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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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독부
2010년 02월 04일 13시 33분  조회:4727  추천:25  작성자: 김정룡



미녀와 독부

 

 

 중국어 속담에 만 가지 악 중에서 음란함이 으뜸이고, 가장 독한 것은 여자의 마음이다.(萬惡淫爲首, 最毒婦女心)”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인은 일반 부녀보다 미녀는 바람기가 가득하고 음란하고 또 독하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서 <<수호전>>에 등장하는 반금련, 염파석, 반교운, 가씨 등 미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수호전>>에서 반금련의 자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른봄 버들잎 같은 눈썹에는 언제나 운우의 정을 그리워하는 듯 한과 시름을 품고 있고, 춘삼월 복사꽃 같은 얼굴에는 은은히 바람기를 감추고 있었다. 가는 허리는 걸을 때마다 하늘거렸고, 도톰한 입은 향기를 뿜어 벌과 나비가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기타 미녀들의 자태도 거의 이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들을 모두 음란한 것으로 취급했다. 이것이 실제역사사실이든 가공이든 하여튼 모든 남자들이 미녀를 품어보고 싶어 하면서도 미녀에게 이상할리만치 편견을 갖고 있고 또 조건반사적으로 미녀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눈썹이 이른봄 버들잎 같은”여자를 보게 되면 반사적으로 그녀가 “늘 운우의 정이 그리워 한과 시름을 품고 있다.”고 믿게 되고, “얼굴이 복사꽃 같은” 여자를 보게 되면 자연적으로 “은은히 바람기를 감추고 있다.”고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반금련은 자색이 뛰어난데다가 요염한 기운이 넘쳐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서문경은 반금련을 처음 보자마자 그만 몸이 흐믈해졌고 그녀에게 넋을 잃고 말았다. 서문경이 퇴자를 맞을까봐 두려워 머뭇거리자 반금련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주동이 되어 “공연히 소란스럽게 하실 필요가 없어요, 정말로 저를 꾀어보려고 하세요?”라고 말하자 두 사람은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한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염파석과 장문원, 반교운과 배여해, 가씨와 이고가 간통했는데 모두 남자들이 여자에게 혼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이외에 <<수호전>>에 등장하는 미녀인 이사사와 백수영은 작부와 기생이어서 모든 남자를 지아비로 삼는 여자였다.

 다음 미녀는 대개 독부라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실제로 <<수호전>>에서 반금련은 제 손으로 무대랑을 독살하였고, 반교운은 애매하게 석수를 모함하였다. 염파석은 송강을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안달하였고, 백수영은 뇌형을 희롱하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그의 어머니까지 구타하였다. 가씨는 관청에 출두하여 남편 노준의를 무고하고 증인으로 나서 자칫하면 노준의는 죽음을 뻔 했다.

 한나라 초기 여후(呂後)는 남편인 유방이 죽자 애첩이었던 척부인을 산채로 돼지우리에 처넣었다. 개국공신이었던 한신도 그녀의 꾀임에 빠져 죽었다.

 무측천은 더욱 악독했다. “호랑이가 아무리 독해도 제 새끼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딸을 제 손으로 죽이고, 태자 이현(李賢)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젊어서는 물론이고 노인이 되어서도 젊은 남자들을 끌어들여 난륜을 하는 등 음란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중국인은 미녀 하면 음란함이 떠오르고 독부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민간에서는 미녀를 며느리로 맞으면 집안에 화를 불러온다고 믿고 있어 설사 당사자들이 마음에 들어 해도 부모나 형제들의 관문을 넘지 못해 혼사가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과 조선에서는 일등 신붓감으로 신체가 건강해 보이고 엉덩이가 팡팡하고 젖가슴이 풍만하고 입술이 두툼한 여자를 꼽았다. 마치 조선영화<<사과 딸 때 처녀>>에서 600공의 주인공 순희의 어리무던하게 생긴 얼굴에 입술이 두툼해서 말수가 적어 보이고 젖가슴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팡팡해서 애내기를 잘할 것 같은 형상이 일등신붓감이었다.

 미녀들이 음란하고 독하고 일등신붓감으로 외면당한 데는 그녀들의 탓보다 남자들의 탓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사내다운 호한들은 대개 여자를 가까이 하면 영웅이 될 수 없고 진정한 사내가 아니라고 여자를 멀리했다. 그리하여 미녀들은 할 수 없이 백면서생이거나 병신 같은 남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백면서생이거나 병신 같은 남자들은 사내다운 면이 없어 그녀들의 생리적 욕구를 포함해 기타 사내에 대한 여러 가지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래서 그녀들의 마음이 흔들리게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호한들이 그녀들을 멀리하므로 할 수 없이 반금련과 같은 미녀는 건달인 서문경(전통관념으로 보면 건달이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여러모로 잘나가는 인간이었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문경도 무대랑이 간통현장에 들이닥쳤을 때 놀란 나머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었다. 반금련은 이렇게 원망한다. “평소에는 권술과 봉술을 잘한다고 떠벌리더니 급해지니까 종이호랑이처럼 아무 쓸모도 없네. 저렇게 놀라는 꼴이란!”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악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미녀들이 늘 운우의 정을 그리워하여 음란하고 독한 마음을 갖도록 만든 장본인은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남분여장하고 무대에 올라 앵앵거리는 여인의 목소리로 관객을 귀신홀리듯 인기 높았던 전통희극을 보면 중국전통사회모습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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