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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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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와 한석윤
2015년 06월 02일 21시 36분  조회:4102  추천:0  작성자: 죽림

 1. 맛있는 동시만 낳는―한석윤선생

  낳는다는 말, 얼마나 가슴에 벅찬 것인가? 어머님이 자식을 낳는 일,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낳는다는 것, 이처럼 성스런 것이기에 낳는다는 표현은 그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 본 기억에 의하더라도 몇 안 되는 줄로만 안다. 독일의 저명한 음악가 베토벤, 오지리의 저명한 음악가 모차르트 등 음악을 만드는 자들에게만 어머니의 상징으로 불렸을 뿐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안익태에게만“애국가”를 낳은 사람이라 부르고 있으니 그 성스런 표현을 받는 일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영광과 극치를 느낄 것이다.

  이런 성스런 낳음의 영광을 가진 위대한 존재들로는 구세주와 여인, 그리고 몇몇 음악가들뿐이다. 바로 이 영광의 계열에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동시인 한분이 있으니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동시인―한석윤선생이시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첫 동시를 낳기 시작하여 20여 년 동안 1000여수의 동시를 낳고 10여권의 동시집을 펴낸 한석윤선생은 대단한 동시엄마이시다. 세상의 어느 엄마가 천명의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며 세상의 어느 어미(포유류에만 극한 된 자“雌”의 표현)가 천이란 수자의 새끼를 낳는단 말인가? 우리 엄마들은 불가능할 것이고 동물의 어미들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수자에 가까운 자식을 낳은 엄마는 오직 동시엄마인 한석윤선생만 가능할 것이다.

  자식이 많으면 병신 하나쯤은 있는 법이고 새끼가 많으면 제구실 못하고 죽는 것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엄마인 한석윤선생이 낳은 자식―동시들은 그런 불량품마저 없다고 필자는 담대하게 발설하고 싶다. 그렇다면 한석윤선생이 낳은 1000여수의 동시들 모두가 견실한 자식으로, 맛있는 동시로 된 비결은 무엇이란 말인가? 훌륭한 자식을 낳는 일은 어려운 잉태의 생리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2. 어려운 잉태의 생리가 없으면 맛있는 동시를 낳을 수 없다

  세상에서 엄마가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엄마가 되는 기회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여인이 일생에 가지고 있는 난자가 400여개에 불가하다. 하지만 이 400여개 난자 중에 몇 개(요즘 세월에는 한 두 개만)만 잉태가 되고 그 나머지는 여자의 생리라는 독특한 생리현상으로 소실되고 만다. 겨우 4시간이란 수명밖에 가지지 못한 몇 개의 난자들도 대략 3억 개중에서 하나로 살아남는 정자와 만나 잉태되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신비스런 일인가?

  물론 남성과 여성이 부부로 만나면 어련히 아이를 낳게 되는 일로서 극히 보편적인 일이지만 잉태라는 생리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비를 벗어난 기적의 현상이다. 생명이란 곧바로 기적의 산물이기에 마음대로 기대하거나 좌우할 것이 못 되며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이를 낳는 잉태의 생리가 어려운 것과 같이 한편의 작품―동시를 낳는 작업 또한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어쩜 아이를 잉태하기보다 더 어려운 잉태의 생리가 아닐지 모른다. 아이를 잉태하는 일은 남녀 쌍방이 두루 갖춘 조건을 어떤 인연과 기회로 부딪쳐주는 일이지만 아이들의 동심세계를 파헤치고 그 동심세계를 이해하고 그 동심세계에 환상과 꿈을 심어주는 동시를 잉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성스런 일인가?

  다 같은 시인라고 해서 또한 다 같이 동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해서 새댁이 아이를 쏙쏙 낳는 것처럼 동시를 척척 낳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새댁처럼 튼튼한 옥동자나 옥동녀―동시를 잘 낳는 비결은 무엇이던가? 궁금하잖은가? 도대체 어떤 비결이기에… 하지만 이 비결은 우리가 애써 파헤칠 필요가 없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의“동시낳이”라는 동시를 감상하고 나면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동시를 많이 낳는 비결을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낳이가

         요렇게 어렵냐고

         아빠는

         맴맴

         돌아치시고

 

         아기도 낳을러니

         그게

         그렇게 바쁘시냐고

         엄마는

         통통

         쏘아주시고

 

         오라이,

         배시시 웃는

         아가의 맑은 눈

         들여다보며

         아빠는

         만세 부르시네.

