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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시의 위상과 전망
정진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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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가 몰락을 맞이하는 것에는 내부의 모순과 외부 환경의 변화라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어떤 환경의 변화가 들이닥쳤을 때 그런 변화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지 못하면 몰락에 이른다. 그 유연성은 대부분 그 분야의 흐름을 좌우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을 지도층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학이라고 해서 이 법칙의 예외일 수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일이 낯익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담론이 무르익기도 전에 시의 몰락은 코앞에 닥쳤다. 그리고 점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변한 데는 앞서 지적한 두 가지 요인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두 가지 여건이란 문학계 내부의 경직성과 그러한 경직성을 악재로 만든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말한다.
문학계 내부의 경직성은 문학 스스로 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어떤 분야의 몰락은 외부의 힘이 아무리 강고하더라도 내부의 호응이 있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부의 문제는 내부의 논의로 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 문제는 다르다. 그건 엄연히 외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눈을 잡아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문학인들의 말밥에 오르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대처는 무력하기까지 하다. 진단이 아무리 정확해도 치유할 수 없는 병이 있듯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런 문화의 변혁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이다.
현실의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그 문제를 패러다임의 교체로 보고 그에 걸맞은 세계관과 이론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흐름의 방향을 논하는 방법과, 현실 속의 변화를 감지하여 새로운 전망을 찾는 방법이 그것이다.
물론 거시와 미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면 그보다 더 완벽한 대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쉽사리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 디지털 시대의 도래란 문학에게는 처음 겪는 전대미문의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그로 인한 문학의 위기에 대한 담론은 학자나 교수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현실 속의 변화를 포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변화의 핵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현실 속에 숨어있는 법이다. 현실은 관념으로 대체할 수 없고, 오직 현실 속에서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 속의 변화를 논하는 것은 기준도 없고 방법도 없어서 실제로 논의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맨땅에 헤딩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수수방관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명의 변화가 우리의 현실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어림짐작이라도 있어야만 그 후의 변화를 뜬구름 잡기 식으로라도 헤아려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몸부림마저 없다면 몰락은 그대로 현실이 된다.
이 글에서는 뜬구름 잡기가 되더라도 내가 겪은 디지털 시대의 양상을 정리하여 새로운 담론의 한 재료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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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직 교사이다. 2005년 현재 충청북도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나는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5년에 충북대 사범대에 입학했으며, 1989년에 졸업하여 8월에 첫 발령을 받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선생님들은 시험문제를 ‘가리방’이라는 방식으로 출제했다. 가리방이란 기름이 묻지 않는 바탕 종이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펜으로 글씨를 써서 수동식 인쇄기에 붙인 다음, 잉크를 묻힌 롤러로 밀어 눌러서 찍는 방식이다.
그런데 내가 첫 발령을 받은 1989년에는 일본식 프린터를 들여놓고 원안지를 손으로 써서 넘겨주면 그것을 자동으로 스캔하여 복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979년과 1989년은 10년 세월이다. 이 10년 사이에 선생님들 일의 방법이 바뀌고 그 결과 업무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B4용지에 손으로 쓰건 타자로 찍건 컴퓨터로 찍건 상관없이 시험 문제를 출제해서 행정실로 넘기면 쉽게 프린트가 되어 나온다.
이때의 교무실 환경은 컴퓨터는 없고 타자기가 몇 대 있었다. 손의 힘으로만 치는 타자기가 주종이었고, 내가 발령 받은 1989년에 처음으로 전동타자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전동타자기로 시험을 출제했다. 대학 때 손으로 노트에 썼던 시를 타자기로 옮긴 것도 그때였다. 육필 원고를 기계로 찍어놓으니, 어쩐지 시가 더 잘 써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다. 활자의 마술이다.
