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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천천히 건너는 사람과 다리를 발빨리 건너는 사람
2018년 03월 20일 00시 09분  조회:2361  추천:0  작성자: 죽림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안 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이성선(李聖善) 시인(1941~2001. 5)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Keehwan Kim(F) 제공
Keehwan Kim(F) 제공

위의 시의 두 시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기억건대,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가나 투사가 되고 자기는 늘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예술가나 종교인이 된다. 옳다는 신념 없이 싸울 수 없고 잘못했다는 원죄 의식 없이 느낄 수 없다’는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의 유고 일기 『행복한 책읽기』의 한 대목이 먼저 떠오릅니다. 시인의 ‘덕목’은 우선 ‘善’(착함)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착함은 무얼까요. 자기 바깥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요. 마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소설’같이 쓰인 이 시 속의 두 편의 시가 바로 그런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그중 먼저 「다리」를 읽어보면, 다리를 건너는 상반된 두 사람을 통해 시인의 착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앞사람은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 가다가 쉬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고 뒷사람은 같은 다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이성선 시인에 따르면, 그 후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이를 탓하는 게 아니라(바삐 건너가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생명도 없는 사물(다리)에게도 정을 주는 ‘착한 마음’이 이 시를 낳았습니다.


시 속의 두 번째 시 「별을 보며」(앞부분)에서는 사물에 대한 이성선 시인의 ‘착한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까지 전이됩니다. 별과 하늘을 자주 바라보아 그 별과 하늘이 시인의 잦은 시선에 때 묻어 “더럽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감성 하나만으로도 시 한 편을 지을 수 있나봅니다. 그러니 ‘마음의 하얀 안경’이라고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善’(착함)이 앞서 시인의 우선적 덕목이라고 했듯이 그 말은 논리적으로 거짓 명제는 아닐 듯합니다.


서두에서, 이 시의 김사인 시인도 참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름의 한자 그대로 ‘착한’ 이성선(李聖善) 시인을 조명합니다. 그러고는 고인이 된 시인의 명복을 빌 듯, 그의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이라며 “하느님”께 기원합니다.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을 안쓰러워하는 김사인 시인의 다스한 마음이 그렇습니다.


동시에 그 다스한 마음은 쓸쓸한 마음입니다. 시인이 ‘자발적으로’ 떠나버린 이 세상은 이제 그가 없기에, 적막하기 그지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사인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붙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이 시의 제목을 대하면, 마치 ‘시인이여, 왜 그리 이 세상의 다리를 서둘러 건너버리셨소’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작고한 시인의 시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라고 읊조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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