 

                             -동시“동시낳이”전문

 

  이는 가히 동시를 많이 낳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보다 더 훌륭한 동시 이론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는 또한 동시노벨상이 있다면 동시노벨상 감으로 될 명작 중의 명작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비결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는 법이요, 이론 또한 그렇게 복잡하고 오묘하지도 않음이리라!

  한편의 동시를 낳는 일,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를 낳는 일이란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합쳐서 만드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통로가 있다. 하지만 동시는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건져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은 들어가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길도 없고 문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로 둔갑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애오라지 아이가 되어서 그 세계를 살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른의 눈에는 정열과 욕망이 들어있지만 아이의 눈에는 구름이 양떼로 비끼고 태양이 양몰이 아이로 비끼는 것이다. 꾸러기들을 위해 쓰는 동시가 뭐 시냐고, 코흘리개들의 비위에 맞추는 동시를 쓰기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는 시인이나 동시인은“동시낳이가 요렇게 어렵냐고 맴맴 돌아치는”아빠로 될 수밖에 없고“아이도 낳았는데 그 아이에게 줄 동시도 못 지어요.”하는 마누라의 조소도 당해야 할 것이다. 동시를 낳자면 아이에게 다가가야 하고 서슴없이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배시시 웃는 아가의 맑은 눈 들여다보며‘동시는 여기에 있다!’고 소리칠”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잉태가 없으면 맛있는 동시를 기대하거나 낳을 수 없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맛있는 동시를 암탉이 달걀을 낳듯 쏙쏙 낳을 수 있는 비결은 어려운 잉태의 생리가 있기 때문이다.

 

  3.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낳은 동시 일부에 대한 단평

  쉬운 잉태로 이루어진 동시는 그렇게 달콤하지 않고 그다지 맛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는 동시를 써본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한낮 졸작의 경지에서 내노라 으스대본 적도 있지만 필자의 자식―동시들은 거개가 병신들이다. 병신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랴. 걱정이 태산을 이룰 것이다. 오늘 어려운 잉태의 생리를 거치고 낳은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낳은 튼튼한 멋쟁이 자식―동시 일부에 대하여 단평이란 형식을 빌려 감상하고 싶다. 왜냐하면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의 그런 훌륭한 자식들이 있음으로 하여 여기 우리 조선족동네아이들이 밝고 화려한 동심을 아름다운 꿈으로 키워가기 때문이다.  

 

 “깜찍하다/ 예쁘다// 욕심 없이/ 지어놓은/ 쬐고만 둥지// 따스하다/ 정겹다// 노랫소리/ 반뜩이는/ 얄미운 둥지//(‘새둥지’전문)”

 

  얼마나 참신한 동시인가? 아이의 눈에는 삭정이를 주어다 지은 산생둥지도 그저 깜찍하고 예쁜 장난감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는 천진한 마음으로 새둥지를 가지고 싶어 한다. 이 동시가 아이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깜찍한 것은 곧 예쁜 것이고 욕심이 없는 것이며 쬐고 만한 것은 따스하고 정겨운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새둥지는 노랫소리만 반뜩이는 얄미운 둥지이다. 즉 가장 깜찍하고 예쁜 것들은 욕심을 심어주지 않으며 쬐고만 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은 늘 따스하고 정겨운 것으로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 둥지이기에 아이에게는 얄미우면서 부러운 것으로 된다. 아이에게 새둥지는 장난감으로 안겨오지만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기도 아이처럼 새끼 새가 엄마랑 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이 동시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아이들에게 남의 행복은 자기에게 속하지 않으며 또 욕심을 부려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워주고 있다.

