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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개성적인 비유와 상징성에서 환기된다...
2017년 08월 17일 03시 03분  조회:2193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는 환기성이 우세하다 

이상옥 

  시가 매혹적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시가 갖는 특유의 환기성 때문이다. 좋은 시는 환기성이 우세하다. 일상적 삶 속에서 놓치고 사는 삶의 진실을, 시는 환기하는 것이다. 좋은 시를 읽을 때 무릎을 탁 칠 만큼 아 그렇지, 내가 그것을 잊고 살았지라고 감동하게 되는 것은 바로 시 특유의 환기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운수재는 
우이동 골짜기에 있고 
시인들의 사랑방 시수헌은 
산마루 넘어 쌍문동에 있다. 

세심천 고갯길로 질러가면 30분 
솔밭 지나 언덕기로 돌아가면 40분 
짧은 고갯길보다는 
긴 언덕길로 돌아서 다닌다 

언덕길 밑에는 꽃밭이 있기 때문 
한 교회가 가꾼 작은 꽃밭인데 
채송화 맨드라미 봉선화 백일홍 
예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꽃들 가운데서도 나를 붙든 것은 
‘천사의 나팔’이라는 이국종 꽃 
어느 날 꽃밭을 지나다 발을 멈추고 
나팔소리 들리나 한참 지켜보는데 

나팔소리는 소식도 없고 
나비 날개 단 천사의 얼굴이 
열 살쯤 되어 뵈는 과수원집 딸이 
꽃 속에서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반 백년이 지나도 늙지 않은 채로 
천사가 되어 꽃 속에 살고 있다니 
시수헌 가는 길이 더딘 것은 
꽃밭에서 잠시 길을 잃기 때문 

    -임보, <시수헌 가는 길> 전문 


  본지 지난 호에 발표된 이 시를 읽으면 난데없이 지난 5월 별세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생각나고, 이어서 그의 수필 <인연>이 생각난다. 그리고는 아사코가 생각난다. 그래서 다시 <인연>을 읽어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이 마지막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 세 번째 만났을 때의 아사코는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스위트피나 목련꽃 같은 아사코의 이미지가 바랬기 때문에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피천득에게 아사코의 추억은 소양강 가을 경치처럼 늘 아름답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왜, <시수헌 가는 길>을 읽다가 피천득이 생각나고 <인연>이 그리고 아사코가 생각나고, 또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가. 이것은 바로 시의 환기성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시인들의 사랑방 시수헌 가는 길을 일부러 짧은 고갯길보다는 긴 언덕길을 돌아서 다닌다. 언덕길 밑에는 채송화 맨드라미 봉선화 백일홍 예쁜 꽃들이 환하게 웃는 꽃밭이 있기 때문이다. 그 꽃들 가운데서도 화자를 붙든 것은 ‘천사의 나팔’이라는 이국종 꽃인데, 어느 날 꽃밭을 지나다 발을 멈추고 나팔소리가 들리나 한참 지켜본다. 그 때 나팔 소리 대신 나비 날개를 단 천사의 얼굴, 열 살쯤 되어 뵈는 과수원집 딸이 꽃 속에서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꽃 속에 과수원집 딸이라니, 이것은 현실 너머 신화의 공간을 환기한다. 현실의 꽃밭이 신화의 꽃밭으로 일변한 가운데 반  백년이 지나도 늙지 않은 채로 천사가 되어 꽃 속에 살고 있는 과수원집 딸을 만난 것이다. 

  과수원집 딸이나 아사코는 원형상징이다. 피천득에게는 아사코로, 임보에게는 과수원집 딸로 각각 다르게 드러나지만, 이들은 꼭 같은 첫사랑의 원형이다. 