1992년이 되자 교무실에 일대 혁신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충청북도 교육청에서는 교수 방법과 교육환경을 크게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청각 기기를 학교에 엄청난 양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나는 제천상고에 있었다. 제천상고는 실업계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다른 학교에 견주면 일찍 들어와 있었다. 정보과가 두 학급 있었고, 이 학생들이 실습을 할 수 있도록 386 컴퓨터가 30대 가량 전산실에 들어와 있다가 얼마 안 되어 다시 486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축제 때가 되면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그것에서 사진 보정작업을 하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고는 했다. 몇 년 뒤에 상고에서도 사라진 주판을 퉁겨서 계산하는 법을 수업하던 때의 일이다.
1993년에 인문계인 단양고등학교로 옮겼다. 실업계와는 달라서 인문계 고등학교인 이곳에는 상업과 한 학급이 개설되었는데, 그 학생들을 위해서 많은 타자기와 286컴퓨터 10대 가량이 있었다. 286은 속도가 늦는 데다가 날이 덥거나 추우면 컴퓨터가 작동이 안 되는 일도 많아서 담당 선생님이 한 겨울에 난로도 켜놓고 한 여름에 에어컨도 켜야 하는 고충을 안던 시절의 일이다.
그러다가 한 해가 지난 1993년도부터 연차로 교수학습 매체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행정실에 컴퓨터가 한 대 교무실에 두 대가 놓여 공동으로 쓰던 386 컴퓨터를 밀어내고 날로 486을 거쳐 팬티엄 급까지 불과 몇 년 사이에 컴퓨터가 보급되었다. 실물화상기와 대형 텔레비전이 학 학급 교실마다 보급된 것은 몇 년 뒤이다. 그리고 2000년을 기점으로 전 교사에게 개인 컴퓨터가 보급되었고, 전산실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되어 학생들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세상은 온통 컴퓨터 천지로 바뀌고 디지털 체계가 된 것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컴퓨터는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모든 행정 업무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다 이루어지며 국가 공무원들 전체가 컴퓨터로 전자결제를 하고, 마침내 세계 최초, 최대로 전자정부를 실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교직에 몸담은 한 개인이 바라보고 겪은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10년 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이런 변화의 물결에 근근이 올라타서 그나마 처지지 않고 따라가는 것은, 나의 능력이나 여건이 아니라 나를 담은 교직 사회의 몫이라고 본다. 실제로 개인 사업을 하거나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는 내 친구들을 만나보면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정부 주도의 영향이 강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개인 기업이나 컴퓨터 업계의 변화는 정부의 이 같은 변화보다는 한 발 빨랐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의 생리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대중화시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사회 전체의 흐름으로 만든 것은 정부 주도의 정책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운영하는 우리 집의 변화를 보더라도 컴퓨터를 사는 일이나 컴퓨터를 운용하는 속도는 언제나 학교의 뒤를 따라갔고, 현재도 그렇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부가 가정을 앞질러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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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문학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당연하게도 문학의 앞날과 연관된다. 문학의 앞날이란 현재의 시인들과 독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장래의 독자와 시인들이 처할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담론은 이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디지털은 이미지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도 시각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앞으로 올 세대는 이미지로 세상을 읽고 사유하고 살기 때문에 이런 행태는 시의 독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의 현대시는 모더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 시각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물론 시각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곧 모더니즘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즘의 출현 이래 이미지는 시의 본류라 할 만큼 우리 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렇게 된 데는 시각 이미지의 유용성이 크게 작용했다. 보통의 문장이나 말은 의미전달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런 전통을 이은 시에서는 가락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의 기법과 의미전달 방식이 시각 이미지로 건너가면 시의 부분부분에서 주제가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 전체를 읽은 다음에 한꺼번에 한 영상으로 다가오면서 이해된다. 바로 이 점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그런 극대화를 통해서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들도록 시에 장치를 해놓았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이 강조되고, 실제로 그것을 잘 활용한 시인들이 좋은 평가를 받곤 했다. 그리하여 이런 이미지즘 기법이 이끄는 시의 흐름이 모더니즘의 전방에 배치되었다. 물론 이것은 그 전에 내려온 시의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려는 의지 내지는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이다. 디지털은 이미지로 말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시의 이미지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강한 자극을 주며 생각의 굴절을 거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와 닿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경향은 시의 존재에 가장 큰 위험이 된다. 결국 이미지 대결에서 시는 퇴장을 당할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자판을 이용하면서도 이모티콘이나 문자 도안으로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신세대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면 시가 지닌 둔중한 이미지는 수영선수의 발에 달린 모래주머니가 연상될 지경이다. 이 속도와 발랄함은 핸드폰에 와서 절정을 보여준다.