 

 “뽀뽀는/ 밤에 해야지/ 우리 엄마 아빠처럼/ 밤에 살짝 해야지// 남 다 보는 대낮에/ 뽀뽀하다가/ 그 고운 얼굴/ 붉힐게 뭐람//(‘쌍둥이사과’전문)”

 

  아이에게는 자랑을 하고 싶은 뽀뽀와 감추고 싶은 뽀뽀가 있다. 엄마나 아빠가 자기에 해주는 뽀뽀는 귀여움을 받는 것으로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하지만 저희들끼리 하는 뽀뽀는 어렴풋이 부끄러움을 느껴 꽁꽁 숨기려 한다. 아이들에게도 원초적인 이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이성격리감을 뽀뽀라는 주제로 다룬 동시들은 많으나 이처럼 빼어나게 다룬 동시는 이 하나뿐이라고 뻐기고 싶다. 익은 사과는 붉다. 그냥 붉은 것이다. 한 개를 놓고 보면 그렇다. 아이들도 사과 한 개만 보았을 때 그냥 맛있는 사물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좀 장난스럽게 꼭지가 붙은 쌍둥이 사과를 보게 될 때 어른들은“이거 꼭지를 떼지 않은 사과군.”하고 기어코 뜯어놓을 것이지만 아이들일 경우“그것 봐, 너희들 대낮에 뽀뽀하더니 그 고운 얼굴이 붉어지지 않나? 뽀뽀란 엄마아빠처럼 밤에만 해야지.”하고 이죽거릴 것이다. 이 동시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엄마아빠가 해주는 뽀뽀는 낮에 해서 내가 귀여움을 받는 행복한 애란 걸 세상이 다 알도록 해야지, 우리들 끼리 하는 뽀뽀는 밤에 살짝 해서 숨겨야지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그대로 숨김없이 표현했다. 여기서“쌍둥이 사과”는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만든 아름다운 상징일 것이다. 너와 나는 모두 사과, 그리고 때론 뽀뽀랑 해서 얼굴 붉어진 쌍둥이 사과.

   

 “으스름/ 달밤// 엄마를 기다리던/ 아기가 하나// 문설주에 기대여/ 살포시 잠들고// 눈귀에 매달린/ 눈물 한 방울// 아기를 대신해/ 엄마를 기다리고//(‘눈물 한 방울’전문)”

 

  아일 적 누구나 자주 엄마를 기다려본다. 세상 태어나서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때론 엄마를 기다리며 울다가 그대로 잠들면 뒤늦게 온 엄마가 잠든 아이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집에 안아 들여가는 모습도 우리 모두 눈에 선할 것이다. 누구나 그런 기억은 한 번씩은 다 있으니까? 아니 많은 사람들은 체험은 물론 손수 자기의 아이를 안아 들여갔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의 눈길에 포착된 엄마를 기다리다 문설주에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은 너무 이색적이고 신비하다. 아이의 애탄 기다림이 낳은 눈물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딱 한 방울만 아이의 눈귀에 매달렸다. 그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 아이의 눈귀에 매달린 것은 아이 대신 엄마를 기다리려는 속셈이었으니 그다지 놀랄 바는 아니지만 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생동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만약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아니고 아이들이나 엄마아빠들이라면“난 씩씩해? 엄마가 늦게 와도 울지 않고”라거나“울면 용감하지 못해? 우리 아가 이젠 혼자서 엄마아빠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라고만 하면서 눈물을 훔쳐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일부러 눈물이 아이를 대신해서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니 아기는 눈물을 딱 한 방울만 흘린 것도 아니라 필요에 의해 부른 것이다. 자신은 엄마아빠를 기다리다 잠이 들게 되었으니 눈물을 불러다 자기 대신 엄마를 기다리게 하고 마중을 하게 한 것이 아닌가?

 

 “골목에도/ 으슥한/ 제일 막바지// 외롭게/ 서있는/ 가로등 하나// 심심해도/ 언제나/ 혼자 서있고// 무서워도/ 언제나/ 동무가 없고// 그래도/ 혹시나/ 아기 지날까// 밤 내내/ 자지 않고/ 외눈 밝히네.//(‘외눈박이 가로등’전문)”

 

