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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제3장)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
2018년 10월 20일 16시 32분  조회:1152  추천:0  작성자: 강려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동문선
 
제3장 :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 (4) : (텍스트 138쪽~ )
 
**지극히 먼 추억을 추구하는 시인은 자기 이야기의 어떤 사건에 대한 단순한 추억보다 더 큰 근본적인 가치, 어떤 의지처를 원한다.
 
“내가 추억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내가 다만 원했던 것은 약간의 소금이고
나를 알아보고 다시 떠나는 것이네.“
 
**감각이 기억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영원한 어린 시절’ 안에서 세계와 결부시키는 이 광물적 꿈, ‘원소들’의 그 꿈을 감성적인 것의 고고학에서 되찾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나이는 광물적 꿈이 아닐까?
(의미 생각해 보기: )
 
**시인이 기억할 줄 모르는 영역은 어떤 저편인가? 근본적인 삶은 영원의 시도가 아닌가?
 
**우리가 삶의 시작에 대해 명상할 때 삶은 얼마나 위대한가! 기억에 대해 명상하는 것은 몽상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기원에 대해 몽상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망각이 우리를 죌 때, 과거를 돌파하기 위해 시인은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다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우리에게 ‘기억의 과감성’을 가르쳐 준다.
 
“꾸며내라, 기억을ㅡ 깊은 곳에 소멸된
축제는 없다.”
 
(생각해 보기) : 기억 속의 추억을 향하여 시적인 문장 하나:
@
@
 
**어린 시절은 인간적 물이고, 어둠에서 나오는 물이다. 안개와 섬광 속에 있는 그 어린 시절, 완만한 모호한 영역 속에 있는 그 어린 시절, 완만한 모호한 영역 속에 있는 그 삶은 우리에게 탄생들의 어떤 두께를 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시작했던가! 그러나 흘러가 사라져 버린 원천은 얼마나 많은가! 몽상은 상상력의 기억술이다. 몽상 속에서 우리는 운명이 사용할 줄 몰랐던 가능성들과 접촉한다.
 
**어린 시절은 존재의 우물: 그리하여 하나의 원형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몽상할 때면, 나는 내가 또 다른 원형에 사로잡히고 있음을 잘 안다. 우물은 하나의 원형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영혼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이다. -후안 라몬 히메네즈- “우물! 그 얼마나 깊고 ,청록색이며,신선하고 잘 울리는 낱말인가1 돌면서 어두운 땅을 파 신선한 물에까지 이르는 게 이 낱말 자체인 것 같지 않은가”
 
**순수한 추억, 무용한 어린 시절의 그 무용한 추억은 얼마나 자주 몽상의 양식처럼, 우리가 잠시 삶의 여백에서 살도록 도와주는 비(非)삶의 혜택처럼 되돌아오는가. 휴식과 행동, 몽상과 사유의 변증법적 철학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은 무용한 것의 무용성을 꽤 명료하게 말해준다.
 
