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推敲), 퇴고(推敲)를
# 퇴고란 무엇인가
시문(詩文)을 창작할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거나, 문장을 갈고 다듬는 일을 퇴고(推敲)라고 한다.
퇴고라고 하는 말은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다>의 ‘밀다(推)'를 ’두드린다(敲)'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대문장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두드린다'로 고쳤다는 고사에서 추고(推敲)가 아닌, 퇴고(推敲)가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는 당대를 풍미했던 문장가였다. 통속적인 언어 구사와 풍자에 뛰어났으며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詩風)은 원진(元稹)과 함께 원백체(元白體)로 유명하다. 그의 자(字)는 백낙천(白樂天)으로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이 있으며, 시문집에 ‘백씨 문집(白氏 文集)'이 있다.
이 얘기는 백낙천과 얽힌 에피소드의 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하루는 백낙천이 이웃 친지들, 즉 문인묵객(文人墨客)들을 불러모아 시회(詩會)를 열었다. 칠현금(七絃琴)을 뜯어가며 시를 짓거나 시에 대한 토론·감상·연구 등을 위한 이 모임에서 한 제자가 백낙천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화선지에 붓만 대시면 절창(絶唱)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선생님은 퇴고를 하십니까, 안 하십니까?"
“퇴고는 무슨 놈의 퇴고! 자고로 시란 즉흥적(卽興的)이고 즉물적(卽物的)인 게야.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것이지. 모름지기 시란 순간의 포착이 중요한 것이야. 순발력이 없으면 아예 시를 짓거나 흉내내려고 덤비지 말아야지."
술잔이 여러 순배 돌고 흥취가 일 만큼 거나해진 백낙천이 화장실에 간 뒤였다. 백낙천이 깔고 앉은 방석이 유난히 도도록 불거져 있었다. 시회에 참가한 문하생(門下生)이 백낙천이 깔고 앉은 그 방석을 들추자 아뿔싸! 그가 깔고 앉은 방석 밑에는 그날 발표한 백낙천의 시문 초벌 원고(草稿)와 무수히 개칠을 거듭했거나 고쳐 쓴 흔적이 역력한 파지(破紙)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천하의 백낙천도 남몰래, 그리고 무수하게 퇴고를 했다는 일화 한 토막이다.
‘오발탄(誤發彈)' ‘학마을 사람들’의 작가 이범선(李範宣·1920~1982) 선생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작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키 높이 만큼의 습작 원고를 써야 한다"고. 그만큼 절차탁마(切嗟琢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칼' ‘들개’ ‘금오벽학도' ‘황금비늘' ‘장수하늘소' 등을 발표한 작가 이외수(李外秀)씨는 유창하고, 아름답고, 적확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장편소설 한 편이면 대략 1200장 내지 1500장의 원고지가 소요되는데, 그는 장편소설 한 편을 막 탈고(脫稿)하고 나면 그 소설의 내용을 토씨(助詞) 하나도 안 틀리고 다 외운다고 한다.
낮에는 주로 자고, 밤에만 작업하는 야행성(夜行性)인 그는 소설의 플롯을 짜고 얼개를 얽은 다음 집필에 들어가면 일반 사람은 엄두도 못낼 고통스런 공정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소설 집필 첫날 밤 10장을 쓰고 나서 그 다음 날 집필할 때는 앞서 쓴 10장을 다시 베껴 쓰면서 문장을 다듬고 윤문(潤文)을 하면서 새로 10장을 보태고, 세째 날 역시 앞에 쓴 20장의 원고를 베껴 쓰면서 또 문장을 다듬고 새로운 스토리 10장을 보태고, 소설 집필 네째 날은 먼저 쓴 30장의 글을 옮겨 적으면서 또다시 글발을 지우고 고치는 등 퇴고를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스토리 10장 추가하고…. 이런 식으로 1200장 혹은 1500장 분량의 장편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작업 과정에서 문장의 부호 하나, 어휘 하나하나까지 갈고 다듬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줄거리 전체까지도 술술 외워진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나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글쓰기 작업을 통해 이외수씨는 끝내 ’아름다운 문장'을 성취해내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의 소설문장은 바로 시'라고 평가하는 비평가의 지적은 빈 말이 아님을 입증하는 예가 될 것이다.
