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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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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冀东) 항일유격투쟁의 코기러기 주문빈④
2017년 04월 14일 06시 23분  조회:3339  추천:0  작성자: 김성룡
기동항일유격대의 코기러기인 주문빈은 혁명에 충직했고 근검소박하게 생활하면서 헌신적으로 사업했다. 그는 강의한 의지력으로 기동인민을 이끌고 갖은 곤난을 이겨나감으로써 기동인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겨울추위가 한창인 2004년 1월 13일 답사팀은 주문빈렬사의 녀동생 김신정로인을 모시고 당산으로 출발하였다. 주문빈렬사가 개란탄광 로동자들의 대파업과 항일폭동을 령도하고 또 유격대를 조직하여 싸웠던 곳을 돌아보고 기동렬사릉원의 주문빈렬사의 사적을 보기 위해서였다.
당산시 남신서도(南新西道)에 위치한 기동렬사릉원은 1958년에 축조되였다.
 

기동렬사릉원의 주문빈 흉상

기동렬사릉원의 유격대장 절진국의 흉상
 
렬사릉원의 관리일군들은 주문빈렬사의 유가족인 김신정로인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벌써 마중나와 있었다. 주문빈렬사와 함께 싸웠던 기동의 항일영웅 절진국의 딸 절풍란(节风兰) 로인도 와 있었다. 70여세인 절풍란 로인은 차에서 내리는 김신정로인을 보자 반갑게 달려오면서 그의 손을 꼭 쥐며 고모라고 따뜻하게 불렀다.
  주문빈의 가르침속에 성장한 절진국렬사는 기동의 유명한 항일영웅이다. 그는 주문빈이 령도하는 개란탄광 로동자파업에 참가하였고 또 항일폭동에 참가하였으며 기동의 항일련군 특무 1대대 대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40년 8월에 그는 한차례 전투에서 희생되였다.
  절풍란로인은 이렇게 회억하였다.
 
(절풍란)1940 8월에 아버지가 전투에서 희생되자 주주임(주문빈) 우리 집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언니, , 남동생을 데리고 산동의 고향집으로 가려했지만 주주임이 당이 있는 당신들은 살수있다면서 만류했습니다. 주주임은 회의때면 필기하지 않고 담배만 피우다가 저녁에 집중적으로 회고하여 정리하군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근검소박한 사람이였고 부하들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의 군마는 경위원이 타고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의 경위원을 사령원으로 부르며 놀려주군 하였습니다.”
 
