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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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작가론

[시]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2009년 02월 11일 15시 56분  조회:837  추천:26  작성자: 한영남

늙은 별이 밤하늘을 뚜벅인다

어느 모퉁이에 곯아떨어진

병든 개가 흘리는 느침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도시는 헐떡헐떡 수음하고있었다

인적이 끊긴 공원에서는 이따금

맹수의 으르릉거림에 꽃이 놀라 떨어지고

밤비에 가녀린 어깨를 함뿍 적시며

어떤 밤소녀는 거리에서

마지막 손님을 찾아 살꽃이 되였다

늙은 계집아

홍순으로 아름답던 사람아

그러면 이제

너의 빠진 이로는 씹어낼수 없는 낙지와

나의 젖은 간으로는 마셔낼수 없는 배갈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우리는 걸레처럼 웃어보자

 

1

 

그것은 우리의 만남이던가

우리는 며엇 시간을 바보처럼 서서

사랑한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서로의 손도 잡아보지 못한채

쓸데없는 이야기만

우리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에

실어보내군 했다

우리의 신코숭이는

우리가 내리떨군 눈길에 구멍이 나고

우리는 사랑할거라는 말은

아무래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도대체 우리의 만남이던가

 

2

 

바보같은 우리의 만남을 지금도 기억하니? 우왁- 하면 어마나- 하고 지르던 앨트를 지금도 낼수 있니? 나의 싱거운 윙크에 지금도 철없는 미소를 샐샐거릴수 있니? 비를 봤니? 비처럼 내리던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니? 눈을 봤니? 우리 같이 입대고 먹던 눈송이를 기억하니? 꽃보다 풀이 많은 모습으로 우리를 되게 웃기던 화단을 지금도 기억하니? 행복하라며 덤으로 한줌씩 얹어주던 해바라기씨장사군아줌마를 기억하니? 아니, 나의 촌스런 어투를 지금도 기억하고있니?

 

3

 

내가 사는 북동에서

님이 사는 남서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좋은 안해를 만나달라고

오래오래 애마르던 끝에

고개너머 물너머 깊은 남서에

바로 님이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북동서 남서로 가는 길은

가을서리같고

깎은 바위같으시다는 장인님으로

공연히 가슴이 갈팡질팡하던

우둘툴 못난 길이였습니다

 

그뒤로 갈적마다

하러 왔노

하고 지꿎게 물으실가봐

불찬 놈이 그리 꾸물거려

하고 꾸중하실가봐

시름과 걱정을 수없이도 터벅이던

북동서 남서로 가는 길은

길고도 험했습니다

 

그러나 길에는

끔찍이도 사랑해주시며

그만큼 고이 기른 고와해달라는

신신한 부탁은

늘처럼 눈물 글썽이며 뇌이시는 장모님이 계시였습니다

 

꺽두룩이 앉아서 담배 묵소 하고

뚝뚝한 소리를 뜨문히 하는

진이란 녀석도 있고

머루 자셔 하며

머루만치 까만 눈을 고옵게 빠는

아홉살짜리 영아도 있었습니다

 

비도 없이 바람만 한대중 너풀거리는

북동서 남서로 가는 길은

님과 둘이서 걸으면

얼마든지 가볍고

오히려 짧아조차 보이던 길이였습니다

 

남서를 향한 북동의 길은

내가 걸어서 길이 되였고

북동을 향한 남서의 길은

님이

조그마한 발이 부르트도록 부르트도록

낸것입니다

 

4

 

사랑한다고 맹세하면 맹세하는 입술처럼 확실해지는줄 알았던 약속... 리별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떠벌이며 으시대던 왕젊음... 사랑한다길래 가슴으로 들어오는 문을 알려주고 정말 사랑한다길래 심장을 여는 열쇠를 맡겨버렸지... 슬프다길래 잔등을 어루쓸어주고 아프다길래 같이 울어주었지...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서로 인사도 서뿔리 할수 없는 어색한 사이가 됐니... 어느 아이의 지꿎은 장난인양 떨칠수 없이 먹줄간 하얀 회벽은 허물간 다리처럼 창백하구나... 커피처럼 진한 비가 뺨을 두드리면 각혈처럼 너를 향해 시를 토하고 어느날처럼 문득 길가에서라도 너를 만나면 네가 나를 알아볼지 못할가봐 나는 감히 늙을수조차 없었구나...