**시인이 체험하는 ‘미소 짓는 그리움’ 속에서 우리는 그리움과 위안의 이상한 종합을 실현하는 것 같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우리로 하여금 매우 오래된 슬픔을 용서하게 해준다. 그 어떤 옛날의 분위기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억을 탈사회화해야 한다. 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초창기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가르쳐 준 그 모든 사람들에 의해 되풀이 언급되고 이야기된 추억들을 넘어서, 우리는 어린아이의 영혼이라는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의 총합인 미지의 존재를 되찾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어린아이 전체가 놀라운 존재이고존재의 놀라움을 실현하는 존재인 때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달력의 톱니바퀴로부터 해방된 부동의 어린 시절, 변전이 없는 어린 시절을 우리 내부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삶을 부코의 이름을 통해서만 나타내면서 일상의 시간을 매일 배급하는 존재인 성인들의 시간도 인간들의 시간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위대한 네 신(神)인 사계절이다. 순수한 추억은 날짜가 없다. 그것은 계절이 있다. 그 계절은 추억의 근본적인 흔적이라는 계절이다. 잊기 어려운 그날 태양은 어떠했고, 바람은 어떠했던가? 이것이 무의지적인 기억의 어김없는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다. 그렇게 하여 추억은 커다란 이미지, 확대되고 확장하는 이미지가 된다. 그것은 어떤 계절의 세계와 결합되어 있다. 이 계절은 속이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완벽의 부동성 속에서 휴식하는 총체적 계절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총체적 계절인 이유는 그것의 모든 이미지들이 동일한 가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요, 우리가 하나의 특별한 이미지를 통해 그것의 본질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겨울, 가을, 태양, 여름의 강은 총체적인 계절의 뿌리들이다. 그것들은 시선을 통한 광경들일 뿐 아니라 영혼의 가치들이며, 직접적이고 파괴할 수 없는 부동의 심리적 가치들이다. 기억 속에서 체험될 때, 그것들은 언제나 호의적이다. 추억의 계절은 미화한다.-우리가 몽상하면서 어린 시절의 계절이 지닌 단순함의 깊이로, 그것의 가치의 중심 자체로 내려 할 때, 그것은 시인의 계절이 된다.
 
**모든 어린아이는 신화적이고 당연히 신화적이다. 어린아이의 상상력은 어른들처럼 화석화된 이야기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자체의 우화들로 살아간다. 어린아이는 바로 그 자신의 몽상 속에서 자신의 우화들, 그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그런 우화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화는 삶 자체이다.
 
“나는 내가 나의 우화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우화는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매혹시킨다. 우리는 매혹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꿈을 말하려는 데 성숙한 나이의 속에서 애를 태우기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꿈은 그것의 언어를 배울 수 있기도 전에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 버린다.” -데이비드 소로-
 
 
(빗살의 시간과 몽상)
 
 
-우리의 우화를 복원하는 시간, 우리의 어린 시절 우화의 가장 선명한 장면은?
 
 
 
-우화는 현실적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 속에서 드러내고 싶은 몽상적 사건: 그 사건에 의미부여하기.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동문선
 
제3장 :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 (5) : (텍스트 153쪽~ )
 
 
**시적 실존주의 → (상상력×기억의 융합) :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념적 특권을 강제하는 역사가의 기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추억의 장소들에 충분히 머물지 않은 채 날짜들에 따라 달려가는 기억은 살아있는 기억이 아니다.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우발적인 것들에서 벗어나는 시적인 것의 실존주의로 비(非) 실존주의를 체험한다. 추억하면서 상상하는 몽상 속에서 우리의 과거는 실체를 되찾는다. 인간 영혼과 세계의 관계는 그림 같은 것을 넘어서 강력하다. 그때 우리의 내부에서는 이야기의 기억이 아니라 우주의 기억이 살고 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들이 되돌아온다.
 
“권태는 지방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이다. 나는 격렬함을 통해 우리의 내부에서 몽상을 끌어내는 그 심층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권태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 시간들은 되찾은 상상력 속에서 영속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고요의 세계 속에, 몽상의 세계 속에 있었다. 삶을 지배하는 어떤 삶 속에서지속하지 않는 어떤 지속 속에서 산다는 것이것이 바로 시인이 우리에게 복원시켜 줄 줄 아는 매력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기억은 매우 생생한 상상력, 다시 말해 감동을 주기 쉽고, 따라서 과거의 장면들을 삶의 매혹처럼 제시함으로써 그것들을 매 감각에 의지해 환기시킬 수 있는 상상력 속에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들레르
 
**몽상은 폭넓은 촬영이 되도록 충분한 빛으로 현실을 둘러싼다. (추억의 촬영, 일종의 본능) -수완 있는 사진작가는 자신의 스냅사진에 어떤 지속, 아주 정확히 말해 몽상의 지속을 부여할 줄 안다.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시적인 것의 실존주의에 따라 우리의 기억에 맡기는 것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에 속하며 우리 자신이다.
 
