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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
소더비 경매사는 24일 런던서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을 경매한다고 1일 발표했다. 소더비는 이 프랑스 인상파 작품의 예정가를 2300만∼3070만 달러로 발표했다. 20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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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신사 닮은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브뤼’와 발랄한 소녀 같은 ‘파이퍼 하이직 퀴베 브뤼’
금융 명문가인 로칠드 가문의 문장(紋章) 속의 5개 화살은 다섯 아들의 화합을 바라는 마이어 암셸 로칠드(1744~1812)가 남긴 유언입니다. 그의 뜻에 따라 아들들은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최초로 하나의 뜻을 펼칩니다. 아들들이 함께 만들어낸 와인이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브뤼(Champagne Barons deRothschild Brut, 이하 바론 드 로칠드)입니다. 마네가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 여러 송이 꽃들이 함께 샴페인을 머금은 모습으로 표현했듯이, 로칠드는 화합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진 분들과 함께 좋은 밸런스를 이루는 로칠드 브뤼로 와인의 시작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샴페인이 다른 지역에 비해 명성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와인의 기포에 있습니다. 파이퍼 하이직 퀴베 브뤼(Piper Heidsieck Cuvee Brut, 이하 파이퍼 하이직) 역시 오밀조밀한 기포를 가지며 지속력이 좋습니다. 샴페인은 샤르도네, 피노 누아 그리고 피노 뫼니에 품종이 블랜딩되는데, 각 샴페인 하우스마다 사용 품종과 비율은 각각 다릅니다. 로칠드 브뤼는 와인에 산도와 꽃 그리고 감귤류의 풍미를 주는 샤르도네와 구조감, 바디감과 여운을 주는 역할을 하는 피노 누아를 6:4로 블랜딩해 만듭니다. 코로 은은하게 아카시아 꽃향이 나기 시작해 서양배, 복숭아 그리고 그 뒤로 샴페인 특유의 비스킷과 잘 구워진 빵의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섬세한 기포들이 촘촘하고 힘있게 올라옵니다. 입안에 머금으면 기포가 터지며 역시 흰 꽃에서 시작해 시트러스, 열대과일 향을 거쳐 이스트 풍미를 가지며, 충분히 좋은 크리스피한 산도가 받쳐줍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밸런스를 이루며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바론 드 로칠드가 기품 있고 고급스러운 중년 신사의 느낌이라면, 파이퍼 하이직은 아직은 어리고 톡톡 튀는 소녀같은 와인입니다. 파이퍼 하이직은 화이트 포도 품종을 포함하지 않고 오직 레드 품종만을 사용합니다. 피노 누아와 함께 블랜딩되는 또 다른 레드 품종인 피노 뫼니에는 와인에 과실 향을 주어 어릴 때 마시기 좋습니다. 향의 복합미 또한 뛰어납니다. 빵과 비스킷의 향으로 시작해서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을 거쳐 서양배의 풍미로 마무리됩니다. 혀 위에서 역시 자몽과 붉은 사과 같은 신선한 과실 향이 인상적이며, 충분한 산도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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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
소더비 경매사는 24일 런던서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을 경매한다고 1일 발표했다. 소더비는 이 프랑스 인상파 작품의 예정가를 2300만∼3070만 달러로 발표했다. 2015.6.2
에드가 드가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 1876년, 캔버스에 유채, 92*68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연말입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쁠 때이지요. 저 또한 이런 연말의 부산함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벌써 문자로만 받은 것이 8개의 모임입니다. 모임을 가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술입니다.
첨잔하며 한 두잔 기분좋게 마시면 분위기도 돋우고, 가일층 기분도 좋지만
지나치면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이 술이죠.
오늘은 그림 속에 나타난 <술 마시는 사람들>과
그들이 즐겨 마신 압생트란 술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드가의 작품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는 당시 유명한 파리의 카페 누벨 아테네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은 마네와 드가가 자주 들렀던 카페였죠. 당시 여배우인 엘엔 앙드레를 모델로 삼아
당시 패션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날리던 파리여인들, 파리지엔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바로 카페에서 그녀가 마시고 있는 술이 압생트란 것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자주 담았습니다.
