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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투와 혁신으로 다져온 30년
김영택
사람마다 식성이 다른 건 누구나 다 믿는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어려서부터 양고기는 전혀 외면하면서 지내왔었다. 그러던중 우리 부서에서 일요일을 택해 화룡 남평으로 들놀이를 가게 되였다. 오래간만에 두만강을 마주하고 주위를 두루 바라보니 가슴이 저절로 확- 트이는 느낌이라 신비스러운 자연은 모두에게 생명의 원천으로 택해야 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점심때가 되자 두만강변 자갈밭에 자리를 잡고는 서로 둘러앉았는데 식사당번을 맡은 팀에서 이미 양고기산적을 구워놓고 있었다. 부득이한 사정이였다. 먹을 건 저것 뿐이라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그래, 먹어야지. 아무튼 저것이 오늘의 주식이라니깐.)
이렇게 되뇌이며 필자는 기름이 방울방울 흐르는 양고기산적 한꼬치 집어들고 눈을 질끈 감고 맛보기 시작했다. 참말로 뜻밖이였다. 필자가 꺼리는 양고기냄새는 없고 고소한 맛이 풍겨나며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였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필자는 양고기산적만은 편애하는 습성으로 변하였다. 퇴근해서는 젊은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같이 따라가서는 길옆에 벌려놓은 식탁에 둘러앉아 양고기를 구우면서 덕담도 하고 그날 벌어졌던 일들을 곱씹으며 양고기산적을 맛나게 먹군 하였다.
하루는 집사람이 하는 말이 옆집아바이가 그러는데 우리 집 뒤골목에 양고기꼬치를 구워파는 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것이였다. 우리 집에서 약 30메터 되는 뒤골목에 집 사이 비좁은 길을 따라가면 지금의 단결로의 아주 눈에 잘 띄지 않는 길옆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닥 크기가 별로였지만 아주 깨끗하고 연기도 식탁 밑으로 처리해 집안의 분위기가 훨씬 청신한 데다 손님들도 많은편이라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시작이 절반이라’더니 그 후부터 심심찮게 찾은 곳이 바로 그 ‘풍무양고기산적’ 점포였다. 공일이면 애들과 함께 네식구가 그 집을 찾아 한끼 맛나게 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헌데 3년이 지나 우리는 하남으로 이사를 가게 되였다. 너무도 먼거리라 다시 ‘풍무양고기산적’ 점포를 찾을 생각을 못하였다. 게다가 소문에 ‘풍무양고기산적’이 외국에 그리고 장춘, 상해, 북경 등 큰 도시로 진출했다고 하니 이젠 연길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하루, 옛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하게 되였는데 한 친구의 안내로 우리는 ‘풍무양고기산적’ 점포를 가게 되였다. 연길을 떠난 줄로만 알았던 ‘풍무양고기산적’이 아직도 옛날 그 자리에 위치해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더 말할 나위 없이 변한 점포였다. 오랜 기억 속에는 쬐꼬마한 점포에 식탁이 4개였다. 헌데 1층과 2층을 차지한 점포에는 주방장비에서 점포의 환경과 제품결구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변화해 말 그대로 ‘환골탈태’를 한 현대식 점포였다.
한편 윤룡철 사장은 ‘양고기산적은 수공으로 썰고 수공으로 꿰고 먹는 족족 구워야 제맛이 난다.’는 자신의 품질특색을 견지하면서 전면적으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실천에 옮기였다.
점포의 승패는 식자재에 그리고 장비의 연구와 개발, 완미한 식재료 배합이다. ‘풍무’에서는 초원에서 방목해 키우는 ‘수니터’(苏尼特)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면서 양고기의 입맛을 유지하기 위해 8시간 안에 손님들이 맛보도록 하는 이른바 ‘꼬치를 꿰는 족족 구워먹어야 제맛이라’는 리념을 굳혀왔다.
‘풍무’의 지방특색과 민족특색을 점포의 생명으로 간주한 윤룡철 사장은 2015년도에 모든 ‘가맹점’을 ‘직매점’으로 개조하는 변혁으로 ‘풍무’의 새로운 성장의 해를 맞아 왔다.
이어 그는 이 몇해 사이에 설비의 혁신에 모를 박고 1991년 창업시기의 모든 장비를 이미 연구, 개발한 원거리 적외선 구이장비로 개조함으로써 구워낸 꼬치가 더더욱 맛나고 향기 넘치게 하였다.
2020년은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하여 전례 없던 재난에 봉착했다. 음식업계는 말할 나위 없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는 (손님들이 점포에 오지 못하면 우리가 집에까지 배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여 그는 새로운 브랜드 ‘양고기산적 포장배달’로 신선한 양고기산적 배달을 시작했다. 새로운 업무의 혁신에 더불어 새로운 관리와 새로운 공예의 도입은 점포의 경쟁력을 한결 더 업그레이드하게 되였다.
2021년 11월 18일은 ‘풍무양고기산적’의 30돐 생일이였다.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0년 사이 그는 ‘풍무’ 의 미래를 꿈꾸며 전국 50개 점포의 자본주식기제를 도입하고 개체호 모식으로 경영하도록 하였다.
윤룡철은 ‘자본화의 다음단계는 시장에 도입하는 계획’이라고 피력하면서 ‘풍무’를 중국 민족음식문화 브랜드로 세계에 진출하게 하겠다는 설계를 내비치였다.
30년간 오로지 한 우물만 파온 윤룡철 사장, 그 우물에는 그의 지혜와 노력 그리고 혁신이 슴배인 분투의 력사가 아로새겨져있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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