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고 기치로 씨가 발굴한 윤동주 사진. 현존하는 윤동주 최후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26/c2e2ef98-7838-4652-b000-89cb07fc1ab4.jpg)
다고 기치로 씨가 발굴한 윤동주 사진. 현존하는 윤동주 최후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 [연합뉴스]
기치로씨는 이날 공개된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윤동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뒤 "윤동주의 시를 그대로 읽고 싶어 한국어도 공부했다"고 했다.
!['생명의 시인 윤동주'의 작가 다고 기치로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찻집에서 열린 한국어판 출간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0년 넘게 윤동주의 삶과 시를 취재한 그는 일본 NHK에서 PD로 일하며 KBS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하기도 했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26/bba133ad-f2de-4d01-a33c-e8bbf9c4944d.jpg)
'생명의 시인 윤동주'의 작가 다고 기치로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찻집에서 열린 한국어판 출간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0년 넘게 윤동주의 삶과 시를 취재한 그는 일본 NHK에서 PD로 일하며 KBS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그는 현존하는 윤동주 최후의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을 발굴하기도 했다. 기치로씨는 "윤동주는 부끄럼을 잘 타는 성격이라 조선에서 찍은 사진에는 늘 가장자리에 있다. 그런데 이 사진에선 앞줄 가운데에 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윤동주를 위해 일본 친구들이 송별회를 해줬고, 친구들이 주인공을 윤동주를 가운데에 서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치로씨에 따르면 윤동주는 이날 '아리랑'을 불렀다. 당시는 조선어로 '아리랑'을 부르는 게 금지였던 때였다고 한다.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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