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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시인, 외교관 파블로 네루다(Neruda, Pablo) 사망
네루다 [Neruda, Pablo, 1904.7.12~1973.9.23]
칠레의 시인, 외교관.
본명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Neftal Ricardo Reyes Basoalto). 칠레 마울레주 파랄에서 출생하였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대학에서 철학·문학을 수학하였으며, 1927년부터 양곤·스리랑카·싱가포르 등지의 영사를 역임하고,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마드리드의 영사가 되어 R.알베르티 등의 전위시인과 교제하였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있어 시작(詩作)에 착수, 근대주의적인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로 문단에 데뷔하고, 1924년에 발표된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絶望)의 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 n desesperada》에서 그의 독자적인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그 후의 작품 《무한한 인간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열렬한 투석병》을 거쳐, 최고의 작품이라고 주목되는 《지상의 주소 Residencia en la tierra》(1931)에 이르는 과정에서 카오스적인 요설(饒舌)로 존재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스페인내란 이후의 상황 속에서 점차 정치적 자세를 첨예화시키게 되었다. 그러한 예는 《제3의 주소 Tercera residencia》(1945)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1944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에 몰두했으나 후에 다시 일상적인 친밀한 세계를 노래하게 되었다. 이 밖의 작품으로는 《커다란 노래 Canto general》(1950) 《기본적인 오드 Odas elementales》(1954~1957) 등이 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naver
- 구본웅의 '우인상' (이상 초상)
작가 이상(李箱)
이상 [李箱, 1910.9.23~1937.4.17]
이상은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을 남긴 한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3세 때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집에서 살았는데,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심했으며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 전반에 깔린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었다. 건축을 공부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가 되었으나 1933년 결핵이 발병해 퇴직했다. 그후 요양차 황해도 백천온천에 머물렀는데,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금홍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4년 '구인회'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다. <오감도>를 비롯한 시작품에서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뒤섞거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숫자를 빌려 쓰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관념을 표출해냈다. 또한 소설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인물들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처한 객관적인 현실을 관찰하는 자의식 강한 인물의 내면세계를 주로 그렸다. 특히 대표작 <날개>는 내용의 난해함과 형식의 파격성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한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이상문학상'을 1977년 문학사상사에서 제정해 매년 10월 시상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9월 14일자)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날자.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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