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을 넘나든 시인
2017년 11월 13일 21시 15분  조회:3339  추천:0  작성자: 죽림

데릭 월컷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auteur.png
데릭 월컷 Nobel Prize.png
Derek Alton Walcott
데릭 월컷 (2008년)
데릭 월컷 (2008년)
Firma-Derek-Walcott.png
출생 1930년 1월 23일
세인트루시아 캐스트리스 구 캐스트리스
사망 2017년 3월 17일 (87세)
세인트루시아 그로스아일렛 구 캡에스테이트
직업 시인극작가
수상내역 노벨 문학상 (1992년)
자녀 피터 월컷, 엘리자베스 월컷하디, 애나 월컷핵쇼

데릭 월컷 경(영어: Sir[1] Derek Walcott, KCSL,[1] OBE1930년 1월 23일 ~ 2017년 3월 17일[2])은 세인트루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199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식민지 시절의 노예제부터 독립까지 색다른 문화와 전통의 혼합이 담긴 카리브 해의 자연을 탐구하였고, 그의 작품들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양측의 풍부한 인종적 유산과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편이라 평가받는다.

세인트루시아의 캐스트리스에서 태어났다. 상업적으로 발간된 첫 시집은 1962년에 나온 《푸른 밤에: 1948-1960》였다. 그 밖에 긴 이야기가 담긴  〈다른 인생〉(1973년), 〈별사과 왕국〉(1979년), 〈행운적 여행인〉 (1981년), 〈한 여름 중〉(1984년), 〈아칸소 유언〉(1987년)과 〈하사금〉(1997년) 등을 발표했다.

〈오메로스〉(1990년)는 시인의 개인적 추억과 집단적 추억 사이에서의 내적 투쟁을 묘사하는 서사시였다. 다른 서사시 〈티에폴로의 사냥개〉(2000년)는 버진 제도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를 다루었다. 연작 시집 《방탕자》(2004년)는 그의 여행책과 저서를 겸하였다. 2007년에 데릭 월컷의 시 전집이 발간되었다.

극작으로는 《원숭이 산에 대한 꿈》(1967년), 《기념》(1977년), 《무연극》(1978년)과 《오디세이: 무대극판》(1993년)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위선, 탐험, 권위에 대한 인간의 투쟁을 담고 있다.

미국의 가수 폴 사이먼과 함께 뮤지컬 《동굴인》(The Capeman, 1997년)을 쓰기도 하였다.

서훈[편집]1972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3]

각주[편집]

  1. ↑ 이동:    《St. Lucia News Online》 (영어). 2016년 2월 22일. 2016년 1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3월 18일에 확인함.
  2. 이동 윤봄이 (2017년 3월 18일).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 ‘카리브 시인’ 데렉 월컷 별세”. 《KBS》. 2016년 1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3월 18일에 확인함.
  3. 이동  《The Gazette》 (영어) (런던) (45554): 19. 1971년 12월 31일. 2017년 3월 18일에 확인함.







=========================
출생 1930, 영국연방 세인트루시아
국적 세인트루시아

요약 세인트루시아의 시인·극작가·교육자·언론인·화가.

 

영국계 아버지와 아프리카 노예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그의 시 가운데 일부에서 혈통에 대한 갈등을 엮어내고 있다. 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사업가인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교육받았으며, 1953년 현거주인 트리니다드로 이사했다.

1948년 첫 시집 〈25편의 시 25 Poems〉를 출간했고, 1962년 런던에서 〈초록빛 밤 속에서 In a Green Night〉를 펴내 일약 카리브 해 문학의 획기적인 시인으로 부상했다. 이 시집은 과거의 시와는 달리 단순한 영문학의 모방이 아니라, 카리브 해의 매혹적인 정서를 현지인의 어법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보려 했다.

그는 카리브의 역사를 배경으로 혈통·교육·친구·독서 등 그에게 유전·습득된 모든 것을 종합한 자전적 장시 〈또다른 인생 Another Life〉(1973)을 비롯해 다수의 시집을 계속 출판했고, 1959년 트리니다드에 극단을 설립하여 자신의 희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원숭이산에서의 꿈 Dream on the Monkey Mountain〉(1970)이 있다.

1985년부터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오메로스 Omeros〉(1990)로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장엄한 서사시는 '복합적 혈통과 카리브 해에게서 얻은 감각과 리듬으로 카리브 해 현실과 풍광 속에 세계 문화의 모든 조류를 용해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하이네만 문학상(1977), 로스앤젤레스타임스상(1981)을 수상했다.