   

한둘 두셋 끼리끼리 대학 정문앞 놀이터에 
젊은이들 앉아서 서서 몇 발짝 떠서 
캔 마시고 갈갈거리고 걸걸거리고 두셋 서넛 끼리끼리 
토요일 오후 
놀이터 입구 양편에는 줄줄이 
팔찌 발찌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 늘어놓고 
좌대 위에 알전구 켜서 
마음껏 반짝 반짝이 
자잘자잘 고물고물 노리개들 

노인 하나 야윈 어깨를 목에 붙이고 
이들 속에 언제 들어왔는지, 
찌든 점퍼의 주머니 뒤집어서 
콩껍질 탈탈 털어낼 때마다 
꼬약꼬약 날아들어 목을 뽑는 비둘기들이 
노인의 발등을 쪼고 
맨땅을 쪼고 
아기를 끌어안듯 손을 내민 노인의 
팔목에 손바닥에 비둘기들 앉는다 

비둘기가 노인과 부자父子처럼  어르자 
아작아작거리며 모여든 젊은이들 
쳐다보며 노인은 고물처럼 붙은 나이를 
조금씩 떼낸다 
비로소 온전한 저 눈빛 

       -김규화, <조팝나무> 전문 


  대학 정문앞 놀이터 풍경 속에 이질적으로 편입된 야윈 어깨의 노인의 환기성이 이 시의 핵이다. 제1연에 제시된 풍경은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삶의 풍속도다. 토요일 오후 캔을 마시고 갈갈거리고 걸걸거리는 젊은이들, 그들의 장신구인 팔찌 발찌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가  주변에 즐비하다. 그 속에 편입된 이방인 같은 노인에게 누구 하나 눈짓도 주지 않는다. 젊은이와 노인, 한 공간에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 노인이 찌든 점퍼 주머니 뒤집어서 콩껍질을 탈탈 털어낼 때 비둘기들이 모여든다. 비둘기와 노인은 부자처럼 하나가 된다. 그때 그것이 신기해서인지 젊은이들이 노인을 주목하며 모여든다. 노인과 젊은이를 매개하는 것은 비둘기다. 이 비둘기의 표상성은 심상치가 않다. 

  예전에는 노인과 젊은이를 매개하는 것이 경로효친 같은 아름다운 정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되어버렸다. 가령, 노인에게 큰 재물이 있다면 그 재물을 보고 마치, 비둘기를 보고 모여드는 젊은이들처럼 가족이나 친지들, 아니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주변에 모여들 것이다. 그러나 야윈 어깨를 목에 붙이고 있는 노인에게 모여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비둘기조차도 콩껍질을 얻어먹으려고 날아든 것 아닌가.  

  본지 지난 호에 발표된 이 시는 노인문제를 비둘기의 표상성과 조팝나무라는 제목으로 색다르게 환기한다. 이 시의 제목을 ‘노인문제’라고 달았으면 시적 환기성은 파산이 났을 것이다. 시의 환기성은 직접 드러내 놓고 전달되는 것이어서도 안 되고, 또한 관습적이거나 상투적이어서도 안 된다. 환기성의 생명은 역시 시의 본질인 개성적인 비유와 상징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 ‘조팝나무’도 시의 환기성 측면에서 주목을 요한다. 

  계간 <<미네르바>> 2007년 여름호에 발표된 최광임의 <개 같은 사랑>의 환기성도 주목을 요한다.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큼큼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 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간의 생을 더듬어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 꾸었다 

         -최광임, <개 같은 사랑> 전문 


  이 시는 우리 시대 현저히 위축되어버린 ‘남성성’을 환기하는 것이다.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는 화자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남성성’의 표상이다.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는 수캐는, 덤프터럭 밑에서 휘청 앞발이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화자의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에게로 향한다. 그 때 화자는 그 수캐의 눈빛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자신을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수캐의 사랑은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절박한 처지에서도 암캐를 향해서만 있다. 

  화자에게도 단 한번 어렴풋이 수캐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고, 그래서 그 밤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 꿈 꾸었다고 고백한다. 이 시는 ‘개 같은 사랑’의 관습성을 부수는 통쾌한 아이러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무기력한 남성성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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