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란 일상적 언어가 시작품의 재료로 선택될 때 일컫는 말...
5. 제목에 관심을 가져라
제목을 사람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간파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목을
보면 그 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제목이 '무제'인 경우를 접하게 되면 독자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말 그대로 제목 '題'이 없다 '無'는 의미일텐데, 제목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제목으로 선택한 의도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역설적 의미를 담은 것일 수도 있겠고, 내용 자체가 제목이 없는 것에 대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제목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거나 그저 무성의한 제목 붙이기에 다름 아닐 수도 있겠다.
이렇게 다양한 내용을 암시할 수 있다는 것은 풍부하게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지 않겠나 하겠지만 그만큼 애매할 수도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제목부터 애매한 시는 결국 애매한 시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시가 어디 있겠는가?
파도에 휩쓸려도
산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돌멩이가 되리라.
새싹이 돋아나고
태양이 다시 떠오르 듯
이제
웅덩이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리라.
기적 소리를 멀리하고 떠나가는
열차의 바퀴에 치어
가늘게 떨고 있는 손가락의 기억을
잊을 수 있는
하얀 새가 되리라.
(고교생 작품, '무제')
위에 제시된 시는 제목 '무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세 가지의 되고 싶은 존재가 연결 고리없이 흩어진 채 끝맺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무제'라는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그러나 제목은 시가 갖고 있는 내용을 어떤방식으로든지 암시해 주어야 한다. 제목도 시의 일부이다. 유치환의 '깃발'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시의 본문에서는 '이것은'으로 제목 '깃발'을 지시해 놓고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애수(哀愁)',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라고 은유되어 있다. 제목을 뺀 본문에는 '깃발'이라는 시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 제목 '깃발'이 언급되지 않았다면 위에 열거된 비유의 원관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이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제1연)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박두진, '해' 제 1, 2연)
이 시들은 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을 형상화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이 '해'인 만큼 '해야 솟아라'는 표현은 광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내용일 테고,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역시 촛불을 켜야 할 어둠의 시간을 거절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같은
내용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6. 시어의 이미지를 활용하라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상상력, 표현 기법, 율격, 어조, 이미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미지는 시가 압축을 생명으로 삼는 문학이면서도 구체성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어(詩語)란 시에만 쓰이는 특별한 언어가 아니라, 일상적 언어가 시 작품의 재료로 선택될 때 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시어와
일상적 언어는 다른 점이 있다. 일상적 언어는 언어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이 사전적 의미로 국한되지만 시어는 언어 기호가 갖는
자체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연상되는 내용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이다.
흔히 말하는 직유니 은유니 상징이니 하는 표현 기법은 시어가 일상어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해'의
경우 '해'를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는 밝음, 정열, 희망 등이다. '어둠을 살라 먹고 ∼ 해야 솟아라'를 반복하는 것은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밝은 세계로 향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 것은 당연하다. 유치환의 '일월(日月)'을 보면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 소냐
(유치환, '일월(日月)' 제 1연)
제목부터 '해와 달'로 설정되면서, 제 1연에서는 '내가 가는 곳 어디인들 밝은 대낮이 없을 소냐(있을 것이다)'하여 '밝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읊었다. 같은 시인의 다른 작품을 보자.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중략)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바위')
이 작품은 '바위'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죽은 뒤에 산에 있는 바윗 덩어리로 환생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위가 가지고 있는 단단하면서도 불감부동(不感不動)의 이미지를 지닌 그 속성을 닮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 해', '바위'는 두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어들이다. 어떤 작품이든지 핵심 시어는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대개는 작품의
제재(題材)가 되는데 이 제재에 대한 이미지를 통하여 내용 분석을 시도하면 70% 정도는 작가가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시의 흐름이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시어의 이미지는 사뭇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생사(生死
춘산(春山)에 눈 녹일 바람
어제 불고 간 데 없다.
그 바람 불어야
이 언덕 파릇파릇 새싹 돋아
두 작품의 '바람'은 어떠한가. 전자는 '잎새를 흔들리게 하는 바람'으로 나를 괴롭게 할 정도라면 외부적 시련의 이미지로 적당하다.
그러나 후자는 눈을 녹이고 새싹을 돋게 만드는 '바람'이니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바람'이 아닌가. 이와같이 같은 시어라도 시적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시어로서 선택된 일상어의 흥미로운 여행이다.