물론 시의 이미지와 디지털의 이미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그런 차이점을 구별하면서까지 시에 대해 자비를 베풀어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시의 이미지와 디지털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지즘의 기법이 모더니즘의 첨단에 서 있는 한 이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더니즘이 부정했던 옛날의 시 전통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폼잡고 도달한 곳에는 시의 본 영역이 사라지고,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곳에 시는 와있다. 이것이 이미지를 보약으로 택했다가 진퇴양난에 빠진 근대시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앞으로 시가 차지하는 위치는 디지털과는 다른 이미지의 영역인데, 그런 영역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미래의 독자는 디지털의 이미지로 시를 오독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오독도 시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있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최소한의 애정이 시의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떤 장치를 만들고 기회를 여는 것이 시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희망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시의 특성을 강제로 배우는 학창시절이다.
현직에서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그 중에서 시 창작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절망 속의 희망 찾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절망이라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도래라는 시대문명의 대세와 공교육 체계 안에서 시 교육이 갖는 두 가지 문제점이고, 희망이라는 것은 그런 절망 속에서도 방법에 따라서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 창작이 아닌, 시 비평을 가르치는 학교의 현실은 이런 가능성에 대한 기대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 만다. 학교 현장의 시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살피는 것은 따로 새로운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구태의연한 문제가 디지털 시대의 도래라는 또 다른 거대한 악재와 겹치면서 생기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영상 매체 때문에 그러잖아도 어려운 시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이 소외를 안에서 부채질하는 것이 학교 현장의 시 교육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보면 굉장히 어려워한다. 그 어려움은 우리 세대가 자라면서 느끼는 것하고는 또 다른 영역에 닿아있다. 즉 지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초등학교에 입학 전에는 게임에 빠져들다가 학교에 갈 때쯤 되면 벌써 컴퓨터의 세계로 빠져든다. 텔레비전, 게임, 컴퓨터의 공통점은 가상세계를 그림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눈을 통해서 직접 가슴까지 연결되는 체계이다. 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영상 이미지가 만든 세계는 이들의 현실이 된다.
이러한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언어의 세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상 앞에 붙잡아 두는 교육 현실은 이러한 디지털의 영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현실의 조건마저도 학교 교육은 제거해버렸다.
시를 지도하려면 ‘이미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가 현대시의 아주 중요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도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이미지라는 말과 개념을 너무 어려워한다. ‘언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이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어려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에게 이미지란 화면에서 그대로 가슴에 와 닿는 ‘직접전달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어라는 매개과정을 거치는 연상물이 이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시의 이미지는 개인마다 다 다르다. 그러나 게임이나 인터넷의 세계에서 만나는 이미지는 한 치 오차 없이 정확하다. 그리고 정교하다. 섹스 장면이나 전투 게임 장면에서 의심 가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대로 완전히 노출된다. 상상력이 개입할 틈을 준다는 사실 자체를 이들은 불편해하고 두려워한다. 시를 가르칠 때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이미 언어라는 매개체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구식장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광선검의 시대에 낫이나 호미를 들고 날뛰는 격이다.
이 세대는 자라면서 계속 사회의 관심을 받아왔다. 한 10여 년 전에 학교의 현장을 개탄하면서 ‘교실 붕괴’라는 말을 낳은 세대가 이들 첫 세대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라면서 계속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다. 대학에 가기보다는 컴퓨터 게이머를 꿈꾸면서 부모들과 극한 대립을 벌이더니, 이제는 군대에 가서 자신의 소대원을 향해 총을 갈기고 수류탄을 까 던지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2005년 현재 이들은 20초반에서 중반으로 막 넘어가는 그런 세대들이다.
