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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 한반도근대번역문학사에 한획을 긋다...
2017년 02월 09일 22시 17분  조회:3790  추천:1  작성자: 죽림

"백석의 시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낭만주의 레르몬토프의 詩 허무·애수 등 정조 짙게 풍겨
탁월한 한국어 조탁 능력 실감

지난번에 발굴, 공개된 백석의 번역시들은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1902~1963), 러시아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와 미하일 이사코프스키(1900~1973) 등 3명의 작품이다. 백석은 1947년께부터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분과위원으로 일했으며 이 시집 번역에는 월북 문인 김병욱, 김상오 등도 참여했다. 그러나 <히크메트 시선집>의 경우 전체 수록시 61편 중 38편을 백석이 옮기는 등 번역 작업을 주도했다.

백석이 번역한 작품들은 두 가지 성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한국전쟁 직후 체제 정비 기간이었던 당시 북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 사회주의 혁명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시들이 눈에 띈다. '~하자, ~하라' 등 선동적인 구호가 사용된 작품들이다. '위대한 리별의 때는 왔고나 / 인민은 우리에게 총을 맡겼다 /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 / 이른 새벽 우리는 진군을 하자'(이사코프스키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에서),'나아가라! / 앞길에 가로 놓인 산도/ 쓰러버릴 수 있는 땅크처럼/ 나아가라!'(히크메트 '레닌의 돌아가심을 당하여'에서) 같은 시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 갈래는 북한 체제의 요구와 차별되는 시들로, 학계는 이 시들을 더 주목하고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인', '사려' 등은 허무주의, 애수 등의 정조가 짙게 풍기는 작품이고 이사코프스키의 '우리 마을에 살아요'는 연시(戀詩)다.

윤영천 인하대 명예교수는 혁명성을 강조한 작품들은 일종의 '할당'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백석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레르몬토프를 번역한 것을 주목했다. 윤 교수는"당성을 중시하는 시대의 대세에 날카롭게 틈입해 레르몬토프 특유의 개인성을 부각시켰다"며 "백석 시의식의 기본적 지향과 맞아 떨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제곤씨도 "작품을 스스로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석이 번역한 시에서는 인간 내면의 울림과 서정적 목소리가 느껴진다"며 "도식적이고 교조적인 사회주의 문학 노선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백석의 문학적 지향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석은 1948년 10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끝으로 1957년 4월 동시'멧돼지'를 발표할 때까지 9년 동안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굴된 번역시들은 이 기간에 나온 것으로, 해방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백석의 탁월한 한국어 조탁 능력을 보여준다. '호도나무 수풀이야 / 익은 호도를 채롱에 굽알지고 / 길섶에는 수물수물 / 나무 그림자는 져라'(이사코프스키 '살틀한 것들'에서), '그것은 한낮 즐거 익은 쭈그렁 과실 같아 / 우리의 입맛과 눈을 기쁘게 함이 없이 / 의지가지 없는 생내기로 꽃 속에 달려 있거니 / 그것들의 아름다운 때는- 곧 조락의 때'(레르몬토프 '사려'에서) 등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동문학평론가인 장성유씨는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외국의 시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국문화시킨 상당히 뛰어난 번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백석의 아동문학관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도 수록돼 있다. 백석은 계급성, 교훈성을 강조하는 cx아동문학계 주류 노선에 반감을 품었다. 아동의 생활상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해야한다는 문학관을 갖고 있던 그는 1957년 cx아동문학가인 이원우 등과 논쟁을 벌이다가 공개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새로 공개된 작품 중 백석이 번역한 히크메트의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장난질은- / 네 권리 / 그래 높은 담벽으로 / 기어 올라라'로 시작되는 동화풍의 작품이다. 장성유씨는 "작위적인 계몽성이 배제돼 있으며 아동생활 세계의 중심인 '장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백석이 자신의 아동문학관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집들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번역가' 백석의 면모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1939년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분단 이후 cx에서 1947년 소련 소설가 콘스탄틴 씨모노프의 <낮과 밤>, 1955년 소련의 아동문학가 사무일 마르샤크의 <동화시집>을 번역하는 등 1950년대 중반까지 번역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가 북한에서 번역한 작품은 많이 발굴되지 않아 그의 번역문학은 연구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 무렵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온 백석은 사회주의체제에 심정적으로 공감해 월남하지 않았지만, 구호시가 난무하고 도식주의가 난무하는 cx주류문학 노선에 반발심을 품었다"며 "1950년대 중후반까지 시를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시집들은 자신의 시적 불모 상태를 외국시 번역으로 우회하려했던 백석의 시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소련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cx체제가 의도적으로 소개했던 러시아(소련) 작가 외에 백석이 제3세계 작가(터키 시인 히크메트)를 번역을 통해 연구하고 관찰했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됨으로써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이다.

