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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평론의 득실
2013년 05월 02일 10시 56분  조회:898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청탁평론의 득실
 
                                    최 균 선
 
    문학평론은 대체로 작품에 대한 해설과 평가를 가리키지만 동일한 성질의것은 아니다. 전자는 알게하는 일에 속하며 후자는 가치판단에 속하는 개념이다. 평론은 후천적으로 문학창작에 봉사하지만 종속관계가 아닌 독립형태로서 그 존재리유는 평 론대상에서 기인된다. 한 작품이 명성을 떨치는가 못하는가는 많은 경우 평론가에게 달린다. 이처럼 가장 우수한 문학작품과 평론가사이에는 숙명적인 인연이 있다.
    평론은 평론관점에 의해 주관주의평론, 객관주의평론으로 나누게 된다. 주관적 평론은 평론가의 취미와 기질, 문학소양에 의하여 작품에서 받은 감응을 중요시하는 평론이다. 평론의 시발점으로 말하면 크게 평론가의 임의적인 선택성평론과 작자 혹 은 어떤 편집부의 편집수요에 따르는 청탁평론으로 나누어볼수 있다. 주관적선택평론은 작품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청탁평론은 작자의 청탁일때는 더구나 작자와의 친분 관계 혹은 어떤 목적성에서 시종일관 작자를 의식지않을수 없다. 
    체르늬쉡쓰끼는 “평론의 사명은 우수한 독자의 의견을 표달하는것”이라고 했고 뿌쉬낀은 “문학평론은 문학작품의 미와 결점을 비평하는 과학”이라 하였다. 로신도 문학평론의 기능을 두고 “비평은 반드시 잘 된점은 잘되였다 하고 나쁜것은 나쁘다고 해야 비로소 작자에게 유익하다.”고 기치선명하게 진술하였다. 평론가가 평론대상을 임의대로 확정했을때는 비평의 해부도가 객관적으로 휘둘러질수 있으나 청탁평론 거개 그렇지 못하다. 인연과 어떤 리해득실을 앞세운 평론은 처음부터 꿀리기마련이다.
    한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가치판단은 해당작가와 그의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작자의 청탁으로 집필하게 된 평론은 아무튼 작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필이 기울어짐으로써 작자와 작품에는 후광을 씌워줄수도 있지만 그로써 자초에 객관성을 잃을수도 있다. 이는 청탁평론의 제약성이기도 한것이다. 그러나 좋지앓은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다. 청탁에 의한 평론가의 움직임은 해부도를 무디게 할것이기때문이다.
    평론가는 작가와 일반독자, 창작과 감상자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해하는것이 급선무인데 인정에 속박받으면 아무래도 손발이 묶일수밖에 없다. 평론대상을 선정할 때 우선 작자의 이름을 보고 착수하는것도 선입견을 앞세우게 되기도 한다. 평론은 왜 하느냐? 우선 새로운 문학리론을 정립하고 작가의 창작활동을 고무추동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데 목적이 있다.
    문학평론가의 판단, 해석은 작품과 인과관계에 있지만 작품해석에 머물지않고 거기서 출발하여 명확한 가치판단에 이른다. 평론의 기본임무는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평론하는것이다. 뿌쉬낀은“문학평론은 문학작품의 미와 결점을 제시하는 과학”이라 하였다. 문학의 백화원에는 아름다운 꽃송이도 있고 잡초도 있을수 있다. 문학평론은 향초를 가꾸고 잡초를 매버리는 동시에 창작과 감상도 지도해야 한다.
     벨린쓰끼는“비평가와 독자는 담화하는 두사람이다.독자들은 당신들의 비평을 읽고 황홀해져서 당신들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고 정말 미학적법칙의 조항들이 정확 하게 적용되였으며 작품은 잘되여있다고 보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앓은 결과를 초래할것이다. 즉 당신들의 비평을 잊어버리기도전에 당신들이 찬양한 그 작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기때문이다. 그것은 당신들의 분석대상인 작품이 미문학(美文学)작품이 아니라 속임수의 잡화와 같은 작품이기때문이며 미학적형식은 있는듯하나 미학적생활정신이 없었기때문이다.”라고 쓰고있다. 귀담아둘 명제이다.
    고대희랍의 미학가 하라스는 “창작을‘칼’이라면 평론은 ‘숫돌’이다.‘숫돌’은 비록 자기절로 움직일수 없지만 능히 강철칼을 날카롭게 날을 세워줄수 있다.”라고 정채로운 비유를 하였다. 작자와 독자의 시각차이는 불가피하다. 평론가는 바로 이런 량자의 시각차이를 조절하는 역할도 놀아야 한다. 량자의 시각차이가 너무 현격하면 접수심리상 충돌이 생기여 문학재창조활동에 참여할수 있는 조건인 리해성과 가독성이 거부당하고만다. 이런 시각차이의 이률배반현상을 해결하는것이 평론가의 밀 어버릴수없는 사명이며 그 사명은 공정성을 요구하고있다.
