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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문학주름 만들기
2019년 07월 15일 09시 05분  조회:52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문학주름 만들기

한영남

 

소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대뇌에 주름이 많이 생긴다고 한마디 하셔서 내 머리 속 주름은 얼마나 될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총명한 사람들을 헤아릴 때면 의례 스티븐 호킹(IQ 160 정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IQ 170으로 추정), 레오나르도 다빈치(IQ 180으로 추정) 등 명인들이 등장하군 한다. 그들은 일반인(평균 IQ 100)들보다 IQ가 엄청 높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한국 방송에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라는 예능프로가 있다. 거기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전현무, 리장원, 하석진, 김지석, 박경, 타일러 등 고정 출연자이든 그들과 대결을 펼치기 위해 도전하는 게스트이든 일제히 빼여난 문제풀이 재능을 보여주면서 뇌섹남녀들의 쏠쏠한 재미를 부채질해주고 있다.

우리 문학도들 역시 문학주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장편소설 하나 쯤 탈고하면 굵직한 문학주름 하나 생기는 것이고 시 한수 써내면 실주름 하나 쯤 생기는 것이다. 같은 장편소설이라도 어떤 사람은 굵고 깊게 생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볍게 스치는 정도의 흔적만 남기기도 한다. 평생 단 한수의 시만 세상에 남긴 시인도 있다. 그는 바로 그 시 한수로 이 세상에 더없이 거대한 문학주름 하나를 남긴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이제껏 발표해온 수백만자의 글들을 되새겨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주름을 얼마나 만들어왔을가 생각해본다. 굵직한 문학상을 받은 작품보다 많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글들은 나름 대로 괜찮은 문학주름이 아닐가 스스로 위안해보기도 한다.

맵시 있는 주름을 만드는 사람도, 투박한 주름을 만드는 사람도 다 나름 대로의 리유가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를 뿐이다.

욕심 같아서야 쓰는 글마다 세상사람들이 아우성치며 환호하는 명작들을 펑펑 쏟아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문학주름도 몇개 안되면서 서뿌른 욕심부터 부리는 사람들도 꽤 많아진 요즘이 아닌가.

문학주름은 글을 쓰지 않고 좋은 책만 읽어도 생겨난다. 한 사람의 문학생애를 좌우지할 만한 사변적인 작품을 읽었을 때 그의 문학주름은 평소와는 결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빅토르 유고의 《93년》을 내 인생의 거대한 문학주름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그만큼 《93년》을 읽었을 때의 경이로움에서 나는 아직 헤여나오지 못한 까닭이다.

나이가 많다고 꼭 문학주름이 굵고 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어린 문학지망생이라 해도 천부적인 문학재능이 잘 발굴되고 오성도 강한 데다가 독서 등으로 문학 관련 지식들을 두루 많이 습득한 사람은 그 문학주름이 굵고 깊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독서라고 해도 많이 읽은 사람과 알차게 읽은 사람은 차이가 있다. 많이 읽은 사람은 독서면의 확장으로 인한 굵은 주름일 수 있고 알차게 읽은 사람은 파고드는 정신으로 깊은 주름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얘기를 늘여놓으려는 의도는 없다. 옳바른 문학주름을 만들기 위해 서로 열심히 읽고 쓰는 판에 보다 참된 문학주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요청되지 않을가 로파심에 한마디 한 것이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인터넷으로도 많은 정보량 획득이 가능해졌고 웬간한 책들도 인터넷 구독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전에 L평론가가 한국 갈 일이 생겼다면서 나한테 필요한 책 있으면 사다 주마 하는 것이였다. 기쁜 김에 최근에 검색해두고 언제든 구해서 봐야지 했던 책 세권을 부탁했다. 《하마트면 열심히 살 번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환상동물사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해마다 두어번씩 한국행이 가능한 L평론가는 갈 때마다 필요한 책 없나 해서는 그걸 사다 주는 고마운 형이다. 결국 《환상동물사전》은 이미 품절이 된 상태여서 다른 두권만 사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책이 아마 형의 구미에도 맞았나 보다. 원문은 자기가 소장하고 나한테 복사본으로 보내온 것이다.

아무튼 고맙기 그지없는 노릇이였다. 아들 녀석이 기타 교습을 위해 음악학원에 가서 한시간, 태권도관에 가서 한시간 보내는 동안 녀석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군 한다. 역시 멋진 책이였다. 이 두권의 책은 나에게 어떤 문학주름을 만들어줄가 생각할 때면 저도 모르게 흥분하게 된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멘토를 만나는 일 역시 비상히 중요한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십년 공부보다 나을 때가 있다. 그 좋은 사람은 스승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으며 후배일 가능성도 있으며 오다가다 만난 스치는 길손일 수조차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누구인가가 바로 이 멘토인데 커다란 깨우침을 준 사람을 가리킨다.

때론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스승과 선배와 동년배와 후배들을 만났었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서 그렇지 오늘의 내가 있게 된 데는 그들의 그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한 작용을 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멘토를 만나면서 내 문학주름은 만들어졌다. 물론 굉장히 가늘고 옅은, 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주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그것을 내가 세상을 향해 으시대는 자본으로 삼자는 게 아니라 그 흔적이 남겨지기까지 내가 읽은 책과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준 멘토들한테 끈히 고마운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저 함이다.

문학주름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다. 문학상이 문학의 전부가 아니듯이. 그러나 그래도 성실한 문학공부의 길에서 생겨나는 문학주름을 거절하거나 부인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문학주름을 만드는 길에서 “할 수 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 그만큼 나는 충전을 하지 않는 순간 내가 도태되리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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