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박용래 - 저녁눈
2016년 05월 01일 18시 54분  조회:4894  추천:0  작성자: 죽림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 / 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문태준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03 시인 - 심정호 2015-03-13 0 5400
202 시는 영원한 새로운 실험...탐구... 2015-03-13 0 4469
201 시인 - 김일량 2015-03-13 0 4959
200 시인 - 전병칠 2015-03-13 0 4329
199 시인 - 김철학 2015-03-13 0 4648
198 동시인 -고 최문섭 2015-03-13 0 5693
197 동시인 - 김득만 2015-03-13 0 5101
196 동시인 - 림철 2015-03-13 0 4229
195 시인 - 주룡 2015-03-13 0 4625
194 시인 - 방순애 2015-03-13 0 4950
193 시인 - 방산옥 2015-03-13 0 4965
192 시인 - 조광명 2015-03-12 0 4699
191 시인 - 박문파 2015-03-12 0 5485
190 시인 - 김창희 2015-03-12 0 4731
189 시인 - 주성화 2015-03-12 0 5300
188 시인 - 최화길 2015-03-12 0 4752
187 시인 - 리호원 2015-03-12 1 4974
186 시인 - 한영남 2015-03-12 1 5865
185 시인 - 리성비 2015-03-12 0 4918
184 시인 - 김현순 2015-03-12 0 5081
183 시인 - 김창영 2015-03-12 0 5407
182 시인 - 김룡호 2015-03-12 0 4834
181 시인 - 김문세 2015-03-12 0 5128
180 시인 - 석문주 2015-03-11 0 5011
179 시인 - 고 임효원 2015-03-11 0 4295
178 시인 - 고 송정환 2015-03-11 0 4849
177 시인 - 고 김문회 2015-03-11 0 5069
176 시인 - 리근영 2015-03-11 0 5034
175 시인 - 고 박화 2015-03-11 0 4502
174 시인 - 고 문창남 2015-03-11 0 4968
173 시인 - 고 설인 2015-03-11 0 4681
172 시인 - 고 현규동 2015-03-11 0 4856
171 시인 - 김학천 2015-03-11 0 4700
170 동시인 - 허송절 2015-03-11 0 4663
169 시인 - 황정인 2015-03-11 0 4592
168 시인 - 려순희 2015-03-11 0 4251
167 시인 - 박춘월 2015-03-11 1 4723
166 시인 - 심명주 2015-03-11 0 4869
165 시인 - 전춘매 2015-03-08 0 5229
164 시인 - 심예란 2015-03-08 0 5061
‹처음  이전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