/이왕구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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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北서 번역한 푸슈킨 시, 유려한 언어 조탁 느껴보세요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1912~95)이 번역한 러시아 문학가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시 ‘쨔르스꼬예 마을에서의 추억’의 일부다. “ ‘희미시 잠들은’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석의 푸슈킨 번역은 외국문학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유려한 언어로 조탁됐다”고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말한다. 

국내 연구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번역시 선집을 수집해 그중 백석의 번역시 일부를 이번에 소개한 정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시들은 모두 55~57년의 작품으로, 41년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후 문학적 행방이 묘연했던 시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백석의 우리말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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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헌자료를 수집·연구하는 모임인 근대서지학회가 발간하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소명출판) 2호에 백석이 번역한 러시아 시 167편이 실렸다. 푸슈킨, 이사코프스키, 히크메트, 티호노프, 굴리아 등의 시가 381쪽에 걸쳐 소개됐다. 백석이 해방 이후 번역에 종사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고 번역시 몇 편이 이미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가 북한에 있던 시절에 번역한 시의 전체적 모습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근대서지는 전했다. 

국내 연구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번역시 선집을 수집해 그중 백석의 번역시 일부를 이번에 소개한 정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시들은 모두 55~57년의 작품으로, 41년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후 문학적 행방이 묘연했던 시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백석의 우리말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석 번역시가 담긴 시선집들 표지.

백석 번역시가 담긴 시선집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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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北서 번역한 시167편 공개

헤엄쳐 가며 그 해쓱한 빛으로 주위의 만상을 비치어라 오랜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길 눈앞에 틔었고 등성이며 풀밭은 환히 바라보이어라 여기 내 눈앞에는 어린 버들이 백양나무에 얼키어 수정 같이 찬 물에 맑게 비최고 들판의 공주인 듯 자랑스러운 나리꽃 화려하게도 아리땁게 피어있고나

북방(北方) 정서를 담은 시로 유명한 백석(白石 ·1912~95) 시인이 1950년대 북쪽에서 번역한 시들이 잡지 '근대서지(제2호)'에 의해 공개됐다. 백석 시인이 해방후 번역 작업에 종사했음은 알려져 있지만, 그 전모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어서 학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알렉산드로 푸시킨, 미하일 레르몬트프, 미하일 이사코프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 러시아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총 167편이다. 모스크바에 유학가 문학을 공부했던 터키 출신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들도 포함돼 있다. 근대서지 편집위원회는 "이번에 소개되는 번역시들을 통해 백석의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또 그의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백석론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제 말기에 주로 만주에서 활동한 백석은 한반도 북쪽 지방의 방언을 시언어로 쓰면서도 서구의 모더니즘을 발전시킨 유려한 작품들로 문학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방 이후 만주에서 고향인 평북 정주로 돌아온 백석이 창작보다 번역에 더 힘썼다는 것이 이번 작품들로 드러난다.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에 속한 그는 시분과원이 아니라 외국문학분과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백석은 동시 창작을 하는 한편 러시아 시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백석은 문학인을 혁명일꾼으로 여기는 북한체제의 한계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쏘련시인전집' '레르몬또브 시전집'(위 오른쪽 사진) '이싸꼽쓰끼 시초'(위 왼쪽) 등의 번역 작업에서 특유의 탁월한 언어 조탁 솜씨를 발휘했다. 푸시킨의 시 '쨔르스꼬예 마을에서의 추억'의 일부분을 번역한 것을 보면 외국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우리말 표현이 유려하다.

'헤엄쳐 가며 그 해쓱한 빛으로/주위의 만상을 비치어라/오랜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길 눈앞에 틔었고/등성이며 풀밭은 환히 바라보이어라/여기 내 눈앞에는 어린 버들이 백양나무에 얼키어/수정 같이 찬 물에 맑게 비최고/들판의 공주인 듯 자랑스러운 나리꽃/화려하게도 아리땁게 피어있고나.'