이들을 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화 환경이 그 이전의 세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런 아이들을 상대로 언어라는 것을 도구로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이미 한물 간 세대의 현실을 짚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 세대의 언어는 글이 아니다. 이미지이다. 바로 이 점을 시는 직시해야 한다. 이 점 때문에 문학은 존재의 큰 전환기에 와있다는 것이며, 마침내 머지않아 몰락에 이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벌써 문학의 가을은 왔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 아침 당장에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란 흐름이어서 본류가 있고 지류가 있다. 지금까지 언어가 본류였다면 이제부터는 영상이미지가 본류이고, 언어는 지류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지류의 물줄기가 얼마나 굵고 가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시를 논한다는 것은 정도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그 정도는 미래를 맞는 시인들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말하자면 지류라고 하더라도 흔적조차 없는 그런 것이 되지 않고 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되려면 문학 내부의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때 체질 개선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연히 대중화의 문제일 것이다. 대중화는 결국 독자 확보의 문제이다. 이것은 시가, 문학이 여태까지 이어져온 관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활력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제도를 통한 체질개선과 디지털 시대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방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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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를 통한 체질 개선은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언어의 활용 방법을 강제하는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문학의 사유에 익숙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의 효율성과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다른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강조할 것은, 지금처럼 입시 위주로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문학을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삶을 바라보는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이것은 단순히 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로 연계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한두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교 교육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에서 쓰이는 이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일이다.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와는 또 다른 기능이 시의 이미지에 숨어있어 그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바로 그런 점을 기반으로 하여 시의 맛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시는 분명 신세대에게 쓴 약이지만, 먹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학창시절이다. 이 시절의 쓴 약을 통해서 시의 이미지를 배우지 못 하거나 잘못 배우면 시는 이들로부터 영영 멀어지고 이것은 시의 몰락을 확정하는 일이 된다. 시의 1차 생존 가능성은 학창시절에 있다. 그리고 이 1차 기회는, 틀림없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다.
또 한 가지는 자꾸 위축되는 문예의 전통을 기관의 힘에 기대서 장려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국가의 시책에 문예가 중요한 정책으로 책정되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동시에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으로 논의를 미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문제, 즉 당사자인 문인들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사회는 어차피 덩어리로 뭉칠 수밖에 없다. 경계선을 그어놓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모든 사회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 선이 어디까지냐 하는 것은 의외로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자칫하면 선이 아니라 성을 쌓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문단은 틀림없이 선이 아니라 성을 쌓아놓았다. 선은 한 발이면 넘나들 수 있지만 성은 문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게 된다. 문에는 당연히 사천왕 같은 문지기들이 지키고 서서 아무도 허가해준 적 없는 통행료를 받는다. 그런 쾌감을 즐기는 동안 스스로 폐쇄된 채 바깥 환경에 대응력을 상실하고 안에서 썩어가다가 고목처럼 쓰러진다.
현재의 시 추천 제도를 비롯한 문예지 중심의 흐름은 이러한 모습의 전형이다. 문예지와 학벌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뭉쳐서 코딱지만한 이익을 노리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한 시의 몰락은 가속도를 탄다. 이게 철부지들의 장난이라면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결과는 의외로 참담할 수 있다. 당장의 꿀맛이 좋은 자들 때문에 전체의 몰락에 이르는 법칙이 문학만을 예외로 비켜갈 리 없다.
이런 구태의연한 발상을 버리지 않으면 시는 살아남기 어렵다. 스스로 숨통을 조이는 행동을 멈추는 것만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문단의 책임 있는 자들부터 이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디지털 시대의 틈새시장이란 디지털 문화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말한다. 디지털 시대는 영상으로 존재하고 시공을 초월한다. 접속지점은 은밀한 공간이지만, 그 움직임과 양상은 다국적 기업의 생태를 닮았다. 전 세계를 순식간에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그 정보를 재구성하여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하여 실재하지 않는 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경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가상공간에서 공존한다. 이들이 현실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예외로 ‘붉은 악마’ 같은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현실 속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들이 갖는 유대는 오늘날의 인간관계처럼 끈적할 리가 없다.
