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남 시인(중국)
일본 권위 시전문지 (2021. 12호)은 전문코너 에 이라는 테마로 중국조선족 한영남시인의 특별기고 라는 글을 실었다. 이는 일본의 시전문지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국조선족시인들이 세상에 명함장을 내미는 또 하나의 계기로 된다. 이에 본지는 한영남시인의 원문을 그대로 전재해 세계의 시인들과 호흡을 같이하고자 한다.
한영남 약력 : 1967년 길림성 안도 출생.시, 소설, 수필, 실화, 평론 등 300여만자 발표.소설집 , 장시집 등 출간.중국조선족수필상, 중국조선족동시상, 중국조선족연해문학상,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흑룡강신문 랑시문학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 다수 수상.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자유기고인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하략)
무려 80년 전에 이렇게 읊었던 시인이 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인 윤동주(尹东柱)님이시다.
내가 윤동주라는 이름을 맨 처음 접한 것은 지난 세기 80년대 말이였다. 나의 시 계몽스승이신 림금산(林锦山 전 중국조선족소년보사 문예부 주임) 시인께서 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안도현제6중학교에 찾아오셨을 때였다. 나는 오랜만에 스승을 만난 기쁨에 내가 그동안 써두었던 엉성한 시노트를 꺼내놓고 선생님께 검사해주십사 청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한벌 훑어보고 부족점들을 일일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께서는 나의 시노트에 윤동주시인의 를 직접 외워서 베껴주시는 것이였다. 나는 윤동주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동안 시공부를 하면서 처음 접한 시인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연변이 낳은 위대한 시인 윤동주에 대해 자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일본의 오무라 마스오교수님의 존함을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는 우리 땅에서 태여난 위대한 시인을 그때까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오무라 마스오교수님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셨고 1957년 와세다대학교 제1정치경제학부를 졸업, 도쿄도립대학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박사 학위를 따낸 지성적인 학자이시다. 1964년 와세다대학 전임강사로 임용,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동대학 법학부에서 중국어 담당, 1967년 조교수, 1972년 교수로 승진하셨다. 그리고 1972년 어학교육연구소로 근무지를 옮겨 2004년까지 조선어 담당, 1985년 와세다대학 재외연구원으로 1년간 중국 연변대학에서 류학하며 조선족문학을 연구하셨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고려대학교 교환연구원으로 한국에 체류하셨다.
지금까지 『사랑하는 대륙이여-시인 김용제 연구』, 『시로 배우는 조선의 마음』,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윤동주와 한국문학』, 『중국조선족문학의역사와 전개』 등 저서를 펴내셨고 『한일문학의 관련 양상』, 『조선단편소설선』(상·하), 『한국단편소설선』, 『시카코 복만이-중국조선족단편소설선』, 『인간문제』 등 수많은 번역서도 펴내신 량심적인 학자이시다.
1984년 당시 한국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이며 동시작가인 윤일주(윤동주시인의 동생)선생께서 학술회의차 도쿄에 갔을 때 오무라교수는 윤일주선생을 만나 윤동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윤동주를 더 깊이 연구하고 력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윤동주의 진실된 모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오무라교수는 중국행을 결심한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윤동주묘소와 윤동주가 생전에 다녔던 룡정중학교의 자료실을 뒤져 찾아낸 윤동주 관련 소중한 자료들, 그것들은 실로 력사속에 잠들고 있던 윤동주의 본 모습을 환원해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였다.
드디어 중국조선족들은 자기 땅에서 살아숨쉬며 불멸의 명시편들을 쏟아냈던 윤동주시인을 알게 되였고 그런 시인을 동족으로 둔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 되였다.
오무라교수는 그때 도움을 주셨던 정판룡교수(郑判龙 전 연변대학 부총장), 권철교수(权哲 전 연변대학 교수), 리해산교수(李海山 전 연변대학 교수), 김학철작가(金学铁 조선족 저명한 작가) 등 많은 분들이 그때 오무라교수의 연변에서의 활동을 응원했다고 한다.
또한 김호웅교수(金虎雄 연변대학 교수), 정세봉작가(郑世峰), 남영전시인(南永前 전 장백산 잡지사 주필), 장정일평론가(张正一), 최삼룡평론가(崔三龙) 등 조선족 지성인들과 오무라교수는 지금도 끈끈한 우정과 문화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족시인을 말할 때 윤동주와 같이 거론되는 시인이 또 한분 계신다. 바로 심련수(沈连洙)시인이다. 심련수시인 역시 1945년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뜬 조선족시인이다. 오무라교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심련수시인의 다른 사료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심호수(심련수의 동생)선생을 수차 찾아 설득해 장장 반세기 넘게 보관되여온 심련수(1918년 출생. 룡정에서 고중까지 마치고 1941년 일본대학 창작과에 입학해 고학생활. 1943년 강제징병을 피해 지바현에 있다가 라진항을 거쳐 귀국한 다음 흑룡강성에서 교사로 근무. 1945년 집으로 돌아오던 중 왕청현 춘양진에서 피살)의 친필노트, 그의 일기장 등 귀중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심련수의 본 모습을 세상에 알리는데 오무라교수는 마멸할 수 없는 큰 기여를 하셨다.
여기서 잠간 심련수시인이 쓴 시 를 보기로 하자.
쉴새없이 밀려치는 사나운 물결
陸地의 테두리를 깨물어뜯듯
마지막 發惡을 그대여 보는가
北極의 冰原에서 白熊이 울고
極光이 輝煌하는 雪原에서
北으로 北으로 避難가는 에스키모를
누구의 힘으로 挽留할소냐
얼 부푸는 地軸에서 용가름 트는 소리
地魂이 빠질듯 震動하고
식어드는 兩極에서 찬바람이 일어
微溫이 殘存을 삼키려 함을
그대여 참으로 알고 있는가
그대여 最後의 勝利가 勝利라면
勝利를 못 가질 것 그 무엇이냐
地熱이 식으면 달굴 수 있고
地軸과 軌道가 破盃되면 발굴 수 있으리니
地球星이 宇宙間에 있을 때까지는
우리의 心熱을 輪熱할 수 있고
人類의 歷史를 살릴 수 있을게다
(1941년 12월 3일 게재)
이처럼 오무라교수는 세상에서 많이 소외되고 있는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평생의 심혈을 몰부으신 이 시대의 참된 지성이요 진정한 량심이시다.
윤동주, 심련수와 동시대를 살다갔던 이 땅의 시인들은 서정의 바다에서 삶의 진리를 찾아 힘찬 날개짓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택영(金泽荣 1850-1927), 신채호(申采浩 1880-1936), 리욱(李旭 1907-1984), 류치환(柳致环 1908-1967), 김조규(金朝奎 1914-1990), 함형수(咸亨洙 1914-1946) 등은 에 자주 얼굴을 내밀던 쟁쟁한 시인들이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문단에서 활약했던 김철(金哲 1932년 일본 시모노세끼 출생. 장편서사시 , 등 60여부의 시집 출간), 김성휘(金成辉 1933-1990. 장편서사시 , , 시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