'근대서지'에 백석의 번역시에 관한 논문을 게재한 정선태(국문학) 국민대교수는 "백석이 압하지야(그루지야 자치공화국) 출신의 굴리아 시집을 번역한 것은 주변부의 시인인 굴리아의 토속적 서정이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변방의식에 시달렸던 시인으로서 굴리아의 정서에 동화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김 교수는 백석이 일제 말기부터 번역 작업을 했던 것을 상기하며 "시다운 시를 쓸 수 없는 폭압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번역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소개한 작품들 이외에도 백석이 번역한 작품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동화, 소설 등의 번역작품들도 계속 발굴·소개해야 백석 문학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근대서지'는 이번 호에서 1920년대 여성 계몽을 목적으로 발간됐던 잡지 '여자시론' 3호와 '부인계' 2호를 발굴·소개했다. '여자시론'은 그동안 창간호만 발견됐고, '부인계'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잡지다. 오영식 '근대서지' 편집위원은 "근대출판이 1세기가 넘어가는데도 20세기 초반 출판물에 대한 서지학적(書誌學的) 관심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소개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선기자

 백석(白石, 1912-? ) 

img47.gif  생애
  시인, 아동문학가. 번역가.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오산 소학교 입학. 1924년(13세) 오산 학교 입학. 동문들의 회고에 의하면 재학시절 오산 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짐.
  1930년(19세)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함.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토오쿄오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함.
  1934년(23세)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1924년(13세) 오산 학교 입학. 동문들의 회고에 의하면 재학시절 오산 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짐.
   1935년(24세) 8월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작품에 더욱 정진함. <조광(朝光)>지 편집부 일을 봄.
  1935년(24세) 6월의 어느날, 친구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평생 구원의 여인으로 남을 '란(蘭)'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됨. 당시 이화고 학생이었던 통영 출신의 란은 백석의 마음을 온통 휘어잡음.
  1936년(25세)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같은 해 4월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감. 이때의 생활 소감을 수필 [가재미, 나귀] (동아일보)에 발표함. 이 무렵, 함흥에 와 있던 조선 권번 출신의 기생 김진향을 만나서 사랑에 빠짐. 이때 김진향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줌.
  1937년(26세) 영생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함흥시의 러시아인이 경영하는 상점에 자주 나가 러시아말을 배움. 고향에서 결혼하라는 독촉을 받고 혼례식을 했으나 초례만 치른 후, 다시 함흥의 자야에게 돌아옴. 그러나 자야는 이 사실을 알고 혼자 서울로 떠남. 
  1938년(27세) 영생고보 축구부 지도 교사였던 백석은 전선(全鮮)고보 축구대회에 선수들을 인솔하여 참가함. 이때 자야와의 재회. 그러나 축구부 선수들의 유흥장 출입으로 말썽이 나서 지도교사였던 백석은 함흥학원측으로부터 영생여고보로 문책 전보됨. 몇 달 후 영생여고보를 사임하고 다시 서울로 와서 여성지를 편집함. 
  1939년(28세) 다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나 다시 혼자서 서울로 올라옴. 이 사실을 알 게 된 자야는 다시 백석 곁을 떠남. 조선일보에 재입사하여 <여성>지의 편집을 돌보다가 다시 사임함. 고향 근처의 평안북도를 여행함.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함.
  1940년(29세) 만주의 신찡(新京,지금의 長春)으로 옮겨 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6개월 가량 근무하다가 창씨개명 강요로 곧 사직하고, 북만주의 산간 오지를 기행함. 평론 [슬픔과 진실]을 만선일보에 발표함. 토마스 하디의 장편 소설 <테스>를 서울 조광사에서 번역 출간함. 이 출판 사업차 서울을 잠시 다녀감. 
  1941년(30세) 생계 유지를 위해 측량 보조원, 측량 서기, 중국인 토지의 소작인 생활까지 하면서 고생함. 
  1942년(31세)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4년(33세)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산간 오지의 광산에 숨어서 일함. 
  1945년(34세)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함. 
  1946년(35세)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비서로서 조선 민주당의 일을 돌봄. 고정훈의 증언에 의하면 이 해 12월 고정훈이 만주에서 귀국길에 차중에서 아들이 열병으로 죽었고, 아들의 시신을 안은 채 평양 대동강변 돌각담 집에서 살고 있던 백석을 찾아가 장례를 논의했다고 함. 당시 백석은 평양 권번 동기 출신의 여성과 동거중이었다고 함. 
  1947년(36세)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신천지>에 발표됨. 분단 이후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한국의 문학사에서 완전히 매몰됨. 
  1947년(36세) 10월에 열린 문학 예술 총동맹 제 4차 중앙위원회의 개편된 조직에서 외국 문학분과원에 올라 있음. 러시아 작가 씨모노프의 『낮과 밤』 을 번역하여 출판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년(38세)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함.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를 번역 출간함. 
  고정훈의 증언에 의하면 이화여전 출신의 아내가 있었으나 남편을 몹시 증오하여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고 함. 이때 남편에게 만약 월남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함. 
  1950년(39세)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년(42세)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함. 
  1954년(43세)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 
  1956년(45세) 아동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평론을 발표함.
  1956년(45세) 10월에 열린 제 2차 작가대회에서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일함. 이후『문학신문』을 무대로 하여 다양한 활동을 함. 
  1957년(46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함. 『아동문학』4월호에 「멧돼지」외 동시 3편을 발표하여 아동문학 논쟁을 촉발시킴.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논쟁을 함. 
  1958년(47세) 8월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함. 10월 이후 부르주아 잔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위축됨. 
  1959년(48세) 이전까지 평양 동대원구역에 살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번역창작실’에서 러시아 소설과 시 등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 것으로 밝혀졌다.
  1959년(48세) 1월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양치기 일을 함. 그동안 전혀 발표하지 않았던 시를 쓰기 시작함.  시 [이른 봄] 등 7편을 <조선문학>에 발표함.
  1960년(49세) 이해 12월 북한의 <조선문학>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함. 
  1961년(50세) 12월에 그의 마지막 시작품 [돌아온 사람] 등 3편을 <조선문학> 지에 발표함. 그 이후의 생사는 전혀 확인되지 않음. 아마도 숙청된 것으로 짐작됨. 
  1962년(51세) 10월 무렵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 
  1963년(52세)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1987년 첫 시집 <사슴> 이후에 발표된 시 작품 등 도합 94편을 정리한 <백석시전집>(이동순 편)이 서울의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됨. 이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단행됨. 그로부터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이 아낌과 사랑을 받음. 
  1999년 백석문학상 제정 시행.