**“나는 내가 나 지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가 인정했던 온전한 어린 시절을 상상적 기억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아마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이미 열망했던 금지된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고요하고 친근한 집에서 놀이 동무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때때로 그런 동무들을 갖고자 열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앙리 보스코, 『히아신스』
 
**어린 시절은 심층심리학의 바로 그 양식으로 진정한 원형처럼 나타난다. 확실히 그것은 우리 내부에서 하나의 이미지이며, 행복한 이미지들을 끌어당기고 불행의 경험들을 물리치는 이미지들의 중심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그 원리상 전적으로 우리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단순한 추억보다 더 심층적인 뿌리를 갖고 있다.
 
**원형들의 시적 합일: 우리는 시가 인간 존재를 위한 종합의 힘임을 입증할 수 있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원형들은 우리가 세계를 믿고 세계를 사랑하며 우리의 세계를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영감의 보고들이다각각의 원형은 세계로의 개방이고세계로의 초대이다. 각각의 개방으로부터 비상의 몽상이 솟아오른다.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은 우리를 근본적 몽상의 효력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어린아이의 물, 어린아이의 불, 어린아이의 나무, 어린아이의 봄꽃......세계의 분석을 위한 얼마나 많은 진정한 원리들인가!
 
**원형은 강력한 이미지의 기원으로 언제나 남을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부성적인 힘, 모성적인 힘....모든 위대한 원형들)--그것들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은 콤플렉스가 없다. 몽상 속에서 어린아이는 시적 통일성을 실현한다.
 
 
&&질문내가 실현하고 싶은 시적 통일성은??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 찾아가서 몽상하기세계로의 초대 세계로의 개방을 실현하는 시 쓰기
 
 
 
 
 
 
 
**어린 시절이 몽상되고 명상될 때, 고독한 몽상의 그 내밀함 속에서 명상될 때, 그것은 철학적인 시의 색조를 띤다. ‘철학적 반성’ 속에서 몽상에 어떤 위치를 부여하는 철학자는 명상된 어린 시절을 통해 하나의 코기토를 경험한다. 이 코기토는 어둠으로부터 나오며, 어둠의 가장자리를 간직하고 있고, 아마 어떤 ‘어둠/그림자’의 코기토라 할 것이다.
-삶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몽상하지 않는 삶 속에서인가 몽상하는 삶 속에서인가? 그 처음은 어디였는가?
 
**코기토 에르고 슘(Cogito Ergo Sum) -코기토의 진정한 의미: 인식론의 시초-단순한 ‘생각’이 아닌 ‘이성’-복합적 정신 기능—방법적 회의의 의미. 신으로부터의 독립.
**인간 존재의 무의미들의 총체인 어린 시절은 고유한 현상학적 의미, 순수한 현상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탄의 기호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시인 덕분에 우리는 경탄하다는 동사의 순수하고 단순한 주체가 된다.
 
**지붕에서 올라가는 연기....! 그것은 마을과 하늘을 연결하는 선이다......추억 속에서 그것은 언제나 푸르고, 완만하며 가볍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보는 것, 어른들이 보여준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성인들의 보여줌은 이미 자신들의 잃어버린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본다’고 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몽상하는 어린아이는 얼마나 대단한 우주적 존재인가!
 
**모든 몽상이 태어나게 하는 가벼운 우울과 많이 몽상을 한 어린아이의 아득한 우울 사이의 일치는 심원하다. 몽상하는 어린아이의 우울을 통해서 모든 몽상의 우울은 과거를 지닌다. 존재의 연속성, 그러니까 몽상하는 존재의 실존주의의 연속성은 이러한 일치 속에서 형성된다.
 
**정신분석학은 사건의 삶을 연구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건 없는 삶,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맞물리지 않는 삶을 경험하고자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사건들을 가져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다. 모든 사건들은 몽상 속에서만 우리의 내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아니마, 즉 여성적 존재의 자연스러운 평화를 동요시키는 ‘외상’이고 남성적인 난폭함이다.......
 
