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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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왕벌, 수펄 그리고 일벌 (김관웅59)
2007년 06월 01일 08시 40분  조회:5574  추천:88  작성자: 김관웅

녀왕벌, 수펄 그리고 일벌
- 대학에서의 교장, 행정간부와 교수집단의 관계를 론함

김 관 웅 
    

   꿀벌은 고도로 발달된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으로서 우리 인간들의 사회생활과 아주 류사성을 갖고 있다. 게스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의 리론에 의하면 벌집이라는 이 기능적인 단위는 어쩌면 대학이라는 이 인간생활의 단위와 이질동구(異質同構)의 관계를 갖고 있다. 즉 벌집에서의 녀왕벌, 수펄 그리고 일벌 이 삼자관계는 대학에서의 교장, 당 ․ 행정 인원과 교수집단의 삼자 관계와 대단한 류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벌집의 구조관계는 대학의 구조적관계 및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나 감정의 훌륭한 객관대응물(客觀對應物)로 되는 것이다.   

   꿀벌은 가장 사회성을 띤 곤충으로서 가장 진화하였으며 항상 봉군(蜂群)이라는 하나의 기능적인 단위로 생활하고 있다. 봉군은 한 마리의 녀왕벌과 계절에 따라 그 수가 변하는 수만 마리의 일벌, 그리고 번식기인 4-9월에 나타나는 2000~3000마리의 수펄로 구성된다.   

  먼저 녀왕벌의 생태를 살펴보기로 하자.   

  녀왕벌은 한 개 대학에 비하면 교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마리의 일벌들에 의해 둘러싸인 녀왕벌을 보면 자연히 수만 명의 교직원을 거느리는 위풍당당한 교장을 련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왕벌과 일벌은 모두 암컷으로서, 똑같은 수정란에서 태여난다. 녀왕벌과 일벌의 분화는 성육(成育)하는 벌집의 방과 유충기에 주어지는 먹이의 량과 질의 차이에 따라 유충 전기에 결정된다. 녀왕벌은 선택되여 큰 방에 모셔지고 먹는 것도 일벌들과는 다른 로열젤리(중국에서는 蜂王漿이라고 한다.)이다. 로열젤리는 우화 후 일주일 전후하여 젊은 일벌들의 입에서 나오는 분비물로서 고단백의 액상물(液狀物)이다. 이 단백질은 일벌이 꽃에서 채집한 꽃가루에 의한 것으로서 일벌들이 일단 체내에 섭취하였다가 생합성(生合成)을 거쳐 영양가 높은 로열젤리가 되는 것이다. 녀왕벌의 유충은 다량의 로얄젤리를 유충기간 동안 계속 먹이는 데 비해 일벌의 유충은 유충기 6일간 중 전반 3일간은 거의 로얄젤리와 같은 일벌유(乳)를 조금씩 먹이고, 후반 3일은 봉밀과 꽃가루의 혼합물을 먹인다. 이처럼 유충기의 영양조건에 따라 여왕벌과 로동벌로 분화된다.   

  녀왕벌은 우화(羽化)한 뒤 7~10일 쯤 되면 보통 3~7회 공중에서 교미하여 수컷에서 얻은 정자를 저장낭에 모아둔다. 이 정자의 수는 700만개에 이르는데, 녀왕벌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계속 저장낭속에서 살고 필요에 따라 필요에 따라 수란관으로 나오게 된다. 증식기인 4-7월 사이에 녀왕벌은 하루 2000개 이상의 알을 낳아 수만 마리의 봉군을 형성시킨다. 녀왕벌의 건강과 줄기찬 생식력은 봉군의 존속을 지탱해 준다.   

다음은 일벌의 생태를 보기로 하자.    

  일벌은 녀왕벌과 마찬가자로 암컷으로서 똑같은 수정란에서 태여 난다. 우에서 언급했다시피 유충기에 녀왕벌과 같은 먹이를 먹지 못했기에 일벌로 된 것이다. 일벌은 유충으로부터 우화하는 과정에서 생리조건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벌집의 청소, 육아, 영소(營巢), 파수 등의 역할을 하는 내근(內勤)벌과 꽃을 찾아 화밀(花蜜)이나 꽃가루를 운반하는 외근(外勤)벌로 구별된다. 수명은 봄에서 여름에 걸쳐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30-40일, 겨울에는 6개월 정도이다.   