그러니 이런 존재형태가 갖는 맹점 또한 지극히 자명하다. 사람은 사회 속에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또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의 소통방식 또한 이러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가 만든 가상공간의 세계 또한 현실세계로 이어지는 부분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상공간이 아무리 실감나더라도 그것은 그 역방향의 반대급부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디지털 문화가 놓치기 쉬운, 놓칠 수밖에 없는, 반대의 현실세계이다. 그 반대란 실재하는 현실세계의 자각화 운동과 소규모 문화운동이다. 문학에 국한시켜 보면 이것은 지역별 문학 모임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어느 사회든지 그 구성의 형태는 피라미드형이 가장 안정되고 오래 간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런 틀을 바꾸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세대가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을 저절로 채워야만 그 꼭대기까지도 안정되는 법이다. 그러나 새로 유입되는 층이 없으면 이 피라미드 구조는 저절로 다이아몬드 구조로 바뀐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10년 전부터 갑자기 문학의 지형이 바뀌면서 현재 문학계는 다이아몬드 구조로 바뀌었다. 신세대는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까닭에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을 채울 수 없다.
그런데도 문예지는 근대 문학사 이후 가장 왕성하게 불어났고, 시인 역시 엄청나게 불어나서 아파트 동마다 시인 한둘이 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왕성해진 문학 판의 변화를 주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학의 중앙집권화와 맞물려있다.
문학은 자생력을 갖추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자생력이란 사람들 스스로 즐기는, 그래서 그 즐거움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시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 풍토는 추천제도와 문예지의 생존 방식에 긴밀히 맞물려있다. 시를 써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고 싶어 하고 시 쓰는 능력을 추천제도와 문예지 지면 차지하기로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욕구 본능을 잘 자극시켜서 문예지는 자신들의 생존을 꾀한다.
이런 중앙 집권화가 가속화될수록 주변의 지역 문예는 생기를 잃기 마련이다. 중앙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고 있다가 연이 닿으면 중앙의 문예지로 달려가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예풍토와는 전혀 상관없는 시인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 또한 간단하다. 중앙으로 달려가는 관행을 버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중앙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 문예의 활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시 낭송회, 시화전, 사화집 발간 같은 형태의 문예운동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것은 직접 사람을 부딪치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문화에는 없는,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앞의 방법이 문학이 위기에 처할수록 문학다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면 오히려 디지털 문명의 이기를 문학에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손쉬운 것은 인터넷 매체를 이용하여 문학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현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즉, 시 전문 카페나 사이트를 운영하여 시의 대중화를 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우리의 주변으로 아주 가까이 와있다. <빈터>나 <시산맥> 같은 인터넷 동호인 모임을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문화는 문학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 문예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의 소통 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것은 작품과 책의 구매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그런 매력을 주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나 인터넷 체계는 즉각 세계 어느 곳이든 접속된다. 따라서 시 역시 이러한 환경을 이용하여 독자에게 얼마든지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다만 전문성의 결여로 인한 질의 저하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것은 인터넷의 본질이기보다는 운영 방식의 한계일 따름이다. 오히려 인터넷은 지나친 중앙집권화로 말기 암 환자의 상태에 이른 현재의 문단 행태를 교정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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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문학의 생존이 위협 당하는 까닭은 거기에 일정한 비용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인터넷 소통 과정에서는 부대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독자의 구매력을 전제로 하고 있는 문예지 중심의 작품 소통 방식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방식에 의존할 경우, 틀림없이 시인은 이 구태의연한 방식이 갖는 재정의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학의 생존 문제는 결국 재정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맥을 대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시인들이 취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팔리는 장사가 가능한 출판사에 의존하여 무료로 출판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정부기관을 비롯하여 각종 단체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예를 들면 문예진흥기금)을 받아서 출판하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자비로 내는 경우이다.