이번 주 미국 타임지에 흥미 있는 기사가 올랐습니다.
번역하자면 "압생트의 부활, 압생트가 돌아왔다" 정도가 되겠지요. 도대체 이 압생트가 뭐길래 난리일까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유해성을 둘러싸고 찬반론도 만만치가 않더군요.
압생트의 기원은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피에르 오디넬이란 프랑스 출신의 의사가
편백나무와 아니스라 불리는 향료식물, 회향열매(흔히 마리화나라고 하지요), 약용 박하를
함께 증류해서 치료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처방전이 당시 유명한 주류업체인
페르노 리카르에 넘어가게 되지요. 이 회사의 유명한 브랜드가 바로 시바스 리갈입니다.(이건 잘 아시죠)
이후 이 증류주는 인기를 끌면서 당시 부르주아 사회와 드미 몽드(당시의 고급창녀)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매해 2백만 리터가 소비될 정도로 그 인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죠.
장 베로 <카페에서> 연도미상, 캔버스에 유채, 퐁텐블로 경매에서 낙찰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압생트는 한 세기동안 미국내에 유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술 자체에 들어있는 환각유발효과를 근거로 수입을 하지 못하게 막았지요.
압생트는 지중해산 약용/향료 식물인 아니스에서 추출한 연두빛 향이 눈길을 끄는 술입니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선 정신이상을 유발한다는 악평을 들어야 했던 술이었고
그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도 이 술에 중독되어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후문까지 있습니다.
장 베로 <카페에서> 캔버스에 유채, 연도미상, 개인소장
<초록빛 요정>이라 불리는 압생트는 쑥과 식물인 웜우드에서 추출해낸
연두빛깔이 그 생명입니다. 아주 곱지요. 문제는 이 식물이 환각효과를 유발하는 화학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편백나무 껍질에서 추출되는 이 Thujone
이 환각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때문에 이 물질을 넣지 않고 술을 제조한다는 조건 하에
압생트를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한 것이죠. 여기에
유럽의 주류업자들의 강력한 로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입니다.
1890년 후반의 파리를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이란 말로 설명합니다.
당시 활동했던 장르화가 중에 장 베로란 작가가 있습니다. 파리지엔의 일상과 거리의 풍경을
마치 사진으로 찍듯 묘사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죠. <카페에서> 시리즈에 나오는
저 술....연두빛 압생트입니다. 당시 값싸고 도수가 높아 예술가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죠
좌 : 빈센트 반 고흐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1887년, 46.3*33.2cm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우 : 에두아르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 1859년, 캔버스에 유채, 178*103cm, 코펜하겐 미술관
이번 빈센트 반 고흐전에 가시면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이란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고흐는 거의 알콜 중독 상태였다고 하죠. 거리가 보이는
창문 앞쪽에 놓인 테이블, 그 위에 놓여진 압생트 (물론 물로 희석해서 마셨을겁니다)
는 작가의 외로움과 고독을 드러내는 일종의 장치이기도 했죠.
툴루즈 로트렉(1864-1901)
<물랭루즈에서>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23*141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헬렌 버치 바틀렛 기념 컬렉션
파리의 밤 풍경을 즐겨 그린 로트렉의 그림 속 카페 물랭루즈는
지금으로 치면 극장식 술집이었던 셈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압생트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겠지요
술과 질펀한 유희가 가득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압생트를 마시며
더욱 생생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그림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저 카페를
찾아온 일반 사람들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화가의 지인들이죠. 화가와 시인, 사진작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모델로 삼아 초록빛 얼굴을 한 광대의 모습을 아주 정밀하게 그려냅니다.
광대의 모습이 일정부분 화면에서 지워진 것은 당시 사진의 영향이라고 하네요.
파블로 피카소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901년, 종이에 구아슈와 파스텔,
에르미타쥬 미술관, 생 페테르 부르크
최근 연구자료를 보면 이 압생트에 포함된
Thujone은 마치 강한 커피를 수십잔 마신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고 해요
신경자극을 통제하고 전달하는 효소를 막음으로써 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더구나 이 성분에는 납이 일정량 포함되어 오랜동안 음용할 경우 건강을 해친다고 하는 것이죠.
