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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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심천 려행기
2016년 09월 06일 14시 09분  조회:5570  추천:5  작성자: 강순화
                                             

                                 홍콩、심천 려행기

                                                                                                  글 / 강순화

 
    지난 5.1 휴가기간 나는 홍콩, 심천려행을 떠났다. 그 두곳 모두 우리 동북 연변에서는 아득히 머나먼 땅이지만 이곳 아들이 거주하는 광주시에서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였으니 말이다. 중국려행사를 통해 239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우선 홍콩 일일려행 수속을 마쳤다.
4월 30일, 예약대로 아침 6시에 집을 나서니 그날따라 날씨도 너무 좋아 기분은 자못 상쾌하였다. 며느리가 미리 예약해 놓은 신주택시가 문앞까지 달려와서 10분도 안걸려 집합장소인 <광주해도호텔(海涛酒店)>에 당도하였고 우리를 안내할 려행사뻐스도 인츰 도착하였다.

    홀로 떠난 려행길이라 고독하면 어쩌려나 하고 근심했었는데 차에 오르니 마침 앞자리에 우리연변 돈화에서 려행 온 60대 부부가 있어서 한 고향사람이라 서로 반가히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만난 오랜 친구처럼 재미나게 려행의 일과를 즐길 수 있었다.

    뻐스가 출발하자 로카라 부르는 홍콩인 가이드의 재미나는 소개는 우리들을 점차 신비한 세계에로 이끌어 갔다. 홍콩사람들의 수입이며 생활이며 중국에 반환된 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이였기에 그곳은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였다. 가이드가 홍콩인이라 보통화 발음이 순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말을 명심해 들으며 새로운 세상살이에 귀를 기울렸다.

    어느덧 변계에 다달아 해관수속을 마치고 붐비는 인파에 밀리면서 홍콩땅에 들어서니 어쩐지 기분이 별로였다. 부자나라 상징으로 생각했던 휘황찬란한 환상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변계에는 낡고 헐망한 건물들만 눈앞에 안겨와 신선한 멋은 전혀 없고 그저 고로한 섬나라에 들어선 듯 하였다. 멀리 보이는 거리의 높다란 건물들은 모두 수십 수백년 풍설에 모대겨 온듯 횡하니 다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길옆에 펼쳐진 120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경마장도 텅텅 비어있었고 오랜 층집들에는 한집 건너 세를 준다는 광고가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었다. 워낙 땅이 금쪽같이 귀한 곳이라 작은 집 한칸이라도 주거로나 창고로 세를 주면 그나마 좋은 수입원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 남다른 것은 대륙에서처럼 한개 공장이라면 어련히 한 건물을 몽땅 독차지하고 담장까지 둘러치고 있어야 하련만 홍콩은 그게 아니였다. 낡은 층집 한 채에 숱한 공장들이 세를 들고 있었는데 그런 건물들을 <공장아파트>라 하였다. 그 옆에는 낡은 층집들이 련이어 보였는데 그런 곳에는 에르베이터도 잘 설치되지 않았고 지어 까스도 통하지 않아 집집이 전기나 석유를 쓴다고 한다. 발달한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빈부 차이는 리해 할 수 없으리 만큼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려행코스로 제일 먼저 보여주는 황대선(黃大仙)이라는 큰 절당만은 금빛이 휘황하여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왔다. 사람들은 이곳이 만사가 령통하는 곳이라 하여 눈부신 부처님께 앞다투어 절을 하고 두손 모아 향을 올리느라 빈틈이 없었다. 나는 제일 높은곳에 얼른 올라가서 그저 자식들의 성공만을 마음속으로 정성껏 기도하고는 기념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려행뻐스에 올랐다.

    다음 코스로는 홍콩 3D기환세계(香港3D奇幻世界)라는 립체 미술관이였다. 이태리의 저명한 시각설계사가 홍콩을 주제로 3D화를 그려 놓았는데 그 매폭의 길이가 11메터나 되었다. 여러가지 참신한 풍경화에 촬영위치를 제공하여 기묘한 촬영효과를 나타내게 하는 여간 흥미스러운 코스였다. 려행객들은 가이드의 도움으로 앞다퉈 기념사진 몇장들을 멋지게 남기며 함참 동안은 애들처럼 들뜬 기분이였다.

    뒤이어 뻐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에돌라 태평산이라는 곳에 오르니 높은 관광대가 있었다. 구룡도가 한눈에 보여왔고 멀리 아래로 굽어보니 작은 섬나라에 비집고 들어선 고층건물들이 빼곡이 줄을 지어 일떠서 있었다. 붐비는 섬나라가 한눈에 안겨오는 전망대였다.