  요즘 애들은 외롭다. 늘 혼자다. 엄마아빠가 없는 밤이면 혼자서 집구석을 홀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심심하고, 무섭고, 동무가 없다. 그래도 언제면 엄마아빠가 돌아올까 기대되어 옹송그리고 앉아 한 눈을 무릎에 감추고 한 눈을 내놓고 기다린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이런 이미지를 가로등에 심은 것 같다. 골목에도 제일 막바지에 외롭게 서있는 가로등이 심심해도 혼자 참아내고 무서워도 동무가 없이 버텨야 하지만 아기 지날까 밤 내내 자지 않고 외눈 밝힌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달래고 가장 무서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남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외눈박이 가로등은 누나도 동생도 없이 외로운 아이, 또 자기처럼 외로운 아기를 위해 밤을 밝혀주는 아이의 닉네임(nickname)이다. 이 동시는 시대적인 아이들의 정서를 아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엄마야 히히/ 해 잡았다 히히// 세숫대야 들고/ 으스대는 아기// 물속에서 응아/ 해님이 바동댄다.// 물위에서 히야/ 아기님 반짝인다.//(‘해를 잡은 아기’전문)”

 

  늦게 일어난 아이가 마당에 쫓겨 세수를 하다가 하라는 세수는 안 하고 세숫대야 물에 비친 해님을 건지려고 장난치고 있는 장면을 생동하게 그린 동시이다. 옛날 옛적에 가난하고 부지런한 아이가 늘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니 해님이 기특한 마음으로 세숫대야 물에 풍덩 빠져서 금덩어리가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보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더 구수하게 쓰는 것 같다. 오늘 날, 늦잠꾸러기 아이는 가난할 일도 없이 호강하게 살면서 게으르기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님이 그런 아이를 가르치겠다고 세숫대야에 빠져서 아이의 얼굴을 수수떡처럼 지져주는 벌을 주기는 고사하고 세숫대야 물에 빠져서 아기로 새롭게 출생한다. 현실적인 감수가 묻어나는 동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만큼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의 아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늦잠꾸러기 아이도 세숫대야에서 아이를 받아내는 산파 구실을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욕심이 아이들의 마음까지 오염시키는 요즘 세상에는 금덩이를 건져 부자가 되는 일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인도주의 교양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둥지// 파아란/ 둥지// 무슨/ 새/ 낳아놓고/ 날아갔을까// 둥지 속에/ 번쩍이는/ 금빛 알/ 하나//(‘해님’전문)”

 

  하늘은 파란 둥지이고 해는 이름 모를 큰 새가 낳아놓은 금빛이 번쩍이는 금빛 알이라고 착상을 잡음이 놀랍다. 이런 기발한 착상은 늘 아이들에게“금빛 알, 금빛 알! 넌 제발 새끼를 까는 알이 되지 말고 영원히 금빛이 번쩍이는 알로 되어라.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따스하게 해줘?”하는 기대감을 주게 된다. 동시란 아이들에게 신비를 주고 밝은 사색을 주는 것이다. 이 동시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그런 기준을 잘 완성했다. 때문에“해님”이라는 이 동시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해님이 까는 것이라는 놀라운 주제를 통하여 아이들이 세상을 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진정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을 때 동시의 자세는 밝으며 아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을 보다 깊이가 있는 동시를 낳을 수 있다. 

 

 “-나를 타고 서세요?// 허리 못 펴는 나팔꽃에게/ 선뜻 등을 내미는/ 울타리 수숫대// 이 꽃 달아보세요?// 메마른 수숫대 가슴에/ 진분홍/ 꽃송이 달아주는 나팔꽃//(‘수숫대와 나팔꽃’전문)”

 

  이 동시에서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세상이란 것을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말하고자 했고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것이“얼마나 모자라하고 박절한가?”하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세상은 모든 것을 먼저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수숫대는 나팔꽃에게“나를 타고 서세요?”하고 왜소한 자기 몸을 서슴없이 내어준다. 남을 의지하지 하지 않고는 절대 일어설 수도 없는 나팔꽃은 두말없이 수숫대에 의지하고 아름다운 나팔꽃 한 송이를 피워“이 꽃을 달아보세요?”한다. 나팔꽃은 수숫대에게 영광의 꽃이고 나팔꽃은 수숫대에게 아름다움을 듬뿍 주었다. 먼저 베푸는 자가 나중에 크게 얻는다는 도리를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수숫대와 나팔꽃을 빌어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한 수의 아름다운 동시는 세심한 관찰에서 오는 것이다. 나팔꽃은 울바자나 수숫대에 의지하고 사는 것으로 수숫대의 본의가 아니게 나팔꽃 스스로 감아 타는 것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남에게 베푸는 참된 마음이 있다. 동시는 바로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나팔꽃으로 세상에 소리 없이 알리는 것과 같음이다.