===========================
 

퇴고(推敲), 퇴고(推敲)를 



# 퇴고란 무엇인가 


시문(詩文)을 창작할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거나, 문장을 갈고 다듬는 일을 퇴고(推敲)라고 한다. 
퇴고라고 하는 말은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다>의 ‘밀다(推)'를 ’두드린다(敲)'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대문장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두드린다'로 고쳤다는 고사에서 추고(推敲)가 아닌, 퇴고(推敲)가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는 당대를 풍미했던 문장가였다. 통속적인 언어 구사와 풍자에 뛰어났으며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詩風)은 원진(元稹)과 함께 원백체(元白體)로 유명하다. 그의 자(字)는 백낙천(白樂天)으로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이 있으며, 시문집에 ‘백씨 문집(白氏 文集)'이 있다. 

이 얘기는 백낙천과 얽힌 에피소드의 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하루는 백낙천이 이웃 친지들, 즉 문인묵객(文人墨客)들을 불러모아 시회(詩會)를 열었다. 칠현금(七絃琴)을 뜯어가며 시를 짓거나 시에 대한 토론·감상·연구 등을 위한 이 모임에서 한 제자가 백낙천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화선지에 붓만 대시면 절창(絶唱)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선생님은 퇴고를 하십니까, 안 하십니까?" 

“퇴고는 무슨 놈의 퇴고! 자고로 시란 즉흥적(卽興的)이고 즉물적(卽物的)인 게야.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것이지. 모름지기 시란 순간의 포착이 중요한 것이야. 순발력이 없으면 아예 시를 짓거나 흉내내려고 덤비지 말아야지." 

술잔이 여러 순배 돌고 흥취가 일 만큼 거나해진 백낙천이 화장실에 간 뒤였다. 백낙천이 깔고 앉은 방석이 유난히 도도록 불거져 있었다. 시회에 참가한 문하생(門下生)이 백낙천이 깔고 앉은 그 방석을 들추자 아뿔싸! 그가 깔고 앉은 방석 밑에는 그날 발표한 백낙천의 시문 초벌 원고(草稿)와 무수히 개칠을 거듭했거나 고쳐 쓴 흔적이 역력한 파지(破紙)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천하의 백낙천도 남몰래, 그리고 무수하게 퇴고를 했다는 일화 한 토막이다. 



‘오발탄(誤發彈)' ‘학마을 사람들’의 작가 이범선(李範宣·1920~1982) 선생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작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키 높이 만큼의 습작 원고를 써야 한다"고. 그만큼 절차탁마(切嗟琢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칼' ‘들개’ ‘금오벽학도' ‘황금비늘' ‘장수하늘소' 등을 발표한 작가 이외수(李外秀)씨는 유창하고, 아름답고, 적확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장편소설 한 편이면 대략 1200장 내지 1500장의 원고지가 소요되는데, 그는 장편소설 한 편을 막 탈고(脫稿)하고 나면 그 소설의 내용을 토씨(助詞) 하나도 안 틀리고 다 외운다고 한다. 

낮에는 주로 자고, 밤에만 작업하는 야행성(夜行性)인 그는 소설의 플롯을 짜고 얼개를 얽은 다음 집필에 들어가면 일반 사람은 엄두도 못낼 고통스런 공정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소설 집필 첫날 밤 10장을 쓰고 나서 그 다음 날 집필할 때는 앞서 쓴 10장을 다시 베껴 쓰면서 문장을 다듬고 윤문(潤文)을 하면서 새로 10장을 보태고, 세째 날 역시 앞에 쓴 20장의 원고를 베껴 쓰면서 또 문장을 다듬고 새로운 스토리 10장을 보태고, 소설 집필 네째 날은 먼저 쓴 30장의 글을 옮겨 적으면서 또다시 글발을 지우고 고치는 등 퇴고를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스토리 10장 추가하고…. 이런 식으로 1200장 혹은 1500장 분량의 장편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작업 과정에서 문장의 부호 하나, 어휘 하나하나까지 갈고 다듬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줄거리 전체까지도 술술 외워진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나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글쓰기 작업을 통해 이외수씨는 끝내 ’아름다운 문장'을 성취해내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의 소설문장은 바로 시'라고 평가하는 비평가의 지적은 빈 말이 아님을 입증하는 예가 될 것이다. 