**그러므로 사건은?? 시적 질료면에서 어떤 것인가?? (개념 이해하기) : 몽상의 시학은 몽상을 고요함의 의식 속에 유지하는, 몽상의 유익한 점들을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                                                                                                                                                       )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그것은 충실성에 대한 향수이다!
 
**상태의 추억과 마주하는 일: 색깔도 없고 사건도 없는 시에서 우리는 우리가 경험했던 상태들을 알아본다. 왜냐하면 더없이 소란스럽고 지극히 즐거운 어린 시절에도 ‘북쪽’의 시간들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시계 없는 그 시간들 또한 우리 안에 있다.몽상은 호의적이고 진정시키는 그 시간들을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그것들은 단순하게 그러나 고귀하게 인간적이다.
 
**우리에게 그런 존재의 가치들을 드러내주기 위해선 아마 시인이 필요할 것이다.....우리의 내부에서 여전히 우리의 내부에서, 언제나 우리의 내부에서 어린 시절은 영혼의 상태이다.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동문선
 
제3장 :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 (6) : (텍스트 168쪽~ )

**<어린 시절과 평화> –선함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은 우리의 몽상들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것인 바,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가 인간의 스승이 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형이상학적으로 위대할 것인지 이해했다. “누가 나에게 어린아이의 선한 마음을 가르칠 것인가! 상상적 혹은 현실적인 욕구가 근심이나 낙담에 빠뜨리고, 침울하게 만들거나 의기소침하게 만들 때, 우리는 어린아이의 친절한 영향을 느끼고 싶고, 그에게서 배우고 싶으며, 영혼이 평온해지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를 우리 자신의 스승으로 부르고 싶어한다.”-키에르 케고르
 
**<어린 시절의 신화소(神話素)> – 신화 속의 어린아이는 신화소(神話素)의 분명한 사례이다. 이 신화소,다시 말해 존재가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그 진입의 가치와 작용을 잘 포착하기 위해서는 전기의 흐름을 멈추어야 하고, 어린 시절의 상태가 삶을 지속적으로 지배하고 삶의 불사신이 될 수 있을 만큼 어린아이에게 뚜렷한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 -에르베 루소
 
**인간의 가족에서는 고아이지만 신들의 가족에서는 사랑받는다는 것, 이것이 신화소의 두 극점이다. 우리가 이 두 극점의 모든 몽환을 인간적 차원에서 되살리기 위해선 대단히 긴장된 몽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소간 고아였고 우리의 희망을 이상화된 존재들, 즉 희망의 신들 자체로 향하게 했던 그런 몽상이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몽상으로 보면, 우리가 신격화된 어린 시절의 신화소에 민감하게 되는 것은 본원적인 우주에 밀착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어린아이 신(神)은 세계의 아들이다. 그리고 세계는 연속적인 탄생을 표상하는 이 어린아이 앞에서 젊다. 달리 말하면 젊은 우주는 고양된 어린 시절이다.
 
**신격화된 그 모든 어린 시절은 인간 영혼의 심층에 살고 있는 한 원형의 활동을 증거한다모든 몽상가 내부에는 어린아이몽상이 찬양하고 안정시키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몽상은 어린아이를 내력 이야기에서 떼어내고, 그를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며, 시간에 낯설게 한다. 또 하나의 몽상으로서 찬양받는 항구적인 이 어린아이 그가 바로 신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식물적 힘>-어린 시절의 식물적 힘을 전설에 의해 자양을 얻어 인생 내내 우리의 내부에 존속한다. 우리의 심층적 식물적 태도가 지닌 비밀은 거기에 있다. “어린 시절은 우리 안에서 죽어가고 주기를 마치자마자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보물 가운데 가장 살아 있는 것이며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해준다.....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줄 모르고, 자신의 육체 안의 육체처럼, 낡은 피 속의 새로운 피처럼 자신 안에서 어린 시절을 다시 포착할 줄 모르는 자는 불행할 지어다. 그는 어린 시절이 그를 떠나자마자 죽어버린 것이다.” -프란스 엘렝스
 