    그 다음코스로는 첨수만 해변가이다. 홍콩에는 거의 절반 인구를 차지하는 320만이 부자라고 한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이곳 경치좋고 풍수보금자리(风水宝地)로 소문난 첨수만(浅水湾) 해변가 언덕 위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각가지 형태의 멋진 별장들이 여기저기 담을 쌓고 자리잡아 있었는데 홍콩의 거물들인 동건화、 리가성、 포옥강、 려명 등등 제1호의 부자들이 모두 그곳에서 살고 있었고 세계적인 영화 명배우 성룡의 집도 그 첨수만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의 집값은 대부분 300여억딸라 라고 하니 보통사람들은 어데 쳐다나 보겠는가? 게다가 건너편 높은 산 등성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을 찌를듯한 몇십층의 높은 건물들은 마치 바람만 불어도 금방 넘어질듯 아찔하게들 서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대부분이 1-2년 홍콩에 와 있는 외국 주재원들이나 각나라 부자들이 종종 드나드는 호텔들이라고 하였다. 해변가를 오르내리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면서 신나게 기념촬영을 남기고는 아쉬운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첨수만을 떠나 새 코스로 가는 길옆에는 아직도 당년 식민지의 흔적인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건물들은 모두 150년도 더 된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저마다 마당을 골프장처럼 넓게 차지하고 그 무슨 잔디밭 구류장(草地滚球场)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우리 대륙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기한 운동항목인 것 같았다.

    워낙 땅이 비좁은 곳이라 길도 너무 좁았는데 차가 막힐라치면 조금도 과장없이 진짜 서로 비비다시피 지나가야 했고 거기에다 A자가 앞에 있는 차는 정부의 차량이므로 무조건 길을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자본주의 세계의 관료라고 다를게 있겠는가? 부자들은 오른손에 돈을 쥐고 왼손에 권력까지 움켜쥐고 있어 4층집도 에르베이터로 오르내리며 호강하지만 인구의 절반을 넘는 가난한 백성들은 작디작은 층집방에서 까스도 없고 전기도 마음대로 쓸수 없다고 하니 이 얼마나 공평치 못한 세상살이인가! 길거리의 낡은 집들은 건축개발상들이 싹쓸이로 싸게 사들여서는 조금씩 장식하고는 다시 비싼 값으로 되팔아 넘기며 혹시 그러는 중 그곳에 지하철이나 통하게 되면 그 집값이 하루밤새 서너배로 뛰여 오르군 한다고 한다. 우리 대륙의 큰 도시들 역시 이런 경우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원래 소문없던 치벽한 곳도 지하철이 생긴다니 그 집값이 4배 올리 뛴 것도 사실이 아닌가?!

홍콩에서 제일 잘나가는 직업이 무어냐고 가이드한테 물었더니 바로 중국어 보통화를 가르키는 교사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정치, 경제, 문화, 무역 등 각 령역에서 대륙과의 교류에 제일 수요되는 것이 언어소통이였던 것 같다. 하여 홍콩에서 중국어 보통화를 안다면 제일 직업을 찾기 쉽고 월급도 높은데 자기들 려행가이드보다 두배는 더 받는다고 한다.

    홍콩에는 720만 인구가 있는데 최저 공자도 7200원이며 길거리 청소공도 6000원 이상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이하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오로지 정부의 구제를 받아야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물가가 하늘을 찌른다니 그곳에서 사는 백성들이 슬그머니 가여워났다. 그들과는 달리 대부분 백성들이 그래도 큰 걱정없이 살고있는 우리대륙의 인생살이가 저으기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홍콩 려행에서 제일 뜻깊은 코스는《홍콩 골든 보히니아 광장》이다. 넘실대는 바다 옆에 태양과 같은 금빛 조형물을 세워놓은《홍콩 골든 보히니아 광장(回归纪念碑--金紫荆广场)》은 19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념해 만든 광장이란다. 순금으로 제작한 6메터 높이의 조형물은 홍콩의 시화인 자형화(紫荆花)를 형상화하였는데 그 화려한 꽃속에는 156년만에 홍콩을 중국에 돌려받은 기쁨을 담뿍 담고 있다고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와 홍콩특별구 깃발이 가지런히 꽃힌 조형물은 중국정부가 기증했다고 하는데 그 밑의 화강암 좌대와 만리장성 모양의 기단은 홍콩이 엄연한 중국의 령토임을 상징하였다. 매일 아침 8시엔 국기 계양식을 하고 18시엔 하강식을 한다고 한다.

