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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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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김준섭렬사의 유적을 찾아
2007년 07월 30일 15시 14분  조회:4440  추천:33  작성자: 김성룡

  1926 11월 남창공격전이 승리한 후 북벌군은 군벌 손전방의 주력을 소멸하고 강서 경내를 전부 점령하였다. 손전방은 패잔병을 거느리고 절강, 강소쪽으로 도주하였고 북벌군은 강서에서 병력을 정비하면서 연해지역 출병계획을 세우고있었다.

  남창을 점령한 북벌군은 남창에서 성대한 추도회를 가지고 전사한 6군 기관총부대의 조선인 교관 김준섭을 추모하였고 격앙된 심정으로 더욱 큰 승리를 이룩할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북벌군 희생자들을 남창 근교에 매장하고 커다란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북벌전쟁에서의 조선족 혁명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하던 답사팀이 남창에서 김준섭 렬사의 유적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4 2 14일이였다. 기재에 의하면 북벌전쟁 승리후 전사자들의 시신은 남창 교외의 청운보(青云谱)에 이장되였고 그곳에 북벌전쟁 렬사기념비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사학자들도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있고 거기에는 김준섭 렬사의 이름도 밝혀져 있다고 알려주었다.

  남창에서청운보라면 비교적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력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곳을 잘 알고있었다. 안내를 맡은 중앙인민방송국 강서 주재기자 장소룡(张小龙)을 따라 답사팀은 청운보로 떠났다.  

  청운보는 남창시 남쪽 교외에 위치해있었는데 시 중심하고는 10여 킬로메터 떨어져있었다.

  지금의 남창시 청운보는 고대 유명한 화가인 팔대산인(八大山人) 주탑(朱耷)기념관으로 사용되고있는 도원(道院)이 있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청조시기 유명한 화가인 주탑(朱耷)은 도사로 되어 2,5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이 도원에 장기간 은거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강서 정명도교(净明道教)의 발원지인 청운포와 청나라 화가 팔대산인 기념관으로 이곳은 남창시 관광명소의 하나로 되고있다.   

  작은 호수가에 아담한 정원이 있었고 잎이 무성한 고목과 푸른 대나무 숲 사이로 여러 가지 고대 건물들이 보였다. 정원을 다니며 아무리 살펴보아도 북벌전쟁과 관련된 흔적은 찾아볼수 없었다. 안내를 맡은 장기자와 물어보았지만 역시 모른다고했다. 남창에 대해선 손금보듯 잘 아는 장기자도 모른다니 뭔가 잘못 된 것임이 분명하였다. 현지인들과 물어보아도 그런 기념비를 모른다고하였다.

  전화를 통해 북경과 연변의 력사고문들과 련락하여 문의하였다. 분명 그곳에서 렬사기념비를 보았다는 기재가 있다는 것이다. 년세가 많은 분들의 기억에 따르면 기념비는 팔대산인 기념관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튿날 답사팀은 청운보에서의 아쉬움을 안고 남창시 팔일대가(八一大道) 북쪽에 위치한 강서혁명렬사기념당(江西革命烈士纪念堂)에 가보았다. 3층 건물인 기념당 앞에는 홍군전사의 동상이 있었다. 기념당에서 김준섭 렬사에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김준섭 렬사에 대한 전문소개가 있었고 그가 쓰던 회중시계를 비롯한 유물들도 전시되여있었다. 그리고 김준섭 렬사가 희생된 락화역 옛 사진이 있었다. 거기에는락화역전, 1926 11월 김준섭은 적들과 격전하던중 역전에서 총을 맞고 장렬히 희생되였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김준섭 렬사를 위한 북벌군의 추도회 사진도 있었다. 수많은 북벌군 전사들이 장엄히 서있는 가운데 렬사의 시신이 누워있는 커다란 관이 있었고 관앞에는 꽃다발이 있었다. 그뒤 프랑카드에는 김준섭 렬사를 추모한다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기념관에 김준섭 렬사에 대한 약력이 적혀있었지만 상세하지는 못했다. 거기에는조선함경북도 명천군 오동리사람으로서 중국 공산당원이며 국제주의 전사라고 김준섭 렬사를 평가하고있었다.

  기념당 연구일군들과 북벌렬사 기념비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자 우리가 청운보에서 기념비를 볼수없었던 답이 나왔다. 분명 청운보에 북벌 렬사기념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시기를 거치면서 극좌적인 사상의 영향으로하여 기념비를 폭파해 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창시 진현문외(进贤门外)에 위치한 피장구(皮匠沟)에는 <조선 김준섭 동지 지묘(朝鲜金俊燮同志之墓)>라고 쓴 작은 기념비와 묘지가 있었다고 하나 역시 문화혁명때 파괴되였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였다. 책의 기재에는 한자가 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현문, 피장구가 어딘지 알수없었지만 기념당 일군의 말에서 그곳을 분명히 알수있었다

  비록 많은 공산당원과 조선 혁명자들이 북벌전쟁에 참가했지만 필경 국민당이 주도한것으로 인식되였기때문에 문화대혁명시기 극좌적인 사상의 지배하에 사람들은 북벌전쟁력사를 객관적으로 알지 못했던것이다. 더욱이 많은 조선족 로혁명가들은 문화대혁명시기 조선특무로 욕을 보았고 많은 력사 유적들도 파괴되였던것이다. 참으로 죄악의 동란기였다.

