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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2015년 06월 26일 13시 07분  조회:5370  추천:0  작성자: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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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본지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현지 시각 6월 18일 목요일 정오 12시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 현장에 태극기 꽂아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기사입력  2015/06/25 [10:30]
 
 

【UB(Mongolia)=Break News GW】
☞주(註)⇒몽골 캠퍼스 방학을 이용해 지난 6월 14일 일요일 오후 짧은 중국 취재 방문에 나섰던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지난 6월 24일 화요일 아침 무사히 몽골로 복귀했다. 2015년 여름의 본 중국 현지 취재을 통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의 생생한 보도 기사를 향후 몇 차례에 걸쳐 특파원 리포트 시리즈로 싣는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에 이르는 여정은 참으로 멀고도 길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부터 장장 47시간을 차량 이동으로 소비한 끝에 중국 현지 시각 6월 18일 목요일 정오 12시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에 당도했다.



몽-중 국제 열차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남쪽 자민우드까지 13시간⇒지프로 몽골 자민우드에서 중국 얼롄(二連)까지 4시간⇒심야 침대 버스로 중국 얼롄(二連)에서 퉁랴오(通了)까지 17시간⇒고속버스로 중국 퉁랴오(通了)에서 지린(吉林)까지 6시간⇒고속버스로 지린(吉林)에서 옌지(延吉)까지 5시간⇒승합차로 옌지(延吉)에서 투먼(圖們)까지 2시간 등 모두 47시간이 걸린 셈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두만교로 가는 길에 보이는 북한 현지의 신록은 푸르렀다. 두만강 너머로 북한의 한적한  시골역(驛)이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두만교로 가는 길에 보이는 북한 현지의 신록은 푸르렀다. 두만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한적한  시골역(驛) 역사에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드디어, 본 기자는 중국 현지 시각 6월 18일 목요일 정오 12시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 현장에 섰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긴장감이 감도는 북한-중국 접경 지역에 서고 보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중국 측에 서서 두만강(豆滿江) 현장을 둘러보며, 본 기자는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지금의 국방부 장관)를 지내다 역모 사건 주모자로 요절한 남이장군(南怡將軍)의 시(詩)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후세에 누가 일러 대장부라 칭하리오)


참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당시 조선 임금 예종이 직접 손수 나서 친히 국문하는 자리에서, 영의정(당시 국무총리) 강순(康純, 당시 79세)을 역모 혐의로 끌고 들어가는 통에 본 기자의 조상들이 거의 멸문지화(滅門之禍)에 다름없는 참으로 참담한 상황으로 몰리기도 했으나, 남이장군(南怡將軍)의 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찬 넓고도 큰 원기(元氣), 자유롭고 유쾌한 마음,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바 없는 용기 등을 뜻함)만큼은 그야말로 흠모할 만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놀랍게도, 북한-몽골의 경계인 두만강(豆滿江)은 몽골과도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왜냐. 몽골과 두만강(豆滿江)은 조선(朝鮮) 건국의 굳건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윤은숙 강원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의 개국(開國), 그리고 두만강(豆滿江) 및 몽골 군대와의 연결 고리를 윤 교수는 다음과 같은 삼단 논법으로 도출해 냈다.

“1단계,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가 전북 전주에서 살다가 170호를 이끌고 삼척을 거쳐 두만강(豆滿江) 하류를 거슬러 올라가서 몽골을 건국한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인 테무게 오트치긴(Temuge Otchikin=Тэмүгэ Отчигин, 1168?~1246) 가문이 지배하던 지금의 중국의 옌지(延吉) 부근에 정착했다.

