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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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
2006년 04월 13일 00시 00분  조회:4526  추천:56  작성자: 김관웅
신 <<서옥설(鼠獄說)>>

김관웅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일본이 도왔다'고 교과서에 버젓이 써넣어 한일 관계에 다시 '교과서 왜곡 파도'가 밀려오고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한·일간에 다시 분쟁이 불거지고 있는 시점에서, 한승조 전(前) 고려대 명예교수의‘일제 식민지배는 축복’ 기고문 등으로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가 “친일보다 더 나쁜 건 친북”이라며 사실상 친일세력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 요즘의 한국은 시끌벅적하다. 한국에서의 국론의 분열은 한·일 관계개선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지중 조선조 중기 임제(林悌)의 「서옥설(鼠獄설)」이라는 우화 속의 장면이 떠오면서 이를 패러디할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쩌는 수가 없다.

조(韓)씨네 집 자손들이 왜(倭)씨네 조상이 몇 십년 전에 자기네 아버지를 타살하고 어머니를 강간하고 자기네들을 구박했다고 반세기가 지나도록 거듭 상소를 했다. 혼암한 법관은 끄떡 끄덕 졸다가 눈을 떠보니 또 이 두 가문의 후손들이 몰려와서 콩팔칠팔 떠들어 대는지라 시끄럽다는 듯이 말들을 해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피고인 왜씨네 후손들이 먼저 "한씨네는 우리들처럼 지면 졌다고 앗싸리하게 승복하는 멋도 없고, 지나간 일을 앗싸리하게 잊어버리는 멋도 없는 너무 끈질긴 족속들입니다. 이제는 백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렇게 그냥 물고 늘어지고 있지 않고 뭡니까? 물론 일부 한씨네 후손들 가운데서 일부 제 정신이 있는 친구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라고 법관을 향해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보세요,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오늘도 말머리를 가로채는 걸!!! 왜씨네는 자기 참회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족속들입니다. 백년이 아니라 천년이 지나도 저질렀던 죄는 죄가 아닙니까? "

하지만 법관은 숫제 두 눈을 감고 있는지라 이에 조씨네 자손들은 법관을 행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그래도 법관은 못들은 체 했다. 힘의 논리, 돈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법관 역시 힘 있고 돈 있는 왜씨네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게 뻔했다. 판국이 그러하니 왜씨네는 더욱 기고만장해 졌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우리 아버님께서 손을 대지 않아도 너희들의 애비는 이미 병이 골수에 들어 다 죽게 된 거였어. 매일 술 처먹고 마누라나 패고 가정불화나 일으키고 또 게을러 빠져서 제 새끼들도 거두지 못하는 병신 같은 애비를 가지고 뭐가 생광스럽다고 그냥 떠들어대는 거야?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너희들의 어미가 하도 불쌍해서 우리 아버님께서는 애첩으로 들어 앉혀 첩살림을 차려주고 너희들도 몇 십년 동안 잘 거두어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강간이 웬 말이냐? 우리 아버님께서 너희들의 살림 밑천을 마련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너희들은 아직도 쪽박을 차고 거지노릇을 하고 있을거란 말이야! 안 그래?"

법관의 경향성을 눈치 채고 왜씨네 후손들의 기고만장함에 기가 눌린 한씨네 가문의 한 얼간이가 나서서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래요, 계부님께서는 우리 집을 틀어쥐면서부터 가풍이 판연히 달라지고 살기도 많이 나아졌어요. 우리 집에는 계부님이 맞은 게 축복이었지요. 만일 계부님이 아니고 아라사(俄羅斯)씨나 화(華)씨 강도를 맞아들였더라면 아마도 우리 집은 아마도 풍비박산이 났을 겁니다. 오늘의 우리 가문이 건재할리가 없었겠지요. 우리 어머니를 강간하고 목을 비틀어 죽여 버렸을 것이고, 우리 자식들도 몽땅 칼로 도륙을 냈을 겁니다. 입이 비뚤어져도 말이야 바른 대로 해야지요. 우리가 오늘 이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것도 모두 계부님께서 엄히 단속하고 가르친 덕분이 아니겠어요?"

이 얼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법정은 조씨네 후손과 왜씨네 후손간의 설전으로부터 조씨네 후손간의 난투극으로 번졌다.

사신(史臣) 평왈(評曰) -- 역사는 화학실험과 달라서 재연할 수가 없는 것이니 왜씨에게 당하는 것보다 아라사(俄羅斯)씨나 화(華)씨에게 당하는 쪽이 더 참혹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송사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즉 성폭행을 저지른 자가 자신의 강간죄를 자인한 뒤에야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자기가 문단속을 잘 못했다든지 혹은 평소에 헤프게 보인 것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보아야 그 순서가 맞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약자들은 언제나 공리(公理)가 없는 이 세상을 한탄하지 말고 힘을 길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송사에서 이기자면 언제나 수미정연하고 만중일치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에 있어서 아직도 순서가 잡히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것도 피해자 측에서 먼저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가해자의 로고를 칭송하는 얼간이들이 속출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말 깨나 하고 글 깨나 쓴다는 한승수나 조갑제같은 엘리트들이 아직 한일 양국 사이의 역사청산의 순서도 모르고 있으니 더욱 한심하다.

일본 우익의 ‘침략유공론’은 조금도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피해국 한국인으로서 누가 핍박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자진하여 '일제의 식민지배를 예찬한 한승수나 이를 두둔하는 조갑제씨의 망언은 제 정신이면 쏟아낼 수 없는 미친 소리, 얼빠진 소리라고 할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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