  주문빈은 뛰여난 조직력이 있었을뿐만아니라 부하들을 관심하고 군중들과 잘 련계하는 훌륭한 사업작풍이 있었다. 그는 경위원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었고 늘 전사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었다.
  주문빈에게는 군마 한필이 있었다. 그는 몸소 말에게 여물을 먹였고 내가에 가서 목욕시켜주었다. 하지만 주문빈은 이 애지중지 여기는 군마를 몇 번 타지 않았다. 행군도중에는 녀전사나 꼬마전사에게 양보하였고 또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주문빈은 늘 자기의 옷을 남에게 주고 자기는 헌옷을 기워입군 하였다. 그리하여 기동의 군민들은 주문빈을 자기의 친혈육처럼 생각하였다.
  기동에서 유격전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일본침략자를 힘있게 타격하던 주문빈은 1944년에 양가포(楊家鋪)에서 장렬히 희생되였다.
  1944년 10월 16일, 기열변구 특별위원회는 풍윤현(丰润县)에서 감조감식(减租减息) 회의를 소집하였다. 주문빈은 천안, 란현, 풍윤현 3개현의 련합으로 된 현당위원회 확대회의에 참가하였다. 이때 일본군이 풍윤과 란현, 천안, 준화 주변의 주요 거점에 병력을 확충했다는 정보가 전해졌다. 이날 저녁 주문빈은 선전부 부부장인 려광(吕光), 비서장 리삼(李杉)과 의논하고 양가포에서 회의를 끝내기로 하였다.
  특별위원회와 행정기관 일군들은 양가포부근 마을에 머물렀고 주문빈은 주요간부들과 함께 리장자(李庄子)라는 마을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 새벽녘에 뜻하지 않게 총소리가 울렸다. 주문빈은 즉각 기관일군들과 전사들을 집합시켰다. 그는 북쪽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북쪽에서도 적이 나타났다. 이때 적은 이미 양가포를 모두 포위하였던 것이다.
위기일발의 시각 주문빈은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포위돌파 작전을 주밀하게 포치하였다.
 피타는 포위 돌파전이 시작되였다.
 련장 류경여(刘景余)가 주문빈의 지시에 따라 두 개 패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엄호를 맡았다. 전사들은 화력을 집중하여 전모산(毡帽山)우의 적을 견제하면서 돌격부대와 기관일군들을 엄호하였다. 왜놈들이 유리한 지세를 차지하고 집중공격했기때문에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거나 부상 입었다.
전모산 서남기슭에는 물도랑 하나가 있었다. 돌격대원들은 이 물도랑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주문빈과 전우들이 두 개 굽이를 돌았을 때 제4지구 당위원회 서기였던 정진군(丁振军)이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주문빈은 슬픔을 참으며 손수건을 꺼내 정진군의 얼굴을 가리워주었다. 그들은 계속 싸우면서 산을 내렸다. 산아래에 거의 도달했을 때 주문빈도 어깨에 총을 맞았다. 그는 아픔을 참으며 계속 전진하였다. 얼마후 그는 선전부의 려광 부부장과 그의 안해 류유(刘俞)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희생된 전우들을 작별하고 계속 전투를 지휘하였다.
  치렬한 전투에서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였다. 중상을 입은 주문빈이 산아래에 도착했을 때 그의 곁에는 5명 전사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도 대부분 부상을 입었다.
주문빈은 전우들을 보면서 “마지막 탄알이 남을때까지 싸웁시다!”하고 말했다. 그는 희생된 전우들의 손에서 총을 찾아 쥐고 침착하게 싸우면서 전우들을 엄호하였다.
앞에서 공격해 오던 왜놈 몇이 주문빈의 사격에 쓰러졌다.
주문빈은 “동지들 빨리 뒤로 피하시오!”라고 명령하고 계속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흉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되였다.
  조선인민의 훌륭한 아들이며 중국공산당의 훌륭한 간부인 주문빈은 세계 피압박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뜨거운 피를 기동대지에 흘렸으니 그때 그의 나의 36세였다.
  혁명사업에 충직하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며 근검소박하고 유모스런 주문빈렬사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기동인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사람들은 영웅을 잊지 않았다. 기동인민들은 주문빈렬사의 유체를 전모산기슭 푸른 소나무 곁에 모셨다가 해방후에는 당산시 기동렬사릉원에 옮겼다. 그후 석가장에 화북렬사릉원이 축조되자 주문빈의 유해는 격이 더 높은 화북렬사릉원으로 모셔졌다. 거기에는 주문빈의 묘소와 동상이 있다.
절풍란로인은 주문빈의 희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절풍란) “주주임이 희생되면 우린 어떻게 할까?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줄곧 주주임이 당이고 당이 주주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희생될 때도 그처럼 절망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주주임은 자녀가 없기때문에 아버지 산소에 갈때면 주주임의 묘소에도 가보라고 부탁했습니다.”
 
1957년, 절풍란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절진국렬사의 묘소를 찾아 본후 주문빈렬사의 묘소도 찾아 보았다. 그때 뜻밖에 김신정로인을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그후부터 두 렬사의 유가족은 한가족처럼 서로 도와주며 지냈다. 절풍란은 김신정로인을 고모라고 불렀고 김신정로인은 당산지진 때 위험을 무릅쓰고 당산에 달려가 절풍란 일가를 위문했었다.

김신정 로인(좌)과 절풍란 로인(우)
 
  주문빈 일가는 해방될 때까지 주문빈의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기동대지에서 피 흘리며 싸운 주문빈렬사가 희생되여 일년도 안된 1945년에 만악의 일본제국주의는 드디어 패망하고 말았다.
  일본이 항복한후 씩씩한 조선의용군 전사들이 줄지어 동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문빈의 어머니 홍기주는 김신정을 데리고 길가의 돌에 앉아 군인대오를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중국 동북으로, 조선으로 전진하는 의용군 대오속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주문빈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들 모녀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행군하는 조선의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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