이렇듯 문장은, 특히 시문학은, 백낙천이 말한 ‘즉물적인 것'이거나 ’순간의 포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즉물적 발상법이나 직관적(直觀的) 어프로치(접근)가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써서는 또 고치는 무수한 퇴고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한 편의 시조는 완성되는 것이다. 일단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작품이라도 어딘지 미진한 구석이 있거나 흡족하지 않을 경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표 당시의 정서나 분위기가 바뀔 경우 평생 두고 고치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썼다지 않은가. 

어디 한번 상상을 해보라. 소설 한 편을 두고 20번도 아니고 200번을 고쳐 쓴다는 일을. 웬만한 사람은 똑같은 작품을 세번만 고쳐 쓰라고 해도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나고 신물이 난다고 고개를 가로 저을 텐데 200번이라니! 웬만큼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헤밍웨이는 해냈으며, 그런 끈질기고 피나는 절차탁마의 노력, 더 나아가 200번에 걸친 퇴고 작업 덕분에 영광의 노벨문학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상상이 가능하지 않는가

 

=====================================================================

 

 

 

바다 등나무 
―데릭 월컷(1930∼)

내 친구의 반은 죽었다
네게 새 친구를 만들어 주지, 땅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옛 친구들을 그 모습대로 돌려주오,
결점이랑 모두 함께. 난 외쳤다.

오늘 밤 나는 등나무 숲을 스쳐 오는
희미한 파도 소리에서 친구들의
말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달빛 어린 수없는 잎새 같은 바위 위를
걸어서 저기 하얀 길을 혼자 갈 수도 없고,
지상의 짐을 벗어나는 부엉이의

꿈꾸는 동작으로 떠다닐 수도 없다.
아, 땅이여, 네가 가두어 둔 친구들이
내 사랑하는 이승의 친구보다 많구나.

 

 

절벽 옆 바다 등나무는 푸른빛 은빛으로 번득인다.
이 나무들은 나의 신앙을 지켜주는 천사의 창이었다.
그러나 상실 속에서 더 굳건한 것이 자라나서

그건 돌 같은 냉철한 광채를 띠어,
달빛을 견뎌내고, 절망보다 더 멀리,
바람처럼 굳세어져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저 등나무
숲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옛 모습대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니,
결점이랑 모두 함께, 옛날보다 고상하진 않아도,
그냥 그대로.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친구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이라도, 더이상 사람을 사귀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게 되는 시기가 있다. 사람마다 품이 다르니까 무한정 친구를 품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 사십대 중반쯤 되면 이미 친구가 충분히 많다고 포만감을 느낀다. 매사에 그렇거니와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도 엷어지기 시작하는, 즉 타인에 대한 의욕이 줄어드는 나이.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건 의욕만이 아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어느덧 이승의 친구보다 죽은 친구가 더 많아지게 된다. 시인은 그 죽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자기의 죽음도 멀리 있지 않은 걸 담담히 받아들인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닷가 절벽 위 등나무 아래서. 

나무는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 같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측백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벚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플라타너스를 좋아한다. 남산 하얏트호텔 건너편에 야외식물원이 있다. 그 맨 꼭대기에 플라타너스 길이 있었다. 한 아름이 넘는 둥치에 아주 높다랗게 키가 커서, 그 아래 있으면 깊은 숲에 숨어든 듯 아늑했고, 우듬지를 따라 하늘을 헤엄치는 듯 머리가 시원했다. 재작년엔가, 그 플라타너스들이 전부 사라졌다. 쉰 살은 족히 넘었을 그 나무들을 누가 왜 베어버렸는지 꼭 밝혀내리라. 그리운 플라타너스들….


 

출처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 /글쓴이 : 하지연 (하현식)

 

사랑 뒤에 온 사랑

                                - 데릭 월컷

 

그 시간은 오리니

때 맞춰 의기양양하게

네 자신의 거울로, 네 자신의 대문으로 도착하는

자신을 맞이하리니

서로 상대를 웃음으로 맞이하리니

그리고 말하리, 어서 앉아 먹으라고

너는 네 영혼이었던 그 낯선 자를 다시 사랑하게 되리

포도주를 주려무나. 빵을 주려무나.

제 자신이면서 너를 사랑했던 그 낯선 자에게

마음을 돌려주려무나

네가 내내 무시해왔던

마음으로 너를 아는 또 다른 너를 위해

책꽂이에서 그 사랑의 편지들을 꺼내려무나

사진들과 절망의 기록들을

거울에서 네 자신의 영상을 벗겨내려무나

앉게나. 인생을 마음껏 즐기게나

 

===================== 같은 詩, 좀 다른 번역...
 

