예술이 아쉽다고 보이던 것조차 솔직하고 털털하여 남자답고  있어보였다. 이러니 어떻게  사람을  이상 거절할  있으랴! 나 스스로도 자신의 돌변에 당황할 정도였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련애는 짝이 기운다는 뭇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으나 장애를 딛고 더욱더 무르익어갔다.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였고 결혼후에도 남편이 련애시절의 낙언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지켜주어 내내 고맙기만 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남편은 가난한 우리  살림 때문에 장모가 잡아주는 씨암탉 한번    없이 만날 김치에 시래기국 신세를 면치 못했고 변변한 대접 한번 받아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자기 월급에서 아껴쓰며 모은 돈을 달마다 처가에 생활비로 보태주었다. 그런 남편이 마냥 고맙기만 했다.

그런데 한동안 남편이 며칠 련속 늦게 귀가하는 것이였다. 나는 그런 남편이 야속해났다. 동생이 주기적으로 외지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시일이 훨씬 지났는데도 막중한 비용을 미처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일피일 치료날자를 미루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나는 동생의 병이 악화될가  송곳방석에 앉은듯 불안하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힘이 되여주지는 못할망정 저녁마다 어깨가  처져서 늦게 돌아오는 것이였다. 자연스레 나의 울분은 애꿎은 남편한테로 돌아갔다.

‘애당초 아예  많은 남자나 찾아 시집 갔더라면 동생을 살릴  있었을 텐데, 손등이 다르고 손바닥이 다르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거구나.’

불쌍한 동생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신세가 가증스러워나며 생활에마저 권태를 느끼게 되였다. 나는 반찬도 대충 있는 것으로 때우고 지어 남편의 빨래마저 제때에 해주지 않았다. 그것으로 남편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7시가 다되여서야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집문에 들어서더니 밥부터 찾는 것이였다.

“흥, 내 속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데 당신은 웃음이 나와요? 정말 너무해요. 여직껏 저녁도  드시고  하다  거예요? 남은 밥은 밖에서 식사하는  알고  버렸어요.”

나는 매몰차게 내뱉고 찬바람을  일구며 방문을  닫아버렸다. 나의 사나운 기세에 억눌렸는지 남편은 식사도 못한  거실 쏘파에서 밤을 보냈다.

그런데 이튿날, 어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얘야, 어제 사위가 여기에 다녀왔네라. 글쎄 사처에서 돈을 꾸어다가 갖다주며 처남 병치료를 떠나라고 재촉하더구나. 네가 기다린다고 언몸을 녹이지도 못한  저녁도 마다하고 선자리로 돌아갔다. 원 미안해서…”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밀려오는 자책감에 이어 사랑의 난류가 가슴에 스르르 와닿았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무작정 남편 단위로 달려갔다. 

그런데 나를 더욱 궁지에, 아니,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일이  있을 줄이야! 길에서 남편과 친한 동료 분을 만났는데 “며칠전에 자원적으로 의무헌혈을 했으니 요즘 많이 피곤하고 힘들 거요. 단위에서 영양보충하라고   보태주었으니 닭알이라도 사서 대접해주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네? 헌혈이요?”

몽둥이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아니 그럼, 피를 뽑아서 허약해진 몸으로 돈을 꾸러 사처로 뛰여다녔단 말인가! 더구나 영양보충하라는 돈까지 모조리 우리 집에 가져다주고…’

아! 내가 이토록 너그럽고  깊은 남편에게 앙탈을 부리며 야속하게 굴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가? 후회, 감동, 속죄의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말을 하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여러가지로 궁리하던 끝에 나는 하얀 백지에 큼직하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는 글을 쓰고 접어서 모자처럼 만들어 머리에 썼다. 그리고 문가에 정중하게 서서 식당 웨이터처럼 남편을 기다렸다. 

익숙한 발걸음소리와 함께 문을 떼고 들어선 남편이 광대 같이 꾸민 나를 보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나를 와락 껴안아주었다.그 한없이 넓은 어깨로  얼굴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그 이한테서 사람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음을 페부로 느낄  있었다. 

울어서 눈물, 코물로 범벅이  나에게 남편은 “이런 멋진 모자를 만들  있는 총명한 녀자는 아마 당신밖에 없을 걸, 정말 보기 좋구만.”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렇게 변덕 많고 엉뚱한 안해와 살면서도 마냥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남편, 그런 미더운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분은 분명 하늘이 나에게 특별히 내려준  인생의 수호천사일 거야!’

어느덧 동생이 백혈병으로 투병생활을 해온 지도 20년이 다돼온다. 그  세월을 우리 가족은 부모자식간의 조건 없는 사랑과 남편과 안해 사이의 애틋한 부부 사랑, 훈훈한 가족애로 병마와 싸워 경이로운 하루하루를 맞아오고 있다.

 비록 의학적으로 백혈병에 한해 완전히 낫는다는 확진을 못하기에 우리는 아직도 동생의 백혈병이 재발할가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 더는 백혈병을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함께 헤쳐나갈  있는 끈끈한 가족애가 있으니까!
 

그래서 가족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수상소감

최보라 (최미화, 연길) 

 

 

13살 난 어린동생이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고 온 가족이 좌절과 고통에 빠졌을 때 내 인생에 ‘수호천사’처럼 등장하여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준 무던한 남편의 사랑과 자식의 병간호로 심신이 지친 부모님들께 자식으로서 용기와 힘을 실어드리고저 했던 우리 남매의 소박한 효도의 마음이 불치병도 이겨내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이 소중한 것이 바로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이며 그 사랑이야말로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낼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무기가 아닐가싶습니다. 

지금 이 시각도 가족의 아픔으로 고통을 겪고있을 환자 가족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고저 썼던 저의 글이 전국애심녀성포럼 ‘애심녀성컵’ 제5회 생활수기 응모에서 가작상에 당선되여 빛을 보게 되여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앞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수 있는 글을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변녀성》 2019년 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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