2단계, 요컨대, 몽골을 건국한 칭기즈칸은 동생에게 만주 일대의 관할권을 맡긴 뒤, 이안사(李安社)는 여기서 천호(千戶)의 수장 겸 다루가치(Darughachi=達魯花赤, 중국 원나라 때에, 고려의 점령 지역에 두었던 벼슬. 점령 지역의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거나 내정에 관여함)로 임명되었고 후손들도 ‘테무게 오트치긴(Temuge Otchikin=Тэмүгэ Отчигин, 1168?~1246) 가문 고려계(高麗系) 몽골 군벌 가문’으로 성장해 갔다.

3단계, 목조 이안사(李安社)⇒익조 이행리(李行里)⇒도조 이춘(李椿)⇒환조 이자춘(李子春)⇒태조 이성계(李成桂)로 이어지는 이씨(李氏) 가문(家門)은 다루가치의 지위를 승계하면서 함주, 등주, 화주의 고려인과 여진인을 지배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사병(私兵)으로 거느리고 있던 가별초군(家別抄軍)은 여진족을 다수로 하는 유이민(流移民) 집단이었다. 이들은 몽골 기마 전법으로 단련되었을 뿐 아니라 여진족이 특기로 하는 산악전 기술도 익혔다. 이 군사력이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開國)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로, 윤은숙 교수는 새천년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몽원(蒙元) 제국기 테무게 오트치긴(Temuge Otchikin=Тэмүгэ Отчигин, 1168?~1246) 가문의 동북 만주 지배’라는 논문으로 대한민국 사학계의 큰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1990년대 초, 몽골 현지에서 몽골 유학생으로 연구에 열중하던 윤 교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두만강변에 북한기, 중국기 옆에 태극기가 나란히 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편, 현재의 북한-중국 국경선은 1964년 3월부터 발효된 조중 변계 조약(朝中邊界條約, 중국 측에서는 中朝边界条约이라고 함)에 근거하고 있다.



조중 변계 조약(朝中邊界條約, 중국 측에서는 中朝边界条约이라고 함)은 1962년 10월 12일 북한과 중국 양측이 평양에서 체결한 국경 조약으로서, 1964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북한과 중국 양측이 의정서(조중 변계 의정서=中朝边界议定书)를 교환함으로써 발효되었다.



본 조약의 역사적 배경은 1880년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0년대에 조선과 청나라는 두 차례 걸쳐 백두산과 그 동쪽의 국경을 명확히 정하기 위한 감계(勘界) 회담을 가진 바 있었으나, 회담은 모두 결렬되었다.

제1차 감계 회담(1885년)에서는 백두산정계비에 쓰여진 동위토문(東爲土門)의 "토문(土門)"이 두만강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양측이 다투었다. 당시 조선 측은 정계비의 위치상 '토문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다'고 주장하였고, 청나라 측은 양측의 기본적인 국경선이 두만강이라는 전제하에 '토문은 곧 두만강을 지칭한다'고 주장하였다.


제2차 감계 회담(1887년)에서 조선 측은 백두산 산정(山頂)에서 가장 가까운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를 국경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고, 청나라 측은 북포태산(北胞胎山)에서 발원하는 두만강의 지류인 홍단수(紅端水)를 국경으로 주장했다가 조선 측 대표인 이중하의 논리에 밀리자 홍토수의 남쪽 지류인 석을수(石乙水)를 경계로 삼자고 수정해 제의하였다.

그 뒤, 1909년 9월 4일,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 당한 상태에서 청나라와 일제(日帝)는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그 상류의 경계로 정하였다. 하지만, 1945년,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일제가 체결한 조약인 간도 협약은 무효가 되었다.



이에 새로 국경선을 정하기 위해 체결된 조약이 바로 본 조약이다. 본 조약은 백두산-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북한과 중국 양측의 국경선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북한 김일성과 중국 저우언라이가 북한과 중국 양측을 대표하여 서명하였는 바, 본 조약은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황해 영해(領海)의 국경선에 관한 내용을 적고 있다.