 

  작품 경향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석 문학의 특징은 상실되어가는 고향 의식의 회복,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방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 어투의 독백체 등이며, 이는 민중적 정서를 농도짙게 풍겨나게 하는 기대를 갖고서 구사된다. 시인 자신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과 고향 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들이 어김없이 회고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방언이 그의 시작품의 방언적 토대가 되고 있다.


  시인 백석은 민족의 주체적 자아를 문학 쪽에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활동 영역을 농촌 공동체의 생활과 그 정서에서 찾으려 했다. 그무렵 도시공간에서는 이미 말의 타락 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 인간 의식의 붕괴 및 파탄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농촌만큼은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농촌파괴 정책에도 불구하고 혈연과 거주지로 함께 엮어지는 생활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를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김소월과는 당시의 유명했던 사학 오산고보의 선후배 사이로 백석은 선배시인 소월의 문학세계를 매우 흠모하고 존경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채로 소월이 먼저 요절하고 말았다. 소월의 문학에는 민요적 틀에 실어서 표현하는 관서지방 특유의 정서가 있지만 백석은 소월보다 어쩌면 더 짙게 마천령 서쪽 지역인 평안도 주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특이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금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매몰되어온 시인이었다. 백석의 경우는 그 자신이 무슨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거나 꼭 북쪽의 정치체제를 선택할 만한 어떤 필연성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단지 있었다면 그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라고 하는 사실, 해방 이후에 만주에서 돌아온 그가 줄곧 고향의 가족들과 기거해 왔다는 사실, 굳이 서울 쪽으로 월남해 내려와야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그냥 고향에 눌러 앉았었고, 이 때문에 남쪽의 문학사에서는 '북쪽을 선택한 시인'의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북쪽에서의 백석의 시인으로서의 생활은 항시 불안정한 것이었다. 체제 정비를 끝낸 다음 김일성이 맨먼저 착수한 것이 언어의 통일이라는 명제였다. 이것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지역간의 뿌리깊은 알력과 갈등이 사회주의 체제의 발전에 막대한 장애를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소위 문화어 정책이라는 것을 실시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방언의 구획과 변별성을 일거에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였다. 정황이 이러하니 백석의 시세계가 지녀오던 방언주의가 제대로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백석은 실제로 196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각종 문학자료에 아주 드물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더 계속되지는 못했던 것이 바로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그것을 가로막는 문화어 정책 간의 충돌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해서 백석은 북에서도 비운의 시인이었지만 남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운의 금지시인이었다.

  대표작
  여승, 고향, 여우난 골족,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국수, 동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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