 

 “부끄럽지도 않나봐/ 홀랑/ 옷을 벗은/ 겨울나무// 고추가/ 얼어 떨어지면/ 어쩍하지?// 아하!/ 나무는/ 고추가 없구나!//(‘고추 없는 나무’전문)”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오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부끄럽게 산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 수많은 성현들이나 구세주 및 부처라도 아이들과 비춰볼 때 많은 오점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존재들로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다는 건 홀랑 벗는다는 것이다. 고추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부끄럽다는 일은 오점이 아니라 고추다. 그런데 겨울나무는 옷을 홀랑 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고추가 얼 걱정도 안 한다. 아이에게 마음대로 홀랑 벗는 겨울나무가 얄미운 존재이지만 또 고추가 얼어 떨어지면 어쩔까하고 걱정을 해준다. 그런데 나무가 추운 겨울에 옷을 홀랑 벗는 것은 고추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아이에게 어쩜 부럽기도 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겨울나무는 망신스런 오점도 없고 지어는 감춰야 하거나 얼어 떨어질 고추도 없다. 이 동시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아이들에게 겨울나무는 고추가 없기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이며 이담 어른이 된 다음에도 겨울나무처럼 오점을 하나도 가지고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심어주고 기대한 것이다. 동시는 아이들에게 무단적으로 가르치는 시가 아니라 그들의 동심과 나란히 서는 것이며 그들과 같이 생각하는 시이다. 이 동시에서나 그의 모든 동시들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그런 자세에 충실했다.

  

 “뿌옇게/ 바래가던/ 내 얼굴도// 네 눈 속에/ 담으면/ 반짝거린다.// 정말이지/ 해맑은/ 그 눈 속에// 퐁퐁/ 솟는/ 그 샘 속에//  내 멍든/ 가슴도/ 헹구고 싶다//(‘아가 눈’전문)”

 

  이 동시를 아무 생각도 없이 읽다가 보면 저도 모르게 아가의 그 맑은 눈 속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1연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뿌옇게 바래가던 자신의 얼굴도 아가 눈 속에 담으면 반짝거린다고 했는데 이는 아가의 눈에는 밝고 맑은 세상만 보인다는 것이다. 해맑고 정기 도는 아가 눈빛만 아니라 아가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 마음의 창―눈이 접수하는 것 역기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하여 몸이 세파에 찌들고 이제 마음까지 늙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아가의 눈에 담으면 별빛처럼 반짝 거린다. 2연에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아가의 눈 속에 퐁퐁 솟는 맑은 샘이 있다고 했는데 아가의 눈은 너무 깨끗하여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세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심에서 벗어 난지 오랜 어른들은 어떨까? 그들은 유혹적이고 다욕(多慾)한 세상을 살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에 멍이 들어있다. 그런 어른들의 멍을 세탁할 수 있는 곳은 맑은 샘이 퐁퐁 솟아나는 아가의 눈이다. 맑은 마음의 바다를 가지고 있는 아가만 맑은 눈 샘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진단을 하고 아예 자신의 멍든 가슴을 그곳에서 헹구려고 노력했다. 이는 아가의 깨끗한 동심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시를 쓴다는 것은 곧바로 그런 작업이다.