본 조약문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天池)의 경계선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의 서남쪽 안부(鞍部, 안장처럼 들어간 부분)로부터 동북쪽 안부까지를 그은 직선'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천지의 54.5%는 북한에, 45.5%는 중국에 속한다. 또한, 조약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 및 두 강의 하중도와 사주(砂洲, 모래톱)의 귀속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는데, 이 조약의 의정서에는 양측 국경의 총 451개 섬과 사주 가운데 북한은 264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87.73㎢)에 대해, 중국은 187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14.93㎢)에 대해 영토권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 조약의 의의는 백두산의 국경을 자연 경계인 천지(天池)로 하고 그 동쪽 국경을 천지에서 가장 가까운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로 하는 자연스러운 국경을 정함으로써 19세기 후반부터 한세기 동안 논란을 이어 온 백두산과 두만강 상류의 국경선을 명확히 획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본 조약이 갖는 한계는 북한과 중국 양측이 모두 비밀로 하였기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은 1999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조약은 북한과 중국 양측이 모두 그 체결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는 비밀 조약이므로 한반도 통일 과정이나 그 이후에 국경 분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냉전시대였던 1980년대 초에 백두산 천지(天池)를 북한과 중국 양측이 분할했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알려진 후 한동안 중국의 6.25사변 참전의 대가로 북한이 천지의 절반을 중국 측에 할양했다는 주장이 신뢰할 만한 근거 제시 없이 대북(對北) 불신감에 의존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실상, 현재도 북한이 토문(土門)을 국경으로 주장하지 않아 간도(間島)의 영유권을 포기했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중국 측에 서서 두만강(豆滿江) 현장을 둘러본 기자는, 즉각 망원경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 너머로 보이는 북한 함경북도 남양(南陽)시 모습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아울러,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들도 꼼꼼하게 살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를 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명언을 추억처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태극기를 든 강외산 교수가 망원경으로 북한 진영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를 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할 수 없다"는 명언을 추억처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저만큼 떨어진 곳에 중국 측이 설치한 나루터가 보였다.
“두만강 푸른 물에~”로 시작되는 국민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이 떠오르면서 왠지 본 기자의 마음은 애잔해졌다.



왜 하필이면 제목을 청승 맞게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뽑았을까? 하긴, 일제 강점기에 두만강 나루터에 황혼이 내리면 강나루 주막집을 떠나기 싫어, 헤어지기 싫어 술잔을 부여안고 울던 어느 젊은이가 있었을 법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 조선인은 나룻배에 올라야 했을 것이고, 정든 고향, 정든 사람들을 되돌아보며, 되돌아보며 떠나야 했을 것이다.

어느 하늘 아래 다시 만날 언약도 없는 이별도 있었을 법하다. 만주 가서 돈 벌어 오겠다고 다짐하며 떠나던 남편도, 색소폰 소리를 서럽게 울리며 떠나던 유랑 극단도, 보고 싶은 사람 만나러 가던 여인도 있었을 터이다.