이렇듯 문장은, 특히 시문학은, 백낙천이 말한 ‘즉물적인 것'이거나 ’순간의 포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즉물적 발상법이나 직관적(直觀的) 어프로치(접근)가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썼다가는 지우고, 다시 써서는 또 고치는 무수한 퇴고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한 편의 시조는 완성되는 것이다. 일단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작품이라도 어딘지 미진한 구석이 있거나 흡족하지 않을 경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표 당시의 정서나 분위기가 바뀔 경우 평생 두고 고치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썼다지 않은가.
어디 한번 상상을 해보라. 소설 한 편을 두고 20번도 아니고 200번을 고쳐 쓴다는 일을. 웬만한 사람은 똑같은 작품을 세번만 고쳐 쓰라고 해도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나고 신물이 난다고 고개를 가로 저을 텐데 200번이라니! 웬만큼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헤밍웨이는 해냈으며, 그런 끈질기고 피나는 절차탁마의 노력, 더 나아가 200번에 걸친 퇴고 작업 덕분에 영광의 노벨문학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상상이 가능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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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등나무
―데릭 월컷(1930∼)
내 친구의 반은 죽었다
네게 새 친구를 만들어 주지, 땅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옛 친구들을 그 모습대로 돌려주오,
결점이랑 모두 함께. 난 외쳤다.
오늘 밤 나는 등나무 숲을 스쳐 오는
희미한 파도 소리에서 친구들의
말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달빛 어린 수없는 잎새 같은 바위 위를
걸어서 저기 하얀 길을 혼자 갈 수도 없고,
지상의 짐을 벗어나는 부엉이의
꿈꾸는 동작으로 떠다닐 수도 없다.
아, 땅이여, 네가 가두어 둔 친구들이
내 사랑하는 이승의 친구보다 많구나.
절벽 옆 바다 등나무는 푸른빛 은빛으로 번득인다.
이 나무들은 나의 신앙을 지켜주는 천사의 창이었다.
그러나 상실 속에서 더 굳건한 것이 자라나서
그건 돌 같은 냉철한 광채를 띠어,
달빛을 견뎌내고, 절망보다 더 멀리,
바람처럼 굳세어져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저 등나무
숲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옛 모습대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니,
결점이랑 모두 함께, 옛날보다 고상하진 않아도,
그냥 그대로.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친구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이라도, 더이상 사람을 사귀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게 되는 시기가 있다. 사람마다 품이 다르니까 무한정 친구를 품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 사십대 중반쯤 되면 이미 친구가 충분히 많다고 포만감을 느낀다. 매사에 그렇거니와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도 엷어지기 시작하는, 즉 타인에 대한 의욕이 줄어드는 나이.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건 의욕만이 아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어느덧 이승의 친구보다 죽은 친구가 더 많아지게 된다. 시인은 그 죽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자기의 죽음도 멀리 있지 않은 걸 담담히 받아들인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닷가 절벽 위 등나무 아래서.
나무는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 같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측백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벚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플라타너스를 좋아한다. 남산 하얏트호텔 건너편에 야외식물원이 있다. 그 맨 꼭대기에 플라타너스 길이 있었다. 한 아름이 넘는 둥치에 아주 높다랗게 키가 커서, 그 아래 있으면 깊은 숲에 숨어든 듯 아늑했고, 우듬지를 따라 하늘을 헤엄치는 듯 머리가 시원했다. 재작년엔가, 그 플라타너스들이 전부 사라졌다. 쉰 살은 족히 넘었을 그 나무들을 누가 왜 베어버렸는지 꼭 밝혀내리라. 그리운 플라타너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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