**시인을 따라갈 때, 우리가 어린 시절을 향한 몽상을 심화시키면 우리는 우리 운명의 나무를 보다 깊이 뿌리박게 하는 것 같다. 인간 운명의 진정한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나는 대단히 안도를 느낀다. 나는 긴 여행에서 돌아오고 다음과 같은 확신을 얻었다. 즉 인간의 어린 시절을 그의 삶 전체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는 일은 성숙한 나이의 소관이다. 나는 이 수수께끼를 지니고 30년을 걸었지만 그것에 어떤 사상을 주지 못했다. 이제 나는 내가 길을 나섰을 때 모든 게 이미 언급되었다는 것을 안다.” -프란스 엘렝스
 
**<어린 시절의 냄새, 향기> - 냄새! 그것은 세계와 우리의 융합을 나타내는 최초의 증거이다. 옛날의 냄새에 대한 그 추억을 우리는 두 눈을 감을 때 되찾는다. 현재에서처럼 과거에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냄새는 내밀성의 중심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냄새의 다발이다. -Louis Chadoume
 
“달아난 날들의 막연한 매력을 환기시킨다. 숨을 쉬는 게 기억일 때는 모든 냄새가 좋다. 위대한 몽상가는 그렇게 과거를 호흡할 줄 안다.” 사라진 집들의 방들, 복도, 지하실, 다락방은 변함없는 냄새의 거처인데, 이 냄새는 몽상가가 알고 있듯이 그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빌로드의 향기를 영원하게 만든다. -Yves Cosson
 
**하나의 계절, 개인적인 계절이 그 특이한 냄새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가을 너에 의해/ 축축하게 젖은 가련한 두건 냄새/
 
/--새싹의 씁쓰름하고 끈적끈적한 향기 속에 [담긴]/ --포플러의 끈적이는 새싹을 손가락으로 으깨어 보고,그 미끈거리는 씁쓰름한 반죽을 맛보가. 그러면 그대들은 온 생애 동안 추억을 지니게 될 것이다./ -알랭 보스케
 
/박하로 둘러쳐진/오솔길의 향기가/내 어린 시절 속에서 춤춘다./ -C.A.Bozombres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번역 불가능하고 가장 미묘한 냄새적 이미지-장 드 구르몽
 
**어린 시절의 눈에 대해-‘장미와 소금의 냄새’-앙리 보스코-를 맡았다. 그것은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차가움의 냄새 자체이다.
 
**씁쓰름한 회양목과 사향 냄새 나는 카네이션의 조화 –마리 도게
 
**“내 고장의 냄새는 한 개의 사과였다.” -뤼시 들라뤼 마르드뤼스
 
**“나는 땅, 밀, 새 포도주의 냄새 속에서 자랐다. 내가 그 냄새에 대해 생각할 때면, 기쁨과 젊음의 생생한 향기가 나에게 되살아난다.” -앙리 보스코 (추억은 과거 속에 보관된 향이다.)
 
**행복한 날들에 세계는 먹을 수 있는 것이 된다. 향연을 준비했던 대단한 냄새들이 기억 속에 떠오를 때,보들레르를 좋아했던 나는 ‘추억들을 먹는’ 것 같다. 갑자기 나는 모든 더운 빵을 시인들에게서 수집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재시작되는 축제의 대단한 냄새, 우리가 최초의 행복에 대해 단호하게 표명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그런 삶의 대단한 냄새를 내가 추억에 부여하도록 그들이 도와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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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에 대한 추억추억에 냄새의 이미지 부여해서 스케치해 보기.
 
-나는 그에게서 (                                     )냄새를 맡았다.
 
-내 고향에서는 (                                                )냄새가 났다.
 
-내 추억의 가장 강렬한 냄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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