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http://www.zoglo.net/blog/huangyoufu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평론] 감자와 열매
2006년 07월 19일 00시 00분  조회:6707  추천:72  작성자: 황유복
감자와 열매

황유복


지난해 3월 외국의 어느 영향력 있는 일간지가 뉴욕, 파리, 도쿄, 상해, 서울 등 세계5대 도시 대표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종합 비교분석한 적이 있다. 감동과 지혜를 동시에 주는 따뜻한 이야기와 인생 충고를 담은 생활관련 실용서적들이 가장 많이 팔렸다는 통계가 나왔다. 소설분야에서는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을 융합시킨 팩션(faction)을 선호하고 비소설분야에서는 위로와 지식을 함께 얻는 《멀티플 독서》가 세계적 경향으로 되고있다. 그것은 오늘의 독자들은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원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우리 문단의 수필계에서도 이제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필들이 많아지고 있어 "신변잡기"보다는 "감동과 지혜(지식)를 동시에 주는" 수필쓰기에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하고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수필에서 담론되는 지식은 우선 정확해야 한다. 사이비지식이나 비틀어지고 왜곡된 지식으로는 차라리 쓰지 않기만 못하다.

공자가 당나라말기 혹은 그 이후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뭘? 정신 나갔다고? 그러면 "4대발명이후 사상사에는 공자가 있고 시에는 리백과 두보가 있으며 서법에는 왕희지가 있고 그림에는 오도자가 있다"고 한다면?

유머가 아니다. 어느 지성인이 쓴 수필 《신성한 비애》에 버젓이 나와 있는 말이다. 중국의 4대발명중 제지술은 동한(東漢)때(기원 105년), 인쇄술은 수(隋)나라 때 (약 1300년 전), 지남침은 전국시대(약 2300년 전)에 그리고 화약은 당나라말기(약 1000년 전)에 각각 발명되였다. 때문에 "4대발명이후"라면 시간적으로 당나라말기이후여야 한다. 따라서 공자, 리백, 두보, 왕희지, 오도자 그 어느 한사람도 4대발명이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공자가 죽을 때까지는 4대발명중의 그 어느 하나도 발명되지 않았었다.

글쓴이는 4대발명외에도 도자기에서 지페의 발명 등 여러가지 발명들을 라렬한후 ⟪그러고보면 고대 중국은 세계첨단기술을 언녕 장악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강국이였다. 그런데 그후의 염황자손들은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부처님의 발아래 대국을 높이 베고 잠들어버렸는가? 인생고해를 건너서 래세의 극락으로 가느라고 그동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것을 몰랐단 말인가?⟫라고 중국의 2천년 력사를 비틀고있다. 그런데 왜 2천년 력사를 싸잡아서 야유해야 하는가? 4대발명가운데도 1천년전이나 1천 300년전에 발명된것이 있고 글쓴이가 라렬한 수많은 발명가운데는 불과 수백년전의 발명도 있는데 어떻게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라는 질문을 할수 있단 말인가? 글쓴이의 론리적사유에 문제가 생긴것인지 아니면 수학개념에 혼돈이 생긴것인지 독자로서는 리해할수가 없다.

글쓴이가 그렇게 비틀어버린 중국의 2000년 문명사를 전문가들의 눈을 빌려 잠간 바라보기로 하자.

프랑스의 중국연구 전문가 에이리크 레푸쉐는 ⟪르몽드(Le Monde)⟫지 2005년 6월 16일자에 기고한 《룡의 약점》이라는 글에서 ⟪1820년전까지 중국은 세계의 주요한 강대국이였다. 그러나 공업혁명의 기회를 놓치면서 중국은 19세기의 유럽과 20세기의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아래 놓이게 되였다. 오늘 이 모든것들은 력사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중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돌아왔다.⋯2020년 중국의 GDP는 현재의 4배로 증가될 전망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연구원은 《아시아경제, 힘의 이동》이라는 론문에서 ⟪경제사가들은 력사적으로 중국을 세계 최대의 가장 앞선 국가라고 본다. 1820년부터 내전과 기근으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1820년의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GDP의 33% 정도를 차지하였고, 2000년 이상 중국은 세계의 최고국가였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12세기까지는 서방세계의 1인당 GDP보다 높았고, 18세기까지는 세계 평균보다 더 높았다. 16세기 대 항해의 시기에 중국은 포르투갈이나 네델란드보다 더 대규모의 기술적인 선단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했다.
2004년 중국의 GDP는 세계에서 제6위였고, 2005년 GDP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4위가 되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05년 12월에 "구매력평가기준으로 중국 경제력이 2017년쯤 미국을 앞지를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것은 1820년 이후 세계력사의 흐름에서 강자의 위치를 내놓았던 중국이 200년 후에 다시 세계의 최강자로 재등장하게 된다는것이다.

"염황자손들은 2천년동안이나 모두 무엇하러 갔는가? 부처님의 발아래 대국을 높이 베고 잠들어버렸는가?"라는 글쓴이의 물음에 중국경제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수치를 따지면서 "1820년전까지 중국은 세계의 주요한 강대국이였다","2000년 이상 중국은 세계의 최고국가였다"라고 대답한다.

"진부한 관념상에서는 유구한 력사가 일종의 자랑일수도 있으나 현대시점에서는 전진의 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주지하다싶이 유구한 력사는 획시대적이고 거족적인 발걸음에 반하여 현대화의 큰 강을 건너는데 이미 짐이 되였다"라고 하는 글쓴이의 시각에서는 중국의 "유구한 력사"가 아니꼽기만 하다. 그러나 만약 그 "유구한 력사"와 유구한 력사과정에서 축적해온 문화의 힘이 없었다면 중국이 최근 20여년간 세상을 놀라게 한 경제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룩해 제4의 경제대국으로 될수 있었겠는가?

