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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죽어도 시집은 안 갈래요
2014년 06월 05일 02시 17분  조회:1673  추천:2  작성자: 훈이
 열네살 때 일이었다. 너무도 살기가 힘이 드니 할머니는 나더러 시집을 가라고 했다.
“시집 가라구?”
“그래 잘사는 집에 가면 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잖겠니.”
“시집이 뭔데?”
진짜 철없는 나로서는 그 뜻을 리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웬 사람들이 한구들 모여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모, 고모부, 오빠뻘 되는 사람도 끼어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니 모두들 국수사발을 놓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서 들어 오너라, 저 웃방에 가 인사를 해라, 너 신랑되는 사람이 있다.”
고모가 반색을 하며 나를 웃방으로 안내하였다.
“신랑 되는 사람?”
“너를 민며느리로 삼자고 사둔댁에서 사람들이 왔단다.”
“민며느리?”
나는 듣다 첫소리다. 나는 그자리에서 맏고모가 건네주는 국수사발을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국수사발이 찰랑하고 깨지는 바람에 화기애애했던 집안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우리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나를 설득시키려는 심산이었다.
“우리 집안은 양반집안이어서 어른들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 기집애 왜 례모없이 구는 거야.”
 고모가 나를 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옛날에도 처음엔 울고불고 하다가 동여매 가면 아들딸 낳고 잘 살더라.”
둘째 고모부의 말이다.
동여매 간다는 말에 나는 겁이 덜컥 났다.
“동여매 가는 날이면 난 죽고 말테야!”
나의 태도에는 타협할 여지가 없었다. 이 무렵 심순애와 리수일 소설을 본 나는 내가 마치도 다이아몬드에 팔려가는 심순애 같아서 더더구나 펄펄 뛰었다.
“그래도 신랑을 시켜서 자주 만나게 하면 정이 들거야.”
고모부 말은 능청맞았다.
그래 그랬던지 며칠 후 밤에 문밖에서 문고리 당기는 소리가 났다. 달빛에 모자를 꾹 눌러쓴 한 사나이의 모습이 창호지에 어려 있었다.
 그때만해도 초가집인 우리 집 문고리에는 삼끈을 감아놓은 문이어서 밖에서 당길 때마다 삼끈이 조금씩 풀렸다. 나는 그 사람이 신랑감이라는 사내인줄 알아차리고 뒷문으로 도망을 쳤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몇 번을 왔다가 그 때마다 헛물을 켜고 돌아갔다.
 내가 만약 고모부 말과 같이 동여매가는 날이면 양잿물을 먹고 죽기로 작심하고 이웃집 아주머니한테서 돈 10전을 꾸어 양잿물을 산다는 것이 만두 잿물을 잘못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너무도 고민 끝에 나는 신경쇠약까지 걸렸다. 그래서 자다가도 나는 죽겠다고 헛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며칠 후 제삿날에 친척들이 또 모였다.
“안되겠다. 저러다가 잘못되면 큰일이니 혼사를 물릴 수 밖에.”
둘째 고모부 말이 떨어지자
“국수 값이나 신랑의 명예손상비는 어떻게 하고, 명예손상비는 부르는게 값인데”
맏고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끈을 이었다.
“국수 값은 내가 낼께.”
언니 남편-아저씨가 자진해 나섰다. 아저씨는 운전수여서 국수 값을 낼만 했다.
“사돈 설득은 내가 할께.”
영화관 해설사로 일하는 외사촌 오빠가 자신있는 소리를 했다. 영화해설을 하는 오빠는 말이 청산류수라 그렇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이 갔다.
 이튿날 외사촌 오빠는 사돈을 불러왔다. 양가의 “담판”이 시작된 것이다.
외사촌 오빠의 말은 변설이었다.
“억혼(억압으로 하는 혼사)을 반대하는 오늘의 신사회에서 우리가 억압적으로 결혼을 시킨다는 것도 법에 위반이요 본인 저렇게 반대를 하니 할 수가 없군요 사돈어른 그렇지 않습니까?”
 사돈댁이라는 여자도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듣는 말에 따르면 그 여자도 어느 촌의 부녀회 주임이어서 법을 모르는바 아니었다.
이윽고 그도 말문을 열었다.
“글쎄요. 억압으로 약혼을 시키는 것도 오늘 법에는 맞지 않을상 싶은데요.”
말이 이렇게 실마리가 풀리자 대화에는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남자 측에서는 결혼을 급급히 서두르자고 결혼날짜 택일 해왔는데 섣달그믐으로 잡아왔다. 봉건미신이 많은 우리 맏고모가 즉석에서 반발했다.
“왜 하필 썩은 달을 잡은거요?”
옛습관에는 섣달은 썩은 달로 치는 모양이었다.
 파혼 담판이 순조롭게 풀리니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로부터 나에게는 시집가라는 소리가 죽으라는 말보다도 더 싫었다. 누구의 입에서 시집가라는 말만 나오면 나는 펄펄 뛰었다. 할머니도 이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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