 

   사랑 뒤의 사랑 / 데릭 월컷

 

 

 

 

   그대의 문으로,
   그대의 거울로 찾아온 그대를
   즐거이 맞을 때가 오면
   둘은 웃으며, 서로를 환영하며,

 

 

 

   앉아서 같이 먹자고 말하리.
   그때 그대는 
   자신이었던 이방인을 다시 사랑하리.
   그대를 사랑한 이방인에게
   와인과 빵을 주고
   그대의 마음도 되돌려주라.

 

 

 

   그대가 무시한 자신의 모든 삶과
   진정으로 그대를 아는 또 다른 자아를 위해,
   책꽂이에서 연애편지를 꺼내라.

 

 

 

   사진과 절망의 글과,
   거울 속 그대의 모습일랑 지우고,
   다시 앉으라. 그리고 그대의 인생을 살라.

================================


 

서사시 ‘오메로스’로 92년 노벨상
“카리브 지역의 정체성 탐색 작가”
 
데릭 월컷
데릭 월컷

 

199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데릭 월컷이 19일(현지시각 2017년 3월) 별세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향년 87.

 

그는 카리브 지역의 섬나라인 세인트루시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독립국가이지만 그가 태어날 때는 영국 식민지였다. 월컷에겐 카리브 지역의 대표 작가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자 노벨상 수상작인 서사시 <오메로스>(1990)는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카리브 지역의 역사 속에서 재창조한 작품이다. ‘미천한 어부와 택시 기사’가 호메로스 서사시의 고대 영웅을 대신한다. 그는 <원숭이 산에 대한 꿈> 등 80편 이상의 연극 작품을 쓰거나 연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월컷 연극의 상당수가 인종, 정치적 갈등을 배경으로 카리브 지역의 정체성을 탐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월컷은 ‘그리스와 아프리카의 신전 사이’에 위치해 자신을 탐색하는 시들에서 셰익스피어나 예이츠, 엘리엇의 시혼을 불러내며, 이들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가족사와 떼어 말하기 힘들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흑인 노예 후손이었다. 월컷이 한살이 되기 전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집에서 자주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소리 내어 암송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월컷이 19살 때 첫 시집을 낼 수 있도록 돈을 대주기도 했다. 월컷은 미국 보스턴대에서 1981년부터 2007년까지 시를 가르쳤다. 2009년 영국 옥스퍼드대 시담당 교수직 선발 과정에서, 유력 후보자인 그에게 수십년 전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는 한 학생의 주장이 불거지면서 응모 의사를 철회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 한겨레 강성만 선임기자



=============================
 

향년 87세로 별세한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데릭 월컷’.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데릭 월컷(사진)이 17일(현지시간 2017년 3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월컷은 지난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카리브 문학 대표 시인이다. 1930년 세인트루시아에서 태어난 월컷은 1948년 시집 ‘25편의 시’로 문단에 데뷔한 뒤 1962년 카리브해를 노래한 ‘녹색 밤 속에서’ 시집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90년에 최대 역작인 대서사시 ‘오메로스’를 통해 카리브해의 특유의 목소리와 감성을 드러냈다. 그는 1972년 대영제국 훈장, 1977년 하이네만 문학상, 1981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상, 2011년 T. S. 엘리엇상 등을 수상했다.

 


