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문단의 이단아" 마광수님은 항상 "자유인"이 되고싶어 했다...
2017년 09월 07일 02시 26분  조회:2252  추천:0  작성자: 죽림

[라이브 이슈] ‘즐거운 사라’ 필화로 우울증 겪다 떠난 ‘광마’ 마광수
<출연 : 연합뉴스TV 스포츠문화부 장보경 기자>

[앵커]

즐거운 사라로 널리 알려진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어제 숨진채 발견 돼 충격을 줬습니다.

필화사건으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스포츠문화부 장보경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장 기자, 어서 오세요.

어제 오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는데요.

자세한 소식을 좀 전해주시죠.

[기자]

네, 어제 오후 1시 51분께였는데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이웃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베란다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이 됐고 집에는 유산과 시신처리를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A4 1장짜리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이 유서는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고인은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모친이 사망한 후에는 가사 도우미와 함께 지내왔는데요.

도우미가 정오에 집을 비운 사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앵커]

여러 정황상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울증을 앓아 왔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로 실형을 받는 등 필화사건을 겪은 뒤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마 전교수가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는 ‘억울하다’, ‘답답하다’ 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보다 더 거침없는 다른 작품들이 있었는데,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라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필화 사건을 겪은 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빠졌고 우울증으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왔다고 합니다.

또 지난해 8월 정년퇴임을 했는데, 필화 사건으로 해직을 당하면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명예교수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른 허탈함도 많이 토로해왔다고 합니다.

[앵커]

장 기자가 언급한대로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대중에게 각인이 되었는데요.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기자]

아마 시청자 여러분 역시 ‘즐거운 사라’는 익숙할 것입니다.

즐거운 사라는 사라라는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주된 내용입니다.

1992년 10월 마광수 교수는 강의 도중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습니다.

당시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였는데요.

바로 이 음란문서로 분류 된 것이 소설 즐거운 사라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마교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요.

이 책 즐거운 사라는 문화부가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마교수는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됐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는 현재까지도 판매 금지 상태입니다.

즐거운 사라 사태는 당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 논의를 촉발시키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외설스러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저자가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 책이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있길래 이런 논란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기자]

여성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이 작품에 대해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안 전 후보자는 1994년 2월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조 혐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미달하는 음란물”이라는 감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검찰과 변호인 측이 중립감정인으로 공동 선임한 안 전 후보자는 이 작품에 대해 “통상적인 성인 독자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음란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없는 법적 폐기물’,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야 마땅한 작품’이라는 격한 단어를 쓰며 혹평했다고 합니다.

[앵커]

사실 마광수 교수는 사실 오랫동안 저작활동을 해온 인물인데요.

즐거운 사라 논쟁에 다른 부분이 함몰된 느낌입니다.

마 교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데요?

[기자]

네, 마광수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소설이 아닌 시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우리 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 마광수 교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마 전 교수는 천재로 불리며 28살에 홍익대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고요.

1984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부임했습니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즐거운 사라 사건이 터졌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대표작은 1990년대 소설 ‘광마일기’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이 있는데요.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 사건 이전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남아있습니다.

[앵커]

마 교수는 사실 즐거운 사라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에 많이 휘말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자]

네, 2007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됩니다.

당시 마 교수는 항소하지 않았는데요.

또 같은 해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본인의 시집에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자신의 원작을 각색한 연극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 중에 나보다 야한 작가나 시인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밝혀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본인을 전과 2범에 감옥을 가고 학교를 두번이나 잘렸다고 소개한 마광수는 “제2의 마광수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고 언급했습니다.

[앵커]

대담한 성담론을 꺼내놓은 마 교수의 작품들의 의의를 따져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자]

마광수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치는 물론 좀 남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를, 문학으로 상상하게 해서 읽는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특히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이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또 2013년에 즐거운 사라를 새로 펴내면서 적은 저자 소개글을 보면 그가 스스로 생각했던 자아가 어떤 것이었는지 대강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죽어도 ‘나이값’은 안 하겠다는, 그래서 마음만은 언제나 ‘야한 상태’로 있겠다는 괴짜 시인이자 소설가, 대학교수라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이중적 위선’에 맞서 싸우는 문화운동가”라고 적혀있는데요.

저는 이 지점이 마 전 교수가 항상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네, 그렇군요.

문단의 이단아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던데,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연합뉴스TV 

(끝)
=================

 

 

지난 1월 중앙SUNDAY와 인터뷰했을 때의 마광수 교수. 이미 그때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또 하나의 영웅이 퇴장했다. [중앙포토]

‘마광수’가 죽었다. 외람되게도 부고에서 이름 석 자만 쓴 것은 마광수라는 이름이 우리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호였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성기의 언어로 말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던 1990년대 들머리, 마광수는 스스로 시대를 드러내는 아이콘이었다.
 