"모종 의미에서는 력사가 간단한 나라일수록 좋다", "미합중국을 보라. 그들은 200여년의 짧은 력사를 기록하고있으나 과학기술발전사는 세계를 놀래우고있지 않는가? 초대강국이 되여서 아메리카사자마냥 온 지구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제패의 발톱질을 하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미국이라는 "국가"의 력사가 길지 않더라도 미국을 만든 사람들은 원래 공업혁명을 주도하던 "대영제국"의 국민들이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력사는 결코 간단하지도 짧지도 않다. "와스프(WASP-백색, 영국계, 개신교도)"들은 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가서 원주민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의 주도권을 쥘수 있었다. 미국은 력사가 짧기때문에 초대강국이 된것이 아니다.

"채륜의 종이, 장형의 지동의, 꽃불로 하늘을 수놓는 폭죽, 좌청룡우백호따위나 찾는 지남침"이라고 글쓴이는 중국의 4대발명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폄하하고있다. 중국의 4대발명은 제지술, 인쇄술, 지남침과 화약이다. 지남침의 경우 "좌청룡우백호따위나 찾는"것이 아니라 "16세기 대 항해의 시기에 중국은 포르투갈이나 네델란드보다 더 대규모의 기술적인 선단(船團)을 거느리고있었다"고 한것처럼 중국은 16세기에 지남침을 항해에 리용했던것이다.

수필의 마지막에서 글쓴이는 "사람은 감자가 아니다. 뿌리에 매달려 클것이 아니라 뿌리가 공급하는 자양분으로 무성하는 가지에 주렁진 열매로 향기 풍겨야 바람직하다"라고 한다. "뿌리가 공급하는 자양분으로" 자란다는 의미로는 "뿌리에 매달⟫린 감자나 "가지에 주렁진 열매"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아무리 "향기 풍기"는 열매라도 뿌리가 없으면 자랄수도 존재할수도 없다. 구태여 감자와 열매를 구별시킨다면 괴상(塊狀)의 땅속줄기인 감자는 열매에 비해 모양이 투박하지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영양소가 거의 다 들어있는 《건강식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열매도 비교되지 않는다. 쌀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식민통치시기 감자는 우리 민족 농민들을 아사(餓死)에서 구제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별 리유없이 글쓴이는 18세기 영국인들처럼 감자를 비천하게 생각하고있다는 느낌을 주고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글쓴이가 "200여년의 짧은 력사를 기록하고있으나 과학기술발전사는 세계를 놀래우고있"다고 한 미국도 감자가 아니면 력사가 분명히 바뀌였을것이다.

스튜어트 리 앨런이 쓴 "악마의 정원"이라는 책에 따르면 감자는 18세기 영국인 신교도들에게는 라태의 상징이였다. 그들은 아일랜드인들이 빵 대신에 지저분한 뿌리(감자)나 먹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잠이나 자고 간통이나 즐기는 족속으로 변해가고있다고 여겼다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영국인들도 감자를 받아들이였다. 감자는 밀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수 있었기때문이였다. 1845년 감자마름병이 발생하여 아일랜드의 감자산량이 5년간 90%가 감소되자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130만명이 미국으로 이민했다. 케네디대통령의 조상도 그때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국의 국부로 모셔지는 조지 워싱턴도 감자를 심던 농장의 농장주였다. 감자는 병사들의 식량으로 미국 독립전쟁에도 공헌했다. 1995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식량으로 착안한 작물도 감자였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프렌치 프라이를 만드는데 년간 140만톤의 감자를 쓰고있다. 감자가 없는 미국의 음식문화는 상상조차 할수 없다.

감자이야기하다 보니 이승희의 시 《씨앗론》이 생각난다. 《꽃이 피거나/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본성이 아닌 거야/검은 흙 속을/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온 시간들이/단단하게 뭉쳐 있다가/풀리는 일이야//감자꽃이 피는 것은/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땅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생겨나고 있다고/고백하는 것이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99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9 학교설립은 그에게 숙명적인 과제였던가 2006-04-11 96 6285
58 삶의 원동력 2006-04-07 42 5611
57 영원으로 뻗은 꿈의길 2006-04-05 54 5708
56 만남 (5): 《도라지》의 부탁을 받고 2006-04-03 45 5422
55 만남(4) 커피숍에서 2006-03-31 56 5398
54 만남 (3): 온라인ㅡ e- mail. 2006-03-29 56 5464
53 만남(2). 백문불여일견. 2006-03-28 54 5719
52 만남(1)- 귀인은 잊음이 헤프다? 2006-03-27 53 5486
51 생명의 원색 2006-03-24 56 5692
50 (서평) 의미화의 매력 2006-03-23 51 5239
49 (서평) 학자수필의 매력 2006-03-22 63 5488
48 (서평) 사랑의 미학 2006-03-21 68 5090
47 (서평) 깨달음의 미학 2006-03-20 75 5093
46 (서평) 순수성의 미학 2006-03-17 51 5364
45 (수필) 한국에서 기술을 배워라 2006-03-16 49 5547
44 (수필) 수교 10년 2006-03-15 61 5450
43 (수필) 중국인들의 욕과 한국인들의 욕 2006-03-14 86 5768
42 (수필) 글로벌 에티켓과 중국인들의 예절 2006-03-13 65 6845
41 (수필) 중국사람과 숫자 2006-03-10 79 8317
40 (수필) 노랑, 빨강과 중국인 2006-03-08 80 6148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