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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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시대, 글로벌시대 그리고 애정의 변질
2007년 05월 07일 08시 33분  조회:5402  추천:127  작성자: 김관웅

사이버시대, 글로벌시대 그리고 애정의 변질

김 관 웅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사이버(cyber) 시대, 즉 가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가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호텔이나 다방이나 사무실이라든지 하는 데를 가면 종이나 천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造花)가 생화(生花)를 제치고 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아무리 조화가 생화보다 색채가 더 현란하고 모양이 더 곱고 앙증맞다 해도 자연의 향기가 없는 가상적인 꽃에 불과한 가짜 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 세상에서는 가짜의 꽃이나  나무들이 진짜의 생화나 나무들을 쫓아 버리고 더욱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종이나 천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는 생화의 대리라고 할 수 있다. 비유를 할 것 같으면 지금 세상은 본인보다 대리인이 더 우쭐하는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허구의 세계, 가짜의 세계, 대리의 세계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대부분 가정에는 텔레비죤도 있고, 컴퓨터도 있다. 텔레비죤이나 컴퓨터에 비치는 화면의 세계, 흔히 우리는 그것을 사이버의 세계라고한다. 이 가상의 세계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은 누구나 절실한 체험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황산이나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 같은 관관명소를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는 텔레비죤 화면을 보는 것이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유효할 수 있다. 왕복비행기표와 숙박비 몇천딸라를 내지 않고서도, 한장에 백딸라도 훨씬 넘는다는 입장권을 사지 않고서도 우리는 안방에 가만히 앉아서 지난 6월의 한일 월드컵의 수많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죄다 현장에서 보듯이 보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실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가상의 세계를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즉 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죤이나 컴퓨터에 비친 가상의 세계가  아무리 현실의 진짜 세계보다 더 실감이 나고 더 효과적이라고 해도 역시 앞에서 언급한 가짜 꽃인 조화가 진짜 꽃인 생화의 대리인것처럼의 현실세계의 대리일 따름이다. 그림자의 세계일따름이다.  

그림자의 세계는 우리 인간의 시각인 눈을 즐겁게 해줄 수는 있지만  다른 감각기관은 별로 즐겁게 해주지 못하고 인간의 기타 다른 욕구는 별로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이를 테면 인간의 식욕을 그림자의 세계로서는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에는 화병충기(畵餠充飢)라는 성구가 있고 우리 말 성구에도 <<그림속의 떡>>리라는 말이 있는것이다. 한마디로 그림속의 떡으로는 배 고픈 것을 말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디 식욕뿐이랴.  성욕에 바탕을 둔 인간 남녀들의 성애도 가상적인 세계로써는 종국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텔레비죤에서 미스 월드의 화용월태를 본들 감질나기나 할뿐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가. 

요즘은 연길에서도 컴퓨터의 대화방에 들어가 채팅을 하는게 크게 류행하고 있다. 가상적인 세계에서 생면부지의 남녀들이 서로 님이요, 남이요 하면서  숱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재미나는 해프닝들이 일어나고있다. 만족되지 못한 사랑의 욕구를 채팅을 통해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욕구의 대리배설에 불과하며, 어디까지나 감질나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단지 생면부지의 남녀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아이티(IT)혁명>>이 일고 있는 오늘날의 가상세계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결혼 그리고 결혼에 의해 맺어지고 있는 부부관계도 준엄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그 실례를 한국 권지예의 소설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실례로 들어 보자. 이 소설의 제목부터 해석한다면 “마리오네뜨”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인형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제목을 단다면 <<꿈꾸는 인형>>이라고 달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30대중반의 젊은 부부이다. 남편은 프랑스 빠리에 가서 류학을 하고 안해는 한국 서울에서 과외지도를 하면서 어린 딸을 기르고 있고 남편의 뒤바라지를 해주면서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안해는 남편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으면 잔화를 한다. 가상적인 공간에서만 부부는 전화선을 통해서 련결되여 점점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소원해지는 자기들은 부부임을 다시 확인하군 한다.  

