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3월 2025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詩佛 - 王維
2015년 05월 18일 22시 36분  조회:443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불(詩佛왕유(王維)의 행장(行狀)

 

 

 왕유(王維:699~759)는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였다자는 마힐(摩詰)로 이는 그가 불교에 심취유마힐을 좋아해 유마힐에서 따온 자()이다분주(汾州:지금의 山西省 汾陽출신이다생몰연대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각각 다르게 기술되어 2년이 차이가 난다구당서에는 699년에 태어나 759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신당서에는 701년에 태어나 761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사마(司馬)라는 벼슬 직위에 있던 아버지 왕처렴(王處廉)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 최씨(崔氏)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왕유는 아우 진()과 함께 어려서부터 시()와 서(), 음악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9살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으며 15살 때 수도 장안(長安)으로 유학을 가 시재가 뛰어나 황실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현종(玄宗재위 712~756) 개원(開元)9(721)에 진사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태악승(太樂丞)이란 벼슬에 올랐다그후 한 때 관직을 떠났다가 734년에 다시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중앙의 관직으로 복귀한 뒤 감찰어사(監察御使), 좌보궐(左補闕), 고부랑중(庫部郞中등을 역임했다어머니 최씨가 돌아가자 상을 치르기 위해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지만 현종 말기에는 이부랑중(吏部郞中), 급사중(給事中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755년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장안이 점령되자 왕유는 반란군에 사로잡혀 뤄양(洛陽)으로 끌려간다이곳에서 안록산으로부터 벼슬을 받았으나 탐탁지 않게 여기고 남전(藍田:陝西省 장안 동남에 있는 종남산(終南山기슭에 망천장(輞川莊)을 지어 거기에 머물며 시로써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758년 현종의 뒤를 이어 숙종(肅宗재위 756~762)이 반란군을 진압하고 장안과 낙양을 탈환한 뒤에 그는 안록산에게 벼슬을 받은 일로 문책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 감안되어 사면을 받았다그 후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등용되고,이어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 중서사인(中書舍人), 급사중(給事中)을 거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었다.

 이처럼 왕유는 당()문화가 가장 번창했던 시기에 관직을 역임했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화가 음악가로써 이름을 떨쳤다당시(唐詩)에 있어서 시선(詩仙이백(李白)과 시성(詩聖두보(杜甫)에 이어 시불(詩佛)이라 불린 3대 시인에 들어간다. 또한 그의 그림은 남종문인화(南宗門人畵)의 개조로 추앙받는다송대(宋代)의 소동파(蘇東坡:1036~1101)는 그의 그림과 시를 평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하였다.

 

 왕유의 시는 전기와 후기의 시들이 다른 차이를 나타낸다전기의 시들이 도회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비해 후기의 시들은 전원생활과 자연의 정취들을 나타내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그 가운데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소재로 한 후기의 시들이 더 높이 평가 받는다만년에는 망천장에 은거하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자연을 소재로 한 오언(五言율시(律詩)와 절구(絶句)에 뛰어 났으며 육조(六朝)시대부터 내려온 자연시(自然詩)를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그는 동진의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전원시(田園詩)와 송(사영운(謝靈運:385~433)의 산수시(山水詩)의 영향을 받아 회화(繪畵)의 기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시를 많이 지었다.

 당시(唐詩중에서 자연시를 대표하는 시인을 왕맹위유(王孟韋柳)’라 말하기도 한다왕유,맹호연(孟浩然:689~740), 위응물(韋應物:734~804), 유종언(柳宗元:773~819) 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이들 가운데 왕유가 자연시를 대표하는 중심인물이다왕유의 시집은 왕우승집(王右丞集)으로 전해진다한 편 왕유는 정건(鄭虔), 오도자(吳道子), 등과 함께 중국 남종화의 개조로 여겨지고 있으며문인화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왕유는 인물이나 꽃대나무산수의 정경 등 다양한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 특히 수묵화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장안의 한 건물 벽에 그린 장벽산수화’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 등이 유명했다.