유언장 남기고 자택서 숨진 채 발견
92년 『즐거운 사라』 책 냈다 구속
평소 “한 여자 때문에 인생 망쳤다”

98년 복권 뒤 작년 연세대 정년퇴임
2000년에 “우울증 앓고 있다” 고백
‘여성에 성 주체성 부여’ 평가도

명문 대학 교수가 “야한 여자가 좋다”고 떠들고 다녀서, 또는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뭇 여성을 꾀어서 마광수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고지식하고 점잖은(혹은 그러한 척만 하는) 사회와 혼자만의 방식으로 맞짱을 뜬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응답하라’로 시작하는 TV 드라마가 동화처럼 어여쁘게 그려낸 그 시절, 마광수는 문화 게릴라였고 민주화 투사였다. 마광수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그의 황망한 부고는 씁쓸하다. 하필이면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운 즈음이어서 얄궂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모퉁이를 돌아갔다.
 
◆유언장 남겨=5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 낡은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경찰은 “목을 맨 것 같다. 오후 1시51분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마 전 교수의 방에서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유언장이 발견됐다. 유언에는 재산을 이복 누나에게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는 오랜 세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갔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지난해 8월 정년 퇴임한 뒤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병력은 오래됐다. 2000년에도 그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심하게 낯을 가렸고 손을 떨었다.
 
퇴임한 뒤에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연금을 받고 있지만 집안일을 봐주는 아주머니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출판사도 더 이상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아 그는 틈틈이 그렸던 그림을 팔려고 내놨다. 그러나 화랑에서도 마광수는 외면당한 이름이었다.
 
그는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중간에 8년을 놀아(교수직에서 해임됐던 기간) 연금도 얼마 안 된다”며 “외로운 독거노인”이라고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예순여섯 살이었다.
 
◆야한 여자 사라=지금은 뜨악해할지 모르겠다. 마광수가 ‘야한 여자론’을 들고 나온 80년대 끄트머리 여성운동가 상당수는 여성운동의 하나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었다. 민주화 열기가 문화 영역으로 확장되던 시절이었다. 마광수는 바로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89년 1월 발표한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그는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대가도 혹독했다. ‘프리섹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프리페팅을 즐기자’는 식의 주장은 여성을 성의 도구로 인식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는 전공과목 강의에서 배제됐다.
 
생전의 마광수는 “한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의 인생을 망친 여자가 ‘사라’다. 마광수는 92년 여대생 사라의 문란한 성생활을 다룬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고, 그해 10월 29일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즐거운 사라』를 발간한 ‘청하’ 출판사의 장석주(62) 당시 대표와 함께 구속 수감됐다.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학에서는 쫓겨났다. 장 전 대표는 “감옥에 갔다온 뒤 회복할 수 없어 출판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98년 그는 사면 복권됐다. 대학에도 돌아갔고 『즐거운 사라』도 재출간됐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마광수가 죄인이었던 시절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서 『즐거운 사라』는 8만 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표현 수위에 실망했다”는 독후감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의 우울한 영웅=마광수는 2005년 ‘13년 만에 내놓은 야한 소설’이라는 요란한 광고 문구와 함께 소설 『광마잡담』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 이하였다. 소설은 야하지 않았다. 표현의 수위나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광수에 따르면 ‘야하다’는 표현은 일탈과 모반의 기운을 동반해야 했다. 소설은 다만 음란할 뿐이었다.
 
마광수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한 것은 사회였다. 젊은 여성의 반짝이는 긴 손톱에서 성적 상징을 읽어냈던 90년대 초입 마광수는 ‘변태’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네일아트는 젊은이들의 지배적인 문화 코드가 된 지 오래다. 아무도 섹스를 말하지 않던(또는 못하던) 시절이어서 마광수는 야했다. 2007년 그는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제 시집 『야하디 알라숑』에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DA 300

 


올해는 시인 마광수가 등단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77년 청록파 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마광수는 국내 윤동주 박사 1호이기도 하다. 83년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다. 마광수는 올 1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나와 윤동주 모두 솔직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마광수는 한국 문학 최초로 여성에 성 주체성을 부여한 작가였다. 90년대 여성단체 대부분이 마광수를 비난했지만 검찰은 사라가 끝내 도덕적으로 반성하지 않았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거대 담론에서 허우적거릴 때 개인의 가장 내밀한 욕망에 관해 발언했다.
 