그러나 현저히 감소하는 독자들이 문화의 관심도를 결정하고,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역시 점차 쇠락을 길을 걸을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세 번째인 경우만이 남게 될 것이다. 결국 시인 자신이 작품을 발표하는 창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설령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것을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일이 남는데 이 역시 결국 시를 쓰는 당사자들의 몫으로 남고 만다. 이제 시는 존재의 유형 면에서 최악의 국면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결코 원하지 않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다다랐다.
어떤 상황이 최악에 이르면 대개 최선의 방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파멸을 겨우 면하는 최악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 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들이 구매력에 의존하는 문학의 존재 방식에 대한 환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생존의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 따르는 재정의 압박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그것만이 피라미드의 바닥을 확장하고 건전한 생존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본다면, 동인 활동을 활성화하되 거기에 두레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동인 형태는 중앙집권화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소규모라고 해도 스스로 독자를 확보하고 독자와 교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구매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동인들 스스로 분담해야 한다. 대개 지역을 근거로 해서 결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특정 지역에 일정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성으로 대변되는 인터넷 문명에 대해 국지성이라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국지성은 국제성을 담보하는 값진 조건이다.
두레의 방식이란 시인들 간의 상부상조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촌지 문화가 아주 발달했다. 그것은 옛날의 농경 사회에서 품앗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 꼬리를 잘라버리지 못하고 도시 문명사회에서도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잣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인들의 애경사가 있으면 돈 봉투를 들고 찾아다니는 것이 흔한 일이 돼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촌지 풍속이 작품집 발행에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시인이 시집을 내면 그 주변의 시인들은 그 시집을 공짜로 받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시집을 낼 때에도 역시 공짜로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습관은 결국 구매력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시인의 부담으로 남는다. 그리고 재정이 열악한 조건이라면 시집을 내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만약에 팔리지 않을 시집은 낼 필요가 없다는 어이없는 발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의 대중화와 생존 문제는 아예 꺼낼 필요도 없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촌지문화를 시집 발간의 경우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한 시인이 시집을 내면 어떤 시인의 아들 결혼식에 돈 몇 만원을 넣어서 촌지를 주듯이 시집을 내면 그 시인에게 일정 액수의 촌지를 건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집을 내는 당사자는 재정에 대한 부담이 없이 독자의 구매력을 얼마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다행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동인간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 나서서 이런 일을 주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인 활동이 중요한 것이고, 생존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년 <새로운 감성과 지성>이라는 사화집을 내는 ‘시문관’ 동인의 경우, 회원이 13명이다. 회원 중에서 시집을 내면 모임을 운영을 맡은 ‘일꾼’이 1인 당 5만원씩 갹출을 하여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본인을 빼고 12명이면 60만원이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 돈이 당사자에게 주는 것은 엄청난 격려와 희망이다. 발행 비용부터 발송비용까지 모두 시인이 떠 안아야 하는 현실에서 주변 사람들의 이런 도움은 단순히 돈의 액수로 그치지 않는다. 동인이란 그런 희망을 주는 관계이어야 한다.
현재 시집 한 권에 드는 발행 비용은 200만원 정도이다. 만약에 회원이 20명이면 한 번 시집 출간에 100만원이 충당되는 셈이다. 회원이 40명이면 공짜로 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런 식이라면 시집 출간도 누구나 한 번 해 볼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학의 위기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넋 놓고 앉았기에 위기인 것이지, 행동하는 자에게 위기는 그냥 말일뿐이다.