  우화(羽化)한 일벌이 최초로 하는 일은 벌집방의 청소이다. 2~3일이 지나면 봉유(蜂乳, 즉 로열젤리, 일벌유, 수펄유를 총칭한다)의 분비가 시작되면 육아에 전념하게 된다. 그 후 얼마 지나서 일벌들은 또 봉랍(蜂蠟)을 분비하여 육각형의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약 3주일이 지나면 내근벌들은 외근벌로 이행해 간다. 꽃을 찾고 화밀과 꽃가루를 모아 운반하는 위험한 일은 로령(老齡)의 일벌이 맞는다. 분봉(分蜂)과정에서도 시종일관하게 일벌들의 주도에 따라 행해지게 된다. 이처럼 일벌은 봉군에서의 주체로서 모든 생산적인 고역을 전담하는 것이다. 마치도 인간사회에서의 인민대중과 같은  존재이다.   

  세 번 째로 수펄의 생태를 보기로 하자.   

  수펄은 일벌이 낳은 것이다. 원래 자성(雌性)인 일벌은 녀왕벌이 죽고 다음 대(代)의 녀왕벌의 육성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산란을 시작하는데, 낳은 알은 모두 무정란으로서 작은 수벌로 우화한다. 수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종족유지에 필요한 녀왕벌과의 교미가 유일한 역할이다. 번식기에는 2000~3000마리에 이른다. 그러나 녀왕벌과 교미를 하는 수벌은 거퍼 10마리 미만이다. 교미가 끝나면 수펄들은 파수를 담당한 일벌들에 의해 죄다 목이 잘리고 만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곤충 공동체로서의 봉군(蜂群)과 인간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이질적인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그 구조는 상당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녀왕벌은 한 개 대학에 비하면 교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마리의 일벌들에 의해 둘러싸인 녀왕벌을 보면 자연히 수만 명의 교직원을 거느리는 위풍당당한 교장을 련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벌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과학연구를 하는 교수들을 주축으로 하고 대학의 각종 후근보장을 담당하는 직공들과 사무원들과 가르침을 받는 대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대학의 각 당기관이나 행정 부서의 각급 처장과 과장들은 같은 행정 간부나 당 간부는 수벌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녀왕벌이 아무리 생식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수펄들이 제공하는 정자(精子)가 없으면 봉군(蜂群)을 형성할 수가 없듯이 대학의 교장이 아무리 상징성이 높고 능력이 있고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해도 그런 아이디어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간부집단이 없다면 대학교를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봉군(蜂群)에 적정한 수량의 수펄들이 있어야 하듯이 대학에서의 행정간부들도 적정한 수량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대학들에서의 행정간부집단은 그 수량이 너무나 많다. 행정간부들에다 당계통의 간부들까지 합치면 비교학(非敎學), 비연구(非硏究) 인원이 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많다. 교미기가 끝나면  파수를 담당한 일벌들이 쓸모없게 된 수벌들의 목을 잘라 죽이듯이 해야 하겠지만 중국 대학들에서는 아직까지는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중국대학들에서의 구조적인 병폐는 이런 비교학(非敎學), 비연구(非硏究) 인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데 있다.   

  중국의 적지 않은 대학들에서 이 수펄 같은 존재인 행정 간부들이  막강한 권세를 누리면서 대학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수는 다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교장》이나 《원장》이나 《처장》등 보직을 맡은 교수가 마치 더 실력 있는 교수로 간주되고 있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교수사회에는 학문연구와 강의보다는 보직을 얻거나 보직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어떤 교수들은 보직을 지키느라고 거의 한 평생을 허비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필자의 은사들 중에도 이런 분이 있다. 이 분은 학문적 업적을 높이 쌓아올릴 기초와 조건을 훌륭하게 갖춘 분이였지만 20년 가까이 보직에 연연해 있다가 황금 같은 귀중한 학문연구의 시간을 다 놓치고 말았으며 종당에는 이른바《교수》와 《학자》라는 허울만 남았다. 이는 분명히 비극이다.      