  우리가 김준섭 렬사에 관련해 취재한다는것을 안 기념당 연구일군들은 더욱 많은 자료가 있으면 기념당에 보충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개혁개방을 맞으며 그들의 연구 시각도 다양해지고 넓어지고있는것이다. 그들은 보다 개방적인 사유로 국내외의 광범위한 사료를 골고루 연구해야만이 북벌전쟁력사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수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청운보 북벌렬사기념비와 진현문외 피장구의 김준섭 렬사묘가 파괴된데 대해 답사팀은 커다란 유감과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그런대로 남창 렬사기념당에서 아직도 김준섭 렬사를 기념하고있고 또 더욱 많은 자료가 있으면 보충해 달라는 연구일군들의 부탁에서 다소 위안을 느끼기도 하였다.

 

  답사팀은 장기자를 따라 제2차 남창공격전의 유명한 전적지였던 락화(乐化)역으로 갔다. 락화진은 남창시에서 18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이전에는 경한(京汉)철도가 락화역을 지났다한다. 경한철도는 지금 경구철도의 한부분이다.

 

  차를 타고 30여분 달려 남창시 신건현(新建县) 락화진(乐化镇)에 도착하였다. 울퉁불퉁한 흙길에 헐망한 가옥들이 나타났다. 쓰레기 관리와 오수처리가 안되여 진은 지저분해 보였고 매우 락후했다. 주민구를 지나 남으로 가니 철길이 보였다. 부근에는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를 깊이 파놓은 흙무덤이 있었고 동쪽으로 작은 2층 건물로 된 기차역이 보였다. 바로 락화역이였다.

  현지인들과 물어보니 옛 락화역 건물은 이미 허물고 그 자리에 기숙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차역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우리 곁에 흙무덤과 깊은 웅덩이 자리가 바로 옛 락화역 자리였던이다. 소중한 문화재가 이처럼 쉽게 제거되어 버린것이다. 가까스로 참아왔던 유감과 아픔이 금방 분노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때 며칠째 우리를 안내하던 장기자도 분노하는것이였다. 문화재가 이처럼 많이 파괴되고있는것을 안 장기자 역시 남창사람으로서 마음의 가책을 받은것이다. 장기자는 꼭 문화부문과 관련 부문에 이 문제를 반영하여 문화재 보호에 진력하게 할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안되면 성 당위원회와 성정부에 직접 찾아가 문제를 반영하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새로 지은 기차역 건물은 그 곁에 있었다. 역에서 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장 류사기(刘斯杞)가 소개한데 의하면 락화역은 구강차무단(九江车务段)에 소속되여 있고 낡은 역은 1994년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의 건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으로는 매일 198쌍의 렬사가 지난다고 하였다.

락화역에 서서 주변의 민가와 멀리 푸른 산을 내다보면서 격동된 심정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따금 역을 지나는 렬차의 굉음에 따라 사색은 아득한 옛날로 달렸다.

 

  1926 1차 남창공격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준섭 렬사는 기관총련을 지휘하여 부대의 후위에 서서 간고한 엄호작전을 수행하였다. 다행히 북벌군작전부에서 감강에 미리 다리를 놓았기때문에 주력부대는 쉽게 다리를 통해 감강을 건너 철수할수있었다. 치렬한 전투에서 김준섭 렬사는 탄약이 떨어질때까지 싸우다가 대오의 뒤를 밟아 홀몸으로 퇴각하였다.

  무사히 포위를 뚫고 나온 북벌군은 부대를 정비한 다음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였다.

  11월초 북벌군은 제2차 남창공격전을 개시하였다. 남창시 교외의 주요 화력거점인 락화역을 점령하기 위해 김준섭은 기관총부대를 거느리고 락화역으로 돌진하였다. 그는 세정의 기관총을 지휘하여 역전의 적군 보루에서 퍼붓는 적의 화력을 진압하면서 공격의 길을 헤쳐놓았다. 11 19일 오후, 화력망을 조직하기 위해 비발치는 탄우속을 달리던 김준섭 렬사는 복부에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전우들이 달려와 그를 구원하려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탓으로 우리 민족의 자랑찬 영웅, 김준섭 렬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북벌군 장병들은 우수한 조선인 기관총 교관 김준섭의 두려움 모르는 희생정신에 감화되였다. 그들은 교관의 원쑤를 갚자고 웨치면서 재차 적진을 향해 돌진하여 락화역을 탈환하였다.

김준섭 렬사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락화역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때까지 싸웠던것이다. 파죽지세로 봉건군벌들을 무찌르고 수억 중국인민들을 크게 고무해 주었던 북벌전쟁에서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이 김준섭 렬사처럼 두려움 없이 싸우면서 피를 흘렸고 생명을 바쳤다. 그들은 중국혁명의 승리와 더불어 조선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그날이 꼭 오리라 굳게 믿고 싸웠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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