겨울이면 얼음을 밟고 건너던 두만강, 그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밤이면 강나루에 나룻배는 묶이고, 늙은 사공은 술잔을 기울였을 터이며, 강 건너 가던 숱한 조선 사람들은 일제 치하의 조국을 한탄하며 숱한 슬픔을 되씹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두만강 나루터에는 그 나룻배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혹시, 그 뱃사공의 손자가 자라 다시 뱃사공 되어 옛날처럼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고 있지 않을까 했으나 한낱 개꿈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두만강변의 중국 측 나루터에서 중국 배에 올랐다. 멀리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두만교가 보였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두만강변의 중국 측 나루터에서 중국 배에 오르자니 멀리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두만교가 보였다. 왼쪽이 북한 쪽, 오른쪽이 중국 쪽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현재, 북한 측의 국경 경비는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국방경비총국 소속 국방경비대(54,000명 규모)가 맡고 있다. 이 북한 국방경비대는 국경-해안 및 철도 경비 여단으로 편성돼 국경과 해안 철도 경비 임무에 현재 투입된 상태이다. 한편, 중국 측의 국경 경비는 현재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약칭 무경=武警)가 맡고 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중국 측의 엄호(掩護) 아닌 그야말로 엄호(掩護)를 받으며 두만강변의 금수강산  둘러보기에 나서는 그야말로 참으로 기막힌 꼴이 벌어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하지만, 본 기자의 두만강 방문 하루 전인 6월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중국 내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북한-중국 국경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북한군의 범죄를 막기 위해 최근 정규군인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을 전격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본 기자로서는, "중국이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한 장기적 대비책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정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겠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태극기를 든 강 교수 어깨 위에 멀리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가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두만강변 너머로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가 보였다. 요컨대, 눈물 젖은 두만강(豆滿江)에는 노 젓는 뱃사공은 보이지 않고, 북한 함경북도 남양(南陽)시 입구 강언덕엔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중국 측의 엄호(掩護) 아닌 그야말로 엄호(掩護)를 받으며 두만강변 둘러보기에 나서긴 했으나, 본 기자가 대한민국 국적인데다가 건너편 쪽은 북한이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기자는 그야말로 바짝 긴장했다. 왜냐. 두만강변은 물새 우는 평화롭고 고요한 강언덕이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모든 일에는 돌발사태라는 게 있는 것이다. 돌발사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본 기자는 미리 염두에 두었다. 이것은 DMZ(비무장지대)에 근무했던 예비역 병장의 본능(本能)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적인 본 기자가 겪을 수도 있는 두만강변에서의 돌발사태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공(功) 세우려고 환장한 북한 군인 동무한테 제대로 걸려서 총 맞고 개죽음을 당하는 경우이다. 요컨대, 일단 쏴 죽여 놓았으니, 그 다음은 공화국에 불법 잠입한 놈 사살했다고 뻥튀기 하는 게 정해진 순서일 터이다. 이렇게 되면, 남과 북은 적(敵)인 경우이므로, 동족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전혀 통하지 않게 되며, 동족이란 개념은 그야말로 헛소리나 개소리가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남북 양쪽 전부 다 죽는 거라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긴 하겠으나, 그것은 일이 터지고 난 뒤의 사후약방문일 터이므로, 그야말로 허망한 결과론일 뿐이다.



두 번째 경우는, 체포돼 북한 당국의 조사를 받는 경우다. 당연히, 한국인의 출신 성분이나 증언 태도에 따라, 각기 다른 세 가지 결과가 도출될 수 있겠다. 첫째, ‘자진 월북한 친북 인사로 환대 받고 북한에서 살게 되든지’, 둘째, ‘반(反)북한 악질 역도(逆徒)로 몰려 교화소에 장기 수감되든지’, 셋째,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북한 측이 국외로 추방해서 고이 돌려 보내든지(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 등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건너편에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가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건너편에 북한 측 국경 경비 초소가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돌발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본 기자의 조국은 과거에도, 현재도, 대대손손 대한민국임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 둔다.

