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의 보모가 사는 신안진이라는 농촌에 당도해 보니 신랑 집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신랑 어미니는 반갑다고 뭘 대접하고 싶은데 대접할게 없어서 부랴부랴 엿을 만드느라고 법석이었다.
밤에 우리는 온식구 일곱 사람이 한구들에서 이불 한 채에다 발만 밀어넣고 하루밤을 새웠다. 구들장이라는게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하였는데 게다가 담요도 없이 자자니 잠이 올리 없었다. 신랑은 미안해서 몇 번이나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신랑이 좋아서 불편한 것도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결혼 첫날밤은 이렇게 지새웠다.
어떻게 보면 우린 지금 젊은이들이 말하는 려행잔치를 한 셈이다. 우리가 연길에 돌아오자 소문을 들었는지 신랑의 문예계 친구들이 돌연 습격을 했다.
“이 자식, 결혼을 했다는게 술 한잔도 안 내?”
나는 불이나케 술상을 차렸다. 그 때 우리 집에 들이닥친 사람들은 모두 문예계 거두들이었다. 소설가 김학철, 작곡가 정진옥, 모두가 당시 한다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날 신랑 친구들은 우리 초가집에서 구들장이 꺼지도록 춤추며 신나게 놀았다.
날이 저물어 모두들 귀가길에 올랐다 헌데 김학철씨의 지팽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는 택시도 없는 시절인데 지팽이가 없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실로 난처했다. 모두들 김학철씨의 지팽이를 찾아 나섰다. 나중에 김치움에서 그의 지팽이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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