' 밤(夜)'은 어둠의 속성으로 부정적 현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붓한 공간을 제시해주는 포근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눈(雪)'은 추위와 관련되는 속성으로 고통, 시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매개체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일러 일반적 이미지 혹은 보편적 이미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편성을 떠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만큼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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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김경후 (1971∼ )
1
자정의 책상엔
지우개 또는 얼룩진 종이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운다
한때 사람들은 빵 조각으로 글씨를 지웠지
빵이 아니라 망각을 달라
2
지우개, 외딴 성당의 고해소
그것에겐 흙바닥에 떨어진 미사보
끊어진 장미 묵주 냄새가 난다
어둡게 피 흘리는 기억들
내 혀에서 떨어져 가루로 흩어져라
모든 기억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지웠다는 기억
입속에서 잿빛 성체가 부서져 떨어진다
3
핏자국을 핥는 혓바닥, 지우개
흉터들의 감옥이자 숙성실
문지르고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이제 지우개가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그린다
화자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다. ‘어둡게 피 흘리는 기억들’, 추악하고 고통스러워!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기억이 난다. 제 잘못은 아무리 무거운 거라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화자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화자는 예민하고,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다. ‘지우개, 외딴 성당의 고해소.’ 기억을 지운다는 건 그저 숨겨버린다는 게 아니라 참회한다는 의미도 있다. ‘모든 기억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지웠다는 기억!’ 화자가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었으면, 그 속이 썩어 문드러졌으면, ‘잿빛 성체’가 가루가 됐을까. 죄의식의 고독이 절절히 전해진다. 화자처럼 나도 잊고 싶은 일이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
시와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이제 어느 누구도 자기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게 돼버렸다. 폐쇄회로(CC)TV나 e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등에 우리의 행적이 기록되고 보존되고 심지어 유통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너무 놀라지 마시라.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뒤통수를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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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다카하시 아유무(1972∼)
나와 사야카 그리고 바테루텐(홈스테이 집의 아들)
세 사람이 양을 몰고 초원을 한없이 걸었다.
나는 하모니카로 밥 딜런의 ‘바람의 소리’를 불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바테루텐이 내 손에서 하모니카를 뺏는다.
“하모니카 불 줄 알아?”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내 하모니카를 바람에 맡겼다.
후∼ 후∼ 화∼ 화∼
바람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강하게 가늘게, 미세한 비브라토를 주면서
바람은 절묘한 톤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인간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소리…
열 개의 음이 동시에 울리는 소리…
1분 정도 바람의 연주를 들려준 뒤
바테루텐은 살짝 웃으며 나에게 하모니카를 돌려준다.
‘바람의 연주가 어때?’라는 듯.
맞아, 네가 이겼다!
‘후∼ 후∼ 화∼ 화∼’ 360도 지평선의 몽골 대초원이 하늘만큼 땅만큼 커다란 입으로 부는 하모니카 소리를 떠올려본다. ‘후∼ 후∼ 화∼ 화∼’ 양들도 귀를 쫑긋거렸으리. 하모니카 칸칸 바람에 스쳐 떨리는 가녀린 그 소리, 바람결에 전해져 누군가는 환청처럼 들었으리.
연주법이 간단해서 단순한 곡조라면 누구라도 제법 흥겹게 불 수 있는 하모니카는 작고 가벼워서 여행할 때 지니고 다니기에 적격이다. 다카하시 아유무가 아직 시를 쓸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스무 살에 대학교를 중퇴한 뒤 출판업, 인디밴드 리더 등을 하다가 스물여섯 살에 결혼해, 곧장 아내 사야카와 단둘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위 시는 2년간의 그 여행 중에 썼다. 첫 세계일주에서 돌아온 뒤 오키나와에 이주해서 오키나와를 세계 제일의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재했다는데, 2008년에 이번엔 네 식구가 무기한으로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게 그에 대해 내가 아는 마지막 정보다.
‘세계’라는 말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세계적인 시인, 세계적인 음악가, 세계적인 운동선수, 세계적인 기업 등등은 그 분야에서 자기 힘을 세계로 넓혔다는 것이겠다. ‘세계적인’ 사람들은 먹고살기 편하겠지. 좋겠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명성’에 야망을 갖는 것일 테지. 다카하시의 세계일주는 다르다. 인생을 우주적으로 느끼고 세상 사랑하기라는 꿈을 여행을 통해 실현하는 그의 다감하고 다정한 발자취를 그려 본다. 오랜만에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독주 ‘비 오기 전’을 듣고 싶다. 하지만, 비는 당분간 그만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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