피카소 또한 이 압생트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하죠. 1901년 가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이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을 보고 그린 그림입니다.
보라색과 황색의 강한 대비가, 마치 술에 취했을 때 느껴지는 신산함을 토해내지요.
파블로 피카소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 1901년 캔버스에 유채,
태생적으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사실 거나하게 취해야 하는 자리엔 약간 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행복한 기분 올려주는 한 두잔의 술까지 싫어하는 것은 아니죠.
그저 눈이 내리고 꽃이 지는 날, 인생에서 배운 것들이 나를 살찌울때 반주 겸 곁들였으면 합니다.
연말에 술 너무 드시지 마시고요. 좀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한해의 갈무리 하셨으면 하네요.
후회없는 올 한해의 마무리를 향하여.....에디프 피아프의 <난 후회하지 않아> 듣습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가을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의 <술 한잔> 전문
이 그림은 마네가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현재 영국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목의 "폴리베르제르"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콘서트홀로, 서커스, 콘서트 등이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 눈에 들어오는 존재는,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바텐더 아가씨입니다. 세로로 이어진 그녀의 상의 단추는, 이 화면의 정중앙을 수직으로 2등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화려하고 떠들썩한 홀을 등진 채, 까닭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그녀 등뒤의 홀입니다. 사실 그녀 등뒤에 보이는 홀의 모습은, 그녀 등뒤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 맺히고 있는 영상인 것입니다. 이 사실은 그녀가 손을 얹고 있는 대리석 재질의 바가 그녀의 등뒤에도 있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 위에 놓인 병이 비치는 모습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요(사실 그림 오른쪽에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도 바텐더 아가씨의 뒷모습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광학 법칙에 어긋나는 부분인데, x선을 투사해서 보면 스케치를 여러번 고치면서 구도를 변경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저는 홀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무심한 눈빛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군중속의 고독...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더욱이 그녀의 눈빛은 작자인 마네의 인생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습니다.
마네는 고등법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자란 그는 세련된 파리지앵이었습니다. 그는 대도시로서의 파리를 사랑했고, 그래서 파리 시민들의 도시적 삶의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습니다(교외의 풍경화를 자주 그렸던 동료들, 모네나 르누아르 등과는 성향이 달랐습니다). 한편 그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이었음에도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하여, 금기와 관습을 깨는 문제작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유명한 <올랭피아>, <풀밭위의 점심식사> 등이 그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젊은 시절 모진 혹평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화풍으로 주류 화단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고, 만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아 화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레종 도뇌르(명예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수상의 기쁨도 잠시, 그는 화가로서의 생명을 오래 이어가지 못합니다. 젊은 시절의 방종 때문에 얻은 매독으로 인해 한쪽 다리가 썩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이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완성했고,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고 난 마네는 자신이 더 살지 못할 것임을 예감했다고 합니다. 병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파리 시내를 내다보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화려하고 세련된 대도시, 파리에 작별을 고해야만 했습니다. 병상에서 누워 활기찬 파리 시내를 내다보던 그의 표정은, 아마도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홀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바텐더 아가씨의 표정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이 표정에 대해 미술사학자 프랑수아즈 카생은 "이 그림은 마네를 줄곧 사로잡은 파리 생활의 마지막 이미지의 결론을 말해 주는 듯하다. 잔치는 끝나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아름다운 생애도 막을 내렸으며, 이제는 그림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고해야 할 시간이 왔으니까.(프랑수아즈 카생著, <<마네~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시공사, 1998 중에서)"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비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쯤 이런 의문이 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왜 맥주랑 관련도 없는 이야기를 왜 이렇게 주절주절 썼을까? 아마 제 의도를 눈치채신 분도 있을겁니다.
화면 아래에 어디서 많이 본 라벨이 붙은 병이 보이네요~아~~
많은 분들이 드셔보셨을 BASS입니다. 1777년에 버튼온트렌트에 설립되었고, BASS의 대표격인 맥주 페일에일은 1877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림이 그려진 것이 1880년대이니, 확실히 출시된 이후네요. 그림속의 라벨은 빨간 삼각형에 녹색 테두리인데, 인터넷 검색 결과 아래 사진의 라벨과 제일 유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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