============================

데랙 월컷(Derek Walcott) 
1930∼ . 인트루시아의 시인·극작가·교육자·언론인·화가. 
영국계 아버지와 아프리카 노예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그의 시 가운데 일부에서 혈통에 대한 갈등을 엮어내고 있다. 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사업가인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교육받았으며, 1953년 현거주인 트리니다드로 이사했다. 1948년 첫 시집 〈25편의 시 25 Poems〉를 출간했고, 1962년 런던에서 〈초록빛 밤 속에서 In a Green Night〉를 펴내 일약 카리브 해 문학의 획기적인 시인으로 부상했다. 이 시집은 과거의 시와는 달리 단순한 영문학의 모방이 아니라, 카리브 해의 매혹적인 정서를 현지인의 어법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보려 했다. 그는 카리브의 역사를 배경으로 혈통·교육·친구·독서 등 그에게 유전·습득된 모든 것을 종합한 자전적 장시 〈또다른 인생〉(1973)을 비롯해 다수의 시집을 계속 출판했고, 1959년 트리니다드에 극단을 설립하여 자신의 희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원숭이산에서의 꿈 Dream on the Monkey Mountain〉(1970)이 있다. 1985년부터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오메로스 Omeros〉(1990)로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장엄한 서사시는 '복합적 혈통과 카리브 해에게서 얻은 감각과 리듬으로 카리브 해 현실과 풍광 속에 세계 문화의 모든 조류를 용해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하이네만 문학상(1977), 로스앤젤레스타임스상(1981)을 수상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50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시란 "어린이"라고 해요... 2017-11-13 0 3273
849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시쓰기에 최고가 될수 있어요... 2017-11-13 0 2993
84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요 동시를 자꾸 써봐야해요... 2017-11-13 0 2719
847 [작문써클선생님께] - 동요 동시에 "꼬까옷" 입히기... 2017-11-13 0 3067
84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이야기 시"란?... 2017-11-13 0 3155
845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유아들에게 읽어줘야 할 동시류형... 2017-11-13 0 3377
844 동시야, 동시야, 어디에 숨었니... 머리꼬리 보인다야... 2017-11-13 0 3028
843 [노벨문학상과 시인]-"20세기후반 영어권에서 추앙"되는 시인 2017-11-13 0 2981
842 [노벨문학상과 시인] - "설교하지 않는" "언어봉사" 교수 시인... 2017-11-13 0 3010
84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을 넘나든 시인 2017-11-13 0 3339
840 윤동주눈 "나"를 고백한 시, "너머"를 상상한 시를 쓰다... 2017-11-13 0 2463
839 시작할때 형이상학적 이미지들 언어로 시적성채를 빚어야... 2017-11-13 0 3059
838 우리가 전혀 몰랐던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의 시단 알아보기... 2017-11-13 0 2144
837 [노벨문학상과 시인] - 라틴아메리카 대표적인 "외교관"시인... 2017-11-13 0 3441
836 시야, 시야, 넌 도대체 무엇이니?!... 2017-11-13 0 2357
835 시는 "경계의 눈"을 가진 비평가를 만나는것이 즐거운 일이다... 2017-11-13 0 2162
834 시작은 하찮은것에서 소중한것을 길어내야... 2017-11-13 0 2343
833 [노벨문학상과 시인] -"서정적 비가"시인, "학교중퇴생" 시인... 2017-11-13 0 2297
832 [노벨문학상과 시인] - 초현실주의적 "외교관" 시인... 2017-11-13 0 2188
83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인민시인"으로 추대되였던 시인... 2017-11-13 0 1989
830 시의 령혼이 빛나고 있는 곳은 실재계, 상징계, 영상계에 있다 2017-11-10 0 2168
829 [노벨문학상과 시인] - 력사를 "시적인 론문"으로 쓴 시인... 2017-11-06 0 4502
828 [노벨문학상과 시인]젊은이들속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시인... 2017-11-06 0 3770
827 [노벨문학상과 시인] - "자유시의 대가"인 시인... 2017-11-05 0 3507
826 [노벨문학상과 시인] - 음악가로부터 문학의 길을 택한 시인 2017-11-05 0 3919
825 [노벨문학상과 시인]소설가인 년상(年上) 녀인과 재혼한 시인 2017-11-05 0 4248
824 문인들 컴퓨터의 노예가 되다... 2017-11-03 0 3500
823 "가짜 詩"와 "진짜 詩"... 2017-11-03 0 4952
822 [노벨문학상과 시인]"유대인 민족의 비극을 대변한" 녀류시인 2017-11-03 0 3464
82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촉망되는, 촉망받은" 외교관 시인 2017-11-02 0 3436
820 [노벨문학상과 시인] - 고향을 "서사적인 힘"으로 노래한 시인 2017-11-02 0 3418
819 [그것이 알고싶다] - 일본 녀고생들은 윤동주를 어떻게 볼가?... 2017-11-02 0 2321
818 "배추잎같은 엄마의 발소리 타박타박"... 2017-11-01 0 2796
817 [노벨문학상과 시인] - 중국 상하이, 베이징 주재 외교관 시인 2017-10-31 0 3679
816 [노벨문학상과 시인] - "모더니즘 시인들 운동"의 지도자 시인 2017-10-31 0 3747
815 [노벨문학상과 시인] "벌거벗은 시"로 리행과 리정표가 된 시인 2017-10-31 0 3332
814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메달 출시되다... 2017-10-31 0 2138
813 시성 타고르의 시와 그리고 오해, 진실... 2017-10-30 0 3989
812 천년의 그리움이 만년의 강 따라 흐르고... 2017-10-30 0 3147
81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아세아인 최초로 노벨상을 탄 시인 2017-10-30 0 4359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