    평론가는 작가와 일반독자, 창작과 감상자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해하여야 한다. 평론가 자신이 독자이기도 하므로 그의 사명은 “우수한 독자의 의견을 표달하는것 이다.”그만큼 평론가는 독자들에게 예술상에서 재창조열정을 지니도록 요구하는 가장 리상적인 표달자로 충당되여야 한다. 평론이 인맥에 공정성을 묻어버리고 비실제적으 로 깎아맞추어 올리추는 수단으로 되지말아야 비판성이 공정하게 될수 있다.
    평론가는 전문직의 신분에서 작품이 얼마나 독자를 유익하게 하는가? 어떤 미적향수를 제공하는가 제시해야 할것이다. 진정 훌륭한 평론은 창작방법을 가르치고 창 작과정을 감시하는 대신에 작가의 창작력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그에 필요한 분위 기와 신념의 계렬을 준비시켜야 바람직하다. 그로 말미암아 작가의 창작능력의 건전 한 성장과 발현을 볼때 비로소 평론의 지도성이 발생가능한것이다.
    문학평론은 하나의 작품이 좋다, 나쁘다로 금을 그으면 작업이 끝나는것이 아니라 왜좋은가? 왜나쁜가를 판단적근거로 세시하는 작업으로서 평론가가 초점을 사회현실에 둘것인가? 독자에게 둘것인가? 작가에게 둘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실체로서의 작품자체에 둘것인가에 따라 그 평가가 왕창 다르게 나온다. 문학평론에서 경향성은 약국에 감초같은 존재이지만 현실적사회공리성의 목적으로부터 문학작품의 가치, 의의를 유익한 면에서 판단해야지 올려추려고 작정했다면 괴리가 나올뿐이다.
    례컨대 수필의 예술적매력은 감상자들을 매료하고 감동시키는데서 실증되지 어느 평론가가 권위성을 휘둘러서 인기되는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독자야말로 리성판단보다 심장의 느낌으로 가늠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3의 “평론가”들이기때문이다. 때문에 문학작품ㅡ수필의 심미가치판단에서 작품의 감화력을 우선하지 어느 평론가의 “일언중천금”에 있지않다. 이것은 문학작품의 가치실현에 관한 문제이며 나아가서 문학의 공리성문제이다.
    평론에서 정체성이란 한편의 수필이라도 정체적으로 착안하고 각개 구성요소 및 내재련계를 계통적으로 고찰, 파악하면서 가치와 의의를 전방위적으로 평가할것을 요구하는 원칙이다.“어떠한 개인이든 문학상의 가치는 자기가 결정하는것이 아니라 오직 정체적비교속에서만 결정된다.” 이 말에는 지엽적문제를 캘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체적창작을 보아야 한다는 유익한 제시가 담겨있다.
    한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가치판단은 작품의 운명을 결정한다. 례컨대 무슨상을 받을 바탕을 닦어주기도 하며 그로써 상을 받으면 작자의 인끔은 대번에 올라간다. 그러나 인맥관계로 청탁을 받은 평론이라해서 돼지코에 생파를 꽂아놓고 코끼리라고 궤변을 부리지 말아야 하고 도마뱀을 공룡으로 과장하지 말아야 하며 호박에 줄을 그 어놓고 수박이라 선전하지 말아야 하며 고양이를 키워 동북호랑이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하면 그 작자로서는 잠시 자아감각이 꽃 피겠지만  실속있는 창작발전에는 백해무익하며 평론가로서는 우을 범하는것이다. 글나무는 순조로 자라는것이지 그런 조작성과는 인연이 없다.  평론의 생명은 진실성일진대 객관성, 공정성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점을 모를 평론가는 없을줄 안다.
    문학현상자체가 개방식계통이다. 작품에 대한 어떠한 해석, 결론이든지 계단성 의의를 가질수밖에 없다. 이른바 분석의 동태성원칙은 구체대상의 가치, 의의를 발전 적안광으로 볼것을 요구한다. 평론에서도 창조성원칙이 지켜지는데 평론가가 자기 심미시각과 심미경험으로써 객체를 창조성적으로 접수하고 재창조하고 대상속에서 독특한 발견하는것이다. 기계적으로 모종 평론표준에 깎아맞추지 말아야 하거니와 독립자주적의식으로 궤적을 탈리하지 않는것을 전제로 리론과 주장 및 심미취미를 침투시킬것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고 이름, 인맥, 실리를 앞세운다면 첫단추부터 잘못끼우는 실책,시행착오는 독자의 힐문, 힐난을 받지않을수 없다. 
 
                                                2013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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