    마지막 려행코스는 빅토리아항 야경이다. 빅토리아항(维多利亚港) 야경을 보지 못하면 홍콩을 보았다고 할수 없다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였다. 120원의 배표를 더 끈었어도 그 이상의 보람을 만끽할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녘녁이 되자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를 가로 지르는 바다를 중심으로 량쪽에 펼쳐지는 오색찬연한 항구의 장관은 그야말로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코스였다. 부두의 수심 면적이 41.88평방킬로 세계의 삼대 천연항으로 인정되고, 또 그 황홀한 야경으로 <동방의 진주>라는 애칭까지 가지고 있는 손색없는 세계적인 야경이다. 이 항만은 1843년 당시 영국의 녀왕이였던 빅토리아를 기념하여 붙혀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빅토리아시는 홍콩의 수도요, 중심지였다.

    날이 저물어 지자 우리 일행은 유람선을 잡아타고 검푸른 바다길에 들어섰다. 려행선 제일 윗층에 오르니 해안마다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도시빌딩의 화려한 전경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고 줄지어 일떠선 그 빌딩들은 서로 조화롭게 어우려져서 다채로운 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란한 조명들이 바다로 반영되여 황홀한 야경을 자랑하며 그 어느 곳 보다도 랑만적인 빛의 향연을 수놓았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홍콩야경의 진수요, 진짜 백만불짜리 야경이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밤의 풍경이라 돌아서는 그 순간까지 도저히 눈을 뗄수가 없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상쾌히 맞으며 조금씩 각도가 변하는 또다른 느낌의 야경을 쉴새없이 스마폰 카메라 에 담으면서 나는 저도몰래 어릴적부터 수없이 들었던《홍콩의 밤》노래를 흥얼거렸다. 참으로 그 노래를 실감케 하는 야경의 도시였다.

    가슴벅찬 홍콩의 하루 려행을 마치고 귀로에 오를때는 어느덧 밤 10시가 지났다. 너무나도 알찬 하루려행이다. 다시 두시간 반을 줄기차게 달려 광주시에 들어서니 밤 12시반이다. 다행히 금방 택시를 잡아탈 수 있어서 아들집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 다음날은 중국남방의 참신한 젊음의 도시 심천특구 려행이다.

    500년 력사를 보려면 수도 북경에 가야하고 200년 력사를 보려면 동방의 명주 상해에 가야하며 20-30년 개혁개방의 력사를 볼려면 신형의 도시 심천에 가야한다고 한다. 려행사 가이드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광주시내에서 3시간 쯤 달리니 길옆에 우뚝 세운 개혁개방의 설계사 등소평동지의 초상화를 볼수 있었다. 심천에 들어 선 것이다. 한 시대를 바꾸어 놓은 세기의 위인이였던 등소평 동지의 80년대 남하시찰 모습이다. 이 초상화는 2000년 11월 심천경제특구 성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1977년과 1984년 등소평 동지께서 두차례로 남하시찰을 하시면서 이곳 이름없던 하류골짜기 땅을 경제특구로 만들어 놓았고 또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심천시는 오늘의 현대화한 비약의 도시로 변화발전된 것이다.

    광주에서 100킬로메터, 차로 3시간 거리밖에 안되는 이 도시는 2020만 평방킬로메트 면적에 그 6분의 1인 320만 평방킬로메터의 특구를 가진 중국에서 손꼽이는 부유의 도시이다. 원래 깊은 하곡이라 하여 심천(深圳)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하루밤새 일떠선 신형의 도시란다. 30년 전만 하여도 황량한 벌판이였던 심수만에는 과학공업단지가 줄지어 건설되였고 남해 변경선에는 400억의 자금이 투자되여 완전 동방의《하와이》로 만들었다. 이곳 직장인들의 최저 공자가 월 1만원이 넘다고 하니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치고 제일 잘사는 부자동네란 말이 생길만 하기도 했다.

