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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터주대감
김영택
늙으막에 내겐 ‘터줏대감’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심심풀이 삼아 사전을 뒤져보니 ‘터주’라는 건 민속에서 집터를 지킨다는 지신(地神) 또는 그 자리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터줏대감’이란 한 동네나 한 지역 구성원 중에서 가장 오래되여 대표격이 된 사람을 ‘터주’ 같은 사람이라 하여 롱조로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니깐 나는 ‘…가장 오래되여 대표격이 된 사람’은 아니더라도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여 퇴직하고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였으니 ‘터주’는 그런대로 당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요, ‘대감’도 인젠 여든고개를 치달아 오르는 나이가 되고보니 과히 틀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불리우는 리유가 따로 있음을 스스로 자각했다.
한평생 기자로 늙어온 탓인지 나한테는 이른바 괴상한 습관이 몸에 배여있다. 이를테면 길을 가도 그 무슨 ‘정보’를 쥐려는 듯 사방을 살피고 그러다가도 건더기라도 될만한 것들이 눈에 띄우기만 하면 전에는 필기장에 적군하던 것이 지금은 스마튼폰을 지니고 다니다 보니 사진을 찍으면서 글감을 챙기군 한다.
얼마전 서점으로 향하는 길에서 핸드폰이 울려 받으니 이동통신회사에서 영업청에 왕림해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걸음을 재우치려고 생전 다녀보지 않았던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걷는데 문득 눈앞에 나타난 정경에 눈이 휘둥그래지며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모욕중심’
순간, 나는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서서 그 간판을 한참 쳐다보았다. 한편 전에 한 친구가 하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르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혀를 찼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우리 동료들이 맥주파티를 한답시고 한자리에 모였는데 언제나 유머가 많은 한 친구가 우스운 얘기를 한다며 얘기를 꺼냈다. 일요일에 어느 한 목욕탕에 목욕하러 갔었는데 그 목욕탕 간판이 목욕탕이 아니라 모욕탕으로 되여있더라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주인을 보고 “주인님, 우리는 목욕탕에 목욕하러 왔지 모욕 당하러 온 거 아닙니다.” 하니깐 주인은 “웬 말씀이세요?” 하더라는가. 친구가 주인의 팔목을 잡고 밖에 나가 간판을 가리키며 “이 ‘모’자 아래에 반드시 ‘기윽’ 받침을 써야 하는데 기윽이 없으니 업심을 당하는 모욕이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하였다나…
그때는 그 얘기를 우스개로만 들으면서 모두들 그 친구를 거짓말쟁이요, 익살쟁이요 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그가 형상사유가 발달해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잘 꾸민다고 평가했을 뿐이다.
헌데 그 우습게만 여기면서 아예 믿지 않았던 이야기가 내 눈 앞에, 그 것도 전국 관광 도시라는 연길시에서 나타났으니 누군들 자책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드디여 나는 그 ‘××모욕중심’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들어서니 카운터에 한 젊은 녀성이 근무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조선분이십니까?” 나의 물음에 젊은 아가씨는“네, 무슨 일이세요?” 하고 반문해왔다.
“저 간판이 틀린 걸 아십니까?”
“어느 간판이?”
“모욕중심의 ‘모’자 밑에 받침 ‘기윽’이 빠져 수모를 당한다는 모욕이 돼버렸지 뭡니까. 여긴 몸을 씻으러 오는 ‘목욕탕’이 아닙니까.”
그러나 나의 말에 그녀는 발끈하면서 “됐어요, 걱정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 “어서 나가주세요!” 하고 언성까지 높이는 것이였다.
그렇게 ‘터주대감’ 노릇을 하다 수모를 당했어도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괜찮다고 이른바 아Q의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그날 나는 씁쓸히 ‘모욕중심’에서 나왔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내 일에 바삐 보내다 보니 그 때의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언젠가 내가 말하던 그 목욕탕의 간판이 고쳐져있더라고 하길래 인츰 뻐스를 타고 그 곳에 가 보았다. 과연 ‘모’ 아래에 ‘ㄱ’ 받침을 보태놓았다. 물론 고쳐놓은 흔적은 알렸지만 그렇게라도 고쳐놓았으니 천만대행인 셈이다. 옳게 고쳐졌으니 지나간 불쾌했던 일은 멀리 날려보내는 게 바른 마음가짐이 아니겠는가?
연길시의 국자거리 량켠에는 가게가 밀집해 있다.
하루는 주 공안소방대 문 앞을 지나는데 거리 쪽을 향한 간판 하나에 보고도 모를 조선글이 새겨져있었다. 한어를 보니 ‘弘强服务社’라고 씌여있었다. 하다면 ‘홍강복무사’라고 해야 맞겠지만 그 무슨 ‘두나야 뒤냐 복무사’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보다 못해 나는 한창 물건을 매대에 진 렬하고 있는 주인을 찾아 물었다.
“혹시 이 간판을 쓴 광고사의 주인이 한족이였습니까?”
가게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인츰 이 몇몇 글자는 틀린 글자이니 고치라고 귀띔해주었다. 주인이 나에게 종이와 필을 주면서 정확한 글씨로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나는 얼른 ‘홍강’이라고 써주었다.
이틀 후 그 가게를 지나며 보니 이미 맞게 고쳐졌었다.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은 나를 알아보고 “老爷子,多谢谢您!(로인님, 고마와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이 보내는 고마움에서 느끼는 성취감보다는 우리 말과 우리 글이 제대로 옳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였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마음이 더욱 후더워졌다. 그러니 힘이 미치는대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면서 사는 게 저물어가는 이 내 황혼길을 더 붉게 물들일 수 있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이제 곧 다가올 제4회 <조선언어문자의 날>을 생각하니 나의 이런 소행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연변일보 2017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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