    

 “아이들이 있나 없나/ 참새 한 마리// 개숙개숙/ 교실 안 들여다보고// 아이들이 오나 안 오나/ 난초 한 송이// 목 빼들고/ 대문 쪽만 내어다보고//(‘일요일 학교’전문)”

 

  학교는 아이들이 매일 글공부를 해서 즐거운 곳이고 희망찬 곳이다. 하지만 일요일도 없이 365일 공부만 하는 학교는 즐거운 곳도 아니며 희망찬 곳도 아닌 아이들 동심과 자유가 다 얽매인 감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요일 날, 텅 빈 학교는 더 생기가 있어 보인다. 텅 빈 일요일 학교에 생기를 주는 것은 참새이다. 참새가 일요일 학교에 가만히 기웃거리는 것은 도둑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닌 다른 날, 아이들이 글을 배울 때 참새도 얼마나 글을“배우고 싶었을까?”라고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넌지시 한 마디 던지면서 일요일 학교의 신비를 터뜨린다. 하여 일요일 날, 참새 한 마리가 아이들이 있나 없나 개숙개숙 교실 안을 엿보고 난초 한 송이마저 목을 빼들고 참새의 보초를 서준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참새는 휴학하고 아이들이 휴학하는 일요일엔 참새가 도둑공부를 한다고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말하고 있으며 아이들 공부는 선생이 가르치고 참새의 도둑공부는 개나리가 지켜준다고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이야기 한다. 해서 이 동시는 아주 참신하고 폭발적이다. 일요일 학교가 텅 비어서 아이들은 들에서 뛰놀고 산에서 뛰논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일요일도 흔치 않다. 그런 아픈 현실을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폐단의 기준에서 보고 아이들의 자유를 호소했다. 그것마저 참새 한 마리를 등장시켜 일요일 학교는 참새가 공부하고 개나리가 대문을 지킨다고 하면서 공부는 휴식이라는 양념을 자주 발라야 더 맛있는 것이라고 사회에 호소했다.

 

  이상으로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의 동시 10수를 대체적으로나마 감상했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처럼 진정한 동시인이 되자면 동시를 잉태할 때 먼저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쓰기에 노력해야 한다. 어른의 생각으로 어른의 말로 동시를 잉태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날을 받아 동시를 잉태한다고 해도 결국은 어른의 노파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잉태한 동시는 태교(뭐 남들이 억설하는 동시기교나 논리 따위-동시는 기교나 이론이 없다.)를 중시해도 소용없고 결국 어려운 잉태에 힘든 산고를 치러도 병신자식―동시를 낳을 뿐이다. 동시는 엄마아빠의 좋은 유전자를 합쳐서 낳는 일이 기필코 아니기 때문이다.   

 

  4. 동시엄마―한석윤선생에게 갱년기란 없다

  인생 칠십은 고래회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건 무슨 당치않은 말인가? 필자는 이렇게 부정하고 싶다.

  아니 적어도 동시엄마―한석윤선생에게는 예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70고령을 바라보는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지금도 동시를 쏙쏙 낳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중국조선족동네에서 사는 할머니들은 그게 무슨 망언인가고 아래와 같이 필자를 핀잔할지도 모른다.

 “이보게, 평론가총각! 우리 할미들도 아이를 낳아본지 아득한데 한석윤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동시를 낳는대? 평론가총각이 서방을 못 가더니만 늙어도 아이를 낳고 동시도 낳는 줄로만 아네? 어서 서방을 가서 철이나 좀 들어보게. 쯧쯧!…”

  할머니들의 핀잔에 난 즐겁기만 하다.

  그것은 벌써 아이들이 동시엄마―한석윤선생에게 떼를 쓰는 소리가 내 귀가에 들려오기 때문이다.

 “한석윤할아버지, 어서 동시를 많이 낳아주세요. 한석윤할아버지가 낳아주시는 동시들은 너무 맛있거든요? 엄마가 해주는 비빔밥보다 더 맛있고 아빠가 사주는 요구르트보다 더 맛있어요.”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자애롭게 웃고 계시는 것 같다.

  얼마나 행복하실까? 갱년기도 없이 쏙쏙 낳는 동시들을 아이들이 환호하고 동년의 지기로 삼으니 말이다.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갱년기도 없이 동시를 쏙쏙 낳는 일은 쾌지나 칭칭 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동시엄마―한석윤선생에게는 왜 갱년기란 없을까? 그것은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이 아이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함께 대화를 하고 함께 꿈을 꾸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이라도 동심이 없고 마음이 늙으면 자연히 갱년기를 맞을 것이지만 동시엄마―한석윤선생은 늘 동심에 살고 동심에 다가가기에 절대 갱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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