    홍콩이 대륙에 반환되고 심천이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로 정부에서 내린 많은 새로운 우대 정책의 고무하에 북방과 내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륙속 이땅에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창업하고 취직하여 대부분 성공의 길에 들어섰고 지금은 모두가 부자로 되었다고 한다. 당년의 평당 몇천원짜리 집들이 지금은 평당 10만원이 되었으니 그 천지개벽의 속도를 가히 가늠할 수도 있지 않는가?
    려행차는 지나가는 길에 황강촌이라고 하는 홍콩 변계선 마을에 잠시 내렸는데 이곳이 바로 당년 밀수로 소문난 곳이란다. 집집이 갱도를 파고 변계선의 철사망을 피로 물들이며 밀수품들을 날라서 떼돈들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홍콩돈이 인민폐의 10배나 되었다고 하니 대륙과 홍콩의 생활은 천양지차였단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반대로 아마 심천이 홍콩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된것 같았다.

    북경에 가면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 광주에 오면 구릉다리마다의 록색 풍경을 보며 심천에 가서는 하늘을 찌르는 신축 건물들을 보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려행코스의 정수로 꼽히는 곳이 바로 지왕호텔(地王大厦)이였다. 땅이 제일 비싼 곳이라고 지왕이라는 이름을 붙혔다는 이 호텔은 384메터 높이의 건축물로서 69층 관광코스에서 내려다 보니 한눈에 안겨오는 심천시가 참으로 가관이였다. 마치 구름위에 올라서서 한 신생의 도시를 굽어보듯 여간만 흥분되는 기분이 아니였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지왕호텔 69층 중앙에 위치한 위대한 개혁개방의 지도자 등소평동지께서 1986년 10월 영국의 녀왕 엘리자베스(伊丽莎白)2세를 접견하는 장면이였다. 두 시대적 위인의 조각상(雕象)을 진짜 사람의 크기와 같게 만들어 놓았는데 마치 두 어르신 모두 살아 숨쉬는듯 그야말로 생생한 모습 그대로였다.

    북경에 가서 만리장성에 못 오르면 호한(豪汉)이 아니고 심천에 와서 <중앙가>를 못보면 평생 유감(遗撼)이라고 했다. 그만큼 또 신기한 곳이 바로 이곳 길이 250메터, 너비 30메터의 <중앙가>였다. 이곳은 정녕 한개 나라 두개 제도의 면사포를 벗어 던진 곳이다. 사람들은 두 지역의 변계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두곳 상인들의 온갖 면세품들을 사고 즐기며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것은 대륙에서 심은 나무가 세월이 흘러 자라고 자라면서 허리가 굽혀져서 상반신이 완전히 홍콩땅에 쏠려진 것이다. 그래서《륙지사람들이 심은 나무의 시원한 그늘 혜택을 홍콩사람들이 향수하고 있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려행객들 모두 그 신기한 곳에서 앞다투어 기념사진을 남겼다.

    심천이란 곳은 워낙 중국 남방의 아열대 지방이라 일년 내내 평균 기온이 23도이며 가장 추운 겨울이라도 15.4도 밖에 안되는데 그것도 한달이 안되는 기간이란다. 이렇게 사계절이 분명치 않아 일년내내 마치 봄날같다고 한다. 기후가 온화하고 대지는 푸르러서 곳곳에 화초가 만발하고 끝없이 이어진 화원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그 화려함을 자랑하는데 그야말로 에덴동산이 따로 없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큰길 량옆에 붉은 국기가 수없이 줄지어 나붓기고 있어 마치 엄연한 중국땅임을 선언하듯 특이하였고 새로 일떠선 건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웅위로움과 오색찬란한 신형의 멋을 자랑하듯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홍콩을 보고 와서 다시 심천을 보니 그 고로한 섬나라에 비해 생기발랄하고 나날이 향상하고 있는 심천시가 더더욱 돋보였다. 그도그럴것이 30대의 발랄한 청춘도시와 백여년의 식민지였던 년로한 섬나라를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세상은 영원히 청춘들의 활무대이니깐 말이다. 위대한 령수 모주석도 핸드폰을 만져보지 못했고 시대의 개척자 등소평도 홍콩땅을 밟아보지 못했으니 세월의 무정함을 어찌 탓하랴?! 허나 세상사람들 모두 깊히 명기하고 있듯이 당년 중국의 그 일대 위인들이 아니였다면, 또한 그들의 그같은 초 인간적 담량과 원견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중국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더더욱 오늘의 심천시 같은 비약의 도시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한 공민으로서, 이나라의 혁명과 건설을 평생 몸소 격어 온 60대의 한 지성인으로서 이번 려행은 참으로 생동한 한차례 정치교육이였고 남다른 인생체험이였다. 나는 이 나라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에 무한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즐거히 귀로에 올랐다.
 
                                                                                                           2016년 7월 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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