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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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부르노와 갈릴레이
2006년 02월 16일 00시 00분  조회:4040  추천:38  작성자: 김관웅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부르노와 갈릴레이

김관웅


위대한 진리의 발견자-- 코페르니쿠스

구라파는 1300년의 기나긴 중세기의 암흑시대를 거쳐서 끝내 문예부흥이라는 《가장 위대하고 진보적인 변혁의 시대》를 맞아오게 되였다. 뽈스까의 천문학가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이 위대한 시대의 거인중의 하나이다.

그는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천체운행》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종교신학의 이른바 《지구중심설》을 뒤엎고 《태양중심설》을 창립하였다. 물론 그가 생각했던 태양계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있는 태양계는 아니였다. 즉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는 그때까지 사람들이 가지고있던 중세기적우주관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놓은 완전한 변혁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이 우주관의 변혁을 흔히 《코페르니쿠스혁명》이라고 부른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위대한 진리의 발견이였던것이다. 이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기까지 코페르니쿠스는 수많은 관찰과 연구를 거듭하였고 그 연구성과는 교회의 봉쇄로 말미암아 그가 림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간행되였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이 위대한 진리의 발견은 교회로부터의 거듭되는 공격을 받았는데, 심지어는 저명한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마저도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구약》의 신조를 인용하여 그의 《태양중심설》을 반대했다.이처럼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길은 아주 험난하고 어려운 법이다.

용감한 진리의 수호자 -- 부르노

이딸리아의 천문학자 부르노(1548--1600)는 워낙 천주교의 신부였으나 나중에는 천주교를 맞서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발전시키였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견지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용감한 진리의 수호자이다.

그는 우주는 무한하고 태양계는 무한한 우주중의 하나의 천체계통에 지나지 않으며 태양은 움직이지않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기타 행성사이의 위치는 부단히 변동된다고 인정했다.

그는 다만 학술적으로 천주교의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태양중심설》을 발전시키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광명은 반드시 암흑을 전승하리라는것을 굳게 믿고 중세기의 미신과 종교의 암흑한 통치를 소멸하기 위해 일떠나 싸워야 한다고 대중들에게 호소했다.결국은 로마종교재판소에 의해 체포되였고 로마교황청의 감옥에 갇혔다. 8년동안의 옥살이를 하면서 갖은 박해와 시달림을 당했으나 조금도 초지를 굽히지 않고 종교와 투쟁하고 진리를 견지하였다.

1600년 2월 27일, 로마교황청에서는 마지막으로 참회하고 신념을 포기할것을 요구했지만 부르노는 진리를 포기하고 목숨을 살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52세를 일기로 로마의 생화광장에서 불에 타 죽는 순간까지도 부르노는 진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르노가 화형을 당한뒤 300년이 지난 1889년, 이딸리아인민들은 세계천주교의 대본영인 바티칸교황청 청사의 의 맞은편에 부르노의 동상을 세워 목숨을 던져가면서도 진리를 지키고 견지한 부르노의 고매한 넋을 기리였다.이처럼 진리를 지키고 견지하는 길은 진리를 발견하는 길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울수도 있는것이다.

굴절적인 진리의 수호자 -- 갈릴레이

이딸리아의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이(1564--1642)는 필생의 정력으로 자연괴학의 부흥을 위해 길을 개척한 근대자연과학의 정초자이다.

부르노가 육안으로 천체를 관찰한데 반하여 갈릴레이는 자기가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의 객관적진리성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였다. 그는 그래도 오래동안 공개적으로 《태양중심설》을 선전하고 견지하여 왔지만 정작 진리와 목숨이라는 이 량자택일의 선택에 직면해서는 부르노처럼 용감하지는 못했다.

1616년 3월 26일, 로마종교재판소에서 엄한 징벌로 위협을 하게 되자 갈릴레이는 자신의 전부의 원고들을 보전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포기한다고 싸인하였다. 물론 내심속으로는 진리를 포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활동을 암암리에 계속 진척시켜 나아갔다.

1632년 2월에 로마종교재판소에서는 재차 갈릴레이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당당하게 맞섰으나 형벌이 혹심해지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68세의 고령이였음에도 갈릴레이는 진리보다는 목숨을 선택했다. 아마도 부르노의 비참한 최후가 갈릴레이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준것이였다. 그리하여 갈릴레이는 친구들의 권유와 외동딸의 애원하에서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목숨을 보존하였던것이다.

갈릴레이는 미네르와산정에 있는 성마리아성당에 압송되여 핍박에 하는수없이 꿇어엎드려 참회를 한후 일어나면서 이렇게 입속말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암, 지구는 이 시각에도 태양을 에워싸고 돌고있고말고!》

후에 사회의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백방으로 갈릴레이를 옥에서 구출하는 활동을 벌린 덕분에 가석방되여 플로렌스의 집에 돌아왔으나 갈릴레이는 연금되여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여전히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연구에 몰두하였고 자기의 연구성과들을 가만히 국외에 빼돌려 출판하였다. 후에 갈릴레이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이 요절하는 바람에 정신상에서 큰 타격을 받고 종일 비애속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두눈마저 실명되였으며, 1642년에 78세를 일기로 험난한 진리탐구의 한생을 마쳤다.

갈릴레이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박해는 죽은 후에도 계속되였는데, 공식적으로 장례를 지내는 일도, 심지어는 묘비를 세우는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죽은뒤 3백년도 더 지난 뒤인 1980년에 이르러서야 로마교황은 세계주교회의에서 갈릴레이의 이 억울한 안건을 다시 심사하는게 어떤가 제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심사휘원회는 참다운 심사를 거친뒤 갈릴레이의 무죄함을 선포하였다.

이처럼 때로는 허리를 굽히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쳐들기도 했던 갈리레이의 굴절적인 일생을 통해서도 역시 진리를 발견하는 길보다 진리를 지키고 견지하는 길이 더 험난하고 어려울수도 있음을 알수 있지 않는가.

이 어찌 과학분야에만 국한되는 일이며, 이 어찌 옛날에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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