문학판의 동인 모임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이다. 대략 2-30명 선이면 적당하다. 이런 모임이 두레의 성격을 활용하여 문학의 생존을 도모한다면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높고 크게 밀려와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 한 가지는 시집을 받아보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하도 많은 시집이 나오다 보니 좀 유명세를 탄 사람은 도착하는 시집을 다 읽어주기도 벅찰 지경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 이상의 기대를 그에게 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사람이 책을 선물로 받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것이 자신을 기억하고 책을 건네준 사람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인이 보내준 시집을 몇 권 사서 주변의 문학도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다. 한 시인이 나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걸 받아서 읽고는 다섯 권을 사서 돌렸고, 그런 사람이 50명이라면 250권이, 100명이라면 500권이 간단히 소비되는 셈이다. 사서 돌리는 사람은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그것이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잠재 독자를 확보하는 일이 되며 나아가 문학의 생존을 좌우하는 일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내 주변에서 그렇게 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조차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법은 앞서 말한, 두레의 성격을 동인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시인이 시집을 사지 않는다면 독자 역시 시집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시의 몰락으로 연결된다. 그 고리를 푸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또 동인 조직이 잘 운영되면 보급 문제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동인들의 손을 통해서 각 지역의 독자들에게 배포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성과 지성>의 경우, 2004년에 낸 제1집은, 충북지역에 150권, 충남 부산지역에 각각 30권, 대구 지역에 50권, 서울 경기 지역에 80권이 배포되었고, 인터넷 동호회로 70권, 우편으로 200부가 배포되었다. 그리고 제2집의 경우에는 회원이 전국 단위로 확대되면서 부산 100권, 대구 100권, 서울 경기 180권, 충북 150권, 대전 충남 50권, 인터넷 동호회 100권, 우편으로 200권 정도 배포되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예지보다 훨씬 더 안정된 보급로를 확보한 셈이다. 그리고 이 책들은 중앙의 권력집단보다는 일반 독자에게 더 많이 보급되는 까닭에 시의 대중화라는 목적에도 훨씬 더 부합된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시가 살아남으려면 발행부터 보급까지 시인 스스로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두레로 묶인 동인 활동이 가장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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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에 문학의 존재 방식과 근거는 가상공간을 떠도는 영혼들에게 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동일한 방식으로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시라는 양식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은 디지털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세대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가장 급한 것이 우리 삶의 주변에서 언제든지 부딪치고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시의 위상을 바꾸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시화전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에서 시 낭송회가 열려야 하며, 자신의 시를 어렵지 않게 활자화시킬 수 있는 합동시집이나 사화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경로와 작업이 우리 삶의 주변에서 손쉽고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런 풍속에 익숙해질 때 시의 대중화는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 문학이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비결일 것이다. 결국 아마튜어리즘의 부활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씨름이 프로팀 운영에만 전념하다가 마침내 몰락을 맞이했듯이, 문학 또한 아마튜어리즘을 전제로 하지 않은 프로란 공염불이다.
문학의 체질을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이 같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문학을 이끄는 집단이 중앙집권화 된 형태의 질서를 스스로 헐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이 된 학연과 지연, 그것도 아니면 문예지 중심으로 뭉쳐서 신라시대에나 있을 성골과 진골 그룹을 형성하여 그 특권을 바탕으로 권력과 이익을 꾀하는 유치한 발상을 버리지 않으면 문학사회 전체의 몰락은 머지않아 현실로 들이닥칠 것이다. 자신들의 둘레 밖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성을 쌓아놓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은 그 바깥에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부러워 할 때에나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는 보아줄 사람도 없는 시대가 왔다. 이끼 낀 중세의 성에서 관객도 없이 끼리끼리 꾸는 헛된 꿈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이다.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공동의 몰락을 예방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이런 일그러진 구조를 바꾸는 방법으로는 인터넷 매체의 장점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거꾸로 선 피라미드는 곧 쓰러지기 마련이다. 피라미드가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뒤집힌 피라미드는 쓰러져야 하며, 그 방법과 대안은 인터넷이다. 각 지역에 구축된 문학인들을 하나로 엮어서 권력화 되지 않으면서 문학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리고 제도화를 통해서 강제하는 방법 역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곳에서 다룰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은 국가 행정과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따로 장을 마련하여 당사자들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인하여 시의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 그 현실을 문학에서 얼마나 더 늦추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이며, 속도를 늦춘 후에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 다음의 과제이다. 이 숙제를 풀 자들은 신세대가 아니다. 이빨 썩은 내 나는 문학권력을 틀어쥐고 그 쾌감을 즐기는 자들과 그들 주변에서 그들을 멍청히 바라보는 시인들과 이 시대 최후의 독자들이다. 100년 후 시는 과연 박물관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확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붓을 놓는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4338.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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