어느 날, 안해는 빠리에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빠리에 가서 남편을 만났지만 남편이 남편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낯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서먹서먹한 느낌이 든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부부관계도 갖지만 그때 그 순간뿐이고 지나고 나면 뭔가 허전하고 허무감이 깃들고, 정이 안 든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나가고 난 뒤에 안해가 방을 청소하다가  자기 것과는 색갈이나 형태가 판이한 다른 녀성의 음모(陰毛)를 발견하게 된다. 남편이 자기가 없을 때 저지른 불륜의 증거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남편의 불륜의 증거를 찾은 그날, 남편이 귀가했을 때 남편에게 화를 낼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고 하니 자신을 자해하는 자살극을 벌인다. 이;렇게 소동을 벌이니까 놀란 남편이 안해를 달래면서 간신히 진정되기는 했으나 안해는 영영 아물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전화라든가 컴퓨터 같은 가상적공간속의 한 가닥의 줄에 매달려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부부관계를 인형의 관계와 같다고 해서 <<꿈꾸는 마리오네뜨>>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서울과 빠리에 전화선이 련결되여 있어서 부부가 전화를 통해 말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실제로 손을 잡고  살을 섞을수있는게 아니다. 부부의 관계는 상대방의 숨소리를 제 귀로 직접 듣고, 상대방의 체취를 제 코로 직접 맡아보고, 몸과 몸이 직접 접촉하는 그런 관계이다. 두몸이 아니;라 한몸이 되는게 부부관계이다. 텔레비죤, 컴퓨터, 전화를 심벌로 하는 오늘날의 사이버시대는 우리의 몸이 대방의 몸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시대이다. 

 <<꿈꾸는 마리오네뜨>>의 부부는 부부가 아니라 인형이 되여 버린 것이다. 살과 살을 섞는 부부가 아니라 가상적인 부부, 즉 실제상에서는 남남인 가짜부부가 되여 버린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안해는 안해 대로 스스로 인형으로 바뀌여 버린 것이다. 법적으로는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부부이지만 유명무실한 가상적부부로 되여 버린 것이 어디 소설중의 허구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가.  

우리의 중국조선족사회는 비록 아직은 진정한 아이티혁명의 시대와는 일정한 거리기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리즘시대에 들어섰음은 분명히 보아낼 수 있다. 중국조선족은 이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로씨야, 프랑스, 독일, 미국, 카나다 같은 구미는 물론이고 호주, 뉴질랜드, 사이판 같은 대양주 그리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에까지 발길을 뻗치고 있다. 그래서 중국조선족을 집씨족에 비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집씨족은 류랑을 하더라도 가족을 포함한 동네 전체가 함께 류랑을 하지만 우리 중국조선족은 부부가 헤여져서 떠돌이를 한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전 연변의 제정경제수입보다도 해외에서 연변조선족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더 많았다고 한다. 표면상이나마 연변의 번영은 사실 해외에 진출한 연변의 조선족들이 벌어들인 외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 것이다.  

세상만사는 새옹지마요, 유득(有得)이면 반드시 유실(有失)인 법이다. 해외진출은 통해중국조선족이 잃은 것은 아주 많지만 그 중에서고 가장 큰 잃음은 인형화된 부부관계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강좌만 보아도 그렇다. 나와 나보다 네살  년상인 선배한 분를 제외하고는 기타 네명은 모두 부부리산의 고배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한창 녀자 맛, 남자 맛을 알 나이에 부부가 헤여져 사는 것이다. 2, 3년의 잠시적인 리별도 있지만 개중에는 10년 동안이나 헤여져 사는 친구도 있으니 옆에서 볼 바에도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적어도 인도주의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대학교수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리실업을 당한 로동자들이나  농민들은 아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부부리산의 파생물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한국에 돈벌이를 간 중국조선족들사에서 확산되여 가고 있는 림시부부현상이나 로씨야에 진출한 중국조선족들 사이에서의 따발(搭伴兒)현상이다.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사이버시대에는 우리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이런 부부관계의 가상화, 인형화추세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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