  이런 전철(前轍)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도 왜 아직도 《보직+교수=보직교수》식의 량 다리 걸치기 교수들이 가득한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생의 학문적인 성공을 희생하면서라도 보직을 쥐려고 애들을 쓰는가?     

  그것은 모든 교수, 학자들이 다 영광과 실리를 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술업적이 뛰여난 교수나 학자라고 하더라도 대학이나 학계에서 《벼슬 감투》를 쓰고《보스》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면 명예와 실리를 챙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형태로든지 무슨《조직》을 장악하고《행정실권》을 틀어 쥐여야만 하는 것이다. 연변대학의 경우만 보다도 그렇다. 혼자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생전에 명예와 실리를 다 챙기면서 떵떵거리면서 살기 어렵고, 대개는 교학이나 연구보다는《조직관리》나 《벼슬감투쓰기》에 능한 사람이  능력 있는 학자의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글만 열심히 쓰고 강의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늙어서 외로워지기 쉽다. 이른바 《대학의 정치》를 통해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고 후배 관리를 잘 해야만 늙은 뒤에 가서 《원로교수》의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원래 정치적인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청정해야할 대학가에서마저 매사에 정치가 동원되니 정치에 둔감한 교수들은 언제나 불리익을 당하게 된다. 살아있을 때는 정치에 능란하여 명예와 실리를 두루 다 챙기면서 살아왔지만 죽고 나서는 잊혀져버리게 되는 교수들이 바로 이런  보직교수들이다. 그러나 현세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진 적잖은 교수들은 사후의 일은 관계치 않는다.     

  중국의 적지 않은 대학들에서는 바로 이런 보직+교수=보직교수들이 량 손에 떡을 쥐고 좋은 일은 다 자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보직교수들은 인사권, 경제권, 행정권을 다 틀어쥐게 되었기에 살아가기 윤택하고 모든 기회를 남 먼저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연변대학에서 한 평생 서양문학을 가르쳐 오고 있지만 보직이 없는 일반 교수로 일관해 오다보니 유럽려행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원래 중국 고전 문학을 전공했던 한 보직교수는 장(長)자를 달더니 중국 국내의 명산대천은 두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9개 나라나 순방하고 돌아왔다. 대학에서 “로열젤리”를 먹는 것은 교장 한사람에게만  국한되여야 하겠지만 수벌 같은 존재인 보직교수와 행정간부들도 “로열젤리”를 장복(長腹)하고 있는 형국이며, 제일 얻어먹지 못하는 것은 교학과 연구에만 정진하고 있는 일벌 같은 무보직의 교수들이다.   

