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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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중국인들의 욕과 한국인들의 욕
2006년 03월 14일 00시 00분  조회:5768  추천:86  작성자: 황유복
중국인들의 욕과 한국인들의 욕



어릴 적 일이지만, 어른들이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들을 '양반'이라고 칭찬해주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애들을 '상놈'이라고 욕하는 것을 자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커가면서 친구들 간에 싸우게 되면 '개새끼', '상놈새끼', '빌어먹을 놈' 하는 식의 욕이 거침없이 오가곤 했다.

몇 달 전 한국 신문에서 모 국회의원이 술을 빙자해서 남을 '×새끼'라고 욕했다가 여론에 몰리자 사과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반세기가 지나갔지만 한국인들의 욕의 기본은 변한 것 같지 않다.

역시 어릴 적 이야기다. 내가 자라난 길림시 부근의 쌍하진이란 마을은 꽤 큰 마을이었는데 마을 주민의 절반은 조선족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한족이었다. 소학교 다니던 시절, 등교나 하교 길에서 같은 또래의 한족 애들을 만나면 멀리 마주서서 욕을 교환하다가 갈 길을 가곤 했었다. 그때 배운 중국(한족)식 욕은 섹스를 의미하는 동사 뒤에 '너 에미'라는 말을 붙인 '×니마'나 자라나 거북이의 '알' 혹은 '새끼'라는 뜻의 '왕빠따안', '왕빠고우즈' 따위였다.

중국의 대 문호인 로신 선생은 상대방의 '에미'를 등장시킨 그 욕에서 동사를 생략 시킨 '타마디'라는 욕을 중국의 '국욕(國罵)'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지금도 중국인들 가운데 말끝마다 그 '국욕'을 난발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옛날 한국인들이 언짢을 때 내뱉은 '제기랄'이라는 말보다 더 많이 쓰는 셈이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 '국욕'에 등장하는 인물은 '에미'에서 '할미'로 승격하거나 더 심각할 경우 8대 조상에까지 누가 미친다.

중국인들의 '국욕'에 버금가는 욕이 바로 상대방을 거북이 '알' 내지 '새끼'로 몰아 부친 것이다. 중국 고대문화에서 거북이는 4대 영물(기린, 봉황, 거북, 용)중의 하나로서 선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송나라 때까지만 해도 신성시되던 거북이의 위상은 원 나라 이후 하늘에서 땅 밑 끝까지 굴러 떨어졌다.

송나라 때 유명한 문인이었던 소동파(蘇東坡)가 거북의 등뼈로 만든 모자를 쓰고 다녔던 기록이 있어 그 때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거북이를 신령한 동물로 섬겨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몽고인들이 통치했던 원 나라 때부터 중국 민간에서는 거북이를 비하시키는 '유언비어'들이 무성해졌다. 암 거북이는 수뱀과 교미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들이다. 교미하기 전 암 거북이는 둥근 원을 그리며 방뇨를 한다. 그 원 안에서 수뱀과 교미를 할 때 수 거북이가 그 것을 발견하고 노기충천하여 달려온다. 그러나 암 거북이가 오줌으로 그어놓은 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혼자서 복장을 터뜨린다고 한다.

'유언비어'의 근원은 한 나라 때 성행했던 '사신도'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방신인 '현무'의 그림은 거북이와 거북이를 칭칭 감고 있는 뱀이다. 따라서 '꿔이얼즈(거북의 아들)'이나 '왕빠따안(자라나 거북의 알)'이라는 중국인들의 욕은 '사생아'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욕의 문화적 의의를 욕하는 사람이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상대를 공격해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자신의 울분을 해소하려는데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욕이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적 풍조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욕이 아무리 심한 것이라 해도 그 핵심적 의미는 '나쁜 놈' 유형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상대방을 부도덕한 것이나 더러운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도덕적인 것을 중시해온 사회가치를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좀 달리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욕은 그들 의식구조에 고질화되어 있는 수직적 서열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상놈새끼', '빌어먹을 놈', '개새끼' 그 모두가 상대방을 비천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왕조가 실시했던 신분제도 하에서 최하층 천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은 주변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이다. 따라서 '상놈'을 욕에 등장시킨 것은 상대방의 '비천'함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빌어먹을 놈'이나 '거지 발싸개 같은 놈'도 마찬가지이다. 거지는 '상놈'보다 더 비천한 존재였고 거지 몸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이 발싸개라 할 수 있다.

옛날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개고기는 제사상에도 못 올라갈 만큼 '천'한 것이다. '개자식' 역시 비천한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욕은 사람의 신분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 대신 중국인들의 욕은 그 핵심적 의미가 '섹스'에 있다. 중국의 '국욕'은 상대방의 '에미'나 '할미' 혹은 8대 조상과 상간했다는 식으로 상대방을 곤경으로 몰아간다. 거북을 등장시킨 욕들도 상대방이 '사생아'라고 몰아 부치기 때문에 역시 간접적으로 상대방 어머니의 부도덕한 성행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성행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중국인들의 욕은 그들의 성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고전명작 《금병매》나 《홍루몽》을 읽으면 중국 옛날의 성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오게 되는 한국인들이 꼭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중국인들에게 선물을 할 때 거북이 모양이나 거북이 그림이 있는 물건들은 삼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200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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