마광수를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마광수는 죽기 전까지도 야한 여자를 찾았다. 그는 다만 획일적이고 답답한 세상이 싫었을 뿐이었다. 그의 넥타이 맨 모습이 기억에 없다. 그의 가는 목을 감싼 건 늘 스카프였다.

///중앙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50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시란 "어린이"라고 해요... 2017-11-13 0 3375
849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시쓰기에 최고가 될수 있어요... 2017-11-13 0 3054
84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동요 동시를 자꾸 써봐야해요... 2017-11-13 0 2858
847 [작문써클선생님께] - 동요 동시에 "꼬까옷" 입히기... 2017-11-13 0 3144
84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이야기 시"란?... 2017-11-13 0 3298
845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유아들에게 읽어줘야 할 동시류형... 2017-11-13 0 3484
844 동시야, 동시야, 어디에 숨었니... 머리꼬리 보인다야... 2017-11-13 0 3205
843 [노벨문학상과 시인]-"20세기후반 영어권에서 추앙"되는 시인 2017-11-13 0 3112
842 [노벨문학상과 시인] - "설교하지 않는" "언어봉사" 교수 시인... 2017-11-13 0 3148
84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을 넘나든 시인 2017-11-13 0 3426
840 윤동주눈 "나"를 고백한 시, "너머"를 상상한 시를 쓰다... 2017-11-13 0 2563
839 시작할때 형이상학적 이미지들 언어로 시적성채를 빚어야... 2017-11-13 0 3152
838 우리가 전혀 몰랐던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의 시단 알아보기... 2017-11-13 0 2290
837 [노벨문학상과 시인] - 라틴아메리카 대표적인 "외교관"시인... 2017-11-13 0 3529
836 시야, 시야, 넌 도대체 무엇이니?!... 2017-11-13 0 2439
835 시는 "경계의 눈"을 가진 비평가를 만나는것이 즐거운 일이다... 2017-11-13 0 2219
834 시작은 하찮은것에서 소중한것을 길어내야... 2017-11-13 0 2410
833 [노벨문학상과 시인] -"서정적 비가"시인, "학교중퇴생" 시인... 2017-11-13 0 2392
832 [노벨문학상과 시인] - 초현실주의적 "외교관" 시인... 2017-11-13 0 2312
83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인민시인"으로 추대되였던 시인... 2017-11-13 0 2068
830 시의 령혼이 빛나고 있는 곳은 실재계, 상징계, 영상계에 있다 2017-11-10 0 2219
829 [노벨문학상과 시인] - 력사를 "시적인 론문"으로 쓴 시인... 2017-11-06 0 4649
828 [노벨문학상과 시인]젊은이들속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시인... 2017-11-06 0 3871
827 [노벨문학상과 시인] - "자유시의 대가"인 시인... 2017-11-05 0 3601
826 [노벨문학상과 시인] - 음악가로부터 문학의 길을 택한 시인 2017-11-05 0 4040
825 [노벨문학상과 시인]소설가인 년상(年上) 녀인과 재혼한 시인 2017-11-05 0 4384
824 문인들 컴퓨터의 노예가 되다... 2017-11-03 0 3658
823 "가짜 詩"와 "진짜 詩"... 2017-11-03 0 5065
822 [노벨문학상과 시인]"유대인 민족의 비극을 대변한" 녀류시인 2017-11-03 0 3593
82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촉망되는, 촉망받은" 외교관 시인 2017-11-02 0 3582
820 [노벨문학상과 시인] - 고향을 "서사적인 힘"으로 노래한 시인 2017-11-02 0 3535
819 [그것이 알고싶다] - 일본 녀고생들은 윤동주를 어떻게 볼가?... 2017-11-02 0 2389
818 "배추잎같은 엄마의 발소리 타박타박"... 2017-11-01 0 2957
817 [노벨문학상과 시인] - 중국 상하이, 베이징 주재 외교관 시인 2017-10-31 0 3804
816 [노벨문학상과 시인] - "모더니즘 시인들 운동"의 지도자 시인 2017-10-31 0 3882
815 [노벨문학상과 시인] "벌거벗은 시"로 리행과 리정표가 된 시인 2017-10-31 0 3427
814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메달 출시되다... 2017-10-31 0 2214
813 시성 타고르의 시와 그리고 오해, 진실... 2017-10-30 0 4200
812 천년의 그리움이 만년의 강 따라 흐르고... 2017-10-30 0 3213
811 [노벨문학상과 시인] - 아세아인 최초로 노벨상을 탄 시인 2017-10-30 0 4498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