  사실 교장과 원장을 제외한 보직은 직원이 맡으면 된다. 이런 원인으로 적잖은 대학들에서는 교수와 행정직원의 구별도 별로 없다. 적지 않은 행정직원들은 이런저런 도경을 통해 쾌속으로 석, 박사를 마치고는 교수로 탈바꿈하는 까닭에 교수진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만든다. 이런 풍토에서 중국의 적지 않은 대학들에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어용교수, 무능교수, 속물교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꿀도 따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수펄 같은 보직교수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는 교직원 사회에서만 아니라 학생들 속에서도 만연되여 가고 있다. 요즘 연변대학의 대학가에는 요해부문의 보직을 맡은 “아무개 아무개 교수의 석사나 박사를 해야 전도가 있다”는 말들이 학생들 속에서 파다하게 떠돌아 있으며, 심지어는 그 보직교수의 석사연구생들 사이에서 쟁총(爭寵) 끝에 드잡이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보직 없이 오로지 학문연구와 교수에만 정진하는 일벌 같은 수많은 정직한 교수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들이 많고도 많다. 필자는 연변대학에서 박사생지도교수로 십여 년 간 후학들을 맡아서 가르쳐 왔는데, 대부분은 외지 대학에서 재직으로 박사공부를 하러 온 젊은  학자들이 필자를 지도교수로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그네들에게 있어서 론문만 잘 써서 빨리 박사학위를 따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박사학위를 따는 것 외에도 취직이라든가 출국 등 학문연구 밖의 실리를 챙기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파워가 막강한 보직교수를 택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과의 한 젊은 교원이 이런 내막을 잘 모르고 필자의 박사연구생으로 공부를 했던, 외지대학에서 온 자기의 동창생에게 《너는 왜 아무개 교수(이 교수는 막강한 보직을 갖고 있는 보직교수임)를 도사로 선택하지 않고 김관웅 교수를 도사로 선택했는가?》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학문 외에는 아무런 행정파워도 없는 교수를 택해서 먹을알이 뭔가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직이 없는 필자는 후학들에게 학문의 젖은 줄 수 있지만 다른 실리의 젖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박사학위를 따려는 목적도 사실은 취직을 해서 밥 먹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런 실리를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보직교수들은 학문수준의 여하를 떠나서 후학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젖 주는 게 어미라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대학의 풍토는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가치관의 형성에도 많은 작용을 하고 있다. 즉 적지 않은 학생들은 학문에만 전념하는 교수들을 오히려 무능한 교수로 인정하고 학문보다는 《조직관리》나《벼슬감투쓰기》에 능한 보직교수들을 능력 있는 교수님으로 인정하고 아부를 하고 그 줄에 대려고 무진 애를 쓴다. 아부를 하다못해 노예에 가깝게 별별 잡역을 다 대신해 주며 보직교수들은 엎음 갚음으로 이런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기회를 알선해 준다. 이런 풍토는 학파의 형성보다는 당파의 형성을 꼬드기며  교수사회와 대학가의 전반 물을 흐리고 있다.    

  이런 풍토는 적지 않은 교수들로 하여금 보직(당이나 행정직)이 무슨 큰 감투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학문연구나 교수보다는 보직에 연연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수펄들을 일벌이 낳았듯이 원래는 학문의 싹수가 보이던 교수들마저 권력의 유혹을 못 이겨 분분히 수팔 같은 보직교수로 탈바꿈을 하려고 한다.   

  이런 악과가 빚어지게 되는 가장 궁극적인 원인은 중국의 뿌리 깊은 “관본위(官本位)”의 전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본위(本位)는 바로 가치표준으로서  “관본위(官本位)”는 벼슬(官)의 높고 낮음을 사회가치의 계산 표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대학에서마저도  “관본위(官本位)”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벼슬”이 높으면 의례 능력이 있고, 학문이 많고, 안계가 높고, 견해도 독특하고 심각하다고 여긴다. 심지어 학문연구의 성과를 평가하거나 직칭(職稱)을 평정할 때도 론문을 발표한 단위의 행정급별로 그 가치를 평가한다. 국가급 간물에 발표하면 점수가 높고, 지방급 간물에 발표하면  점수가 낮다. 그래서 연변대학의 많은 강사, 부교수들은 이른바 “핵심간물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벼슬은 확실히 사회가치의 계산 표준임을 보아낼 수 있다.     

  아직 중국의 대학들이 교수 사이를 평등한 수평관계로서가 아니라 관청에서와 같은 수직적 상하관계로 묶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변대학에서는 학문으로서의 파워(power)보다도 대학 내에서의 벼슬, 보직 - 행정적인 파워가 자신의 신분을 더욱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많은 교수들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면 눈치 빠른 적잖은 교수들은 보직과 교수를 겸하여 실리를 챙기려 한다. 대학인 이상 교수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또 교수직을 부둥켜안고 있어야 또 별로 먹을알이 없으니 량 손에 떡 쥔 식으로 보직과 교수직을 량 손에 거머쥐고 있으려 한다. 이런 교수들은 《학문적 변질》을 손쉽게 하게 되며, 량 손에 쥔 떡을 다 놓치지 않기 위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까지도 서슴지 않는 서글픈 곡예사로 전락해 버린다. 부학무술(不學無術)의 학술류망들이 오히려 《능인(能人)》으로 떠받들리면서 대학가에서 보직에 교수직까지 거머쥐고 막강한 권력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심심찮케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분위기속에서 자기의 전공분야에 대한 독자적인 탐구만을 업으로 외곬 길을 걸어가야 할 적잖은 교수들마저 마치 정직한 일벌들이 무위도식하는 수펄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듯이 행정보직을 넘보는 학문의 외도군으로 타락해간다.   