 

 관리와 시인 화가로서의 생애를 산 왕유는 결코 평탄한 생애를 산 사람은 아니었다그의 시와 그림은 자신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21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뜻하지 않던 일로 좌천을 당하면서 인생의 쓰라림을 맛본다다행히 얼마 후에 재상 장구령(張九齡)의 발탁으로 다시 등용되어 정치적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그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장구령이 모함에 걸려 파면 좌천되고 간신 이임보가 등장하면서 정세가 어지럽고 부패해지자 왕유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비교적 온유하고 유약한 성격이었던 왕유는 여의치 못할 때는 숨고 때가 오면 나타나는 은현(隱現)의 생활을 몇 차례 반복하였다비록 치죄는 면했지만 안록산에게 벼슬을 받았던 것 때문에 왕유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만년에는 종남산 망천장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세속 경계를 뒤로하고 불도에 심취 도락을 즐기며 서글픈 자기 인생을 조용히 회향했다비록 벼슬살이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도모하기도 했지만 그의 생애는 시로서 살고 그림으로 산 생애라고 할 수 있겠다유가의 글공부도 했고 잠시 도가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불도에 깊이 심취하여 시로써 선의 경지를 체득한 시불(詩佛)이었다그래서 시선일치(詩禪一致)라는 말이 그의 시에서 나왔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963 중국 몽롱파 시인 - 顧城 2016-12-25 0 4760
1962 해학과 풍자의 시인 - 流沙河 2016-12-25 0 4546
1961 루마니아 작가 - 게오르기우(규)와 산문시 "한국찬가" 2016-12-18 0 5324
1960 영국계 미국 시인 - 오든 2016-12-16 1 6507
1959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 - 버지니아 울프 2016-12-16 0 5925
1958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 - 기피우스 2016-12-16 0 4322
1957 러시아 녀류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2016-12-14 0 8103
1956 풍자적, 반어적으로 쓴 허무주의 현실 고발서...페루 시인-벨리 2016-12-14 0 4540
1955 로마 방언 作 "소네트" 2천편 소각하라...이탈리아시인-벨리 2016-12-14 0 4455
1954 한국 시인 피천득과 그의 딸 2016-12-14 1 4151
1953 중국 죽림칠현 대표 시인 - 阮籍 2016-12-13 0 4119
1952 러시아 최고 현대 음유시인 - 부라트 오쿠자바 2016-12-13 0 4782
1951 중국 晩唐의 詞人 - 溫庭筠 2016-12-13 0 4851
1950 중국 詩佛 자연시인 - 王維 2016-12-13 0 4362
1949 프랑스 시인 - 알프레드 드 비니 2016-12-13 0 6187
1948 중국 송대 詞人 - 柳永 2016-12-13 0 4665
1947 중국 "문학의 자각"시인 - 陸機 2016-12-13 0 4114
1946 중국 송대 詞人 - 리청조 2016-12-13 1 4194
1945 대만 시인 - 葉維廉 2016-12-13 0 3781
1944 아일랜드 시인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2016-12-11 1 6789
1943 영국 시인 - D.H 로런스 2016-12-11 0 5011
1942 스페인 시인 - 가르시아 로르카 2016-12-11 0 5703
1941 프랑스 실존주의파 시인 - 장 주네 2016-12-11 0 5268
1940 프랑스 "인민의 시인" - 자크 프레베르 2016-12-11 0 5804
1939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시인 - 게오르그 트라클 2016-12-10 0 5087
1938 시인,애독자, 딸 그리고 100년... 2016-12-10 0 5836
1937 100여년 잊혀있던 독일 시인 - 프리드리히 횔덜린 2016-12-10 0 6297
1936 사상 최초, 최고 대서사시를 지은 그리스 시인 - 호메로스 2016-12-10 0 6531
1935 서인도제도 영국령 세인트루시아 시인 - 데릭 월컷(월코트) 2016-12-10 2 7150
1934 페르시아 시인 - 잘랄 앗 딘 루미 2016-12-10 0 6639
1933 러시아 시인 - 브류소프 2016-12-08 0 4183
1932 러시아 시인 - 벨리 2016-12-08 0 5153
1931 러시아 시대의 비극적 테너 시인 - 알렉산드르 블로크 2016-12-08 0 5824
1930 러시아 최후의 "천부적인 재능의 농민시인" - 세르게이 예세닌 2016-12-08 0 6435
1929 독일로 한번도 가본적 없는 유대계 독일 시인 - 파울 첼란 2016-12-07 0 7206
1928 문학예술가, 녀인, 그리고 "뮤즈의 삶" 2016-12-05 0 6515
1927 프랑스 시인 - 폴 엘뤼아르 2016-12-05 0 8064
1926 미국 시인 - 로버트 로웰 2016-12-04 0 5476
1925 영국 계관시인 - 로버트 브리지스 2016-12-04 0 6319
1924 미국 최초의 계관시인 - 로버트 워런 2016-12-04 0 5296
‹처음  이전 4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