배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중국 나루터 쪽으로 향했다. 멀리 중국 쪽에서 북한 쪽으로 넘어가는 트럭 한 대가 보였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배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중국 나루터 쪽으로 향하는 순간 두만강교를 건너 중국 쪽에서 북한 쪽으로 넘어가는 트럭 한 대가 보였다. 배가 돌아나와  방향이 바뀌었으니 이번에는 왼쪽이 중국 쪽, 오른쪽이 북한 쪽이 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멀리 중국 국기가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배에서 내려 한참 동안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배가 중국측 나루터로 되돌아오면서 그렇게 본 기자의 두만강변 둘러보기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2015년 여름 본 기자가 본 두만강변  북한 풍경은 오래 오래 추억의 잔상으로 남으리.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 동기와 배경⇒가수 김정구씨의 구수한 목소리로 만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이 노래는 나라 잃은 우리 한민족의 설움과 한이 배어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국민 가요로 일컬어지는 이 노래는 1930년대 중엽 중국 동북 지방을 순회 공연 중이던 극단 `'예원좌'의 작곡가 이시우씨가 중국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의 한 여관에 머물 때 만든 작품이다. 이 노래의 창작 동기와 과정은 이렇다. 1935년 여름, 유랑극단 예원좌의 일원으로 두만강 유역을 공연 차 방문했던 작곡가 '이시우'는 당시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자려는데 옆방에서 들리는 한 여인의 비통한 울음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이시우는 이튿날 여관 주인으로부터 울음의 사연을 들었다. 그 여인의 남편은 여관 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로, 항일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이 두만강을 건너 면회를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일본 경찰에게 총살된 후였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사형 당했다는 사실을 안 독립군 아내는, 그날이 마침 남편의 생일인지라 여관방에서 술 한잔을 바치려 했는데, 이를 안 여관 주인이 제사상을 차려 들고 들어오자, 이 여인이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이시우는 밖으로 나와 그 여인이 건너온 한 서린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나라 잃은 설움과 남편 잃은 비통함을 오선지에 그려 나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 곡을 극단 예원좌의 소녀 가수 장월성에게 순회 공연의 막간에 부르게 했다. 그리고 노래의 사연을 소개하자 공연장은 이내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이 노래를 듣는 청중들이 감격해 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이시우는 이 노래를 정식 음반으로 남기고 싶어 그 당시 인기 가수 '김정구'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김정구는 작곡가 박시춘을 찾아가 음반 제작을 상의했고, 작곡가 김용호에게 부탁해 1절밖에 없던 노래를 3절까지 완성시켜 OK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했다고 한다. 음반이 발표되자 김정구는 가는 곳마다 무대에서 이 노래를 꼭 불러야 했을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1930년대 이시우가 작곡하고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애절한 심경을 울렸고, 오랜 기간 동안 전 국민의 노래처럼 애창되게 된 것이다. 애초, 노랫말은 2절이었으나, 언제인가부터 3절이 추가돼 불려 오고 있다. 노랫말에서의 임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스러진 독립 투사”를 상징하는 낱말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취재 후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에서 내려 뒤돌아나오면서 한참 동안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북쪽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도대체,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을 수 있게 하겠다"던 너네 위정자들이 지향하던 전략, 전술은 어디에다 팔아 쳐먹었는지를! 인민들 굶겨 죽이면서 지구촌에 허풍 치는 게 너희들 위정자들이 할 짓이더냐? "Shame on you all!"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아아, 지나간 세월이여! 우리는 언제쯤이나 북한 동포들과 이 두만강 푸른 물에 손 담그며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에 겨워 울어 볼까? 본 기자는 마치 황성옛터에 선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몽골-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중국 국경 눈물 젖은 두만강에 서다. 강외산 교수가 태극기를 들고 두만강변에 굳건하게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가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6.25 발발 65돌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맞댄 채 대치를 계속 중인 남북 분단의 현실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제쯤이나 통일의 날은 오게 될 것이며, 눈물 젖은 두만강 방문을 실현한 올해 2015년 여름은 뒷날 어떤 모습으로 본 기자에게 남아 있게 될까? 2015년의 여름이 깊어간다.



 

▲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Mongolia, led by Minister L. Purevsuren).     © Alex E. KANG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Copyright ©Break News G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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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25 [10:30]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눈물 젖은 두만강



작사⇒김용호, 작곡⇒이시우, 노래⇒김정구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임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임이여 그리운 내 임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 메어 우는데
임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 멘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임이여 그리운 내 임이여 언제나 오려나

3. 임 가신 강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 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옛 임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임이여 그리운 내 임이여 언제나 오려나



유감스럽게도, 지구촌 국가 중 중국에서는 유튜브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이에, 중국 주재 재외동포들을 위해 중국 Youku 동영상으로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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