  그래서 행정보직 교체기에 접어들기만 하면 교수들마저도 괜히 들떠 머리를 기웃거리며 원장, 처장, 관장 자리를 넘보는 판국이다. 사실 연변대학에서의 교수들이 벼슬자리 감투 하나 바라보고 헤덤빈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수는 강의나 잘 하고 연구만 잘 하면 되었지 무슨 행정적 파워나 벼슬감투인가 하겠지만 여기에는 그럴듯한 내막이 있다. 여기에는 연변대학만이 아닌 전반 중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연변대학을 포함한 중국의 많은 대학들에서는 교수나 학생의 본위가 아니라 행정보직의 본위로 돌아가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벌집에서의 본위 또는 주체가 일벌이듯이 대학의 본위 또는 주체는 마땅히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와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여야 한다. 선진국의 《교수치교(敎授治校)》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에서 나온 듯하다. 교수협의회의 파워가 막강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수 전화 한 통화만 해도 행정인원들이 척척 알아서 해주는 세상이다. 대학에서 행정업무는 교학(敎學)이라는 주체행위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정말 별 볼일 없는 말 그대로 보직(補職)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교수치교(敎授治校)》가 아니라 《행정치교(行政幹部治校)》형국이다. 이른바 행정간부들, 특히는 보직교수들이 쥐락펴락하는 판국이다. 그들은 말로는 《교학을 위해 봉사하는》 머슴, 청지기라고 하지만 그들의 입김이나 파워는 막강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인사처장이나 교무처장이나 연구생원 원장, 과학연구처 처장   쯤 되어도 그 파워는 막강하다. 더 한심한 것은 강의를 하다가 수준미달로 쫓겨나 행정으로 넘어갈 경우 오히려 더 빨리 승진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아이러니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비서에 승용차까지 따라 붙으면 기분은 붕 뜨고 그 기세 또한 기고만장해진다. 그리고 행정은 돈을 주무른다.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만 보이지 않는 돈은 적어도 노루꼬리쯤 된다. 사인에 결재에 다 돈을 주무르는 재미다. 자그마한 학과장이라도 천신을 해야 제 쌈지 돈 쓰지 않고도 술 소비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중국의 관본위 관료주의형태의 대학가내에서의 전형적인 한 보기이다. 그러니 행정직은 자연히 보직(補職)이 아니라 보직(寶職)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니 너도나도 행정보직(寶職)를 거머쥐려고 발버둥이를 친다. 그런데 얄미운 것은 보직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감당하기도 어려운 교수직과 기타 학문적인 조직체의 장(長)마저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학가가 관청 같은 분위기로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학자들은 사실 행정직을 맡으라 해도 안 하며 또 맡겨서도 안 된다. 창의성이 있는 학자로 되려면 책을 많이 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그런데 책을 많이 보면 볼수록 자기의 무지가 발견되면서 볼 책은 더 많아지고 연구를 많이 하면 할수록 꼬리에 잇닿는 문제점으로 하여 연구거리는 더 많아진다. 언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학문에 전력투구하는 진정한 학자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학생들로부터 존중을 받는 풍토가 조성되여야만 대학교수는 《벼슬의 꼭두각시》나 《정치적 눈치군》이 아니라《광적인 공부벌레》나 《용감한 가설의 제출자》가 될 수 있으며 대학은 정치판이 아닌 학문연구의 전당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대학들은 관본위, 행정본위의 가치관을 떠나서 학술본위, 교수본위로 가치관의 전향을 철저히 해야만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으로, 진정으로 학문적인 창의성이 있는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하여 학문의 꿀을 따는 데만 정력을 바치는 부지런한 일벌 같은 교수들이 대학의 진정한 주인으로 될 때 대학은 진정으로 희망이 있는 대학으로 될 것이다.                                        

2007년 5월 10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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