 

5

 

소녀야

네가 나를 몰랐듯이

나도 너를 몰랐구나

이제는 그저 소녀라 하자

 

사랑했던 소녀야

사나이를 통째로 펼쳐보이며

참으로 철저히 사랑했던 소녀야

무너진 사랑의 터전에서

이제는 시들어버린 서글픈 가시장미

습관처럼 주어들고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저만치 높아진 가을하늘은 말이 없구나

 

종아리 곧은 열여덟살짜리 소녀야

언제 들어도 수줍은 이름자

네가 고집스레 불러주었을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죄꼬만 입술이 유달리 함초롬 고운 소녀야

사랑해드릴게요

하는 너의 야무진 한마디만 없었던들

너를 사랑할 용기가 내게 있었을가

말숙한 너의 눈동자에서는

푸른 하늘이 흘렀고

수줍음을 머금은 너의 이마는

나의 거친 사랑을 받아안기엔

너무도 가냘팠지

 

구태여 알뜰히 구겨진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어느날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린 소녀야

그건 감자굽던 옛말이였지

 

해바라기가 맥없이 고개숙인 정원에서

토마토는 상기 익지도 못했다

아직 푸른 포도알로는

도시의 네온싸인을 무색케 하지 못하는 슬픈 구월

구석에 쓸쓸한 란초의 꽃술은

오히려 나를 비웃고있었다

 

떼보로 너를 사랑하고

울보로 너의 사랑을 먹고

바보로 너를 보내야 하는 나에게

계절따라

락엽 푸떡이는 가을이 펼쳐졌구나

 

봄이면 씨뿌리고 여름이면 열매맺고

가을이면 거둬들이는 자연의 생리로 보면

우리는 어김없는 쭉정이

그래서 바람에 날려가기도 차라리 좋구나

 

이제 세월이 흐르노라면

너도 잊고 나도 잊고

우리는 왕젊음의 간이역에서

모르고 어깨스친 길손처럼 지내자

다시 만나요는

어느 길손에게 배낭으로 지워보내고

서로의 앞길을 두손 모아 빌며

안녕만은 주고받자

 

안녕 안녕 그대 안녕

안녕 안녕 그대 삼가 안녕

안녕을 부르면 빨리 잊힐것 같아

입속 조용히 불러보는

아아 눈물보다 아름다운 안녕이여

 

6

 

하마트면 울번했잖아? 그런줄 몰랐지. 그럴줄 몰랐지. 평신같이 ... 하필 나야? 계집이 없어서? 내가 뭔데? 알바보야! 사랑이 무슨 금덩이라고... 미친 시바보야 !

 

질서없이 무너져내리는 밤의 환영 끝에는 어김없이 모습이 비끼고 인사없이 헤여진 너를 어깨에 내려앉는 락엽처럼 털어버려도 바람결에 묻어오는 너의 소식은 눈발보다 무성했다

 

살았지 그동안 남편 둘을 잃고 이렇게 살아... 외국 가자해도 돈이 있나 젊음이 있나... 이런 늘어진 가슴은 짐승도 싫어해... 그냥 이대로가 좋아! 술과 담배와 음악과 남자들속에서 하루가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말하지 ! 마음 알아! 그따위 껄렁한 말로 서투르게 위안하려는 어리석음 이젠 제발 집어쳐! 지긋지긋해! 그래 나도 사랑했댔어 ?... 나도 잘살아보고싶었어 ?... 남자들이란 그거 빼면 시체야!... 내버려둬! 아니야... 그냥 이대로가 좋아 좋아...

 

홍이 생각나? 홍이 말을 하데... 홍이 살다가 괜히 가슴저려 무릎에 엎디여 울음 울던 나한테 말을 하데... 홍이 그다지도 처연한 눈빛으로 말을 하데... 언제 홍과 같이 둘이서 안마방 구석에 퍼더버리고 앉아 울었다면서?... 홍이 말을 하데... 홍이 글쎄 쓸데없이 말을 하데...


7 
 


지금도
... 시를 쓰니?

이렇게 망가졌는데 시가... 어떻게 나와?

... 아이가 있니?

이렇게 썩었는데 어떻게... 배니?

그럼 우린 꼭같이

썩고 찌들고 망가진 곰팡이들이군!

훗후후후

힛히히히

 

8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타자한다

우리는 서로를 달래주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무던히도 낄낄거렸다

몇번이나 독촉하던 주인아줌마도

카운터에 쓸어져 잠이 들고

어느 늙은 계집의 배허벅처럼

허옇게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간밤의 어린 밤소녀는

무사히 견디여냈는지...

이제 우리도 일어서자

살다보면 가끔씩 오늘처럼 이렇게

우연히나마 만날수도 있겠지

산다는건 그렇고 그런것

만남과 헤여짐에

굳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

그리고 산다는건

네가 생각는것처럼 그렇게 가볍지도 않고

내가 생각는것처럼 그렇게 무겁지도 않다더라

세상에 잠간 놀러온

우리는 지구의 손님이 아니더냐

태여나면서 우리에게 차례진

생명이라는 퉁전을 써버리는

남들한테 해롭지 않은 존재였으면

우린 그것으로 만족하자

그러면

굿바이 썩어빠진 계집아

바이 늙어빠진 시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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